Ⅰ. 서론오늘날과 달리 중세 국어에는 사잇소리가 한자어와 고유어에서 다르게 적용되었으며 또 그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른 표기 형태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또한 종성의 표기에 있어서도 본래의 뜻을 밝혀 적는 '종성부용초성'의 원리와 '8종성법'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어느 작품에는 종성부용초성이 적용되었다더라, 사잇소리가 'ㅅ'으로 통일되었다더라 하는 단편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으나 정작 그 구체적 작품을 살펴보고 그것을 확인하는 것에는 소홀한 면이 없지 않다. 이에 여기에서는 15세기의 대표적인 작품인 (1445), (1448년 경), (1450년 경), (1481) 네 작품을 사잇소리와 종성 표기에 따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그 특징에 대해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Ⅱ. 본론1. 중세 사잇소리와 종성 표기1) 사잇소리사잇소리는 명사와 명사가 연결될 때 들어가는 것으로, 현대에는 합성 명사에서만 나타나는데 비해, 중세 국어에서는 합성명사는 물론이고 구에서도 사용된다.의미상으로는 관형격 조사와 같은 구실을 하며, '∼의', '∼에 있는', '∼에', '∼하는'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 발음상으로는 울림소리 사이에 끼는 안울림소리의 울림소리 되기를 방지하며 다음 소리를 되게, 또는 강하게 소리나게 한다.각각의 사잇소리 표기의 연결조건은 다음과 같다.구 분사용 조건앞말 끝소리관형격 촉음아랫말 첫소리한자어에서ㆁㄱ안울림소리ㄴㄷ안울림소리ㅁㅂ안울림소리ㅱㅸ안울림소리ㅇㆆ안울림소리울림소리ㅿ울림소리고유어에서울림소리ㅅ안울림소리울림소리ㅿ울림소리ㄹㆆ안울림소리(ㅳ)2) 종성의 표기중세에는 'ㅋ'과 'ㅎ'을 제외한 모든 자음이 종성으로 사용되는 '종성부용초성' 원칙과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ㆁ'만이 올 수 있다는 '8종성법'이 사용되었다. '8종성법'은 대표음화를 반영한 것으로 'ㄱ,ㅋ→ㄱ ; ㄷ,ㅌ→ㄷ ; ㅂ,ㅍ→ㅂ ; ㅅ,ㅈ,ㅊ→ㅅ'으로 대표음을 사용한다.'종성부용초성'은 어원 또는 형태소의 기본형을 밝혀 적는 표기법으로 표의주의 표기법이라 할 수 있고, '8종성법'은 표의 사적을 125장의 한글 가사로 노래하고, 그에 해당하는 한시를 본문으로 하여 각 장르별로 한문주해를 붙인 전 10권의 책이다.이 책은 세종 27년에 정인지, 안지 등에 의해 본문인 125장의 가사가 이루어지고, 다시 최항, 박팽년, 강희안, 신숙주, 성삼문, 이개 등이 주해를 덧붙인 후, 세종 29년 10월에 간행 배포되었다. 따라서, 《용비어천가》는《훈민정음》 반포 일 년 전에 완성되어 그 일 년 뒤에 간행된 책으로, 훈민정음을 사용한 최초의 작품이라는 데 역사적 의의가 있다.① 사잇소리·제4장 : 狄人(적인)ㅅ서리예, 野人(야인)ㅅ서리예 → 한자어 'ㄴ'과 안울림소리 사이에 사잇소리 'ㅅ' 사용. 그러나 본래 한자어 앞말의 끝소리 'ㄴ' 다음에는 사잇소리로 'ㄷ'이 와야 한다. 따라서 여기서의 'ㅅ'은 사잇소리가 아니라 관형격 조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관형격 조사의 경우에 있어서도 '높임의 뜻을 가진 유정 명사'의 뒤에나 '무정 명사'의 뒤에 'ㅅ'이 쓰이는데 '적인'과 '야인'은 두 가지 중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이것은 예외 규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제4장 : 하다 힝디시니 → 고유어 'ㄹ'과 'ㅳ'사이에 사잇소리 'ㆆ' 사용.·제5장 : 까힝 움흘, 안햐 움흘 → 고유어 울림과 울림 사이에 사잇소리 'ㅿ'의 사용.·제6장 : 西水(서수)ㅅ까힝, 東海(동해)ㅅ까힝 → 한자어 'ㅇ'과 안울림 사이에 사잇소리 'ㅅ'의 사용. 본래는 'ㆆ'이 와야 한다. 따라서 여기서의 'ㅅ'은 관형격 조사로 볼 수 있으며, 관형격 조사 중에서도 '무정 명사' 뒤에 쓰인 것으로 볼 수 있다.·제7장 : 즘겟 가재 → 고유어 울림소리와 안울림 사이에 사잇소리 'ㅅ'의 사용·제8장 : 兄(형)ㄱ힝디 → 한자어 'ㆁ'과 안울림 사이에 사잇소리 'ㄱ'의 사용·제12장 : 先考(선고)ㆆ힝, 청나래, 平生(평생)ㄱ힝 → 한자어 'ㅇ'과 안울림 사이에 사잇소리 'ㆆ'의 사용, 고유어 울림과 울림 사이에 사잇소리 'ㅿ'의 사용, 한자어 'ㆁ'과 안울림 사이에 ㅅ'이 와야 할 것이나, 한자어의 경우에 미루어 고유어의 경우에도 'ㅁ' 뒤에 사잇소리 'ㅂ'을 쓴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볼 수 있다.·제16장 : 英主(영주)ㅿ 알하 → 한자어 'ㅇ'과 울림 사이에 사잇소리 'ㅿ'의 사용·제18장 : 셔힝 使者(사자)링 → 고유어 울림과 안울림 사이에 사잇소리 'ㅅ'의 사용·제26장 : 後(후)ㅿ날 → 한자어 'ㅇ'과 울림 사이에 사잇소리 'ㅿ'의 사용·제28장 : 아바아 뒤헤 → 고유어 울림과 안울림 사이에 사잇소리 'ㅅ'의 사용·제67장 : 까차 까힝 → 고유어 울림과 안울림 사이에 사잇소리 'ㅅ'의 사용·제102장 : 몃 間(간)ㄷ지비 → 한자어 'ㄴ'과 안울림 사이에 사잇소리 'ㄷ'의 사용⇒ 에서는 사잇소리 표기로 'ㄱ, ㄷ, ㅂ, ㅅ, ㅿ, ㆆ'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앞서 표에서 보인 것과 다른 원칙이 적용된 경우도 많이 발견된다.② 종성의 표기·제2장 : 곶 됴코 → 종성부용초성에 해당 (종성에 'ㅈ'을 사용)·제7장 : 이페 : 잎+에 → 종성에 'ㅍ'을 사용·제24장 : 애잎 → 종성에 'ㅿ'을 사용·제34장 : 깊고, 높고 → 종성에 'ㅍ'을 사용·제36장 : 좇거늘 → 종성에 'ㅊ'을 사용·제40장 : 맛거늘 → '맞'에 8종성법의 적용·제68장 : 까 아니 말이샤 → 종성에 'ㅿ'을 사용·제80장 : 빛나시니힝다 → 종성에 'ㅊ'을 사용·제84장 : 새닢 → 종성에 'ㅍ'을 사용·제100장 : 닛디 마링쇼셔 → '닝'에 8종성법의 적용·제103장 : 애이 → 종성에 'ㅿ'을 사용·제110장 : 몃 → '몇'에 8종성법의 적용·제125장 : 까 업스시니 → 종성에 'ㅿ'을 사용⇒ 에서는 종성 표기로 'ㅈ, ㅊ, ㅍ, ㅿ' 등의 받침이 나타난다. 이는 표의적 표기법이자 종성부용초성의 원리를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110장에서 보듯 '몃'의 경우 등에서 예외적으로 8종성법이 적용되어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는 '종성부용초성'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를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종성부용초성'의 원칙은 중세 종성 표기의 흐름에서 와 에서만 나타나는 예외적인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2) 월인천강지곡은 수양대군이 지어 올린 을 보고, 세종이 석가의 공덕을 찬양하여 지은 찬불가로 와 함께 악장 문학의 갈래에 드는 운문 서사 문학이다. '월인천강지곡'이란 명칭은 그 협주를 통하여 알 수 있는데, '달이 온 세계를 비추는 것처럼 넓고 큰 석가의 공덕을 찬송한 노래'라는 뜻이다. 이 노래의 간행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대개 과 같은 시기인 세종 29년에 완성되어 세종 31년 이전에 간행된 것으로 본다.① 사잇소리·其 2 : 셰世존尊ㅅ일, 먼萬리里힝ㅅ일이시나, 쳔千짜載썅上ㅅ 말이시나·其 3 : 나랏 쳔 일버힝·其 4 : 몸앳 필 뫼화·其 6 : 善慧ㅅ德, 善慧ㅅ힝·其 9 : 後ㅅ일잎·其 14 : 힝 光明을, 하다고지·其 15 : 摩耶ㅅ힝, 밧기·其 25 : 부텼 德을⇒ 에서 사잇소리는 모두 'ㅅ'의 형태로 나타난다.② 종성의 표기·기 7 : 다싶 곶 → 종성에 'ㅈ'을 사용·기 9 : 도다 : 돋+아 → 종성에 'ㄷ'을 사용, 표의적 표기·기 16 : 낮과 → 종성에 'ㅈ'을 사용·기 26 : 까 업스실아 → 종성에 'ㅿ'을 사용·기 40 : 낱 붚힝 → 종성에 'ㅌ, ㅍ'을 사용·기 42 : 곶 이슬 → 종성에 'ㅈ'을 사용·기 49 : 다 고힝 → 종성에 'ㅊ'을 사용·기 178 : 맞나힝힝며 → 종성에 'ㅈ'을 사용·기 211 : 곶우희 → 종성에 'ㅈ'을 사용·기 239 : 딪돠잎 → 종성에 'ㅍ'을 사용·기 249 : 깊거다 → 종성에 'ㅍ'을 사용·기 420 : 곶비 → 종성에 'ㅈ'을 사용⇒ 종성에 'ㄷ, ㅿ, ㅈ, ㅌ, ㅍ, ㅊ' 등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종성부용초성의 원리가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3) 훈민정음 언해'훈민정음'이 지시하는 대상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종 25년(1443년)에 창제된 신문자를 가리키고, 다른 하나는 이 신문자에 대한 예의와 해설을 적은 것으로서 흔히 《과 각 문자의 음가와 운용법 등에 대해 밝힌 '예의'(본문), 신문자 창제의 방법과 원리 등에 대해 설명한 '해례' 및 신문자의 창제 이유와 창제자, 문자의 우수성, 편찬자, 편찬 연월일 등에 대해 밝히고 있는 '정인지 서문'으로 이루어져 있다.이 글에서 다루려고 하는 《훈민정음언해》라 함은 《훈민정음》의 내용 가운데 어제서문과 예의(본문)만을 국역한 것을 의미하는데, 이를 흔히 '언해본 훈민정음'이라 한다.① 사잇소리·나랏 말아미 (나라+ㅅ+말아+이) → 고유어 울림과 울림 사이에 사잇소리 'ㅅ'의 사용. 본래는 'ㅿ'이 사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사잇소리가 아니라 관형격 조사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사용된 관형격 조사는 무정 명사 뒤에 쓰인 경우이다.·엄쏘리니 (엄+ㅅ+소리) → 고유어 울림과 안울림 사이에 사잇소리 'ㅅ'의 사용.·君(군)ㄷ字(차) → 한자어 'ㄴ'과 안울림 소리 사이에 사잇소리 'ㄷ'의 사용· (싶)ㅸ字(차) → 한자어 'ㅱ'과 안울림 사이에 사잇소리 'ㅸ'의 사용.·快(쾡)ㆆ字(차) → 한자어 'ㅇ'과 안울림 소리 사이에 사잇소리 'ㆆ'의 사용·覃(땀)ㅂ字(차) → 한자어 'ㅁ'과 안울림 소리 사이에 사잇소리 'ㅂ'의 사용·穰(힝)ㄱ字(차) → 한자어 'ㆁ'과 안울림 소리 사이에 사잇소리 'ㄱ'의 사용·가운딪소리 → 고유어 울림과 안울림 사이에 사잇소리 'ㅅ'의 사용.⇒ 에는 사잇소리로 'ㄱ, ㄷ, ㅂ, ㅸ, ㅅ, ㆆ' 등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거의 대부분의 사잇소리 표기가 사용된 것이다.② 종성의 표기·싶밑지 : 싶밑+디 → 8종성의 적용·밑다 : 밑+다 → 8종성의 적용·긋딪다 : 긍+딪+다 → 8종성의 적용·다가니라 : 닿+다+니라 > 닿다니라 > 닫다니라 > 단다니라 > 다가니라 → 8종성의 적용⇒ 에는 8종성법에 의해 종성이 표기되어 있다.4) 두시언해 초간본《두시언해》는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1,467편을 주를 달고 언해한 책으로, 권두 서명은 '분유두공부시'이다. 이는 불경 언해가 주종을 이루던 왔다.
을 읽고책의 종류를 막론하고, 읽으면서 내용 전반에 대해 이해와 감상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부분부분의 표현이나 문맥에서 공감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나 그 내용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없는 경우,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에 반가운 나머지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즉, 아는 만큼 느낀다는 말은 언제나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을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을 자주 갖게 됐다. 전혀 새로운 내용을 접하는 경우 그에 대한 비판적 이해나 감상의 층위보다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지식에 대한 신선함과 함께 무조건적 이해가 주가 되는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얻음과 함께 나 자신의 소양의 부족함을 반성하는 계기 또한 되었던 것 같다. 책을 펴자마자 보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요약하는 자들은 지식과 사랑을 모두 망쳐놓는 놈들이다."라는 말은 그 뜻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나 역시 공감하는 부분이다. 다른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소개와 함께 대략적인 내용을 요약해 놓은 책은 그것을 읽고 옮겨 놓은 이의 견해가 다분히 섞여 있게 되므로 원문에 대한 내 나름의 감상이 이루어질 수 없고, 옮긴 이의 견해에 쉽게 빠지게 되는 단점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방대한 분량의 지식을 얇은 한 권의 책을 통해 접하고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만으로도 큰 의미를 둘 만하다.1. 빈민과 걸인의 역사 - 자본주의 권력의 핵심 문제이 수업을 듣기 전에는 역사가 '가진 자들의 기록'이라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언제나 대다수의 억압받는 민중들의 삶보다는 소수의 가진 자, 얻은 자들만이 역사 속에서 거론되었으며, 시간이 흘러 또다시 다수의 민중들이 될 사람들은 현재에 자신도 가진 자가 되어 역사에 남기를 소망하며 위인전을 읽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이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접하면서 생각나는 것이 와 이다. 승리한 자의 측면에서 기록된 와 수 많은 전쟁에 동원과서에서 그 의미를 강조하는 것과 달리 현대에는 대다수의 민중들이 다시금 영웅의 일대기를 담은 를 필수 도서로 삼는 것과 달리 는 그 이름조차 생소한 사람도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역사가 승리한 자의 이야기만을 기록한 것이라는 점에서 대다수의 민중들이 분개할 만도 하건만 오히려 그들의 삶을 추종하고 매력을 느낀다는 점에서 인간의 특성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이러한 대다수의 민중들은 위로는 '가진 자'들의 삶을 추종하고 아래로는 자신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삼으면서, 또한 그들을 억압하는 방식에 합의함으로써 사회를 구성하고 역사를 만들어 온 것이 아닌가 싶다.2. 나이프로 이를 쑤시지 말라 -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예절의 권력학이 챕터도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다. 오늘날 매너라 여겨지는 것이 그 발생을 따져 보면 얼마나 지저분하고 원색적인 것에서 유래한 것인지 알 수 있는, 흔히 말하는 엽기적인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과거의 매너에 관련된 기록에서 '식탁보에다 코를 풀지 말라, 나이프로 이를 쑤시지 말라, 소변이나 대변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지 말라'는 것과 더구나 '신체 부분을 필요없이 노출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하물며 그것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손으로 만지도록 해서는 안된다'라는 규정이 있는 것을 볼 때 당시의 사람들의 의식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행동을 금기시 하면서 추천하는 매너가 '식사중에는 손으로 코를 푸는 것은 안 되고, 대님을 이용하는 것이 궁정식'이라든가, '침을 찾아 발로 비벼 없앨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뱉어서는 안 된다' 등이라는 것이다. 매너서가 비판하고 있는 당대 사람들의 행동들도 재미있는 것이지만, 그들이 제시한 매너 역시 오늘날 우리의 시선으로 볼 때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는 듯하다. 즉,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매너의 관점도 변화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 책에서는 그 변화를 '세련된았을 때 눈살을 찌푸리며 쳐다보지 않았는지,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매너를 발견하였을 때 마음이 덜컹하면서 그것을 재빨리 습득하려는 노력을 하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어느새 너무도 쉽게 나를 통제해 가는 것들을 그 필요성도 생각해 보지 않은 채 받아들이는 것에만 익숙해 져버린 것은 아닌지 말이다.3. 아리에스와 죽음의 역사죽음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역사적 변천을 겪는다. 중세부터 18세기 이후까지는 순화된 죽음, 즉 예고된 죽음으로서의 인식을 가지며 죽는 자가 스스로 자신의 죽음의 의식을 집전하며 공공장소에서 편안하고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죽은 후에도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 사체를 매장한다. 이러한 인식은 누구나 맞이하는 절차로서의 죽음의 의미가 크게 작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4, 15세기가 되면서 점차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에서 나의 죽음으로 의미 부여가 되고, 18세기에 나의 추억과 사랑의 대상인 너의 죽음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며 오늘날에는 결국 금지된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었다.오늘날의 죽음이 금지된 죽음이라니.. 하지만 사실 우리는 죽음은 더 이상 생각할 여지도 없이 가장 극단적인 최악의 상황으로 바라보며, 이를 당사자가 알게 되는 것도 가슴 아파하며 알리지 않는 방법을 취한다. 자신의 마지막 가는 길을 준비할 여유를 주지 않는 사회가 된 것은 중세의 스스로 죽음의 의식을 집전하던 때와 너무나도 차이를 보인다. 현대가 발달된 사회라고 말하지만 죽음에 대한 의식은 중세의 그것보다 뒤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죽음을 자연스러운 세계의 질서로 인식할 때 죽음에 대한 두려운 감정도 사라질 것이며, 그에 따라 내가 없으면 세상도 끝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남은 이들을 위한 노력을 더 많이 기울이게 될 것이다. 현대는 나 중심의 사고관에 지나치게 매어 있어 현재를 위한 삶만이 오직 가치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게 된다.4. 연옥의 탄생 - 르 고프와 서양 중세앞서 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천국과 지옥, 또 그것의 중간층인 연들의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정치 사회적으로 가진 자들은 그들의 위치와 권력으로 이러한 나약한 인간의 심성을 이용해 자신들의 사욕을 채우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지나치게 영악하고, 대범하며 잔인하기까지 하다. 그들은 민중들에게 전해지는 그런 믿음을 전혀 믿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미래의 지옥행을 감수하고서라도 현재의 욕망을 충족하고자 했던 것일까? 나약한 인간의 모습과 이를 이용한 권력층의 사기 행각은 씁쓸한 느낌만을 남게 한다.5. 하느님과 이윤의 이름으로 - 편지를 통해 본 중세 상인의 일상 생활가진 자의 행보만을 기록하는 역사의 이면에 대다수의 민중들의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자료들을 알 수 있는 가장 큰 자료원은 문학 작품들일 것이다. 문학 작품을 통해 큰 줄기에는 속하지 못했지만, 역사에 거론될 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지도 화려한 것도 아니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기록은 문학 작품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이러한 것들이 오히려 더 매력 있고 재미있는 것인지도 모른다.여기 한 중세 한 상인의 편지를 통해 중세인의 일상적 삶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은 재미를 준다. 중세에는 산 고양이를 못박고 남자들이 자기 머리로 들이받아서 죽이며 노는 놀이가 재미있고 일상적인 놀이로 향유되었다든가, 영화에서 보듯이 자애로운 유모의 이미지가 아니라 중세의 유모는 대개 아이들을 무지막지하게 때리곤 해서 '내 유모를 다시 만나면 죽여버리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 약혼식에는 본인들은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참금에 대한 흥정이 이루어졌으며 여자가 결혼 이후 2년 이내에 병들어 죽으면 환불을 해주었다는 것, 이 당시 사람들은 하루에 두 끼만을 먹었으며, 세 끼를 먹는 것은 대단한 사치이거나 짐승처럼 사는 방식으로 취급되었다는 것, 알몸으로 자면서도 나이트 캡을 착용하는 중세인들의 모습들은 일반 역사서에는 기록되기 어려운 모습이면서, 중세를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살아있는 역사이기도 하다.6. 밤의 전투 - 마술과 농업 의식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의없는 일이 되겠지만 말이다.'베난단테'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과 다른 사상과 믿음을 가진 자들을 어떻게 대했는가에 관한 문제 일 것이다. 단지 그들과 관념적으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 물론, 그것이 사회 정치적인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하나 - 박해 받는다는 것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어디서나 이루어져 왔던 일이다. 오히려 더 오랫동안 그들 세계를 지배해 왔던 믿음이라 해도 새로운 가치와 믿음이 힘을 얻게 되는 순간, 그것들은 소멸해야 하는 너무도 당연한 이유를 가진 것들이 되어 버리는 논리에 맞닥뜨리게 된다.여기서 보이는 전통 민속 신앙(샤머니즘)과 새로운 종교의 갈등은 우리의 역사와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불교와 유교의 관계라던가, 소설 에서 보이는 무속신앙과 기독교의 관계에서도 그러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힘을 얻고, 잃어가는 믿음의 소멸 구조를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하겠다.7. 성, 사랑, 가족의 사회사 - 아리에스와 폴랑드렝의 심성사적 접근한 사람의 머릿속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틀 지워진 것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오늘날의 우리는 아동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당연시 여기고 있지만, 중세시대의 사람들은 그들의 천성이 나빠서가 아니라 인식의 틀이 그러했기 때문에 아동에 대한 개념이 없었을 것이다. 아동의 개념도 중상층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생각해볼 때 일차적으로 생존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여유가 생긴 이후에야 비로소 아동이라는 개념도 생겨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중세의 '작은 어른'에서 근대 중상층에서 새로이 어린이의 개념이 생겨나고, 이제 아동은 보호 받아야 할 대상으로서의 인식이 자리잡혀 가게 되었다. 따라서 새로운 인생의 단계가 설정되게 되는데 이 단계는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이며, 어른들의 보호와 감시, 통제를 받는 단계가 되었다. 아동은 가족 및 사회 전체로부터 보호 받아야 할 대상이 다.
◈ 담장이란...?담장은 소유권 표시로서의 대지경계선 확정, 사람이나 동물의 침입방지, 외부의 시선 차단, 방화 ·방음 등의 목적을 가진다. 담장과 울타리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인간이 거주지를 정하고 정착생활을 하게되자 적의 방어를 위하여 또는 외부와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만들기 시작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담장은 주인의 신분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양반가의 담장은 높고 견고하며 안쪽으로 꺾여 들어가 방어적 기능을 더욱 강하게 나타낸다. 이러한 담장에는 자신의 삶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한국인의 은둔적 취향이 반영된 것이다. 민가의 담장은 보일 듯 말듯 이웃과 교류를 가질 수 있는 절묘한 높이의 담장이었다.시간이 지남에 따라 담장에는 방어와 경계표시를 위한 기능 이외에 차츰 장식적인 기능이 가미되기 시작했다. 옥사조에 보면 신라시대에는 벼슬아치의 품계에 따라 건물의 규모와 의장을 규제했는데, '진골의 집은 담장에 들보와 기둥을 세우지 못하고 석회를 칠하지 못한다. 또 육두품 이하 관리의 집은 오채(五彩)로 꾸미지 못하고 원장은 8척을 넘지 못하고 양동(梁棟)을 세우지 못하고 석회를 칠하지 못한다. 또 오두품의 집 원장은 7척을 넘지 못하고 들보를 걸지 못하고 석회를 칠하지 못하고, 4두품의 경우는 6척을 넘지 못하고 또한 들보를 걸지 못하고 석회를 칠하지 못한다.'고 정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록을 참고로 하면 당시의 담장이 얼마나 화려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또 다른 담장의 기능으로 남성적 공간과 여성적 공간의 구분을 들 수 있다.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하여 사랑문을 거치고 중문을 거처야만 안채가 나왔으며 그 사이에 담을 치고 문을 닫아 공간을 분리했다. 이런 기능을 수행한 것 중 하나가 내외벽(내외담, 내외담장 등)인데, 안채의 중문 앞에 설치하여 문이 열려있더라도 안채가 보이지 않도록 그 앞에 세워둔 작은 담이다.담장에는 한국인만의 미의식과 의식구조가 반영되어 있다. 사대부가의 담장은 높고 견고하지만 모두 막혀있는 것은 아니었다. 담장을 치다가 뚫다가를 반복하면서 완전차단이 아니라 숨통을 틔어주는 효과를 가지기도 했다. 또, 담장 안만 우리의 뜰로, 공간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담장 밖의 자연도 뜰로 생각하여 담에 적절한 위치에 구멍을 내거나 뚫어놓아 담 밖의 냇물이나 동산 등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것은 한국인의 자연공간과 인공공간의 조화의식을 드러내는 일면이라 할 수 있다.◈ 담장의 종류담장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서 만들게 되고 따라서 그 주변의 환경과 담장은 잘 어울리게 된다.담장은 우선적으로 그 재료에 따라 종류가 구별되게 된다. 일반적으로 경미한 재료로 만든 것 또는 속이 들여다 보이게 한 것을 울타리 또는 책(柵)이라 하는 데, 판장(板墻), 목책, 가시철망울타리, 바자울, 산나무울 등이 이에 해당된다.이보다 튼튼하게 만든 것을 담 또는 담장이라 하며, 담을 축조하는 재료에 따라 구분하면 토담 ·돌담 ·벽돌담 ·블록담 ·콘크리트담 등이 있다. 토담은 흙과 지푸라기, 석회 등을 섞어 쌓거나 여기에 돌을 넣어 쌓기도 한 담으로서 현재는 잘 사용이 되지 않는 담이나, 한국에서는 질이 좋은 흙이 많이 나오므로, 한국전통건축, 특히 일반농가에서 많이 사용되었던 담장이다. 돌담은 돌을 쌓아 만든 담으로 경비는 많이 드나 그 지방에서 나는 돌을 사용하면 경제적이다. 외관이 미려하고, 마모 및 풍화에 강해서 옛날부터 궁궐이나 상류주택에 많이 사용되었다. 호박돌, 막돌, 잡석 등을 그냥 쌓아 만든 강담, 맞댐벽을 어림따기로 한 막쌓기담, 일정한 크기의 돌을 줄바르게 쌓은 사고석담, 돌면을 다듬어 일정한 줄눈으로 쌓은 다듬돌담 등이 있으며 담장쌓기 방식은 크게는 막돌허튼층 쌓기로 된 것과 다듬은 돌 바른층쌓기로 된 것이 있다. 전자는 지방의 일반농가에서 많이 이용되었으며, 후자는 궁궐 건축, 관아 건축, 상류 건축 등에 주로 쓰였다.이외에도 무늬를 놓아 아름답게 장식한 꽃담과 기능만을 위주로 쌓은 담장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꽃담은 화장(華墻), 화문담, 화초담이라 하며 장식되어진 모양에 따라 분장(粉墻), 영롱담, 취벽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러가지 채색으로 글자나 무늬를 놓고 치장하는데 담의 면 주위에 뇌문, 초용 등의 선을 두르고 그 가운데 십장생이나 화초의 모양 등 민화적인 그림을 넣는다. 또 벽돌로 간단히 당수복(福자나 壽자를 넣은 모양)을 넣어 쌓기도 한다. 꽃담은 궁전, 사찰, 관아건물, 민가에 많이 장식되었으며 특히 도회지의 여염집에 많이 사용되었다. 현존하는 꽃담의 예는 고궁과 사찰의 담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또한 쌓는 방식에 따라 외담과 맞담으로 대별하는데 에 의하면 담을 쌓되 바깥 면에는 돌을 써서 쌓고 거푸집을 써서 쌓는 담을 외담이라 하고, 거푸집없이 담 안팎으로 돌의 머리를 두게 하여 면을 맞추면서 쌓은 것을 맞담이라 한다.◈ 담장이 아름다운 곳● 창덕궁 낙선재담장은 공간 구분 외에도 조경요소로써의 기능을 가지는데, 낙선재의 후정에 있는 담장은 그것의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낙산사사찰 등의 특수한 공간의 담장은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만들 게 된다. 낙산사의 담장은 흙과 기와를 층층이 쌓아 그 가운데 동 그란 화강암을 넣어 문양을 낸 것을 볼 수 있다.● 소쇄원한국정원의 특색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전통 정원인 소쇄원은 담장 밑으로 자연스럽게 냇물이 흐르도록 만들어 놓았다.소쇄원의 담은 자연석과 황토흙을 섞어 쌓은 운치 있는 토석담으로 담 위에는 기와를 이었다.옛날에는 입구에서부터 애양단에 이르기까지의 직선 구간에 김인후의 을 목판에 새긴 것이 담벼락에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서쪽 담장에 송시열이 쓴 '소쇄처사양공지려(瀟灑處士梁公之廬)'와 '애양단(愛陽壇)', '오곡문(五曲門)'이란 글자가 목판과 석판에 새겨져 담벼락에 붙어 있다. 소쇄원의 담은 서쪽 경사진 산록을 내려오면서 직각으로 수없이 꺾어지는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이런 담장은 율동미를 보여주며 좁은 공간에서도 넉넉한 여유를 가져다 준다.◈ 나의 감상아무것도 없는 넓은 공간에 단지 담장을 둘러 놓기만 해도 그곳은 이미 다른 공간과는 다른 의미가 부여된 공간이 된다. 마치 어린왕자의 친구가 된 여우가 여타의 다른 여우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처럼, 그 담장 안의 공간은 이미 다른 공간과는 달리 울타리를 친 이가 의미를 부여한 그만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나는 오랫동안 담장이 없는 아파트라는 곳에서 살아와서 그 담장이 주는 아늑함과 여유를 잊고 살아온 것 같다. 우리의 선조들이 담장을 어떻게 치고 또 어떻게 활용하며 살아왔는지를 조사하면서 우리 한국인의 '자연과 인공의 조화의 미'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고전'이라고 이름 붙은 것은 그것이 소설이든 시조이든 쉽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나 우선적으로 표기면에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문이 많이 섞여있어 읽어 내려가기가 어렵고 따라서 쉽게 읽을 수 조차 없는 것이 작품으로서 다가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고전 작품 속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영웅적 이야기나 정절, 효성, 우애 등 우리 세대가 쉽게 공감하고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도 이유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원인은 고전에 대한 관심의 부족과 더불어 고리타분하다는 고정관념 때문이 아닐까. 이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지금껏 과제를 제외하고 즐기기 위해서 스스로 고전을 찾아 읽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이번 경우에도 고전 소설 중에 무엇이 있었는지 한참을 생각하고, 작품으로서 즐기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이 무엇이 있을까 고심한 끝에 을 고르게 되었다. 이 소설은 예전에 TV 드라마에서 약간 코믹하게 그려놓아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어 쉽게 다가올 듯 싶었다. 물론 그 TV 프로그램에서 이춘풍으로 나왔던 배우의 이미지와 얼굴이 떠오르는 등 약간의 영향이 있긴 했지만 소설을 읽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다.우선 을 읽음에 있어 가장 매력적인 요소는 그 길지 않은 분량이었던 것 같다. 소설이나 드라마나 질질 끌거나 같은 부분이 계속 반복되는 것은 아무리 재미있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그 재미가 반감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런 면에 있어서 이 작품은 군더더기 없이 진행되는 것이 좋았다.두 번째로 등장인물들의 설정이 매력적이다. 돈을 물쓰듯하고 미색에 약한, 부족한 점이 참으로 많은 남자 이춘풍과 그런 남편을 개과천선하게 만드는 지혜로운 아내는 남성이 우월한 위치를 점했던 시대에 이런 소설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흥미 로운 요소가 아닐 수 없다.나의 고정관념 때문인지, 무지 때문인지 고전 소설에서 이렇게 확실하게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한 위치를 점한 소설은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의 유한림 정도의 인물이 있긴 하나, 그는 이춘풍 정도로 모든 면에서 부정적인 면모를 지닌 사람은 아니었다. 이춘풍은 그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미색을 탐하고, 무능력하면서 있는 돈까지 물쓰듯하고, 게다가 '어질고 착한 아내 머리채를 선전시전 비단 감듯, 상전시전 연줄 감듯, 사월 초파일 등대감듯, 뱃사공의 닻줄 감듯 휘휘칭칭 감아쥐고 이리 치고 저리 치며,' 폭행까지 하니 이 정도면 나쁜 조건을 모두 갖춘 인간형이 아닌가. 반면에 그의 아내는 평양에 장사하러 간다하고 기생에게 빠져서, 가져간 돈 이천 오백냥을 날리고 그 집에서 '물이나 긷고 불 사환'이나 하는 일꾼으로 있던 이춘풍을 기개로서 구해낸다. 그것도 남장을 하고 '회계 비장'으로 분하여 춘풍을 구해낸다. 그렇게 춘풍을 구해 집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방법 또한 기개가 넘친다. 이러한 설정이 조선시대 남성우위의 사고관에서 어떻게 나왔을까. 그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설정이 아닐 수 없다.셋째로 그 내용 자체가 흥미로운 것이었다. 고전 소설의 주된 주제인 효나 충, 정절, 우애 등의 유교적인 교훈들이나 영웅담이 아니라 좀 모자란 남편을 기개로써 구해내고 또 남편을 골려주기까지 하는 아내의 이야기는 자체로서 유쾌하고 재미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조선시대에도 기생에게 현혹되어 가진 돈을 모두 날리고 패가망신하는 남성들이 있었던 것을 보여주면서 그것을 경계하는 구실도 하고 있는데, 춘향이 같은 정절 드높은 기생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자를 꼬셔서 돈을 모두 뺏고 나니 얼굴 색을 싹 바꾸는 기생이 있었던 것을 보면 그 시대도 지금과 별반 다를 것이 없구나 싶기도 하다.요즘 들어 여성의 권위가 많이 상승되었다고 하나, 아직까지도 여성들에게 많은 제약이 있음이 사실이고 그로 인한 피해의식이 나에게도 많이 내재되어 있는 듯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극적이며 순종적인 여인이 아니라 남편을 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춘풍 처의 활약이나, 조선시대에 그런 여성상을 그릴 수 있었다는 것 등이 나에게 대리만족과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켰으니 말이다. 그리고 춘풍의 처와 같은 그런 적극적이고 능력있는 여성은 멀리 조선 시대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소망하는 바가 아니였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또, 어떤 이를 골려준다는 행위가 가장 크게 웃음을 주는 것은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위치에 있는 사람을 골려줄 때이지 않을까. 말뚝이가 양반을 조롱하는 것이나 아내가 남편을 골려주는 것도 이런 면에서 일맥상통한 것이 아닐까싶다. 그렇기 때문에 춘풍이 갈분을 쑤는 것이나, 손수 주안상을 들여오는 등 그 당시 남성들이 매우 수치스럽게 여겼던 부엌일도 하게 되는 춘풍을 보면서 웃음이 나오게 되는 것이 아닐까.그러나 결국 결론적으로 교훈성을 짙게 가지고 있다는 점이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점에서 여타의 작품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못한다. 특히 춘풍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연후에 가산을 탕진하고도 기생에게 홀려 가진 돈을 모두 날렸던 사람이다. 또한 회계 비장의 도움으로 돌아와서는 아내에게 큰 소리를 쳤던 사람이다. 그랬던 사람이 아내가 구해준 사실을 안 이후로 개과천선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것은 못내 걸리는 결말이다. 그런 못된 버릇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 것인데-물론 3년이나 고생을 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쉽게 고쳐져서 결론적으로 해피엔딩과 교훈성이라는 두 가지의 고전 소설의 틀을 완벽하게 만족시킨 듯 하여 좀 아쉬운 생각이 든다.또한 춘풍의 처가 '회계 비장'으로 분하고 들어와서 춘풍에게 각종 심부름을 시키고 그의 자존심에 금이 갈 만한 말을 하고 했음에도 -평양에서도 볼기를 치는 등의 행동을 했었다- 남장을 벗어 던지고 난 연후에 보인 춘풍의 행동이 놀랍다. 그는 그저 깜짝 놀란 후에 '어찌하여 평양 비장으로 내려오며, 또 내가 아무리 잘못 하였기로 가장을 형틀에 올려 매고 볼기를 친들 그다지도 몹시 치니, 그때 자네 마음이 상쾌하던가'라면서 이야기하면서 웃는다. 그의 평소 성격대로라면-처의 머리채도 움켜질 정도의 성품을 가진 이가- 오히려 더 성을 내고 '남편을 무엇으로 아느냐'하는 등의 말을 하고도 남았지 않았을까. 앞쪽에서 보인 춘풍의 성격과 가치관이 시련을 겪은 이후에 너무도 쉽게, 마치 딴 사람이 된 것 같이 변한 것이 좀 타당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21C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력해야 하는 Key Word가 있다. 그것은 크게 글로벌 즉 국제화, 지식, 변화, 사이버, 소비자, 미국식 자본주의의 극대화, 그리고 부익부 빈익빈이다. 소비자의 의식이 나날이 높아지고, 자본주의와 최첨단 과학이 지배하는 21C에 있어서 이것들은 어느 영역에 해당하는 기업이라도 간과해서는 안되는 말 그대로 Key Word가 되었다.그 중에서도 지구촌 시대를 부르짖는 요즘 시대에 글로벌이라는 개념은 정말이지 중요한 것이다. 가만히 안방에 앉아 TV를 보면서 전세계의 뉴스와 오지의 문화까지 생생하게 접할 수 있게 된 현대 사회에서 변화무쌍한 패션이라는 영역은 글로벌 개념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파리의 유행이 한국에서 재현될 수 있는, 그것도 얼마 안되는 시차를 두고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패션은 전세계적인 공감대와 또한 개개인의 개성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하는 가장 현대적 글로벌 개념과 맞물려 있는 화소이다. 패션업계의 각 기업들에 있어서 글로벌, 세계화는 세계적인 경향에 따른 패션의 변화를 예측하고 상품을 제작, 출시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요건 중에 하나가 된 것이다.변화와 사이버, 자본주의 그리고 부익부 빈익빈은 하나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개념들이며 따라서 이것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 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특성들이다. 따라서 패션업계에서도 이것들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겠다. 전세계적으로 사이버상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소비자를 만나기 위한 통로로서 사이버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On-Line 쪽으로 비중이 급격하게 옮겨져감에 따라 사이버의 특성 중의 하나인 스피드는 또한 이 시대의 특성이다. 과거에서부터 현재에까지 언제나 변화는 이루어져 왔으나, 현대에는 그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패션은 그 경향에 가장 크게 영향 받는 것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자본주의는 이런 모든 변화가 이루어지게 하는 원천이다. 미국식 자본주의로 전세계가 움직이고 있고,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실력과 능력이 최우선시 되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이에따라 개개인의 계층이 나뉘게 되고 있는 자들의 소득은 나날이 증가하는 반면, 없는 자들은 소득이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적인 경향으로 소비자를 상대하는 기업에서는 이런 경향을 항상 염두해 두어야 한다. 마케팅 타겟을 정함에 있어 소비자들의 이러한 특성은 결코 간과될 수 없는 특성이기 때문이다.이러한 특징들과 더불어 중요시 되고 있는 것이 소비자들의 파워가 나날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공급이 한없이 부족했던 시대에는 생산자 위주의 시대였으나 현재는 공급 과잉 상태가 되어 기업들은 자기업의 상품과 이미지를 광고하기 위해, 한명의 고객이라도 더 만들기 위해 전쟁을 방불케하는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차별화된 상품, 품질, 서비스, 기업의 이미지 그 어느것 하나 놓쳐서는 안되는 그야말로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소비자가 주인을 넘어서 신(神)이 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이렇게 세계가 변화함에 따라 기업과 소비자를 이어주는 유통에도 큰 변화가 일고 있다. 공급자 주도에서 소비자 주도로 바뀌면서 재래시장이 위축되고 대형마트가 급부상하고 있다. 대형마트 중에서도 백화점과 아울렛들은 상호간에 백화점들 끼리, 또 아울렛들끼리, 백화점과 아울렛 상에 경쟁이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의 경향으로는 고가의 이미지의 브렌드 제품을 백화점 특성에 맞게 선정하여 입점하는 백화점보다 아울렛, 대형 할인마트 들이 크게 급부상하고 있어 앞으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이러한 환경 속에서 패션 업계 중에서도 베네통과 지오다노 두 기업이 타 기업들에 비해 경쟁력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다.베네통(Benetton)의 경쟁력은 마케팅, 유통전략, 소싱(생산방식), 칼라, 물류, 스웨터, 창조적 디자인에서 얻어진다.다른 경쟁 의류 브랜드들과는 달리 원색적이고 자극적인 색을 사용하는 제품 생산과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다루는 광고로 유명한 베네통이 세계적인 의류 브랜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남들이 쉽게 따라하기 힘든 베네통만의 독창적인 기업색깔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1955년 이탈리아 트레비소의 폰자노 지방. 부친의 사망 이후 생계를 위해 루치아노 베네통이 막내 카를로의 자전거와 자신의 아코디언을 판 돈으로 낡은 직조기를 한 대 사들이면서부터 베네통의 역사는 시작된다. 평소 뜨개질 솜씨가 뛰어난 루치아노의 여동생인 줄리아나가 다양한 색상의 스웨터를 짜 도매상에게 팔았는데 그 당시 단색계통 제품이 주종이었던 스웨터 시장에서 줄리아나의 컬러 스웨터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고 이때부터 베네통은 점점 제품의 인지도를 넓혀가게 된다.베네통의 성공요인은 독창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기업정신과 고객의 욕구를 철저히 파악하여 이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베네통의 고객욕구 대응체제에 있다. 그리고 이 고객욕구 대응체제의 핵심에는 베네통의 원천기술인 후염가공공정과 세계 최고수준의 물류체계가 있다. 과거 6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선염가공공정(먼저 털실을 염색하고 이 염색된 털실을 갖고 손이나 기계로 스웨터를 만드는 기법)으로 스웨터를 생산해 냈었다. 하지만 선염가공공정은 원재료의 확보와 재고의 부담 그리고 소비자의 욕구에 빠르게 대응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루치아노 베네통은 울제품 재염색 전문가인 몬타나에게 후염가공공정(염색하지않은 한가지 실을 가지고 옷을 생산한 뒤 옷에 염색을 실시하는 기법)을 개발토록 지시하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베네통은 후염가공이라는 베네통 만의 원천기술을 확보하게 된다. 이같은 노하우를 확보한 베네통의 제품들은 원가 절감을 통한 가격경쟁력과 쉴새없이 변하는 소비자의 욕구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최첨단 시설을 갖춘 카스트레트 물류센터(한번에 20만 박스의 의류상자를 저장하고 20시간 동안에 2만5천여 박스를 입출고 시킬 수 있음)와 20시간 이내에 베네통에서 생산된 제품이 전세계 어느 곳으로나 배달될 수 있게 항공기편을 이용한 배송방법 등은 베네통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잡을 수 있는 원천이 되었다 .이렇듯 뛰어난 품질과 베네통만의 독창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명성을 얻어가던 베네통이 세계적인 세계적인 브랜드로 소비자들의 뇌리에 깊이 인식될 수 있었던 것은 누구도 따라하기 힘든 베네통 만의 독특한 광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네통은 다른 회사들처럼 엄청난 광고비를 쏟아붙고 있진 않다. TV매체의 중독성을 혐오하고 30년 동안 공장을 이탈리아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보수적인 경영노선을 고집하는 베네통은 TV광고 뿐 아니라 심지어 1년에 두차례씩 선보이는 1500여종의 신제품 광고도 하지않는다. 이유는“돈이 없어서…..”라고 파올로 란디 베네통 광고부장이 말할 정도로 베네통 광고는 대중매체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베네통은 다른 의류회사들과는 달리 제품을 홍보하는 광고가 아닌 사회적 이슈를 내세우는 홍보전략으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1984년 패션 사진작가 올리비에르 토스카나를 광고업무 책임자로 발탁하면서 기획된 사회적 이슈를 파격적으로 표현한 광고는 기존의 베네통 브랜드아이덴티티와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세계인의 관심을 베네통으로 집중시키기엔 충분했다.“우리 베네통은 독특한 컬러를 고집해 이제는 세계인 모두 옷 색깔만으로도 우리의 제품을 구별할 수 있다.”라는 루치아노 베네통 회장의 말처럼 이미 베네통만의 색깔을 전세계인들에게 충분히 인식시켰다는 베네통만의 자신감이 있었기에 이러한 광고가 가능했던 것이다.베네통은 현재 캐쥬얼 일색인 사업영역을 다각화하기 위해 지난 97년부터 스키용품으로 유명한 노르디카(Nordica), 롤러블레이드의 원조 롤러브레이드(Rollerbiade), 전 세계 라켓시장의 25%를 차지한 프린스(Prince), 영화배우 브루스 윌리스가 끼는 선그라스‘킬러룹(Killer Loop)등을 인수하였고 또한 화장품 사업에도 진출하는 등 사업다각화에 힘쓰고 있다.베네통만의 독창적인 기술,“각종 운송료는 재고에서의 절감과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물건을 제공함으로써 생기는 판매의 증가에 비하면 그리 중요한 비용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베네통의 소비자의 욕구에 신속히 대응하는 자세, 그리고 루치아노 베네통 회장의 젊은이들의 창조적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기업정신이 있었기에 베네통이라는 브랜드가 캐쥬얼 의류 시장에서 전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다음으로 살펴볼 경쟁력 있는 기업은 지오다노이다. 지오다노(Giordano)의 경쟁력은 가격의 혁신, 소싱력, Supervisor, Retail, 물류, 기동성에 있다.9천원짜리 셔츠와 1만원대 바지를 팔아 1천억원 이상의 연매출(99년)을 달성한 브랜드, 10대와 20대 젊은이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브랜드가 바로 지오다노이다. 영상세대라 불리우는 10대와 20대를 겨냥한 영화같은 광고, 그 속에서 이미지화 되어지는 기업의 이름. 지오다노의 성공비결은 비단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지오다노가 국내 소비자에게 첫 선을 보인 것은 지난 94년. 홍콩 지오다노 인터내셔날과 한국 일신창업투자가 손을 잡고 지오다노코리아를 설립하면서부터다. 당시 지오다노는 홍콩에 기반을 둔 글로벌 브랜드로 자국과 싱가폴 대만 등 아시아지역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었지만 한국진출의 성공여부는 불투명해 보였다. 지오다노보다 먼저 국내판매를 시작한 홍콩 수입 캐주얼제품들이 제대로 시장적응을 못하고 곧 영업을 중단하는 사례가 빈번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