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춤판의 발전에 대한 이야기모든 예술 공연들을 보면서 그 뒤에 갖는 자신만의 여운은 누구나 느껴봤을 법한 얘기다. 특히 객석에 앉아 공연이 끝난 무대를 바라보면서, 혼자만의 딴 세상으로 빠져드는 아득한 기분은 극장 문을 나설 때 갑자기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며 허탈감으로 변하기도 한다. 무대는 그렇게 어지럼증을 일으키곤 한다.그런데 무용을 전공하고 있으며, 무용 이론을 배우러 대학에 온 지금의 나는 너무나 유감스럽게도, 무용 공연을 보고 그렇게 아찔한 기억을 가지고 집에 돌아온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오히려 음악회나 오페라를 보고, 그때의 그 감동이 물밀 듯이 들어와 공연 후의 후유증에 시달린 적이 더 많았다. 어찌해서 춤은, 무용은 그토록 간절하지 않을까. 가장 솔직하고 강력한 몸의 언어가 왜 가슴속에 바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일까...감수성이 모자라서, 또는 이해력이 부족해서 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자책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모든 예술작품의 이해에는 어느 정도 감수성의 훈련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무대가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면 많은 경우 관객보다는 공연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춤은 벙어리나 다름없는 추상적 언어의 예술이어서 알아듣기 힘들다는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예컨대 셰익스피어 연극의 원어 공연을 본다고 생각해보자. 옛날 영어로 쓰여진 대사를 알아듣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훈련된 배우라면 발성과 몸짓만으로도 관객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연극이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격렬한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마음에 달라붙는 작은 고리 하나만 있어도 관객은 그것 하나로 작품을 이해하고, 작품세게로 빠져버릴 수 있을 것이다. 아예 마음에 빗장을 걸어버린 상태가 아니라면, 관객들은 무대에서 보내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감지해 낼수 있다. 문제는 그 메시지를 보내는 신호가 너무 약하거나 뒤죽박죽이어서 해독할 수 없을 때 생기는게 아닐까.미련한 관객의 적극적인 변명처럼 들리는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무대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은 예술가에게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소극적이거나 함량미달인 무대가 관객에게 적극적인 이해를 강요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수많은 무대가 끝없이 이어지지만, 예술가의 자위행위가 아니라 관객과 나누려는 몸짓이 얼마나 되는지 의심스럽다.그렇다면 우리 춤판의 관객들은 어떨까. 너그럽다 못해 어리둥절할 정도로 친절한 관객을 많이 본다. 그다지 좋은 공연이 아니다 싶은데도 환호하고 박수치는 사람들 틈에 앉아있으면, 혼자 개밥에 도토리가 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공연일수록 인사치레로 눈도장 찍으려고 온 손님들을 모시고 하는 집안잔치가 많았던 거 같다.초대받은 공짜 손님이 미어 터져서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이 항의하는 소동을 만난 적이 있다. 여러 명이 출연하는 무대에서 한 작품이 끝날 때마다 관객이 우루루 빠져나가는 것도 봤다. 썰렁한 객석보다는 초대권이라도 뿌려서 꽉 찬 풍경이 보기야 좋겠지만, 그런 거품은 걷어내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아쉬움만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