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 하였느냐? ... 통 했나이다!- 어허. 참 도발적이고 발칙하더이다. 남녀가 유별한데 어찌, 허허..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조선 최고의 요부와 바람둥이!그리고 정절녀의 발칙하고도 위험한 사랑게임!이 영화는 개봉 전에 매스컴으로 광고를 많이 한터라 기대를 많이 하고 보았다. 또 주위에서 친구들도 보고 난 후 재미가 있다고 해서 더더욱 기대 했었다.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내용의 개연성이 많이 부족했다. 끼워 맞춘 듯한 엉성한 스토리가 어설펐다. 하지만 영상과 배경음악은 아직까지 인상에 남을 정도로 괜찮았던 것 같다. 특히 특이한 소품들과 색채가 화려하여 나의 시선을 집중 시켰다. 하지만 좋은 영화를 만든 것 보다는 영화의 상업성과 흥행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사치스러운 소품과 화려한 색채, 영상에만 신경을 쓰고 스토리에는 신경을 덜 쓴 듯 보인다. 원작 위험한 관계 를 각색한 것이라고 하는데 두 영화를 비교하기 위하여 그 영화도 보았는데 원작과는 사뭇 다른 동양적인 미를 느낄 수 있었다.영화는 알려진 대로 프랑스 소설가 쇼데를로 드 라끌로(Choderlos de Laclos) 의 '위험한 관계(Les Liaisons Dangereuses)'를 각색한 작품이다.때는 조선 후기 정조 치세. 유판서의 정실부인인 조씨(이미숙)의 집에 벼슬길을 마다하고 풍류나 즐기며 사는 사촌동생 조원(배용준)이 찾아온다. 첫사랑인 서로를 오래전 포기해야 했던 두 사람은 이후 사랑을 냉소하며 비정한 호색가로 살아왔다. 조씨 부인은 아들을 얻기 위해 남편이 소실로 들이는 처녀 소옥(이소연)을 임신시켜달라고 조원에게 요구하지만, 조원의 목표는 열녀문까지 하사받은 정절녀 숙부인(전도연). 결국 숙부인을 함락시키면 조원에게 조씨가 몸을 허락한다는 거래가 성사된다. 숙부인이 출석하는 천주학 집회부터 치밀하게 공략해가는 조원. 소옥과 옆집 권도령(조현재)의 풋사랑이 사태에 뜻밖의 변수를 더하지만, 게임의 더 큰 반전은 숙부인의 진심을 바라보는 조원의 가슴속에서 싹튼다.우선 스캔들 영화의 주된 내용은 조원 이라는 조선 최대의 바람둥이가 정절녀 숙부인을 무너뜨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과정을 너무 자세하게 묘사하여 억지스러운 면도 보였고 과정이 너무 길고 대사도 길어서 지루했다. 사랑을 거부하던 조씨부인 과 조원 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깨달았지만 너무 늦은 탓에 안타깝게 이루지 못하는 가슴 아픈 스토리 이다. 영화소재는 외국 소설에서 가져왔지만 이를 새롭게 한국적으로 각색하여서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내용의 구성에 있어서 개연성이 부족한 것 같았으나 영상과 배경은 아름다웠다. 영화 중간 중간에 나오는 그림도 아름다워서 한국적인 미를 느낄 수 있었다. 중간에 나오는 배경음악 클래식인 것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는 안 어울릴 듯하지만 매우 잘 조화를 이루었다고 생각된다. 해피엔딩을 예상했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아 아쉬웠다. 하지만 관객의 예상을 깬 결말이 깔끔하고 개운한 느낌을 주기보다는 결국 마무리를 짓기 위하여 주인공을 죽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다른영화들과 다르게 독특한 것들을 발견 할수 있었다.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의 백미는 미술. 조선 시대 양반들의 사치스런 생활이 아름다운 배경, 의상, 소품 등을 통해 화려하게 부활한다. 백의 민족은 택도 없는 소리. 흰옷은 단지 속옷일 뿐이다. 또한 집. 집안에 웬만하면 연못은 다 있다. 배를 띄워 뱃놀이도 하고 창기들을 불러 노래를 시킨다. 마치 중세 유럽의 왕들처럼. 선이 매혹적인 기왓집은 끝이 어딘가 싶고, 방은 그리 많은지 미로가 따로 없더라.(물론 이런 방의 구조는 영화에서 아주 중요하다.) 낡은 기와집을 생각했다간 뒤통수 맞는다. 그리고 의상. 이 영화의 절정이다. 각 인물의 개성에 맞는 색의 조화. 초절정 요부 이미숙은 붉은 색 계통, 단아한 전도연은 푸른 계통, 난봉꾼 배용준은 미색과 청색을 번갈아 입는다. 출연진의 의상 모두를 직접 손으로 제작했다고 하니... 그 아름다움과 섬세함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또한 소품. 음식이 압권이다. 어찌 그리 호사스러운지, 임금이 부럽지 않다. 그 모양하며, 색채하며, 보는 이가 숨 넘어가게 한다. 나도 그거 먹고 싶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들이 즐비하다. 그래, 즐.비.하.다.란 말이 맞다. 그리고 곳곳에 숨은 소품들, 화장품, 장신구, 그림 등등 이 영화의 제작비 절반 가까이를 미술에 썼단 말이 거짓이 아니더라. 이미숙이 타는 가마도 그렇고, 배용준이 그리는 그림들, 곳곳에 배치된 가구들. 하나하나의 소품이 그냥 있는 게 아니었다. 영화 영웅 에서 보여준 색채 미학과는 좀 다른, 아기자기하지만 가슴에 확 꽂히는 영상. 멋지다. 끝으로 노출도 빼놓을 수 없다. 전도연의 반라를 볼 수 있다. 배용준의 쭉 뻗은 허벅지와 꽃미남 안드레아 신부, 조현재의 상반신 그리고 다양한 단역들의 전라, 반라를 다 볼 수 있다. 게다가 배용준, 전도연의 정사신. 최고의 배우들, 몸 사릴 만도 한데...라는 생각은 곧 깨졌다. 여기서 잠깐, 감독의 철저한 고증을 엿볼 수 있는데, 대부분의 여성 단역들을 어깨가 좁은 사람들로 뽑았다. 정말 머리가 크다. 물론 가채를 얹어서도 그렇지만, 이미숙과 전도연은 아니란 말이지. 구한말, 외국인들이 조선인들을 찍은 누런 흑백 사진들을 기억하는가? 몸은 작은데 머리는 크고 동글동글한 얼굴, 아주 촌스런 얼굴. 그 사진에 있는 그런 사람들을 모아놓은 듯 캐스팅이 기막히다.어느날 바로크 음악을 듣다가, 문득 서양 클래식 음악이 한국 사극의 배경으로 나오면 어떤 충돌이 생길까 궁금해 졌어요. 입체적인 인물 묘사가 있으면서 격조 있는 서구 클래식 영화처럼 우리 나라 사극을 만들고 싶었어요.음악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영화에서 우리 고전 음악은 거의 없다. 뱃놀이 배경 음악 정도이다. 대부분의 음악이 클래식이다. 그것도 아주 적절하게 사용됐다. 배용준의 흑심, 전도연의 단아함, 이미숙의 요염함이 음악만으로도 잘 표현된다.그리고 이미숙은 눈썹의 꿈틀거림만으로 객석을 쥐락펴락하고, 자신과 타인을 비웃는 연기로 관객까지 웃기는 배용준은 스크린에 안착했다.영화에 대해 알아가다가 웃길만한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영화에등 장하는 조씨 부인과 한담을 즐기는 대갓집 마나님들의 이름이 허씨 부인, 오씨 부인 등인데 모두 감독이 좋아하는 허진호 감독, 오정완 영화사 봄 대표 이름에서 따왔다는 것이다.
비스마르크 Otto Eduard Leopold von Bismarck (1815-1898){{Ⅰ서론독일 통일은 비스마르크의 정치기술의 걸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정도로 비스마르크는 정치적인 천재였으며, 굳은 현실주의자였다. 그는 대담하고 신중했으며, 프로이센 국민으로서 냉혹한 현실의 정치자이다. 독일 민주주의는 비스마르크에 의해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으며, 비스마르크에 대한 많은 국제관계의 언급은 철혈재상 으로 표현되어 왔다. 그렇다면 이 비스마르크라는 사람이 어떠한 인물인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Ⅱ본론1) 비스마르크의 생애비스마르크는 알트마르크의 오래된 귀족가문으로서 비스마르크의 아버지 페르디난트는 프로이센 군대의 장교지위를 일찌감치 포기한 소박하고, 보잘 것 없는 시골귀족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인은 교양이 높은 상당한 인격의 소유자로서 아들을 출세시키려는 강한 욕망을 지닌 여자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비스마르크는 어머니의 교육열에 의해서, 일반적인 프로이센 귀족의 교육과 다르게 받았다. 비스마르크의 어린시절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그는 17세에 방탕하고 싸움을 많이하는 청년이었는데, 괴팅겐의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정치학자인 헤렌의 강의를 주로 수강하였다. 이 정치학자 헤렌의 강의는 그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후, 비스마르크느느 자신의 꿈인 외교관에 관련된 일을 하다가 싫증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삶을 의지가 없는 생활의 흐름 이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1847년 7월 비스마르크는 경건주의 교우회에서 만난 요하나와 결혼했으며, 요하나는 그에게 정치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며 비스마르크는 그녀를 특이한 정신과 귀족 성향을 지닌 여성 이라며 아꼈다고 한다. 비스마르크의 정치가로서의 인생은 1847년 철도건설을 위한 공채발행 승인을 얻기 위해 소집한 프로이센 연합의회 의원이 되면서부터였다. 비스마르크는 의회 활동을 통해 의원이 되어 정치에 뛰어들었는데 그는 철저하게 계급적이고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 그는 당시의 열강의 이해관계를 교묘히 이용하여 동맹이나 협약의 그물을 쳐서 자신이 외교적 목표들을 달성하려고 하였다. 그가 1890년 독일의 재상 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약 20년간의 유럽의 국제 관계는 이러한 비스마르크의 외교 정책에 의하여 좌우되었다.여기에서는 비스마르크가 독일제국의 안전과 발전을 위하여 어떠한 외교적 활동을 했으며 또한 비스마르크의 외교정책이 19세기말 유럽대세의 국제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고자 한다.☞프랑스 고립주의 정책비스마르크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주된 위험이 프랑스로부터 올 것이라고 재빨리 판단했다. 그러나 그는 알사스-로렌의 병합에 동의함으로써 그러한 상황을 촉진시킨 것은 아니다.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프랑스는 리쉴레와 마자랭 이후 오랫동안 유럽을 지배해 왔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하에서의 패배에도 분개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부 영토의 상실은 이러한 자연적인 분노를 단순히 예각(예각)화 시킨 것에 불과했다. 1870년대 초에 프랑스는 패배의 상혼을 떨어버리려는 단호한 노력을 기울였다. 독?불 국경선상에 군대가 신속하게 재조직되어 배치되고, 전쟁 배상금을 1873년까지 재빨리 갚는 것을 보고 독일인들은 크게 놀랐다. 신경이 고민해진 수상은 프랑스가 가까운 시일내에 다시 승부를 겨누려고 하는 화해할 수 없는 적이라고 확신했다. 비스마르크는 프랑스와 다시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전쟁대신에 프랑스를 고립시키기 위한 외교적 무기에 의존하였다1870년대에 한 가지 쉬운 방법이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이 독일을 지배하도록 하기 위해서,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의 옛 관계를 파기했었다. 그러나 한번 그의 목적이 달성되자 수상은 보수주의자의 본능으로서 옛 관계를 회복시키려 했다. 프랑스의재흥이 그의 본능을 확실히 해주었다. 3제협약(Dreikaiserabkommen)은 프랑스를 침묵시키고, 그것과 함께 세 나라가 모두 폴란드인들을 지배하고 있는 동부에서의 현상을 유지시켜 줄 것이었다.욕심도 내지않고, 단지 세력균형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조정한다는 의도를 갖고 정직한 중재자로서 이 회의를 이끌어 나갔다. 특히 불가리아에 관한 중요한 점들에 있어서 그의 정력적인 개입은 시간을 절약하게 했고, 따라서 그는 그 자신이 평화를 가져오는 사람으로서의 새로운 평판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원래 이 회의가 파리에서 개최될 것을 바랐었다. 그 까닭은 독일의 동맹국들을 즐겁게 할 것 같지 않은 이 문제해결에 개인적으로 관련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러시아가 베를린을 회의장소로 제의했기 때문에 그도 프랑스 대통령에게 그렇게 제안했지만, 그는 이러한 장소변경을 좋아하지는 않았다.결국 그의 통찰이 옳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 근동(근동)위기는 3제협약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 러시아 대표단은 불만에 가득차서 베를린을 떠났다. 고르챠코프가 이끄는 폐테르스부르크의 지도층 인사들은 러시아가 전쟁에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당한 보상을 협잡당했다고 느꼈다. 그들의 실패에 대한 좌절감과 함께 분노를 느꼈으나, 자신의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러시아는 희생양을 찾으려 했고 독일에서 그것을 찾았다. 얼마 안가서 범슬라브주의 언론들은 비스마르크가 베를린 회의에서 반(반)러시아적인 음모를 이끌었다고 비난하고, 3제협약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선언하였다. 비스마르크는 이에 대해 자신이 정직한 중재자이기는커녕 그의 친구들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한 네 번째의 러시아 전권 공사였다고 반박했으나, 이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79년 전반기에 러시아와 독일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었을 때, 그 악화의 주된 요인은 비스마르크가 스스로 만든 것이었다. 이것은 아마도 그가 고르챠코프를 개인적으로 싫어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혹은 러시아인들로 하여금 그들이 독일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점을 일깨워 주려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이유야 어쨌든 간에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러시아를 자극했다. 1879년 1월에 그는 제국인들을 신속히 격파하고 세르비아에의 침입을 준비했다. 이 당시 비스마르크에 의해 짜여진 국제 관계에는 강대국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에 사소한 국지전이라 할지라고 쉽게 큰 전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는 만약 불가리아가 국경을 넘기만 한다면 대기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군대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단호히 경고했다. 이 경고가 불가리아의 공격을 중단시키기는 했으나 그것은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와의 관계를 극도로, 긴장시켰다. 비스마르크는 두 국가와 우호관계를 계속 유지하기를 바랐으므로 오스트리아에게 독일이 이 문제 때문에 러시아와 싸울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해야 했다. 결국 세르비아는 영토의 손실없이 매우 어려운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고,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는 개인적 통합이라는 명목하에 동루멜리아와 불가리아의 통합에 합의했다.그러나 이것으로 불가리아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1886년 8월에 알렉산더공이 친(친)러시아계 장교들에 의해 납치되었고, 그후 쯔아는 그의 퇴위를 명령하였다. 알렉산더는 그에 따라 퇴위하고 은퇴하였다. 비스마르크는 알렉산더가 발칸반도를 교란시켰다고 하여 끝내 그를 용서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는 알렉산더와 프리드리히 황제의 딸인 빅토리아 공주와의 결혼제의에 매우 심하게 반대했다. 알렉산더를 내몬 후에 러시아는 불가리아의 총독으로 한 장군을 파견했다. 그러나 불가리아는 농민 출신의 수상인 스탐블로프의 지도하에 러시아의 명령에 저항하였다. 11월에 쯔아는 불가리아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하였고, 러시아가 체면을 살리기 위해 불가리아에 침입할 것같이 보였다. 이것은 또한 오스트리아를 자극할 것 같았는데, 왜냐하면 오스트리아의 외무장관인 칼노키는 3제 동맹이 규정한 발칸의 분할에 반대하였고, 할 수 있다면 전 발칸을 지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도 러시아에 대해 예방전쟁을 벌리자는 외침이 일부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다시 하번 오스트리아에게 오스트리아를 돕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는 실제로는 불가리아에 간하고, 중앙아프리카에서의 자유무역 원칙을 지지했으며, 노예무역을 금지시키고 아프리카의 아직 분할되지 않은 지역의 점령에 관한 일반규칙을 정하였다.비스마르크 ‘체제’가 효과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또 다른 증거는 1885년 봄에 러시아의 한 부대가 펜드제(Pendjh)에서 아프가니스탄인들을 무찔렀을 때 나타났다. 비스마르크가 중앙아시아에서의 러시아의 작전을, 또 하나의 반영국적인 제스츄어로서 적극적으로 고무했는지 어떤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는 확실히 이 계획을 알고 있었고 또 그것에 찬성했다. 런던에서는 비상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아프가니스탄이 떨어져나가고 나면, 다음에 인도도 곧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 영국인들이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래드스톤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하여 군대를 파견할 준비를 갖추었다. 프랑스는 3국 동맹 국가들과 함께 술탄이 영국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말도록 경고했다. 술탄이 이에 동의했고 그리고 러시아가 1885년 5월에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중재에 맡김으로써 위기는 해소되었다. 그러나 이사건은 당시의 어느 역사가의 말대로 나폴레옹의 대륙 체계로부터 1939년의 러시아-독일 조약에 이르는 시기 가운데에서 대륙 국가들의 단결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준 예였다.그러나 이 단결은 오래가지는 못했다. 1885년 가을까지 이르면 이 ‘체제’는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불?독 관계(entente)가 붕괴되었다. 비스마르크와 손을 잡았던 프랑스 수상 쥘 페리가 1885년 3월권좌에서 물러나고 ‘애국자연맹’의 데루레드에 의해 지도되는 민족주의 세력이 여름과 가을에 걸쳐 프랑스에서 기세를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영웅인 복수주의자 블랑제가 1886년 1월에 국방장관이 됨으로써 불?독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비스마르크가 화해에 관해 쓴 간단한 평론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필연적이었다. 프랑스는 식민지에 관해서는 독일과 협력할 태세가 되어 있었으나 일반협상에 관해서는 조심스럽게 언급을 회피하였는데, 그것은 프랑스가 결코 독일에 완전히
☞ 서 론처음 동.식물에 관한 책을 읽고 리포트를 작성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바로 도서관에 달려갔지만 동.식물과 관한 책은 너무나도 많았다. 한참을 골라도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서 친구에게 동물에 관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니 이 책을 권 해주었다. 동물농장이라는 책을 빌릴 때만 해도 나는 이 책에 대해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단지 통통한 돼지와 평화로운 농장이 배경으로 있는 표지 그림을 보면서 오랜만에 평화로운 분위기의 소설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소설의 내용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동떨어진 것이었고 나는 새로운 충격을 느꼈다. 어쩌면 이렇게 작품 속에 현실을 잘 반영할 수 있는지 저자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단편 소설 「동물 농장(Animal Farm)」은 동물들을 의인화 하여 인간에 대한 가장 극단적인 정치체계인 전체주의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그 허구성을 대담하고 직설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우화형식으로 되어있으며,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동물들과 사건들은 모두 현실의 그것들과 대응된다. 메이저는 사회주의를 예언했던 마르크스를, 나폴레옹은 스탈린을, 스노우볼은 트로츠키를, 동물들의 반란은 1917년 10월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회주의 혁명을, 복서는 근로대중을 나타낸다.1945년 발표된 '동물농장'은 '걸리버 여행기 '이후 풍자 소설로서는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그런데 '동물농장'과 '걸리버 여행기' 두 작품은 풍자 소설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걸리버 여행기가' 당시 사회 정치를 풍자한 것이었다면 '동물농장'은 독재 정치에 대한 풍자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이러한 풍자 소설들은 출판될 당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사랑을 독자들로부터 받고있는 작품들이 많다. '동물농장' 또한 짤막한 풍자 소설로서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읽혀지고 있는 책이다. '동물농장'을 읽어보면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라고 불리어 졌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된다.☞ 본 론처음 읽은 정치 소설인 동물농장은 어렸을 때 접했던 많은 이야기들처럼 많은 동물들이 등장하는 우화이지만 그 안엔 소련 공산주의에 대한 풍자와 따끔한 비판이 담겨있는 조금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법한 내용의 책이었다. 우선 지배계급이 돼지로 그려져 있다는 것부터가 소련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만 했다. 소련의 스탈린 독재정치를 동물들을 내세워 신랄하게 꼬집은 오웰은 어쩌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 체제의 문제와 겉으로만 평화를 부르짖는 권력자들의 허상을 문학을 통해 알리고자 했던 그 시대의 선구자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우선 돼지 메이저 영감의 캐릭터는 반란을 선동하는 농장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묘사 되어있다. 농장의 동물들은 주인 존스가 잠들자 마자 그 가 전날 꾸었던 꿈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의 주위에 모여든다.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이 습득한 지혜를 전해 주는 게 의무라고 생각한다며 동물들의 삶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고된 동물의 인생. 평생 고생만 하다가 죽을 때에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하는 그들의 생활.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인간들을 위해 일하고 마침내 도살장으로 끌려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 동물들. 하지만 그런 동물들과는 달리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유일한 동물인 인간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회의마저 느끼게 되었다. 그 들의 삶의 모든 괴로움이 사실 우리인간으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닌가.. 메이져는 이 것에서 멈추지 않고 모두 일어나 인간을 몰아내는 반란을 일으키고 정의가 실현될 그 날을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자며 인간이 사라진 세상, 바로 낙원에 관한 꿈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사흘 후 잠을 자다가 숨을 거둔다. 그의 시체는 과수원 아래 기슭에 묻히고 그가 죽은 후로 농장에서는 비밀 모임이 시작된다. 메이저의 열성적인 연설은 총명한 동물들에게 일종의 깨달음을 주었던 것이다. 나폴레옹과 스노우볼이라는 어떤 돼지보다 뛰어난 두 마리의 돼지와 말을 잘하기로 유명한 스퀼러라는 돼지까지 세 마리의 돼지가 주축이 되어 일을 진행시키고 이른바 '동물주의'라는 것을 발표했다. 동물들은 일주일에도 몇 번씩 모임을 갖고 반란과 동물주의에 대해 토론하고 공부했다. 수확기가 되고 존슨이 술을 마시며 흥청망청 거리는 바람에 아무것도 먹지 못한 동물들.. 마침내 암소 한 마리가 곳간 문을 부수고 들어간 것을 신호로 모든 동물이 곡물 상자에 머리를 박고 마음대로 먹이를 먹기 시작한다. 아무리 존슨이 회초리를 갖고 달려나와도 성난 동물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고 헐레벌떡 도망치기에 바빴다. 처음 얼마동안 동물들은 자신들의 행운을 믿을 수 없었다.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반란이 성공한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무리를 지어 농장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러고 나서 농장 건물로 뛰어와서 가증스런 존스씨의 흔적을 말끔히 없애 버리기 시작한다. 그들을 괴롭히던 회초리가 불 속에서 타오르는 것을 보자 모두 기쁨에 넘쳐 날뛰었다. 농장에 '매너 농장'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동물농장'이라는 글씨를 적어 넣은 그들은 창고의 벽에 인간은 철저히 그들의 적이며 모든 생물은 평등하다는 내용의 '칠계명'이란 것을 쓰기 시작한다.자기네 농장이 행여 영향을 받을까하여 위기감을 느낀 다른 농장 사람들은 동물농장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동물농장의 동물들이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이 그렇듯 동물농장 역시 사람들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시간이 지난 후 존스가 총을 들고 농장을 빼앗기위해 다시 돌아오지만 이것은 그들이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들은 서로 도와 용감히 싸웠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버렸다. 승리로 끝난 그날의 싸움은 '소 외양간 전투'라고 이름 붙여졌다.그러던 중 스노우볼과 나폴레옹의 대립이 심화되고 작은 문제로 농장 전체가 두 파로 갈라지고 만다. 결국 그 문제는 투표에 붙여지는데 투표가 이루어지던 중 질 것 같은 위기감을 느낀 나폴레옹이 소리를 지르자마자 어디선가 갑자기 큰 개 아홉 마리가 창고 안으로 뛰어 들어와 스노우볼에게 덤벼든다. 이 모든 장면을 목격한 동물들은 놀라서 공포에 질린 채 아무 말도 하지못하고, 나폴레옹은 개들을 이끌고 높은 단상에 올랐다. 그는 앞으로 일요일 아침 모임은 폐지할 것이며 농장의 모든 일은 자신이 의장직을 맡고 있는 돼지들의 특별위원회에서 결정하겠다고 선언한다. 동물들은 이 성명을 듣고 당황한다.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면 항의할 동물들이 많았다. 하지만 아무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개들이 으르렁대며 위협했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설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그날 이후 불길한 변화는 시작되었다. 한해 동안 동물들은 줄곧 노예처럼 일했다. 그러나 바로 자기 자신들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에 누구나 열심히 일했다. 나폴레옹은 일요일 오후에도 일을 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출석하지 않으면 식량배급을 줄이겠다고 엄포를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일을 많이 했는데 수확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줄어들었고 고생스러운 겨울을 보내게 되리라는 것이 확실했다. 나폴레옹의 독재는 계속 되었고 스노우 볼과 동물들을 이간질 시켜 스노우볼에 대한 반감을 샀고 많은 동물을 처형하여 농장은 피비린내가 사방에 진동했다. 이런 일은 애초에 메이저 영감이 말하던 동물들의 낙원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농장에서 왕처럼 군림하게 된 나폴레옹은 돼지와 다른 동물들의 계급을 나누었다. 돼지들은 특별계급이 되었고 다른 동물들은 돼지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배계층이 된 돼지들의 술수에 다른 동물들은 아직도 메이져영감이 말한 낙원을 믿고 언젠가는 실현되리라는 믿음으로 힘든 생활을 견디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들이 만들었던 칠계명은 하나하나 지워져 마침내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더욱 평등하다 는 한줄의 문구밖에 남아있지 않게 되었고 존슨이 살던 그 집에선 인간과 너무도 닮은 돼지들이 연회를 벌이고 있었다.나는 책을 읽어 가면서 이 소설의 결말이 상당히 궁금해졌다. 동물들이 나폴레옹의 횡포와 독재를 깨닫고 밑에서부터의 혁명을 다시 일으킬 것인가에 대한 기대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기대는 소설의 마지막에서 무너져 버렸다. 「동물농장」은 돼지들이 인간과 구분조차 힘들어지게 되면서 동물농장의 혁명은 하나의 비극이 되어 소설과 함께 끝이 난다. 그러나 이러한 결말은 독자들에게 오히려 강한 여운을 주면서 많은 시사점을 남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 조지오웰은 앞으로 이어질 소설의 내용들을 독자 나름대로 생각하게 만드는 기회를 선사한 것이다. 과연 어떻게 해야 동물들이 자신들의 주권을 되찾을 수 있게 될 것인가에 대해 우리들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결말이 책의 결말은 돼지들이 인간들과 같이 테이블에 앉아 포커를 하며 술을 마시고, 결국 싸우는 것으로 끝이 난다. 돼지들은 점점 그들이 그렇게 싫어했던 인간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었다. 동물들이 이루고자 했던 동물농장은 다시 존스 농장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동물들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주인께 복종하고 일하다가 결국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그런 모습으로 말이다. 결국 이것은 동물들이 내세웠던 혁명 이전의 모습으로의 복귀를 말하는 것이다. 농장 주인이 인간에서 돼지로 바뀐 것일 뿐이다.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수 없었다. 라는 소설의 마지막 구절처럼 결국은 혁명후 권력을 획득한 돼지들의 이기심과 욕망은 인간과 다름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