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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기업의 설립동기
    공기업의 설립동기05‘ 공기업론공기업의 설립동기Ⅰ공기업 설립동기공기업의 생성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는 근대적국가의 성립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또한 자본주의경제가 성립된 후에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통제적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일환으로 사기업에서 발생하였다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자유방임주의의 전성시대에 있어서는 공기업이 배척되어 예외적인 존재에 불과하였다. 자본주의의 기본질서인 자유, 사유, 영리를 기업의 원칙으로 하여 경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스스로 조정되었고 경제의 발달과 복지향상은 개인의 이기심에 호소하는 것이 최선이 길이었다. 따라서 정부는 국방과 국내치안유지만을 제외하고는 경제에 개입해서는 안되었다. 그러나 그 후 국가관이 변화하고 자유방임주의의 세력이 퇴화함에 따라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기능이 확대되어 공기업이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동시에 공기업의 합리화에 관하여 여러 가지 방안이 연구되었으며 또 한편으로 자본주의경제의 수정이나, 기업의 공공화, 사회화가 강조되어 공기업의 활동의 범위에 관한 근본적인 토론이 전개되었다. 또한, 통제경제 및 계획경제의 발전은 공기업 확대에 큰 영향을 주었다. 여기에서는 공기업의 발전과 성립의 동기에 대하여 각 학자들의 견해와 일반적인 설립동기 그리고 한국공기업의 설립동기에 대하여 살펴본다1.공기업의 설립동기-학자들의 견해(1)프리드만의 견해발전하는 경제체제하에서 국유기업의 분야로서 가장 전망이 바람직한 것은 사기업이 발달하지 않은 분야라고 한다. 이에 따라 공기업 설립의 결정적 동기는 대부분의 경우 정치적 요인과 실제적 요인의 결합이다.1)민간자본의 부족오늘날 많은 발전도상국은 민간자본의 부족을 보충하기 위하여 공기업을 설립한다.2)국방상 및 전략상의 고려국방상 또는 전략상의 이유로 공기업이 설립되거나 확장되는 경우가 많다. 그 예로, 1차대전시 미국의 주택공사, 미국 곡물공사, 전시 재정공사 등을 들 수 있다.3)독점적 사업자유경쟁이 가능한 사업은 민간기업에 맡겨도 소비자에게 큰 불편이 없으나 성질상 독 수가 없다. 많은 나라에서 철도, 전신, 전화 등의 공익사업을 공기업으로 운영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4)정치적 신조국가 또는 정당의 이념에 따라 공기업이 설치되기도 하며, 공기업이 민영화되기도 한다. (2)PETERSON의 견해1)국가 목적의 실현국방을 수호하고 경제적 위기를 타파하며, 다목적인 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공기업을 설립한다는 견해이다.2)능률의 증진기업의 능률을 높이기 위하여 공기업이 설립되는 경우도 있고, 능률의 증진을 위해 공기업이 활용되는 경우가 있다. 즉, 공기업의 일차적 목표는 이윤추구가 아니기 때문에 민간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정책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간혹 공기업이 민간기업의 가격결정행태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3)사기업의 부실과 능력부족민간기업이 더 이상 사업을 끌어갈 만한 능력이 없는 경우 공기업을 설립하여 그 사업을 대체할 수 있다.4)정치적, 철학적 경향의 반영공기업은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쓰일 수 있고, 민족주의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쓰일 수도 있다.2.공기업 설립동기-일반적이고 진정한 설립동기공기업 설립동기는 진정한 설립동기와 형식적 설립동기로 나누어질 수 있다. 즉, 진정한 설립동기를 위해 보다 공공성을 추구하는 형식적인 설립동기를 내세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진정한 설립동기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1)거액의 자본을 요구하거나 위험부담이 큰 사업1)자본의 부족어떤 기업이 대형의 설비투자를 요구하는데 자본이 부족하여 독자적인 설립이 어려운 경우 정부에서 공기업의 형태로 설립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규모가 매우 크고 사업을 위해서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민간기업의 성격을 고려해볼 때 그리 설득적이지는 않다.이러한 설립동기는 과거 명치유신 후 민간자본 유치에 의한 경제발전에 실패한 후 공기업을 설립하여 국가발전을 도모한 일본의 예에서 찾아볼 수 있다.2)위험부담이 큰 사업첨단산업의 경우, 대개 필요투자액수가 거액이고, 그로 인해 위험부담이 큰 경우가 많다. 민간자본은 위험에 직면하여 설립이 요구된다.(2)민간부문의 경쟁강화-독과점기업의 횡포와 경쟁의 효과자연적인 독과점산업이 아닌 경우에도 민간자본의 불충분이나 기타 다른 요인으로 인하여 독과점 민간기업이 존재할 수 있고 그 횡포가 심할 수 있다. 이 경우 자원의 효율성과 공정한 배분이 저하되어 국가경제의 성장을 막을 수 있으므로 공기업을 설립하여 독과점 기업과 경쟁시키는 것이 해결책일 수 있다.공기업이 설립되면 민간기업은 더 이상 독점기업의 상태를 유지할 수 없으며, 경쟁상태에 돌입하게 되면서 가격은 하락하고 생산이 증가하여 국민복지증진에 이바지할 수 있게 된다.예)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민간보험회사와 경쟁하는 주 정부의 보험회사가 존재한다.(3)정치적 이념에 의한 국유화예를 들면 사회주의의 경우 국가경제 전체를 위해 주요산업이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심사상이기 때문에 공기업의 설립이 선호된다. 그러나 실제 정치적인 이념에 의해 설립되거나 국유화된 공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한 예로, 2차 대전후 영국의 상당수 민간기업이 노동당 정부에 의해 국유화되었으나 이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제적인 이유로 국유화되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롤스로이스 회사의 국유화)(4)재정수입의 창출수단 (예: 천연자원의 개발)천연자원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개발을 시도하기 쉬운데 전통적으로 공기업을 설립한다. 천연자원의 개발을 위해 굴착한 후에 개발이 실패하게 되면 그동안의 투자가 모두 소용없어지며, 투자액수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민간기업의 참여와 담당이 어렵다.그러나 개발이 확정되면 거액의 경제지대가 발생하기 때문에 다른 생산활동을 하지 않고서도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으므로 국가 재정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미국의 경우에도 술의 판매를 일부 주정부가 담당하고 있으며 그 이유 역시 재정수입의 창출수단이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5)규모의 경제가 존재하는 산업규모의 경제가 있는 산업은 대기업으로 운영될수록 이익이다. 또한, 시장규모에 비추어 하나의 기업만이 존재할 때 규모의 경제가 향유될 수 있다면 독점기기업으로 설립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반드시 그러할 필요는 없다. 민간기업이 독점기업일 때는 어렵기는 하지만, 가격통제 등을 통하여 효율적으로 민간기업을 통제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참고: 39p 미국의 경우는 수익률 규제 영국이 가격 규제 PRICE CAP 제도를 활용: RPI-I, RPI+K). 보다 큰 문제는 소량의 생산과 높은 가격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결과가 생기기 쉽다는 점이다. 이 경우, 이 기업이 공기업으로 존재한다면 대량생산과 저렴한 가격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으므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독점기업이 공기업으로 운영되는 경우에도 민간기업의 참여는 보장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자연독점이라는 것도 기술의 발전에 따라 그 개념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간기업이 진입할 수 있는 경우 이미 독점시장이 아니며, 국가경제의 규모는 계속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 역시 상대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또한,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는가의 여부는 민간기업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여야 한다.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기업의 속성상 판단에 거짓이 있을 수 없음에 비하여 정부가 판단할 경우, 독점공기업을 유지하기 위해 규모의 경제가 존재한다는 쪽으로 기울기 쉽기 때문이다.(6)실업자의 감소와 노사관계의 개선1)실업자의 감소민간기업이 필요한 시기에 설립되지 못하고 실업률이 증가하면 정부는 공기업을 설립하여 국민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경제 안정을 이룩하고자 한다. 예로서 미국의 T.V.A는 경제대공황에서 벗어나고자 미국정부가 뉴딜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2)노사관계의 개선공기업에서는 의도적으로 높은 수준의 임금지불이 가능하고 불경기에도 임금의 삭감이나 해고 등을 정책적으로 자제할 수 있어서 새로운 노사관계가 정립될 수 있다. 즉, 일종의 복지정책을 수행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사관계가 매우 악화된 부실기업을 정부가 인수하여 공기업화하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노사관계7)산업구조조정의 용이1)시장실패와 산업구조조정경제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위해 산업의 구조조정 역시 부단히 이루어진다. 그러나 시장이 실패할 경우, 이러한 산업구조조정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정부가 나서서 문제가 있는 기업 등을 공기업화한다면 산업구조의 조정이 가능할 수 있다. (삼성: 자동차)2)경제의 효율성을 달성하기 위한 산업구조조정비효율적인 사기업이 스스로 경쟁력을 구비하지 못할 때 계속되는 적자나 도산, 부도위험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기업이 설립되는 경우도 있다. 소그룹의 통합 (예: 일본 철도)과 대기업의 분할 (독점의 분할: 미국 AT&T) 등이 그 예이다.3)영국의 사례영국의 경우, 몇 가지 유형으로 공기업화 된 것을 알 수 있다.①퇴조하는 산업을 부활시키기 위한 경우: 석탄산업과 철도산업②규모의 경제를 위하여 소기업을 통합한 경우: 전기산업과 항공산업, 가스산업③민간기업의 자본능력 부족으로 인한 경우: 철강산업(8)주요 전략산업국가의 전략상, 국방상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산업은 외국의 제품이 더 싸고 좋은 경우에도 국가가 자체 공급하는 경향이 있다 (예 철강, 교통, 통신). 예를 들어 군수산업은 사업의 성격이 특수하고 국가의 안보에 관련되며 이익이 보장되지 못하는 경우에도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공기업으로 설립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전쟁발발 등 전략적인 의미 뿐이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국가위신에도 관련된 문제일 수 있다. 한 나라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주요기업을 외국기업이 인수하려고 할 때 정부는 그 기업을 국유화하는 것이 한 예이다. 또한, 다국적 기업이 국가의 대표적인 기업을 인수하여 주요산업을 지배하는 것이 우려될 때도 국유화가 행해진다.마지막으로, 외국과의 관계를 떠나 주요전략산업을 민간기업에게 넘겨주지 않고 정부가 직접 운영하여 경제정책의 수립을 용이하게 하고 경제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하는 시도에서 공기업이 설립될 수도 있다. 특히, 취약산업이나 사양산업의 경우 민간부문에서는 이러한 기업을 유지 있다.
    경영/경제| 2005.04.14| 6페이지| 1,000원| 조회(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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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현대 민주주의 평가A좋아요
    현대 민주주의현대 민주주의민주주의는 오늘날까지 인류가 발전시킨 최상의 정치제도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이론과 정치 이념은 근원적으로 유사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현실 정치에 나타나는 정치제도나 과정 및 행태에는 그와 달리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민주주의의 이러한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한 학자 중의 하나가 카알 엘 벡커(Carl L. Becker) 이다. 이 책은 그가 버지니아 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을 중심으로 엮은 책이다.그는 이 책에서 현대 민주주의를 이상과 현실, 그리고 딜레마로 나누어 고찰하였다.Ⅰ. 이 상민주주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새삼스레 물을 필요가 없을 만큼 익숙하게 되어진 말이지만 이 말에 대한 충분하고 정확한 의미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민주주의는 정치권력이 국민에게 있어야 하며, 그들의 공동의사가 효과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정치 형태라고 보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주로 정치 형태와 관련되며, 그것은 또한 1인에 의한 정치의 반대로서 다수에 의한 정치, 즉 폭군, 독재자, 또는 절대 군주에 의한 정치의 반대로서 국민에 의한 정치를 항상 의미하는 것이다.인류의 경험상 민주주의는 아직도 제한되어 있고, 그리고 일시적인 성공밖에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 명백하다. 민주 정치가 성공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 중의 하나가 통신의 편리를 기동성이라면, 다른 하나는 경제적 안정을 위한 조치다. 민주주의는 통신수단이 발달되지 못하고, 민주주의는 절대로 빈곤한 사회에서는 번성하지 않는다.이런 필수 조건이 지속된다고 가정하더라도 시민 각자의 어떤 능력과 덕성이 또한 필요하게 된다. 민주정치의 실현을 위한 주제 전제는 시민들 각자가 그들 자신의 일을 스스로 처리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회에서든 개인과 계급 간에는 이해관계를 둘러싼 출동과 공동선을 지향하기 위한 방법의 채택을 둘러싼 의견차이는 있기 마련이다. 이런 의견차이는 조정되어야 하고, 이익의 충돌도 어느정도 타협을 이루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은 이성적인 존재여야하며, 타협을 위해 충분히 양보할 수 있을 정도의 선의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현대 민주주의 정치이론은 변화하는 세계관에 이미 적응 되었다. 국민의 소리는 바로 신의 소리와 일치되었으며, 모든 권위는 그로부터 나왔다. 국가와 국왕 대신에 이제는 개인이 신성화 되었고, 그에게 절대적인 권리가 부여되었다. 그리고 인권에 대한 무시와 무지가 바로 사회악의 주요 원인이 되므로 정치학의 제 1차적인 임무는 이러한 권리를 규정하고, 이것을 보정할 정치형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평등하며, 창조주로부터 생명과 자유, 그리고 행복의 추구라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은 것이다.” 라고 그 개념을 규정할 수 있다.위에서 살펴본 것들이 현대 민주주의의 이상적 형태이다. 그럼 다음 장에서는 현실과 민주주의와의 현저한 불일치를 가져오게 한 환경과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겠다.Ⅱ. 현 실이 장에서는 이상적으로 고안된 민주주의와 현재 진행 중인 민주주의와의 사이에 나타난 심각한 불일치에 대해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보고자 한다.그 본질적인 이유는, 18세기에 형성 되었다. 그 당시에는 타당하다고 인정 받았던 자유의 사상이 기본적인 면에 있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현 상황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었다. 18세기에 있어서 인간이 괴로움을 당한 가장 명백한 억압은 개인의 자유행동에 대한 정부의 속박으로부터 나왔다. 그러므로 자유라는 말은 자연히 그런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증대하는 복잡성의 결과 때문에 개인의 경제적인 활동에 있어서 정부의 속박으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키는 것은 오히려 새로운 억압을 조성시켰다.따라서 이상으로서의 민주주의와 현존하는 민주주의 사이의 불인치가 가장 심하고, 가장 환멸적이고, 또 가장 위험스런 것도 바로 경제적인 영역에서이다.18세기 자유혁명으로 부르조아지는 대중의 힘을 얻어 왕과 귀족의 사회적 특권을 박탈할 수 있었지만 정치적 경제적인 이해관계는 모두의 이해관계와 일치 할 수 없었다. 결국 대중의 이해와는 날카로운 갈등을 일으키게 되었다. 결국 정치적 자유와 법률 제정의 권리는 재산을 가진 국민에게만 한정 되었고 대중은 여전히 기조트(Guizot)가 말한대로 “정치적 영역”에서 제외되었다.이후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자연권을 가겼다는 교리에 따라 모든 남자 시민에게 선거권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대체로 정치적 영역에 대한 국민의 참가 허용은 그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정치적 지배권은 종전처럼 여전히 상류 계급 정당등의 수중에 남아 있었다.위와 같이 국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정치적 평등은 실패하게 되었다. 보다 근본적 이유는 자유민주주의 혁명으로부터 나타난 사회의 경제적 구조에서 찾을 수가 있다. 정치적 영역에서 개인의 자유는 부적당한 것으로 증명되었다. 왜냐하면 경제적 영역에서 개인의 자유는 소유와 기회에 대한 최소한도의 평등도 확보하지 못하였고, 따라서 정치적인 평등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요컨대, 이상면에서 볼때, 자유 민주주의 혁명으로부터 자유와 평등, 그리고 번영을 갖는 비교적 단순한 시민사회가 바로 나타났으며, 합리적인 토론과 양보에 의해 공동선이 향상되는 협동이 나타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선의나 신중한 의사나 합리적린 결정보다도 더 강한 복잡하고도 비인간적인 경제력이 지배하는 사회가 나타났다. 그리고 부와 권력은 몇몇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결국 대다수 국민은 민주주의의 이론적 정당성과 필요한 조건을 제공하는 본질적인 자유가 쓸 데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오늘날 모든 민주사회가 당면한 어렵고 본질적인 과제는 실제에 있어 어떻게 하면 경제적인 기업에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여 건전한 민주주의의 전제 조건인 기회와 소유의 균형을 확보하며, 동시에 민주주의의 존립 조건인 지적, 정치적 생활에 개인적 자유를 지속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Ⅲ. 딜 레 마현대 민주주의는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와 평등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려는 정치 제도이다. 그러나 현실의 민주주의는 이상과는 커다란 괴리를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민주주의의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현대 민주주의의 문제는 다음과 같이 바꾸어 설명할수 있다. 즉,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 현존하고 있는 소유와 기회의 심각한 불평등을 과연 민주주의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 의 문제이다.
    사회과학| 2004.11.30| 4페이지| 1,000원| 조회(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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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제 4공화국
    제 4 공화국목 차Ⅰ.성 립 배 경...........1)국제적배경...........2)국내적배경...........Ⅱ.성 립 과 정...........Ⅲ.행 정 조 직 개 혁...........1)조 직 개 혁 내 용..... ......2)조 직 개 혁 특 성...... .....Ⅳ.정 부 활 동...........Ⅴ.권 력 구 조...........1)통일주체국민회의...........2)대 통 령 과 행 정 부..... ......3)국 회...........4)법 원...........5)헌법위원회...........Ⅵ.의 회...........Ⅶ.평 가...........1) 국제적 배경49년의 중공 정권 수립, 50년의 중소군사동맹체결 및 한국전쟁 발발, 65년 한일협정 체결로 인한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체제의 완성으로 확대 강화된 동북하의 냉전구도는 60년대 말에 이르러 급격히 변화하기에 이르렀다. 그 상징적 사건이 바로 미국과 중화인민공화국 간의 수교였다. 이것은 이른바 냉전체제의 이완과 전 세계적인 데탕트 분위기를 가져왔다.이러한 배경에서 미국의 새로운 전략으로 등장한 것이 닉슨독트린이다. 닉슨독트린은 한마디로 힘, 교섭, 동맹관계의 세 가지 측면을 기본 축으로 하는 세계전략이다. 특히 닉슨독트린이 한반도에 적용될 때 갖는 정치적 의미는 미중, 중일관계의 정상화와 북한-미국, 북한-일본간의 화해분위기를 유도하여 두 개의 한국정책을 정착시키는 점에 있다. 이상과 같은 닉슨독트린에 의해 60년대 말 미국의 대한정책은 주한미군철수와 남북대화의 종용이라는 형태로 변화되었다. 미군철수가 기본적으로 미국의 상대적 지위 저하에 따른 해외기지 정리방침의 일환이지만, 다른 한편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이 바라는 한반도의 긴장완화구조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동시에 남북대화를 통한 한반도는 미군철수를 위한 필요조건이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박정희는 8.15선언을 통해 한국의 대북한 자세를 획기적으로 바꿀 용의가 있음을 천명하고, 마침내 72년 7월 4일 남북공동성명필요성과 70년대 초 일련의 위기상황에 대응해서 정권을 유지 강화하려는 박정권의 필요성이 서로 맞물려서 이룩된 것이라 하겠다.Ⅱ.성립과정1970년대 한국 정치를 일컬어 한마디로 ‘유신체제’라고 한다. 유신체제의 성립은 곧 노골적인 폭력의 제도화를 의미한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이제까지 내걸었던 형식적 민주주의의 허울마저 명시적으로 부정한 채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힘에 의한 직접통제를 일상화하였다. 그리하여 전사회적으로 억압이 총체화, 구조화되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그러면 이러한 유신체제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첫째, 남한사회 상부구조의 성격과 그 변화과정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며, 이때 유신체제는 제3세계적 일반성과 남한사회의 특수성 양측면에서 고찰되어야 할 것이다.둘째, 70년대에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던 민중운동의 객관적 조건을 밝히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셋째, 유신체제의 영향이 구조적으로 현재까지도 잔존하고 있다고 할 때 현존 남한사회의 모순의 뿌리를 알아내려면 유신체제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그 성립과정을 보면,첫 번째로 우선 유신체제의 성립을 국내적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서 또는 세계체제 자체의 변화 결과로서 바라보는 연구들이 있다.기존의 논의에서 10월유신의 성립을 설명하는 이론틀로 가장 많이 이용되었던 관료적 권위주의론과 과대성장국가론을 중심으로 이들의 견해를 살펴보자.관료적 권위주의론의 핵심은 사회경제의 근대화가 정치적 민주주의를 가져온 서구와는 달리 종속이란 구조적 한계를 지닌 제3세계에서는 근대화가 자본주의의 발달이 오히려 강력한 권위주의 정권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즉, 관료적 권위주의체제 등장의 핵심적 원인은 산업화의 심화와 이를 위한 정치적 안정, 즉 민중운동의 배제할 필요성으로 설정된다. 이것을 한국적 상황에 적용시킬 때 1972년의 10월유신은 한국에서 관료적 권위주의가 정착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 근거로는 10월유신을 계기로 그동안 진행되어온 민중운동이 철저하게 탄압되었다는 점, 한국경제가시대의 행정개혁은 집권적?권위적 행정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국정능률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이때의 능률화는 의사결정비용의 최소화를 지향하는 것으로 , 결국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고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배제시키는 단편적 능력관이었다. 유신 이후 행정관리개선의 공식적 목표는 봉사행정체제의 구축, 새로운 행정수요를 뒷받침할 수 있는 행정체제의 정비, 행정의 과학적 관리를 통한 능률의 제고, 부정부패의 제거 등이었다. 또한 행정장비의 운용을 개선하고 사무자동화 및 전산화계획을 추진하였다. 이외에도 문서관리?보고관리의 개선, 사무의 표준화, 새로운 행정수요에 적합한 기구 및 권한의 하부위임 등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적 목표 이면에는 유신정권을 공고히 하는 행정체제의 구축이라는 숨겨진 의도가 있었다. 1975년부터 추진된 서정쇄신운동은 역시 유신체제의 정당화를 위한 정치적 노력의 일환으로써,①공무원의 기강확립 ②국정의 능률화 ③국가안보 ④건전한 국민정신의 진작 ⑤부조리 없는 깨끗하고 명랑한 사회의 건설 ⑥민족중흥과 부강한 국가의 건설 등을 제시하였다.그러나 그 가시화 된 정책은 공직자 사회의 부조리척결(부패제거)로 이어져 징계제도상의 처벌을 받거나 비징계절차에 의해 강제퇴직, 직위해제 등 불이익 처분을 받는 공무원이 증가하였다. 이는 관료제에 대한 정치권력의 억압적 수단의 사용으로 볼 수 있다.1) 조직개혁 내용권한이 더욱 강화된 대통령을 정점에 두고 국무총리와 자문기관으로 성격이 바뀐 국무회의가 유신행정체제를 형성하였다. 중앙행정기구는 1973년 1월 15일 전문 개정된 정부조직법에 의해 기본골격이 구성되어, 2원 13부 4처 13청 5외국으로 규정되었다.정부조직법 개정의 내용은, 국무총리를 보좌할 행정조사실을 설치하고 상공부에 공업진흥청과 공업단지관리청을 신설하였다. 또한 중앙행정기관인 위원회, 실, 차관보의 설치, 그리고 지방행정기관의 설치는 대통령령에 위임함으로써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원?부?처?청의 처장, 차관, 청장, 차장, 차관보와점에 특색이 있다. 개정 당시 유신헌법의 기본적 성격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 지향, 민주주의 토착화, 실질적인 경제적 평등을 이룩하기 위한 자유경제질서확립, 자유와 평화수호의 재확인’이라 하였다. 그러나 사실상 유신헌법은 박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위한 개헌이었고, 국민의 기본권 침해, 권력구조상에 있어 대통령 권한의 비대로 독재를 가능하게 한 헌법이었다. 유신헌법은 전문과 12장 126조 및 11조의 부칙으로 되어 있다.그 주요 내용은 ① 전문에 민족의 평화통일이념을 규정하고, ② 법률유보조항을 두어 기본권 제한을 보다 쉽게 하였으며, ③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설치하였고, ④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여 영도적 국가 원수로 하였으며, ⑤ 정당국가적 경향을 완화하고, ⑥ 정부가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연대성을 가지게 하였으며, ⑦ 국회의 회기를 단축하고 권한을 약화하였으며, ⑧ 사법적 헌법보장기관인 헌법재판소룰 정치적 헌법보장기관인 헌법위원회로 바꾸었고, ⑨ 법관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하였으며, ⑩ 대통령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거하도록 하였고, ⑪ 국민투표제를 채택하였으며, ⑫ 헌법개정절차를 2원적으로 하였고, ⑬ 지방의회를 통일달성시까지 구성하지 않게 한 것 등이다.(참조) 윤주영 문공부장관이 10.17 특별선언을 "10월 유신"이라고 이름 붙여 통일해서 부르기로 고발표했다. 이는 "박대통령의 10.17특별선언으로 시작된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 작업과 그 밖에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 걸쳐 진행될 모든 작업은 단순한 조치가 아니기 때문에 특별 선언으로 부르는 대신 10월 유신으로 부르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국민경제의 획기적인 발전을 도모하여 양적(量的) 성장과 아울러 질적(質的) 발전과 국민생활의 향상에도 중점을 둔 5개년 단위의 경제계획 1962∼1981년까지 4차에 걸쳐 경제개발계획이 실되었으며 1982년부터는 그 명칭이 경제사회발전계획으로 바뀌어 실시되고 있다. 1982∼1986년의 제5차, 1987∼1991년의 제6차, 그리고일주체국민의회는 초당적 성격을 지닌 헌법상 최고국가기관으로 규정되어 있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대통령에 의해 행정적으로 조작이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의회민주주의를 지양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에서 구성되었다.2) 대통령과 행정부대통령은 대통령 선출을 위하여 별도로 구성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접선거에 의해 선출되었다. 임기는 6년이며, 임기 중 탄핵소추를 받지 않는 한 어떠한 정치적 책임도 지지 않았다.대통령은 1.국회를 해산하고, 2.국가의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쳐 결정하도록 발의하며, 3.헌법개정안을 발안하여 국민투표에 회부하고, 4.주권적 수임기관인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의장으로 통일정책 결정하거나 변경함에 있어 그 심의에 회부하며, 5.헌법위원회 위원과 대법원장 및 각급 판사 등을 임명하고 6.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하는 국회의원 추천하며, 7.긴급조치권 행사고, 8.행정부에 법률안제출권과 국회 출석, 발언권 등 입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등 국가원수로서 영도자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또한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국무총리와 국무의원을 임명하였다. 대통령의 국무 총리 임명에는 국회의 인준을 받도록 하였으나 국무의원은 국무총리의 재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였다. 국무회의는 국가의 중요정책에 대한 최고심의의결기관이었으나 그 의결은 대통령에 대하여 아무런 기속력이 없는 단순한 보좌기관에 지나지 않았다. 한편, 제3공화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국무총리와 국무의원은 국회의원을 겸직할 수 있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입법, 사법, 행정의 3부에 군림하는 막강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 절대적인 위치에 있었다.3) 국 회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견제장치로서 국회에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에 대한 개별적인 해임의결권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국무총리에 대한 해임의결이 있을 때에는 대통령은 국무위원 전원을 해임하도록 하여, 국무총리에 대한 불신임을 전체 국무위원에 대한 불신임으로 귀결시켰다. 이밖에도 국하였다.
    사회과학| 2004.11.30| 13페이지| 1,000원| 조회(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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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마키아 벨리 군주론 평가B괜찮아요
    군주론 (N.마키아벨리)군주론(君主論) N.마키아벨리조선 왕조를 500년간 지속되도록 기틀을 마련한 사람을 태종 이방원이라고 한다면 태종 이방원의 통치 이념은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의 이상향이다.「군주론」은 르네상스 시대(AD-14-16 세기경) 이탈리아의 정치이론가 마키아벨리가 당대 피렌체 군주인 로렌조 디 삐에로 데 메디체에게 선사한 글로서 군주의 자세와 강력한 국가 보전을 위한 방법 제시 했다. 마키아벨리 「군주론」에서 군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권력뿐이며 종교나 도덕에 구애됨이 없이 어떠한 모략을 사용해도 좋다는 현실주의적 정치 이론을 전개하고 있는데, 그런 우수한 정치 이론에 의하여 그는 근대정치학 을 개척한 획기적인 저서이자 소위 ‘근대 정치학의 시조’라고 일컬어지고 있다.국가의 형태와 군주군주론의 제1장은 국가의 형태에 대한 짤막한 소개로 되어 있다. 당시까지 인류를 지배했거나, 지배하고 있는 모든 국가는 공화국이거나 군주국인데 군주국은 또 윗대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세습 군주국과 새로운 왕이 나타나 권력을 잡는 새로운 군주국으로 나뉜다.새로 권력을 잡는 방법은 왕 자신의 힘이거나 다른 왕의 힘을 빌리거나, 그것도 아니면 행운에 의한 것이었다. 신설 군주국과 대비되는 세습 군주국은 이미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 있기 때문에 통치하기가 훨씬 쉽다. 왕이 터무니없이 못된 짓을 하지 않는 한, 그 백성들은 큰 저항 없이 왕의 명령에 순종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로 세워진 군주국은 그 백성들 이 쉽고 자연스럽게 복종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왕이 그 이전 왕족의 혈통을 단절시키되, 예전의 법률이나 조세제도를 급격하게 바꾸지 않아야 한다고 마키아벨리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한 나라의 왕이 다른 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영토를 차지했을 때에는 왕이나 그 밑의 신하들 중의 하나가 그곳 에 가서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빠르게 대응조치를 취할 수 의 영토 확장은 인간의 본성에 들어맞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한번 점령한 영토를 계속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세력을 키울 수 있는 길을 철저히 막아야 하고, 그런 여지를 만들어주는 왕은 반드시 망한다.이런 원칙을 잘 지킨 위대한 왕은 알렉산더이다. 알렉산더대왕은 불과 몇 년만에 주위의 왕국들을 점령한 후에,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에서 병으로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후계자들이 그 영토를 잘 유지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알렉산더가 점령지역 군주들의 혈통을 끊어놓았기 때문이다.점령한 영토에 본래 거주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과 누렸던 자유를 쉽게 잊지 못한다. 특히 옛 관습들은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왕이 은혜를 베풀어도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이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주민들을 완전히 말살해 버리든가, 그들 속에 함께 살면서 계속 감시하는 것이다. 이것을 새로운 왕이 등장하게 되는 배경과 연결시켜보면 다음과 같이 보다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왕이 자신의 힘만으로 영토를 점령한 경우를 생각하면, 그는 비교적 쉽게 국가를 유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보면, 확실한 힘을 가진 왕이 나타났을 때는 항상 점령당한 사람들의 저항도 크게 효과를 보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다음 경우로는 다른 사람의 힘이나 해운에 의해 왕이 된 사례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실제로 힘을 가진 사람들이나 행운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계속 자리를 지키고 영 토를 다스리는 데 많은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특히 자기 아버지의 힘과 권위에 의지하여 새롭게 왕이 된 사람은 다음과 같은 원칙들에 충실해야만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즉,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만들고, 백성이 왕을 존경하는 동시에 두려워하게하며, 자신에게 해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없애야 한다. 또 새로운 군대를 만들고 주위의 국가들과 동맹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특히 왕의 권위에 도전할 능력이 있는 교황과의왕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되는데, 그 두려움이 일시적인 것으로 머물게 하고 은혜를 느낄 수 있게 해주면, 충분히 효과적으로 다스려갈 수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해서 왕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결코 영광스러운 일은 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첫째 부분의 마지막인 9장, 10장, 11장은 시민들이 세운 왕의 문제와 종교적 국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시민들의 뜻에 의해 왕이 된 사람은 언제나 시민들과 좋은 관계를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좋지 않은 시기에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게 된다. 시민들이 아닌, 귀족들의 뜻에 의해 왕이 된 사람은 당연히 귀족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면 가장 바람직한 왕은 누구인가? 충분한 군대를 가지고 있어서 공격해 오는 적에 대해 훌륭히 막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군주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왕은 최소한 포위된 성안에서 자기 신하들의 용기를 고취시켜서 나라를 방어할 수 있는 능력과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국가 중에서 조금 특이한 국가로는 종교적 관습과 권위에 의해 유지되는 종교적 국가이다. 종교적 국가를 다스리는 왕은 교회의 위대한 권위를 계속 지키고,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들 중에서 추기경이 나오지 못하도록 막기만 하면 된다.군대의 조직과 유지둘째 부분에서는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데 꼭 유념해야만 하는 군대의 문제를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첫 부분에서 마키아벨리는 모든 국가의 가장 중요한 기초는 군대임을 다시 강조한다. 이 군대는 왕의 입장에서 볼 때,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자기 자신의 군대와 고 용한 군대, 원조를 받은 군대, 그리고 혼합군대이다. 그 중에서 고용한 군대(용병)나 원조를 받은 군대(원병)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용병은 단결심이 없고 충성심도 없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멸망 원인도 바로 이 용병에 의존한 데서 비롯된다. 보다 바람직한 왕 은 자신의 군대를 가져야만 한다. 그런 군대를 가졌던 대표적인 나라는 로마와 스파르타원조를 위해 파견되는 부대를 말하는데 원병은 아주 힘들게 싸우고 있을 때는 어느 정도 쓸모가 있지만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둘째 부분에서는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데 꼭 유념해야만 하는 군대의 문제를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프랑스의 루이 11세는 스위스의 군대를 고용하기 시작하여 일부는 용병, 일부는 자기 나라 군대인 혼합병제를 채택했다. 이런 혼합병제는 완전한 용병제보다는 났지만 자기 군대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일단 위험이 다가오는 유사시에 믿을 수 있는 방어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면 그 왕은 항상 불안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다. 그런 불안을 떨칠 수 있는 길은 신하나 시민 또 는 식민지인들로만 구성된 자국 군대를 갖는 길이다. 왕이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자국 군대는 항상 전쟁에 대비하는 태세를 갖추고 있어 야만 한다. 자국의 군대를 갖지 않으면 어떠한 군주도 안전하지못하며 반대로 역경에 처했을 때 나라를 지킬 힘이 없기 때문에, 운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군사에 관한 군주의 임무는 군주는 그의 군대의 전술과 군사 조직과 훈련 이외의 어떤 배려나 생각도 가져서는 안 되며 군주의 특수한 직무로서 오직 이 일에 열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통치자가 추구하는 유일한 기능인 까닭이다. 그리고 그러한 효력은 세습 군주인 사람에게는 그 자리를 유지하게 해줄 뿐만이 아니라, 때때로 일개 평민의 신분에서 군주의 자리로 오를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군주는 군사 문제의 연구로부터 그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려서는 결코 안 된다 그리고 전시보다 평화시에 더욱 그 일에 주력하여야 한다. 육체적인 방법으로는 그의 병사들을 잘 훈련시키는 외에 끊임없이 사냥을 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려움과 피로에 대해 육체를 익숙케 하는 것이요, 동시에 산의 경사, 열려 퍼지는 계곡의 모양, 평야의 펼쳐지는 상태 등을 관찰함으로써 지형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고 강과 늪의 특징에 대해서도 통달 하게 된다. 그러한 다 더 훌륭히 이해하게 된다. 둘째, 각 지역에 대해 잘 알고 나서, 어떤 지방을 관찰하게 되면, 다른 지역의 특징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다음으로 정신적인 방법은 군주는 역사를 읽고, 여기에서 위인의 행적을 알며 그들이 전쟁중에 어떻게 행동하였는가를 살피고 그들의 승리와 패배의 원인을 검토하며 후자를 피하고 전자에서의 그들을 본받지 않으면 안 되며 무엇보다도 과거의 많은 위인들의 행동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국가가 어려움에 처할 때 쉽게 이겨낼 수 있게 된다.왕의 자질과 능력셋째 부분에서는 왕이 자기의 신하나 백성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 것인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첫째, 왕이 밑에 있는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우선 관대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관대하려고 하다보면 무능한 왕이 될 가능성이 높고, 오히려 인색하다는 평판을 듣는 왕이 더 위대한 어적을 남길 수 있음을 역사는 증명 해주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군대에게 재산이나 약탈한 것들을 나눠줄 때는 왕이 관대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를 배신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둘째, 왕은 백성으로부터 두려움과 사랑을 함께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만약 사랑을 받을 수 없다면 최소한 미움을 받지는 말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자기의 백성이나 신하의 재산 또는 여자를 탐하지 말아야 한다. 또 어떤 사람을 죽여야만 할 경우에는 반드시 분명한 이유와 적당한 변명이 있어야 한다. 동시에 백성들이 왕에 대해 어느 정도 두려움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만 한다.셋째, 군주가 갖추어야 하는 미덕은 신의를 지키는 일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나 신의를 지키려 노력했다가는 왕이 큰 곤란에 빠질 수도 있으므로, 상황을 보아가면서 신의를 지켜 야한다. 특히 새 왕은 운명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서 적응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기 위해서 는 여우의 지혜와 사자의 위엄을 함께 갖추어야 한다. 여우는 이리에게 공격당할 수 있고, 사자는 인간이 만든 올가미에 빠질 염려가 있기 때문.
    독후감/창작| 2004.11.30| 3페이지| 1,000원| 조회(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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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정] 지방자치단체 평가B괜찮아요
    목 차1.PR의 의미2.지방자치단체의 PR3.지방자치단체의 PR사례(1) 관광상품 PR사례(2) 농?축산물 PR사례(3) 국제적 PR사례(4) 고양시 세계꽃박람회 PR사례4.지방자치단체의 PR업무(1) 부산광역시(2) 강남구(3) 담양군(4) 구리시청지방자치단체의 PR1. PR의 의미Public Relations의 약자인 PR은 개인 혹은 조직체가 그와 관계되는 공중의 이해와 협력을 얻기 위하여 스스로가 지향하는 목표와 정성을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통해 전달, 이해, 설득시키면서 자기자세를 바로잡아 나가는 계속적인 대화관계의 광장이라 하겠다. 다시 말해 ‘공공관계’ 또는 ‘공중관계’ 라고 표현되며, 대 시민활동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사회과학으로서의 PR의 개념을 살펴보면 Public Relations는 “한 개인 혹은 한 조직의 신뢰 및 호의를 얻고자하는 개인과 단체에게 이익이 되도록 자기의 정책, 서비스활동 등을 설명하는 것” 이라고 정의된다. 환경변화가 심한 현대에 이르러서는 PR은 이 환경 변화의 적응력 여부에 따라 기업의 우열까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끔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PR의 역할은 더욱 중대한 사명을 부여받게 되었다.PR의 개념은 회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PR이나 지방자치단체의 PR 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그럼 다음 내용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의 PR 사례와 PR업무에 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2. 지방자치단체의 PR95년 6월 전면적인 지방자치단체장 및 의원선거의 실시로 지방 자치시대의 막이 올랐다. 지방자치의 시작은 지방자치단체간 경쟁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 지방자치는 내 고향에 공장을 유치하고, 내 농산물을 판매하고, 내 고향의 관광객을 많이 유치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것이다.주민들의 투표로 뽑힌 자치단체장은 공개행정을 펼쳐야 하므로 주민과의 진정한 대화 없이는 일을 재대로 해나가기가 어렵다. 그런 점에서 지방자치단체 주민과의 쌍방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행정은 많은 긍정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적극적으로 주민을 설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둘째, 상징마크, 제정, 나무나 새 등의 상징물 지정과 같이 CI를 통해 주민의 공감을 끌어내려는 노력을 들 수 있다. 서울시는 물론 각 구청이 대부분 심벌마크를 가지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도 CI작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심벌마크는 각종구청 안내판, 현수막, 인쇄물 등에 다양하게 사용되므로써 주민들에게 친근감과 일체감을 준다는 장점이 있다. 충청북도는 군마다 독특한 캐릭터 내지는 상표를 개발해 특허등록을 했다. 이는 각종 농산물 등의 포장에 사용해 지역의 특성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고, 타지방과의 차별화를 기한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상징물로 보은군의 정이품송, 진천군의 생거진천, 단양군의 도담삼봉 등 내 고장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셋째, 지방자치단체가 열린 행정으로 주민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대전광역시는 광고를 통해 적극적으로 공장 유치에 나서고 있다. ‘창조적인 기업은 공장용지 선택부터 다릅니다.’ 라는 해드라인으로 대전의 제 4공단의 입주할 기업들을 찾는 광고를 낸 것이다. 서울시가 국회의원 이순재씨를 출연시켜 쓰레기 분리수거 캠페인을 TV광고를 통해 집행 했는가 하면,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하나뿐인 서울』이란 제목의 삽화집 14만 3천부를 제작해 초 중 고, 시청 산하기관, 소비자단체등에 배포했다. 한편 성북구청은 『나의 업무무엇이 잘못될 수 있나』라는 제목으로 감사사례집을 펴내기도 했다.넷째 시민들에 대한 서비스 강화도 주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시는 시민들의 서울 살이 요령을 담은 『서울시민 생활백과』를 해마다 발행하고 있다. 서울시, 관공서, 박물관, 관광지등 시민생활에 도움이 되는 각종 정보를 담고 있다. 또 은평구는 구청의 잘못을 지적하려고 구청을 방문하는 시민에게 5천원에 교통비를 지급하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94년 4월 3일 중앙일보에 독자투고란에 재미있는 사진 한 장이 실렸다. 군청입구에 민원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가짐으로써 제주도 홍보와 함께 색다른 맛을 서울 시민의 안겨주었다. 도 단위의 지방 자치 단체장이 서울에서 고향 사람들이 모이는 향우회나 동문회를 주체하거나 참석하는 것도 지. 간접적으로 도청을 설명하고 출향 인사들의 협조를 당부하는 홍보의 자리가 될 수 있다.3. 지방자치단체의 PR사례우리의 관광 상품이나 농, 축산물의 홍보를 통해 내 고장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농, 축산물 판매를 늘리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관광을 상품화하고 대형 축제성 이벤트를 기획하며, 농산물의 고장의 명칭을 딴 브랜드를 도입하는 것이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1) 관광상품 PR사례제주도나 경주, 설악산 관광 상품은 일반화 되었지만 경상남도의 ‘경남관광 상품’ 이란 말은 아직 익숙하지 않다. 이 상품이 탄생한 것은 94년이다. 김혁규지사는 경남의 관광 상품을 알리기 위해 캠페인을 기획하면서 광고에 출현하는 등 집중적인 홍보를 활동을 벌였다. 이 상품은 94년도 한국 능률협회 선정 히트상품 특별상에 선정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조건호 옹진군수 역시 ‘금년도 휴가는 서해 최북단 백령도로 오세요!’ 라는 어깨띠를 부르고 관광홍보 캠페인을 벌여 관심을 모았다.지방자치단체의 홍보는 민간 기업과 연계되는 경우도 있다. 우방이 대구 부루산에 7년여의 공사 끝에 95년 문을 연 ‘우방타워’ 는 대구를 상징하는 명물로 등장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또는 서울의 상징으로 남산타워를 꼽았듯이 우방타워는 대구의 모든 홍보물에 대구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등장하고 있다. 대구의 관광상품이 된 것이다.하와이가 방문객에게 레이를 달아주듯이 제주관광협회가 제주의 상품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카네이션, 장미, 백합 등으로 만든 ‘환영꽃’ 달아주기 운동을 벌이는 것도 제주도의 상품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지방마다 개최되는 향토문화제나 각종 예술 축제 등도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을 알리는 문화 상품으로 부각되고 있다. 남원춘향제, 진해군항제, 명동축제 등이 비교적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2) 농?축산물 PR사례농산물 홍보에는 좀더 명확히 브랜드 개념이 도입되고 있다. 이천 쌀, 제주 감귤, 대구 사과, 금산 인삼뿐만 아니라 고장마다 지명을 딴 브랜드를 정해 패키지 개발해 상품화하고 있다. 특히 농민들이 농협 등과 공동으로 가공 식품의 브랜드 까지 만들어 광고를 실시하는 등 홍보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지방 자치 단체들은 각 고장의 농축산물 홍보를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동원하고 있다. 제주도 신구범 지사도 감귤을 홍보하는 광고에 나섰는가 하면 감귤아가씨 3명, 감귤축제위원장, 감귤 농협 조합장과 함께 청와대를 방문해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에게 감귤을 전달했다. 물론 이 장면은 TV와 신문을 통해 보도되었다. 이처럼 유명인을 축으로 한 홍보는 매체를 통한 확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상당히 유용한 방법이다. 95년 김포공항 면세점에 이천 쌀 전시 판매장이 개장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는가 하면, 무주군 사과협회는 ‘맑은 물 깨끗한 공기 그리고 건강한 햇빛 속에서 생산된 무주 사과’ 라는 제목의 광고를 신문에 게재하기도 했다.96년 10월 축협이 로데오 경기는 많은 화젯거리가 되었다. 한?미 카우보이친선협회 소속 주한 미군 15명이 출전해 국내 최초로 선보인 한우 로데오 경기는 신선한 아이디어로 홍보에 성공한 경우다.(3) 국제적 PR사례경기도는 97년 1월 수원대에서 자매 지역인 미국의 유타주와의 신년 국제 화상 회의를 3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했다. 이는 지방 자치 단체로는 첫 시도로, 지방 자치 단체의 국제화 의지와 정보화 마인드를 홍보하는 계기가 되었다.이처럼 지방 자치 단체가 중앙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국제화를 추진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지방 자치 단체들은 국제화의 일환으로 자매 도시나 주정부와의 교류 활성화, 투자 사절단 파견, 국제회의 개최, 외국어 홍보지 배포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강원도는 95년 ‘환동해권 동북아시아 4개국 지방 정부 정상 회의를 개최해 주목을 끌었다민에게 소외감을 극복하고 스스로 국제 사회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주기도 했다.서울시는 94년 한국 방문의 해와 정도 600년을 맞아 국제 홍보를 맡을 담당 전문 직원 3명도 채용한 바 있다. 서울 정도 600년 행사 자체가 서울시민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서울을 널리 아리는 이벤트로서 기획된 것이지만 이러한 국제 홍보 요원의 선발은 서울시를 해외에 널리 알리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외국어 홍보지를 펴내는 자치 단체도 늘어나고 있다. 강서구는 관내 4백여 개 업체의 공산품 판촉을 위해 우리 고장 공산품 소개책자 2천부를 한글, 영어, 일어, 등 3개국어로 펴냈다. 강서구는 이 책자를 자매 결연 도시인 도쿄 오타구, 호주 팬드리시 등에 배포했다. 또 송파구청도 외국인을 위한 영문 호텔, 재래시장, 음식점 등에 대한 안내문이 실려 있다.특히 지방자치제의 실시는 지방 자치 단체가 독자적으로 국제화를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홍보는 국내적으로 지방 자치 단체의 국제화 노력을 부각시켜 중앙 정부나 기업의 투자나 지원을 유도하는 수단이 된다. 또 대외적으로 ’내 고장 알리기‘를 위한 이벤트나 홍보지 발간 등의 홍보 활동은 외국 기업의 투자 유치, 관광 유치, 농산물이나 공산품 등의 수출을 이끌어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4) 고양시 세계꽃박람회국내 화훼산업의 육성과 수출시장 확대를 통해 농민의 소득증대를 도모하기 위해 1997년 이래 3년마다 한 차례씩 열리는, 무역박람회와 꽃전시회를 겸한 세계박람회이다. 경기도와 고양시의 주최로 농협화훼전국협의회와 사단법인한국화훼협회가 주관하였으나 1999년 1월 20일부터는 재단법인고양세계꽃박람회 조직위원회가 주관해오고 있다.제1회는 1997년 5월 3일부터 18일까지 일산호수공원에서 국내외 200여 업체가 참가한 가운데 꽃과 인간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열려 약 130만 명이 관람하였다. 박람회장인 일산호수공원은 인공호수공원으로 전체면적은 96만 6110㎡이며, 한국관·세계관·주제광장·한울광장·전통공원었다.
    사회과학| 2004.11.30| 7페이지| 1,000원| 조회(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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