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1.개요2.건축양식의 특성-재료 및 구조-인본주의-복고주의-건축의 법칙추구-형태 및 장식3.이탈리아의 르네상스 건축-개요-전개과정-부르넬레스키 (Filippo Brunelleschi, 1377~1446년)-미켈로쪼 (B.Michelozzo, 1396~1472년)-알베르티 (Leon Battista Alberti)-브라만테 (Donato Bramante, 1444~1514년)-안토니오 다 상갈로 (Antonio da Sangallo, 1845~1546년)-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ounaroti, 1475~1564년)-안드레아 팔라디오 (Andrea Palladio, 1518~80년)-쟈코모 바로찌 다 비그노라 (Giacomo Barozzi da Vignora, 1507~73년)4.프랑스의 르네상스 건축-개요-건축실례5.영국의 르네상스 건축-개요-이니고 존스(Inigo Jones, 1573~1632년)6.기타 국가의 르네상스 건축-스페인-독일-네델란드근세건축 - 르네상스(Renaissance) 건축1. 개요봉건제도와 기독교 정신 위주의 중세가 붕괴되고 상공업 위주의 시민사회가 성립된 15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발생되어 15,16세기에 걸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전개된 고전주의적 경향의 건축양식2. 건축양식의 특성재료 및 구조1) 주로 석재, 벽돌, 콘크리트 등을 주재료로 이용2) 실제구조는 조적식 구조이면서 외부입면에는 가구식 구조로 표현3) 돔(Dome)은 시공성, 경량화, 아름다움 외관을 위해 골조구조를 내외로 마감하는 이중구조로 시공인본주의 (Humanism)1) 르네상스인들은 중세의 지나친 신 중심의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을 세계의 중심으로서 고려2) 르네상스 예술도 중세와는 달리 신이 아닌 인간을 주제로 함3) 건축도 교회에 집중되었던 중세와는 달리, 공공건물, 궁전, 주택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진행복고주의1)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중세와 지나친 신 중심의 감성적, 낭만적 경향에 염증을 느끼고 고전주의 예술에 관심2) 르네상스 예술전반에 복고주의적 경향에 따라 건축도 과거의 고전주의 건축에 관심3) 고전건축에 대한 연구분석을 통해 고전건축의 구성원리를 이론화, 체계화하여 이용4) 고전건축에 핵심적 건축구성원리는 주범양식이며 고전건축미의 근원은 주범에 의한 비례, 질서, 조화임을 인식5) 주범양식과 함께 엔타블레춰(Entablature), 박공(Pediment),코니스(Cornice), 아치(Arch),아케이드(Arcade)등 고전적 건축요소들을 건축에 도입건축의 법칙추구1) 신 중심의 사고관에서 벗어나 합리적, 과학적 사고방식을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수학적 비례체계가 우주의 질서를 표현한다고 봄2) 수학적 비례체계가 건축물의 기본적 구성원리로서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의 평면과 입면을 지배3) 르네상스 건축은 주관적, 임의적, 감상적이 아닌 규범과 법칙에 의한 객관적, 합리적, 수학적 건축양식형태 및 장식1) 고전건축의 질서와 형식미를 건축의 기본적 요소로서 고려2) 수학적 관계에 바탕을 둔 조화와 질서, 균형과 통일에 의한 형태미를 추구3) 건축의 각 구성요소가 그 자체와 상호관련성에 있어서 완벽한 비례와 조화를 이루는 건축형태를 추구4) 주범, 코니스, 박공, 아치, 아케이드, 등의 고전적 요소들을 장식적 요소로서 이용5) 외벽의 경우 벽면을 거칠게 마감하여 재질감을 강조하는 러스티케이션(Rustication)기법을 적용3.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건축개요1) 르네상스 문화의 발상지로서 유럽에서 가장 융성2) 15세기 초부터 16세기 말까지 전개전개과정1) 초기 르네상스 (1420~1500)- 당시 이탈리아 제일의 상공업 도시인 플로렌스를 중심으로 전개- 주범, 아치, 아케이드 등의 고전적 요소가 장식적 요소로서 사용되는 경향이 강함- 브루넬레스키, 미켈로쪼 등의 건축가가 주도2) 전성기 르네상스 (1500~1540)- 종교적, 예술적 중심지였던 로마를 중심으로 전개. 고전주의적, 복고주의적 성격이 기념성과 성숙에 도달- 선구자적인 알베르티와 브라만테, 상갈로 등이 대표적인 건축가이며 미켈란젤로는 독창적인 작품활동을 함3) 후기 르네상스 (1540~1580)- 미켈란젤로의 건축에서 유래된 매너리즘적 경향이 주류을 이룸- 매너리즘 : 전성기 르네상스건축과 마찬가지로 과거양식의 규범을 모방하지만 다양하고 의도적인 조작을 통하여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건축을 추구하는 경향▶ 부르넬레스키 (Filippo Brunelleschi, 1377~1446년)- 르네상스 최초의 건축가로서 초기에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정립- 건축에 이전시대의 고전적 요소들을 도입- 플로렌스 성당의 돔, 플로렌스, 1420~34년 ∇돔의 현상설계에 당선된 작품으로서 르네상스 건축의 상징적 출발점직경 42m, 높이 120m의 대규모 돔을 리브(Rib)를 이용한 2중 표피구조로 경량화 시킴{- 플로렌스의 보육원, 플로렌스, 1419~24년- 파찌 예배당, 플로렌스, 1429~46년- 성 스피리토 교회, 플로렌스, 1436~82년{플로렌스 성당의 돔The Santa Maria Del Fiore Cathedral dome직경 45.4미터, 최고높이 90미터에 이르는 이 돔의 건설기간은 14년이었다.▶ 미켈로쪼 (B.Michelozzo, 1396~1472년)- 브루넬레스키의 제자로서 메디치가의 전속 건축가로서 활동- 메디치궁, 플로렌스, 1444~60년중정형식의 3층 대저택으로 리카르디궁 이라고도 불림입면의 처리가 아주 미묘하고 훌륭하여 이후 궁전건축의 규범이 됨주범, 코니스, 박공 등 고전적 요소를 도입내부바닥 높이와는 관계없이 층이 높아질수록 입면의 층고는 낮아짐1층은 러스티케이션(Rustication) 기법으로 아주 거칠게 처리하고, 2층은 줄눈만 넣고, 3층은 평탄한 면으로 처리- 스트로찌궁, 플로렌스, 1489년▶ 알베르티 (Leon Battista Alberti)- 고전건축에 관한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건축의 법칙을 추구- 건축의 본질은 질서와 비례의 법칙에 의한 미라는 이론을 정립- 로마시대의 건축이론가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이론서인 [건축십서]를 분석정리한 [건축론]을 저술하여 고전건축의 구성원리를 정리- 고전건축에 관한 이론을 최초로 분석정리한 알베르티의 건축이론은 르네상스 건축가들에게 큰 영향- 루첼라이궁, 플로렌스, 1446~51년입면에서 각층의 필라스터 기둥은 1층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 주범각층의 입면은 코니스, 엔타블레춰, 필라스터 가둥에 의해 분절분절된 각 벽면들의 구성법칙이 동일함으로서 입면의 전체적인 통일성을 창출. 각 건축 구성요소들의 질서와 비례에 의한 조화와 통일의 건축미를 창출과거의 건축요소들과 규범을 이용하여 새로운 건축을 창조해내는 알베르티의 건축구성 원리를 잘 예시한 작품- 성 안드레아 성당, 만투아, 1472~1512년- 성 프란체스코 예배당, 리미니, 1446년▶ 브라만테 (Donato Bramante, 1444~1514년)- 초기에는 화가로서 활동- 브루넬레스키, 알베르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영향을 받아 집중식 평면을 탐구{{- 성 베드로 교회, 최초 계획안로마 교황청의 현상설계에 당선된 집중식 평면 계획안- 템피에토, 로마, 1502~13년 ▷성 베드로의 순교지에 건립된 기념예배당그리이스의 신전과 로마의 판테온의건축요소를 혼합한 건축물터스칸 주범양식으로 조각작품과 같은 느낌의 건축물- 성 마리아 델라 파체, 로마, 1504년▶ 안토니오 다 상갈로 (Antonio da Sangallo, 1845~1546년)- 브라만테의 제자로서 브라만테의 영향을 받음- 파르네제궁, 로마, 1535~50년브라만테 풍의 고전적 주범, 규칙성, 단순성을 이용하여 완전한 조화와 균형, 조소성 기념성을 표현3층은 후에 미켈란젤로가 증축▶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ounaroti, 1475~1564년)- 화가, 조각가를 거쳐 건축가로 활동- 르네상스 양식의 법칙, 규칙성에서 벗어나 건축을 시각적, 조소적 예술로 간주하여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작품활동- 르네상스 후기 매너리즘 양식의 선구자적 역할- 메디치가의 능묘, 플로렌스, 1521~29년- 라우렌치아 도서관, 플로렌스, 1624~26년- 캄피돌리오 광장, 로마, 1539~47년원로원 건물의 중심으로 양측에 입면이 동일한 호민관과 미술관을 직각으로 배치하여 좌우대칭의 사다리꼴 형태의 광장을 형성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가마상을 중심으로 한 광장바닥의 타원형 문양은 세계의 중심을 상징- 성 베드로 성당, 로마, 1506~1626년∇브라만테가 돔에 의한 집중형 평면으로 최초계획후에 미켈란젤로가 브라만테으 집중형 평면계획에 전면열주와 현관을 부가하고 돔 설계 건설후에 마데르나가 신랑을 확장하여 장축형평면으로 변형하고 외부입면을 완성후에 바로크시대의 배표적인 건축가 베르나니가 전면광장과 광장의 타원형 원주랑을 완성{{Dome of St. Peter's▶ 안드레아 팔라디오 (Andrea Palladio, 1518~80년)- 르네상스 후기 고전주의 건축의 대가- 알베르터의 건축이론을 추종라여 수치적 관계 즉 비례를 기본적으로 구성원리로 하는 건축을 추구- 건축이론서 [건축사서](1570년)를 저술하여 고대건축과 자신의 작품을 분석설명
한글의 현주소에 대해안녕하십니까? 라고 합니다. 이번 수업을 들으면서 배우는 점이 많아서 일단 교수님께 감사합니다. 이번 레포트를 작성하는데 많은 고민을 하면서 어떤 것이 좋을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시내중심의 거리를 지나면서 가게들의 간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간판들이 예뻐서 본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너무 이상해서 였습니다. 많은 가게가 있지만 정작 우리 글로 된 것은 없더군요. 그래서 저는 ' 아! 이번 레포트에서 한글의 현주소를 알아보는 기회를 만들자' 라고 생각해서 인터넷 도서관의 신문등을 이용하여 자료를 수집하게 되었고 매일신문에서 이와 관련된 보도자료를 찾앝습니다. 일단 아래에 신문지상의 기사내용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래의 내용부분은 다른 글씨체로 하여 제 내용과는 분리시키도록 하겠습니다.한글의 현주소어제(9일)는 제 556회 한글날. 태극기를 내 건 집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한글날의 의미를 한번쯤 생각해본 사람은 더욱 드물었을 것이다. 그렇게 지내는 사이 알게 모르게 한글은 많이 달라졌다.버티칼, 몰리, 바비, 우드스탁, 엑스 앤(엑슨), 머핀, 그랜드 하바나, 댄버, 매트로, 아프리카, 앙시, 시스템, 머핀…. 20대 남녀에게 기억하는 찻집이나 음식점 이름을 말해달라고 요청하자 속사포처럼 쏟아낸 가게 이름들이다. 모두 영어나 불어다. 니뽀(니 하고만 뽀뽀한다)는 한글을 축약해서 만든 이름이지만 외국어 같은 어감을 가졌다.외국어가 아니면 외국어 흉내라도 내야 장사가 된다는 말이다. 억지로 찾아보면 한글 이름이 몇 개 나온다. 그나마 '웬일이니, 웬일이니' '깎을래 볶을래'등 감탄사나 의태어를 연상하게 하는 말들이다."영어나 불어 이름이 세련돼 보이잖아요". 대학생 박모양이 외국어로 된 음식점이나 찻집을 선호하는 이유다. 분위기가 조금 떨어져도 이름이 멋있으면 들어가고 싶다고 이 여학생은 덧붙인다. '점령군 외국어'의 공세는 가게 이름에서 그치지 않는다. 자동차 이름을 비롯해 의류 잡지 신발 장신구 문방구 스포츠 용어 과자이름 등 외국어는 생활전반을 점령했다. 저항의지를 상실한 한글은 속절없이 퇴각을 거듭할 뿐이다.90년대 초반 한때 열풍처럼 불던 한글이름도 이젠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대구시 동구의 한 유치원에는 230명의 원생 중 약 5%만이 한글 이름을 쓴다. 수성구의 한 유치원엔 아예 단 한 명도 한글 이름을 쓰는 아이가 없다. 수성구의 한 초등학교도 1학년 학생 270명 중 한글 이름을 쓰는 아이는 한 명도 없다. 2학년에 1명이 있을 뿐이다.5, 6학년에는 10%쯤 되는 아이들이 한글 이름을 쓰고 있다고 이 학교 교사는 덧붙인다. "예쁘고 기억에 남는 이름을 짓고 싶어서 한글 이름을 지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바꾸었으면 해요". 초등학교 고학년 자녀를 둔 한 어머니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아이가 가벼운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한글 이름을 지었다가 한문 이름으로 바꾸는 부모들도 많다."이름을 바꾸는 사람 10명 중 1명은 한글 이름을 한문으로 바꾸는 경우입니다". 대구시 달서구청 호적계 이윤정씨는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이름을 바꾸어 신고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고 말한다.'햇살, 햇볕, 하나, 두리, 바람' 등이 그렇다. 한글 이름은 집에서 쓰는 애칭 정도로 생각하고 장래를 생각해 새 이름을 짓는다는 것이다. 물론 한글이름 짓기 열풍이 불 당시 지나치게 시류에 휩쓸려 지은 이름이 많은 때문이긴 하지만 어른이 되면 어울리지 않는다는 다소 '무식한'발상에서 한글 이름을 폄하하는 풍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예쁜 이름을 짓고 싶은 부모들의 열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한글 같은 느낌을 주는 한문 이름이 그것. 이윤정씨는 예쁘고 독특한 이름을 짓되 한문으로 음을 표기할 수 있는 이름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이에 따르는 문제도 드러나고 있다. 많은 이름이 '예, 다, 빈' 등 몇몇 특정한 글자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수성구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한 반에 '예빈, 예지, 예은, 예인, 예림'이가 같이 수업을 받는 촌극도 벌어진다. '형빈, 경빈, 다빈, 영빈, 수빈' 등도 마찬가지이다.백두현 교수(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과장)는 "아이 이름을 시류에 휩쓸려 줏대없이 짓는 것은 곤란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조금만 더 신중을 기하면 어른이 돼서도 쓸 수 있는 한글 이름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덧붙인다. 달력에 공휴일로 빨갛게 표시돼 온 한글날이 1991년부터 검정으로 표시되기 시작했다. 그것이 자칫 한글에 조종을 울리는 날로 바뀌게 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이상이 기사내용으로써 매우 충격스러운 보도였습니다. 전 이 내용을 읽고 다시 한번 우리의 언어사용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일단 저와 제 동료의 경우를 들면 건축과 사람이라서 그런지 언어 사용에 많은 영어가 사용되는 것이 발견되어집니다. 예를 들면 접착제를 본드, 기름종이는 트레싱지, 석고는 젯소, 도와주는 사람을 서버 등으로 부릅니다. 물론 전문 용어라면 당연히 그 본래의 영어나 불어 등으로 말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우리들은 영어를 사용해서 한글을 대체합니다. 이것이 생활화된 경우도 많고 또 다른 경우에는 보다 유식한 사람같이 보이기 위해서 영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의 교수님이나 변호사, 의사 등의 소위 말해서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서 보다 많은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물론 그들이 사용하는 전문 용어는 어쩔수 없겠지만 그들이 그들밖의 사람들과 얘기할때도 전문용어를 사용하여 말하려 하는데서 문제는 시작됩니다. 일반인들은 그들의 용어를 알아듣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전문용어를 사용하여 설명하며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을 비웃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극히 잘못된 경우로 시급히 시정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됩니다.또 다른 문제를 언급하자면 한자 사용에 관한 것입니다. 물론 한자가 우리 역사를 비춰봤을 때 1000년도 넘게 사용해온 우리글이라 할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중국 즉 차이나의 글로서 우리 대한민국의 글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한글을 제쳐두고 한자를 너무 많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무원들이 다루는 서류나 각과의 전공서적등은 지나칠 정도로 많은 한자를 사용하여 일반인들로 하여금 거부감을 일으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어째서 우리네들은 한글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효과적인 언어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한자에 그렇게 메달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한자 사용의 문제점중에서 가장 심각한 경우를 들라고 한다면 바로 우리의 이름에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사람들은 모두들 한자로 된 이름에 너무 익숙해서인지 다들 한자로 된 이름을 지으려고 합니다. 한글로 된 이름은 당연히 부끄럽고 웃기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제 주위에 친구중에 박한나라라고 하는 한글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의 이름이 너무 좋고 부드러운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모두들 그의 이름을 듣고 웃어버립니다. 그의 이름을 듣는순간 한글로 된 멋진 이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름이 촌스럽다. 혹은 웃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는 한국인이 자기 나라의 글인 한글을 웃기고 촌스럽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경우로 너무 이해가 되지 않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세계에는 수많은 천재들이 있고 수많은 핵관련 과학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20세기 초에 존재했던 매우 뛰어난 학자들은 이 핵이라는 에너지를 사용하게 해준 보다 직접적인 공헌을 했다. 물론 이 사람들도 매우 많겠지만 우리는 특별한 몇몇 과학자들을 꼽을 수 있다. 지금부터 세기의 천재 과학자 몇몇을 소개하도록 하겠다.1) 아인슈타인 [Einstein, Albert, 1879.3.14 ~ 1955.4.18]미국의 이론물리학자.국적 : 미국활동분야 : 이론물리학출생지 : 독일 울름주요수상 : 노벨물리학상(1921)1879년 3월 14일 독일 울름에서 출생하였다. 스위스 국립공과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베른 특허국의 관리 자리를 얻어 5년간 근무하였다. 광양자설, 브라운운동의 이론, 특수상대성이론을 연구, 이를 1905년 발표하였다. 특수상대성이론은 당시까지 지배적이었던 갈릴레이나 뉴턴의 역학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고, 종래의 시간·공간 개념을 근본적으로 변혁시켰으며, 철학사상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몇 가지 뜻밖의 이론, 특히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성(等價性)의 발견은 원자폭탄의 가능성을 예언한 것이었다.브라운운동에 관한 기체론적 연구는 분자물리학에 새로운 국면을 열었고, 플랑크의 복사법칙을 검토하여 광양자설에 도달, 그 예로서 광전효과를 설명하였다. 1913년 베를린대학 교수로 취임하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으나, 그 동안 자신의 특수상대성이론을 중력(重力)이론이 포함된 이론으로 확대하고자, 1916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 이 이론에서 유도되는 하나의 결론으로서 강한 중력장(重力場) 속에서는 빛은 구부러진다는 현상을 예언하였다. 이것이 영국의 일식관측대에 의하여 확인되었다.광전효과 연구와 이론물리학에 기여한 업적으로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으며, 그 후 중력장이론으로서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중력장과 전자장의 이론으로서의 통일장이론으로 확대할 것을 시도하였다.유대인 출신인 그는 유대민족주의·시오니즘운동의 지지자, 평화주의자로서 활약하였다. 독일에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유대인 추방이 시작되자, 1933년 독일을 떠나 미국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교수로 취임, 통일장이론 개척에 힘을 기울였다.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원자폭탄 연구에 몰두하자, 미국의 과학자와 망명한 과학자들은 원자폭탄을 가질 필요성을 통감하여 당시 대통령 F.D.루스벨트에게 그 사정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다. 이것이 미국에서의 원자폭탄 연구, 맨해튼계획의 시초가 되었다.한편, 그는 통일장이론을 더욱 발전시키기에 힘썼다. 일반상대성이론은 리만기하학을 이용한 것으로서, 그것은 2차 대칭하는 텐서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가 만년에 생각해낸 통일장이론은 2차 대칭이 아닌 텐서에 의거한 이론이다. 이것을 아인슈타인 최후의 통일장이론이라고도 한다. 미국에서는 그의 이름을 기념하여 아인슈타인상(賞)을 마련하고 해마다 2명의 과학자에게 시상하고 있다.2)페르미 [Fermi, Enrico, 1901.9.29 ~ 1954.11.28]이탈리아의 물리학자.국적 : 이탈리아활동분야 : 물리학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주요수상 : 노벨물리학상(1938)1901년 9월 29일 로마에서 출생하였다. 1918년 피사의 왕립고등사범학교에 들어가 학위를 얻고, 괴팅겐대학교의 M.보른, 레이덴대학교의 P.에렌페스트에게 배웠으며, 1924년 피렌체대학교 역학·수학 강사, 1926년 로마대학교 이론물리학 교수가 되었다.처음에는 상대성이론(相對性理論)을 연구하였으나 로마대학교로 옮길 무렵부터 원자의 양자론(量子論)을 연구, 1926년 P.A.M.디랙과는 별도로 ‘페르미통계(페르미-디랙통계)’를 제안하였고, 분광학을 연구하였다.원자핵 연구로 옮겨 1934년 β붕괴이론을 제출, 복사이론(輻射理論)과 W.파울리의 중성미자가설을 결합시켰다. 이것은 일본의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의 핵력(核力) 연구의 선구적 업적으로 볼 수 있다.졸리오 퀴리 등에 의해 인공방사능이 발견되자(1934), 중성자에 의한 거의 모든 원소의 핵변환(核變換) 가능성을 시사, 느린중성자[緩中性子]에 의한 핵변환을 행하여 많은 방사성동위원소를 만들어 초(超)우라늄원소 및 핵분열 연구의 길을 열었다. 1938년 중성자에 의한 인공방사능 연구의 업적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이 무렵 무솔리니에 의한 파시즘의 압박을 의식, 노벨상 수상을 기회로 미국에 망명, 컬럼비아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그 곳에서 중성자 연구에 전념하였다. O.한 등이 핵분열을 발견하자, 2차 중성자의 방사 및 연쇄반응의 가능성을 예견하였고, 1942년 시카고대학 야금연구소로 옮겨 대형 원자로를 건설, 제어된 연쇄반응을 실현시켜, 핵에너지 해방이라는 업적을 쌓았다. 그 후 맨해튼계획에 참가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 시카고대학 교수로 있었다. 원자로 이론, 우주선(宇宙線) 이론, 가속기에 의한 중간자 연구 등 이론과 실험 양면에 걸친 연구를 계속하던 중 53세에 암(癌)으로 죽었다.3)코크로프트 [Cockcroft, John Douglas, 1897.5.27 ~ 1967.9.18]영국의 물리학자.국적 : 영국활동분야 : 물리학출생지 : 영국 북잉글랜드 토드모던주요수상 : 노벨물리학상(1951)1897년 5월 27일 북잉글랜드 토드모던에서 출생하였다. 맨체스터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 제1차 세계대전에 종군했다가 다시 맨체스터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였다. 그 후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다시 수학을 전공하고, 캐번디시연구소에서 E.러더퍼드 밑에서 전기공학의 실용적 기술과 고도의 수학적 교육을 받았다. 1939년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처음에는 P.L.카피차와 협력, 강력 자기장(磁氣場)과 저온 연구에 종사하였으나 얼마 후에 방향을 바꾸어 월턴과 함께 양성자가속장치를 고안하였다.양성자를 600 kV로 가속할 수 있는 이 장치로 원자핵의 가속기에 의한 파괴변환을 처음으로 실현시켰다. 이 때 대상으로 한 것은 리튬 등의 원자핵으로서, 이 결과는 G.가모의 이론과 비교되었다(1930).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원자력의 평화이용에 진력하였으며, 여러 평화 운동에도 열의를 보였다.고전압 입자가속기에 의한 원자핵의 인공변환 연구의 업적으로 1951년 E.T.S.월턴과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4)가이거 [Geiger, Hans, 1882.9.30 ~ 1945.9.24]독일의 물리학자.국적 : 독일활동분야 : 물리학출생지 : 독일 라인란트팔츠 노이슈타트라인란트팔츠의 노이슈타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빌헬름 가이거는 인도학 학자로서 유명 했으며, 에를랑겐대학 ·뮌헨대학의 교수로 있었다. 가이거는 에를랑겐대학 ·뮌헨대학에 서 공부한 후, 영국으로 건너가 맨체스터대학에서 E.러더퍼드의 지도를 받으며, 방사선 연 구에 몰두하였다.α입자를 하나씩 충돌시켜, α이온화에 의해 α입자를 전기적으로 검출하는 장치인 계수관(計數管)을 고안하여, 이것으로 라듐 Ra에서 나오는 α입자의 수를 측정하였다(1908). 1909년 E.마스든과 함께 α선의 산란실험을 하였는데, 이 때 산란각이 큰 α입자가 있는 점을 검토한 결과, 이것이 1회의 충돌로 일어나는 듯하다고 결론지었으며, 이 결론이 러더퍼드 원자모형의 기초가 되었다.1911년 J.M.누탈과 함께 α선의 도달거리와 붕괴상수의 관계(가이거누탈의 법칙)를 발견하였다. 1912년 독일로 돌아와서 킬대학 ·튀빙겐대학 ·베를린공과대학의 교수를 지냈다.가이거의 이름으로 알려진 계수기로는 귀국 이듬해에 β선 측정용으로 제작한 ‘첨단계수기(尖端計數器)’와 1928년 W.뮐러와 공동으로 제작한 ‘가이거뮐러 계수기’가 있으며, 이것은 계수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이지만, 간단하여 현재에도 많이 사용한다.5)위그너 [Wigner, Eugene Paul, 1902.11.7 ~ 1995.1.1]미국의 이론물리학자.국적 : 미국활동분야 : 이론물리학출생지 : 헝가리 부다페스트주요수상 : 노벨물리학상(1963), 앨버트아인슈타인상(1972) 등1902년 11월 7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출생하였다. 베를린공과대학을 졸업하고 1928년 모교의 강사가 되었다. 1930년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대학교 강사, 1938∼1971년까지 이 대학의 이론물리학 교수로 재직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시카고대학교 야금연구소에서 E.페르미 등과 함께 원자력 연구에 참여, 원자로(原子爐) 건설에 진력했다.이론물리학 분야에 많은 업적이 있으며 분자·원자이론에서의 군론적(群論的) 연구, 고체론의 연구(위그너자이츠의 방법), 원자핵의 반응론(브라이트위그너의 이론), 핵력(核力:위그너力), 장(場)의 이론 등 수학적 방법을 구사한 것이 많다. 1963년 원자핵과 소립자(素粒子) 구조 연구의 업적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그 밖에 엔리코페르미상(1958), 원자력평화이용상(1960), 독일물리학회 막스플랑크메달(1961), 미국 국가과학메달(1969), 앨버트아인슈타인상(1972) 등을 수상했고, 여러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6)마이트너 [Meitner, Lise, 1878.11.7 ~ 1968.10.27]오스트리아 출신의 스웨덴 물리학자.국적 : 스웨덴활동분야 : 물리학출생지 : 오스트리아 빈빈 출생. 빈대학의 첫 여학생으로 물리학을 전공했고, O.한과 협력하여 30년 동안 방사능(放射能) 연구를 했다. β선의 스펙트럼, 방사성되튐[放射性反跳] 등에 대해 연구했으며, 1918년 프로토악티늄을 발견했다. 그 후 베를린대학에 초빙되어 1926년 교수가 되었다. 1934년 페르미가 중성자(中性子)에 의한 우라늄의 변환(變換)을 발표하자 한과 함께 초(超)우라늄원소 탐색에 착수했으나, 나치스의 압박을 받고 1938년 베를린을 떠나 스웨덴에 망명하여 후에 귀화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학년 학기가 되어서 건축재료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을 때 너무 걱정되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열심히 가르치시는 교수님의 모습에 반해서 지금은 열심히 공부해서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2학기가 되어서 설계의교수님, 재료의 교수님을 만나게 되어서 저로서는 너무 큰 행운이라 생각됩니다. 솔직히 1학기 수업을 들을 때는 너무 큰 실망감에 빠져있었는데 2학기가 되어 너무나도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교수님의 자세에서 저는 너무 많은 것을 배우고 또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점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앞으로도 열정적인 수업을 계속 기대하겠습니다.이제 서론을 마치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균열에 대한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먼저, 제가 균열이라는 주제를 택하게 된 이유는 우리 주위의 건물들 대부분이 균열이 있고 이를 보고 느끼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여 이를 조사,연구하여 균열의 종류나 이유,대처방안 등을 알아보고자 함에 있습니다.우리 주변의 비건축관계자들 즉 일반인들은 건물에 균열이 생긴 것을 보고는 이것이 너무 위험하다고 여기고 이런 것이 현대 우리 건축 관계자들이 부실공사를 했기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 여기고 균열이 있지만 안전한 것이라는 즉 지극히 자연스러운 경미한 균열이라는 것을 밝히고자 합니다. 또 주위 건물 중에는 심각한 정도의 균열이 가서 건물이 매우 불안정한 상태인데도 방치되는 건물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되어서 이를 지적해서 문제의 해결방안을 찾아보고자 합니다.먼저 이 균열이라는 것은 콘크리트가 제대로 붙어있지 않고 갈라져 버리는 상태를 말한다. 이 콘크리트의 균열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CON'C의 건조 수축 시멘트의 수화열, 동결융해 등의 기상작용, 재료의 불량, 설계 시공상의 결함, 과대한 하중의 작용, 지반침하, 지진, 진동, 화재등을 들 수 있으며, 그 균열의 형상도 표피부에 그치는 것, 전단면을 관통하는 것 등 다양하다.일반적으로 표피부에 그치는 균열이나 어느정도 심부에 달하는 균열이라도 폭이 0.1mm이하의 경우에는 통기, 통수등의 염려가 없고, 극심한 외적 작용이 없는 한 자응작용에 의해 장기간 후 메워져 버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균열의 폭이 0.2mm정도 이상이 되면 통기, 통수하기 시작한다고 할 수 있으며, 콘크리트의 열화 및 철근등 강재의 부식을 재촉하여 균열의 폭은 계속 성장해 간다.따라서 균열의 형성과 정도에 의해서 보수의 필요성이나 보수, 보강 방법을 판단하여 폭이 0.2mm를 넘는 균열에 대해서는 그 후의 균열의 성장, 콘크리트의 열화, 철근등의 부식을 방지하는 보수가 필요하며, 보수시기에 대하여 보수의 긴급도, 계절, 균열의 안정도 등을 감안하여 결정할 수 있다.즉, 균열은 무조건 위험한 것이 아니라 어느정도의 수준인지에 따라서 위험하고 안하고가 결정되는 것이다. 또, 우리 주위에서 볼수 있는 균열이 가 있는 건물을 보고 이것이 안전한지 불안전한지를 알 수 가 있다.균열에는 콘크리트의 부동침하에 의하여 생기는 침하 수축균열과 표면의 급속 건조에 의하여 생기는 플라스틱 수축균열이 있다.침하 수축균열은 콘크리트 타설 후 콘크리트의 표면 가까이에 있는 철근, 매설물 또는 입자가 큰 골재 등이 콘크리트의 침하를 국부적으로 방해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균열이 발생하여 커지는 정도는 블리딩 (bleeding)이 큰 콘크리트일수록 높아진다. 균열은 콘크리트 타설 후 1시간 정도 경과한 후 일어나기 쉬운데, 콘크리트 타설후 거푸집 이동 또는 시멘트의 이상응결 드의 원인에 의하여 콘크리트 표면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침하가 종료한 단계에서 새로 다시 표면의 마무리를 하여 메꿔주는 것이 좋다.플라스틱 수축균열은 콘크리트 표면의 물의 증발속도가 블리딩 속도보다 빠른 경우와 같이 급속한 수분 증발이 일어나는 경우에 콘크리트 마무리면에 생기는 가늘고 얇은 균열을 말한다. 이 플라스틱 수축균열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수분의 증발을 방지하고 마무리를 지나치게 하거나 콘크리트 표면에 급격한 온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이렇게 균열의 종류와 원인을 분석하였다. 지금부터는 균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또 균열이 일어났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자.먼저, 균열방지 대책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균열방지대책은 발생시기별로 콘크리트 타설전, 타설중, 타설후로 나누어서 설명할 수 있다.콘크리트 타설 전에는 설계서, 사용재료, 배합설계 등을 검토하여야 하며 이때 균열방지를 위한 대책으로는첫째. 외력, 구조형태와 단면치수, 줄눈간격,기초형태를 검토한다.둘째. 콘크리트 강도, 철근간격, 철근의 양을 검토한다.셋째. 환경온도,외적 화학작용, 지중.수중의 조건,반침하를 검토한다콘크리트 타설 중에는 시공관리방법, 거푸집동바리, 철근 등을 검토하여야 하며각각의 경우에 균열방지를 위한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우선 시공관리 방법의 경우에는첫째. 현장에 있어서의 시공관리 체계를 강화한다.둘째. 워커빌리티가 저하해도 물을 추가하지 않는다.셋째. 연속타설의 레이턴스는 충분히 청소하고 습윤시킨후모르타르 등을 타설한 다.넷째. 장시간의 혼합, 각반을 하지 않고 원활히 타설한다5.구조물의 형상이나 블 리딩수의 배제 방법을 고려하여 적절한 순서로 타설한다거푸집동바리의 경우에는첫째. 거푸집이나 동바리 등의 가설물은 타설중의 하중이나 내압에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구조로 한다.둘째. 거푸집은 누수가 없는 구조로 하고 타설 전에 청소와 물뿌리기를 행한다.셋째. 동바리의 침하가 없도록 기초를 튼튼히 시공한다철근의 경우에는첫째. 철근의 위치, 간격, 피복두께가 확실히 시공되었는가 조사한다.둘째. 타설중에 철근이 움직이지 않게 하고 만약 움직였으며 곧바로 수정한다.타설후에는 양생방법과 탈형을 검토해야 하며 각각의 경우에 대책으로는양생방법첫째. 타설 후의 양생은 끊임없이 습윤상애가 유지되도록 한다.둘째. 직사일광, 한기 풍설의 영향이 있는 경우에는 특히 양생을 충분히 한다.셋째. 가설재의 취급등에 의한 진동, 충격을 억제한다.탈형첫째. 탈형시의 콘크리트 자중이나 외력에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강도인가를 확인 한다.둘째. 탈형시의 진동이나 충격이 없도록 주의한다.이렇게 위의 세단계에 걸친 사항들을 모조리 준수한다면 콘크리트의 균열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줄어들 수 있다. 즉 주위 새로 지어진 건물에서 균열이 일어나는 경우는 그 건물을 제작할 때에 콘크리트 타설에 관련하여 위의 세 가지 사항중 어느 한가지를 잘못한 것이기 때문이다.이제 마지막으로 콘크리트에서의 균열이 일어났을 때 그 보수방법을 알아보도록 하자. 균열 보수 방법은 회사마다 다르고 나라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건식, 습식, 단면 균열 보수로 나뉜다. 이를 하나씩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건식균열보수 방법1. 균열의 조사- 균열의 위치, 폭, 길이 및 진행상황 등을 체크하여 설계도면등에 기록한다.2. 하지처리- 와이어브러쉬, Disk Sander 등으로 균열 부위를 관찰해서 양호한 면이 드러나도 록 하며 기름기가 있으면 신나 등으로 깨끗이 제거한다.
1. 그리스 건축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는 유럽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고대 건축 문화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에게시대의 미노아와 미네케가 붕괴된 후 그리이스 문화가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B.C.1100년경부터 로마제국에 의해 정복된 B.C.30년까지, 서양문화의 근원인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를 배경으로한 고대 그리스에서 전개된 건축양 식이다 그리스 지역에서 풍부하게 생산되는 대리석을 기본재료로 사용하였으며 세련된 형 식을 가지고 있다.고대 그리스에서는 일찍이 공공건축이 발달하였으나, 개인주택은 간단한 것이었다. 일반적 으로 각 도시의 아고라(중앙 광장)에는 의사당·재판소 외에 스토아·시장·신전(神殿) 등 이 즐비하고, 신역(神域)에는 신전을 중심으로 보고(寶庫)·극장·스타디움 등이 배치되어 있었다.그리스건축의 중심은 신전이므로 그 역사도 신전 형식의 발전에 비례한다. 가장 오래된 것은 이미 기하학양식 시대에 미케네의 메가론에서 그 형식을 취한 것이 있었고, B.C. 7세 기에 접어들어 급속히 발달하였으며, B.C. 6세기가 되자 도리스양식·이오니아양식·코린 트식 양식이 확립되었다.도리아식의 대표적인 건축물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이라고 할 수 있다. 도리아식이 간 소하고 중후하여 남성적이라면 이오니아식은 동양의 영향을 받아 다소 여성적인 특징을 보 여준다. 그리고 코린트 양식은 잎사귀를 묶은듯한 화려한 기둥머리가 특징으로 도리아나 이오니아식보다 발생이 늦은편이다. 이 코린트 양식은 나중에 화려한 장식을 즐기던 로마 인들에게 전해져 좀더 복잡한 양식으로 발전된다.그리스 건축형태는 외부공간 구성요소로서의 건물기능을 중시하여 조작적 형태의 건물이 었다. 그리고 건축물의 공간미보다는형태미를 추구하여 건물외관에 치중 하였으며 주범을 기본으로 하는 비례의 조화와 균형을 바탕으로 한 형태미를 추구하였다.대표적인 건물로는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에렉테이온 신전, 올림피에온 신전 등의 신전 과 디오니소스 극장등이 있다.2. 로마건축로마 미술의 특질을 가장 적절하게 나타낸 것은 건축이다. 실용성을 중시한 로마 건축은 외관미를 추구한 그리스 건축과는 달리 거주성(居住性)에 기초를 두고 내부 공간을 충실히 하였다. 기둥과 들보로 이루어진 그리스 건축과 에트루리아의 분묘나 성문에 사용한 아치 형식 또는 궁륭식(穹式)을 채용함으로써 수많은 기념비적 건축물을 만들어냈다.건축양식으로서의 오더(order:고전 건축에서 형식 ·장식 등을 규정한 건축 양식의 규범) 로서는 그리스의 도리스양식·이오니아양식·코린트양식의 3양식에 덧붙여 새로 이오니아 식의 주두(柱頭)와 코린트식의 주두를 짜맞춘 콤퍼지트식, 그리고 에트루리아 건축에서 유 래한 토스카나식을 발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