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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업 계획서
    (전공분양 선택요인)저는 ‘경영 컨설턴트’가되는 것이 꿈입니다. 제가 이 꿈을 갖게 된 것은 어느 컨설턴트의 글을 본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 경제의 문제점에 대해 근원을 캐고 싶어 기업 컨설팅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 컨설턴트의 말과 함께 이 직업이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며 사회의 당면 문제에 관해 올바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경영학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중소기업이야 말로 제대로 된 컨설팅을 받을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싼비용 때문에 엄두도 내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므로 중소기업이야말로 제대로 된 컨설팅을 받을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싼비용 때문에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므로 중소기업을 위한 컨설팅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본교를 지원하게 된 것은 금년에 안양대학교의를 졸업한 형이 평소에 안양대학교에 경영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되어 안양대학교를 지원하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편입학이 허락된다면 저의 꿈을 달성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학업계획)첫째 단기적으로는 3,4학년 중에 그동안 읽지 못한 국내외의 성공한 기업의 성공원인을 공부도 하고 사회의 기초지식과 고양을 쌓도록 할 것입니다.또 제 꿈을 실현키 위한 기초 확립에 필수라고 생각되는 영어와 컴퓨터를 능숙하게 할 수 있도록 전문학원에 수강할 계획입니다.또한 시간을 쪼개어 여행경비를 스스로 마련하여 3학년 때는 무전여행을 하여 사회견문을 넓히도록 할 것입니다.둘째 전공과목 공부에 전념하여 4학년에 공인회계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목표을 설정하여 착실히 준비해 나갈 것입니다.또한 제가 가장 관심이 있는 마케팅의 업무와 외국기업들의 성공한 경영전략에 대해 공부를 할 생각입니다.셋째 장기적으로 졸업 후에도 2 동안 더하여 ‘공인 회계사’자격을 취득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졸업 후에는 외국의 우수한 경제 전문 대학원에 진확하여 좀 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 것입니다. 위의 계획을 기필코 달성하여 유능한 ‘경영컨설턴트‘가 된 후에는 중소기업을 위한 컨설팅에 참여하여 균형 있는 국가 경제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 싶습니다.(지원동기)어떤 조직을 잘 운영하여 내 자신의 자아성취는 물론 사회에도 기여하고 싶은 욕구, 경영을 할수 있는 자신감과 경영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세 가지가 제가 경영학에 지망하게 된 동기입니다. 안양대학교 경영학부에 입학하여 여러 교수님들의 가르침으로 열심히 공부한다면 능력 있는 경영인이 될 자신이 있습니다. 학업계획은 다음과 같이 세워 둡니다.우선 전 편입을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전 대학에서 배운 전공과목을 다시 공부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경영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에서부터 사람들과 잘 협력할 수 있기 위한 심리학 공부,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잘 대처하기 위해 총체적인 지식을 쌀을 수 있는 교양과목 수업에 열중할 것입니다.(학업 계획서)저는 어릴 때 부터 수학을 좋아하였고, 학급임원을 통한 적극적인 성격 때문에 순수학문 분야보다는 응용학문 분양인 경영학이 적성에 맞는 것 같아 경영학부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2003.04.24| 2페이지| 3,000원| 조회(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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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의 기초적은 봉건사회
    □ 장원제도주종제도로서 결합된 봉건적 지배층은 다 같이 전사인 동시에 토지소유자였다. 봉신이 주군으로부터 받은 토지를 봉토라고 하는데, 이러한 봉토는 대개 장원으로 조직·경영되었다. 계서제에 포함된 전사들은 모두 장원의 영주였다. 장원은 보통 촌락 단위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경우에 따라 한 장원에 두 개 이상의 촌락이 포함되는 경우도 있고, 큰 촌락일 경우 두 개 이상의 장원으로 구분되기도 하였다.장원은 중세사회의 일상적인 현실생활이 영위되는 기본단위였다. 장원의 중심부에는 장원을 관리하는 영주관이 있으며 영주관과 인접하여 교회와 제분소·제빵소·창고 등의 시설물이 있다. 그리고 농민의 집들은 도로변에 나란히 모여 있으며 그 주변에는 경작지와 공동목장이 있다. 경작지는 영주 직영지와 농민 보유지로 이분되어 있었는데, 대개 영주 직영지는 예속 농민들의 부역 노동으로 경작되었으며, 보통 삼포제로 경작하였다. 삼포제란 토지를 춘경지, 추경지, 휴한지로 나누어 3년에 한번씩 농토를 휴한지로 남겨두는 것이다. 즉 한번 곡물을 수확한 밭의 비옥도는 현저히 떨어지므로 몇 년 동안 경작하지 못하고 목초지로 이용하는 것이다. 영주 직영지는 보통 경작지의 3분의 1 또는 2분의 1 정도였다. 토지는 넓은 땅덩어리가 아니라 지조(地條: 띠 모양의 좁고 긴 땅 조각)로 이루어졌는데, 영주의 지조는 농민 보유의 지조와 섞여 있었다. 각 지조의 경계에는 밭두둑만 있을 뿐 울타리가 없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넓은 들판은 가축을 풀어 놓는 방목장이 되었다.1. 서론유럽세계는 14∼17세기에 걸쳐 대변혁을 경험하였다. 14∼17세기의 변화가 없었다면 18세기말에서 19세기에 걸친 산업혁명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시기의 변혁을 간단히 요약하면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이행문제는 오랫동안 Brentano의 상업화론이 통념처럼 받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1946년 Mourice Dobb의 『Studies of The Development in Capitalism』이란 생산양식도 14∼17세기에 걸쳐 서서히 붕괴하였으며, 새로운 생산양식 즉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넘어갔다. 이 시기에 이르러 봉건적 생산양식은 그 생산성에서 한계를 드러내었고, 귀족과 농민간의 계급투쟁도 본격화된 시점이다.대체로 중세사회를 특징짓는 장원제도는 붕괴하고 고대세계의 도시와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도시가 발달하였으며, 신항로의 발견이후 상업 또한 크게 발전하였다. 사회의 계급구조에 있어서도 기존에 "귀족-농민"이라는 두 계급사이에 새로이 "bourgeosies(gentry)"라는 새로운 계급이 끼어들게 되었다. 영국의 경우 지주층은 변혁이전이나 이후에나 같은 지주계급이었으나, 이행이전에는 전통적인 귀족이었던 반면 이후에는 새로이 성장한 gentry로 될 정도로 이행의 영향은 커다란 것이었다.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지역마다 똑같지 않으며, 특히 서유럽과 동유럽의 차이는 주목할만하다(물론 같은 서유럽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변화를 겪은 것은 아니다). 서유럽 중세사회가 자본주의시대로 넘어가던 같은 시기에 동유럽에서는 오히려 농노제가 강화되어가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프러시아의 경우 Junker에 의한 Gutsherrschaft경영의 형태를 띠게 된다. 이 Gutsherrschaft는 상업적 곡물농업의 성격을 띠지만, 그것은 자본주의의 자연스런 변화가 아닌 폭력과 강제에 의한 봉건시대의 농노제가 더 강화되어 성립된 것이었다.이러한 동 서유럽의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왜 서유럽에서 자본주의로 이행이 천천히 일어날 때에 동유럽에서는 반동적인 개혁으로 농노제는 강화되었는가? 본고에서는 두 지역의 발전의 경로의 차이를 살펴보고자 한다.2. 본론2.1. 15세기이전 서유럽의 사회경제적 변화장원의 구조는 농경지와 목초지로 크게 구분할 수 있으며, 농경지는 영주직영지와 농민보유지로 구분된다. 영주직영지는 농민보유지의 보유자의 부역노동(賦役勞動)으로 경작되고 있었다. 농민의 지위는 고대의 노예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우선 그들은 개인재산을 가질수 있었다. 농기구와 가. 전반적으로 부족한 노동력에 비해 광대한 토지, 부족한 노동력을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농업기술의 미발달은 저생산성의 주요한 원인이었다. 영주층은 이러한 저생산성을 경제외적인 방법으로 농민들을 속박하여 가혹한 수탈을 함으로써 보완하고자 하였다. 전반적인 봉건적 부과조나 십분의일세등은 영주와 농노간에 예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확인시켜주는 수단이었다.11세기 이후 중세유럽은 생산력면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다. 부분적인 농업기술의 발전이 있었지만, 중요한 요인은 중세 초에 발명된 농기구와 농사기술의 보급, 급격한 인구증가, 그리고 경작지의 계속적인 확대에 기인한 것이었다. 또한 이 시기에 이르러 기존의 부역노동은 점차 납부하기 쉬운 현물지대와 화폐지대로 바뀌었는데, 귀족의 사치품에 대한 수요증가로 부역노동보다 품을 살 수 있는 돈을 만들 수 있는 현물지대나 화폐지대를 더 원하게 된 것이다. 또한 도시와 신개간지의 유혹도 귀족으로 하여금 부역노동을 경감시키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점점 영주직영지는 사라져 갔으며, 농민의 보유지는 늘어가고 있었던 것이 당시의 상황이다.고대세계의 몰락과 더불어 사라졌던 상업역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중세초기에는 상당히 침체되어 있었으나, 11세기 이후 다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기 시작했다. 봉건제가 안정되자 다시 상업이 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때의 무역은 주로 원격지무역을 중심으로 북부Italy, 한자동맹등 도시들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해상무역이 중심이었다.그러나 이 시기의 상업은 전근대적인 성격이 강한 것이었다. 첫째, 취급상품의 다수가 장원농민들의 생산물지대나 부역노동의 수확물, 또는 수공업자길드의 제품이라 산업발전의 역동력이 아닌 봉건제 생산양식에 기생한다는 점, 둘째, 사회적 분업과 시장이 미발달한 상태에서 상품을 부등가로 교환하여 이윤을 취하는 것, 셋째 상권의 확대와 상업활동의 확대는 권력자와 정경유착으로 이룩되었다는 점등이다.2.2. 15∼17세기의 유럽경제의 변화11∼13세기에 걸쳐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주빈발해졌다.14세기에 발행한 흑사병은 이러한 위기를 더욱 심각한 국면으로 치고 들어갔다. 흑사병은 당시 유럽인구의 ⅓을 감소시켰는데, 영국남부지방 같은 경우는 인구의 절반이 사라졌다.인구의 감소는 곧 노동력의 감소를 의미한다. 이것은 농업기술이 미발달한채 노동력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던 당시 농업에는 치명적인 결과이다. 살아남은 농민들은 자신들의 보유지를 경작하기 바빠졌으며, 空閑地는 늘어갔다. 영주들은 자신들의 직영지를 더 이상 직접 경작할 수가 없게 되었다. 경작자를 찾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노동임금은 상승하였으며, 인구감소에 따른 식량수요감소는 곡가의 하락을 가져왔다.영주들은 이러한 노동력부족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서 강제로 임금을 흑사병 발생 이전으로 동결하고 농민들과 노동자들의 이동을 금지하였다. 정부는 이것을 또한 법률로서 뒷받침하였다. 이것은 농민과 수공업자의 커다란 반발을 불러왔으며, 이러한 반발은 농민봉기의 형태로 표츌되었다. 프랑스의 자크리의 난 같은 경우 농민들만이 아니라 도시민들도 봉기에 가담하고 있었다. 이들 농민봉기는 비록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러나 이 때를 분수령으로 서유럽에서 농노제는 사라져갔다. 그러나 농노제붕괴이후 변화의 양상은 약간씩 다르다.영국의 경우, 영주들은 곡가하락, 지대하락, 임금상승, 농민들의 반발에 따른 노동력확보불능등으로 현금지대를 받고 직영지를 임대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14세기말부터 시작된 이러한 경향은 15세기에 이르러 거의 완성되었다. 영국의 영주들은 空閑地를 관습보유지를 주인이 없는 틈을 타 자신의 직영지에 보태어 차지농에게 임대하고 다시 차지농은 임노동자를 고용하여 경작하는 방식으로 되었다. 영국에서는 이 시기에 농민사회내에 급격한 사회분화가 일어나, 앞서 말한 차지농이 gemrty와 yoeman의 중간계급과 숱한 임노동자가 생긴 것이다.프랑스의 경우도 초기붕괴과정엔 영국과 다를 바가 없어, 프랑스의 귀족들도 영국과 비슷한 농업경영합리화를 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점차 귀족을 약화 "시초축적"이다.생산자와 생산수단이 분리되는 과정은 앞서 자세히 언급하였으나, 거기에 한가지 덧붙인다면, "울타리치기운동"이다. 모직물공업이 번창하자, 수익좋은 양모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토지에 울타리를 치는 것이다. 이때 결정적으로 농민들은 토지에서 강제로 분리가 되었으며, 토지를 떠나야 했던 것이다. 이로써 영국 농촌은 빈농과 중농, 부농(차지농)으로 급격한 분화를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농업부문의 새로운 계급구조는 지주와 차지농의 공생관계를 그 특징으로 한다. 지주는 종래와 달리 차지농이 생산을 더 많이하면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으므로 더욱 보장해주었으며, 차지농은 차지농대로 많은수확을 거두면 거둘수록 자신에게 많은 이윤이 남으므로 더욱 사실상 이들 차지농에게 유리한 처지였던 것이다.이밖에 프롤레타리아가 형성되는 또 다른 측면은 소생산자내에서 경제적 분화이다. 특히상품생산 및 사회적 분업이 발전하고 소생산자 상호간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이같은 분화는 더욱 촉진되었던 것이다이행기유럽에서 중요한 것은 농촌공업의 발전이다. 중세사회에서 수공업생산이 도시에서만 이루어졌다. 그러나 16세기에 들어오면서 배타적으로 변한 장인들은 더 이상 장인의 수를 늘릴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직인출신 장인들(small master)들은 좀 더 자유로운 농촌으로 향했고, 때마침 농촌의 자영농민층 중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있던 농촌부업으로서 수공업이 결합함으로써 농촌공업이 광범하게 전개되었던 것이다.초기에는 농촌공업은 가내공업으로 운영되었으나, 점차 '선대제(putting-out system)공업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대체로 도시직물업자들의 지배하에 있었으나, 농촌수공업자 자신의 경영확대에서도 전개될 수 있었다. 농촌매뉴팩처였지만 그들은 임노동자를 고용하여 운영하고 있었다.대체로 농촌메뉴팩처는 일부 공정을 집중했지만 그밖의 다른 공정에서는 주변의 가내수공업자들과 선대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 농촌공업중에서 성장한 메뉴팩쳐 또한 작업장의 집중과 선대제적 분산의 두 경영방
    경영/경제| 2003.05.04| 4페이지| 1,000원| 조회(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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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사] 초기자본주의사회 경제에 대하여
    “ 초기 자본주의 사회 ? 경제에 대하여 “[전 자본주의 사회를 지식 경제로 보고 설명 하였습니다. 이유는 지식경제로 인한 사회 ? 경제의 발달의촉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를 지식경제로 설명하게 되었습니다.]1750-1900년 사이 150년 동안 자본주의와 기술은 이 지구를 정복하고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였다. 자본주의라든가 기술혁신이라는 말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두 가지 모두 동서양의 역사에서 보편적이었고 여러 시대에 걸쳐 반복되는 현상이었다. 이 두 가지가 새롭게 부각된 것은 그것들이 확산되는 속도 그리고 문화와 사회계층과 지리적 제한을 넘어 뻗어나는 능력이었다. 과거 역사의 자본주의를 현대적 "자본주의"와 "시스템"으로 변화시킨 것은 속도와 범위 바로 그것이었다. 속도와 범위가 기술진보를 "산업혁명"으로 전환시켰다.이 전환은 사회 ? 경제에 대한 지식의 의미에 근본적인 변화에 의해 촉진되었다. 서양에서도 동양에서도 지식은 항상 어떤 존재하는 사물에 대해 적용되는 것으로 모두 생각하였다. 그것이 어느 순간 갑자기 행동에 적용되게 되었다. 지식 그 자체가 자원이 되고 효용이 되고 말았다. 과거에는 지식이 언제나 사적 자산이었다. 어느 한 순간에 지식은 공공의 자산이 되어 버린 것이다.자본주의 지식의 의미 변화의 첫번째 국면인 100년 동안 지식은 작업도구와 제조공정 그리고 제품에 적용되었다. 이것이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것은 마르크스가 말하는 "소외"와 새로운 계급과 계급투쟁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공산주의를 잉태하였던 것이다. 1880년경부터 시작하여 제2차 세계대전 무렵 절정기에 이른 두번째 국면에서 새로운 의미의 지식이 작업 그 자체에 적용되었다. 이것은 생산성 혁명(Productivity Revolution)으로 연결되었고, 그 후 75년만에 생산성 혁명은 프로레타리아들로 하여금 소득이 거의 상위권에 드는 중산층 부르주아로 바꾸어 놓았다. 이리하여 생산성 혁명은 계급투쟁과 공산주의를 패배시켰던 것이다.마지막 국면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시작되었다. 지식이 지식 그 자체에 적용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관리혁명(Management Revolution)이다. 지식은 지금 빠른 속도로 자본이나 노동과 나란히 하나의 생산수단이 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지식사회"라고 부르기에는 시기상조일지 모른다 - 확실히 앞질러 가는 것 같기도 하다 -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까지 겨우 지식경제만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확실히 "탈자본주의" 사회이다.자본주의는 그것이 어떤 형태의 것이든 서양과 동양에서 여러 시대에 걸쳐 출현과 재출현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 전에도 급속한 기술적 발명과 혁신이 있었으며, 그런 현상은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서양과 동양 어느 곳에나 있었던 일로서 그 가운데 많은 것들이 18세기 후반 내지 19세기 초반에 있었던 근본적인 변화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다른 기술적 변화를 초래하였던 것이다.지난 250년간의 기술발전과 관련하여 전례가 없었을 뿐 아니라 독특한 점이라면 그것들의 속도와 범위일 것이다. 과거 역사에 나타나는 모든 자본주의 (산업혁명 이전의 자본주의)가 그랬던 것과 같이 사회의 한 요소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혁명 이후 현대의 "자본주의"는 그 자체가 사회로 되었다. 지구상의 일부 작은 지역에만 - 그 전에는 항상 그러했다 - 한정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는 1750-1850년 사이 역사적으로 보면 짧은 기간인 100년 동안에 서북부 유럽 전체에 퍼져나갔다. 그 후 50년 동안에 걸쳐 우리 인류가 사는 지구 구석구석에 까지 전파되어 나갔다.과거의 모든 자본주의는 사회의 극소수인 일부 계층에만 한정되었다. 귀족, 지주, 군인, 농부, 전문직업인, 장인, 노동자들까지도 자본주의와 거의 관련이 없었다."자본주의" (역사상 과거의 자본주의와는 달리) 는 그것이 퍼져나간 곳이면 어디든지 곧바로 사회의 모든 집단에 스며들었으며 또 변화시켰다. 그 옛날 구대륙에서도 새로운 도구, 새로운 제조공정, 새로운 원료, 새로운 농작물, 새로운 기계 - 지금은 우리가 "기술" - 는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었다.예를 들자면 13세기에 발명된 안경이 보급된 것처럼 빨리 보급된 현대의 기술은 거의 없었다. 1270년경 영국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였던 베이컨(Roger Bacon, 1214-292)의 광학실험에서 파생된 노인용 독서 안경은 1290년 아비뇽의 교황청에서 사용되었으며, 1300년경 카이로 술탄의 궁정에서 사용되었고, 1310년 이전에 원 나라의 황궁에서도 사용되었다. 19세기의 발명품 가운데서는 재봉틀과 전화기만이 그 정도로 빠르게 보급되었다.그러나 초기의 기술적 변화는 거의 예외 없이 하나의 기능 혹은 하나의 용도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베이컨의 독서용 안경이 다음 단계인 근시안경으로 발명된 것은 그 후 200년이나 - 1500년대 초에 와서야 - 걸렸다. 도공의 물레는 기원 전 1500년경 지중해 연안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요리를 하고 물과 음식을 담아놓기 위한 항아리들이 집집마다 있었다. 그러나 도공이 항아리를 만드는 원리가 여인네들이 실을 뽑는 물레로 응용되기 시작한 것은 서기 1000년경이 되어서였다.비슷한 다른 예로서 옛날에는 한낱 장난감에 지나지 않던 풍차가 서기 800년경 재설계되어 하나의 진정한 기계 - 당시 기준으로는 완전 '자동화"된 것인데 - 로 만들어졌는데 그 원리를 범선에 응용하게 된 것은 그 후 300년이 더 흘러 1100년경이 되어서였다. 그 때까지 모든 범선들은 노를 저어 움직였다. 비록 바람을 이용하여 배를 움직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것이고 바람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불 때만 가능했다. 배를 움직이게 하는 돛은 풍차를 돌리는 날개와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순풍이나 역풍에 관계 없이 범선을 항행하게 하는 돛의 필요성은 오랫동안 느끼고 있었다. 풍차는 프랑스 북부지방 또는 지금의 베네룩스 3국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재설계되었는데 이 지방은 범선과 항해술에 관해서는 모든 것을 익숙하게 알고 있었다. 또 지하수를 퍼올리는 펌프 기술과 곡식을 빻는 기술을 농토와 해안에서 이용하게 되기까지는 수 백년이 걸렸다.그러나 산업혁명 기간의 발명품들은 즉각 국경을 넘어 전파됨으로써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수공업과 산업에 적용되었다. 그 발명들은 대번에 "기술"로 인정되었다.1765년에서 1776년 사이 와트(James Watt, 1736-1819)가 재설계한 증기기관은 원가가 싼 동력을 제공하게 되었다. 와트는 그의 생산적인 일생을 통하여 오직 한 가지만의 목적에 관심을 두었다. 즉 18세기 초 뉴코멘(Thomas Newcomen, 1663-1729)이 발명한 증기기관을 이용하여 광산에서 물을 뽑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의 한 철강기술자는 와트가 새로 설계한 증기기관을 용광로에 공기를 불어넣는데 사용할 생각으로 와트가 만든 두번째 증기기관을 구입했다. 그리고 와트의 동료인 볼턴(Matthew Boulton, 1728-1809)은 곧장 증기기관을 모든 종류의 산업공정에 - 특히 당시 가장 큰 사업이었던 섬유산업은 물론 - 동력 공급원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판촉활동에 나섰다. 그로부터 35년 후 미국인 풀턴(Robert Fulton, 1765-1815)은 뉴욕의 허드슨강에 최초로 기선을 띄웠다. 또 20년이 더 지나자 증기기관은 바퀴를 단 자동차로 태어났다. 그리고 1840년경에 이르러서는 - 적어도 1850년까지는 - 증기기관은 유리제조 공정에서부터 인쇄공정에 이르기까지 온갖 제조공정들을 모조리 바꾸어 놓았다. 증기기관은 육로와 해상에서 원거리 수송을 가능하게 하였고, 농업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그때쯤 되어서 증기기관은 테베트나 네팔 그리고 열대 아프리카 깊숙한 곳을 제외하고 지국상 거의 모든 곳에 침투하였다.19세기의 사람들은 - 아직도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데 - 산업혁명이 "생산양식"(마르크스적인 용어로 표현하여)을 바꾼 최초의 시대라고 믿었고 생산양식의 변화는 사회구조를 바꾸어 새로운 계급을 만들고, 자본가와 프로레타리아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타당하지 않다. 기원 후 700년과 1100년 사이 유럽에서는 기술의 변화로 인해 두 개의 새로운 계급이 태어났는데, 하나는 봉건 기사이고 다른 하나는 도시의 수공업 장인이었다.기사는 말등자(말 탄 사람이 발을 딛게 하는) - 서기 700년경 중앙 아시아에서 발명되어 전파된 것 -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으며, 장인은 수차와 풍차를 진정한 기계로 재 고안하여 고대하회가 동력원으로 사용하던 인간의 근육 대신에 최초로 생물이 아닌 동력, 즉 물과 바람을 이용하게 된 덕에 생겨난 것이었다.
    경영/경제| 2003.05.04| 3페이지| 1,000원| 조회(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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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통경제학] 교통수요의 결정요인과 교통수요 탄력성
    ▷ 목 차 ◁Ⅰ. 교통수요의 결정요인 4가지 [ 1. 소득 2. 관습 ? 의식 3. 교통서비스의 질 4. 가격 ]Ⅱ. 교통수요의 탄력성- 결합수요로서의 교통수요 탄력성Ⅲ. 수요의 가격탄력성을 측정하는 방법[ 선탄력성, 호탄력성 및 점탄력성 ]- 쉽게 수요의 가격 탄력성을 설명하자면Ⅳ. 교통수요 탄력성의 결정요인▣ 교통수요의 결정요인 4가지1. 소득교통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우선 잠재적인 수요자의 소득, 소득수준이 올라가면 쇼핑 및 레저생활횟수나 거리가 현저하게 늘어날 것이다. 또한 소득수준의 향상은 단지 교통수요를 증대시키는 데에 그치지 않고 교통기관의 이용패턴을 변화시키는 일면도 지니고 있다.2. 관습 ? 의식사람들의 관습이나 의식은 나라에 따라 또는 지역에 따라 달라지며, 일단 정착이 되면 꽤 오랫동안 변화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만일 관습이나 의식에 변화가 생기게 되면 다음과 같은 파급효과가 생기게 된다. 우선 생활과 생활패턴에 변화를 가져와서 궁극적으로는 교통행동에 영향을 미친다.3. 교통서비스의 질교통서비스의 이용자는 사람이나 물건의 이동에 있어서 안전성이나 속력 등 다양한 요구를 가지고 있다. 이용자 측의 여러 가지 요구의 내용이 교통서비스의 질적 속성을 형성하고 있다. 질적 속성에는 보급성, 대량성, 연관성, 안전성, 정확성, 신뢰성, 편리성 등을 들을수 있다. 나가서는 주로 여객운송에 관계되는 질적 속성으로서 쾌적성, 운행횟수, 친밀성, 프라이버시 등을 더 할 수가 있다. 그리고 교통서비스의 공급자 측에 대한 교통시스템의 질적 평가는, 효율성 혹은 생산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진다.4. 가격일반적으로 운임이 상승과 하락하면 교통서비스에 대한 수요량은 감소나 증가하게 된다. 그 이유는 운임이 상승이 이용자에게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첫 째로 가격이 상승하면 주어진 예산 하에서 소비를 하는 소비자의 예산액(실질소득)이 감소한다. 이를 소득효과라 한다. 둘째로 전형적인 소비자는 통상주어진 예산액으로서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재화를 보다 많이 소비하며, 가격이 보다 높은 재화를 적게 소비하려는 경향이 있다. 또 만일 가격이 보다 높은 재화를 적게 소비하려는 경향이 있다. 또 만일 가격이 상승하면 그 재화를 다른 재화로 대체하도록 유도하게 된다. 이것을 대체효과라 한다.▣ 교통수요의 탄력성- 결합수요로서의 교통수요 탄력성교통서비스에 대한 수요도, 다른 생산서비스와 마찬가지로 결합수요라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재화는 소비자의 도착되어야 비로소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의 재화를 최종생산물이라 하며, 생산지에 있어서 완제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완제품과 교통서비스가 서로 결합하여 최종생산물이 되고, 이 최종생산물에 대한 수요는 완제품과 교통서비스를 위한 파생수요를 생기게 하는 것을 말한다.즉 최종생산물의 수요곡선으로부터 도출된 한계수입곡선과 완제품의 공급곡선과의 차에 의해 표시된 것이라 말 할 수 있다. 파생 ? 결합수요 일반에 대하여 적용되는 원칙으로 파생 ? 결합수요곡선은 최종생산물의 한계수입곡선으로부터 다른 결합생산물의 공급곡선을 빼내어 줌으로써 얻어진다. 이제 파생 ? 결합수요로서의 교통수요의 탄력성에 설명하자면 수요의 가격탄력성, 소득탄력성, 교차탄력성의 개념은 교통수요의 탄력성을 설명하는 데에 매우 유용한 도구이다. 미샬은 파생 ? 결합수요의 가격탄력성을 지배하는 네가지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① 그 요인이 최종생산물의 생산에 있어서 기본적인 재화일 것② 최종생산물에 대한 수요곡선이 비탄력적일 것③그 요인이 최종생산물의 총비용에 차지하는 비중이 적을 것④다른 요인의 공급곡선이 비탄력적일 것▣ 수요의 가격탄력성을 측정하는 방법 [선탄력성, 호탄력성 및 점탄력성]탄력성(또는 彈力度)의 개념은 수요ㆍ공급의 분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수요의 탄력성이란 가격이나 소득 등 수요의 결정요인들의 변화에 대하여 수요량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관한 반응 또는 감수성의 정도를 측정한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탄력성은 수요의 결정요인 중 한 변수의 변화율이 수요량의 변화율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정도(또는 强度)를 나타낸 것이다. 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수요의 탄력성은 종속변수의 변화율을 독립변수의 변화율로 나눈 것이다.수요의 탄력성(ε)=일반적으로 탄력성은 각 상품단위에 기초를 두어 계산을 한다기보다는 변화율(%) 또는 변수 사이의 상대적인 조건에 바탕을 두어 계산하고 있다. 수요의 가격탄력성의 경우 상품가격에 작은 변화가 생겼을 때 그 변화율(%)에 대한 수요량의 변화율(%)의 상대적인 크기를 측정한 것이다.☞ 선탁력성: 선탄력성은 탄력성 측정을 위해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으로서 수요량의 변화율을 가격의 변화율로 나눈 값이다.가격과 수요량이 초기상태에서 새로운 상태( P, Q )로 변화되었다면 선탄력성의 관계는또는이다.여기에서는 가격변화가 연구범위에 있어서 수요함수와 선형관계임을 가정하고 있다. 따라서 선탄력성방법은 수요함수가 원점에 대해 ┻형 곡선이라는 가설과 상충된다. 직선수요함수의 큰 결점은 점탄력성의 급격한 증가로 수요가 급격히 감퇴되어 최대수입점이 실제의 경우보다 훨씬 빨리 도래하는 것이다.직선수요함수에 있어서 초기상태에 대한 가격의 변화율을 p, 수요량의 변화율을 q로 표시하면 운행수입(R)은R = (1+p)(1+q)R =여기서 운행수입이 극대가 되는 점은이고 또 운행수입의 변화가 없는 점은이다.☞ 호탄력성: 호의 가격탄력을 계산하기 위하여 수요곡선상의 임의의 점A와 점B의 가격(P)과 수요량(Q)이 있다고 가정하면, 어떤 재화의 가격이 변화할 때의 수요량에 대한 반응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다.두 탄력성계수 사이에는 어느 점을 기준으로 했느냐에 따라 그 값이 다르다. 즉 수요곡선상의 A점에서 B점으로 이동함으로써 발생되는 변화율(%)은 B점에서 A점으로 이동할 때의 변화율(%)과 다르기 때문이다. 가격과 수요량이 각각에서로 이동하는 데 따른 백분율의 계산에서 어느 것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수요곡선상의 동일한 구간의 경우라 하더라도 두 개의 상이한 값이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수정된 공식을 사용한다. 수정된 공식은 가격의 변화율을 구하기 위하여 두 가격의 평균값을 이용하며, 또한 수요량의 변화율을 얻기 위하여 두 수요량의 평균값을 사용한다. 수정된 공식은 다음과 같다.단, 가격탄력성의 부호는 수요의 법칙에 의해 항상 (-) 이므로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것은 탄력성계수 그 자체가 절대값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경영/경제| 2003.05.04| 4페이지| 1,000원| 조회(1,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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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업아이템 성공전략 및 분석
    ?원래 악세사리 전문점의 성공사례에 대해 자세히 조사 하려고 하였으나, 악세사리의 성공사례가 너무 간단히 나와 있어, 캐주얼의류점의 성공사례까지 조사하게 되었습니다.-목록-? 악세사리전문점 성공사례시장상황 창업포인트성공사례? 캐주얼의류점 성공사례시장상황 창업포인트추천입지 사업운영법투자내역 수익성예측주의사항 성공사례▒ 악세사리 전문점시장상황14K, 18K GOLD 전문 프랜차이즈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다.대학가와 역세권을 중심으로 한 상권에만 기본적으로 7~8개씩 포진해있다.그러나 장사가 안된다면 무턱대고 이렇게 점포만 늘어날 리가 없다.제 작년에 호황을 누렸던 찜닭 체인점이나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이 반짝하다 들어가는 것과는 달리 주얼리 업계는 귀금속 전문점에서 좀더 저렴한 14K, 18K 전문매장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90년대 초반 로이드, 하우디(現 에꼬미) 등이 패션액세서리 전문점으로 프랜차이즈 영업을 시작한 이후 94년 쥬얼리아, 96년 미니골드, 98년 줄리엣 등이 시장에 진입했고 최근 2년 간 골드클릭, 시샘, 피아치, 파울로 델룽고, 화이트플러스 등이 잇따라 참여하면서 지금까지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창업포인트 (상권 조사)패션 주얼리 전문점의 유망입지는 신세대 유동인구가 많은 대학가나 도심 번화가, 지하철역 주변이 유리하다. 신촌, 강남, 종로 등에 매장 수가 급격히 늘고 있음을 단적인 예로 들 수 있겠다.작년말 샤비쥬 건대점 오픈 입지를 맡았을 때도 매장의 규모와 상관없이 샤비쥬 직영점의 상권분립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을만한 곳으로 물색했다.샤비쥬가 한참 크고 있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 눈에 띄어 홍보효과도 낳을 수 있는 입지로. 그러기 위해서 우선 주 타겟이 많이 분포한 대학가를 찾았고, 강북 역세권 중에서 상권이 가장 큰 건대 정문 맞은 편의 전면이 넓은 코너자리로 선정했다.그러나 이런 입지 외에도 패션 주얼리 전문점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주요 고객인 신세대와 젊은 여성층을 끌어들이는 독특한 전략이 필요하000만원이 소요된다.보증금 1,000만원, 초도 물품 비 4,200만원, 인테리어 비 1,500만원, 비품구입비 300만원 등이 구체적인 내역이다. 7평에서 10평 정도가 이들의 표준점포 평수이며, 7평을 기준으로 점포 임대 보증금까지 포함한다면 1억2,000만~1억5,000만원 가량 필요하다.하루 평균 매출액은 80만원정도, 월매출액은 2,400만원 정도다. 평균 마진율 40% 이상 적용하면 매출이익은 960만원이 된다. 여기서 인건비 120만원, 임대료 100만원, 관리비 40만원을 빼면 700여 만원이 순이익으로 두드려진다.앞으로의 주얼리 시장에 대해서 감히 전망을 해본다면,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돈이 되는 장사라 하여 매장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브랜드를 생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너무나 많아지고 있다.이렇기에 주얼리 매장을 단정적으로 포화상태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체적인 주얼리 매장의 포화 상태라기 보다, 주요 상권에 어마어마하게 몰려있는 매장들이 걱정을 안기고 있는 실정이다.아직까지 활성화 되고 있지 않은 아이템이나 많이 생성되고 있는 아이템이나 모두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지만 그러한 장점을 어떻게 강점으로 만들고 단점을 어떻게 장점으로 되살릴 수 있을지는 오로지 창업하는 사람의 손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캐주얼의류점시장상황한국 의류시장은 고급, 중급, 저급시장으로 나뉜다.고급시장은 국내 디자이너브랜드, 해외 수입브랜드, 중견의류기업 고급브랜드 등이 차지하고 있다. 중급시장에서는 캐주얼브랜드, 스포츠브랜드, 유아 및 아동 의류 브랜드 등이 중심이다.저급시장은 재래시장과 보세점 밀집가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캐주얼의류는 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국내 소비시장이 확대되고, 전반적으로 국민들의 여가활동이 늘어나면서 급속한 성장세를 나타냈다. 대표적으로 이랜드는 87년 이화여대 앞의 조그만 보세옷가게에서 출발했지만 90년대 초반 들어 국내 최대의 캐주얼의류업체로 부상하기도 했다.캐주얼의류점은 IMF 구제금융으로 촉발된 급속한 소비침체체의 브랜드 의류, 동대문 일대를 중심으로 공급되는 독립 캐주얼의류 등으로 나뉜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중반까지는 국내업체의 브랜드 의류가 시장을 주도했다. 대표적으로 이랜드, 삼성물산의 카운트다운, 나산실업의 메이폴, LG패션의 티피코시 등을 꼽을 수 있다.그러나 93년 들어 국내 브랜드간의 치열한 경쟁과 대량생산에 따른 공급 과잉으로 수익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90년대 중반에는 수입 브랜드가 강세를 보였다. 베네통, 소톰 오브 런던 등 서구 브랜드, 지오다노와 보시니 같은 홍콩 브랜드 등이 밀물 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수입 브랜드는 IMF 구제금융 이후 그 기세가 꺾이고 말았다.동대문 일대의 독립 캐주얼의류는 제조업체의 영세함으로 시장 경쟁력이 약한 단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IMF 구제금융 이후에는 해외 디자인을 도용한 소량 생산과 저렴한 가격 공세로 신세대 수요층의 구매욕구를 충족시키는 호기를 맞고 있다.창업포인트장사할 줄 아는 사람은 의류점을 운영한다는 말이 있다. 의류사업은 복잡한 유통구조를 알아야 하고, 상품구성을 비롯해 고객에 대한 판매술을 터득해야 성공할 수 있는 까다로운 사업이지만 이를 통해 사업의 묘미를 느끼게 해주는 사업 다운 사업이기도 하다.패션에 민감한 사업인 만큼 위험성도 적지 않지만 반대로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상품력이 뒷받침되면 큰 돈을 벌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조그만 옷가게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한 예가 국내의 이랜드, 유럽의 베네통이었다.캐주얼의류점의 또 다른 장점은 이 사업이 대표적인 입지사업이라는 데 있다. 10 - 20대 이동하는 길목을 장악하면 고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업인 셈이다. 따라서 수익성이 높은 캐주얼의류점엔 언제나 프리미엄이 붙기 마련이다.특히, 목 좋은 캐주얼의류점의 경우 권리금이 1억 원을 쉽게 넘는다. 사업 이득과 함께 부동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고부가가치의 사업인 것이다. IMF 구제금융 이후 이러한 경향은 줄어들었지만 독특한 상품력으로 신세대를 끌어들이는 점포의 경우 여 한다첫째, 의류점 밀집가를 노려야 한다. 의류는 소비자가 제품을 비교한 후 선택, 구매하는 선매품이기 때문이다.둘째, 캐주얼의류의 목표고객인 16세 - 25세 수요층의 유동인구가 형성되어야 한다.셋째, 경쟁 상대를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만약 중저가대의 브랜드의류점을 창업한다면 성신여대상권과 같은 독립형 편집매장이 몰려있는 곳은 피하는 게 좋다.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기 때문이다.사업운영법캐주얼의류점은 디자인과 색상에 있어서의 특성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고객은 한 상품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점포의 이미지를 통해 유입된다. 고객이 상품을 고르는 기준은 상품의 디자인, 색상, 가격, 품질 등에 의한다.브랜드의류가 강세를 보일 때는 디자인과 색상을 중시했지만 최근엔 가격에 대한 만족도 함께 따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 만큼 실용적인 소비패턴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캐주얼의류의 품목은 셔츠, 티셔츠, 스웨터, 재킷, 바지, 치마 등으로 나뉜다. 일반적인 캐주얼의류점의 품목비율을 보면 셔츠 및 티셔츠류 40%, 스웨터 및 재킷류 40%, 바지 및 치마와 같은 하의류 20% 등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셔츠, 티셔츠, 스웨터, 바지 등에 대한 비율이 높다. 한국 여성의 경우 바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상품을 교체하는 시기는 봄 1회, 여름 2회, 가을, 겨울 2회 등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시즌 한 달 전이 적절한 교체시기이다. 1년 동안 판매하는 상품의 스타일 수는 1,000여 가지에 달하는데 실질적으로 판매율이 높은 스타일 수는 30 - 50%에 이른다. 판매율이 저조한 스타일이라해도 구색을 갖추기 위해 필요하다.시즌이 지나면서 할인판매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판매방법이다. 재고품을 처분하고, 신상품을 들여오기 위해서라도 상품 회전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 할인판매는 전체 상품을 대상으로 하거나 일부 품목에만 적용할 수 있다. 일부 품목을 할인판매하는 경우엔 점포 앞 공간을 이용해 점두 판매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점두 판매는 가격으로 소비대 앞, 성신여대 앞 등에서 1층 10평 규모의 점포를 얻으려면 점포 보증금과 권리금을 합해 최소한 1억 5,000만 원이 있어야 한다. 거품이 많이 빠진 서울 지구중심, 경기도 주요도시 중심상권 등에선 1층 10평 규모의 점포를 7,000만 원 안팎으로 임대받을 수 있다. 이들 지역에선 업체 직영의 브랜드 의류점이 폐업한 경우 권리금 없이도 점포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캐주얼의류점의 판매를 좌우하는 요소는 인테리어와 디스플레이이다. 의류점 인테리어비용은 평당 150만 원 정도로 계산할 수 있다.10평이라면 1,500만 원 수준이다. 이 금액도 과거에 비하면 절반 이상 깎인 금액이다. 여기에 간판을 비롯한 팝사인, 판매시설, 판매촉진을 위한 소도구 등을 마련하는 비용까지 합하면 점포개발비용으로 2,000만 원은 예상해야 한다. 창업할 때 매장을 채울게 될 초도물량은 10평 규모의 경우 2,000피스(장)는 되어야 한다. 피스당 1만 원씩 계산해도 초도상품비로 2,000만 원을 들여야 한다는 계산이다. 이 밖에 홍보비, 예비비 등으로 500만 원을 설정하면 캐주얼의류점의 총 투자비용은 1억 1,500만 원에 이른다.[캐주얼의류점 투자그래프](단 위 : 만 원)내역비용비율점포비용7,00060.9%인테리어비2,00017.4%초도상품비2,00017.4%기타비용11,500100%총 투자비용11,500100%수익성예측서울의 지구중심상권, 경기도 주요도시 중심상권, 지방도시 중심상권 등에 입점한다면 하루 평균 내점고객수는 60명선으로 잡을 수 있다. 이 가운데 실질구매율은 약 40%선이다. 따라서 하루 약 25명이 상품을 구매한다고 볼 수 있다.계절에 따르지만 캐주얼의류의 평균 객단가는 2만 원 선이다. 시장 성장기엔 중저가 캐주얼의류의 객단가가 3만 원대였지만 경기불황으로 객단가가 낮아졌다. 표준점포의 하루 평균 매출액은 50만 원대를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캐주얼의류점 매출은 평일 보다 주말 매출이 약 50% 이상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한 달 지속적으로 영업한다 원)
    경영/경제| 2003.04.24| 7페이지| 1,000원| 조회(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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