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1장 축소지향을 쓰게된 이유2장 분석의 틀 6가지1)이레코형 2)쥘부채형 3)아세마나인형형 4)도시락형 5)노멘형 6)문장형3장 자연에 나타난 축소문화4장 인간사회에 나타난 축소문화5장 산업에 나타난 축소문화6장 일본이 문화대국으로 나아가야 할길- 축소지향의 장점, 단점맺음말서론일본 정치론 시간에 내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제목 에서 풍기는 평소 내가 느끼던 일본인의 축소지향적인 이미지 때문이었고, 또 일본에 대해 쓰여진 여태까지의 책중 보다 객관적이고 잘 쓰여졌다는 평가를 받은거라고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일본문화의 특성과 축소지향적인 일본에 대해 좀더 알게되었으며 이 책을 쓴 저자가 대단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저자는 축소지향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해서 일본의 문화구조를 분석하였다.여기서 축소란의 일본의 원말로는 지지미 이다. 그 어감은 죄다 줄이다 오그라뜨리다 등의 개념을 담고 있다.저자는 일본이 작은 것을 좋아하는 국민성과 신체구조 자원 들어 지금껏 축소지향이 유지되어 왔음을 설명한다. 일본인에게 있어서 풍부한 자원이라고 하면 귤과 온천뿐인 나라 식량의 55%와 에너지 89%를 수입에 의존하는 섬나라 그래서 부가가치가 높은 공산품을 발전시켜서 수입품에 대한 지불을 해야한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의식적인 것은 신체구조상 작은손과 섬세한 손가락은 라디오의 전기회로를 만드는데 적격이였고 대량의 원자재가 필요하지 않았기에 라디오 제조는 전국인 붐을 일으킬 수 있었다.본문요약제 1장일본어를 국어로 교육받았던 국민하교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하는데 저자는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 이라는 동화의 교훈을 설명하면서 어른들은 군중이 만들어 낸 환상의 옷을 입고 있고 보고 있기 때문에 본질을 발견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애기한다. 결국 임금님이 입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해 낸 것은 아이들의 눈이었듯이 일본이 라는 임금님을 볼 때도 역시 아이들처럼 있는 그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자제로 글을본에서는 일곱 벌을 한 세트로 하는 화분이나 이레코 솥 같은 것이 큰인기를 얻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등산이라 여행을 할 때 가지고 다니는 코펠도 이런 이레코형 축소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이레코형은 언어습관에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한 예로서『 봄의 눈에 긴자의 뒷골목의 삼층의 벽돌집에 포근하게 내린다 』이 시에서 보이는 ∼의 가 바로 노 의 해석에 해당하는 것으로 우리문학에서 뿐만 아니라 서구의 언어습관에서도 이처럼 의 남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그 의 를 연용함에 의해 긴자가 점점 축소되어 벽돌집 지붕이 되는 것이다. 이런 노 의 축소의 문법은 연못에 돌을 던졌을 때 생기는 파문과 정반대의 운동이다. 바깥에서 중심을 향해 수축해 들어오는 물결을 따라, 언어(이미지)의 파문이 생긴다 파문의 고리가 보다 작은고리로 옮겨지는 그 수축작용은 노 가 폭발하는 힘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 노 그 폭발력은 바깥이 아니라 안으로 죄어드는 이상한 힘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공간을 축소해가는 지향성이 실제의 모습으로 나타나면 열 자의 긴 낚시대라도 한자의 간단한 낚시대로 변해지는 것이다.2) 쥘부채형쥘부채형은 일본인의 가장 단순하고 직접적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간단히 말해 쥘부채는 보통 부채를 축소시킨 것이다. 그 방식은 고정된 평평한 평면의 넓이를 함줌에 쥘 수 있는 막대기 모양으로 바꾸는 것이다. 부채를 쥘부채로 만든 발상은 떨어져 있는 어떤 물건을 자기 몸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욕망에서 끌여들여 작게 축소시켜 손아귀에 넣은 것이 쥘부채의 기능이요 욕망이다. 따라 쥘불채를 자기손안으로 끌여들이려는 세계수축의 꿈을 의미하는 것이다.쥘부채형의 축소지향은 사물을 파악하는 인식론적 차원으로 미학적 차원으로, 그리고 실용적인 차원으로 각기 관찰이 가능하게 부채 하나에 지나친 비약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저자의 설명으로는 먼저 인식론적 입장에서 보는 쥘부채가 세계인식의 도구로서 사용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부채질하는 상품으로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세한 분할성에도 그 특색을 가지고 있다.3) 아네사마 인형형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비행기는 전장 1.6밀리미터에 날개폭이 1밀리미터, 또 세계최소의 움직은 오토바이는 전장 17.5센티미터 게 1.7킬로그램이라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이 기록의 보유자들이 일본이다. 물론 세계에서 가장 작은 것을 만든 그 사람들이 일본인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닐테지만 쌀알에 글자를 새겨넣는 경주를 할 정도의 사람들이까 가능한 일이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하지만 이 것보다는 좀더 보편성을 가진 현상을 비교대상으로 일본의 인형은 이웃한 중국이나 한국에 비해 단연 발달해 있다. 인형이라고 하면 축소문화의 전형을 보여준다.손과 발을 생략한 이네사마 인형은 쓸데없는 것은 대담하게 잘라버리는 축소지향의 성격을 강하게 보여준다. 아네사마 인형도 머리부분에는 상당히 세심한 관심을 보여주는데 이는 단순함 중에서 섬세하고 복잡한 현상을 보여준다. 또한 인형을 전시할 때 뒷면을 정면으로 하다는 것인데 기모노의 배면 장식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는 결국 뒷모습을 보이고 얼굴을 감추는 아네사마형 축소지향이다 닫쳐진 뒷모습 으로 열린 앞의 얼굴 을 바라 볼 수 있게한 함축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4) 도시락형도시락이라는 것이 밥상을 상자모양으로 축소시킨 것으로 도시락통을 일본말로는 고추라고 하는데 이 말 자체가 주방을 축소해 가지고 다니려는 편의주의를 보여주는 것이다.일본에서 도시락이 성행하게 된데는 그들의 음식문화를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 지는 부분이 있는데 이른바 국물이 없는 문화 라는 것으로 단적으로 단문지 깍두기를 비교해 보면 이해가 빠르다. 우리는 건더기 위주의 음식에도 국물이 어느 정도는 있는 것이 특징이고 또한 국물이 위주가 된 음식에도 건더기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경우에는 건더기는 건더기 국물은 국 식으로 경계가 문명한 양태를 보여준다 이런 분명한 경계는 준비해서 쓰기 편한 형태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벤또라는 말의 어원역시 『준비하여 쓰기에 편하도록 회에 나타난 모습이 바로 문장 이다 유럽에서도 문장이라는 것이 사용되었기는 하지만 서민들에게까지도 널리 사용되는 정도는 아니었고 일본에서는 오늘날에도 결혼시작에 갈때는 이른바 문장 넥타이라는 것을 메고 갈 정도로 문장 문화는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다.문장이라는 것이 관념이나 이념의 세계를 하나의 가시적인 사물형태로 응결시켜 파악하려 는 축소지향적인 것이다.관념적 체계적 문자 존중의 문화적 사물이 족보라고 한다면 문장은 가계의 역사성과 그 집단을 감각적인 표상의 형태로 나타낸 것으로 시스템이 아니라 도형성에 기초한 감각으로 보는 가계가 되는 것이다.일본인의 집단주의는 문장형에 그 성격이 있기 때문에 이념추구라기 보다는 맹목적인 집단 추구에 흐르는 수가 많다. 그 것이 어떤 성격의 집단인가 하는 것 보다 그 집단이 어디에 소속되어야 하는가가 더중요한 일로 되어있기 때문에 일본인은 어제의 적이라도 그 집단에 들어가면 충성을 다한다. 그래서 일본인은 생리적으로 혼자 있으면 불안을 느낀다. 하나의 틀(문장)이나 조직에 들어가 있으면 오히려 마음이 가라 앉는다. 그래서 자유로운 여행까지도 관광회사의 깃발 아래 모여 단체 행동을 하는 것이 일본인이다. 천황은 일본 전체의 문장 구실을 한다고 할 것이다.3장 자연에 나타난 축소문화일본인의 자연관은 우리와는 달리 자연은 그대로 놓아두지 않고 뜰 안으로 끌어들여서 구체적으로 명확한 질서를 주려고 한다. 즉 일본인은 자연을 지배하려고 한다. 서구인이 자연은 대하는 방식과도 통하는 성향이지만 서구인이 한국인이나 중국인처럼 자연을 향해 나가려는 확대 지향적이라는 측면에서는 다르다. 하지만 자연을 지배하려고 하는 공통적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서구의 기술문명을 받아들이는데 다른 동양의 국가들처럼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지 않나 싶기도 하다.자연을 자신의 뜰 안으로 끌어들여서는 지배하려고 하는 성향의 대표주자격인 것이 바로 일본의 정원으로 이 정원에는 주변의 풍광을 빌어 그 풍광이 주가되게 정원을 꾸미는 창경정원과 명승지 등의 경치가골짜기의 턱까지도 펀펀하게 평정된다.이런 자연의 결정과정에서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딱딱한 몇 개의 돌과 흰 모래뿐이다. 마치 서술의 세계까지도 명사로 축소되고 마는 하이꾸의 종구같이 자연의 운동이란 운동은 모두 돌과 모래의 사물에 얼어붙고 만다. 이런 과정으로 정원을 줄여놓은 것이 분재요, 꽃꽃이 인데 사실 분재도 일본 고유의 문화는 아니다. 하지만 일본인의 성향에 맞아떨어지는 문화임에 틀림없고 사실 일본 외의 다른 나라에서는 별로 빛을 보지 못한 예술이다.자연을 자기 가까이로 끌어들인다는 것은 보는자연 을 피부로 느끼는 자연 으로 만들려는 것이고 정원에서 피부로 느껴다면 이재 그 보다 더 가까이서 손으로 만지는 자연을 이 분재로 통해 만들어 낸 것이다.꽃꽂이 또한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오히려 정원이나 분재보다 더 추상적인 성격이 강한 것으로 꽃꽂이를 위해서 꽃을 하나 하나 꺽는 일, 그리고 그것을 다시 배치하는 일은 감히 신이 만들지 못한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는 의미를 지닌다. 자연이 정원으로 정원이 다시 차경, 축경, 세끼데이로 그리고 그것이 다시 분재나 분석 혹은 꽃꽂이의 형태로 축소되어 가는 모습은 역시 이레코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4장 인간과 사회에 나타난 축소문화일본인의 생활 공간은 좁은 것으로 유명하다. 여러 가지 경제적인 이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토끼장이나 성냥곽이라고 불리는 그런 공간에서 살면서도 일본인들이 답답함을 느낀다거나 하는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일본문화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다도에서 이런 현상을 살펴보았을 때는 좁은 공간을 답답해 한다기 보다는 즐기는 쪽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우선 다도는 넓은 안채에서 따로 떨어진 4조 반의 작은 다실에서 행해진다. 그리고 그 좁은 공간에 꼭 끼어 손님들과 차를 마시며 좋아한다.생활공간이 다다미, 도꼬소바 다실과 같은 매우 신분이 놓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몸을 오그려 머리를 쑥이고 무릎으로 기어 들어가야 할 정도로 좁은 공간으로 다도의 기본정신이 이런한 축소의 연출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