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종*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2
검색어 입력폼
  • 평산신씨에대하여 평가A좋아요
    1. 평산 신씨(平山申氏)의 연원(淵源)평산은 황해도 남동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 때 대곡군 또는 다화실이었던 것을 신라 경덕왕이 영풍으로 고쳤으며, 고려 초에 평주로 하였고 1272년(원종 13) 부흥군에 합쳤다가 충렬 왕 때 다시 복구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평산으로 바꾸고 도호부로 승격하였으며, 고종 때 군이 되었다.평산 신씨의 시조는 고려의 개국공신으로 벽상공신(壁上功臣) 삼중대광 태사(三重大匡太師)에 오른 신숭겸(申崇謙)이다. 문헌에 의하면 그의 초명은 능산으로 광해주(光海州: 지금의 춘천지방) 출신인데, 태봉(泰封: 신라 52대 효공왕 때 궁예가 송악에서 세운 나라)의 기장으로 있다가 918년(고려 태조 원년) 배현경(裵玄慶)·홍 유(洪 儒)·복지겸(卜智謙) 등과 더불어 궁예(弓裔)를 폐하고 왕 건(王 建)을 추대하여 고려가 창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고려개국원훈으로 대장군(大將軍)에 올랐다.전설에 의하면 어느날 태조(太祖)가 여러 장군(將軍)들과 평주(平州 : 평산의 고호) 에 사냥을 나갔다가 삼탄(三灘)을 지날 때 마침 하늘을 나는 세 마리의 기러기를 보고 "누가 저 기러기를 쏘아 맞힐 수 있겠는가?" 하고 물으니, 여럿 중에서 숭겸(崇謙)이 말하기를 "몇 번째 기러기를 쏘리까"하니 태조가 웃으면서 "셋째 기러기의 왼쪽 날개를 쏘아라" 하였다.숭겸이 과연 날아가는 기러기의 왼쪽 날개를 쏘아 떨어뜨리니 태조가 탄복하여 기러기 날던 땅 3백 결(結 : 조세를 계산하기 위한 토지 면적의 단위)을 하사하고, 본관(本貫)을 평산(平山)으로 삼게 하였다고 한다.그후 927년(태조 10) 공산 동수(公山桐藪 : 경북 대구 근방)에서 견훤(甄萱) 군사와의 싸움에 태조(太祖)와 함께 출정하여 포위로 전세가 위급해지자 태조와 용모가 흡사한 숭겸이 태조를 피신시키고 대신 어차를 타고 출전하여 전사하였다. 그의 죽음을 슬퍼한 태조는 시신을 잘 보살펴 춘천에 예장하고 벽상호기위 태사개국공 삼중대광 의경익대 광위이보 지절저정공신(壁上虎騎衛太師開國대부분 문희공파 ·정언공파 ·사간공파에서 나왔으며, 특히 문희공파는 임진왜란 때의 명장 입(砬)을 중심으로 하는 무신집안이고, 정언공파는 영의정 흠(欽)을 중심으로 하는 문신집안이다.주요 인물을 파벌로 살펴보면, 먼저 문희공파에서는 개가 세종 때 예문관대제학 ·좌찬성을 거쳐 우의정 ·좌의정에 올랐으며, 궤장(杖)을 하사받았다. 그의 중손 상은 중종 때 호당(湖堂)을 거쳐 이조 ·예조 판서를 지냈는데, 문희공파의 주요 인물은 모두 상의 후손에서 나왔다. 상의 손자 잡은공신으로 평천부원군에 봉해졌고, 그의 아우가 바로 임진왜란 때의 명장 입이다. 입의 아들 경진(景) ·경유(景裕) ·경인(景) 3형제는 모두 무과 출신으로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정국공신이 되었다. 특히 경진은 병자호란 때의 명장으로서 조선에서 무과 출신으로 영의정까지 오른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문희공파에서만 장신(將臣)이 10여 명이 나왔으며, 입의 현손으로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완(琓)은 장희빈(張禧嬪) 처벌 때 서인(西人)의 소론(少論)에 속하여 온건론을 주장하였다. 또 여류문인이며 서화가이고, 현모양처의 귀감으로 추앙받는 사임당(師任堂), 조선 후기 서화가인 위(緯) ·명연(命衍) 부자가 있다.특히 위는 한시(漢詩)의 대가이며 대사간 ·도승지를 지냈다. 정언공파에서는 흠이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인조 때 대제학 ·영의정을 지냈는데, 이정구(李廷龜) ·장유(張維) ·이식(李植)과 더불어 조선의 4대 문장으로 꼽힌다. 그의 아우 감(鑑)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왕조실록 복간에 공이 컸고, 아들 익성(翊聖)은 인조 때 병자척화 5신(丙子斥和五臣)의 한 사람으로 청(淸)나라에 잡혀갔으며, 그의 아우 익전(翊全)과 함께 문한(文翰)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 밖에 숙종 때 명인 정(晸), 고종 때 좌의정을 지내고 봉조하(奉朝賀)가 된 응조(應朝), 그리고 판서를 지낸 응현(應顯)이 있다. 사간공파에서는 세종 때 호조판서를 지낸 사간공 호(浩)의 6대손 점(點) ·암() 형제가 있는데, 점은 임진왜란滿)관계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근세인물로는 고종 때 참정대신(參政大臣)을 지낸 기선(箕善), 고종 때 판소리 여섯마당을 체계화한 재효(在孝), 국회의장을 지낸 익희(翼熙) 등이 있다. 평산신씨의 주류는 대체로 서인 ·소론(일부 노론 ·북인)으로서 서인이 주동한 인조반정을 고비로 조선 후기에 세력이 크게 신장하였다.2. 가문(家門)을 빛낸 선조(先祖)신숭겸(申崇謙)?∼927(태조 10). 고려 태조 때의 무장. 본관은 평산(平山). 초명은 능산(能山).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본래 전라도 곡성현(谷城縣)출신으로 태조가 평산에서사성(賜姓)하였다고 하였으며, 또 《고려사》 열전에는 그를 광해주(光海州:현재 春川) 사람이라 하였다.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 춘천도호부 인물조에 신숭겸의 이름이 실려 있고, 또한 그의 묘가 춘천에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면, 그는 본래 곡성출신으로 뒤에 춘천에 옮겨와서 살게 되어 그의 묘도 여기에 쓰게 된 것으로 보인다.신숭겸은 몸집이 장대하고 무용(武勇)이 뛰어나 궁예(弓裔) 말년에 홍유(洪儒)·배현경(裵玄慶)·복지겸(卜智謙)과 함께 혁명을 일으켜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王建)을 추대하여 고려 건국 때 큰 공을 세웠으며, 이로 말미암아 개국일등공신(開國一等功臣)에 봉해졌다.고려 태조가 즉위한 뒤 7, 8년 동안은 고려와 후백제 사이의 긴장관계는 소강상태에 있었으나, 견훤(甄萱)이 신라에 대하여 공세를 펴게 됨으로써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악화되어, 마침내 큰 충돌이 일어나게 되었다.즉, 927년에 견훤이 고울부(高鬱府:현재 永川)를 습격한 뒤 신라 왕도로 쳐들어가 경애왕을 죽이고 갖은 만행과 약탈을 감행하게 되었다. 고려 태조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분개하여 사신을 신라에 보내어 조제(弔祭)하는 동시에 친히 정기(精騎) 5, 000을 거느리고 대구의 공산(公山) 동수(桐藪)에서 견훤을 맞아 싸우게 되었다.그러나 후백제군에게 포위되어 태조가 위급하게 되자, 이때 신숭겸은 대장(大將)이 되어 원보(元甫)·김락(金樂)과 典理判事)와 수문전 대제학(修文殿大提學)을 지냈으며, 그의 아우 군평(君平)은 공민왕 때 좌대언(左代言)과 어사대부(御史大夫)에 올라 당세에 대학자로 추앙되었던 막내 현(賢)과 함께 명성을 떨쳤다. 한편 대제학 집의 셋째 아들인 안(晏)은 고려 말에 봉선고 판관(奉先庫判官)을 거쳐 종부시령(宗簿寺令)에 이르렀으나 고려가 망하자 평산의황의산에 들어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켰으며, 그의 아들 개가 뛰어났다.국초이래 명간관(名諫官)이라고 태종이 극찬했던 개는 태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檢閱)을 지내고 태종 때 이조 정랑(吏曹正郎)·참의(參議)·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 등을 거친 후 세종 때는 이조 판서가 되어 북변을 자주 침입한 야인 토벌에 공헌했다. 그후 우참찬(右參贊)으로 『고려사』수찬에 참여했으며, 좌찬성과 우의정을 거쳐 궤장을 하사 받고 기로소에 들어갔으며 1447년(세종 29) 좌의정에 올랐다.본래 왕조의 기록인 실록은 그 객관성이 흐려지고 당왕의 세력에 좌우되지 않게 하기 위해 왕이 보는 것을 도의적으로 금하게끔 되어 있었는데, 어느날 태조가 자신에 관한 기록이 궁금하여 실록을 보여 줄 것을 하명하자 이에 개는 완강히 거부하여, 그 후에도 자주실록 열람을 원하는 임금들에게 간(諫)하는 신하들의 좋은 구실이 되었다. 그는 자준(自準: 관찰사를 역임), 자승(自繩: 대사성을 역임), 자형(自衡: 집의를 역임) 세 아들을 불러놓고 대대로 물려내릴 가훈을 다음과 같이 정하여 가르쳤다.의 유훈을 받은 3형제는 모두 벼슬길에 나가 관직을 지내며 후대에서 훌륭한 인재를 많이 배출시켜 평산 신씨의 중추적인 인물이 되었다.어사대부(御史大夫) 군평(君平)의 손자로 공양왕 때 지신사(知申事)를 역임한 호(浩: 한림 혼의 아들)는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옥새를 부둥켜 안고 이성계 일당에 항거했으나 역부족으로 실패하자 고향인 평산으로 내려가 은거하였고, 전리 판사(典理判事)의 벼슬을 내려 수차에 걸친 태조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기묘사화 때 성균관 유생(成均館儒 근처에서 길건너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가 당시 병조 판서 류 전(柳 琠)의 행차를 범하여 전도하는 하인에게 끌려가 욕을 당했다. 익은 모르고 범한 것인데 너무 지나치게 욕을 보였다 하여 이 하인을 번쩍 들어 도랑에 내던져 버렸다.이 소란을 보고 있던 류 전은 익을 장하게 보고 임금에게 대장부 하나를 발견했다고 아뢰어 선전관(宣傳官)에 특채되었으며, 명종이 서교에 나갔을 때 거센 돌풍에 어막의 끈이 끊겼는데 익은 그 끈을 붙잡고 어막이 넘어지지 않도록 혼자 버티고 있었다고 한다. 개의 증손 상은 어려서부터 성리학을 연구하여 조광조(趙光祖)·이 자(李 )와 더불어 뜻과 지론을 같이했으나 그들의 혁신정치에 저항을 느껴 중도사상을 지녔으며, 중후한 인격으로 추앙을 받았다. 일찍이 평안 감사(平安監司)가 되어 평산부(平山府)의 아관(衙官)을 지날 때 본관 마을이라 하여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지나갔다고 한다.선조 때 명장으로 유명했던 입(砬: 상의 손자)은 1583년(선조 16) 온성 부사(穩城府使)가 되어 북면에 침입해 온 니탕개를 격퇴시키고 두만강을 건너가 야인들의 소굴을 소탕하고 개선하자 선조 임금은 교외에까지 직접 마중을 나가 전포에 핏자국이 나 있는 것을 보고 어의를 벗어주었으며 장군에게 혼기에 닥친 딸이 있는 것을 알고는 신성군(信城君: 선조의 넷째 아들)의 아내로 삼아주는 등 극진히 대해주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손수 불러 보검을 내리며 왜군 토벌을 부탁했으나 빈약한 병력으로 출전하여 충주의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고 적군과 대결하다 참패하자 부하장 김여물(金汝 )과 함께 강물에 투신 자결했다. 입(砬)의 아들 3형제 중 장남 경진은 혼탁한 광해군의 난정을 개탄하여 인조반정의 주모자로 선두에서 공을 세우고 정사일등공신(靖社一等功臣)에 책록되어 공조 참의와 병조 참판을 거쳐 병조 판서에 올라 훈련(訓鍊)·호위(扈衛)·포도(捕盜)의 3대장을 겸하고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 수비를 담당했다.특히 그는 아버지가 투신해서 죽은 강의 물고기를 어찌 먹을 수 있겠느냐웠다.
    인문/어학| 2002.06.08| 6페이지| 1,000원| 조회(1,716)
    미리보기
  •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을 읽고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을 읽고...인간과 윤리-------------------------------------------------------------------------------"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이 책은 10분이면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하지만, 그 후에 여운은 오래가는 책입니다. 현재, 전세계의 인구는 63억 명을 넘어서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 100명으로 축소해서, 많은 것들을 숫자로 표현해서 가르쳐줍니다. 이를테면, 100명에서 여자는 52명, 남자는 48명이다 라는 식으로. 그런데, 이런 숫자들로 알아보는 현재의 지구의 모습을 보고 나면,, 난 참 행운아이고, 난 참 복 받고 자란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좀 더 자세히 적어보면 100명이 사는 이 마을(세계)에서, 20명은 영양실조 상태이며, 15명은 비만이란 통계가 나온다고 합니다. 또한, 마을에서 마을(세계)재산의 59%를 6명이 가지고 있으며, 이들은 모두 미국인입니다. 결국, 나머지 94명이 남은 재산 41%를 쪼개 가지고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조금은 씁쓸함이 느껴집니다. 또한, 마을에서 1명만이 대학교육을 받으며, 2명이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14명은 글도 읽을 줄 모른다고 하죠. 그러면 우린, 참 복 받은 존재들이라 생각합니다.75명은 먹을 양식과 비를 피할 집이 있지만, 25명은 양식도 집도 없다고 합니다. (우린 역시 복받은 자들이죠!) 48명은 괴롭힘이나 체포 고문 죽음의 위협 속에서 자신의 신념이나 양심에 따라 살지 못하고 있으며 80명은 공습이나 폭격 지뢰로 다치거나 무장단체의 강간 납치공포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난 참 행운아구나!' 라는 걸 여태껏 못 느끼고 산것이 참으로 많이 부끄럽게 만들어준 그런 책입니다. 안 읽어보셨다면, 읽어보십쇼.. 재의 위치가 얼마나 행복한 자리인지 보여주는 책일 것입니다.일단 이 책이 가지는 힘에 새삼 놀랐습니다. 일반 어린이 동화나 아님 어른들에게도 어떤 메시지를 주는 동화이겠지 했던 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의미를 던지는 이 책은 동화가 아니라 희망의 호소, 아님 국가 이기주의에 대한 경고(?), 아님 개인 이기주의를 스스로가 깨닫게 하려는 의도와 그리고 인간 공존을 위한 첫걸음 같은 그런 힘까지 느끼게 합니다.언젠가 어떤 후배가 '잔디처럼 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냥 그 말을 흘려듣다가 왜 하필 잔디일까? 요즘같이 튀려는 젊은이들 천지인 세상에서? 궁금증에 '왜 잔디처럼 살고 싶은데?'라고 묻자 그 후배는 수줍은 듯 하지만 단호하게 '잔디는 뿌리가 다 연결되어 있자나요. 그것처럼 나 혼자 앞서나가는 인생보다는 다 같이 모두가 함께 한 걸음 나아가는 인생을 살고 싶어서요.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고 싶어요'라고 하던 말이 생각이 났다. 어리지만 그런 생각을 가진 후배녀석이 참 대견스럽기까지 했던 기억이 이 책을 보면서 다시 떠올랐습니다.그래 요즘처럼 남을 밟고서라도 혼자만 앞서 나가려고 하는, 그리고 나의 나라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시각이 너무도 많아져서 이젠 남보다 못하면 인생의 낙오자인가 하는 자괴감까지 가지게 하는 세상이 아닌가요?가진 자들의 횡포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없는 자는 갈수록 죽을 수밖에 길이 없는 이런 세상이 지금 현재의 지구상에서도 있는 일임을 우리는 알고 있고 그렇게 극적인 일이 아니더라도 우린 그런 일들에 주먹 불끈 쥐고 분노하던 일이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미국인만을 위한 축제라는 오명을 받은 동계올림픽에서 전 세계인들은 미국의 그런 모습에 분노하거나 혀를 찼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그들에겐 그냥 축제일로만 기억될 동계올림픽!! 가진 자들이 권력을 가진 이들이 빠지는 오류들은 역겹기 그지없습니다. 인간 공존과 세계평화로 포장된 그들의 검은 속마음을 우리는 알면서도 대부분의 국가들의 대표들은 권력에 고개를 숙이고 맙니다. 분노하는 세계의 국민들의 가슴앓이는 울부짖음은 누가 들어줄 것입니까?그래도 오늘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옆에서 사랑하는 가족이 죽는걸 보는 이들에 비해서 이런 생각이라도 하는 자체만으로도 난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야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생각에서만 끝나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나'라는 하나의 외침은 너무도 작아서 마치 개미 한 마리가 항의하는 듯한 형상일 것입니다. 밟히면 그만인 약한 외침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나'라는 하나들이 모여서 '우리'가되고 무시할 수 없는 다수가 되어 사랑의 힘을 가진 무리들을 느끼게 합니다. 처음에 이 글은 '세계마을'이라는 제목으로 e-mail로 시작되어 지금은 엄청난 세계인들이 서로들에게 이 메일을 보내면서 유명해지고 세계인들의 가슴에 진정한 인간 공존이란 것이 무엇이고 스스로 자신의 오만을 바라보게 하고 반성하고 서로를 사랑하게 만드는 부드러운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인문/어학| 2002.06.08| 4페이지| 1,000원| 조회(1,259)
    미리보기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05일 일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2:20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