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용어해설 및 개념정리제3의 길이라는 개념은 사실, 영국이나 유럽의 발명품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적은 미국에서 먼저 사용한 개념이다. 역사상 제3의 길이라는 개념은 반드시 서구의 사회민주주의만을 가리켰던 것은 아니었다. 또한 1970년대 제3의 길은 한때 동구의 ‘시장사회주의’를 지칭하기도 했고, 1980년대에는 스웨덴의 사회민주당이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에서 약간 후퇴한 새로운 중도노선을 표현하기 위해서 제3의길 또는 중도의길 (The middle Way)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1990년대에 들어서서는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에 이어 영국 블레어 정부가 제3의 길이라는 개념을 또다시 채택 하였다. 이런 점에서 보면 제3의 길이란 새로운 발명품이라기보다 해묵은 정치용어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제3의 길은 역사적으로 서구의 사회민주주의만을 지칭하기보다는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정책을 통해 실행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제3의 길 개념의 역사인류 역사에서 ‘제3의 길’에 관한 언급은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3의 길’은 극단을 지양한다는 개념으로서, 사회학적으로는 중간층에 기반한 이념을 의미했다. 그것은 중간층이 역사적 이성과 정치적 설득력을 갖는다고 보았던 데에 기인한다.근대 이후 사용된 ‘제3의 길’은 자본주의 질서와 관련되어 논의되었다. 자본주의 초기에 이미 그 폐해가 드러나기 시작한 이래 수많은 사회철학자들과 현실운동가들이 공산주의 이념을 발전시키는 저편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중간의 이데올로기적 대안을 추구하는 경향이 존재했던 것이다.과거의 ‘제3의 길’ 논의가 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의미하는 ‘체제(System)’와 관련된 용법이었다면, 오늘날의 그것은 최소국가와 복지국가 사이의 논쟁으로서 자본주의 질서 내에서의 ‘개입대안(Interventionsalternative)’을 두고 전개된다. 지구화라는 경향 속에서 자본주의적 권위와 가치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 데에 따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적제도의 개혁, 교육과 훈련, 기간시설에 대한 정부 개입강화, 국제주의를 통한 우파의 고립주의 타파 등을 기본이념으로 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와 시장민주주의의 한계와 가능성을 절충하는 실천적이며 실용적 지향성을 갖는 중도적 이념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그에 반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노선이라고 반박하는 학자들도 있다.제3의 길의 등장배경'제3의 길'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 의의와 한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유럽의 경우 1929년 대공황 이후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노동운동과 좌파정당의 힘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1929년 대공황 이전까지의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총체적 파탄과 좌파정당의 정치적 성장 이후에 유럽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로 대변되는 사민주의적 복지 국가를 추진할 수밖에 없게 된다. 1960년대 중반에 이르면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을 달성하며, 보육, 의료, 교육 등의 분야에서 기본적인 복지시스템이 확장되며 또한, 전통적인 케인즈주의적 유효수요확대정책에 기반 하여 을 어느 정도 완비하게 된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 초,중반에 이르면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경제성장의 정체와 후퇴를 겪게 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1979년 영국의 대처정권, 1980년에 미국의 레이건 정권이 신보수주의적 정책을 추진 한다 이들이 추구했던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핵심은 , , 영국의 경우 로 정리할 수 있다. 영국의 보수당은 대처정권과 메이저정권을 통해서 상당히 오랜 기간 집권에 성공하게 되고,1997년에 영국노동당의 블레어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제3의길'을 주창 하게 된다. (흔히 제3의 길의 원조는 미국 민주당의 클린턴으로 간주 한다. / 이부분에 대해서는 위에서 설명하였음 )사람들은 왜 영국에서 제3의 길이 등장하였다고 생각하는가?많은 사람들이 제3의 길을 영국의 역사적 전통과 문화에서 발전하여, 등장하였다고 짐작한다. 이러한 주장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제3의 길이 영국과 같이 좌파정당의 오랜 전통이 있는 나라에서만 등장 할 수일사민당 슈뢰더의 경우에는 '신중도' 프랑스 죠스팽 총리의 경우 '신사회주의'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1). 독일① 독일에서의 제3의길 등장 “독일의 신중도”1989년 독일통일은 정치구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다. (실존사회주의 붕괴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확립된 유럽의 정치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매우 복잡한 사건)1980년대 이래 진행 중인 신자유주의 복지국가 재편전략에 다시 한번 구조적 영향을 주게 됐다. 신자유주의 재편압박에 이어 이제 독일의 정치경제는 ‘체제전환’이라는 대내적으로 매우 높은 사회적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통일 초기에는 이러한 부담과 체제전환에 따른 엄청난 사회적 혼동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에 대한 ‘대안부재’ 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광범하게 분포하고 국가통일이 과도기적인 사회적 통합의 구심점으로 그 파급 효과가 크게 나타남으로써 내외의 도전요인들은 1900년대 격변기 독일의 정치경제에 신보수주의 신자유주의 헤게모니가 지속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그러나 1900년대 초가 지나자 신자유주의정책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는 사회경제적 지표에 대해 유권자들이 등을 돌림으로써 영국, 프랑스 등에서 확산되기 시작한 보수주의의 분열과 위기에 이어 사민주의의 르네상스가 도래했다. 결국 독일에서도 1998년 16년 보수·자민 연합지배에 종지부를 찍고 사민당 우파 슈뢰더정권이 녹색당과 함께 연정을 이루며 집권에 성공하게 됐다 사민주의의 성공은 신자유주의, 신보수주의의 구조조정 전략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데 기인한바 컸다. 신자유주의로 환골탈태한 포스트사회민주주의는 더 이상 전통적인 거시경제적 조절이나 수요지향 또는 복지정책의 단선적 확대와 소득재분배에 치우친 정책을 추구하지 않게 된 것이다. ( 유럽정치연구회, 2004. 유럽정치)②독일의 주요정책'신중도'로 불리는 독일 사민당의 '제3의 길'은 1989년 베를린 강령에서 시작되어 1999년 블레어-쉬뢰더 성명으로 완성된다. 우선 베를린 강령은 '사회적 정의'를 "재산chtillusion)" 으로 현상한다.한편 조스팽 사회당 정권에 의한 복지국가의 개혁은 상당부분 1984년 이래사회당이 추진해 온 복지국가 개혁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회당내 다수 중도계열을 형성하고 있는 미테랑 계열의 조스팽은 사회당의 좌우 편향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중간적인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사회당 자체가 이미 상당부분 우경화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중도의 길 역시 우경화된 중도였음에는 틀림없다. 프랑스 사회당이 표방하는 '쇄신좌파'는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당내 우파들이 주장해온 공화주의 강조를 좇아간 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회당의 정체성은 사회주의적 조치를 통해 유지되기 보다는 '공화주의적 연대'를 통해 재형성되고 있었고, 조스팽 정부의 정책에서도 그 점은 지속되고 있었다. 따라서 영국과 독일의 '제3의 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전통적 사회주의의 맥락을 덜 벗어났다는 평가도 가능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공화주의'라는 프랑스식 개혁 사회주의의 가치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무지개 연정의 구체적인 정책은 공산당의 연정참여라는 요소를 차치하면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의 수렴이라는 보다 넓은 범주의 일반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곧 부유층에 대한 세금 증가를 비롯한 소득 불평등 감소 정책이 전통적 좌파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음이 인정되지만, 기업의 사회적 부담금을 낮추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연장선상에 놓인 조치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2).영국①영국에서의 제3의길 등장1997년 5월 총선에서 노동당은 과반수보다 160석을 초과하는 압승을 거둠으로써 18년간의 보수당 통치를 종식시켰다. 노동당의 대승은 토니블레어가 이끄는 변화된 노동당의 승리였으며, 따라서 1994년 블레어의 당수 선출은 노동당 집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블레어는 노동당의 실패를 변화하는 사회경제적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고 유권자의 변화를 포함한 새로운 환경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노동당이 나아갈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해 각자가 자기의 잠재력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관점이다. 그러나 실질적 기회, 시민적 책임, 공동체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노동당'의 강조는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초극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특수한' 정치철학을 형성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만약 경기가 나빠져 실업률이 상승한다면, 조세나 재정적자의 증가를 반대하는 '제3의 길' 노선은 힘을 잃고, 결국 전통적인 좌파 정책(국유화나 재정적자 증가에 의한 경기부양책)이나 우파 정책(건전재정의 유지로 실업을 증가시키는 정책)으로 휩쓸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또한 신노동당의 '제3의 길'은 매우 애매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좌파보다는 우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평등'에 대해 '제3의 길'은 기회의 평등이나 개인의 책임을 중시함으로써, 결과로 나타나는 불평등을 사실상 인정한다. '지구화'에 대해서도 불가역적 과정으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이 야기하는 온갖 폐해를 시정하려는 의도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지구화와 타협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3).프랑스3개국 좌파정부간의 상대적 차이를 보면, 영국과 독일이 유사성을 보이는 반면 프랑스 사회당은 상대적으로 좌파적 차별성을 띠었다. 블레어-슈뢰더 공동성명 이후 영국과 독일의 좌파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원리를 더욱 수용해 간 반면, 프랑스 무지개 연정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실업해소와 소외층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조스팽 총리의 말처럼 프랑스 사회당은 '사회주의의 장점 부활'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이탈리아 좌파민주당 출신의 달레마(M. D'Alema) 총리는 조스팽을 '진정한 사회주의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또, 공산당과의 끊임없는 경쟁으로 인해 국민정당화의 길은 빨랐지만, 최종적 노선변화에서도 '현대적 경제정당'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으며 아직도 상대적으로 친근로자성과 공산당과의 연대가능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 좌파가 실행하는 정책들도 신자유주의적 논리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는데, 그것은 공산당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