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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학] 1정연수 지형학 레포트
    지각운동이 지형발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한반도의 지형을 사례로 들어 설명하시오.지각운동은 지구의 대지형을 형성하는 작용으로 지구의 내적 에너지를 통해 이루어진다. 지각운동은 크게 조산운동와 조륙운동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러한 지각운동을 통해 지구의 대지형이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지형의 형성은 내적작용을 통해 그 틀이 잡히고 여러 외적 작용에 의해 미세한 지형이 형성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지형 역시 그 큰 틀은 지각운동에 의해 이루어 졌다고 볼 수 있다.먼저 지각운동 중 조산운동에 의해 형성된 우리나라의 지형은 대보조산운동을 들 수 있다. 조산운동이란 지층의 심한 교란을 수반하면서 융기하여 산이 되는 지각운동을 말하며 습곡, 단층, 마스마의 관입, 화산활동 등이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대표적인 지형이다.대보조산운동이란 중생대 쥐라기(紀) 초기부터 백악기 초기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전역, 특히 남부에서 뚜렷하게 확인된 지각변동을 뜻한다.이 시기는 이 운동과 동시에 형성된 동기화강암인 대보화강암의 절대연령 측정에 의해서 결정되었으며, 그 범위는 180 120m.y.(100만 년 단위)이다. 이 조산운동은 남한 중부 옥천대를 사이에 두고, 그 양쪽에 뚜렷한 방향성을 가지고 분포하는 화강암의 노출에 의해서 나타나고, 그 방향은 북동 남서인데 이는 옥천대 퇴적층의 구조에도 나타나 있다.그 지질구조는 주로 습곡과 단층으로서, 습곡축과 단층면이 북서로 경사져 있음을 보아, 북서에서 남동으로 향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이 운동을 중국 남부 양쯔지괴로 연속되는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또한 이 운동은 중국의 옌산운동의 전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조륙운동은 지각의 큰 변란을 수반하지 않는데 일어나는 지각의 상하 운동으로 넓은 범위에 걸쳐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 운동이다. 조륙운동에 의해 형성된 한반도의 지형으로는 신생대 3기 마이오세 이래 일어난 한반도의 융기를 들 수 있는데 지리적으로 흔히 시생대 제3기 경동성 요곡 융기운동이라 불리는 운동이었다. 이 운단층구조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러한 것은 대지형을 형성했다기 보다는 일부 지역에 국한되어 나타난다.습곡과 단층에 의해 형성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형은 추가령 구조곡과 양산단층을 들 수 있다. 추가령 구조곡은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형성되었으나 단층과 습곡이 기본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추가령 구조곡에 대한 설명을 잠시 해보면 함남 안변군과 강원 평강군과의 도계(현 강원 세포군)에 있는 높이 599 m의 추가령을 중심으로 남서방향으로 뻗어내린 골짜기를 일컫는 것으로 추가령 열곡이라고도 한다.이 골짜기는 원산의 영흥만에서 시작하여 서울을 거쳐 황해안까지 호를 그리며 전개된 좁고 낮은 긴 골짜기이다. 이 지대는 서쪽의 마식령산맥과 동쪽의 광주산맥 사이에서 발달하였다. 지형상 지질상 남한과 북한을 양분하는 구조선을 이루며, 예로부터 서울과 원산을 연결하는 경원가도였고, 근대에는 경원선이 개통됨으로써 중요한 교통로를 이루었다. 종래에는 신생대에 단층작용으로 형성되었고, 그 후 홍적세에 와서 열선에서 현무암이 분출하여 철원 평강의 용암대지가 되었다는 설이 있어 추가령지구대라고 불렀다. 그러나 좌우의 편마암 층에 끼어 있는 연질의 화강암층이 북동쪽으로 흐르는 안변의 남대천과, 남서쪽으로 흐르는 임진강의 차별침식에 의해 형성된 침식곡이다. 그러나 이 화강암지대는 중국방향의 구조선을 따라 화강암이 관입하여 이루어진 것이며, 골짜기의 침식에 있어서도 일련의 구조선들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추가령구조곡이라고 한다.설명에 나오는 것처럼 과거 추가령 지구대라 불리었으나 여러 증거에 의해 지구대로 볼 수 없어 구조곡이라 설명되지만 습곡과 단층이 이 구조곡에 많은 영향을 주었음은 인정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땅이 좁아 많은 대지형이 형성되어 있지 않지만 이러한 미세한 부분에 습곡이나 단층과 같은 운동이 많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추정된다. 이러한 습곡와 단층의 증거는 양산단층에서 다시 한번 찾아볼 수 있는데 양산단층이란 김해 양산 경주 영해에 이르는 길이 넓게 트인 철원지방에서는 용암대지가 평야처럼 보여 이를 흔히 '철원평야'라 부른다.백두산을 중심으로 개마고원과 만주에 걸쳐서는 동서 240㎞, 남북 400㎞의 백두용암대지가 펼쳐져 있다. 우리나라쪽의 백두용암대지는 제4기 백두화산대의 열하, 즉 백두산과 북포태산을 잇는 일직선상의 여러 분화구에서 솟아나온 용암으로 이루어졌다. 용암층의 평균 두께는 200~300인 것으로 알려졌다. 압록강과 두만강의 본류 및 지류가 용암대지를 개석하여 용암층 밑의 기반암이 드러난 곳도 있으나 습원이 곳곳에서 나타난다.제주도와 울릉도는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특히 제주도는 신생대 제3기 말에 화산활동이 시작된 이래 많은 횟수의 용암분출에 의하 형성된 화산도로서 화산의 보고라 일컬을 만큼 각종 화산지형이 다채롭게 발달되어 있다. 제주도는 5기에 걸쳐 형성되었는데 여러번에 걸친 화산폭발로 인해 다양한 화산지형이 형성되었으며 중심분출에 의한 한라산도 화산산으로서의 대표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다. 제주도에는 화산산을 비롯하여 마르, 화구호, 용암동굴 등 다양한 화산지형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하천 주변에서 관찰되는 지형의 사례를 2가지 이상 들고, 그 각각을 설명하시오.하천이란 크기와는 관계없이 일정한 물길을 따라 흐르는 물을 가리킨다. 이러한 하천은 그 크기와 상관이 있긴 하지만 모두 침식·운반·퇴적 작용을 수반한다. 이러한 하천의 작용에 의해 하천 주변에는 많은 지형들이 형성되는데 이중 우리가 가장 널리 볼 수 있는 하천지형 두가지를 살펴보겠다. 하전에 의해 형성된 지형은 주로 퇴적지형을 많이 살펴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하천 주변에서 관찰되는 하천 퇴적지형인 범람원과 선상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범람원: 하천이 운반·퇴적하는 토사로 이루어진 지형을 충적지형 이라고 하며 충적지형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또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것이 범람원이다. 범람원이란 홍수시에 하천이 범람하는 저습지이다. 범람원에는 자연제방과 배후습지가 발달한다. 자연제방은 인공제방과는 달리 지면이 넓고 평평하여한국에서는 낙동강 유역에 가장 잘 나타나는데 용지 사몰지 등과 같은 호수가 있으며, 한강 금강 등에도 발달되어 있다. 자연제방은 그 지역에서는 고건하여 취락 밭(뽕밭 과수원) 등이 생기고, 배후습지는 논으로 조성된다.선상지: 선상지는 산지의 좁은 골짜기에서 평지로 흘러나오는 하천이 경사가 급변하는 곡구에 토시를 쌓음으로써 형성되는 지형이다. 선상지의 하천은 대개 작다. 하천이 크면 곡구에서 경사가 급변하지 않고 또 유량이 많아 토사가 곡구에 집중적으로 쌓이지 못한다. 전형적인 선상지는 납작한 반원추 모양으로 생겼으며, 지형도에서는 곡구를 중심으로 등고선이 동심원상으로 배열되어 있어서 쉽게 식별할 수 있다. 선상지의 하천은 홍수시에 곡구를 벗어난 후 넓게 퍼지면서 흐르거나 유로를 자주 바꾼다.자갈이나 토사는 홍수 때마다 골짜기 어귀를 중심으로 유로(流路)를 바꾸고, 이를 되풀이하는 동안에 형성되는 선상지는 골짜기 어귀의 중심 부분을 선정, 선상지의 말단부를 선단, 그 중간을 선앙이라고 한다. 경사는 대체로 느리지만, 선정부에서는 비교적 크고, 선단부로 갈수록 작아진다. 따라서 퇴적물은 선정 부분에서는 지름이 큰 자갈이 많고, 선앙부는 더 두꺼운 사력층을 이루며, 선단부로 갈수록 지름이 작은 사력이 나타난다.사력층이 두껍기 때문에 선상지의 지표를 흐르는 강물은 땅 속으로 침투하여 복류가 되므로 선상지의 하천은 거의 건류와 같은 모습을 드러낸다. 복류를 형성한 물길은 지하수가 되어 선단부에서 용천으로 나타난다. 이 용천을 이용하여 선단부에 취락이 발달하고, 벼농사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선앙부는 지하수가 깊고, 개발이 늦어져서 오랫동안 들판으로 남은 곳이 많지만 개발이 이루어진 곳은 과수원, 뽕밭, 다원 등으로 이용되는 곳이 많다.선정부는 비교적 물을 구하기 쉬우므로 일찍이 취락이 발달하였다. 삼각주에 비하여 표면 경사가 약간 크며, 특히 선앙부는 무수지역이 넓으나 삼각주는 각지에 분류와 저습지가 많아서 일찍이 논이 개발되었다. 선단부가 서서히 충적 저지가 되고, 하구로 계속 남게 된다. 지각변동이 격심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간헐적인 융기보다 계속적인 융기가 보편적이고, 단구들 간의 고도차는 지반운동이 활발한 해안일수록 크게 나타난다.단구의 표면은 바다 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나 그 배후의 절벽은 구해식절벽으로 그 밑에는 구해안선이 있다. 단구전면의 절벽을 단구애라고 한다. 해식대지가 융기해서 형성된 해안단구의 표면에는 거의 퇴적물을 볼 수 없으나 때로는 사력층으로 덮여 있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단구면의 해성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국에는 해안단구로 여겨지는 지역이 동해안에 일부 나타나 있으나 아직 확증은 없다. 해안단구가 개석된 다음 다소 침수하게 되면 침수해안의 특색을 나타낸다.해안단구는 동해안에도 여러 단씩 발달되어 있으며, 이들 단구에 관한 연구가 활발한 편이다. 동해안의 해안단구는 대개 두꺼운 퇴적층으로 덮여 있고, 고도가 낮은 것들은 보존이 양호하나 높은 것들은 보존이 불량하고 자갈을 포함한 퇴적물이 풍화작용을 심하게 받은 상태로 나타난다. 강릉과 포항 주변의 해안에 분포하는 단구 중에서는 해발 10m와 18m의 구정선고도와 관련된 최하위의 두 단구가 최우 간빙기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었다.동해안의 해안단구로 추정되는 정동진을 답사했을 때 정동진 지표의 단면에서 단구의 흔적이라 할 수 있는 둥글한 자갈인 해안역 들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물론 이러한 것 외에서 학술적으로 여러 가지 증거들이 해안단구임을 입증해주고 있지만 아직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그러나 정동진의 북쪽이나 남쪽에서 정동진을 바라보면 분명 단구의 형태를 띄고 있음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성인이야 어찌되었던 간에 형태상 해안단구의 형태를 하고 있음은 분명한 것 같다.석호: 석호란 바다와는 사주로 격리된 해안 가까이 있는 호소를 말한다. 해류 조류 하천 등의 작용으로 운반된 토사가 바다의 일부를 폐색함으로써 바다에서 호소가 떨어져 나오거나, 해안 가까이에서 바람이 모래를 운반하여 호소와 바다를 분리한다. 이들 호소는 수심이 얕오.
    인문/어학| 2003.09.11| 10페이지| 1,000원| 조회(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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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관련] 북한의 개방지역
    『북한의 개방지역에 대한 지리자료 조사』【북한의 개방물결】최근 개방의 물결을 타고 있는 북한은 여러지역을 다양한 목적으로 개방함으로써 북한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난관을 타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개방목적이 무엇이고 북한 개방지역의 특징을 아는 것은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우리들의 바람직한 자세라고 할 수 있겠다. 먼저 북한의 개방지역인 나진-선봉, 신포, 금강산과 장전지역을 살펴보고 그 지역의 지리적 특징과 그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개방에 관한 짧은 설명을 덧붙여 북한의 개방지역에 대해 조사해 보도록 하겠다. 또한 최근 주목받고 있으며 북한이 주력하고 있는 개성지역의 개방에 관해 보다 자세히 알아봄으로써 북한의 개방에 지식적으로나마 대비하도록 하겠다.나진-선봉 지역【나진-선봉 경제특구지역】① 위치나진-선봉지구는 북한 동북부 두만강 하류의 서쪽 연안 북위 42.05 -43., 동경 130 .07 - 130.45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러시아를 잇는 접경지대로서 동북아세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한국, 중국, 러시아를 연결시키는 삼각지점에 놓여 있고, 동해를 끼고 있는 지리적 위치와 조건으로 하여 동북아시아의 국제적인 자유경제무역지대로 더없이 유망하다.두만강을 국경으로 중국, 러시아와 국경을 접해 있으며 동해에 면해 있는 이 지역은 북한 최동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평양에서 철도로 19시간이 걸리는 이 지역은 북한 동해안의 중화학공업중심단지인 "청진공업지구"내에 포함되어 있지만 지대내 자체는 북한에서도 오지로 기존 공업기반은 미미하다.일설로는 주체의 깃발을 내걸고 독자적인 사회주의건설을 추진했던 김일성이 생전에 이 지역을 현지 시찰하고 농업, 공업, 어업이 균등하게 발전되어 잇는 이 지역을 장래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선봉적인 역할을 기대하며 선봉이라고 개칭했다고 한다. 나진은 러시아의 태평양국가 수출용 부두로 활용되어왔던 나진항을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로 지대내 최대규모의 도시명, 농촌인구가 3만3천명이다. 주요 지역별로는 나진이 6만3천명으로 최대규모이며 선봉 2만6천명, 웅상 8천명, 기타 두만강지역에 9천명이 거주하고 있다.노동가능 인구는 7만6천명으로 보고 있는데 연령별 주민구성을 보면 1 15세까지가 32%, 16 59세(여자는 55세)까지가 58%, 60세 이상(여자 56세)이 10%이다.현재 인구를 10년 내로 35만 명 수준으로 그리고 2010년까지는 100만 명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며 이를 위해 당성이 강한 주민들을 동 지대내로 이주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④ 기후남한지역은 연평균 13.3도, 북한지역은 연평균 9.2도에 비해 지대의 연평균 기온은 6.3도로 북한내에서도 추운지역이다. 가장 추운 1월의 평균기온은 -8.8도, 가장 더운 8월 평균기온은 20.9도이다. 강수량은 770mm로 북한평균 강수량보다 연간 20mm 정도 적은 편이다. 일조율은 53%, 평균습도는 70%이다.⑤ 지형이 지대는 우리나라 동해안의 제일 북쪽 끝에 자리 잡고 있는 북부지대이고 산지지형이 우세하지만 전반적지역은 높지 않은 산들로 되어있다. 이 지대에서 제일 높은 산인 송진산은 해발 1.146m 이고 어명산은 1.032m 이다. 그 밖의 산들은 1.000m 이하의 높이를 가지고 있다. 또한 서부의 산간지대로부터 동부의 두만강으로 가면서 지형은 점차 낮아져 평탄한 벌을 이루고 있다.이 지대의 서쪽북부의 높이 1,146m(지대바깥)을 최고봉으로 하여 지대 서쪽은 500 600m급의 산악이 둘러싸여 있다. 라진구역은 300 400m급의 산악, 선봉구역은 500 700m급의 산악이 둘러싸여 다같이 분지모양의 지형을 형성하였다. 만포로부터 동쪽지역은 만포를 중심으로 북쪽에 높이 384m를 최고로 하는 산악, 동북쪽은 270m를 최고로 하는 산악, 그리고 동번포의 북쪽에는 178m의 산악이 있다. 이와 같이 이 지대는 서쪽의 1,146m의 최고봉으로부터 동쪽의 두만강유역에 걸쳐 서서히 고도를 낮추어 산악이 전개되어 있는데 비교적 평탄봉지대에는 또한 개발 이용 할 수 있는 자원이 많다. 개발 지역과 그 인접 지역 에는 철광석과 석탄, 마그네사이트, 수정, 도자기 원료 등 지하자원과 산림자원이 많다. 특히 이 지역은 바다와 호수를 낀 곳으로서 수산자원이 풍부다. 바다와 호수에는 명태, 정어리. 청어, 송어, 새우, 가자미와 함께 미역, 조개류가 많다. 모래 미역과 백합, 굴, 새우는 이 지방의 명산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⑦ 개방1991년 12월 북한은 정무원 결정 제74호에 의해 함경북도 나진 선봉지역621㎢(1993. 9. 24 은덕군 원정리 등 3개리(里) 125㎢를 추가하여 746km2로 확대)를 '자유경제무역지대'(이하 지대)로 설정하고, 2010년까지 인구 100만의 동북아시아의 화물중계기지, 수출가공기지, 관광 금융 서비스기지로 발전시킨다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93년 초 3단계 개발계획(1단계:'93-'95, 2단계: '96 2000년, 3단계:2001 2010년)이었으나 95년 초 이를 당면단계(1995 2000년)와 전망단계(2001 2010년)의 2단계로 조정하여 당면단계에는 도로 항만 경제하부망을 확장 현대화하여 국제화물 중계수송 기지화에 주력하고 전망단계에는 동지역을 21세기의 세계경제 발전에 상응하는 종합적이고도 현대적인 국제교류의 거점으로 건설한다는 것이다.신포 지역【북한의 신포 경수로 원전 조감도】①위치함경남도 동해안의 중부에 있는 시. 북서부와 서부는 흥원군, 북부와 북동부는 북청군과 잇닿아 있고 남부는 동해에 면하여 있다. 신포시는 북청군과 흥원군 지역이었으나 1952년 12월 행정구역개편에 의하여 북청군 신포면, 양화면, 속후면, 흥원군 룡원면으로 이루어졌다. 1960년 10월 에 신포시로 되었다. 1974년 1월 신창군이 없어지면서 남대천(북청) 서쪽에 있던 이 군의 8개리를 넘겨받아 지금의 영역을 이루었다. 행정구역은 12개 동(어항, 포항, 행산, 광복, 신흥, 영무, 마양, 풍어, 련호, 동호, 륙태1, 륙태2)과 15개 리(룡중, 신풍, 보주, 신호, . 해안선은 동해안치고는 복잡한 편이 며 바닷가에는 송도갑, 양화만이다. 앞바다에는 동해에서 큰 섬의 하 나이며 자연방파제 역할을 하는 마양도가 있다.신포시는 바다의 영향을 많이 받으므로 해양성 기후의 특성을 나타낸다. 연 평균기온은 9.4 , 1월 평균기온은 -4.1 , 8월 평균기온은 22.6 이며, 연평균 강수량은 688㎜이다.큰 하천은 남대천과 동대천이며 바닷가에는 룡연호(1.06㎢), 현금호(0.48㎢), 대인호(0.28㎢)와 같은 호수가 있다.동 남쪽은 동해, 서쪽은 홍원군, 북쪽은 북청군과 접한다. 북부는 산지이고 남부 해안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져 해안에는 좁고 긴 평야가 펼쳐진다. 북부에는 최고봉인 종산(703m)을 비롯하여 암해산(432m) 수암산(368m) 등이 있고, 이들을 넘는 사기령(381m) 배나무고개(181m)가 있다.주요 하천으로는 북동부에 남대천(북청)이 있고 남서부 시계(市界)에는 동대천(신포)이 흐른다. 해안에는 용연호(1.06km2) 대인호(0.28km2) 현금호(0.48km2) 등의 호수가 있다. 해안선은 출입이 비교적 복잡한 편으로 송도갑 양화만이 있고, 신포항 앞바다에 마양도가 있다.기반암은 화강암이며 토양은 갈색삼림토이다. 산림은 시 면적의 60%이며 주요 수종은 소나무 참나무이다. 연평균기온 9.4 , 1월 평균기온 -4.1 , 8월 평균기온 22.6 이고 연 평균강수량은 688mm이다. 현재의 신포시 지역은 8 15광복 당시의 북청군 홍원군 지역이다.④자원 및 기타과일로 사과 복숭아 포도 등이 생산된다. 동해안의 중요한 수산업기지이며 특히 원양어업기지이다. 신포수산연합기업소와 수산협동조합들이 있다.주요 수산물은 명태 청어 멸치 송어이며 특히 명태가 대종을 이루고 명란젓과 창란젓이 유명하다. 수산업 도시로서 특히 원양어업의 중심지이다. 또한 조선소와 어구공장, 그리고 통조림공장을 비롯한 가공공장들이 있다. 수산물 중에서는 명태가 대종을 이루며, 명란젓과 창난젓, 조개껍질로 만든 공예품이 특산물이다. 신포조선소 어구공으며 속후에는 속후휴양소가 있다.⑤개방1980년대 말이래 극심한 에너지난을 겪어온 북한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자, 핵무기 개발을 우려한 미국ㆍ한국ㆍ일본의 반발로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해주는 절충안이 채택되었다. 이로 인해 함경남도 동해안의 신포지역이 제한적으로 외부에 개방되었다.북한 경수로 지원 사업을 위해 1995년에 한반도 에너지 개발기구(KEDO)가 발족된 이후, 2년간 원전부지로서의 적합성, 안정성, 지진반응, 주변 하부구조 등에 대한 조사를 하여 신포시 동부의 경수로 부지를 확정하였다. 경수로 사업을 위해 북한은 신포시 동쪽 9개리를 합하여 금호지구를 신설하여, 경수로 건설로 인해 상주하게 될 한국 및 외국인들을 지역 주민들로부터 차단시켰다.이 사업에는 KEDO, 한국전력과 함께 국내 여러 협력업체가 참여하고, 북한도 많은 인력과 물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경수로 1기가 완성되어 완전 가공되기까지 10년 이상의 장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분단 이후 최대 규모 남북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장기적 측면에서 남북 간 신뢰 구축과 남북 경제공동체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금강산과 장전 지역【금강산 관광코스】【장전항 전경】①위치와 지형동서길이 약 40km, 남북길이 약 60km, 면적은 약 530㎢이다. 최고봉인 비로봉(1,638m)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오봉산·옥녀봉·상등봉·선창산·금수봉, 서쪽에는 영랑봉·용허봉(룡허봉), 남쪽에는 월출봉·일출봉·차일봉·백마봉, 동쪽에는 세존봉 등이 솟아 있다. 1952년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전에는 회양(淮陽)·통천(通川)·고성(高城)·인제(麟蹄)의 4개군에 걸쳐 있었다.신생대 제3기 중신세 이후에 진행된 경동성 요곡운동으로 형성되었으며, 화강편마암이 노출된 신금강(新金剛)의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조립질(粗粒質)의 흑운모 화강암과 반상(斑狀) 화강암으로 형성되어 있어 절리가 발달되고 풍화침식이 쉽다.남북으로 뻗은 대단층선을 따라 지층이 단락(斷落)하여
    교육학| 2003.09.11| 7페이지| 1,000원| 조회(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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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슈미르분쟁] 카슈미르분쟁
    서론냉전이 종식되고 21세기가 밝아오면서 세계에는 평화의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보였다. 세계 각 지역에서는 냉전의 잔재가 해소되는 것처럼 보였고 각 지역은 서로 협력하여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얼마 전 미국에서 발생한 일명 9·11 테러사건 은 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전세계인의 안일한 생각을 단숨에 쓸어버리고도 남았다.이데올로기적 대립의 종식과 함께 이제 세계는 또 다른 대립으로 그 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일찍이 사무엘 커팅턴 이라는 학자는 21세기는 문명의 충돌이 될 것이다. 라고 말한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대립과 분쟁, 소규모의 전쟁들은 종교와 문화적인 차이에서 비롯되는 문명의 충돌이다. 다른 종교와 부족간의 충돌로 얼룩진 아프리카 내전이 그러한 것이고 중동의 화약고 라고 불리 우는 중앙아시아 역시 종교와 그에 따른 문화적 차이에 의한 세력다툼이다.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을 대상으로 벌어진 미 테러참사 역시 아직 정확한 사건의 경위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슬람과 미국(혹은 기독교)의 대립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대립은 단순히 종교적인, 그리고 문화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수많은 난민들을 발생하고 인접 이해국들 간의 갈등을 유발시키며 핵 분쟁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등 정치, 사회, 군사적으로도 점층적인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이처럼 종교, 문화적인 차이에 따른 문명의 충돌이 초대의 관심거리로 떠오른 지금 우리는 50여 년 간 이어져오고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간의 갈등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최근 강대국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도·파키스탄간에 첨예하게 전개되고 있는 경쟁적인 핵실험으로까지 번진 인도·파키스탄간의 카슈미르 분쟁은 세계인구의 1/5이 살고 있는 남아시아 지역 안보에 가장 큰 위협요인으로 지난 50여 년 동안 작용하여왔다. 카슈미르를 둘러싼 인종적-종교적 충돌은 냉전동안에만 세 차례의 전쟁을 유발하였고 냉전이 끝난 뒤에도 인도와 파키스탄은 재래식 무기를 가 발달했다. 바라문 또는 브라만[神官], 크샤트리아[武士], 바이샤[庶民], 수드라[奴婢] 등의 4성(姓)으로 나누어지는데,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각기의 카스트에 속하며 결혼·직업 등은 동일한 카스트 내에서 행해진다.브라만교 이후의 힌두교 제사(祭祀)는 브라만에 속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시행된다. 크샤트리아는 무사계급으로서 왕족이 여기에서 나왔다. 바이샤는 농목업(農牧業)·상업·수공업과 기타 각종 직업에 종사하는 서민계층으로, 후에 각 직종(職種)에 따라 2차 카스트가 생겼다. 카스트의 최하위는 수드라로서 대부분 피정복민으로 구성되었고, 상위 카스트의 노비(奴婢)로 종사한다.4성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아우트 카스트라는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이 생겨, 이들은 거주(居住)·직업 등에 엄격한 차별대우를 받아왔다. 간디는 이들을 신(神)의 아들이라 부르고, 그들의 해방을 위해 노력했다. 독립 후 불가촉천민제를 폐지하고, 특별법을 만들어 그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였다. 정부에서는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장학금제도를 설치하고, 의석의 일부를 할당하기도 하였다. 헌법상 카스트 제도는 폐지되었으나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데, 그나마 대도시에서는 점차로 차별이 해소되어가지만, 지방에서는 쉽게 없어지지 않고 있다.{지도 파키스탄 지도2) 파키스탄의 개관1 자연면적 80만 3940㎢. 인구 1억 5223만 1000명(1999). 인구밀도 191.2명/㎢(1999). 정식명칭은 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Islamic Republic of Pakistan)이다. 수도는 이슬라마바드이고 공용어로는 우르두어를 사용하고 있다. 서쪽으로 이란·아프가니스탄, 북쪽으로 힌두쿠시·카라코람의 양 산맥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연방·중국, 동쪽으로 인도와 접경하고, 남쪽으로는 아라비아해(海)에 면한다. 인도의 회교도들이 제1차 세계대전 후 인도에서 분리하여 독립한 나라이다한반도의 3배가 넘는 면적을 가진 파키스탄은 인도대륙 서쪽에, 북동에서 남서방향으로 비스듬히 놓여 있으며 국토의 거의 중앙을 인더스강이 남북 남쪽의 펀자브 히말라야(히말라야 산맥 서단부)와 북쪽의 카라코람 산맥을 분리하고 있다. K2봉 외에 히말라야 최서단에 해당하는 낭가파르바트산(8,125m)도 유명하다.2 역사카슈미르는 16세기 후반 이슬람교 무굴 제국의 일부가 되었으며, 18세기 후반에는 아마드 샤의 아프간 제국에 양도되었고, 1819년 란지트 싱에 의하여 시크 왕국령이 되었다가 1846년 이후 영국령 인도의 번왕국(藩王國)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관계 때문에 오늘날 카슈미르 지방 주민의 77%가 이슬람교도이고 잠무 부근에는 힌두교도도 많다. 1947년 영국령 인도는 힌두교도가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을 인도 연방(공화국), 이슬람교도가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을 파키스탄으로 하여 분리 ·독립하고자 하였으나, 당시 카슈미르 주민의 압도적 다수가 이슬람교도인 반면 번왕(藩王)은 힌두교도 이였으며 인도 ·파키스탄 양국 사이에 끼어 있는 지역이므로 그 귀속이 문제가 되었다. 번왕은 인도 귀속을 표명하였으나 이슬람교도는 파키스탄 귀속을 요구하여 폭동이 발생, 인도 ·파키스탄 양국의 충돌이 일어났다. 이 분쟁은 국제연합(UN)의 조정으로 1949년 1월 휴전하고 그 해 7월 최종적인 정전(停戰) 라인이 확정되었으나 비옥한 카슈미르 계곡은 인도군이 점령하였다. 카슈미르의 귀속은 UN의 권고에 근거하여 주민투표로 결정짓도록 하였으나 인도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3 중요성이 지역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지정학적으로 매우 가치가 있는 지역이다. 많은 나라들의 국경에 접해 있으며 그 나라들은 정치적, 혹은 종교적으로 다른 입장에 처해있는 나라들이다. 카슈미르지방은 정치적 요인 외에 전략적 측면에서도 인도와 파키스탄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파키스탄의 경우 인더스 강 등 카슈미르의 3대 주요하천이 모두 파키스탄으로 유입되고 있기 때문에 수자원 확보라는 차원에서 이 지역은 생존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한편 인도는 중국과의 정치적 요인 때문에 카슈미르를 중요시하고 있다. 즉 예로부터 인도의 영토였던 아크사이친 OGIP)이 활동(1949.1)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한국군도 정전감시요원을 파견(1994.11)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위에서 살펴본 기본적인 내용을 통해 50여 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인도·파키스탄간의 카슈미르 분쟁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1) 갈등의 기원 분쟁의 개관1 갈등의 기원인도와 파키스탄의 오랜 갈등의 기원은 19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양측간의 분쟁은 한마디로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간의 분쟁이며, 두 국가의 종교를 대표하는 힌두교와 이슬람교는 종교적 차이 외에도 인종적, 언어적, 문화적 이질성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양지역이 아직 독립하질 못하고 대영제국의 식민통치를 받고 있을 때는 양측간의 갈등이 우발적이거나 산발적이었으며 그렇게 조직적이거나 심각한 국면에 처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양집단 간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지배국이던 대영제국이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힘이 쇠퇴해지에 따라 인도 대륙으로부터 철수를 모색할 때 부터였다. 1947년 영국이 인도에서 철수를 결정했을 때 힌두교도들은 인도대륙을 하나의 연방국가체제로 묶는 연방주의(Federation)를 지양한데 반해 회교도들은 소위 종교에 따른 2국가론(Two-Nation Theory)을 지향하여 회교도들만의 독립적인 국가를 선호했다. 따라서 1947년 8월 15일 영국이 철수하면서 인도 대륙은 지리적 인접성과 다수종족의 종교를 합병기준으로 하여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할되었다.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하게 되는데 두 국가의 접경지대에 있던 자무와 카슈미르가 자신들의 미래를 놓고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당시 힌두교 지역은 인도에, 이슬람(회교) 지역은 파키스탄에 편입하고 경합지역은 번왕{) 번왕: 독립 전의 인도에는 영국이 직할통치 한 주 이외에 크고 작은 500개 이상의 반독립국가 인 번왕국이 산재해 있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독립하면서 대부분의 번 왕국도 두 나라로 귀 속되었다. 그러나 일부 번 왕국에서는 분규가 발생했는데 그 중 하나가 카슈미르 지방의었는데 이 나라의 정치와 경제는 모두 서파키스탄이 좌우하고 동파키스탄(현재의 방글라데시)은 실질적으로 서파키스탄의 식민지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었다.{) 동서 파키스탄은 인도를 사이에 두고 약 1600㎞나 떨어져 있었다. 독립 당시 많은 회교도, 힌 두인, 시크교도 들이 새로운 국경을 넘어 인구의 재배치가 이루어졌는데 특히 서파키스탄의 인구이동이 심하여 인구의 거의 대부분이 회교도로 구성되는 재배치가 이루어졌다.따라서 서파키스탄에 대한 동파키스탄의 불만은 독립 초기부터 차츰 쌓여왔던 것이다.경제적 차이가 심각하게 벌어지면서 서로 다른 인종적 뿌리와 언어를 가진 이들을 결속시켜주던 회교국가에 대한 이념은 약화되어갔고 동파키스탄의 벵갈 회교도들은 더 이상 이슬람교에서 공통된 신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여기에 서파키스탄의 지도자들은 동파키스탄인 들을 동등하게 한민족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권위적으로 다루거나 이용하려는 경향이 많았다. 즉 양진영을 갈라놓은 미묘한 인종적, 심리적 차이는 경제적 불평등에 의해 더욱 악화되어 갈등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며 서파키스탄의 불평등한 정책은 동파키스탄을 자치와 독립의 방향으로 나가게 만들었다.1971년 3월 동파키스탄의 다수 정당인 아와미동맹당(Awami League)이 주도한 시민불복종운동이 발행하여 정국이 혼란에 빠졌다. 이때 서파키스탄인들은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수많은 벵갈인들을 살해하였으며 군대를 파견하였다. 결국 이 사건으로 수백만 명의 난민들이 인접한 인도의 서벵갈 지역으로 유입되었다.인도는 처음에 파키스탄의 이와 같은 내부분열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신중하게 대처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900만에 달하는 난민들이 자국으로 유입되면서 국가안보, 주민과의 불화 등 심각한 정치적 부담을 갖게 되었고 인도정부는 이에 서파키스탄과의 대결로 방향을 정하면서 인도 내에 있는 방들라데시{) 벵갈의 땅 이라는 의미를 가진 동파키스탄의 새로운 국명인들을 훈련시키고 게릴라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방글라데시 임시정부를 은밀히 지원했다다.
    사회과학| 2002.10.20| 19페이지| 2,000원| 조회(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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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문화] 정치발전과 정치문화 평가A+최고예요
    Ⅰ. 서 론정치발전론 혹은 제3세계정치론은 현대비교정치연구에서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즉 시각과 견해의 대립·갈등을 통한 비교정치연구론의 이론적 발전은 정치발전연구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정치발전연구는 정치적 변동을 초래하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요인으로부터 시작하여 새로운 제3세계정치체계의 속성, 사회변화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정치세력·조직·계급간의 경쟁과 갈등, 정치참여 욕구의 생성과 분출, 국가의 능력과 역할, 불안정과 혁명 등 방대한 스펙트럼을 지닌 주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연구대상의 맥락과 범주라는 측면에서 그 경계선을 명확히 긋기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비교정치론 강의2 : 비교정치연구의 분석논리와 패러다임, 김웅진 외 공저, 한울, 1998' p.13이는 정치의 복잡성을 간접적으로 말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정치는 사회과학의 한 분야이다. 또한 현대사회에서 정치는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과학을 이루고 있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정치현상만을 따로 떼어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사회과학의 특징이기도 하다. 우리가 본 보고서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정치발전 또한 마찬가지이다.정치발전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정치전반에 대한 성숙이라 할 수 있다. 정치발전은 정치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인자들의 성숙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정치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인자들을 함께 살펴보고 종합해 보아야 정치발전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정치발전은 정치학 분야에서도 인기 있는 분야이다. 인간은 누구나 보다 나은 미래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발전 중에서도 정치연구자들에게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분야가 바로 '정치문화'이다.문화란 인간이 살아오면서 늘 존재하는 것이었고 또한 앞으로도 늘 인간과 함께 존재할 것이다. 문화는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마찬가지로 정치문화는 정치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정치발전에 방향을 분석, 파악하는 것이다. 1950∼1960년대 초에 구현되었으며 사회조사기법에 의한 다양한 데이터와 인구학적 자료를 통계학적 계량적 방법으로 처리하여 정치문화에 대한 실증적 분석을 시도하여왔다.3문화론적 접근법문화는 의사소통처럼 사회 구성원들이 숙지하고 있고, 그들 사이의 상호행위에 사용하는 의미의 체계라고 규정하며 서로 다른 의미의 체계들에 대한 비교분석을 통하여 각국의 문화모델을 도출하고 그 안의 정치, 정치체계가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파악하며 성격을 규명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전체사회의 속성으로서 문화는 그 사회의 주요부문의 성격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끼치는 것으로 이해한다. 즉,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비교연구는 각각의 문화모델의 독특한 구조와 함께 각국의 정치체계의 고유한 특징들을 밝혀줄 수 있다고 본다.4) 정치발전과 정치문화정치발전연구에는 법적·제도적 접근방법, 경제결정론적 접근방법 등 여러 접근방법이 존재한다. 그중 정치문화가 정치발전을 설명한다는 개념아래 정치문화의 특성분석을 통해 정치발전을 설명하려는 문화결정론적 접근방법은 정치발전과 정치문화의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접근방법이다.즉, 정치문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정치문화가 정치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 아래 정치문화에 따른 정치발전의 정도를 규명하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연구에는 정치문화와 정치발전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지며 정치문화의 기본적인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정치발전에 관한 연구에는 많은 접근방법이 있지만 가장 효과적이고 정확한 정치발전연구는 정치발전을 구성하고 있는 제요소들을 면밀히 살펴봄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밝혀두며 정치문화와 정치발전에 관한 관계를 정치문화에 관한 이론인 알몬드의 정치발전이론중 문화적 측면의 정치발전을 중심으로 알아보도록 하겠다.2. 정치문화이론(알몬드 이론 중심)근대화론이 일반적으로 그러하지만 발전에 있어서 문화적 요인을 중시함은 역시 Max Weber의 문화중시의 영향에서 온 것임은 물론이다 대상과 정향의 조합을 통해 설정한 이념형을 통해 국가의 구성원들의 정치문화정도를 나눔으로써 궁극적으로 그 사회의 발전지표로서의 정치문화를 설명하려고 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는 정치발전에 있어서의 정치문화의 입지를 넓히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정치발전에 있어서의 심리적 측면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킨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2)시민문화론을 통해 본 정치발전과 정치문화의 관계알몬드의 연구에서도 보았듯이 정치문화는 시민들의 정치적 생활양식을 의미하므로, 어떤 사회의 현재 정치문화의 유형을 알면, 그 사회의 정치적 수준과 앞으로의 정치발전이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를 예측할 수 있다. 현대정치는 국민주권론에 따라 시민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므로 정치문화가 정치생활의 토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여적이고 민주적인 정치문화가 형성되면 민주정치의 발전이 촉진되고. 비참여적이고 신민적인 정치문화가 형성되면 민주정치의 발전은 정체된다. 이처럼 정치발전과 정치문화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한 나라의 정치는 무엇보다도 그 나라의 정치문화에 의해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제도를 차에 비한다면 정치문화는 그 차를 운전하는 사람에 비할 수 있다. 그 차가 어떤 방향으로 무슨 목적에 의해서 운전되느냐는 운전수에 의해서 결정이 되듯이 정치제도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느냐 하는 것도 주로 정치문화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사람의 지도자나 소수의 정치인들은 정치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역할도 사실상 그들이 살고 있는 정치문화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정치인들 스스로가 정치문화의 소산이며 그들이 대변해야 하는 국민이 또한 정치문화의 소산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사회의 정치는 정치문화에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주체를 이루므로 정치발전에 있어서 정치문화의 연구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정치문화는 사람들의 머리나 가슴속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문화 역시 인간의 행동정치적으로 중요한 정책이나 이슈 등에 관심을 덜 갖는 추세가 있다. 미디어 정치 시대에는 '떼거리 저널리즘(pack journalism)' 또는 '군거본능(herd instinct)'의 현상도 나타난다. 수십 또는 수백 명의 기자들이 한 사건만을 보도하고 다른 사건들은 거의 또는 조금밖에 취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유명한 기자의 기사선택, 구성 및 초점 등을 마치 양떼처럼 무턱대고 쫓는 경향이 있다.또한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 매스미디어는 이미 정치적인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수가 없다. 따라서 매스미디어는 다양한 정치적인 관점을 제공해주어 일반인들에게 자율적인 정치사회화를 시켜 정치문화를 만드는 역할보다는, 통치하기 유리한 신민형 정치문화를 만들기 위한 장치로서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될 경우 일반인들은 분명 매스미디어를 통하여 정치사회화가 이루어지겠지만, 그것은 결코 올바른 정칙사회화는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경우의 정치문화에 대한 여러 문제점 등은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3) 정치문화와 정치사회화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치문화는 '사회구성원이 정치적 객체에 대해 갖는 정치적 정향'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국민이 정치세계에 대해 갖는 태도, 느낌, 바람, 가치 등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사회화와 정치문화는 상호 연속과정이며 순환과정이라 할 수 있다. 정치문화는 정치사회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도 있고 동시에 정치사회화는 정치문화에 의해서 조건지워지고 영향을 받게 된다.정치사회화는 정치적 가치가 형성되는 동적 개념인데 비해, 정치문화는 이미 이루어져 있는 정치가치의 정적 개념이다. 예컨대 정치적 권위(political authority)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은 정치문화의 측면이고 어떻게 해서 그러한 가치를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정치사회화의 측면이다.)현대정치과정론, 이영호 외, 법문사, 1985.따라서 정치발전의 요인으로서 정치문화를 접근할 때 정치사회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한 사회의 정치문서 의인주의라 함은 1차적 집단지향이라 할 수 있다. 즉 개인과 집단 간의 관계에 있어 혈연적 유대나 사적인 친분 관계가 개인과 개인을 묶어주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보다 공식화된 집단에도 제도보다 사람, 즉 인물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경향도 권력의 의인화라고 설명될 수 있다.이에 해당하는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① "관청과 어떤 문제가 있을 때에는 친척의 도움을 받아야 일이 잘 해결된다."② "가까운 친척이 감옥살이를 할 만큼 죄를 지어도 도리상 고발해서는 안 된다."③ "웬만한 일은 법적으로 해결하기 보다 잘 아는 사람을 통해 해결하는 것 이 더 빠르 고 현명한 일이다."첫번째 질문에는 57%가 찬성을 했고, 두번째 질문은 36%가 찬성을 했다고 나와 있다. 세번째 질문에는 무려 75%가 찬성했다. 이것은 다른 각도로 한국인의 법에 대한 불신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3) 형식주의 성향형식주의는 어떤 행동이 가져올 결과는 경시하고 오히려 그 행동이 어떤 추상적인 윤리 원칙에 부합되느냐만을 강조하려는 경향을 의미한다.이에 대한 질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① "며느리를 선택할 때는 본인도 중요하지만 가문은 더욱 중요시해야 한다."② "외국으로부터 상품을 수입할 때 제3국으로부터 수입하는 것보다 조건이 불리하더라 도 우방국으로부터 수입해야 한다."첫번째 질문은 반응이 반반으로 찬반이 나누어진다. 두 번째 질문은 57%가 찬성함으로써 우방국이라는 명분을 택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 밝혀진다.4) 신용의 성향여기서 신용이란 이웃이나 동족시민에 대한 태도를 말하며 정부에 대한 신용을 말하지는 않는다.이에 대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① "일반적으로 사람이란 믿을 수 없으므로 사람들과 접촉을 할 때 조심하지 않을 수 없 다."② "누구든지 기회만 있으면 나 같은 사람을 이용하려고 한다."첫번째 질문에는 81%가 찬성을, 두번째 질문에는 48%가 찬성을 하여 밖의 세계란 자기에게 위협적이고 자기를 착취하려고 하는 부정적인 세계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대중의 동족시민간의 일체감이란 매겠다.
    사회과학| 2002.10.18| 23페이지| 2,000원| 조회(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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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학] 지역주의에 관하여 평가A좋아요
    【목 차】Ⅰ. 들어가며...-한국정치의 고질병 지역주의Ⅱ. 풀어가며...1. 지역주의에 관한 짧은 고찰1) 지역주의의 일반적 개념2) 외국의 지역주의① 서구의 지역주의② 미국의 지역주의③ 일본의 지역주의2. 한국의 지역주의1) 한국사회의 집단화 현상과 집단이기주의① 한국사회의 집단화 현상② 집단이기주의2) 한국사회 지역주의의 특징3. 지역주의의 원인과 영향, 해소방안1) 지역주의의 원인① 역사적 요인② 사회·심리적 요인③ 정치·경제적 요인④ 기타 요인⑤ 종합2) 지역주의의 영향3) 지역주의 해소 방안① 정책적(제도적) 해결방안② 의식적 해결방안Ⅲ. 맺어가며...-바람직한 지역주의 형성의 필요성과 한국 정치의 미래한국정치론-지역주의: 풀어야할 과제Ⅰ. 들어가며...우리가 사는 한국사회에는 고질적인 병폐들이 많다. 어느 나라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다 마찬가지겠지만, 국민의 일원으로써 우리나라를 볼 때 참으로 답답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흔히들 '한국사회의 병폐'란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 지대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결코 해결되지 않는 과제를 말한다. 우리 사회에는 많은 고질병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중 대표적인 것이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집단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의 다방면에서 존재하고 있는 집단화 현상은 기업이나 정부의 인사에서 혹은 입시 등에서 나타난다. 이는 사회 다방면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물론 정치 또한 예외일 수 없다.한국정치에서의 집단화 현상은 주로 '지역주의'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는 지역주의라는 말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주로 선거를 통해 나타나는 정치에서의 지역주의 현상은 우리나라 정치의 골치 아픈 문제임과 동시에 현 정치에서 나타나는 혹은 사회 전체적으로 나타나는 여러 문제들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1987년의 대통령 선거이래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이른바 한국의 지역주의 현상은 여전히 우리 정치의 쟁점이 되고 있다.한국의 지역주의 현상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진 특징은 말로는이탈리아의 독립을 주장하는 북부동맹당이 북부에서 20%의 득표율을 장악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지역주의의 본질은 패권적 지역주의와 저항적 지역주의에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유럽은 하나같이 국가의 중앙집권성을 완화하고 소외지역들에 대한 재정지원과 지역등권을 강화하는 '지방화'를 추진하고 있다.역사적으로도 봉건적 신분제를 무너뜨린 서구의 민주화 과정은 지역적으로 구성된 시민공동체를 기본단위로 설정하여 각 지역의 대표들로 중앙권력을 구성하는 지역등권 이념을 구현하는 과정이었다. 즉, 지역패권과 지역차별 및 과도한 중앙집권주의는 근대 시민민주주의 이념에 대한 정면 부정이다. 따라서 지방자치제의 권한확대를 위한 투쟁과 함께 지역패권에 대한 소외지역의 지역주의적 저항투쟁은 근원적 민주화 운동에 속하는 것이다.2 미국의 지역주의미국의 경우는 초기 남부와 북부, 그리고 서부의 강한 지역적 주체성에 따라 지역주의가 파벌주의적 성격을 띠고 나타났으나, 남북전쟁 후 이러한 파벌주의는 쇠퇴하고 긍정적 지역주의에 의한 지역문제가 1930년대 사회과학분야에 나타났다. 특히, 미국은 종족 내지 사회문화적 이질성으로 인한 분리주의적 움직임은 일어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미국의 지역주의가 경제와 정치의 역학관계에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1950년대와 60년대의 국가번영시기에는 지역주의가 뚜렷이 대두되지 않았으며, 1970년대에 새로이 부각된 지역주의는 1980년대 중반에 와서는 점차 약화되는 추세에 있다.3 일본의 지역주의일본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소위 현민성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주의가 존재하고 있다. 소후에 다까오 교수는 일본인의 특성을 그 출신 지역에 따라서 나누고 있다.일본 역시 이러한 지역주의를 소위 현민성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데 주로 그 발생 원인은 기후, 풍토와 경제적 요소로 돌리고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동북부는 기후도 나쁘고 경작기술도 낙후하여 수확의 양이 적다. 이 때문에 본가와 분가가 서로 단결해서 돕지 않으면 같이 무너진다. 그렇기주의의 영향도 간과하지 못할 것이다.우리나라의 지역주의는 앞서 살펴본 외국의 지역주의와는 다소 다른 특징을 가진다. 다른 나라의 지역갈등은 대개 인종, 언어, 종교 등 인위적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들 때문에 비롯되지만 우리나라는 단일민족국가로서 단일언어를 사용하는 다종교 국가이며, 지방분권적 색채가 강한 서양의 여러 나라들과는 달리 통일신라 이후 오랜 통일국가 체제를 유지해온 국가에서 발생한 지역갈등이라는 점에서 특수성이 있으며, 바로 이 특수성 때문에 좀처럼 풀리자 않는 문제의 심각성이 제기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유고슬라비아의 내전과 소연방의 각 공화국의 붕괴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민족간의 물리적 결합은 갈등의 요소를 내재하고 있다가 기회가 주어지면 분리 독립운동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와는 전혀 다른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동일성 안에 존재하는 분리성은 그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없는 관계로 더욱더 어려운 숙제인 것이다.또한 한국의 지역주의 현상에게 무엇보다 두드러진 특징은 말로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지역주의를 비판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양상은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지역주의처럼 지속적인 비판과 개선의 대상으로 지목되면서도 그 현실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사회현상들이 허다하다. 이를 두고 흔히 고질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사회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들이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경우에는 그 진단과 처방이 비현실적이거나 부적절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실 우리 우리사회의 지역주의에 대해 모두가 비난하는 듯이 보이지만, 현실사회의 조건에서 한국의 지역주의가 왜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거나 서로 다른 견해들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자가당착에 빠져 결국 지역주의의 틀 안에 갇혀있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지역주의의 두 번째 특징이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한국에서 지역주의는 호남, 영남, 강원, 충청 등의 행정지역 또는 그 출신지역에 따른 차이, 차별, 맥락에서 보면,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의 지역간 이동, 적어도 도간 경계를 넘어서는 인구의 지역이동은 아주 낮거나 거의 전무하다 할 수 있고, 이를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해서 보면 한국 역사에서의 인구의 횡적 이동, 예컨대 영남에서 호남으로 호남에서 영남으로의 이동과 관서에서 관북으로 관북에서 관서로의 이동은 아주 희귀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횡적 인구이동의 희귀성은 곧 갈등 야기와 갈등 해소의 기본이 되는 사회적 상호작용이 횡적으로는 거의 일어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설혹 일어났다 해도 그것이 지역갈등과 같은 사회문제로 연결될 정도로 주목의 대상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지적해 주는 것이 될 것이다.둘째, 관인지배의 정치형태는 벼슬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것만큼 벼슬을 구하려는 엘리트의 행위와 욕구를 높이 자극하는 것이 될 것이고, 따라서 벼슬을 획득하는 장소로의 엘리트 이동성향과 그 장소 내에서의 집합밀도는 아주 강하고 짙은 것이 되어서 엘리트간 갈등은 치열하고 첨예화한 것이 될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엘리트가 아닌 일반 평민의 경우는 벼슬을 구하기 위하여 벼슬장소로 이동해 가는 성향은 아주 낮은 것이 될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들간의 벼슬장소(중앙)에서 지역갈등이 야기된다면 그것은 벼슬 이외의 다른 가치의 배분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것이라는 것은 적시해 주는 것이 될 것이다.) 한국사회의 갈등구조, 송복, 1997, 경문사, p306-307물론 위와 같은 설명이 우리나라에 오랫동안 내재되어있었던 지역주의를 설명하는데는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것을 현 한국 지역주의 원인의 전부로 치부하기엔 시간차가 많이 존재한다. 요컨대 위와 같은 경우는 결국 현재 우리 사회의 지역감정·지역갈등의 밑뿌리를 영호남간의 관계에서 찾고 있고, 그 영호남간의 역사적 관계가 현재 심각히 노정되고 있는 지역감정·지역갈등의 주장본인으로 인식되고 있는 데에 큰 오류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지역감정·지역갈등은 정치적으로를 촉진시켰다. 1960년에서 1985년까지 25년 간에 호남지역에서 377만 명이 타지역으로 이동하였으며 충청지역은 192만 명, 경상지역은 92만 명이 이동해 갔다. 이들은 도시의 저소득층 또는 빈민촌을 형성하여 나갔으며 심각한 지역별 인구격차를 낳았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 표) 위의 논문, p. 69.를 참조한다.서울경기강원충청경상전라제주19433.58.27.010.219.016.30.9197017.510.75.413.830.420.41.2198523.815.54.310.929.914.81.2199024.418.33.710.428.913.21.2199524.021.83.210.928.011.71.1인구구성비변화 (국회 지역감정해소 특위 보고서, 1991)㉡정치·행정적 요인: 정치적 박해와 인사정책이 지역주의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 정치적 박해의 절정은 광주민주화운동을 가져왔으며 인사 편중을 합리화하는 지역간 안배라는 독특한 원칙을 만들었다.3·4·5공화국을 거치는 동안 장·차관의 총수는 411명이었다. 이중 영남출신이 159명으로 36.1%이며 전국구 및 유정회 소속국회의원도 30.8% 였으며 군장성(영남 28.3%, 호남 11.0%), 육군참모총장(영남 10명, 호남 1명), 정부투자기관 임원(영남 28.2%, 호남 5.4%) 등 모든 분야에서 영남인이 타지역보다 월등히 많이 차지했다. 한편 6공화국 들어서는 영남출신 중 기존의 대구·경북 중심에서 부산·경남 중심으로 바뀌었다.) 김호성, 위의 논문, p. 69.이러한 양상은 현 김대중 정권에 들어서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 98년 새정부에 들어서 정부 20대 핵심요직 중 56%가 호남 충청 인사로 배치되었고 통상산업부 및 산하 단체장 인사에서는 호남 출신우대가 심하고 무자격자를 기용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정부 기관뿐만 아니라 언론사, 방송사의 경우에도 호남인사가 집중배치 되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러나 정권은 새 정부 인사 전 1급 이상 공직자 267명중 호남인사는 12.7%인 33명이었고, 영
    사회과학| 2002.10.01| 20페이지| 2,000원| 조회(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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