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고...고백록 을 다 읽고 난 지금 이 책을 읽기 전 보다는 그래도 신에 대한 나의 무지가 조금이나마 깨우쳐 졌음을 느낄 수 있었으며 지금까지의 나의 신앙생활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먼저 글을 쓰기에 앞서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전체 13권 중에서 5권을 선택하여 글을 쓴다는 것이 왠지 나에게는 더욱 어렵게 느껴지며 비록 나의 짧은 지식과 생각으로도 어느 것 하나 빼놓을 것이 없는 것 같아서 이 책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이 책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대충 이러하다.로마 말기 라틴교부·신학자·철학자·성인.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지금의 알제리 수크아라스) 출생. 타가스테·카르타고에서 초·중등교육을 받았고 독학으로 라틴문학, 특히 베르길리우스를 애독하였으며 수사학에 뛰어났다.청년시절에는 타락한 생활 속에 빠지기도 하였으나 19세 때 M.T.키케로의 철학적 대화편 를 읽고 철학에 눈을 떴다. 이리하여 참 지혜를 구하기 시작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교에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그러나 성서의 소박한 문체나 가톨릭교회의 보수성에 만족하지 못하고 빛과 어둠이라는 이원론(二元論)을 주장하는 마니교의 합리주의와 미적 종교성에 이끌렸다.그 뒤 9년 이상 마니교를 접하면서 마니교적인 미학서《미와 적합》을 썼다.그러나 383년 로마에서 신아카데미아학파의 회의주의를 접하게 되어 마니교에서 떠났으며 384년에는 밀라노에서 수사학 교수가 되었다.386년 플로티누스 등의 신플라톤주의의 책을 읽고 을 보았다는 신비적 체험을 하고 회의주의를 떠나 진리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었다. 또 밀라노 주교인 암브로시오의 설교를 듣고 감동하여 그해에 그리스도교로 회심하였다. 회심 후 교수직을 그만두고 밀라노 교외의 산장에서 토론과 명상을 하면서 《독어록(獨語錄)》 등 철학적 대화편을 저술했다. 거기에서 성서의 제4편을 읽고 흥분과 경건함을 경험한 것은 그의 정신에 큰 전환을 가져왔다. 388년 고향으로 돌아와 새로운 친구들과 수도원의 생활을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마태복음7: 7,8을 인용하여 이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를 알고 구하기를 원하는 듯한 -내가 느끼기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을 볼 수 있다.아우구스티누스의 어린 시절과 청년시절은 보통의 사람들과는 좀 다른 삶을 산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 시대, 그 나라의 환경이 그러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 수는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성자의 삶은 절대 아니었다. 물론 그러한 방황의 시간들이 하나의 과정이었음을 나도 알고 있다.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방황하던 시기에도 절대적 신의 존재는 의심하지 않았다.그는 물질적 쾌락 안에서 방황을 했지만 더불어 철학적 고뇌 속에서 절대자의 존재 만큼은 확신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깊은 참 진리, 신앙의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어떻게 살펴보면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의 기도와 눈물이 아우구스티누스를 그러한 방황의 시간 속에서 지켜준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아무튼 아우구스티누스의 성장과정은 그 당시의 다른 아이들과 별 다름이 없어 보였다. 물론 그의 지식과 재능은 남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었지만 말이다.이러한 뛰어난 재능을 주심을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한 때는 세상의 지식과 쾌락에 빠져 어머니를 한 평생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게 했던 그였지만 그의 그러한 모습에서 인간의 모습을 즉 신 앞에서의 인간의 한계성과 무언가를 찾아 갈구하지만 그 자신도 그 찾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부족한 무언가를 찾고 헤메이는 인간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다.아우구스티누스의 신앙과 삶이 더욱 가치로운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찾은 신앙의 길이 방황의 도중에 있었기 때문이다.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이와 같은 일을 되풀이하면서 살지만 그들과 아우구스티누스와의 다른 점이라면 - 그것이 지금의 아우구스티누스를 만들었을 것이다.- 인간들이 그토록 찾아 헤메는 어떤 진리가 바로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아우구스티누스는 알았던 것이다.아우구스티누스의 오랜 방황의 근본 이유 중도 유형의 존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유한한 질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세상엔 유한한 존재들로 가득하며 악 이란 것이 발생한다. 그는 또한 악 에게 존재 라는 속성이 인정될 수 있는가에 대해 탐구했다.아우구스티누스는 악 을 본성의 상실이나 결핍으로 보았다.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이 깨달은 이러한 진리를 독자로 하여금 알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전 생애에 걸친 참회와 고백을 하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공부했던 인간의 지식을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재능을 바탕으로 인간의 언어와 생각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진리들을 표현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책을 통해서 볼 수 있었다.책의 내용이 좀 어렵고 지루한 면도 있었지만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도 보통인간 -특히 나 자신- 이라면 생각하기도 힘들고 또 그것을 궁금히 여기더라고 다가가기 어려운 문제들을 아우구스티누스는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특히 영원과 시간의 개념이라든가 인간의 자유의지, 창세기에 나오는 말씀들 그리고 죽음에 관한 그의 생각들은 내가 이 책에 빠져들기에 충분했다.그가 남들보다 공부를 많이 했고 그 방면에 뛰어났던 것을 빼면 그의 생애는 누구나 겪는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상- 그러한 삶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하지만 그는 그러한 일련의 인생 속에서 진리를 찾아냈고 더욱더 그 진리에 다가서려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세상을 살면서 어느 누가 친구의 죽음을 경험하지 못하겠는가? 또 어느 누가 세상의 사상을 듣거나 또는 관심을 가져 보지 못했을까? 하지만 누가 이러한 일들 속에서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진리를 찾고자 노력하며 방황을 할 수 있을까?젊은 시절 그의 방황은 더욱더 그에게 진리를 찾게 만들었고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생각하고 과연 어느 것이 올바를 관계인지를 찾게 만들었다.그 결과 그의 이론들 즉 영원과 시간의 관계라든지 또는 창세기 1장 2절의 말씀의 음성과 음악의 메타포는 나에게 무언가를 밝히 밝혀주는 느낌 마저 들게 했다.또 선의 의미를 세상에 창조된 피조물이 모두가 하나님에 의해 하지만 이러한 선은 절대적 선이 아닌 것이다.왜냐하면? 비록 세상의 피조물이 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상 어떠한 존재의 선 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無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즉, 조명빛과 조명의 관계로써 설명될 수 있는데, 조명빛도 빛이고 조명에 의해서 생긴 빛도 빛이지만 그 조명에 의해서 비추어진 빛이 빛의 근원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아마 이런 뜻인 것 같다. 사람들은 즉 피조물은 밝은 빛이 비춰진 곳을 선이라 생각하며 그곳에서 선한 것을 발견하지만 그 빛이 다른 곳을 비추게 되면 더 이상 그곳은 빛이 아니다. 즉 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다시 말해서 피조물은 비춰진 빛에 의해서가 아니라 빛의 근원 즉 신에게 완전히 의지하고 그곳에 머물러 있을 때 비로소 선 안에 거하고 그 안에서 진리를 찾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으로 물든 자유의지를 선한 의지로 만들어 주는 것은 오직 신의 은총뿐이라고 역설했다.내 영혼의 집은 당신이 들어오시기 에는 비좁고 낡으니 당신이 이를 넓히고 고쳐 주시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눈에 거슬리는 것도 있지만 나는 그것을 숨기려 하지 않고 참회합니다.’라는 그의 고백이야말로 신 앞에 선 인간의 바람직한 태도이다.신은 절대적 선이고 욕구가 없으며 안식, 그 자체이며, 영원한 평화인데 비하여 피조물은 신에 대항하는 전적인 무, 선의 전적인 결여 사이에 위치한다.즉 인간은 신에 의해서 無’로부터 창조된 상대적 존재이다.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상, 존재를 지닌 선’이며, 동시에 無로부터 만들어진 이상,‘절대적인 존재와 선을 결여하고 있는 소멸적 존재’이다.끊임없이 원한다는 것은 인간은 부단히 無로 돌아갈 위험을 면하지 못하므로 그 존재의 결여를 보완하려 한다는 말과 상통한다.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욕구하지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 인상깊다.그렇다면 인간은 불행하기도 하지만 피조물 중에서 가장 큰 행복을 소유한 존재라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만족이 없으 대상인 세상의 것 은 인간 자체보다도 더 소멸적 이다.자신보다 더 소멸적인 것에 의해 소멸성을 모면하려 하는 욕망은 헛될 뿐이다.인간의 궁극적 목적인 참된 행복이란 무엇일까?안식을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행동 그 자체에서 행복이 생긴다. 신을 사랑하는 신실한 신앙심으로 겸손한 삶을 살다보면 그러한 인간의 욕구는 저절로 신을 겨냥할 것이다. 안식을 위한 능동적인 노력, 신을 사랑하는 그 자체가 행복이다. 삶에서 행복을 얻고 마침내는 안식에 도달할 수 있다.방황 중에 아우구스티누스는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라는 책을 읽고 물질적 사고 방식에서 정신적 세계로 눈을 뜬다. 진리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한 것이다.인간이 자기보다 덜 소멸적인 것을 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듯 진리는 영원불변한 것이다. 영원한 것은 유한세계에 존재할 수 없으므로 진리는 곧, 무한세계에 존재하는 신이다. 신을 사랑하는 것에서 우리는 행복을 찾으므로 진리를 탐구하면서도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처음에 충분히 이해하기 전에는 진리가 꼭 영원불변 하다는 것에 의문을 가졌다. 갈릴레이 이전에는 천동설이 우주질서의 진리였지만 지금은 지동설이 우주질서의 진리로 밝혀졌듯이 진리란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변적이고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하지만 독서를 마친 후, 내게 큰 오류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사고 범주에서 유한적으로 파악하려 한 것이다. 유한적 존재가 무한적인 신의 사고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이 당연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무한이라는 영원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했음을 후회하기도 하였다.아직도 그러한 개념들이 확실히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이것만은 말할수 있다.시간을 초월하여 스스로 시간조차 창조하신 절대자에게 시간의 흐름이란 의미가 없다.이러한 것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의 영혼을 어떻게 되었을까를 걱정하는 것은 헛된 일인지도 모르겠다.절대자는 미의 소유자이기 전에 미의 본체이며, 진리의 근원이기 이전에 진리 그 자체이다. 우매한 인간은 일곱에 셋을
{제 목: 피터드러커 의 {21세기 지식경영을 읽고{{제목: 21세기 지식 경영(Management Challenges for the 21st Century)옮긴이 / 이재규서울대 상과대학 상학과 졸업.서울대 대학원 경영학과와 경북대 대학원 경영학과 졸업현대자동차 근무.영지약품 이사 역임. 포틀랜드 주립대 객원교수.대구 상공회의소 연구위원.자본시장 이야기. 경영학 원론.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미래의 결단.리엔지니어링과 카이젠. 회사인간의 흥망. 21세기 오디세이. 미래의 조직 등펴낸이 / 박용정펴낸곳 / 한국경제신문사제1판 1쇄 인쇄 / 1999년 6월 20일제1판 5쇄 발행 / 1999년 9월 15일지은이: 피터드러커(Peter F.Drucker)피터 드러커는 190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그곳과 영국에서 교육을 받았다.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 신문기자로 근무하면서 공법 및 국제법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영국의 국제은행에서 경제전문가로 근무했다.1937년 미국으로 건너가 최초 저서인 경제인의 종말을 출판했다. 그후 펴낸 경영관련저서들과 경제사회에 대한 분석은 전세계적으로 폭넓게 읽히고 주목받고 있다. 자서전과 2권의 소설, 여러권의 수필집을 낸바있고 수많은 경영관련 잡지와 신문에 다년간 지속적으로 기고하고 있으며 의 논설 집필자이기도 하다.그의 저서는 전세계2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출판 되고 있다.교수로서도 뛰어난 경력을 갖고 있는데 베닝턴대학에서 정치 및 철학교수로 근무했으며 GM의 상담역과 마셜플랜에도 참여했다.50년 뉴욕대 대학원 경영학 교수로 취임했으며 71년부터 지금까지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에 있는 클레어몬트 경영대학원의 클리크 사회과학 석좌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지금까지 피터드러커의 로는현대의 경영, 경영자의 조건, 단절의 시대, 경영의 실제, 미래기업,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비영리단체의 경영, 미래의 결단 등 다수가 있다.처음 피터드러커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자신이 쌓은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자신의 학문을 정리하는 입장에서 책을 펴낼 계획(주위의 권유로)을 하고 있었으나 본문의 내용처 럼 새로운 경영패러다임 들이 과거 경영의 원칙과 기본가정을 변화시키고 있는 이 시대에 기존의 경영이념들은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미래의 기업과 지식인들(관리자) 이 변화의 시기에 변화주도자가 될 수 있는 방법과 그들이 임무수행에 필요한 정보는 무 엇인가? 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으며 특히 한국인들이 IMF라는 엄청 난 변화의 시기를 막 극복하고있는 시점에서 하나의 경영지침서로서 세계의 기업들이 새 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이때에 선진국으로의 발돋움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자 하는데 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Ⅰ서론이 책의 지은이인 피터 드러커는 21세기 현실을 검토하지 않고 경영 전략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며, 앞으로 수십년 내 아니면 수년 내 에 틀림없이 일어날 여러 문제에 대처하지 못하는 한 혼란의 시대, 구조변화의 시대, 전환기의 시대에 생존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이에 대한 방안으로 피터드러커는 지식 경영을 강조하고 있으며 어제의 것들을 좀 더 생산 성 있게 변혁시키는 노력의 일환으로 내일(미래)의 핵심적 노동력은 생산성 뿐 만 아니라 성취감 또한 높은 지식근로자들 이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이 책은 전체가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그럼 책의 각 장을 중심으로 그 내용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고 결론 부분에 가서 본 내용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방안을 모색하고 나의 생각을 실어보기로 하겠다.Ⅱ1장은 새로운 경영패러다임들이 과거 경영의 원칙과 관련된 기본 가정을 어떻게 변화시켜왔는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과거 경영에 관한 연구가 최초로 시작된 이래 경영의 현실과 관련해 두 종류의 가정이 대 부분의 학자들, 저술가들, 그리고 실무자들 사이에 받아들여졌는데 그 첫 번째 가정은 경영 의 원칙에 관한 것(경영은 기업 경영이다. 2.세상에는 단 하나 의 조직구조만 존재한다 - 또는 존재해야만 한다. 3.세상에는 사람을 관리하는 과업에 단 하나 의 올바른 방법이 존재 한다 - 또는 존재해야만 한다.)이고 두 번째 가정은 경영의 실천 또는 실무(Practice)와 관 련 된 것(1.기술시장 그리고 최종 수요자는 주어진 것이다. 2.경영의 범위는 법적으로 규정 된다. 3.경영은 조직 내부에 초점을 맞춘다. 4.국경으로 둘러싸인 한 나라의 경제는 기업과 경영의 생태환경 (ecology)이다.)인데 이런 가정들의 대부분이 80년대 초까지는 대부분 부합 되어 왔으나 지금에 와서는 그 유용성이 소멸했다는 것이다(물론 미래는 논할 필요도 없다.) 이런 경영이론들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경영실무에 심각한 장애물이 되어왔다는 것이다. 즉, 경영이 관심을 두는 것, 그리고 경영이 책임지는 것은 조직의 성과와 조직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라는 것이다.그리고 2장 3장 4장에서는 새로운 전략적 현실들에 대해서 말하며 기업이 왜? 전략이 필요한가와 변화의 시기에 변화주도자가 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새로운 정보혁명이란 어떤 것이며 최고 경영자의 임무수행에 필요한 정보는 무엇인가? 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여기서 말하는 전략적 현실이란 다음의 다섯 가지의 현실을 말하는데 1. 선진국의 출산율 감소 2.가처분소득 분포의 변화 3.성과의 정의 4.글로벌 경쟁력 5. 경제적 세계화와 정치적 분열 사이에 점증하는 부조화이다. 특히 선진국의 출산율 감소는 현시대의 가장 중요한 새로운 현실로써 대두되고 있고 이것은 곧 노령인구의 증가를 뜻하는데 아직도 더 일할 수 있는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정년이라는 제도하에서 그 가치가 빛나지 못 하는 지식 근로자 들에 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점에서 내 개인적으로도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던 부 분 이었다.그리고 새로운 정보혁명이란 무엇일까? 이것은 기술, 기계, 기법, 소프트웨어 또는 속도의 혁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의 의미는 IT의 T로부터 I를 말하는 것인데 IT는 정보 기술(information technology)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정보기술은 data(자료의 수집, 보관, 전송, 제공 등)에만 초점을 맞추었는데 즉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가운데 T (기술)에만 집중한 것이었다. 새로운 정보혁명은 I(정보)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따라서 최고 경영자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생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해야하는데1. 내가 함께 일하고, 내가 의존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가?어떤 형태로? 그리고 언제?2. 나 스스로는 어떤 정보가 필요한가? 누구에게서? 어떤 형태로? 그리고 언제?라는 질문을 스스로 끊임 없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질문들은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형성 하고있다. 때문에 최고경영자는 외부의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정보가 될 것이 라는 것이다.다음으로 5장에서는 지식근로자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개인과 조직의 기본적 태도 에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20세기의 회사가 보유한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은 그 회사의 생산시설(production equipment)이듯이 21세기의 기관들 이 보유 하는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은 그 기관의 지식근로자와 그들의 생산성이 될 것이 라는 것 을 내다보고 있다.5장부터가 이 책의 주요 주제를 다룬 부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지은이는 지식근로 자의 시스템으로서의 지식작업을 중요시했다.즉 ,지식 근로자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거의 언제나 작업 그 자체가 구조조정 되어야 하고, 작업 자체가 시스템의 한 부분으로 되어야만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지식 근로자의 생산성은 21세기 최대의 경영도전이며, 최대의 기회요인, 그리고 내부약점 (인구 출생율의 감소- 이것은 즉, 노령화된 인구의 증가를 뜻함.)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과거 100년동안 세계의 지도자로 등장한 국가와 기업들은 육체근로자의 생산성을 향상시킨 국가와 기업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세계의 주도권은 지식근로자의 생산성을 가장 체계적으 로, 그리고 가장 성공적으로 향상시킨 국가와 기업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