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란 1%의 영감과 99 %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라는 명언은 남긴 에디슨. 그는 일생동안 총 1,093개의 특허를 내었고 죽는 까지도 발명에대한 열의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과학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학생으로써 그의 삶을 되집어 보고 그가 발명한 발명품에 대해서 조사하면서 과학에 그가 얼마나 많은 공헌을 했는가를 되집어 볼수 있었다.에디슨의 생애에디슨은 1847년 2월 11일 오전3시 미국 오하이오주의 밀란에서 태어났다 가족의 막내로 태어난 에디슨은 몸이 약해서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했었다. 이미 두 아이를 어릴 때 잃어 버렸고 에디슨의 첫 번째 생일 전에 세 번째 아이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몸이 약한 반면 에디슨은 어린 나이에도 실험을 시작할 정도로 호기심이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철도가 오하이오로 들어오게 되면서 오하이오가 교통중심으로서의 중요성이 줄어들게 되어 들게 되어 1854년 에디슨 나이 7살이 되었을 때 미시간주의 휴런 항구도시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의 삶은 어려서부터 남과 달랐다. 하지만 그의 특별함을 아무도 좋게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뭐든 끈질기게 물었고, 불은 왜 타는가를 실험하다 화재를 일으키는 가 하면, 계란을 품고 몇 시간이나 닭장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등 여러모로 문제아였고, 학교 성적은 형편없이 나빠 1856년 에디슨 나이 9세때 학교에서 저능아라고 해서 국민학교를 중도(입학 후 3개월)에서 퇴학하다. 그의 모친 밑에서 12살이 될 때까지 공부를 배우고 여러 문학서적외에도 '자연 실험 철학'등과 같은 과학 서적 또한 보아 이를 보고 지하실을 실험실로 삼아 그 책에 나오는 여러 가지 실험을 실제로 해 보았다. 그는 과학이나 전기에 관한 실험을 하기 위해 자금을 마련하려고 1859년 에디슨 나이 12세때 그랜드 트렁크 철도의 신문팔이 소년으로 돈 벌며 공부하였다. 10대의 에디슨은 아주 기업가 적이었습니다. 그는 과학이나 전기에 관한 실험을 하기 위해 자금을 마련하려고 휴런 항구에서 신문과 잡지를 파를 철도 직원이 모두 내려 버렸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계속 철도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에서 예기치 않은 전환점이 일어났다. 어느 날 마운트 클레먼스 역장의 어린 아들이 화물기차가 오고 있는데 철도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생각할 틈도 없이 에디슨은 철도로 뛰어가 아이를 안전하게 구출해 내었습니다. 보답으로 역장은 에디슨을 전신기사 견습으로 고용하여 에게 아주 복잡한 철도 전신기술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16살에 전기 기사로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이 일은 전신 부호를 말로 말을 부호로 바꾸는 빠른 판단력과 기술을 요하는 일이었습니다. 월급도 많았고 유망한 일 자리였습니다 전신가시로써 미국 중부와 서부지방을 오가면서 일했는데. 이 당시 보스턴에서 M.패러데이가 쓴 《전기학의 실험적 연구》를 읽고 설명에 복잡한 수식(數式)을 사용하지 않은 것에 감탄하여, 그 책에 나와 있는 실험을 모두 시험해 보고자 했었다. 이러한 노력 끝에 1868년 그는 전기 자동투표등록기의 발명으로 처음으로 특허를 따냈다. 이것은 의회에서의 표결을 전신에 의해 자동적으로 기록하는 기기였는데 채용되지는 않았습니다이 무렵 그의 나이는 21세였다. 하지만 그의 발명이 그리 환영을 받지 못하자 다시 연구 끝에 1869년에 제2의 발명인 주식시세 표시기를 발명했다. 주식시세표시기는 남북전쟁 직후 투기붐이 일어난 월스트리트에서 5000달러에 팔려고 생각했던 것이 4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이 발명들로 그는 1870년에 그의 기계들을 생산하는 공장을 뉴저지주의 도시인 뉴어크 공장과 실험을을 차렸다. 1871년 그의 나이 24에 자신을 끔찍이 사랑하던 어머니 낸시가 세상을 떠났다. 더욱 열심히 발명에 몰두한 에디슨은 이 해에 타이프라이터를 발명 또한 인자(印 字)전신기를 발명해 내고 그 다음해인 1872년에 2중 전신기를 발명했다. 그 다음해인 1873년에 26세 같이 일하던 메리 스털웰과 결혼을 하고 1874년에 동일 회로에 의한 4중 송신 기계장치를 개발했습니다. 이 것은 전선 하를 짓고서 그곳으로 옮겨서 연구를 하여 탄소 송화기에 의한 전화를 발명하다. 이것은 금속 진동판이 음성에 의해 흔들리면 진동판이 탄소 판을 누르거나 늦추거나 하여 탄소판 전기저항을 변화시켜 전류의 강약이 생기게 하는 구조였다. 비슷한 시기에 알렉산더 그레엄 벨(Alexander Graham Bell)이 발명한 전자식 전화는 송화기의 감도가 나빴으나 이 탄소 송화기는 분명하게 말을 전할 수 있었다. 후에 에디슨은 통화 회로에 유도 코일을 넣어 더욱 멀리까지 송신할 수 잇도록 이를 개량하였다.(*참고: 전화는 벨이 발명했다지만, 실용적인 것은 에디슨의 이 탄소송화기가 주류를 이루 도록 사업적으로 성공했다. 그가 이 곳에서 처음 발명한 것은 전화의 탄소 송화기 였다.)1877년 가을에 그는 한 기계공에게 도면 한 장을 주며 그대로 만들어 줄 것을 부탁했다. 이틀 뒤 그 기계는 다 만들어졌고 그는 여러 사람들을 불러 모아 그 기계를 선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둘러싼 그 가운데 그는 기계의 손잡이를 돌리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은 그의 노랫소리에 웃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그가 노래를 멈추고 기계의 손잡이를 다시 돌리자 작은 소리였지만 좀 전 에디슨이 불렀던 노래와 똑같은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말하는 기계, 즉 축음기를 발명한 것이다. 이 발명으로 그는 '멘로 파크의 마술사'라고 불릴 만큼 유명하게 되었다.다음해인 1878년 에디슨은 많은 사람들의 후원 아래 백열전구의 연구에 착수했다. 이 연구는 그의 생애 중 가장 위대하다고 일컬을 수 있을 만큼 그의 열정과 끈기를 보여준 것이었다. 이 연구에서 그는 무려 1천 5백 이상의 재료로 필라멘트를 만드는 실험을 하였다. 그래서 결국은 일본 교오또의 교외에 있는 야하따의 대나무 섬유를 그 재료로 하여 전등 시대의 개막을 열었다. 이렇게 연구하던중에 부인이 죽고 다시 마이너 밀러양과 재혼을 하게 된다. 그후 그는 웨스트 오렌지로 연구소를 옮겨 발명을 계속했다. 1891년에 에디슨식 선광법발견하고 이를 이용 열심히 살다가 1931년 그의 나이 84세때 10월 18일, 글렌몬트의 자택에서 이 세상을 떠났다.※1880년부터 83년의 4년간은 발명가로서 에디슨의 생애중에서 최고조인 때였다.특허권 수--- 1880년 → 60건 1881년 → 107건 1882년 → 89건 1883년 → 64건으로 되어 있다.에디슨의 업적과 발명품들 (그의 발명품들은 발명된 연대순으로 나열하겠다.)다중(이중,사중) 전신기, 탄소 저항 송신기에디슨이 살던 당시는 전화 발명 이전이어서, 장거리 통신의 대부분은 모두 전신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날로 늘어만 가는 정보량을 위해서는 기존의 전신기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리하여 에디슨은 한번에 여라 회선의 통신이 가능한 전신기를 만들었다. 그 예가 '이중 전신기','사중 전신기'등 이다. 다음의 글은 당시 전신과 전화가 발명되기 전의 일련의 과정에 대한 설명을 인용한 인용구이다.--기존의 전신기는 1825년 영국의 스터전(William Sturgeon, 1783-1850)이 막대형 쇠붙이에 전선을 감아 전자석을 만들어 발표한 이후, 1829년 미국의 헨리(Joseph Heny, 1797-1878)가 이를 개량해 U자형 철심에 도선을 감아 보다 강력한 전자석을 만들었다. 이 전자석은 전화기의 벨에 이용되고 잇다. 그후 1831년 뮨헨 주재 러시아 대사관원인 실링 칸슈타트(Schiling Canhstsdt, 1786-1837)가 에르스텟이 발견한 전류의 자기 작용에 착안하여 전자식 전신기를 발명하였다. 그후 1837년 미국의 모스(Samuel Finleg Breese Morse, 1791-1872)가 모스 전선기를 만들어 실용화하고 1876년에 그라함 벨(Alexander Graham Bell, 1847-1922)에 의하여 전화기가 발명되었다.--탄소 저항 송신기는 흔히 탄소 송신기로 불리는 것인데, 이것은 속은 금속 전동판이 음성에 의해 흔들리면 진동판이 탄소판을 누르거나 늦추거나 하여 탄소판 전기저항 변화시켜 전류의 강약이 생기게 하는 구조였다. 있다. "1877년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의 최초형태." 소리의 기록은 진동을 일으키는 진동판이 붙어 있는 나팔관을 통해 소리를 모아 이 진동을 축음기 바늘로 전달한다. 이 진동은 바늘 아래에서 회전하는 원통에 부드러운 물질(예를 들면 밀랍)이 입혀 있는 표면 위의 나선 경로를 따라가며 바늘의 움직임을 조절한다.축음기'말하는 기계'--당시 에디슨이 만든 축음장치를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그 말하는 기계는 얇게 주석을 입힌 원통과 원통을 돌리는 핸들, 그리고 소리를 녹음하기 위한 강철 펜으로 구성되어 있다.에디슨은 이를 여러 번에 걸쳐 개량하고 또 개량했다. 개량된 축음기는 나팔형 송화기에 진동판과 바늘이 부착되었다. 그래서 음성이나 다른 소리로 인한 파장으로 인해 진동판이 흔들리면 바늘이 미세하게 움직여 주석을 입힌 원통에 소리의 파형에 대응한 홈이 새겨졌다. 이것이 바로 녹음인 것이다. 또한 이 새겨진 홈에 따라 바늘이 가게 하면 진동판이 진동하여 소리가 재생된다.이런 원리로 녹음과 재생을 하는 것이다. 이 축음기의 발명은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할 때 많은 사람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잇게 하는 직접적인 발판을 마련해 주기도 하였다. 후에 왁스 실린더와 축음기 판 등을 다른 사람들이 만들게 되자 축음기에 음악을 녹음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써 본격적으로 음악과 노래를 녹음한 레코드가 발매되었다.백열전구백열전구의 발명은 에디슨이 최고의 발명이자, 에디슨의 열의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발명이기도 하다.처음엔 그 역시 전구의 필라멘트로 다른 사람들처럼 탄소를 사용해 봤으나 신통치 않았다. 그후 백금선 필라멘트로 실험을 반복한 결과 만들어진 아주 가는 나사 모양의 백금선 필라멘트는 한시간 이상이나 빛을 내었다. 이 필라멘트는 4촉광이었는데 전구 안의 공기를 빼니 25촉광이나 되었다. 그는 이렇나 실험을 통해서 백열전구를 성공시키려면 전구 안의 진공도를 높이고, 고내열성 필라멘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일반적으로 금속에 전류를 흐르.
1. 자연 철학의 시대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자연에 대해 놀라움과 경이로움(taumazein)을 느꼈으며 자연과 인간을 분명하게 구분하지 않았다. 이들의 이런 감정은 먼저 신들의 활동으로 자연과 인간을 설명하는 신화를 만들어 냈다. 신과 인간이 분화되지 않던 신화 시대에 신인동형동성설(anthropomorphism)과 물활론(animism, hylozoism)은 모든 설명의 중심 태도였다.hylozoism : hyle(물질, 소재) + zoe(생명)신화 시대에서 철학의 시대로 이동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계기는 자연을 설명하는 데 이성(logos)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mythos : myo(닫혀진 상태, 분열 이전의 상태, 어두운 상태)logos : logein (말하다, 셈하다, 질서지우다)1.1. Miletos학파 (이오니아 지방에서 활동함)1.1.1. Thales(624-546 B.C. Circa)고대 그리스 철학의 시작을 이 사람에게서 출발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서 자기 이전의 철학자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데 탈레스를 맨 처음의 자리에 놓고 있다. 그 이유는 탈레스가 이성(logos)에 따라 자연에 대한 탐구를 처음으로 했기 때문이다. 플라톤과 디오게네스는 이 탈레스를 그리스의 7 현인 가운데 가장 뛰어난 현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탈레스보다 약 150년 후배인 헤로도토스도 탈레스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데 그에 의하면, 일식을 예언했으며, 실천적인 정치가로서 페르시아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이오니아 도시 국가들의 연합을 주창하기도 했다. 피라미드를 측량할 정도의 기하학적 지식도 소유하고 있었다.탈레스의 주요 철학 사상은 우주의 arche를 물(water)로 보았다는 점에 있다. 실재 세계에 대해 합리적인 근거 위에서 가장 단순한 원리를 가지고 설명하려는 시도는 바로 탈레스로부터 시작되는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의 공헌이라고 볼 수 있다. 복잡하고 다양한 현상을 단순한 원리로 설명하려는 것은 과학이나 철학이 수행하는 모든 이론적ving force, directive power)이 내재되어 있어 다른 것들을 생성, 소멸하게 만든다.arche에 대한 설명이 물에서 무한정자로 이행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비록 무한정자도 물질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한 추상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구체적인 한 사물에서 보다 추상적인 무한정자로의 이행은 철학적인 진보라고 볼 수 있다.1.1.3. Anaximenes (6c. akoume=40세의 전성기)무한정자의 성질에 맞는 사물을 찾았고 그것을 '공기'라고 보았다. 모든 존재자들이 환원되어 돌아가야 할 시원으로서 공기가 가장 적절하다고 간주. 이런 Anaximenes의 설명은 과학적으로는 진보를 한 것처럼 보이나 철학적으로는 후퇴를 의미한다. 추상에서 다시 구체적인 것으로 이행하고 있다. 아낙스메네스의 관심은 arche로부터 어떻게 모든 사물들이 변화 과정을 거쳐 현재와 같은 현상으로 나타나는 가에 대한 물음에 있었다. 농후와 희박의 변화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다. 공기를 arche로 간주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를 신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인간의 영혼도 공기와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 바람은 공기의 활동이고 바람(pneuma)은 숨, 영혼(psyche), 생명과도 연관되어 있다. 단순히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물리적인 공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1.2. Pythagoras (582? - 500? B.C.)소아시아의 사모스 섬에서 출생하였다. 이집트와 바빌로니아로 여행을 하였으며 수학과 신비주의를 배우게 된다. 그의 주요 활동 무대는 크로톤(Kroton)이었으며, 여기서 학파를 이루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피타고라스 자신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그의 학파에 속한 사람들의 사상과 혼돈되어 있기 때문에 피타고라스와 학파의 사상을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피타고라스 자신의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두 가지 사상은 분명하게 지적될 수 있다. 하나는 수(num본질로서 아르케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만물이 변한다"(panta rhei)는 유명한 명제를 말한다. "누구도 동일한 강물에 두 번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단편 91) 불변의 실체로서 아르케를 말하지 않고 대신 현상의 실재 모습을 변화와 운동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자연(physis)은 애초부터 있어왔으며 창조와 소멸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리스 신들도 자연의 창조와는 무관한 존재들이었다. 따라서 히브리 사람들의 사상인 우주 창조론, 즉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그리스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자연은 처음부터 그냥 있어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자연은 마치 불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불은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불이 아니라 신성함의 상징이며 영원이 꺼지지 않고 활동하는 에너지를 의미한다. 생성, 변화, 운동의 힘을 상징하는 불을 가지고 우주, 자연의 실제적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로고스(logos) :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런 자연을 설명할 수 있는 논리가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로고스(logos)의 개념을 도입하여 자연, 즉 physis를 설명하고 있다. 로고스의 어원은 동사 lego에서 파생되어 나왔다. 모으다, 셈하다, 열거하다. 말하다 등의 뜻이 들어있다. 따라서 로고스는 수집, 계산, 법칙, 질서, 말, 비율, 등의 뜻으로 사용되어 왔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로고스를 변화하는 자연의 법칙적 질서로 이해하고 있다. 존재자들의 집합인 자연을 지배하는 법칙이며, 보편적인 성질을 지닌 규칙으로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자연의 변화와 운동은 대립과 갈등 그리고 무질서처럼 보이지만 로고스에 의해 조화와 통일을 유지할 수 있다. 현상적인 생성, 소멸 뒤에 숨어 있는 로고스의 질서와 통일, 조화의 힘을 그는 강조하고자 했다. 자연의 질서 부여자인 로고스는 인간의 정신에도 적용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동일한 법칙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이다.않는다. 그 논리적 근거는 다음과 같다; 생성과 소멸은 대립, 반대 개념이다. 생성을 가정하는 것은 '없음(비존재)'으로부터의 기원을 가지게 되고 소멸은 다시 없음으로의 이행을 가정한다. "없는 것은 없다"고 말한 파르메니데스의 말이 모순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비존재의 근거를 부정해야 한다. 존재의 시간적 동일성을 확보할 수 있다.2) 不可分: 존재는 분리될 수 없다. 하나 뿐인 존재가 분리된다는 것은 나누어진 존재들 사이에 빈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데, 빈 공간은 없음이고 없음은 없는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분리는 불가능하다. 존재의 공간적 동일성 역시 확보된다.3) 不動: 존재는 움직이지 않는다. 운동은 공간을 필요로 하나 공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운동이 불가능하다.1.4.2. Zenon파르메니데스의 제자로서 스승의 '존재' 개념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일에 주목하였다. 그의 증명 방법은 '부정의 변증법'이라 불리운다. 왜냐하면 제논은 존재의 유일성, 부동성, 영원 불멸성을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으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雜多와 다양성을 반박, 부정함으로써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정의 변증법은 상대방 주장 안에 모순된 결론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그 주장의 근거를 무력화시키는 방법이다. 제논은 존재의 유일성과 부동성을 부인하고 잡다를 주장하는 다원론자를 공격하기 위해 다원론의 근거가 모순에 빠짐을 보여주고 있다. 논증: 만약 잡다가 존재한다면 그것들은 있을 수 있는 만큼 많이 존재한다. 그 수보다 더 많거나 적을 수 없이 존재한다. 잡다의 수는 유한하다. 그러나 동시에 잡다가 존재한다면 잡다는 분리가 가능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분리 가능성은 무한한 분활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 무한 분할과 분리는 잡다의 무한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잡다는 유한성과 무한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모순을 일으킨다. 따라서 잡다는 없다.제논의 역설(paradox): 운동을 부정하여 존재의 부동성을 증명하기 다. 후에 그의 정적들에 의해 불경죄로 고소되나(450.B.C.) 감옥에서 나와 이오니아 지방으로 이주, 거기서 학교를 세우고 교육함. 6세기 경 Simplicius가 Anaxagoras에 관한 기록을 보유함으로써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그의 철학:Parmenides의 「존재」 의 성질에 관해서 Empedocles처럼 받아 들임. 즉 존재의 indestructability, unchangeability, matter적 성격, elements의 혼합으로 사물을 설명하는 방식을 인정. 그러나 Empedocles의 4가지 요소에 대해서는 인정치 않음.all things : 무한히 많은 particles (질적으로 다름)의 혼합으로 이루어짐. 이는 Herakleitos적 요소를 인정한 것임. 이를 spermata (seeds)라고 부름. spermata의 변화와 운동을 가능케하는 power, force를 전제하고 이를Nous, mind라고 부름.Nous, mind: 모든 사물들의 운동을 일으키는 원동력, 원리(principle): 무한하고(infinite), 자율적인(self-ruled) 힘이다.: 가장 미세하고(finest), 가장 순수하고(purest), 물질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다. matter and spiritual의 엄격한 구분이 불가능한 시대 였다.: 모든 것에 대해 지식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해 현존하며 같은 원리이다.cf. Aristotle : nous 개념을 deus ex machina로 이해, 세계의 구성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해석.Anaxagoras 철학의 중요성은 그리스 철학에 nous 개념을 도입하여 principle의 개념으로 추상화하는데 기여.1.6. 원자론자들(atomists)창시자: Leucippus of Miletus, DemokritosEmpedocles철학에 대한 논리적 발전 형태로 원자론이 등장. 즉 사물들의 질적인 차이(qualtative difference)를 양적인 차이(quanti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