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역사는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기원을 선사시대 어딘가에 두고있다. 물론, 그리스의 연극에서 그 기원을 디오니소스(酒神)에게 행하던 제의 의식에서 찾고 있지만, 사실 그 이전에, 문명의 출발과 함께 부분적으로나마 연극적 요소는 이러한 제의의 의식 및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적 의식 속에 들어있었다. 즉, 어느 문명이건 그 기원을 찾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연극적 행동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기록이 시작되었을 때에 인류는 이미 연극에 필요한 대부분의 요소를 구비한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공연을 위한 공간(의식의 장소)과 연기자(제사장 등), 행동과 음악, 춤, 관객 등 대부분의 요소가 조화되어져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의 제의의식에서는 오늘날의 연극과 같은 예술의 장르로 구분되는 특징을 찾을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그 속에서 연극(공연)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이 그 속에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초기의 이러한 의식에서 벗어나 연극이 그 독립성을 인정 받은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뒤였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연극은 인류의 역사 전체를 통해서 어떤 형태로든 우리와 함께 존재해 왔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은 때로는 고도로 발달하여 높이 평가받았고, 때로는 음지에서 위축되어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기도 했지만, 연극이라고 불리울 수 없는 시대에도 이 행위 만큼은 어떤 식으로든 유지되어온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본성과 상통하는 면이 있으므로 이러한 행위 자체는 인류의 종말이 없다면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방이나, 이야기 등의 연극적 요소가 이런 것이다...연극이 이렇게 인류 문명의 발원과 함께 시작되어 지금껏 이어져 왔지만, 대부분의 시대에 연극은 상반되는 반응과 싸워야 했다. 오락이고 이단으로 취급받는 한편, 다른 한편에서는 매력적이고, 고상한 행위로 추대되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에도 이러한 이중적 잣대가 계속 되어진다는 것이다. 연극 양면성은 부분적으로 연극 용어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현대 연극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학자인 오스카 G. 브로켓은 그의 저서 'The Theatre: An Introduction'에서 'play', 'show', 'actin' 등의 단어들은 연극이 마치 자신과 타인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옷을 꾸며 입고 놀이를 함으로써 어린시절을 연상케 함을 지적한다. 그는 한편으로 연극이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인간의 가장 효과적인 도구의 하나라는 인식도 일깨우고 있다. 사실 오늘날 이러한 역할은 연극보다는 영화나 TV 드라마가 연극의 그것보다는 앞서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은 예술의 한 장르로 가장 고급스러움과 가장 천한 특성을 공존시키며 오늘날에도 과거와 같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위에서 언급하듯이 연극은 반대자와 옹호자가 항상 공존하는 세계에서 존재해 온 셈이다. 그러나 연극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 조차 연극이 과연 꼭 필요한 것인가? 영화와 텔레비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것이 사라진들 누가 그것을 아쉬워 하겠는가?라는 의문에 별다른 해답을 찾지 못한다. 그렇다면 연극이 존재하고, 예술의 한 장르로 이어지는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과연 그것의 이유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사실 연극에 대한 반응이 이렇게 여러가지로 엇갈리는 이유 중의 하나는 연극이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는데서 기인한다. 영화의 경우도 이와 같은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었다고 말 할 수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연극에서 출발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영화 역시 기본적으로는 연극의 요소를 포함하며 연극의 요소에 적절한 도구와 재생성을 추가하면 영화로 연장되어지는 것이다. 영화를 학예회에서 볼 수 있는가? 아니 만들 수 있는가? 영화라는 것은 문명의 도구가 사용되어져야만 가능하다. 그것은 가장 기본적으로 필름(저장매체)이라는 매개체를 필요로한다. 이것이 없는 곳에서는 영화의 형태로 가공되어지는 예술은 불가능하다고 말 할 수 있다. 연극이 영화와 다른 분명한 차이를 갖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CMC)의 특징(1) 쌍방향성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송·수신자가 동시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대면 상황 못지 않은 쌍방향 기능이 부여되고 다른 매개 커뮤니케이션 유형에 비해 쌍방향성의 정도가 매우 높다. 그러나 대면 상황에서의 쌍방향 기능과 달리, 직접적인 메시지 교류에 의한 쌍방향 의사소통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라는 기기에 의해 쌍방향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2) 비동시성비동시적 커뮤니케이션은 컴퓨터의 기술적인 특성인 메시지 저장 능력으로 가능하다. 그러므로 송신자는 상대방, 즉 수신자를 의식하지 않고 어느 때라도 편리한 시간대를 선택하여 메시지를 발송할 수 있으며, 반면에 수신자들은 언제라도 저장된 메시지를 검토하여 반응할 수 있다. 동시적 시간대의 제한성에서 탈피한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의 융통성 있는 시간대 활용은 의사 전달에 있어 시간적 여유를 갖게 하므로 보다 진지하고 체계적인 의사 교환이 가능하다.(3) 공간적 거리감의 극복전화보다 한층 더 진보된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은 물리적인 공간의 이동 없이도 가능한 커뮤니케이션 상황을 만들어 참여자들이 각기 다른 물리적 공간에서 메시지를 송·수신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면, 사장은 사장실에서 직원은 자기 부서, 즉 서로 다른 장소 또는 공유될 수 없는 공간에서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이들은 컴퓨터라는 매체를 통해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4) 비언어적 요소의 부재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신체로 표현하는 행위적 신호와 분위기로 전달되는 상황적 신호 등 커뮤니케이션의 비언어적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송·수신자들간의 심리적 상태와 상호간의 관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특정한 사회적 환경에 대한 암시력이 떨어진다.(5) 익명성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신원과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대면 상황과는 달리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신분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전형적인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의 메시지는 별명, 가명 또는 전자 우편 주소를 통해 송 수신자의 신원을 확인하게 된다. 신분이 노출되거나 확인되지 않는 익명에 의한 커뮤니케이션 상황은 참여자들에게 심리적으로 편안한 상태를 유도하고 참여자 모두의 신분을 평등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서로의 존재에 대해 확인할 수 없는 비인격적인 커뮤니케이션 상황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익명성 때문에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의 메시지들은 간혹 왜곡되고 과장된 표현과 상스러운 표현을 담고 있다.(6) 문서화된 메시지 교류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의 표현 방식은 글이다. 그러므로 글로 표현되는 커뮤니케이션에 재생 능력과 편집 능력이 덧붙여진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은 말을 매개체로 하는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약점을 보완해 준다.
『큐브』국제정보경영학부 2001250391 김효진국제정보경영학부 2001250398 김연희국제정보경영학부 2001250442 노수균원 제 : Cube감 독 : 빈센조 나탈리주 연 : 니콜 드 보에, 니키 과다그니, 데이빗 휴렛시 간 : 90분 / 장 르 : 스릴러 / 출 시 : 1999년이 영화의 제목인 cube는 뜻 그대로 정육면체를 의미한다. 모두들 어렸을 때 한번씩은 해 보았을 루빅스 큐브 장난감 말이다. 영화 큐브에는 이른바 17,576개의 큐브가 등장하는데, 빈센조 나탈리 감독은 이 큐브를 단 하나의 방에 조명을 바꾸어 찍는 방법으로 영화를 탁월하게 표현했다. 영화의 처음장면은 마치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표현하는데, 붉은색 큐브 안으로 한 남자가 들어선다. 두려운 눈빛으로 사방을 살피던 그는 안전한가 하고 한숨을 내쉬는 순간에 금속성의 그물에 의해 온몸이 수백조각으로 잘린다.그리고 여섯명의 인물이 등장하게 된다. 여의사 할로웨이, 경찰 쿠엔틴, 수학과 학생 리븐, 냉소적인 건축가 워스, 자폐증 환자인 카잔, 탈옥전문가인 렌.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살기위해선 탈출해야 한다. 그리고 탈옥의 전문가인 렌은 신발을 벗어 이동할 큐브에 던져 안전한지 확인하고 다음큐브로 건너간다. 하지만 벽에서 갑자기 큐브센서가 튀어나와 그의 얼굴에 염산을 쏟고, 힘들게 일행이 있던 큐브로 돌아오지만 그는 결국 사망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5명이 같이 행동하게 된다.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확실하지 않은 일행앞에 수학에 천재적인 능력을 보이는 소녀 리븐이 각각의 큐브입구에 일련번호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함정이 없는 큐브는 소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큐브를 빠져나가는가 했지만, 힘들게 돌아 도착한 곳은 바로 염산을 맞고 죽은 렌의 시체가 있는 큐브이다. 다시 실의에 빠지는 일행들. 하지만 곧 돌아다니면서 으스스한 기계 음이 들렸던 것을 기억하고, 바로 큐브들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건축가인 워스가 이 큐브를 제작하는데 일조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17,576개의 큐브의 모습은 점점 일행을 압박한다. 한편, 일행의 리더격이었던 경찰 쿠엔틴이 폭력적이고 가족들에게 폭행을 가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는 광기를 보이게 된다. 그리고 결국은 여의사 할로웨이를 도와주는 척 하면서 죽게 한다. 쿠엔틴은 협조적이지 않은 워스와 저능아인 듯 보이는 카잔 몰래 리븐을 납치하여 둘이서만 살아남으려 하지만 리븐조차 문제를 해독하기는 힘들고, 다시 일행들은 싸움 끝에 합류하게 된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일행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리는 것은 바로 자폐증 증상으로 미친 듯이 보였던 카잔. 카잔은 리븐조차 해내지 못한 놀라운 계산능력으로 큐브의 비밀을 해독하고 탈출구에 접근하게 된다. 그리고 도중에 워스가 쿠엔틴을 막아 따로 떨어지게 해놓고 세명은 쿠엔틴을 도망 다니면서 해독하여 바로 출구 직전까지 도달한다. 문을 열고 출구로 나가기 직전, 워스는 남겠다고 한다. '감옥 밖의 세상이란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덩어리 뿐이야'라고 말하며.. 하지만 뒤쫓아온 쿠엔틴에게 리븐은 죽고, 남으려던 워스는 쿠엔틴을 막다가 서로 죽게된다. 밝은 빛이 비치는 출구로 살아나간 사람은 결국 자폐아 카잔 뿐이다.이 영화는 살인큐브 속 한계상황의 인간들의 군상을 표현한다. 방마다 독특한 함정이 자리잡고 있어 센서에 감지되기만 하면 한순간에 매우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인다. 게다가 그 방이 고정된 것도 아니고 기분 나쁜 금속성 굉음을 내면서 스스로 이리저리 이동한다. 이는 인간의 본능을 억압하는 현대 과학기술문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큐브는 이미 그 설계에 참여한 인간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저절로 움직이는 별개의 인격체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투옥 동기나 살인기계의 기하학이 아니라 한계상황에 놓인 인간 군상의 대응방식이 보여주는 형이상학인 것이다. 인간이 서로를 죽이는 악마적 본성을 지녔다는 디스토피아적 설정을 등장인물들의 추악한 성격 변화와 여러 색깔의 기하학적 공간 배치, 금속성 음향으로 효과적으로 상징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