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17세기를 조선의 예학이 성립된 시기라고 불리어 진다. 당시의 예학이 학술적으로 전문적인 예학의 수준에 도달하여 있었고, 조선적 특색을 지니는 '조선예학'으로 운위되고 있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조선예학의 성립이 가능하였던 데는 사계 김장생을 필두로 하는 사계예학파의 예학이 그 중심을 이루었는데, 그들의 학문적 연원은 기호지방을 근거지로 하여 기호학파라고 한다. 기호학파의 예학 사상은 조선시대 중기이후의 사상적 흐름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성리학 시대에서 예학 시대로 넘어가는 교량적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기호학파의 중심인 사계예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사계(沙溪) 김장생, 신독재(愼獨齋) 김집, 우암(尤庵) 송시열, 동춘당(同春堂) 송준길, 명재(明齋) 윤증의 예학사상과 각각의 특징을 통해 조선 예학을 알아보도록 하자.1.김장생1) 김장생의 생애사계의 자는 희원이고, 본명은 장생이고, 본관은 광산이고, 사계는 호다. 대사헌 김계휘(號 黃岡)와 평산신씨의 외아들로 1548년(명종3년) 7월 8일 서울 정릉에서 태어났다. 尤庵의 어록에 의하면 그는 처음에는 송익필(龜峯 1534 ~ 1599)에게 사서와 근사록을 배우고 장성하여서는 율곡에게 사사하였다. 선조 11년 31세에 昌陵參奉으로 천거된 이후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35세에 부친상을 당하고 이듬해에 喪禮備要를 완성하였는데 이것은 사계의 최초의 禮書이다. 51세에는 近思錄釋疑를 지었고, 스승 구봉의 상을 당하고 家禮輯覽을 완성한 것 등은 그가 예와 성리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608년 선조가 승하를 하자 광해조에 잠시 관직에 있다가 계축옥사에 심문을 받고 무혐의로 누명을 벗은 뒤로 관직을 사퇴하고 연산에 은퇴하여 학문연구에 전심을 하였다. 이 기간에 그는 여러 지우들과 편지를 통하여 학문을 토론하고, 71세에는 경서변의를 지었다. 經書辯疑는 경서를 공부하는 동안 경학연구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기록하여 놓은 것이 쌓여서 책이 된 것이다. 163로 선조의 대통을 계승하였기 때문에 사친인 정원군의 친제를 하면서 사용할 축문에 칭호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정원군을 추숭하여 입묘하는 문제, 또 인조의 어머니 계운궁이 죽은 후 인조가 입어야 할 복상의 문제등이 발생하였는데 이에 대해 김장생이 논한 것은 『전례문답』이다.인조가 장차 사묘에 친제를 하여할 때에 김장생은 인조가 비록 선조의 손자라도 선조의 왕통을 계승한 이상 선조 부자의 도가 있으므로 私親에 대하여 考라 칭할 수 없으며 사친을 위하여 삼년상을 지낼 수는 없다고 단언하였다.정원군을 추승하여 입묘하는 문제에서도 당시의 여론은 인조의 사친인 정원군을 추존하여 입묘하자고 하였음에도 김장생은 그것이 예에 옳지 못하다 하여 인조는 선조를 녜라 하여야 하고 시친인 정원군을 추존 입묘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분명하게 논하였다.복제의 문제는 인조4년 봄에 인조의 생모인 계운궁(인현왕후)의 상을 당하여 인조의 사친복제를 논할 때 그 당시 대신들은 인조의 생부모에 대한 정을 생각하여 예법에 넘치는 방향에 이끌려 생부인 정원군을 考라 하고 추존하여 입묘하였으며, 생모인 계운궁의 상에 장기의 복을 입고 후에 추존하여 인헌황후로 높이게 되었다. 그에 반해 김장생은 임금이나 대신들이 사친에 대한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왕통의 존엄함에 해가 될 것을 염려, 인조는 사친에 대한 사사로운 정에 이끌리지 말고 종통을 바르게 세울 것을 역설하며 임금이나 대신들의 잘못된 예관을 단호하게 비판하고 질정하여 국가의 전례를 정립하고 올바른 統의 수립에 심혈을 기울였다.2.김집1)김집의 생애1574(선조 7)∼1656(효종 7). 본관은 광산, 자는 사강, 호는 신독재이며 사계 김장생의 아들로 서울 중구 서소문동에서 출생하였다.조선 중기의 문신 · 학자로 18세에 進士가 되고, 광해군 2년에 헌릉 참봉에 除授되었으나 광해군의 난정으로 은퇴하였다. 인조반정(仁祖反正) 뒤 부여 현감에 이어 임피 현령, 지평, 집의, 공조 참의 등을 지낸 다음 攻西派가 집권하자 사직하고 학문연예학을 존신하되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견지하였다. 사실상 조선에서 주자학의 극복과정은 이러한 주희 예학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노력의 과정과 그 결과에 힘입은 바가 적지 않다고 할 것이다.둘째 신독재는 기본적으로 복고적 예 사상에 충실하여 「가례」 및 고례를 주로 연구하였으나, 구체적 예문이 없는 경우에는 정례에 따라 행할 수 있고, 또 비록 속례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례와 시의에 맞으면 굳이 고례에 얽매이지 말하야 한다는 자주적인 예학관을 가지고 있다.셋째, 김집은 통을 중시하는 종법주의에 충실했다.넷째, 김집의 예문이 없거나 그 적용이 애매한 경우의 문례에 대해서는 자신의 집에서 행하고 있는 예로써 답하거나 앞으로의 예학적 연구 과제로 남겨 놓곤 하였다.②「고금상례이동의」와 그 예설「고금상례이동의」는 효종 즉위년에 김집이 「국조오례의」의 상례를 고례인 「의례경전」과 비교하여 그 異, 同, 缺, 剩을 분석하고 자신의 안설을 첨가하여 왕에게 올린 예서이다.김집의 「고금상례이동의」는 그 시행 여부를 놓고 당시의 조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전개되었으나, 바로 고치기 어렵다 하여 일일이 소용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후 숙종의 상에 그의 성복제가 준용되었고, 영조 33년 국가가 「상례보편」을 제작할 때에는 김장생의 「상례비요」와 함께 그의 이 「고금상례이동의」가 전용되었던 것이니, 이것이 법제화된 모습은 「국조오례」등에서도 확인된다「고금상례이동의」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김집 예학의 연구 영역에 변화가 발견된다는 점이다. 김장생의 예학을 계승한 김집의 예학은 주로 사례로서의 가례에 치중한 예학이었으나 이제는 그 영역이 공례인 왕조례까지 확대된 것이다. 특히 국가 전장제도의 일대 개혁을 희고한 그의 시도가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예 질서 회복과 열의의 역할을 감지할 수 있으며, 이와 동시에 「오례의」의 문제점들을 주희의「가례」보다는 고례와 속례로써 극복하려는 새로운 변화상을 발견하게 된다.4)김집의 예학사상김집의 예학사상은 기본적으로 그갈수록 견고해져 알기가 힘 들다고 탄식하였다 한다. 18세(인조2)에 관례(冠禮)를 행하고 용문산의 절에서 공부했다. 19세 때 한산(韓山) 이씨(李氏)를 부인으로 맞고 김천사에서 공부하였는데 호조참의를 지냈던 이상길(李尙吉, 당시 70세)로부터 성혼이나 이이와 유사하다는 평을 받았다. 21세 때 큰 형이 후금 군에게 죽고, 그 이듬해에 부친상을 당해 3년간 시묘살이에 들어 간다. 24세(인조8)에 3년상을 마치고 사계 김장생의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학문 연구에 들어간다. 25세 때 김장생의 사후 김집을 스승으로 이어 섬기고 이 때부터 주자의 책을 전문적으로 읽기 시작한다. 1633년(인조11) 27세 때 생원시에 장원 급제하여 최명길(崔鳴佶)의 천거로 경릉참봉(敬陵參奉)이 되었으나 곧 사직, 1635년 봉림대군(鳳林大君, 孝宗)의 사부가 되었다. 이듬해 병자호란 때 왕을 호종(扈從)하여 남한 산성으로 피난하였고, 1637년 화의가 성립되자 낙향, 1649년 효종이 보위에 오르자 장령(掌令)에 등용, 세자시강원진선(世子侍講院進善)을 거쳐 집의(執義)가 되었으나 디 집권당 서인의 청서파(淸西派)에 속한 그는 공서파(功西派)의 김자점(金自點)이 영의정이 되자 사직하고 다시 낙향하였다. 이듬해 김자점이 파직된 뒤 진선에 재임명되었으나 1651(효종2)년 그가 찬술한 에 청나라 연호르 쓰지 않았다고 김자점이 청에 밀고 함으로써 청의 압력을 받아 사직하고 또 낙향, 충주목사(忠州牧師), 집의 등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후진 양성에 점심하였다.1658년(효종9) 찬선에 등용, 이조판서로 승진, 효종과 함께 북벌 계획을 추진하였으나 이듬해 효종이 죽자 그 계획은 중지되었다. 그 뒤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문제(服喪問題)가 제기되자 기년설(만1년)을 주장하여 관철시키고 3년설을 주장하는 남인을 제거하여 정권을 장악, 좌참찬(左參贊)등을 역임하면서 서인의 지도자로서 자리를 굳혔다.1660년(현종1) 우찬성에 올랐을 때, 앞서 효종의 장지를 잘못 옮겼다는 규탄을 받고 낙향하였고요, 실상 사단도 칠정도 모두 성에서 나왔다. 자사가 발하여 중절한 것을 和라 한 것을 주자가 풀이하기를 미발을 성이라 하고 또 성의 발용이 정이 아니고 무엇이랴 했으며, 또한 의 서문에서 도심이 성명(性命)에서 발한다고 했으니 두 개의 성이 같은가 다른가"라 하여 사단, 칠정 모두 기발이승의 성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대체로 율곡과 견해를 같이하는 우암이지만 사단을 순선한 것으로 보는 데에는 반대한다.-천리인욕설우암은 사단과 칠정을 합하여 하나의 정으로 보려하여 사단에도 부중절이 있다고 보는 까닭에 이를 각각 도심, 인심에 배당하는 것에 반대한다. 인심은 유위하다 하고 도심은 유미하다 하여 마치 인심, 도심이 서로 대립되는 별개인 것 같고 또 주자가 그것이 성명지정(性命之正)과 인욕형기지사(人欲形氣之私)에서 각각 원(原), 생(生)한다고 함으로써 이원적인 것으로 오해하기 쉬우나 실상 인심도 심이요, 도심도 심으로 다 같은 이발의 심인데, 도심은 다만 인심이 도리에 합한 것을 가리킨 것일 뿐이라 하였다. 인심 그 자체로는 중절, 부중절, 선악을 논할 수 없다. 인심이 중절하면 도심이 되는 것이요, 중절하지 못하면 악이 되는 것으로서 중절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인욕, 물욕이다. 우암의 견해에 따르면 인심 그 자체는 윤리적 선악을 논할 수 없는, 가치 중립적인 것이다. 인심이 중절한 것은 도심이요 중절하지 못한 것은 인욕이라 했으니 인심과 도심을 대대(對待)로 본 것이 아니요, 인심에서 도심과 인욕이 분기한다고 하겠다.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사단과 칠정, 인심과 도심의 문제에서 퇴계의 윤리적 인간학적 회의를 부여한다 해도 이기 철학의 체계와 규정된 개념에 정합성을 지니는 것이 우암의 경우라 할 것이며, 같은 '기발이승일도설'을 주장하는 우암과 율곡에서 사단과 도심에 대한 분석은 우암이 율곡보다 논리적이요, 체계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인심과 칠정 그 자체는 천리로서 그 윤리적 선악을 논할 수 없는 것이요, 심체의 정화 즉, 거인욕존천리(去人欲存天理)를 통다.
제3장 기업의 도덕적 책임1.서론요즘 대기업체들이 한국 경제에 점차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대기업체들의 크기와 법적 지위 때문에 그것을 단순히 조직의 하나로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많은 경제이론가들의 태도인 것이다 그들에 의하면 현대 사회구조에서 대기업체는 공적기구이거나 국가산물의 조직체이거나 고차원적인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이 논문에서는 기업체가 공적조직으로 취급할 수 있는가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기업체의 성격과 그것의 사회적 지위, 그 기업체의 사회적, 도덕적 책임문제를 여러 입장으로 분석하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전문직의 특징을 분석하고 행동윤리 강령의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한국 기업체 안의 전문직의 근로자가 갖고 있는 직장인의 철학을 관찰하려고 한다.2.기업체의 성격 분석1>기업체의 다양한 성격 규정⑴정의①기업이란 구성원의 생명을 초월해서 지속할 수 있는 하나의 조직체로서 고소하거나 고소당할 수 있으며 유한 책임사업으로서 기업재산의 일부를 위탁할 수 있는 同業者 를 가진 것이다.②기업은 규모와 함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인 힘을 지닌다.③기업은 효율적인 경제적 생산을 위해 설계된 조직이다.⑵P. H Werhane의 기업체의 성격①기업체는 법적으로는 "허구적 인간"처럼 취급한다.②기업체를 도덕적 인격체로 취급한다.③연합으로서의 기업체이다.④기계로서의 기업체이다.⑤기업체는 사회적 책임을 묻는 조직에서 설명되어져야 한다.⑥사회계약이론에서 기업체를 설명하는 견해이다.⑶Richard T DeGeorge의 기업체의 속성-국가의 산물①기업이 본질적으로 법률, 국가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②기업체가 본질적으로 개인 스스로 원해서 자의적으로 뭉쳐진 연합이다.⑷Fred D Miller와 John Ahrens①準公的조직체로서의 기업체②국가의 피조물로서의 기업체③계약에 의해 창조되어진 것으로서의 기업체2>기업체가 과연 도덕적 책임을 가질 수 있는가?⑴도덕적 책임의 뜻①과거행동에 대해 그것의 결과를 도덕적으로 책임을 묻는 태도②어떤 사람이 생활하는 사회적 역할로부터 끌어낸 다른 사람에 대한 태도, 관심, 사회복 지 문제들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 태도③도덕적 책임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도덕적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 고 있는 태도⑵도덕적 책임의 요소①도덕적 입장에 내포된 속성은 합리성과 존경이다합리성-목표와 수단 방법과 귀결 위험성과 기회포착에 관심 갖고서 기회와 목적을 추구존경-합리적인 기획과 목표를 추구해 가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입장과 견해를 고려②사고에서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에 필요한 요소지각들의 수립 자연적 사회적 협력 응용 행동⑶기업의 책임 종류①좁은 의미Milton Friedman-기업은 이익을 최대화 시키는 것 이외에 다른 사회적 책임이 없다고 지적Olen과 Barry-기업체는 먼저 그 기업주식 소유주들의 투자를 보호할 의무를 갖는다.기업체는 법인체로서 법에 순종할 책임을 지닌다.②넓은 의미Keith David-기업체의 기본명제 중에 하나는 "사회적 책임은 사회적 권한으로부터 일 어난다"는 것이다.Olen과 Barry-기업은 권력과 함께 병행하기 때문에 그 권력에 대한 책임을 가져야 한 다.기업체는 사회안에 존재하면서 사회로부터 많은 이득을 얻는다.기업활동이 오히려 사회에 해로움을 주기도 한다.③기업체의 사회적 책임이론에 반대하는 견해기업체의 사회적 책임은 주식 소유자들에게는 공평하지 못하다.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경제적 무책임적인 것이다.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운동경기의 규칙을 바꾸는 것이다.사회적으로 책임있는 기업체가 어떻게 활동하여야 하는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⑷기업체의 책임전개논증에 반대 의견들①"보이지 않는 손" 논증Adam Smith-기업자체는 경제적 이익과 유용성을 고려하여 형성되었더라 해도 단순 한 이익보다는 기업체의 경제적 정책을 결정하거나 최대다수의 물질적 필요성을 만족시키는 측면에서 활동하게 된다.②"정부의 손" 논증John Kenneth Galbraith-정부의 법률을 통해서 법과 특전의 조직을 통해서 정부의 강력한 손이 기업체의 모든 활동을 정부제도에 따르도록 한다.③"부적당한 관리인" 논증기업체의 운영관리인들은 도덕적, 사회적 전문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비경제적 책 임을 적당한 관리인들에게 내맡기는 제도이다.④"사회의 물질화" 논증모든 기업 경영관리인들이 사회의 모든 면에 물질적 가치를 부여한다는 태도이다.3>기업체의 권리, 책임, 그리고 기업의 현실적 책무기업의 역할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기능을 구체화시키면서 역할 책임은 조직적, 사회적 인간적 기대감에 의해서 규정된다. 이 기대감은 기업체의 이상적 규범적 역할을 내포한다. 이 규범적 역할은 사회를 향한 행동의 결과 및 근로자에게 실천한 구체적 결과에 대한 책무와 연결된다. 그러므로 기업체는 반드시 사회에, 근로자에. 고객에 대해 지켜야 할 의무와 당위성을 깨달아야한다.3.전문직의 윤리성1>전문직의 성격⑴전문직의 특징①전문직은 지속적인 교육훈련을 기본적으로 필요로 한다.②사회에서 중요한 봉사와 역할을 한다.③전문직을 위한 지식을 요구한다.④전문직은 일반적으로 정부나 관련단체로부터 허가증을 받아야한다.⑤같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조직체가 요구된다.⑥전문인의 자율성이다.⑵전문직의 성격①그 직업의 폭 넓은 정보와 교육, 훈련을 통해서 그것의 지식, 기술, 훈련 내용의 정당 성과 합리성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②전문가의 충고와 지도에 전문직의 권위를 지녀야 한다.③사회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④전문직은 상대적으로 외적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이다.⑤전문인은 그 전문직에 전 생애를 의탁하게 된다.⑥전문직인은 경제적 보상, 사회적 높은 명성과 위치, 영향 , 전문직의 봉사에서 오는 만족감이 있다.2>전문직의 도덕적 책임(1)전문인의 의무와 도덕적 책임을 인정하는 이유①사회는 전문인을 훈련시키는 모든 교육과정에 많은 경제적 투자를 했다.②국가는 그들의 위치와 역할을 보호하고 그들의 경제적 안정을 보장해준다.③사회가 전문직과 그들의 조직에 신뢰성을 갖고 투자하기 때문에 사회안정에 특별히 주의를 요구한다.
청소년의 성 문제1 서론인간은 사춘기가 되기 수 년 전부터 성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며 사춘기에 와서 뚜렷한 성의 분출이 시작된다 성에 대한 관심과 성적 행위가 어떻게 나타나느냐는 다양한 사회 문화적 규범과 가족의 기대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 즉 신체적 변화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기의 성적인 활동은 또래 집단과 사회적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 변화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기의 성적인 활동은 또래 집단과 사회적 요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최근에 우리 사회는 성에 대하여 개방적이고 허용적인 쪽으로 변해 왔다 사회의 성에 대한 관대함이 증가하므로 청소년은 좀 더 일찍 성에 관한 실험과 성교경험을 하도록 부추겨지고 있다 성 개방이 급속도로 이루어지면서 그것이 지나쳐 향락 쾌락주의 풍조가 만연하여 어디서나 쉽게 성적인 자극을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런 반면에 유교적 전통하에서 성이라면 큰일나는 것 비도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여전히 남아 있는데 이점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또한 대학입시와 주입식 교육제도에 눌려 성에 대한 관심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철저하게 억압되어 있는 입장이므로 대학입시를 포기한 학생들 또는 대학에 들어간 뒤 후기 청소년 시기의 대학생들에서 성적인 문제들이 폭팔적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청소년들에게 성 발달을 다루는 것은 외로운 침묵 속의 경험이다 기성세대 부모 자신들도 옳은 성교육 성도덕들이 어떤 것 인줄 모르고 지나치게 개방적이거나 지나치게 억압적인 태도 양극단에서 혼란에 빠져 있다 이런 변화와 혼란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우리 나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를 보면 이성친구와 직접적인 성 관계를 갖는 경우가 외국에 비해 매우 낮았고 다른 결과를 종합해 보면 우리 나라 청소년들은 대부분이 성에 대해 매우 건전하고 보수적이며 성에 대한 자제력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편 연일 청소년 성범죄가 신문을 장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며 10대 강간이나 다른 형태의 성폭력 등의 문제들이 점차 심각한 사회문제로 표출되고 사회에서도 더 이상 청소년의 성 문제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이런 시점에서 사회적 차원뿐 아니라 의학적 차원에서 청소년기의 제반 성 문제를 이해하고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함은 매우 시급하고 필요하다고 본다2.본론1)청소년의 성 의식 실태청소년들은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성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 문화의 특성상 성은 공식적으로는 더러운 것, 비공식적으로는 무한히 즐길 수 있는 것이라는 것으로 이분화되어 있다. 이렇듯 이중으로 나뉘어진 성문화 속에서 청소년들은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들은 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정상적인 성이 무엇인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성이 어떤 것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이러한 혼란은 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방향과 성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가족과 성 상담소』 의 청소년 성 의식 조사에 의하면 성에 대한 느낌이 남학생의 경우 호기심이 생긴다(42.8%) 아무 느낌이 없다(23.3%) 자연스럽다(18.6%) 부끄럽다(10.4%)의 순으로 나타났고, 여학생의 경우 아무 느낌이 없다(38.7%) 호기심이 생긴다(20.5%) 부끄럽다(10.4%)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성에 대한 인식과 성 행동에 있어 남학생의 적극성과 여학생의 수동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2)청소년의 성 문제(1)원조교제원조교제란 '원조'와 '교제' 두 단어가 합성되어 나온 말이다 성인 남성이 어린 여학생들에게 경제적 원조를 해주면 여학생들은 교제를 해준다는 개념으로 교제의 내용은 단순한 데이트로부터 성 관계까지 이르고 있다원조교제란 말이 국내에 알려진 것은 지난 1990년대 중반으로 일본의 성적 타락을 빗대어 말하기 시작한 것이 어느 샌가 한국으로 건너오게 되었다원조교제를 매춘과 같이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매춘은 말 그대로 직업성인여성이 자신의 몸을 파는 행위이지만 원조교제는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어린 학생들이 돈 뿐 아니라 별로 값나가지 않은 작은 물질을 위해서도 몸을 내주는 데에 문제가 있다 아직 채 성숙하지 않은 10대 소녀들이 전화방이나 채팅을 통해 성인남성을 만나 돈을 받고 스스럼없이 몸을 팔고 있다 초창기엔 주로 가출 한 10대 소녀들이 유흥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뛰어들었는데 지금은 정상적인 가정을 가진 많은 소녀들도 원조교제에 뛰어들어 몰지각한 성인 남성들의 노리개로 전락하고 있다 원조교제의 물결을 유흥가로 번져 룸싸롱이나 사창가에 가면 '미짜'로 불리는 10대 소녀들을 쉽게 볼 수 있다점차 사태가 악화되자 새 천년 벽두에 서울 종암 경찰서 여자 경찰서장이 원조교제를 뿌리뽑겠다고 나서 집중단속에 나서 잠시 원조교제의 바람이 수그러들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원조교제를 하다 적발되는 경우가 허다하며 몇주전 연예인 이경영(영화배우)의 원조교제 사건으로 하여 원조교제의 심각성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2)낙태우리 나라에서 한 아기가 태어날 때 약 2.5명의 태아가 죽어간다(1994년 갤럽조사기준 자료인용)즉 한해에 60만명의 아기가 태어나고 150만명의 태아가 낙태 당하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2위의 낙태율이다 이러한 낙태건수는 놀랄만한 속도로 증가해 1960년도에는 10만이었고 70년도에는 31만인데 비해 1978년도에는 100만 85년 이후에는 150만 건으로 하루 4000건 20초당 1명이 죽어 가는 것이다기혼여성의 낙태 경험률이 59.3%라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18세 이상 전체 성인여성의 38.8%가 낙태를 경험한다 낙태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피임실패 즉 원하지 않은 임신이다 실제 태아 건강에 문제가 생겨 낙태하는 경우는 2.7%에 불과한다 전체 낙태 건수 중 30%는 미혼 여성이 한다 이들 중 50%는 2회 이상 낙태경험이 있고 이중 85%가 10대이다여고생 여중생이 길 가다가 아이를 낳아버리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도 일어났는데 이러한 것에서도 나타나듯이 올바른 이성관을 확립하지 못하고 성에 대한 지식이 없는 청소년들이 성폭력을 당해서 임신을 하거나 성행위의 의미와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성 접촉을 하는 경우가 많다(3)미혼모현재 미혼모의 두드러진 특징을 살펴보면 우선 미혼모의 저연령화 현상을 들 수 있다 애란원이 전국 7군데 미혼모 보호시설 3군데 입양기관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19세미만의 미혼모가 전체 미혼모의 50%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고, 입양기관의 경우는 저연령화가 더 심하게 나타나서 15-16세 미만의 나이 어린 미혼모가 전체 미혼모의 6%나 되었다. 미혼모의 연령 이 어린 경우 미혼모나 아기에게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 중에서 의료적인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의 경우는 정확한 통계가 없어서 알 수 없지만 외국에서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십대 임신의 경우 임신중독, 빈혈, 조산아 또는 미숙아, 기형아 분만 또는 자연유산, 사산 등의 비율이 일반 임신에 비하여 상당히 높다고 보고되고 있다. 조산아 또는 미숙아 분만은 아동의 뇌성마비, 정신지체, 간질, 학습기능장애 또는 다른 뇌의 장애와도 관련이 깊다. 십대의 미혼모나 그 아기가 다른 성인 미혼모에 비하여 더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십대들이 임신에 대한 지각이 늦어서 제대로 식사를 하지 않거나, 음식물이나 약물을 조심하지 않고 먹거나 건강에 대한 주의가 부족하고 심지어는 미혼모 자신이 아직 발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임으로 아기나 산모의 건강에 위험을 갖고 오게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