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주차 과제(주)놀부의 홈페이지에 소개된 자료들을 토대로 이 회사의 성공요인을 정리해 보시오.- 놀부 보쌈이 성공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 있다. 원래 한식은 조리가 복잡하고 인건비가 많이 들어 매뉴얼하기에 어렵고 따라서 표준화가 곤란하다는 기존의 인식이 너무 크지만 놀부 보쌈은 여러 가지 전략으로 한식 프랜차이즈 시장에서 성공을 하고 있는 것이다.첫째, 식자재는 가장 싱싱한 것으로 쓰려고 노력하였고 정성이 담긴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하였다. 음식 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싱싱한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이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조건이 되야 하는 것인데 가장 기본적인 이 것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놀부 보쌈은 이 기본을 지킨 것이다. 예를 들면 손님의 취향이나 특성을 고려하여 보쌈의 돼지고기를 선별하여 내놓는 정성과 노인에게 부드러운 부위를 청년에겐 양을 좀더 넉넉하게 주는 것과 먹다 남긴 보쌈을 싸 달라고 하면 거기에 양을 더 보태서 싸주는 등의 서비스를 통하여 손님들의 마음을 끌었고, 결국 신뢰를 통하여 장사는 번창했다.둘째로는 한식의 체인화를 위해 충북 음성에 중앙공급식 주방 개념을 한식에 도입하였다. 한식은 서양음식과 달리 매뉴얼 화하는 것이 어렵고 따라서 표준화가 곤란하다는 기존의 생각을 뒤집는 발상의 전환이 있었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기본 설비로 중앙공급식 주방을 통해 프랜차이즈로써도 성공할 수 있었다.셋째로는 한식의 매뉴를 매뉴얼화하여 점차 확대시켰다. 한식의 메뉴를 매뉴얼화하면서 다양한 메뉴를 확대시킴으로써 보쌈뿐만 아니라 삼겹살, 시골상차림, 유황오리등 우리 나라 사람의 입맛의 다양화를 충족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를 계기로 말레이시아, 미국에까지 진출하여 성공적인 사업을 운영할 수 있었다.넷째, 경영자의 의지와 개성이다. 오사장은 군대의 취사반 출신으로 한식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경영자이었고 직업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기존의 한식당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체계적인 한식당 경영에 노력하였다.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평범한 삶을 살다가 어떤 계기로 크게 변화한 경우가 많다. 즉, 어떤 동기유발 요인에 자극을 받아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행동이 크게 변하게 된 것이다. 드라마틱한 변화 혹은 변신에 성공한 사람을 선택하여 다음의 순서대로 설명하라.(1) 크게 변화한 사람을 1명 선정하라. (허구인물은 안됨)- 소설가에서 정치가로 변신한 김홍신 의원(2) 그 사람이 변화를 하게 된 사건의 개요, 변화 계기, 변화 내용, 변화 결과 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라 .김홍신 한나라당 국회의원1947년 충남 공주에서 출생1993년 건국대 문학박사 학위 취득1976~1980 출판사 주간1991~1995 경실련 상임집행위원1991~1995 실천문학 운영위원1996 민주당 홍보위원장, 대변인1996~2000 제 15대 국회의원2000~2001 한나라당 홍보위원장현 제 16대 국회의원, 국회보건복지위원회위원저서 : 인간시장, 대통령 정신 차리소, 도둑놈과 도둑님 외 다수의정활동 자료집 : 여의도에는 가을이 없다, 아름다운 국회 아름다운 사람 외- 김홍신 의원은 대학 시절을 매우 어렵게 보냈다. 어려운 대학시절 동안에 사회의 많은 부조리 등을 고민하였고, 76년에는 사회 비판을 위한 출판사인 를 만들기도 하였다. 또한 사회 비판의 내용을 담고 있는 여러 권의 책을 발간하였고, 특히 그 자신이 직접 썼던 [인간시장]에서는 정치, 언론, 재벌, 교수, 군대, 의사, 법조인, 경찰, 국세청, 정보기관 심지어 종교계까지 무차별 비판을 가하고 거물급의 실명까지 거론하였다. 그의 무차별 비판으로 인하여, 그에 대한 감시와 검열은 매우 심해졌고 심각한 감시와 협박 때문에 한 때는 유학을 갈 궁리까지 했다고 한다.그는 90년대에 들어서도 이러한 사회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으며, 여러 분야의 시민운동에도 참여하였다. 경실련의 상임집행위원을 맡기도 하였다.90년대에 들면서 그는 [인간시장] 등의 그의 저서가 많이 유명해 짐으로 인해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 한 때 건국대학교에서 강단에 서기도 하였다. 그 시절 한 학기 수강생이 무려 2,5000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그의 인기 덕분에 방송 진행자로서의 명성도 얻게 되었다. 90년대 초에는 KBS 생방송 도중 노태우 대통령과 정권을 비민주적 정권이라고 비판을 하다가 출연정지를 당했고, 95년도에는 KBS 아침 생방송 라는 방송 도중 김영삼 정권을 노골적으로 비판하여 방송을 그만 두게 되었다. 이러한 그의 행동들은 그를 많은 협박과 위협에 시달리게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중에도 김홍신 의원은 여전히 문민정부 최초의 필화사건을 기록된 [대통령, 정신 차리소]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덕분에 그에 대한 감시와 협박은 더욱 심해졌다.당시 김홍신 의원의 여러 행동들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그 당시 김대중 총재과 김종필 총재, 이기택 총재 등 야당 인사들이 그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고, 특히 김대중 총재와 김종필 총재는 그에게 정치를 권유하였고 구체적인 자리까지 제시하였고 김홍신 의원은 그러한 권유를 영원한 비판적 작가로 살아가겠노라고 하며 거절하였다고 한다.그러던 중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전 김대중 대통령이 다시 정계에 복귀하여 국민회의라는 당을 새로이 만들었고, 개혁 정치인들과 함께 국민회의 창당에 동참하였으며 결국 민주당과 합당을 하게 되었다. 김홍신 의원은 당시 민주당 홍보위원장을 거쳐 선거 대책 위원회 대변인으로 정계에 진출하게 되었다.김홍신 의원은 그 이후에 제 15대 국회의원과 제 16대 국회의원을 거치면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솔직하고 곧은 국회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까지도 그는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제대로 꼬집는 그의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이라크전쟁 파병에 대하여 반대 의견을 나타내기도 하여, 그의 신념이 여전함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김홍신 의원 홈페이지www.hongshin.net참조(3) 강의시간에 배운 [8가지 동기부여 이론] 중에서 그러한 변화는 어떤 동기부여 이론에해당되는 것인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라.- 8가지 동기부여 이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내용 이론매슬로의 인간욕구 5단계인간의 욕구는 순차적인 단계에 근거하여 나타난다.맥그리거의 X&Y 이론인간의 본질과 경영업무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지적.인간의 성품과 동기 유발에 대해 경영인의 임무에 대한 다른 이론의 필요성 제시.히츠버그의 이중요소 이론동기유발을 일으키는 요소를 자극하고, 불만을 느끼게 하는 요 소를 잠재워라.맥를리랜드의 3대 욕구 이론작업상황에서 세 가지 중요한 도익 또는 욕구가 존재한다.과정 이론형평 이론인간은 타인의 대우에 관계해서 공평하게 대우 받기를 원한다.기대 이론수행능력 대한 기대도와 수행결과에 대한 기대도가 조합될 때 에 동기가 부여된다.포터 & 로울러의 개선 이론고용자의 만족에 관한 기대모형의 개선 제안.행위변조 이론경영자가 원하는 행위를 만들기 위한 형태 강화법의 제시.- 김홍신 의원이 소설가에서 정치가로 변화하게 된 것은 맥클리랜드의 세 가지 욕구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맥클리랜드의 세 가지 욕구는 다음과 같다.욕구 1성취욕구 : 과거에 했던 것보다 더 우수한 무엇을 수행하려는 욕구욕구 2권한욕구 : 자원과 인력을 포함한 환경을 통제하려는 욕구욕구 3연대성에 대한 욕구 : 인간 교제와 인정의 필요이 세 가지 욕구는 순서에 따라 첫 번째 욕구가 만족될 때에 다음의 욕구가 발생한다. 그러한 이유로 매슬로의 인간욕구 5단계 이론과 비교되기도 한다.김홍신 의원의 사례를 맥클리랜드의 세 가지 욕구 이론과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다.처음 김홍신 의원은 자신이 대학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사회에 대한 생각들을 출판사를 만들면서 쏟아 놓는다. 그리고 많은 탄압 속에서도 사회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더욱 강도 높은 비판을 서슴없이 행한다. 이러한 그의 행동에서 자신의 예전 성과보다 더욱 높은 성과를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행동으로 인하여 그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됨과 동시에 지금까지 작가로서 자신의 수행해왔던 성과보다 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이 갖춰진 자리를 제안 받게 된다. 그는 정치계에 입문함으로써 사회 비판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넘어서 자신이 사회와 정치를 개혁할 수 있는 자리를 얻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두 번째 욕구도 만족시켜줄 수 있었다.맥클리랜드가 제시하는 두 번째 욕구는 자신이 속한 자신의 환경을 통제하려는 욕구이다.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자신의 힘으로 이 사회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 당시 김홍신 의원의 상황에서 정부 및 많은 권력층으로 받는 협박과 탄압을 모두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던 것이다. 정말 그가 단지 사회를 비판하는 것에 만족하고 그때 당시의 자신의 상황-사회에 대한 비판을 가함으로 인하여 자신의 인지도는 올라갔으나 협박과 탄압에 시달리는 상황-에 만족했다면, 그는 절대로 정치인으로서의 발을 들여놓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자신이 원하는 데로 조정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정계에 진출한 것이다.김홍신 의원은 자신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는 많은 정치인들과 계속적인 교제가 필요했다. 그렇기에 그들의 제안을 거절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자신과 친분이 있는 많은 사람들과 그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자신이 뛰어난 인재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하다는 것은 그의 홈페이지 내의 자필로 쓴 자기 소개문을 읽으면 알 수 있다. 특히 그는 자신이 정치인으로서 활동을 하는 동안의 업적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어 하고 있음을 자신의 글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1. 한국 능률 협회 컨설팅- 한국 능률 협회 컨설팅은 1962년 한국 능률 협회에서 시작하여 지난1990년 "고객만족"과 "고객가치창조"라는 기치 아래 설립되었다.KCSI를 발표, 고객만족 경영대상 제정, KMA 히트상품의 선정·발표 등을 통하여 고객 중심의 시장을 선도해 나가고 있다. 또한 국내 최초로 6 시그마를 도입하여 보급하였고 현재 시장에서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는 브랜드 파워를 조사·발표하기도 하였다.KMAM이라는 산하 교육기관을 통하여 경영컨설팅, 시상 및 인증제도, 연구조사, 헤드헌팅·인재파견 서비스, 글로벌 비즈니스, 공공지자체, 경영개발, 인터넷 경영, ERP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인재들을 교육·배출하여 우리나라의 컨설팅 분야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미국의 DDI, KT, AMA 영국의 DNV, QA 일본의 JMA, JMAC 등의 해외 유수 기업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하여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CS경영, TPM, R&D, 6 시그마 등의 여러 분야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한국 능률 컨설팅은 다른 업무보다 컨설팅 분야의 인재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이 점이 완성된 컨설턴트들로 이루어진 다른 기업에 뒤지게 되는 약점이 될 수 있으며 아직까지는 세계 다국적 기업에 비하여 한국 내의 그룹이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2. 아더앤더슨 컨설팅- 아더앤더슨은 1913년 미국 시카고에서 설립되었다. 아더앤더슨은 전세계를 4개 지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 본부 하에 국별 사무소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각 지역 사무소는 모두가 산업별-서비스 라인별로 연계된 3 way Matrix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아더앤더슨은 전 세계 조직을 활용하여 경영전략에서부터 인사, 조직, 프로세스 혁신, CRM, SCM, ISP/ERP Implementation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프로젝트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재는 eBusiness Strategy Planning, Web Design과 Implementation 등에 주력하고 있다.아더앤더슨은 고객의 e Business 환경을 효과적 구현을 위하여 기업내부의 엔터프라이즈 솔루션, 기업과 기업 및 고객간을 연결하는 인터엔터프라이즈 솔루션, 그리고 인터넷 비즈니스를 지원하는 인터넷 솔루션을 통합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아더앤더슨은 e Business 뿐만 아니라 금융, 정보통신, 에너지 및 유틸리티, 제조업을 대상으로 기업내ㆍ외부에 걸친 모든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End to End서비스 제공체제를 갖추고 있다.3. 맥킨지 컨설팅- 맥킨지 컨설팅은 경영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컨설팅 회사이다. 맥킨지는 전사 경영전략, 사업부별, 전략적 제휴 및 인수와 같은 전략 컨설팅을 하며, 조직 구조 개편, 핵심 조직 역량개발, 조직 운영시스템 설계, 조직 활성화와 같은 조직개편 컨설팅, 영업력 강화, 제조 물류 합리화, BPR과 같은 업무개선 컨설팅을 하고 있다.맥킨지 컨설팅은 그룹 내의 조직을 여러 개의 섬과 같은 조직을 만들었다. 이러한 조직은 계층의 단순화를 만들고 팀원들간의 자유롭고 원활한 의사소통을 창출한다. 이는 보통 그들이 접하게 되는 복잡한 문제들을 보다 창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주며 서로의 의견교환으로 인하여 잘못된 점과 부족한 점을 쉽게 고칠 수 있도록 해준다.위에서도 말했듯이 맥킨지는 경영 전문 컨설팅 그룹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있다. 물론 맥킨지가 경영 컨설팅 부문에서 최고를 달리고 있지만 더 많은 분야의 컨설팅에 도전한다면 더 큰 발전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4. 한국표준협회- 한국표준협회는 컨설팅보다는 유능한 컨설턴트 배출과 정보의 공유 및 산업표준화 등에 더 많이 주력하고 있다.한국표준협회는 산업표준화법 제 29조에 의거 설립된 특별법인으로서, 1962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산업표준화와 품질경영에 관한 조사·연구 및 교육·컨설팅, KS 규격서의 발간·보급 및 국제규격의 보급에 주력해 오고 있다. 또한 전사적 품질경영시스템 구축을 위해 QM·VE·IE·물류·TPM 등의 보급과 ISO 9000/14000 인증 교육·컨설팅으로 원가절감 및 품질향상을 도모, 국내기업의 경영혁신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3,800여 회원사를 확보하여 많은 정보를 공유하며, 21세기 선진 산업사회 건설에 이바지하고자 자체의 전문능력을 향상시키고, 연구와 창조를 통해 세계적인 종합컨설팅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한국표준협회는 국가 표준화 품질기관이라는 브랜드 파워를 지니고 있다. 반면에 컨설팅 자체보다는 교육 등에 더 주력하고 다른 다국적 기업에 비하여 경영 노하우 등이 뒤진다는 단점이 있다.5. Ernst & Young International- Ernst & Young International는 한국에서는 영화회계법인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 음식의 세계화 방안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른바 세계화 시대라고 불린다. 모두들 세계화를 부르짖고 나서고 있다. 우리의 문화와 문명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고 외국의 많은 문화가 우리나라에 소개되고 우리 문화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를 찾고 우리 문화를 배우기 위한 노력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음식은 어떠한가? 음식 또한 마찬가지로 우리의 많은 음식이 세계에 알려지고 있고 우리에게 다른 나라의 많은 음식들이 소개되고 있다. 다른 문화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음식을 세계에 알리고 수출시키는 것은 우리의 문화적인 경쟁력을 높이고 우리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좋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외국인들이 한국 이라는 이름을 듣고 떠올리는 음식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국의 음식으로서 유명한 음식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음식은 김치와 불고기이다. TV에서 또는 직접 외국인을 만나서 한국 음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치 와 불고기 를 꼽는다. 이러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김치와 불고기가 우리나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음식일뿐더러 우리나라 즉 한국 사람들이 스스로 가장 즐겨 찾는 가장 서민적인 음식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한국인에 의해서 한국 문화를 소개받는다. 그렇게 되면 먹는 음식 또한 한국인이 가장 즐겨 찾는 음식을 접하게 되는 것이고 그런 이유로 김치와 불고기가 외국인에게 가장 알려진 한국의 음식이 된 것이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그 두 가지의 음식을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이라 생각하게 되고 그 것들을 상품화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김치는 세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고, 그 수출량 또한 대단하다고 한다. 또한 일본에서도 그들의 전통음식과 우리의 김치를 함께 섞어서 만드는 새로운 요리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은 정말 김치와 불고기뿐인 것일까?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요리는 프랑스 요리라고 한다. 맛뿐만 아니라 눈으로 즐기는 맛이 세계 최고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궁중요리를 세계에 보인다면 어떠할까? 아마도 프랑스 요리 만만치 않은 아름다움을 자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궁중요리에는 매우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 중에서 몇 가지 요리에 대해서 살펴보자.먼저 가장 유명한 요리로는 신선로를 들 수 있다. 신선로는 구자(口子) 곧 입을 즐겁게 해 주는 탕이라는 뜻으로 열구자탕(悅口子湯)이라고도 한다. 신선로는 숯을 담는 화통이 붙어 있는 냄비에 육류, 해산물, 채소를 각각 익히거나 지져서 신선로 틀의 폭에 맞는 길이로 갸름하게 썰어서 화통을 중심에 두고 색스럽게 돌려 담은 다음 웃기로 잣, 은행, 호두, 고기완자 같은 것을 얹고 장국을 부어 끓이면서 먹는 음식이다. 신선로 틀의 맨 아래에는 곰국거리와 무를 삶아서 깔고 그 위에 양념한 육회를 판판하게 깐 뒤 각색 전유어와 지단을 같은 크기로 채썰어서 돌려 담는다.신선로와 함께 유명한 궁중요리는 구절판이 있다. 구절판은 아홉 칸으로 나누어진 그릇의 이름이었으나 나중에는 그냥 음식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구절판은 밀가루로 지진 얇은 떡에 여덟가지 재료를 넣어 싸서 먹는 음식으로 쇠고기 볶은 것, 표고버섯, 오이, 당근, 숙주, 석이버섯, 달걀 흰자, 달걀 노른자를 여덟 칸에 담는다. 그리고 가운데 칸에다는 밀가루 전을 담는데 그 맛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색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는 요리이다.이외에도 맛뿐만 아니라 보기에도 아름다운 궁중요리들이 다양하다. 이러한 요리들을 좀더 대중적으로 만들고 상품화시킨다면 우리나라의 전통요리는 더욱더 발전할 것이며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자랑할 만한 요리가 궁중요리 밖에는 없는 것일까? 우리가 주의를 조금만 기울여본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는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훌륭한 음식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 우리가 명절 때마다 즐겨해 먹었던 음식들을 살펴보도록 하자.대표적인 명절 음식에는 떡국, 오곡밥과 나물, 식혜, 수정과, 국수, 화전, 한과 등이 있다. 이 음식들은 모두 서민들이 명절이면 즐겨 먹던 음식들이다.떡국은 명절 때마다 먹었던 세시 음식 중의 하나이다. 설날 아침엔 차례상을 차릴 때 밥 대신 떡국을 올린다. 그리고 아침으로 떡국을 먹는다. 예부터 새해 첫날 아침에 먹는 떡국은 병 없이 오래 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오곡밥과 나물은 정월 대보름날에 해 먹는 음식이다. 오곡밥은 찹쌀, 찰수수, 팥, 차조, 콩 등 다섯 가지 종류의 곡식을 섞어 만든 밥이고 반찬으로 호박, 가지, 시래기, 곰취 등과 같은 나물을 먹었다. 특히 나물들은 여러 가지 색이 겻들여 지도록 신경을 써서 무쳐 먹었다.식혜와 수정과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음료수라 할 수 있다. 식혜는 밥에다가 엿기름을 부어 삭힌 후 설탕을 넣고 끓여서 만들고 수정과는 생강과 계피, 꿀을 함께 넣고 끊인 물에 곶감 등으로 단맛을 더한다. 식혜는 달콤함이 수정과는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맛이 그 매력이라 하겠다.국수는 우리의 전통 음식으로 주로 밀가루로 만들어 먹지만 밀가루가 들어오기 전에는 마, 칡, 녹두 같은 재료로도 만들어 먹었다. 조선 시대 후기에는 밤, 백합뿌리, 진달래 꽃가루 등의 재료를 사용하는 등 그 종류가 다양해졌다.화전은 꽃을 넣고 지지는 전을 가리키는 말로 꽃잎을 따서 밀가루 반죽 위에 올려놓고 지져서 만든다. 봄에 먹는 화전은 진달래전, 여름엔 노란 장미를 올린 화전, 가을엔 국화전 등 계절마다 피는 꽃으로 다양한 종류를 즐겼다고 한다. 특히 화전은 맛뿐만 아닌 멋도 생각한 우리나라 음식중 대표라 할 수 있겠다.한과는 우리나라 전통 과자로 음식 중에 가장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이 가득 들어가는 음식이다. 과자의 종류는 많지만 유과와 약과가 가장 대표적인 종류이다. 유과는 잔치상이나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 과자이다. 약과는 밀가루에 기름과 꿀 또는 술을 넣고 반죽해서 튀긴 과자이다.이렇게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전통음식들이 있다. 이외에도 떡, 국, 찌개 등 다양한 종류를 가지고 있는 전통음식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음식들을 우리가 먼저 찾고 자주 즐겨서 대중적인 음식으로 만들어야만 우리들이 자신있게 외국에 소개할 수 있을 것이고 세계화를 시킬 수 있을 것이다.음식뿐이 아니다. 술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술은 그 어느 나라 못지 않은 다양한 종류와 깊은 맛을 자랑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는 술은 얼마나 되는가? 우리나라의 전통술을 우리가 찾을 때에만이 우리나라의 술도 프랑스의 포도주처럼 세계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우리 음식을 세계화시키는 데에는 우리나라에서의 대중화뿐 아니라 또 다른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노력이란 무엇인가?외국 음식을 처음 접할 때 우리들은 별로 맛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물론 외국의 음식을 그 자체로 즐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자체보다는 우리의 입맛에 맞게 변형이 되었을 때에 더욱더 인기를 얻고 유명해진다. 서구의 전통음식이었던 피자나 햄버거 등이 그 고유한 맛을 지닌 종류보다는 한국 음식과의 접목을 통한 불고기 피자나 불고기 햄버거, 라이스 햄버거 등으로 새로 태어난 종류가 더욱더 인기가 많다는 사실을 볼 때에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우리들의 전통음식을 외국으로 가지고 나갈 때에 물론 우리 음식의 고유한 특성은 지니고 있어야겠지만 우리 입맛에 맞춘 음식을 외국인들에게 억지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입맛에 맞추어 변형시키는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김치이다. 김치는 우리나라의 고유한 맛은 매운 맛이다. 그러나 서구의 사람들은 그 매운 맛을 즐기기도 하지만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마늘 냄새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나라로 수출되는 김치는 매운 맛과 마늘 등의 조미료의 냄새 등을 줄임으로써 김치의 맛을 그들의 입맛에 맞춘다. 아마도 이렇게 맛을 변형시킨 것이 외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가 아닐까 한다. 위에서 열거한 음식들은 그 고유의 맛 자체로도 훌륭하다. 그러나 우리와는 음식문화가 다르고 좋아하는 기호가 다른 외국의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에게 우리나라의 음식을 선보일 때에는 그들의 입맛에 맞추어 맛을 약간 변화시킨다면 더욱더 사랑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법원 방청기6월 1일 금요일. 법학 개론 수업이 끝난 뒤, 함께 수업을 듣는 선배 오빠들과 법원으로 향하였다. 법원도 관공서이기 때문에 5시에 문을 닫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서둘러 법원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법원은 우리의 생각보다 늦은 시간까지 재판을 하고 있었다.우리가 간 법원은 양천구 목동에 있는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이었다. 역시 법원은 그 말에서 느껴지는 무게만큼이나 멋있고 중후하였다. 처음 법원을 가보는 나로서는 두려움이 앞서기 시작하였다. 나와 함께 간 오빠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두려움에 떨면서 안으로 들어가 수위아저씨와 총무과 아저씨를 거쳐서야 비로소 재판중인 법정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법원에 계신 분들은 매우 엄숙하고 딱딱한 분들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우리 법학 교수님만큼이나 부드럽고 친절하신 분들이었다. 법원의 직원 분들에 대한 첫인상은 매우 좋았다.우리가 들어가게 된 법정은 유일하게 재판을 하고 있던 308호 준법정이라고 하였다. 법정들이 모여 있는 곳을 보니 TV에서 본 듯한 모습들이 보였다. 특히 법정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만든 조그마한 창문은 참 인상적이었다. 정의를 상징하는 듯한 저울 그림도.우리가 법정에 도착했을 때는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우리는 먼저 법정 준수 사항에 대하여 읽어보았다. 음... 역시나 엄숙한 분위기였다. 우리의 소지품을 검사할 수도 있다는 무서운 말도 있었고 만일 법정에서 핸드폰 등이 울리면 1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우리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겨우 조심스레 법정으로 들어갔다.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판사께서 지금 재판을 마치고 다른 날에 선고를 하겠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들어오자마자 재판이 끝나게 되었다고 당황하였다. 그러나 잠시 후, 또 다른 재판이 시작되었고 그때서야 안심을 하고 재판에 귀를 기울였다.우리가 처음 보게 된 재판은 폭력사건 같았다. 택시 회사 직원들이 직원들끼리 싸웠다가 피해자의 신고로 법원까지 온 것이다. 처음 사건의 시작은 택시 미터기 조작사건으로 경찰들이 택시회사로 신고를 받고 나갔는데 사건의 조사 과정에서 직원들끼리 몸싸움이 생겼다고 했다. 재판에는 피고인들과 판사, 검사, 변호사 그리고 두 명의 증인이 참석하였다. 그 중 신기했던 점은 형사 재판이기 때문이었는지 피해자가 원고로 출석을 한 것이 아니라 증인으로서 출석을 했다는 점이다. 증인들은 처음에 피고인들과의 친인척 관계 여부에 대해서 질문을 받고 만일 거짓 증언을 했을 때에는 위증죄로 처벌받는다는 경고를 듣고 선서를 한 뒤 재판에 임하였다. 먼저 첫 번째 증인은 피해자였다. 첫 번째 증인이 진술을 하는 동안 나머지 증인은 법정 밖으로 나가 있어야만 하였다. 첫 번째 증인은 계속 자신이 피고인들에게 폭행 당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폭행의 이유가 불분명하였다. 첫 번째 증인의 증언이 끝나고 두 번째 증인이 법정으로 들어와 증언을 하였다. 두 번째 증인이 사건이 있던 날 회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을 했던 경찰관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그 경찰관은 그 상황에서 아무런 다툼이나 폭행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증언하였다. 첫 번째 증인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법정이 약간 술렁거렸다. 다들 두 번째 증인의 이야기를 믿는 듯한 눈치였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 증인의 약간 불분명한 주장보다는 두 번째 증인의 확실한 증언이 훨씬 믿음직하였다. 판사나 검사도 모두 그러하겠지? 그럼, 첫 번째 증인은 위증죄와 함께 피고인들에 의하여 명예훼손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휘말리지 않을까? 두 번째 증인이 증언을 모두 마친 뒤 피고인들에 대한 아무런 이야기도 들어보지 않고 재판은 끝이 났다. 아쉽게도 선고 공판은 6월 19일에 한다고 한다. TV에서 가장 많이 보았던 선고 장면을 볼 수 없었던 것이 가장 아쉬운 점이었다.첫 번째 재판이 끝나자마자 아무런 휴식 없이 바로 두 번째 재판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 재판은 어떤 아저씨가 고속도로에서 음주운전을 하고 사고를 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는 것 같았다. 정확한 죄명은 배임이었다. 배임..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단어인데 어디서 들어본 것인지, 무슨 뜻인지는 잘 생각나지 않았다. 두 번째 재판은 첫 번째와는 달리 증인이 나오기 전에 피고인을 먼저 심문하였다. 두 번째 재판도 증인은 두 명이었다. 그 사건이 있을 당시 피고인과 함께 사고가 난 차량의 주인인 한 아주머니와 그 사고를 처음 담당하였던 교통 경찰관이었다. 이들도 첫 번째 재판과 같은 절차를 밟고 증언을 하였다. 먼저 경찰관이 증언을 하였다. 경찰관은 말이 약간 횡설수설 한 듯 하였고 불필요한 말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판사의 지적을 받기도 하였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경찰관은 피고에게 가장 불리한 상황으로 증언을 하되 무엇인가 말이 맞지 않는 듯한 이야기가 나오면 무조건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도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행동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넘어갔다. 전문적인 지식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두 번째 증인은 사고 차량의 주인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경찰과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하였다. 아주머니는 그 때 상황을 약간 기억을 못 하는 부분도 있었으나 오히려 경찰관보다 구체적으로 증언을 하였다. 그런데 아주머니의 증언 중 우리에게는 아무런 중요성도 없어 보이는 단어에 판사와 검사 그리고 변호사는 매우 집중을 하였다. 그 전까지 모두가 피고인이 고속도로 중앙에서 시동을 끄고 멈추어 있었다고 이야기했는데 아주머니가 미등이 켜져 있었던 것 같다고 이야기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데 그 분들은 대단한 것을 발견한 듯한 표정으로 자꾸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증인에 대한 심문도 끝났다. 이 사건 또한 6월 19일에 선고를 내린다고 하였다. 그런데 검사는 피고인의 형을 징역 2년으로 해달라고 이야기하였다. 우리들이 집에 올 때에 가장 큰 이야기 거리는 정말 그 피고인이 징역 2년을 선고받아야 할 만큼의 죄가 있는가였다. 그리고 두 번째 재판에서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변호사였다. 상당히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아무래도 시작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마치 TV에서 보았던 재판 장면에서 나오는 변호사들처럼 열정적인 모습으로 변호를 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