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의 생애 Peter Brown1. 아프리카어거스틴이 354년에 Thagaste에서 태어났을 때에 Thagaste(오늘날 알레지아의 Souk Ahras)의 도회지는 300년 동안 존속해 왔었다. 그곳은 아프리카 북부에 전역의 지독한 자존심의 많은 중심부들의 하나였다.기원전 1세기 이래로 ‘경제적 기적’이 북 아프리카의 후배지를 변형시켰다. 기원 3세기 경에는 어거스틴이 태어난 옛 누미니다인 고원 평지와 고원의 골짜기들은 곡시이 심겨졌고 도로로 종횡으로 통하였고, 도회지들이 정착되어 있었다. Aures 산맥을 넘어 더 남쪽으로 일련의 요새들이 사하라의 끝자락에서 집약적인 경작과 경작의 부재 사이에 경계를 지켰다. 풍요한 그 시대에 Thysdrus의 어느 지역의 주민들은 평야의 중앙에 로마의 콜로세움의 크기만한 원형극장을 세웠다; 그러나 이 번성기의 가장 전형적인 기념물이 Thagaste.의 남쪽에서 멀리 떨어진 도읍 Timgad의 비문에서 나왔다: “사냥, 목욕, 농담과 웃음: 그것이 나에게 생명이다!”4세기 경에 본래적 확장이 불길한 중단에 이르렀다. 건물을 짓는 계획이 중단되었고 오랜 공중 기념물들이 부서지기 시작했고, 아랍의 시장의 판자촌들이 옛 로마 도시의 바둑판 거리 주변으로 착착 들어붙어 있었다. 아프리카의 부는 그 이전의 중심지로부터 옮겨졌다. 대신에 올리브 나무 숲이 남부 누미디아의 언덕을 덮고 있었다. 어거스틴은 밤새 아프리카에서 일할 수 있었다. 그의 램프는 커치른 아프리카 오일의 많은 공급으로 채워졌다. 이오일은 로마 도회지의 활보를 결여한 마을들의 소수의 사람들로부터 왔다. 역사이래로 거의 관습을 바꾸지 않은 이들의 튼튼한 경작자들은 아프리카 번영의 중재자들이 되었다: ‘경건한 사람 Dion이 있다; 그가 80년을 살았고 4000그루의 나무를 심었다’.어거틴의 Thagaste는 이 새로운 아프리카의 끝자락에 고원에 자리잡게 되었고 카르타고로부터 통치를 받았다; 그러나, 옛 누미디아 왕국에 속하였다. 카르타고의 아프리카가 우리의 상상들을구절에 상당히 많은 수의 묘비명들을 만들어내었다.하지만, 이듬해에 어거스틴은 Thagaste에 다시 돌아왔다. 파트리키우스가 카르타고에서 드는 교육비를 충분히 벌 때까지 1년간 기다려야만 했다. 이 해는 반달리즘의 소란과 갑작스런 맹습을 받은 것에 의해 특징을 이루었던 비참한 해였다. 여기에 더하여 상황은 모니카가 여인들과 관계를 경고하여 한 엄청난 갈등에 의해 더욱 어렵게 되었다. 덜 야망적인 부모들의 자녀라면 이시기에 결혼을 하였을 것이다. 어거스틴은 후에 감정의 바늘들을 무디게 할 수 있도록 결혼을 주선해주지 않은 것에 대하여 모니카와 파트리키우스를 비난할 것이다.그러므로, 371년에 어거스틴의 카르타고에 도착이 그토록 기억할 만한 것이었음이 틀림없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카르타고에서 부정한 사랑의 큰 가마솥이 어거스틴 자신을 매우 끓어오르게 하였다. 카르타고에서 인생이 매우 더욱 흥분적이었다. 친구들은 난폭하였다. 1학년들과 선생님들은 오랜 노동자들의 단합에 두려움을 느꼈다. 어거스틴은 특징적으로 그들의 폭력에 의해서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소속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이 있었다.그러나, 큰 도시의 생활은 그의 사춘기의 오랜 지연된 위기와 비교되었던 어거스틴에게 거의 의미가 없었다. ‘나는 아직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라 나는 사랑과 사랑에 빠졌고 그리고 나의 필요의 깊숙한 곳으로부터 필요를 예민하게 느끼지 못한 것에 대하여 나는 스스로를 증오했다....내가 가장 필요로 한 것은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이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의 몸에 관한 즐거움을 얻었을 모든 순간에 나는 사랑 속으로 신속하게 달려들었다’.이순간들이 어거스틴이 드디어 그의 감정을 사치스럽게 되도록 허락할 수 있었던 날들이었다. 그는 극장을 찾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연인들의 헤어지는 장면을 보기를 사랑했다: 그리고 나는 불행한 청년으로 울기를 좋아했다; ‘나를 울리는 어떤 것을 찾는데 나는 미쳐있었다.’그러나, 1년 안에 이 모든 것은 변화도록 되어 있었다. 32세 혼합으로서 생생한 인간 의식을 공유했다: 그러나, 그는 물질적 우주에 관한 충분히 상세한 묘사에 의하여 이 혼합을 설명했다. 마니에게 우주 자체는 이같은 혼합의 결과였다: 마니교도들의 복음이란 보이는 세계가 빛의 왕국의 파괴된 파편의 순수 본질이 증류되는 거대한 ‘약국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마니교인은 보이는 세계에 완전히 깊이 뿌리 박혔다. 그의 주변의 모든 물질적 과정은 그의 구원을 위하여 일어나고 있었다. 그는 이교도처럼 태양을 숭배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교도는 태양 아래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신을 느끼었을 것이다. 이교도에게는 남자들이 인간의 몸에 예속되고 욕망, 슬픔, 분노에 종속된 피조물이었고 그같은 욕망의 방해를 받은 나중에 나온 자였다: 태양이 세상보다 훨씬 위에 있는 초인간의 마음 곧 ’보이는 신‘이었던 반면에. 어느 마니교인은 태양 안에서 보이는 찬란한 자신의 일부, 자신의 선한 본질의 파편을 보았을 것이다. 그는 마니의 책들에 기술된 ’과학적으로‘ ’객관적인‘ 불가항력적 과정에 관여하는 짜릿함을 경험했을 것이다: 빛은 빛으로 돌아가고 파편은 파편으로 돌아가고........ 그 빛은 자신의 장소로 되돌아오고, 어둠은 떨어지고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다른 어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도 신자들에게 보이는 우주가 어떤 방식으로 건설되었는지와 그것을 통하여 진성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말하지 않았다. 어떤 종교적 체계도 보이는 세계를 그처럼 철저하게 그리고 그같은 문학으로 내부의 영적 갈등의 외연화를 다룬 적이 없었다.나타났던 우주의 그림은 물론 한 교육받은 로마인이 익숙했던 세계는 아니었다. 그 마니교 책의 내용과 물질적 우주의 관찰된 사실들 사이에 충돌이 거의 불가피하였다. 왜냐하면 마니교도들은 그들의 우주에 관한 그림이 결코 어떤 더 깊은 진리를 상징화하는 신화라고 결론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달이 차고지는 것이 어떤 영적 사건의 이미지일 뿐만 아니라 아주 문자적으로 세상을 향하여 솟아오르는 해방된 빛의 파편들의 유입에 의한 사들을 되돌아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암브로스가 네게 명령했다면 네가 나를 사슬에 묶어 그에게로 넘길 수 있었다.’ 우리 성직자들은 제국에 올라가는 자신의 길이 있다고 암브로스는 말했다. 우리의 연약함이 그 보좌에 오르는 길이다. 왜냐하면 나개 약할 그 때에 내가 가장 강하기 때문이다.6월 17일 경에 암브로스의 승리는 완전하였다. 그는 바실리카를 건설했다. 어떤 타오르는 느낌이 그에게 건물에 봉헌하게 되는 몇몇 순교자들의 유골을 찾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였다. 간단한 탐구 이후에 성 Gervasius와 Protasius의 완전한 시신들이 발굴되었고 의기 양양하여 새로운 교회로 옮겨졌다. 그 자신을 고무시켰던 감정에 사로잡혀 암브로스는 거의 한마디도 말할 수 없었다. 그가 말했을 때에 그는 군중들에게 순교자들이 위대한 석관들에 누워계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전형적인 로마인으로 그의 이 바실리카 안에 그의 제단 아래 자신의 힘으로 그것들을 준비하였다. ‘이 사람들은 내가 보증하고 있는 지지할 유력한 인물들이다’.그러한 사람은 어거스틴에게 거의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그 타입의 인물을 오직 너무 잘 알았다: 기독교인이 되어 한 아내와 결혼하게 되고 무릎을 교회에 꿇어 기독교 법정으로부터 지위를 얻게 된 그 사람. 그가 감독에 어울리는 어거스틴을 공식적으로 그의 도착시에 영접하였고 어거스틴이 이 경원한 부성적인 인물에게서 기대했던 것보다 한층 더 친절하게 영접을 하였다: ‘나는 그를 사랑하기 시작하였다.....나에게 친절을 보여준 한 인간으로서.’ 그러나, 암브로스의 설교가 어거스틴을 걱정시키기 시작했을 때에 감독에게 접근하기는 불가능했다. 암브로스는 항상 중요한 인물들을 만나느라고 분주하였다. 어거스틴이 그러한 군중들을 통과하여 애써 나아갈 때에 그는 암브로스가 당황스럽게 멀리 있음과 완전한 침묵속에 책을 읽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가 독서할 때에 그의 눈은 페이지를 여행했고 그의마음은 느낌을 찾아내었으나 목소리와 언어는 침묵하였다. 어느 누구도 었고; 그분은 모든 시간 위에 있고 변함이 없다: 우리의 영혼들 안에 머무는 지혜에 참여함으로써 우리의 영혼들이 새로워지고 이것이 우리영혼들이 지혜의 원천이다.’자신에게 여전히 마니교를 확증하도록 했던 사상의 양식으로부터 자신이 솟아오르고 있었을 때에 어거스틴은 플라톤의 책들을 읽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을 자신에게 나타난 동시에 분리된다고 생각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어거스틴은 알았다. 마니교인으로서 그는 이 문제에 대하여 특별히 철저한 대답을 확증했다: 개인은 완전히 선하신 하나님의 ‘본체’와 연합되었고 이 완전의 조각과 동일시 될 수 없는 모든 것을 그는 절대적이고 되돌릴 수 없이 악하다고 분리시켰다. 플로티누스는 어거스틴을 이같은 딜레마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수 있었다. 그의 가장 힘들게 쓴 작품들 논문들 가운데 하나가 영적 세계가 장소와 시간의 세계에 근본적이라고 전달하는 데 전념하였다. 여전히 어거스틴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플로티누스가 끊임없이 그리고 열정적으로 자신의 Enneads의 도처에서 절대 선(the Good)의 능력이 항상 주도권을 지켰다는 것을 논증한 것이다: 모든 것을 만지면서, 틀을 만들고 수동적 문제에 의미를 주면서 어떤 방식으로도 침범 당하거나 축소됨이 없이 일자(the One)가 흘러나온다.마니교 세계관의 가장 어두운 계급 곧 절대 선의 능력이 본질적으로 수동적이라는 것은 플로티누스에 의해 웅변적으로 부인되었다: ‘악은 혼자가 아니다: 선의 본성 곧 절대 선의 능력에 의하여 그것은 악(Evil)만이 아니다: 그것은 황금의 족쇠에 묶인 어떤 포로처럼 어쩔 수 없이 절대 미(the Beauty)의 사슬들에 둘러싸인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항상 자신들의 눈 앞에서 악을 가질 필요를 위하여가 아니라 악이 자신들 앞에 나타날 때에 사람들은 그들의 기억(Rememberance)에 대한 절대적 선과 미의 형상들을 결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절대 미(the Beauty)의 사슬들 아래에 악을 감추어 두었다.’플로티누스의 우주는 끊임없는 활동적인 유.
동방 정교회들어가는 말Ⅰ. 동방정교회의 역사적 기원과 발전Ⅱ. 정교회의 특징Ⅲ. 정교회의 예배1. 예배의 기본 형태2. 성례전3. 예배의 특징Ⅳ. 성상·성인숭배Ⅴ. 구원론Ⅵ. 연합나가는 말들어가는 말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에 의하면 교회란 ‘하나이며, 거룩하며, 사도적이며, 보편적이라고 한다. 이 네 가지는 교회의 본질적인 속성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현실적으로 교회를 보면 거룩하지 못한 측면, 사도적이지 못한 부분, 보편적이지 못한 교소가 많다. 더구난 하나이기보다는 너무나 많은 갈래로 나뉘어져 있는 비교회적 현상을 보게 된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서 비교회적인 요소들을 제하고 교회의 본질적인 속성들을 지원·육성하는 것이 마땅한 본분이다.현재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고 예배하는 그리스도교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다면 동방 정교회, 로마 카톨릭 교회, 종교개혁적 교회로 분류할 수 있다. 이 모두는 역사적으로 처음에는 한 가족이었으며 나사렛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다.16세기 초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 배경으로 시작된 개혁 교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의 갈등과 신학적 논쟁으로 인해 처음부터 양자 간의 차이점과 공통분모에 대해 비교적 분명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개혁 교회와 동방 정교회 간에는 역사적으로 직접적인 갈등과 신학적 논쟁 내지는 토론의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양자 간의 이해가 서로 부족하였다.개신교 안에서 조차 동방정교회를 이단시 취급하는 사람도 적잖게 있지만 이 시각의 위험성은 무지에서 출발한데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바로 역사를 바라보고 그렇다면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세대에게 원하시는 모습은 무엇인지 고찰해보는 때가 되길 바란다.Ⅰ. 동방 정교회의 역사적 기원과 발전1. 정교회 입문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신앙공동체를 크게 3가지로 구분하면 정교회와 로마 카톨릭과, 그리고 개신교회로 나눌 수 있다.정교회(Orthodox Church)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하나인(onvn Ⅲ) 대백작의 지도력으로 완전히 종식시킨 후, 계속되는 러시아 제국의 지리적인 확장과 비잔틴 황제들의 합법적인 계승자로 자처하는 ‘대단한 인물’인 이반 4세(1530-1584)의 정치적 야망과 더불어 모스크바 대주교(Archibishop)가 1589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승인을 받아 총대주교의 지위로 승격하자, 수도원들과 교회의 재산 소유를 주장하며 교회 장식과 사제들의 의복, 정교한 예배와 예전을 강조하며 열열한 애국심으로 가득 찬 요셉파(the Josephites)를 중심한 러시아 정교회와 러시아 국민들은 모스크바를 “제3의 로마”라고 그것은 모스크바가 라틴계 사람들의 이단들에게 굴복한 제 1로마를 승계 하였고, 모슬렘에 의하여 희생된 제 2로마인 콘스탄티노플을 승계했다는 뜻에서 그렇게 불렀다.2) 교회의 분열현재 역사가들이 인정하는 것처럼, 동방과 서방 교회의 분열은 사실 그 시작이 정확히 날짜로 정해질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11세기 이전에 시작하여 그 후 약간의 시간이 지나도 완성되지 않은, 점차적이고 오래고 복잡한 과정의 결과로서 일어난 사건이었다.이 오래되고 복잡한 과정 속에는 많은 다양한 영향들이 작용하였다. 분열은 문화적,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요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그러나 분열의 근본적인 원인은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신학적인 것이다. 최종적으로 동방과 서방이 싸운 것은 교리의 문제 들이었다 - 특별히 두 가지 문제, 즉 교황의 주장들과 필리오케(Filioque : ‘성령이 아들에게서도’라고 하는 구절로서 콘스탄티노플 신조의 성령론에 삽입)문제들. 그러나 우리가 이 두가지 주요한 차이들을 좀더 세밀하게 보기 전에, 그리고 우리가 분열의 실제적 과정을 살펴보기 전에 광범위한 배경에서 이이야기 해야 한다. 동방과 서방 사이에 첫 번째 형식적인 분열이 있기 오래전에, 양측은 서로서로 이방인이 되어있었다. 기독교 세계의 교제가 어떻게, 왜 깨어졌는가를 이해함에 있어서 우리는 이러한 점증하는 소외의 사실과 더불어 시작해야만 한다.이 크게 파손되고 얼마 되지 않던 신도들은 뿔뿔이 흩어져 피난을 가버리고 겨우 걸음마를 내딛던 한국 정교회가 사라질 위험에 처하게 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에 참여한 그리스군의 종군 사제였던 안드레아스 할끼오뿔로스 수사 신부의 시작으로 신도들은 다시 모였고, 성당이 다시 재건되었고 수백 명이 세례를 받았다. 1954년 1월 일본 도교의 주교부에서 보리스 문이춘 신부를 사제 서품을 받도록 주선해 주었다. 1968년에는 현재 아현동에 니콜라스 성인에게 바쳐진 비잔틴 양식의 웅장한 성당이 건립되었다. 1975년 문이춘 신부의 후임으로 그리스 정교회에서 부임한 소티오리스 신부는 본격적인 선교활동이 시작되면서 지역 성당 설립, 예식서 및 신앙 서적 출판, 수도원 설립, 신학교 개설, 사제 양성등의 역점 사업을 의욕적으로 진행하였다. 한국정교회는 1993년 소티리오스 신부의 주교 서품에 이어서 한국 정교회의 교구 승격 체제를 갖추기 시작하였고, 특히 1995년의 바르톨로메오스 세계 총대주교 방한과 2000년 한국선교 100주년 기념행사는 한국정교회의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 시켜주었고, 2004년 6월 20일, 한국교구는 대교구로 승격되었고 초대 대주교로 소티오리스 주교가 착좌함에 따라 독자덕인 자치권을 갖게 되었다. 이러므로 한국정교회는 한국적인 정서와 문화 등에 접목함으로써 본격적인 교회 성장에 돌입 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Ⅱ. 정교회의 특징1) 기초교리들① 성경(복음경)정교회에서는 성경으로 70인역(Septuaginta)구약성경 49권과 신약성경 27권 모두 76권사용하고 있다. 구약성경의 제 2경전(외경)은 예수님 시대에 사용되었던 70인역 성경에 붙어 있었기 때문에 정교회는 이를 잘 보전한다.또한 성경을 그리스도의 문자적 형상으로 생각하며 제 7차 에큐메니칼 공의회는 성상들과 복음서들은 동일한 방식으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모든 교회들 속에서 입당 시 복음서는 제단에서 영예로운 위치를 차지한 표시로 성경에 입을 맞추고 성경 앞에 엎이 예식은 하느님을 흠승하고 당일의 성인이나 그리스도 생애의 특정한 사건을 기념한다. 아침예배는 다른 어느 예식보다 여러 찬미가를 바친다. 운율이 갖춰진 그 찬미가들은 복음경과 성경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하겠다.2) 성례전가장 중요한 성례의식은 7개 이다. 일곱 가지의 성례전에는 세례, 견진, 서품성사는 반복될 수 없는 것이며 나머지 네 가지(성찬, 고해성사, 혼인, 종부성사)는 반복 될 수 있다. 각 성례는 특별한 은혜를 전달한다. 세례와 견진례는 의롭게 하고 중생하는 은혜를 전달한다. 고해성사와 성유식은 영혼과 몸을 치료하는 은혜를 전달한다. 서품식과 혼배성사는 우리로 하여금 어떤 특별한 기능을 행할 수 있게 한다. 성찬식은 영적으로 우리를 먹이고 만족케 한다.1>세례 - 육신의 죄악 된 옷을 벗고 죄가 죽고, 그리스도로 옷 입으며 영적인 출생을 의미한다. 은혜에 의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성령 안에 참여함을 통하여 신적 본성에 참여하게 된다. 또한 악한 영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 크리소스톰(Chrysostom)에 의하면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성화 되며, 성령과 교제하게 되며, 양자가 되며,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주*> 바실(Basil the Great)에 의하면 세례는 포로들을 속량 하여 주고 빚을 탕감해 주는 것, 영혼의 중생, 밝고 빛나는 옷, 누구도 공격할 수 없는 인, 천국을 향하는 전타, 천국의 목적, 양자됨의 선물이다. 주19> 그래서 그들은 어릴 때에 세례를 행한다. 어린이를 세례의식을 행하는 곳에 두고, 기름을 바르고, 십자가를 걸어준다. 그 십자가는 평생토록 간직하게 된다. 세례식 때에는 반드시 하얀 색의 옷을 입어야 한다. 세례는 우리를 모든 죄의 더러움에서 자유롭게 해주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며, 그의 성령에 참여함으로서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된다. 주20>2>견진례 - 세례 받은 사람들은 견진례를 통하여 세례 때에 시작된 새로운 영적 상태를 발달 시킬 수 있는 능력 및 성령의 , 교회 건물 전체가 하나의 위대한 성화, 또한 하나님 나라의 이미지를 이룬다. 성화, 프레스코화, 모자이크 등은 정교한 상징의 체계를 가지며 신학적이고 전례적인 기능을 수행하는데 교회를 가득 채운 성화들은 천국과 지상이 만나는 지점 역할을 한다. 이것들은 예배 참석자들에게 천국의 보이지 않는 임재를 느끼게 하며 성화벽은 영원을 향해 열려진 것을 느끼게 하고, 지상에서 드리는 성찬 예배가 천국의 위대한 성찬 예배와 동일한 것임을 느끼게 해준다. 동방교회 예배는 예배의식의 세밀한 부분은 물론 예배 환경, 향, 촛불, 성화상, 건물 구조, 성체성혈, 제온, 성화벽 등이 예배를 위하여 일체를 이루는 풍부한 상징을 통한 통전적이며 전례적인 예배이다. 동방정교의 예배에서 드려지는 기도는 서방교회 기도의 단순성과 비교해 볼 때 지극히 회화적이고 시적이다.둘째, 동방정교회의 예배는 공동체적이고 대중적이다. 정교회의 예배는 성직자와 회중이 함께 수행하는 공통의 행위이며 회중은 예배의식 자체의 행위에 참여한다. 회중은 십자성호를 긋거나 몸을 굽혀 절하거나, 사제가 교회와 여러 가지 세상의 필요한 일을 위하여 연도를 요청할 때 Kyrie eleison(주여, 불쌍히 여기소서)으로 화답함으로서 능동적 예배를 수행한다.셋째, 비록 예배의 장소가 초라해도 신실한 자들이 성찬을 거행하기 위해 모일 때에 그들은 하늘의 처소로 올려지는데 예배가 이뤄지는 곳은 지상의 천국으로서 거룩한 희생 제사를 드리는 곳에는 그 지역의 회중은 물론 보편 교회 즉 성인들, 천사들, 동정녀 마리아와 그리스도 자신이 임재한다는 우주적 예배의 성격과 하나님의 임재 체험을 중요하게 여긴다. 서방교회와 그 강조점의 차이를 비교해 보면 서방교회가 은혜의 수단으로서의 십자가에 초점을 맞춘다면 동방정교회는 주님의 부활과 현현을 중요하게 여겨 강조하며, 은혜의 궁극인 영생에 관심한다고 할 수 있다.넷째, 신화와 신비-동방정교회 예배에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시로 이끄는 신비가 드리어 있는데, 다마스커스의 존은 사람들은 그리스.
Reflection paper모든 것이 산산이 무너지다“Things fall apart”지혜 - 어린이도 손을 씻으면 왕과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것이다.현대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아프리카의 문명은 어찌 그리도 원시적인가? 야만적이며, 교육을 받지 못하고 짐승보다 조금 뛰어나며, 현대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도시인들보다 저급한 인생으로 취급되고 있는 우리의 편견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서구문명의 시각이라고 책임을 미루기에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배웠고, 오히려 그것이 우리 자신의 주체적 통찰력이 없음을 드러내고 있는 꼴일 게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혜와 예절 그리고 사회질서는 현대 국가질서의 잣대로 재단되어 아프리카에 버려진 가뭄이 가득한 땅에 갈라진 바닥과 같은 그림을 보여준다. 이들의 깊은 지혜는 현대 교육과 상관없이 깊고 넓으며, 서양과 동양의 문학적 특성과 상관없이 인간의 한 영혼들의 지혜를 울리고 있다.그러나 이 소설은 다르면서도 비슷한 문명의 유사성과 다르면서도 같은 인간성의 동일성을 보여주고 있다. 오콩코의 아버지 우노카의 너털웃음에서 왠지 모르게 우리 전 세대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조선시대 가난한 선비들의 풍류를 엿보는 것 같기도 하다. 빌린 돈을 달라고 찾아온 친구에게 유난히도 크고 긴 웃음을 던진다. 그 웃음은 오게네 악기 소리만큼 선명하게 울려, 눈에 눈물이 맺힐 정도였다. 우노카의 웃음은 눈물이고 눈물이 웃음인 것이다. 세상살이의 덧없음과 한스러움이 마치 “왜사냐건/ 웃지요”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무능한 아버지의 모습을 남긴 채 그는 세상을 떠난다.두려움 달이 뜨면 절름발이도 걷고 싶어 안달이 난다.오콩코가 사는 마을, 그들에게는 무언가 모를 두려움이 있다. 조용하고, 잠잠하고, 오히려 평온하기까지 한 두려움의 터 위에 이 마을의 기초가 놓여있다. 달빛이 비치는 밤을 빼면 마을은 항상 조용했다. 어둠은 사람들에게 가장 용맹스러운 사람들에게 막연한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아이들은 사악한 귀신이 두려워 휘파람을 불지 못했다. 위험한 동물들은 어둠 속에서 더욱 사악하고 기이한 것이 되었다. 밤에는 ‘뱀’이라는 말을 입밖에 내지 않는다. 혹시 뱀이 들을 수도 있어서, 그냥 끈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두려움에 희망을 주는 것은 달이다. 그 달 빛이 짙고 어두운 밤의 두려움을 잊게 하는 작은 창문과 같다. 사실 여기에서 온 세계가 가진 두려움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온 세계의 무언가 모를 두려움. 바쁘고 분주하지만, 과학과 기술, 문명의 진보는 폭발적이지만 인류는 무언가 두려움이라는 것 위에 달려가고 있다. 그 속도와 그 높이와 길이는 두려움과 비례하는 것은 아닌가? 겨우 달빛 같은 문명의 최첨단 들이 등장하지만 곧 달빛처럼 이지러지거나 사라진다.오콩코에게도 두려움이 있다. 그는 마치 반듯하고, 지성으로 잘 훈련된 한 인간의 모습을 대표하는 것 같다. 그는 집안 단속이 엄격하였다. 부인들, 특히 젊은 부인은 그의 불 같은 성격을 항상 무서워했고,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마 오콩코가 가슴 밑바닥까지 가차 없는 사람은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그는 평생 어떤 두려움 속에 살았는데, 그것은 실패와 유약함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악과 변덕스러운 신 그리고 주술에 대한 두려움, 숲에 대한 두려움, 잔혹함으로 눈이 벌건 자연의 힘에 대한 두려움보다 한층 더 컸고 뿌리가 깊었다. 그 두려움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두려움, 즉 그가 아버지로 인해 당했던 수모에 대한 기억이다. 친절함에 대한 두려움, 게으름에 대한 두려움. 이 두려움들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분모를 보여주는 듯 하다. 마치 두려움이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연료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존중 훌륭한 사람에게 존경을 보내는 것은스스로 훌륭해질 수 있는 길을 닦는 것이지요.그들은 신을 존중한다. 두려움이 동인이겠지만, 그들은 신을 섬긴다. 그들은 사람들을 존중한다. 그들은 수준 높은 예절이 있으며, 인간으로서 훌륭함에 대한 멋스러움이 있다. 그들의 사회는 체계적이고, 도리가 있으며, 윤리적 질서가 있다. 또한 자녀에 대한 깊은 존중이 있다. 우노카는 병든 몸을 가누면서 추수철에 아들 오콩코에게 존중의 말한다. “낙담하지 마라. 너는 낙담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야. 네 심성은 조그만 실패로는 자존심이 강하다는 걸 안다. 그 심성 덕분에 조그만 실패로는 자존심이 상하지 않기 때문에 잘 견뎌 낼 거야. 남자는 ‘홀로’ 실패할 때 더 어렵고 쓰라린 거지.”그러나 마치 현자와 같은 노인은 오콩코가 부족을 존중하기를 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왕의 입을 보면, 한때 어머니의 젖을 빨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 어떤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노인은 성실하고 성공한 오콩코를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오콩코가 자신보다 덜 성공한 남자들을 다루는 방식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마음이 상해 있다. 그들은 존중에 대한 아쉬움과 지혜를 아쉬워하고 있다.사랑 ‘어미 소가 여물을 씹으면 어린 소가 그 입을 지켜본다.’오콩코는 이케메푸나를 잃고 밤에 잠을 자지 못한다. 이케메푸나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 생각이 났다. 침상에서 일어나 집 주변을 걸으면서 다리가 후들거리는 오콩코, 마치 술에 취한 거인이 모기로 걷는 것 같은 그의 느낌과 가끔 머리에 싸늘한 경련이 몸 아래로 쭉 퍼지는 감각은 자신의 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케메푸나에 대한 사랑을 말해준다. 전쟁에서 적을 죽인 영웅이 어린 아이 하나가 죽은 것에 대해 자신이 산산조각이 나는 그 심정이 그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의 사랑을 품고 있다.그의 아내 중에 하나인 에퀘피. 아이 열을 낳고 아홉을 묻은 그녀의 슬픔은 절망으로 그리고 암울한 단념으로 변해 간다. 그녀의 아이의 이름에서 묻어나는 애환 온움비코, “죽음이여, 그대에게 애원합니다.”는 오콩코에게도 전달되었으리라. 생존한 마지막 아이인 에진마를 주술사가 업고 갈 때 밤새도록 쫓아가는 에퀘피를 찾아 같은 자리를 네 번씩 오가는 오콩코의 마음 또한 아내의 마음을 위로하는 그의 사랑의 방식이었다. 에진마의 우는 소리를 듣게 되면 굴 속으로 들어가 세상의 모든 신들과 싸워 아이를 지킬 것이라고 굳게 마음 먹고, 아이와 함께 죽고자 하는 에퀘피. 그녀의 심정을 오콩코 또한 모르지 않았기에 그녀와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야망 누구에게 좋다는 것인가, 누구에게 좋다는 것인가?좋은 사람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축제 중, 오콩코가 발사한 총에 한 아이의 심장은 관통된다. 그의 야망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부족의 질서대로 그는 떠나게 된다. 대지의 신에 대한 범죄였고, 이는 실수로 인한 여성형 범죄에 해당했다. 분노와 복수가 아닌 부족의 질서대로 오콩코의 집은 불태워졌고, 담은 허물어졌으며, 가축들이 죽고, 곳간이 부숴졌다. 그것이 대지의 여신에 대한 정의였으며, 이를 행하는 자들은 단지 여신의 전령으로서 그렇게 한다. ‘손가락 하나에 기름이 묻으면 네 손가락으로 번진다’는 윤리의식으로 그들은 그렇게 한다.그의 야망은 부족의 촌장이 되는 것이었다. 거의 다가와 있었다. 그러나 그 때 모든 것이 무너져 버렸다. 그는 메마른 해변에 헐떡이는 고기처럼 부족에게 내팽개쳐진다. 자신의 “치”는 큰 위업을 이룰 운명이 아니라는 숙명에 직면하게 된다. 자신의 치의 숙명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친족 우첸두는 오콩코의 무너진 야망을 위로한다. ‘자네의 임무는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고 일곱 해 후엔 그들을 아버지의 땅으로 데려가는 것이네. 하지만 자네가 슬픔과 낙담 속에서 죽는다면, 그들 모두 객지에서 죽게 될 것이네… 자네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는 생각하는가?... 평생 동안이나 추방당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아는가?’… 자네가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내 딸 아케우니는 쌍둥이를 몇이나 낳고 버렸는지 물어보게나. 여자들이 죽으면서 부르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는가?
변화하고 있는 선교 정리1.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교회로서의 선교(1) 교회와 선교에버리 둘레스는 5가지 대표적인 교회 유형들을 제시하는데 그에 따르면 교회는 제도로서, 그리스도의 신비적인 몸으로서, 성례로서, 전령으로서 또는 종으로서 간주될 수 있다. 이것들은 모두 교회와 선교간의 관계에 대하여 다른 해석을 담고 있다.카톨릭은 항상 교회에 대한 높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카톨릭 교회론에서는 제도로서, 그리스도의 신비적인 몸으로서의 교회가 우세한 경향을 나타내왔다. 이것은 1943년 미스티시 코르포리스 크리스티 회칙의 공포로 절정에 달했으며 그 회칙은 그리스도의 신비적인 몸과 경험적인 로마 카톨릭 교회를 무조건 동일시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가 본질상 선교적으로 이해된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비카톨릭 사람들에 대한 보편적인 선교지도는 전적으로 교황청에만 있었다.”는 말은 높은 교회의 모습은 반영한다.개신교도들은 교회를 낮은 관점으로 보고 있다. 사람들은 크고 명목적인 교회와 에클레시아 안에서 “참된교회”(에클레시올라 또는 작은교회)를 구분했다. 개신교에서는 공식적 교회가 아니라 이 에클레시올라가 선교의 참된 수행자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으며 여기에는 선교 수행자로서의 교회에 대한 낮은 인식이 있었다.점차적으로 앞에서 살펴본 카톨릭과 개신교 내에서의 교회와 선교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근본적 변화가 일어난다.(2) 선교사상의 변화들개신교1910년 에딘버러 선교회의의 주된 관심은 서구교회들의 선교적 열정의 부재였고 교회와 선교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은 다루어지지 않았다. 1928년 국제선교협의회(IMC)예루살렘 회의에서 세계를 기독교 지역과 비기독교 지역으로 나누는 구분이 주요 문제가 되었다. 1938년 탐바람에서 어른교회들과 어린교회들간의 관계와 교회와 선교간의 관계는 본격적으로 토론되었다. 기독교와 비기독교 국가들간의 구분이 원칙적으로 폐기되었고, 하르낙과 트뢸치의 견해 속에서 집약된 자유주의 개신교의 인간 중심적인 신학은 불 충분한 것으로 판명되었다.하는 것), 문화론적(동방 및 남방사람들을 서방 기독교의 축복과 특권으로 인도하는 것) ,교회론적(교회의 확장), 범주등등으로 이해되었으나 1차 대전후 선교를 하나님의 활동(삼위일체의 맥락)으로 규정되는 흐름이 나오기 시작했고(칼바르트,칼 하르텐슈타인),1952년 윌링겐회의에서 ‘미시오 데이’의 개념이 처음으로 소개되는데..이것이 발전하여, 선교는 하나님의 본성에 유래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것은 선교가 교회론이나 구원론이 아닌 삼위일체의 맥락에 놓인 것이다.이것은 선교는 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세상을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 창조주,구속주, 성화자의 사역이며, 교회가 참여하도록 부름받은 사역임을 의미한다. 선교는 하나님의 마음에 그 기원을 가지며, 하나님은 파송하는 사랑의 원천으로 선교의 가장 깊은 원천이므로 더 깊이 파고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선교가 있다. 즈기 이러한 하나님의 선교라는 인식은 이전세기와는 다른 혁신적인 것으로 우리가 다시 좁고 교회 중심적인 선교 견해로 되돌아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이상 요약이구요.. 약술하라 일 것 같아서 시대적인 흐름은 과감하게 삭제했음다. )이해를 위한 보충을 위하여..짧지만,데이비드 보쉬의 ‘세계를 향한 증거(witness to the world )’라는 책에 [하나님의 선교]부분의 일부 내용을 갈무리한거 첨부합니다.하나님은 선교사로 세계를 향하여 모든 경계를 넘어가신다. 하나님은 창조를 통하여 이미 선교의 하나님이셨으며, 그의 말씀(그리스도)과 영(성령)은 ‘선교사들’로서의 역할을 창조활동에서 하신 것이다. (창1:2-3).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성육신 된 말씀인 자기 독생자를 세계 안으로 보냈고,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신다. 선교는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포기하시는 것이며, 인간이 되시는 것이며, 자기의 거룩한 특권을 주장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인간성을 가지시는 것이고, 이 세계 안에서 자기의 독생자와 성령으로 활동하시는 것이다.이와같은 선교의 삼위일체적 근거 때하나님과 그 구원을 갈망하는 세상간의 계속되는 대화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교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생명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셔서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시며(롬 8:2), 죽음을 정복하신다는 것을 행위와 말씀으로 선포하기 위해 파송받는 것을 의미한다.”4. 정의를 위한 추구로서의 선교(1) 역사의 유산기독교 선교의 복음적인 차원과 사회적인 차원간의 관계는 선교신학과 그 실제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중의 하나이다. 기독교 사회정의의 중심은 구약성경의 선지자의 전통에 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왕들이 저지르는 부정에 대해 도전했다. 그러나 기도교가 로마제국내 불법종교로 간주되던 시기에 사회정의는 보다 “영적인” 차원에서 해석되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도 정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콘스탄틴 통치기 유일한 합법적인 종교가 된 이후에는 오히려 교회가 국가와 결속되어 보다 타협적인 양상을 띄었다.반면에 어거스틴 이후 이 세상을 거룩한 영역과 악한 영역에 대한 이분법적 구분은 카톨릭에서 개신교로 전수되어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 세상은 악하고 구속될 수 없으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교회의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었다.계몽주의의 등장 이후 이분화는 공적 세계와 사적 세계의 구분으로 변형되었다. 정치와 국가는 전자에, 종교와 도덕은 후자에 예속되었다. 교회와 국가는 분리되었고 이후로 교회는 국가에 간섭할 수 없었다.(2) 정의와 사랑간의 긴장니버(Reinhold Niebuhr)에 따르면, 합리적인 윤리는 정의를 목표하는데 반해, 종교적인 윤리는 사랑을 이상으로 삼는다. 후자는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관점으로서, 현실에서 물러서는 “신비적인” 강조는 현실참여적인 “선지자적인” 강조와 갈등을 일으킨다.기독교 윤리에서 해결되지 않는 이 긴장은 대체로 두가지 형태를 띠었다. 개신교 예큐메니칼 운동과 현대 카톨릭은 복음의 절대적인 유효성을 간과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관심을 강조하였다. 반면에 사랑의 윤리는 모든 윤리를다. 그들이 연구하는 역사와 그들이 흡수하는 각 학문의 가정들은 그들 속에 이성에 대한 본능적인 신뢰를 일으키며 그것은 단지 계시에 의해 밝혀질 수 있다.해방신학자들은 거의 순수하게 종교적이고, 심지어는 성경문자주의자들이 되는 경향이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해방신학의 중심에 있다.모든 서구 신학자들은 현대성, 세속성의 실재, 즉 세속 시대에서 하나님에 관해 말하는 것이 여전히 가능하가에 대한 질문을 해결하려고 시도했다. 그들의 사회관은 종종 낭만적이고 유토피아적이며 순수하고 감상적이다.그러나 해방신학은 “아래로부터의 신학”이다. 그것은 권력에 저항한다.4)막스주의와의 연관상황신학과 해방신학은 종종 기독교 복음을 막스의 이데올로기로 변질시킨다는 비난을 받는다. 해방신학자들은 막스의 분석을 처방의 방식보다는 비판의 도구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막스주의의 문제는 잘못된 소망을 불러일으킨 결과 사람들의 절망감과 실망을 심화시키는 막스주의의 단순하고 오용된 종말론이다. 막스주의 속에 있는 결정적 결점은 권력남용, 독단성, 인격적인 숭배 그리고 관료주의적 조직을 지적한다. 막스주의는 1981년 이후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몰락하고 있는 반면 남아프리카의 흑인 신학에 영향을 주었다.●막스 이데올로기와 기독교 신앙이 양립할 수 있는가의 문제첫째, 막스주의는 자본주의와 함께 계몽주의의 전제들, 특히 주체와 객체 사고, 유토피아주의, 현대화 신념과 인간을 자율적으로 보고 인간 본성을 선하다고 보는 전제들을 공유한다. 그러나 차이점은 하나는 평등을 희생하면서 자유를 추구하고, 또 다른 하나는 자유를 희생하면서 평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둘째,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우리 주위의 보이고 만질 수 있는 실재 너머에 또 다른 실재가 있다는 전제에서부터 출발한다. 그것의 준거점은 이 세계만이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막스주의는 이데올로기로 그것은 초경험적인 실재에 대한 어떤 언급도 부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셋째, 폭력의 문제가 있다. 폭력의 지지는 막스주의에 본질적인 것이다. 몇몇 해방주의자들접촉이 이루어 질때 가능한다. 지역적으로 행동하며 세계적으로 사고하며 소 관점을 대 관점과 결합시켜야만 한다. 독특성은 고립을 의미하지 않는다.우리가 ‘화해된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의 모델을 추구한다면 창조적인 긴장이 될 수 있다.9. 공동의 증거로서의 선교(1) 선교에서의 에큐메니칼 개념의 (재)발생개신교 선교에 관한 에큐메니칼 개념은 다양한 각성과 그 결과 서구 교회들이 세계 선교 사업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첫 번째 분명한 예는 18세기에 등장한 경건주의 운동으로 교파적인 차이점들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새로운 통일성을 경험하며, 자신들이 새로운 초교파적인 선교 운동에 참여할 의무감을 느꼈다. 또한 에큐메니칼 정신은 성서협회들과 19세기 말경에는 YWCA와 WSCF와 같은 청년운동에서 나타났고, 그 정신이 꽃을 피운 것은 해외선교 운동에서였다.그러나 19세기의 세 번째 10년 동안 선교와 협력을 위한 열정은 쇠퇴하였고, 종종 새로운 심한 교파주의가 등장했다1). 이것은 이제 더 이상 다른 나라들에 수출되는 것이 "축복된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이 아닌 루터주의, 장로교주의, 성공회주의와 같은 분파들이 됨을 의미했다. 선교 현장에서 이들 분파들은 싸움과 경쟁을 일으켰는데 그 현상은 특히 중국에서 분명히 나타났다.19세기 마지막 분기 이전에 개신교에서 발전한 교회일치 운동의 유일한 새로운 형태는 루터파, 장로교, 감리교와 성공회와 같은 교단 교회들의 국제적인 연합이었다.한편 선교 현장에는 실용적인 이유로 상호 수용이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 일종의 지역에 의한 교파주의가 나타났다.시간이 흐르면서 이 실용적인 생각들은 아주 비의도적으로 기본적인 신학 자료의 재발견 - 그리스도 교회의 하나돔 - 을 산출했다.20세기 초에 세계적, 초용적 에큐메니칼 운동을 향해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도록 가장 중요한 기초석은 1910년 에딘버러에서 열린 세계 선교 대회로 교파적인 차이점들을 초월하는데 성공하며, 참된 통일성은 참된 선교없이, 세상을 향한 열린 창 없이한다.
풍류신학의 교회론머리말1. 교회의 존재와 사명1) 복음선교의 문제2) 타종교인에 대한 봉사적 과제3) 타종교인과 친교문제2. 평신도교회론1) 평신도신학2) 평신도운동의 본질3. 제3교회론: 풍류교회1) 제3교회의 기틀: 진속일여2) 풍류적 교회간의 기초: 풍류도와 삼철도3) 교회를 향한 구약의 사상적 두 흐름4) 교회의 중심: 통전자 예수 그리스도5) 신약사상의 두 흐름으로부터의 교회4. 예술적 교회론1) 성찬식과 예술2) 성례전의 우주적 신비3) 성례전적 그리스도인맺음말머리말현대사회는 급격하게 변해가는 세속사회이다. 세속사회로 인해 교회도 어떠한 시대와는 달리 세속적 영향아래 있다. 세속사회란 일정한 종교 또는 일정한 이념이 한 사회를 강제로 지배하지 못하는 사회를 말한다. 따라서 세속 사회 안에서는 대소를 막론하고 자기의 신앙이나 사상을 보전할 수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한 집단을 형성할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신앙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가 세속사회인 것이다. 세속사회 안에서는 여러 종교가 공존하도록 법적인 보장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한 종교가 일체를 지배할 수 없는 종교적 복합사회 현상을 빚어내게 된다. 모든 종교는 자기의 신앙적 전통을 지키며 또한 선교할 자유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활발한 종교적 다원사회 현상에 당면한 교회는 오늘날 타종교에 대해 눈을 뜨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타종교가 존재하지 않는 듯이 행동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핸드릭 크레머의 말처럼, “교회는 콘스탄틴 시대 이후 처음으로 세계의 큰 종교들과의 정신적인 대결을 하고 있다.” “한 세기 전만 해도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무시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서구 교회의 입장으로 타당한 말이다. 서구의 대부분이 기독교였고 세계는 기독교 외의 다른 종교나 정신문화와 상관없이 행동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양에서 세워진 교회들은 그 입장이 다르다. 동양의 각 교회들은 동양의 종교적 전통에 대하여 다시금 눈을 뜨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동양은 처음풍부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 기독자의 사귐이다.교회란 곧 이러한 사귐의 센터이다. 교회 자체가 사귐의 공동체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사귐을 전 세계에 펴는 ‘중심체’이다. 그러므로 교회란 모든 사람을 향해 개방된 공동체여야만 한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 교회는 이 세계를 향해 개방된 공동체가 아니라 여러 점에서 폐쇄되어 있다. 특히 타종교에 대한 태도를 본다면 거의 개방성을 찾을 길이 없다. 대체로 배타적인 폐쇄적 태도를 자기도 모르게 간직하고 있다. 바울 선생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둘 사이의 모든 막힌 담을 헐었다고 말할 때, 그는 먼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담이 무너졌다고 선언한 것이다(엡 2:14). 이것을 현대 말로 바꾼다면 기독교와 타종교 사이의 담이 그리스도 안에서 무너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종교적인 이류로도 교회가 타종교를 향해 담을 쌓는다면 이것은 복음에 위배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일체의 교리적 또는 종교적인 우월감을 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두 팔을 활짝 벌려 이 세상의 모든 사람과 함께 타종교인들도 맞이해야 할 것이다.물론 기독교와 타종교 사이의 담을 없앤다는 것이 안이한 관용이나 또는 종교적 혼합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도교는 모든 종교가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의 관용성을 자랑한다. 그리고 현명한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장점을 따서 혼합한 종교를 하나의 이상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관용주의나 혼합주의란 결국 신앙적 결단을 가져오지 못하는 것이며 따라서 거기에는 약동하는 생명을 볼 수 없다.우리가 말하는 기독교와 타종교 사이의 담을 제거한다는 것은 혼합이 아니라 화합이요, 화해의 형태이다. 이것은 만유의 주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 신앙을 결단한 입장에서 세계와 함께 타종교를 향해서 가슴을 활짝 열고 사귐을 갖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하나의 긴장관계가 있다. 즉 우리의 주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 결단과 전 세계를 향해 개방한다는 관계이다. 이것은 또한 복음이 지닌인도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초월자이며,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인간이다. 그러나 이 세상을 떠나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으로 보냄을 받고 이 세상에 적극 참여하여 사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 안에 사는 성도요, 그리스도인의 거룩성은 이 세상에 사는 거룩성이다. 이 세상을 도피한 인간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이야말로 거룩한 인간이다. 십자가를 장식한 종교적 직업인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산 희망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 사람에게서 참된 인간성을 맛보게 하는 사람만이 참된 사람 곧 거룩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 이 세상에 사는 거룩성이 있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평신도성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이다.이러한 의미에서 평신도 운동은 이 세상에 사는 거룩성의 운동이어야 한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의 존재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복음은 사귐(코이노니아)의 회복과 인간성의 회복을 그 메시지로 하고 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끊어진 사귐의 회복이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귐의 회복이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인간성의 표현이다. 이러한 사실은 물론 교직자를 중심한 교회 안에서의 생활 속에서 입증되고 형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또한 이 세상 안에서 이 세상을 위해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는 성도 곧 평신도들은 각기 자기가 처해 있는 세계 속에서 그리스도가 무엇을 어떻게 하심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증거해야 한다. 거룩한 세속성을 삶으로 인간성을 잃은 현대 문명 속에 새로운 인간성을 보여주어야 하며 참된 사귐의 현실을 실천으로 증거해야만 한다.이 세상에 사는 성도(교회)로서의 평신도(그리스도인)는 마땅히 복음운동에 참가하여 인간의 진정한 사귐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을 헐고 화평을 이루어야 한다. 그것은 먼저 문제 해결을 위해 가슴을 연 대화운동이어야 하며, 하나 되는 사귐의 운동이어야 한다. 독일 그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성취할 수 있다(哲有此三寶 能全其美).세 가지 보배란, 첫째, 천성에 통하는 것이니 이는 마음을 비움으로써 하나님의 덕성에 합류하는 것이며, 그 덕이 어진 사람을 낳는다.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밖은 둥글고 안은 빈 동그라미 곧 하늘의 형상이다. 둘째, 생명의 도리를 아는 것이니, 이는 머리가 명석함으로써 하나님의 예지에 합류하여 지혜를 낳는다.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생물의 서식지인 땅의 네모 꼴형상이다. 셋째, 정기를 보전하는 것이니, 이는 몸이 건장하여 하나님의 힘에 합류함으로써 용기를 낳는다.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위가 홍수 양(陽)이고, 아래가 짝수(陰)으로 된 세모꼴 곧 인간의 형상이다.이러한 세 가지 보배의 상호관계를 보건대, 어진 이는 반드시 지혜가 있고, 지혜로운 이는 반드시 용기가 있다. 그러므로 지혜가 어짊에 대하여는 동그라미 안에 네모꼴이 있는 것과 같고, 정기가 지혜에 대하여는 네모꼴 안에 세모꼴이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삼보를 지닐 때 사람은 완전한 아름다움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인생의 존재이유는 이 아름다움의 실현에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삼철도(三哲圖)가 될 것이다. 이것은 “한 멋 삶”으로써 구성된 풍류도의 그림이기도 하다.만다라는 경전의 세계 곧 우주 법계를 한 폭의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림으로 보는 경전이요, 교리이기도 하다. 밀교의 2대 경전은 《대일경 大日經》과 《금강정경 金剛頂經》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불화로는 금강정경을 근거로 한 ‘태장계 만다라’와 대일경을 근거로 한 ‘금강계 만다라’가 있어 이것을 ‘양계 만다라’라고 한다. 한국 불교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은 《화엄경》이기 때문에 이에 근거한 탱화 “화엄변상도(華嚴變相圖)”가 있다. 변상이란 경전 안에 있는 진상(眞相)을 형상으로 표현했다는 뜻이다. 이것을 때로는 “화엄만다라”라고도 한다.이에 준하여 류동식은 성서계 만다라를 그린다. 한인으로서 그리는 성서적 우주의 조감도는 앞서 고찰한 삼철도를 기초로 하게 된다.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다.예술적 교회론성찬식과 예술교회에서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성례전(세례전과 성찬식)이다. 성례전은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영적 은총을 보이는 물체나 형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성례전은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이다(아우구스티누스). 성찬식은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써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영적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예배의식이다. 이로써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총을 몸 속에 지니게 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는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요한 6:54).이것이 예수의 말씀이다. 그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입고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분이요,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분이다. “그의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믿고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 된 특권을 얻으며 영생을 얻으리라고 한다.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드린다는 인격적 행위를 형상화 한 것이 성찬식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의 안에서 살리라”(요 6:56)고 말씀하셨다. 성찬식의 참 뜻은 이 말씀 속에 집약되어 있다. 떡과 포도주로 표현되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시게 되는 것이며, 이는 곧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되는 것을 뜻한다. 곧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로 통합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안에 계신 분이다.그러므로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나는 너희 안에 있으며, 너희는 내 안에 있는 것을 알리라”(요 14:20)고 하셨다. 이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하게 되는 하나님의 신비에 속하는 사건이다. 여기에 영생과 구원의 비결이 있다.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창조적 작업이다. 예술가는 자신의 미적 이념을 형상화한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은 예술의 본질을 잘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