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의료사회복지 실천 현장에서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기록 양식 3가지에 대해 서술하시오.1. 서론1)기록의 대한 개념 정리2) 기록의 중요성2. 본론1) 이야기체 기록2) 과정기록3) 문제중심기록3. 결론4. 참고 문헌Ⅰ. 서론나는 사회복지라는 과목을 배우면서 의료사회복지사를 새로이 알게 되었다사회복지라 함은 일반적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실천적 분야라 생각했는데 의료복지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병원 안에서의 사회복지의 역할이 있다는 것과 의사와 환자의 중간 부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사실 나도 병원을 다녀보았지만 병원 안에서 복지사를 만나는 일은 흔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아님, 만났지만 복지사인지 모르고 그냥 병원 직원이라 생각하고 설명을 들었는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병원안에서의 다양한 일들을 하겠지만 이번 과제를 통해 의료 현장에서 사용되는대표적인 기록 양식 3가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의료현장에서 클라이언트의 대화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대화한 내용을 어떻게 기록하고 사용되는지 알아보자.1. 기록의 대한 개념 정리의료사회복지실천의 기록은 사회복지행정과 사회복지 실천에서 가장 중요도가 높은 자료의 역할을 하게 된다. 기록은 내담자의 현재 상황에 대하여 확인하며, 이를 기술, 시정하고 서비스의 근본적인 목적과 활동, 서비스를 전달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내담자에 대한 개입이 효과적 인지 여부를 평가하는 것까지 모든 것이 내포된다.하지만 기록은 현장 실무자들에게 매우 부담스럽다.기록은 단순히 사회복지사의 개입을 적는 것이 아닌 클라이언트와 사회복지사 사이의 인과관계가 나타나야 하고 다양한 평가와 질 관리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기록은 체계적 기법에 의해 구성되어야 하고 사용하는 용어는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효과적인 면담과 기록을 거쳐 보다 나은 복지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2. 기록의 중요성기록이란 사회복지사와 내담자에게 있어 아주 긍정적인 성장의 도구 중 하나로 작용할 수 있다. 의료사회복지의 기록은 단순하게 사회복지사의 개입에 대하여 기계적으로 작성하는 것이 아닌 내담자와의 인간관계가 명확하게 나타나야 하고 다양한 평가와 질적인 관리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더불어 체계적인 기법에 의하여 구성되어야 하고, 사용하게 되는 용어 또한 전문적인 양상을 보여야 한다의료사회복지 실천활동에서 기록의 중요성을 보면 첫째, 개입 초기부터 종결까지 기록하여 사회복지사가 제공했던 서비스 종류와 내용, 방향에 대해 이해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실천에 대한 방향성을 볼 수 있다. 둘째, 효과적 서비스 제공에 대한 근거가 된다. 사회복지사들은 본인이 제공한 서비스 내용과 근거에 대해 체계적으로 기술하면서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실천기법, 기술에 대해 반성적으로 고찰할 수 있다. 그리고 기록에 남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셋째, 사례의 지속성 유지이다. 사례개입 전에 기록을 살펴보면서 환자의 상태에 대해 파악할 수 있고 개입 결과를 기록하게 되면 사례의 지속성,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클라이언트가 나중에 찾아오더라도 기록을 보고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넷째, 의사소통의 근거이다. 기록을 통해서 다양한 전문직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병원에는 의사, 간호사 등 다양한 전문직들이 있는데 클라이언트를 이해하기 위해 이러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고 기록을 통해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는 조사와 평가의 근거자료가 될 수 있다. 사례에 대한 목표달성 여부를 평가할 수 있는 근거자료뿐만 아니라 내용분석에 대한 데이터로도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체계적인 기록은 사회복지사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을 담보하고 평가의 근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Ⅱ. 본론의료사회복지 기록양식 3가지1. 이야기체 기록1) 특징이야기체 기록은 사회복지사가 내담자 및 그러한 상황 혹은 서비스에 관하여 이야기를 풀어 가는 것처럼 서술하는 형태의 기록방식이다. 즉 간접이용의 과정기록이나 요약 기록을 이야기체로 작성된 기록을 이야기체 기록이라고 한다. 사회복지실천 분야에서는 보편적으로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면담 내용 혹은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이야기한 것을 대화 형태로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 정리, 즉 재구성으로 서술된 것으로서 일정한 틀이나 양식이 없고 총괄적 기록이 가능하다. 이 방법은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을 모두 기록할 수 있는 융통성으로 인해 널리 사용되고 있다.2) 장점사회복지사의 말 혹은 느낌보다는 내담자 및 그러한 상황과 서비스의 교류를 중심으로 하여 진행된다. 과정의 기록과는 다르게 면담에서 하게 되는 대화의 내용 자체만 을 기술하는 것이 아닌 클라이언트의 내용이 요약되는 방식으로 서술하게 된다, 이것은 간결하고 중점이 명확하며 특히 사회력 혹은 사정처럼 특정한 내용의 요소에 대하여 문서화 하는 경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이야기체 기록은 실제의 사회복지에 있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기록의 형태를 널리 활용되고 있고, 포괄적이며 내담자의 상황, 서비스의 교류에 있어 본질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중요도가 매우 높다고 인식되는 것을 기록할 수 있다.중요한 정보만 기재할 수 있으므로 기록에 융통성이 있으며 클라이언트의 상황, 서비스의 특수한 본질을 반영할 수 있다.3) 단점실질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이 아닌 사회복지사의 문장력 혹은 기록을 하기 위하여 투자하게 되는 시간 등 사회복지사의 역량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록 여부를 기록자의 중요성 여부에 따른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내용이 누락 및 재구성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야기체 기록을 효과적으로 기록하기 위해선 얼만큼 적절한 정보를 선택하여 정확히 조직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더불어 이야기체 기록을 자세히 기록하려고 하면 많은 시간이소요되고 구조화가 안되어 있는 경우 지나치게 길고 중점이 모호해 질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의 단점에서 벗어나기 이하여 구조적인 양식을 구성하고 병용하고 있는데 단기적인 서비스 혹을 일상적으로 균형적인 서비스는 구조적인 양식 혹은 체크 리스트를 활용하며 복합적으며, 합리적인 서비스만을 이야기체 양식을 사용하는 경우가 존재한다.2. 과정 기록1) 특징과정 기록은 사회복지사와 내담자가 상호 작용하게 되는 과정 자체만을 면밀하게 기록하게 되는 방식이다. 과정 기록에서는 구체적이며 아주 면밀한 부분의 기록 양식으로 사회복지사와 클라이언트 간에 있었던 일을 표정, 몸짓, 사회복지사의 느낌이나 사고, 모든 것에 대하여 그대로 기록하는 방식으로서 클라이언트가 실제로 말했던 것을 정확하게 상기할 수 있도록 기록하는 것이다.대부분 면적의 과정을 녹화한 비디오 기록을 활용하여 관찰하였던 모든 것에 대하여 기록하고, 직접적인 인용을 사용하게 된다. 최근에는 많이 사용되진 않지만 교육적 목적을 위해 부분적으로 활용되고 있다.2)장점슈퍼비전이나 교육적 도구로 매우 유용하고 널리 쓰이며 초보 사회복지사 또는 실습생 등이 자신의 활동에 대한 점검과 슈퍼비전 또는 자문을 받을 때 어려운 사례를 다루거나 새로운 기술 등을 개발할 때 유용하다. 이를 통해 클라리언트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또한 사회복시사가 본인의 실천적 행동과 결정에 대하여 분석할 수 있도록 고취시켜, 내담자와 사회복지사 체계 간의 발생하게 되는 활동에 대하여 개념화하며, 조직화할 수 있게 하고, 면적 혹은 개입의 목적에 대하여 명료화시키며 사례에 개입하는 기술 능력을 강화하는 것에도 도움을 주게 된다.3) 단점서비스의 상호교류에서 발생하였던 일에 대하여 단순히 간접적이며, 불완전하고, 왜곡된 형태의 정보만을 기록할 수 있으며, 또한 작성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소요되어 비효울적인 면이 많다. 면담의 내용 기억의 질에 따라 기록의 유용성이 좌우된다.이러한 과정 기록은 학생과 사회복지학의 교육과정 혹은 초보인 사회복지사의 기본적인 기술의 학습과 진단적인 사고를 도와주기 위하여 교육용의 도구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더불어 경험을 하였던 사회복지사도 상대적으로 어려운 사례에 대하여 다루게 되는 경우 동료 혹은 슈퍼바이저에게 자문의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기초적인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3. 문제중심 기록1) 특징문제중심 기록은 지향식 기록법이라고도 말하는데 이러한 방식은 의료 혹은 정신보건 영역과 같은 다문화적인 접근을 하게 되는 형태에서 활용하는 기록 양식이다. 1950년도 말에 미국의 의사였던 위드가 제시한 방법으로 병원에서 의무적인 기록을 표준화하며, 수행의 정도를 검사하기 위하여 기록하게 되었다. 문제 중심 기록은 현재 제시 되는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구성되고, 문제의 영역을 규명하며, 사정하고, 각각의 문제에 관하여 무엇을 할 것이지 계획을 기록하게 된다.이러한 방식은 다양한 전문직이 한가지의 사례에 관하여 함께 일하게 되는 형태에서 매우 효과적이다. 문제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입계획 기록되어 다양한 전문직 간의 의사소통 및 정보 조회에 용이하며 기록이 간결하다.2) SOAP 식 구성S (Subjective Inforation 주관적 정보) :클라이언트나 가족으로부터 상황과 문제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주관적인 정보를 기술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클라이언트가 현재 불편한 상황과 증상, 가족력, 과거력, 사회력 등의 정보도 함께 포함한다.O (Bjective Information 객곽적 정보) : 검사와 관찰로부터 얻는 객관적 정보이다.클라이언트의 행동에 대한 사회복지사가 직접 관찰한 정보, 사실적 자료와 같은 객관적 자료를 기술하는 것이다. 사회복지사뿐만 아니라 의료진이 새로 얻은 소견, 검사소견으로 현재 육체적인 상태와 심리적인 상황, 검사자료 등이 객관적 정보에 포함된다. 그리고 기록에는 클라이언트의 객관적인 현재 상태로 주거상태, 경제적 상태도 기록할 수 있다.
신명기 사가1. 신명기 역사서베벨론 포로 시대에 이스라엘은 내적으로, 외적으로 큰 시련을 겪은 시기였다. 북 왕국이 앗수르에게 동화되어 버리고 남 왕국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그들 속에 와해될 수 있는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종교적 특수성을 고수함으로써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민족적 특수성을 지켜 나갈 수 있었다. 사실상 구약 성서의 형성은 대부분 특수성을 지켜 나갈 수 있었다. 사실상 구약 성서의 형성은 대부분 이 포로시기에 기틀이 잡혔고 구약 신학의 주요 개념들이 이 시기에 숙고되었다.이 기간에 이스라엘에 전해져 내려왔던 중요한 신앙의 전승들이 수집되고 편집되게 되었다. 그래서 포로기는 이스라엘 역사의 창조적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오경, 신명기, 역사서가 형성되고, 예언 활동이 절정에 이르게 된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포로기는 정치-경제적 위기였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경제적 암흑기를 신학적으로 응답, 극복, 승화시켜 창조적 기간으로 전화위복시켜 갔다.이러한 포로기 속에 태어난 신명기 역사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 정착하는 과정에서부터 왕국이 멸망하고 바벨론 포로 중반부까지의 역사를 일관된 신명기적 관심으로 바라본 것으로 구약성서 전기 예언서로 알려진 여호수아 - 열왕기하까지의 6권의 책을 주로 지칭하고 있다. 이 명칭은 신명기 역사서가 사경과 연대기 복합체와 나란히, 또 하나의 문학적 단위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명기 역사서는 신명기적 관점으로 기술하며 바벨론 포로기라는 상황에서 제기되었던 가장 중요한 질문중의 하나인 “왜 이와 같은 비극적인 상황이 일어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신학적인 해석을 해주고 있다. 즉 이스라엘이 겪고 있는 고통을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 때문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분명히 밝히고 있고 이에 덧붙여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출발을 허락해 주신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렇게 완성된 최종형태의 신명기 역사서는 포로기에 형성된 전달하기 위하여 서술된 것이 아니라 신명기 정신에 입각해서 역사를 해석한 역사신학서이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이 멸망한 상태에서 왜 그들이 멸망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신학적으로 해석한 것이다.3. 연대문제먼저 쿠에센에 의하면 두 번의 신명기사가 개작이 있었는데 포로기 이전시대인 주전 600년에 개작이 있었고, 포로기에 단 한번 개작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휠셔는 신명기 탄생연대가 포로기이지 포로전기가 아니므로 신명기사가의 작품도 포로기라고 주장했다.노트는 주전 6세기 중반에 쓰였졌다고 본다. 왜냐하면 신명기 역사서의 마지막 부분(왕하 25:27-30)이 주전 562년 여호와긴 석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볼프는 신명기 역사서의 연대를 결정하는 방법으로 성서 본문의 연대와 역사적 사실을 교차하여 추정한다. 그에 따르면 열왕기하 25:27절 이하의 “여호야긴 왕이 사로 잡혀간지 삼십칠년”이라는 구정을 이용하였다.이것은 주전 597년부터 계산한 것이다. 그 당시 느브갓네살의 아들인 에윌 마르둑이 등극하면서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놓아 왕위를 회복시켜 주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주전 561년 이후에 쓰여졌어야 한다. 그러나 그 연대보다 아주 늦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고레스가 소아시아에까지 그의 세계 통치가 시작되었는데, 아직 이스라엘을 위한 그의 조치들은 언급되어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방대한 역사서는 주전 550년경의 것이라고 연대를 잡아야 할 것이다.포러는 포로기 이전 역사가가 요시야의 종교개혁(주전 622년)과 요시야의 죽음사이에(주전609년) 신명기 역사서를 완성했으며 그 후 포로기 편집자가 요시야의 죽음, 포로기 그리고 여호야긴의 석방을 첨부한 것으로 보고 있다.괴팅엔 학파는 포로전기의 신명기사가의 연대를 완전히 부정하고 신명기사가의 최초의 활동은 포로기라고 확정하였다. 이 의견은 포로기 이후에도 신학적 발전이 다양하게 진행되었음을 알게 해준다. 연대에 대한 여러 의견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연대를 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신명기사가가 이중편집을 거쳐 완성되었다고 본다.이 이론이 제기된 가장 큰 이유는 크로스는 열왕기에 나타나고 있는 커다란 두 주제에 주목한다. 첫째는 여로보암의 죄이고, 둘째는 다윗의 신실성이다. 그런데 크로스는 이 두 주제가 요시야에게서 극점을 이룬다고 본다. 즉 요시야는 제2의 다윗으로서 여로보암과는 대조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그의 죄로 인해 이스라엘을 멸망의 길로 인도했지만, 요시야는 여로보암이 세운 벧엘 제단을 훼파하고 다윗이 시작한 예루살렘 성전을 청결케 하여 다윗에게 주신 “내 이름을 기리도록 내가 선택한 도성 예루살렘에서 다스릴 것이고 내 종 다윗에게 준 불씨가 꺼지지가 않을 것이다”란 약속을 실현시킨 것이다. 이러한 요시야 대 다윗 왕국의 회복을 염원한 요시야의 정치 및 종교적 개혁의 입장을 부각시키기 위해 작성된 것이 Dtr1이라고 본다. 그래서 Dtr1에서는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이룩함으로써 다윗 가문의 명예를 되살렸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그 후 포로 후기에(Dtr2) 상대적으로 적은 부분이 바벨론 포로민들을 위한 설교체로 바뀌었다고 보는 것이다.크로스의 제자인 프리드만은 요시야 시대의 신명기 역사는 모세로부터 요시야까지 여러 지도자들의 역사를 서술해 놓은 것으로 그 특색은 모세의 법이 어떻게 실현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며 포로기 시대 신명기 역사는 왕들보다는 백성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첫번째 편집을 주전 609년 요시야 시대와 두 번째 편집을 주전 587년 왕국 멸망 이후로 보고 있다.이러한 신명기 역사의 이중 편집설은 크로스의 제자인 넬슨에 의해 주제, 문체, 언어, 사상 등에 바탕을 두고 더욱 확층되고 보완 발견된다. 그러므로 넬슨은 주로 크로스의 견해를 바탕으로 신명기 역사서의 주된 저자로서 Dtr1과 소극적인 저자로서의 Dtr2를 상징하면서 요시야 시대의 신명기 역사와 포로 시대의 개작 신명기 역사의 이중적 편집체제를 따르지만 크로스보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포로기 시대의 개작 작품에 대한 확고한 증거를에 따라 각각의 편집층을 구별하고 있다. 바이욜라에 의하면 신명기 역사서에는 서로 다른 3개의 다윗의 신학적 모습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최초의 신명기 역사서( DtrG)에 나타난 다윗은 정당하고 경건한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고 다윗의 왕위 계승도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다윗 왕조를 영원한 왕조로 이해하고 있다. 이에 반해 예언적 편집자(DtrP)는 다윗을 참회하는 사람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예언자보다 그 중요성이 떨어지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율법적 편집자(DtrN)는 다윗을 율법에 순종하는 완벽한 모델로 제시하고 있고 후대의 왕 누구도 다윗의 위치에 도달할 수 없다는 기준으로 제시하며 다윗을 나타내고 있다.4)크로스 학파와 스멘트 학파의 타협적 위치메이스, 펙함, 오브라이언은 크로스 학파와 스멘트 학파의 중간에 서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절충하는 해석학적 시도를 벌인다. 먼저 메이스는 크로스 학파에서 신명기 역사서의 요시야 시대 편집이론을 받아들였고, 스멘트 학파들부터 율법에 강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포로기 편집이론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모세의 율법이 처음 기술된 것은 신명기적 역사서를 배출해 낸 요시야 왕 시절의 역사가이지만, 그것이 포로기 시절 신명기사가의 편집을 거쳐, 포로 후기 편집작업에서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본다.오브라이언의 이론을 살펴보면 그는 신명기 역사를 모세로부터 요시야까지의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이야기로 보았다. 그는 이 기간 이 세부분으로 구성되었다고 보는데 첫째는 신명기 법전과 요단서편지역 정복에 관한 기록을 기초자료 사용한 모세와 여호수아 시대, 둘째는 왕정 이전 혼란한 시대에 관한 기록과 예언자의 기록을 이 두가지 자료를 기초로 한 왕정 초기까지의 사사시대, 셋째는 예언자의 기록과 북왕국 예언가 기록 개정판, 남왕국 예언자 기록 개정판 이 세가지 자료를 활용한 예언자들과 왕들의 시대이다. 그리고 이 최종 완성은 포로기 이후에 가서야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다.5.기록목적북 왕국 이스라엘의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신명기 역사서는 나단 예언의 구원약속을 역사에서 영향력을 갖고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신명기 역사사의 마지막이 여호와긴의 해방을 기록함으로써 여호야긴이 바벨론 왕에게서 은혜를 입었다는 보도를 통해 야웨가 다시 언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버나드 앤더슨 역시 신명기 역사서가 야웨가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으로 가르치며 엘리야와 엘리사에 관한 과거의 독립적인 전승들을 삽입하면서 “회개”의 주제를 널리 전하나 백성은 듣지도 않고 변화되지도 않음으로써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진 모든 명령들을 버려 계약의 저주를 스스로 자초한다고 본다. 분명히 이것은 실패의 역사이다.그러나 신명기 역사서는 그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윗 계통이 왕 여호야긴이 감옥에서 풀려 나온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계약, 특히 다윗과의 영원한 계약의 관점에서 보면 미래는 닫힌 것이 아니라고 본다. 인간은 지속적으로 실패할 수 있어도 그러나 야웨는 백성에게 예기치 못하고 감당치 못한 신실을 보이시고 끝까지 자신의 기업을 버리지 않는 신실한 하나님으로 열려진 역사라고 주장한다.한스 볼프는 노트와 폰 라드의 의견을 둘 다 비판한다. 볼프는 이스라엘 백성이 야웨를 배신함으로 재난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만 신명기 역사서가 기록되었다고 볼 수 없음을 말한다. 그는 신명기 역사서의 기록목적을 사사기에서의 배신-정벌-회개-구원의 도식으로 답변을 찾고 있다. 신명기사가는 포로기 이스라엘의 공동체가 이 도식의 두 번째 단계에 있음을 깨닫고 야웨께 회개하여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신명기 역사서의 핵심 단어를 “돌아옴”으로 보았고 솔로몬의 기도를 통해 잘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볼프에게 있어서 신명기 사가의 역사서술 목적은 노트가 주장하는 대로 전적인 부정도 아니고 폰 라드가 주장하는 것처럼 어떤 분명한 희망도 아니며, 이스라엘을 대해 온 야웨의 이전 관계의 도식을 열거함으로서 희망의 가능성을 제고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즉 볼프는 신명기 역.
公 冶 長 (공야장)1. 子謂公冶長 可妻也 雖在縷洩之中 非其罪也 以其子妻之 子謂南容 邦有道不廢 邦無道 免於刑戮 以其兄之子 妻之자위공야장 가처야 수재누설지중 비기죄야 이기자처지 자위남용 방불도불패 방무도면어형륙 이기형지가처지: 선생께서 공야장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사위를 삼아도 좋을 사람이다. 지금 감옥에 있지만 죄의 혐의를 받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사위를 삼으셨다. 선생께서 또 남용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세상이 조용할 때는 중요되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에는 형벌을 받지 않을 사람이다. 그리고 형의 딸과 결혼시켰다.2. 子謂子賤 君子哉 若人 魯無君子者 斯焉取斯자위자천, 군자재 약인 노무군자자, 사언취사: 공자께서 자천을 평하여 말씀하시었다:"군자로다! 이 사람이여. 노나라에 군자가 없었다면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러한 덕성을 취했겠는가?"3. 子貢問曰 賜也何如 曰 女器也 曰 何器也 曰 瑚璉也자공문왈 사야하여 자왈 여기야 왈 하기야 왈 호련야.": 자공이 여쭈어 말하였다: "저는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너는 그릇이다." 자공이 이어 "어떤 그릇입니까?"하고 되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귀한 호련 옥그릇이다4. 或曰 雍也 仁而不 子曰 焉用 禦人以口給 屢憎於人 不知其仁 焉用?혹왈 옹야, 인이불녕 자왈 언용녕 어인이구급 누증어인 불지기인 언용 ?": 누군가 말하였다 옹은 인하기는 한데 말재주가 없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말재주를 도대체 어디에 쓰겠다는 거냐 약삭빠른 구변으로 남의 말을 막아 자주 남에게 미움만 살뿐이니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으나 말재주를 도대체 어디에 쓰겠다는 거냐5. 子使漆雕開仕 對曰 吾斯之未能信 子說자사칠조개사. 대왈 오사지미능신. 자설.: 공자께서 칠조개에게 벼슬을 권하시었다. 칠조개가 그것에 대하여 말씀드렸다: "저는 벼슬하는 것에 관해서는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 공자께서 기뻐하시었다6. 子曰 道不行 乘浮浮于海 從我者 其由與 子路聞之喜 子曰 由也 好勇過我 無所取材자왈 도불행, 승부부우해, 종아자 ,기유여 자로문지희. 자왈 유야, 호용과아, 무소취재.":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의 도가 실현되지를 않는구나. 뗏목을 타고 바다에 둥둥 떠 있고 싶다. 이럴 때 나를 따르는 자는 오직 유이겠지?" 자로가 이 말을 듣고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유는 용맹을 좋아하는 것은 분명 나를 뛰어넘는다. 그러나 그는 사리를 헤아리는 바가 부족하다7. 孟無伯問 子路仁乎 子曰 不知也 又問 子曰 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 求也 何如 子曰 求也 千室之邑 百乘之家 可使爲之宰也 不知其仁也 赤也 何如 子曰 赤也 束帶立於朝 可使與賓客言也 不知其仁也맹무백문. 자로인호 자왈 "불지야." 우문. 자왈 "유야, 천승지국, 가사치기부야. 불지기인야 구야 하여 자왈 구야, 천실지읍, 백승지가, 가사위지재야. 불지기인야. 적야 하여 자왈 적야, 속대립어조, 가사여빈객언야. 불지기인야.": 무백이 여쭈었다: "자로는 인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맹무백은 다시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유는 천 수레의 나라라도 그 군재정을 맡겨 다스리게 할 만하지만,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구는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구는 천 가호의 읍이나 백 수레의대부 영지에서 지방장관을 하게 할 만하지만,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적은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적은 대례복을 성대히 차려입고 조정에 서서, 외국사신들을 응대하여 말을 나누게 할만 하지만,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습니다8. 子謂子貢曰 女與回也 孰愈 對曰 賜也 何敢望回 回也 聞一以知十 賜也 聞一以知二 子曰 弗如也 吾與女 弗如也자위자공왈 여여회야, 숙유 대왈 사야, 하감망회! 회야, 문일이지십. 사야, 문일이지이." 자왈 "불여야. 오여녀 불여야.": 공자께서 자공에게 일러 말씀하시었다: "너와 안회, 누가 더 나으냐?" 자공이 대답하였다: "제가 어찌 감히 안회를 넘보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 뿐이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래 너는 안회만 같지 못하다. 그래 나와 너 두 사람 모두 안회만 같지 못하다9. 宰予晝寢 子曰 朽木 不可雕也 糞土之墻 不可朽也 於予與 何誅 子曰 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 改是재여주침. 자왈 "후목, 불가조야. 분토지장, 불가후야. 어여여, 하주" 자왈 "시오어인야, 청기언이신기행, 금오어인야, 청기언이관기행. 어여여, 개시.": 재여가 낮잠을 자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썩은 나무에는 조각을 할 수가 없고, 거름흙으로 쌓은 담은 흙손질 할 수가 없다. 내 재여에 대하여 뭔 꾸짖을 일이 있겠는가?"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내가 처음에는 남에 대하여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의 행실을 믿었으나, 이제 나는 남에 대하여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의 행실을 살펴보게 되었다. 나는 재여 때문에 이 버릇을 고치게 되었다10. 子曰 吾未見剛者 或對曰 申 子曰 也慾 焉得剛자왈 "오미견강자." 혹대왈 "신정 ." 자왈 " 정야욕, 언득강?":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는 아직 강직한 자를 보지 못하였다." 어떤 사람이 대답하여 말하였다:"신장이 있지 않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신장은 항상 욕심이 앞서는 사람이니 어찌 그를 강직하다 하리오?"11. 子貢曰 我不欲人之加諸我也 吾亦欲無加諸人 子曰 賜也 非爾所及也자공왈 아불욕인지가제아야, 오역욕무가제인. 자왈 사야, 비이소급야.": 자공이 말하였다: "저는 남이 저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남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야! 그것은 네가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12. 子貢曰 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 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자공왈 "부자지문장, 가득이문야. 부자지언성여천도, 불가득이문야.: 자공이 말하였다: "선생님의 문장은 얻어 들을 수 있으나, 선생님께서 본성과 천도를 말씀하시는 것은 얻어 들을 수가 없다."13. 子路 有聞 未之能行 唯恐有聞자로 유문, 미지능행, 유공유문.: 자로는 좋은 가르침을 듣고 아직 미처 실행하지 못했으면 다른 말을 들을까 두려워하였다14. 子貢 問曰 孔文子 何以謂之文也 子曰 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文也자공 문왈 공문자, 하이위지문야 자왈 민이호학, 불치하문, 시이위지문야.": 자공이 여쭈어 말씀드렸다: "공문자를 어찌하여 문이라 시호하였습니까?."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영민한 사람인데도 배우기를 좋아하였으며,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런 까닭으로 문이라 일컬은 것이다."15. 子謂子産 有君子之道四焉 其行己也恭 其事上也敬 其養民也惠 其使民也義"자위자산. "유군자지도사언. 기행기야공, 기사상야경, 기양민야혜, 기사민야의.": 공자께서 자산을 평하시어 말씀하시었다. 군자의 도가 네가지 있으니 몸가짐이 공손하며 윗사람을 섬김이 공경스러우며 백성을 기름이 은혜로우며 백성을 부림 의로운 것이다.16. 子曰 晏平仲 善與人交 久而人敬之자왈 "안평중, 선여인교, 구이인경지.":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안평중은 사람과 잘 사귀는 구나! 오래될수록 오히려 공경하니."17. 子曰 臧 文仲 居蔡 山節藻 何如其知也자왈 "장문중, 거채, 산절조탈 , 하여기지야?":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장중문이 큰 거북딱지를 걸어두었고, 기둥머리 두공에는 산모양을 조각하고, 들보 위 동자기둥에는 수초모양을 그렸으니, 어찌 그를 지혜롭다 하겠는가?"18. 子張問曰 令尹子文 三仕爲令尹 無喜色 三已之 無殘色 舊令尹之政 必以告新令尹 何如 子曰 忠矣 曰 仁矣乎 曰 未知 焉得仁 崔子弑齊君 陳文子 有馬十乘 棄而違之 至於他邦 則曰 猶吾大夫崔子也 違之 之一邦 則又曰 猶吾大夫崔子也 違之 何如 子曰 淸矣 曰仁矣乎 曰 未知 焉得仁자장문왈 "영윤자문, 삼사위령윤, 무희색. 삼이지, 무온색. 구령윤지정, 필이고신윤 하여?" 자왈 "충의." 왈 "인의호?" 왈 "미지. 언득인?" "최자시제군, 진문자 유마십승, 기이위지, 지어타방, 칙왈 '유오대부최자야!' 위지, 지일방, 칙우왈 '유오대부최자야!' 위지. 하여?" 자왈 "청의." 왈 "인의호?" 왈 "미지, 언득인?": 자장이 여쭈었다. 영윤 자문이 세 번 벼슬하여 영윤이 되었는데 그 때마다 기뻐하는 기색도 없었고 세 번 벼슬을 그만두면서도 그 때마다 서운해하는 기색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맡아보던 영윤의 정사를 반드시 새로 부임해온 영윤에게 상세히 알려주었습니다. 이만하면 어떠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충성스럽다 할 만하다. 인하다고 할 만합니까? 하고 다시 여쭈니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모르겠다. 어찌 인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으리오? 자장은 또 여쭈었다. 최자가 제나라 임금을 시해하자 진문자는 말 10승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부를 다버리고 떠났습니다. 다른 나라에 이르러 말하기를 이 나라 권력자들도 우리나라 대부 최자와 같다 하고 떠나 버렸습니다. 다시 한 나라에 이르러 또 말하기를 이 나라 권력자들도 우리나라 대부 최자와 같다 하고 떠나 버렸습니다. 이만하면 어떠합니까? 다시 여쭈니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모르겠다 어찌 인하다고 까지 말할 수 있으리오?
- 앤 율라노프와 칼 융 그리고 정신분석과 기독교 영성 –다양한 심리치료기법에 대한 방법론에 대하여 막연하고, 어떤 치료법만이 유용하다고 볼 수 없다. 모든 치료법들이 각기 다른 장단점들을 지니고 있어서 모든 치료법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각 기능적 장점들을 사용해야 한다고 여겨진다. 특히 기독교 영성을 가진 상담치료사로서의 방법론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다양한 임상경험이 훈련되어야 한다고 본다.그 중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앤 율라노프의 ‘영성과 심리치료’ 이해에 대한 분석과 앤 율라노프가 말하는 융의 ‘정신분석적 심리치료’이다. 그래서 앤 율라노프가 본 융의 종교이해로부터, 앤 율라노프가 말하는 융의 정신분석적 심리치료까지 정리해 보며, 영성과 심리치료라는 기독상담치료사의 가치관을 정립하고자 한다.(참고로 굵은 글씨체는 본인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며, 가는 글씨체는 앤 율라노프의 글을 인용 및 정리한 것)먼저, 앤 율라노프가 보는 융의 심리학은 인간은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의 순간들을 경험하고, 그러한 경험들이 종교전통 안에서 의식과 교리로서 인간 안에 저장된 것으로 이해한다. 잃어버린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방법을 심리적 실재에 대한 담론을 발달시키는 것에서 찾는다. 융에게 심리적 실재는 무의식 곧 본능, 이미지, 정서 등에 대한 경험이라고 본다. 무의식이 인간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다.융의 심리학의 최종적 목표는 자기와의 의식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 자기는 우리 정신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원형이며, 자아와는 달리, 의식과 무의식 전체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자기는 그 자체의 독립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 자기는 생명의 원천이고 더 권위 있는 존재로서 자아와 관계를 맺는다.자아와 자기 사이에 있는 간극이 존재하고 이 둘 사이에서는 다른 언어와 다른 특징을 지닌다. 전자는 개인적이고 감정과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후자는 비개인적이고 정서와 이미지를 사용한다. 이러한 자아와 자기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진정으로 깨닫는 것이 경이로운 삶을 느끼게 하는노프의 가능성이 참으로 옳다고 보여진다. 본인의 입장도 이러한 입장을 견지할 수 있다고 본다.앤 율라노프는 정신과 영혼 사이의 불가분리의 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이 둘을 하나로 환원시키지 않는다. “몸의 생명은 영혼이다. 그러나 영혼의 생명은 하나님이시다.”라는 어거스틴의 전통을 따라 영혼의 차원을 인정한다. 영혼과 정신을 다르게 본다. 그래서 질병을 단순히 심리적인 차원으로 환원시키지도 않고 영적인 것으로 환원시키지도 않는다. 인간의 정신적 질병은 100% 정신적이면서 영적인 문제로 보는 것이다. 서로 다른 차원이면서 서로 상호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어거스틴의 말처럼,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고, 항상 은총으로 경험되고 우리의 정신을 초월한다.융은 현대 기독교가 전통 안에 있는 풍부한 상징들이 지닌 의미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명력을 잃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상징적 이해를 가지는 것만 아니라 무의식의 삶을 열어주고 활력을 주는 성례전적 접근 또한 필요하다고 앤 율라노프는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적 이해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의미 있는 정신내용으로 환원시킬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성과 구체성을 획일적으로 한 이미지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미지로의 대체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한다.“이것은 마치 무엇과 같다.”라는 말로써 다양하고 풍성한 이미지들로 그리스도의 현재성과 사실성을 부각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다. 옳다고 보여진다. 그러면서 말하는 “책임적인 참여”라고 말한다. 이러한 부분에 본인의 추가적인 통찰이 주어졌다. 그것은 예배에 들어가거나 상담에 들어간 상황 속에서, 신앙자나 내담자에게 있어서, 단순히 참여하는 태도만이 아니라, 직접적인 경험 곧 신비한 하나님 경험이나 심리치료가 이루어지는 경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으로 예배나 상담에 임하는 신앙자와 내담자의 적극성과 집중력 그리고 책임성이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확신한다. 이를 위한 예배 준비자와 심리치료자의 책임성도 동일하다고 본게 하고 그 안에 있는 가치를 누리게 하는 것이고 생각한다.이러한 관점에서 목회상담 치료자는 내담자의 자기를 적절하게 내어주게 함으로써 개방성을 갖도록 인도하는 목표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내담자의 자기로부터 오는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가르침과 행복을 발견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율라노프는 이러한 맥락에서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자신을 보다 더 확장할 수 있고 모험할 수 있다고 느끼는 데에서 그 무엇을 발견하고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본인은 이 과정이 바로, 신비의 경험이며 하나님과의 만남의 자리라고 본다. 이러한 자아의 확대와 성장은 인간 스스로의 영역이 아닌 성령하나님의 내주의 역사라고 본다. 이를 통한 영적 만족감과 자기 증대의 안전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앤 율라노프는 말한다. 영은 우리에게 안락함만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칼을 때로는 바람과 같고 때로는 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는 강렬한 형태의 생명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임상가들은 영에 대한 매력을 느끼면서도 지식의 한계를 경험한다고 고백한다.프로이트는 종교가 강박증을 조장하고 현실과 무의식을 회피하게 만든다고 보고 폐기해버리고자 했다. 반면에 융은 정신의 종교적 기능을 인식하였고, 그 기능을 소홀히 할 경우 우리는 병에 걸린다고 보았다. 종교는 우리의 개성화 과정을 촉진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으며, 종교적 상징들은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눈에 보이는 삶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정신을 초월하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영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체를 드러내기 때문에 상징적 이해를 통해서만 구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개성화의 과정은 영과의 만남에서 시작되며, 그 후로는 전 생애를 거쳐 진행된다. 영성은 생명을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는, 잔인한 자연의 사실이며, 다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역설이다. 우리에게 영은 우리의 삶 한복판으로 내려와 물질과 우리의 구체적인 삶과 관련된 문제들에 관여한다. 우리 시대의 영은 우리의 작은 육신해서 좀 더 깨어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성에 대해서 도덕적인 것에 대해서 다룰 때 한 번쯤은 그것에 대해서 내담자가 상담자와 간에 이야기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종교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다.강요하거나 요구할 수 없지만 그들의 종교생활에 대한 이해 그리고 공감, 경청하는 차원에서의 대화가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만일 내담자가 상담자의 신앙에 대해 관심 있어 하며, 같은 종교적 탐구와 심성 그리고 같은 종교를 가졌을 때에, 더욱 같은 입장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그리고 만일 심리치료사가 기독교 영성을 가지고서, 성경에 대해 묵상하고 그에 따른 지혜와 통찰을 얻을 수 있다면 그러한 도움을 받는 일은, 신적 존재의 도움을 또는 영적 슈퍼바이저의 역할을 기대해도 무방하리라고 본다. 악령에 의한 조정을 당하지 않는 한에서 말이다.우리는 임상가로서 분석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상징들이 지시하는 실재에 관해서 무엇을 믿고 있으며 무엇을 믿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고 율라노프는 말한다. 분석작업 자체가 우리가 매시간, 매일, 매년 상담실에서 살고 있는 실재를 가리키는 상징이다. 원형과 상징을 통해 그리고 분석적 커플을 통해 우리에게 의사 소통하는 실재가 바로 치유를 발생시키는 요소인 것이다. 그러나 이 실재를 인정하고 모든 필요한 믿음을 가지고 그 실재를 살아내야만 한다.실존적 물음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근본목적에 대하여, 내담자이건 상담자이건 간에 그것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삶에 대한 가치를 알고, 나와 우리 그리고 모든 존재의 가치에 대한 의미를 제공해 주는 것은 이러한 실존하고 있는 존재의 유무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겠다. 하기에 실재하고 있는 것에 대한 가치를 의미를 말할 수 있는 의사소통에서만이 상담의 자리이건 어떤 존재와의 만남이건 간에 그 존재와의 상호소통과 만남의 이유가 성립되기 때문이다.우리는 융의 용어로 자기(自己)하지 못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상담자에게 있어서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같은 기독교 영성 안에서도 다른 차원의 것을 말할 수 있다.뿐만 아니라 이단적 영성을 가지고 말하는 이들과 전통적 보수 신앙의 상담자가 만났을 경우에는 말도 할 수 없는 냉랭함을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그것은 오직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가능성, 그리고 서로를 인정하는 차원에서의 이해가 상호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상담의 자리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종교와 심리치료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서로에 대한 배타성이 아닌 포용성의 입장을 항상 견지해야 한다는 점이다.임상작업과 영적 실천이 만나는 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경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인식하고, 또 우리의 경험이 우리 안의 어떤 것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융의 용어로, 자아는 우리를 위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기를 발견하기 위해 스스로의 길을 찾고 또 건설해야 한다. 비록 우리가 그 길이 눈에 보이는 길이 아니요 그 자기가 눈에 보이는 자기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 길은 객관적인 길로 존재하면서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길이다.영성을 가진 상담가나 상담을 하는 목회자나 두 영역을 오가는 소위 ‘영성 치료가’라고 말할 수 있다. 두 영역에 대한 이해와 깊은 통찰과 심연으로부터 시작된 고찰을 통하여, 두 영역 간의 간극을 놓고 대화하며 소통해야 할 책임을 가진 ‘작업가’ 혹은 ‘예술가’라고 말하고 싶다. 무엇인가 재창조해 내는 새로움과 희망 그리고 기대를 이루어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로부터 우리의 영성이 임상작업 또는 심리치료에 어떤 희망을 가지고 영성 실천과 심리치료를 감행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하겠다.상담가를 ‘작업가’ 또는 ‘예술가’로 말하는 있는 것은, 임상실험을 통하여 인간 내면의 보이지 않는 영역에 대한 탐구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되는 차원에서 그렇다. 보이지 않는 실험증명의 답을 제공하는 데에 매우 복잡하고 직면하11
기독교 영성과 심리치료의 관계영성과 심리치료를 두고서 어느 것 하나에 무게를 두는 것이 어렵다고 본다. 두 개를 비교하자면 같은 수준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들을 찾아서 비교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미리 결론부터 말하면, 영성과 심리치료 두 가지다 병행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필요성이 나 개인의 입장이라기보다 현시대의 흐름이라고도 본다. 포스트모더니즘적 현상이 오늘날 학문계와 각 분야의 영역들 가운데서 동일한 질문들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21세기적 현상이다.각 분야가 세분화되고 점차적으로 양극화 되면서 오히려 양극단에서 서로 동질성을 갖는 것들끼리 조합을 이루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다르게 여겨졌던 분야가 만나 새로운 영역 또는 독특한 관점으로 등장하고 있다. 학문 간의 영역을 뛰어넘는 간 학문간 연계적 연구가 최근에 더욱 각광 받는 이유이다.이러한 점에서 본인은 심리치료는 심리학자가 영성 지도는 교역자가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두 가지의 영역이 교차하는 지점에서의 목회상담이라는 분야에서는 관심은 두 가지를 병행해야 한다고 본다. 어느 것 하나를 소외시킬 수 없다.이미 이러한 두 학제 간의 조화를 위한 논의가 여러 차례 미국의 기독교 상담가들에게서 진행되어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소위 “대립(against model), 종속(of model), 병합(parallel), 통합(Integrated)”이라는 구도의 모델들이 제시된 것으로 보여진다.특히 이러한 관점적 차이는 교회의 교리적 성향에 따라 세분화된다.즉 보수적 신앙은 (대립적 모델) 성경적 상담을 지향하고, 통합적 신앙은 (종속적 모델) 통합주의적 상담을 지향한다. 그리고, 진보적 신앙은 (병합적 모델) 상호관계적(Correlation) 상담을 한다. 상호관계적이라는 의미는 상호주체가 되어 상담하는 것을 의미한다.성경적 상담을 추구하는 대립적 모델의 대표자는 J. E. Adams, Seward Hiltner이다. 통합적 관점을 지향하는 종속적 모델의 대표자는 Donald Eric Capps, Gary R. Collins이다. 상호관계적 지향을 하는 병합적 모델의 대표자는 David Tracy, Don Browning이다.본인은 이 세 번째 부류에 근접한다. 심리학과 신학의 상관관계도 동일한 방식으로 접근된다. 심리학이 신학에 종속되는 것도, 신학이 심리학에 압도되어서도 안될 것이라고 본다. 두 학문의 연계를 통하여 상호보완적으로 방법론적 이해를 추구할 수 있다.최근 미국의 사회에서 “창조과학”이라는 논제가 교육계에서 문제가 되어, 이를 대안적으로 학문체계로서 연구하자는 운동의 일환으로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라는 기독교과학자들의 모임이 생겨났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오늘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영성과 심리치료의 관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고 싶다.수업시간에 언급되었던, 3명의 저자의 이해에 따르면, 본인은 비교적 “알프레드 레슐러”에 해당된다고 본다. 마크 맥린의 “심리학, 신학, 영성이 하나된 기독교 상담”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수용하는 차원에서, 학문적 이해를 같이 하고 싶지만, 결국 방법론에서 인지치료라는 관점으로 나아간다. 그러면서 크리스챤 카운셀링의 한계성을 드러내는 산물이 되어 가고 있다.반면에, 앤 배리 율라노프는 “영성과 심리치료”에서 영성이 상담에 포함된 것으로 설명한다. 이로서 상담의 영역 안에서 자연스레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이루어지는 상담으로서 이해시킨다. 명목상 기독교 상담 일뿐 일반상담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인다. 하나님의 개입을 증거할 무엇이 없고, 특히 상담자와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고 보인다. 심리적 요법만을 추구하는 기능주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본인의 입장이 분명하게 설명될 수 없는 것은 임상심리의 경험이 없고 이론적 이해만을 가지고 있어서 앞으로 임상심리경험과 이론을 병행하며 심리치료의 경험들을 쌓고 싶다. 그러하기에 준비된 심리치료자가 되기 위한 연구와 이해에 노력을 매진해야 하리라 본다.PS시카고 대학의 Don Browning은 신학과 심리학의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고 본다. 특히 그의 책 “A fundamental practical theology : descriptive and strategic proposals (근본적 실천신학 방법론)”에서 실천적 학문을 가지고 이론을 재구성하고 이를 통하여 다시금 이론을 재정립하는 연구방법론이 매우 유용하다고 보여 진다.던 브라우닝의 “수정된 상호연결 방법론”은 각 영역을 인정하고 하나의 분야를 종속의 개념으로 가져가지 않고, 상호보완하며 개체성과 독특성을 인정한다는 측면에서 현대사회 상담연구에 적절하다고 본다. 이를 더 연구하고 이를 번역하는 작업들이 국내 목회상담 분야에서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PAGE * MERGEFORMAT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