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 성폭행 사건 해결의 문제점과 개선방향목 차1. 학내 성폭력의 개념2. 학내 성폭력의 유형3. 교수에 의한 성폭력 사례 및 특성4. 교수에 의한 성폭력 사건 해결5. 교수와 학생간의 성폭행 사건해결의 문제점6. 성폭력 처리규정과 상담소에 대한 인식7. 성폭력 예방방안 및 개선방안▷ 참고자료 및 웹사이트들어가며..이번 주제에 대해 조사하면서 성폭력이 우리의 일상에서 장소를 불문하고 자주 일어나고 있으며, 다양한 유형으로 학교 내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학내 성폭력은 하나의 공동체인 학교라는 특성 때문에 사건 발생 시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학교당국과 교육부의 학내 성폭력 발생 시 책임을 회피하고 형식적 업무처리를 하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우리사회는 성폭력의 실상이 은폐한 채 피해자의 입을 다물게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좀 더 구체적으로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는 대학내 성폭력의 개념과 그 유형, 특히 교수와 학생간의 성폭력 사건을 중심으로 사건해결의 문제점, 그리고 성폭력 예방방안과 사건해결의 개선방안에 대해 제시하고자 한다.1. 학내 성폭력의 개념성폭력이라고 하면 흔히 ‘성폭행’이라고 돌려 말하는 ‘강간’이나 ‘추행’과 같은 신체적인 폭력을 떠올리기 쉽다. 물론 이런 행위들은 형법상의 범죄이며, 우리나라의「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은 이를 ‘성폭력범죄’로 규정하여 무거운 처벌을 부과한다. 학내 성폭력은 학교와 이와 유사한 곳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신체적인 폭력이나 형법상의 범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언어적 폭력을 망라하는 보다 넓은 개념으로 강간, 추행, 성희롱, 성기노출, 음란 통신 성을 매개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모든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폭력을 말한다.① 성적행위의 수용이 명시적, 묵시적으로 피해자의 학업(혹은 직업)의 조건이 되는 경우② 성적행위의 거부가 피해자의 학업(혹은 직업)상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③ 성적행위가 피해자의 학업생활의 지장을 초래하거논문 통과, 진로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 강의실, 연구실 등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 데이트 강요, 성적인 모욕을 주는 경우② 학생 (선후배, 동기)간의 성폭력- 행사(예:M.T, 새터, 대학축제, 뒤풀이), 공공장소(예: 강의실, 동아리)에서 집단적으로 음란가요를부르는 경우- 성적 농담·음담패설·성적 모욕을 하는 경우- 공공모임에서 술 따르기나 춤 파트너 강요- 술에 취해있거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의 원치 않는 성적접촉- 과방이나 동아리방 등의 컴퓨터에 음란 사진을 깔아놓는 경우- 개인적인 친밀성이나 권력을 매개로 상대방의 동의나 합의 없이 성적 언행을 하거나 강요하는 경우③ 모르는 관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화장실, 도서관, 셔틀버스 등에서 일어나는 동의하지 않는 의도적인 성적접촉·훔쳐보기- 공공장소에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포스터 혹은 음란물 게재하는 행위- 학생회, 동아리 행사에서 여성을 비하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내용의 프로그램, 발언? 대학내 성폭력에 대한 이러한 개념정의를 바탕으로 본 상담소 학내지원팀에서 실시 한 상담통계 결과피-가해자 관계건수(횟수)교수 - 제자24(103)선배 - 후배33(48)동기16(28)교직원1교수간1합계75(181)㉠ 통계 대상 : 고려대 성폭력 상담소 이용자㉡ 조사 기간 : 1997년 1월 ~ 1998년 6월 (전체 상담 5448회 중 181회로 3.3%)3. 교수에 의한 성폭력 사례 및 특성사례 1) 연세대 공대에서 면접을 보러온 여학생들에게 교수가 한 말‘식품공학과는 남자들이 오는 데야, 너희들이 가는 과는 따로 있잖아. 가정대학 식품영약과! 너희들이 뭔가 착각하고 여기 온 거 아니야? 너희가 공부 제대로 따라 갈 수 있겠어? 한 학기 끝나고 힘들다고 내 앞에 와서 질질 짤거면 아예 오지도 마!’사례 2) 연세대 교양 과목, **개론 시간에 여학생들에게 교수가 한 말‘너희 여학생들, 머리 싸매고 공부하는 것만이 연세대를 위한 기여가 아니다. 솔직히 교수 되는 것이 쉽냐?! 공부하다가 혼기나 이러한 성격은 고등교육 기관인 대학에서 역시 교수와 학생들 간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대학 내에서 사제 간의 관계는 공적인 관계의 형태를 가짐과 동시에 앞서 말한 개인적인 존경이나 믿음을 기초로 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까닭에 대부분의 피해 학우들은 가해자인 교수의 행동에 대해 대부분 처음부터 경계심을 갖기 힘들어 진다. 대부분의 피해학우들은 가해교수의 성적인 발언이나 접촉 등에 대해서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스승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존경이라는 일반의 시 각 속에서 이를 성폭력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주관적인 불쾌감이나 혹은 친밀감의 한 표현으로 해석하기 쉬워진다. 또한 공적인 만남 이후에 이루어지는 술자리나 '논문을 봐 주겠다'거나 '상담할 것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가해 교수가 접근할 때 피해 학생들은 이를 교수에 대한 신뢰와 존경 속에서 믿고 따라가게 되기 쉬워짐으로서 성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또한, 대학사회 내에서 학점이나 졸업 이후의 진로 문제 등에 있어서 학생에 대한 교수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는 점도 교수에 의한 성폭력의 주된 요인을 이루고 있다. 즉, 대부분의 가해 교수들은 학점이나 졸업논문의 통과, 졸업 이후의 진로 등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빌미로 피해학생들을 협박, 유인해 내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피해학생이 4학년 학생이거나 학부보다도 교수의 영향력이 훨씬 절대적인 대학원생일 경우 그리고 학생에 대한 교수의 영향력이 상당히 강하며 교수의 자율권이 크게 주어지는 예체능학과일수록 학생에 대한 교수의 영향력이 유인 혹은 협박요인으로 매우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막말로 대학원 학생이 교수에게 알아서 기어야 하는 게 일반 사회보다 심하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운명에 전권을 행사하는 현실이라 교수가 이를 악용하여 논문을 대필하는 작업부터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도 말 한마디 못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피해자들은 교수의 이러한 영향력 행사와 협박 때문에 교수의 성폭력에 대한 적극적인 거부의사를 표시하거무리한 신체적 접촉이 상습적이고 지속적으로 성적 언동을 일삼은 교수에 대해 심한 굴욕감과 수치심을 느껴 고소하였다. 이 후 5년간의 법정투쟁 끝에 1998년 2월 10일 대법원에서 승소하였다.?판결이유원고에게 불쾌하고 곤혹스러운 느낌을 가지게 하였다면, 피고의 행동은 분명한 성적인 동기와 의도를 가진 것이고 그 기간 동안 집요하고 계속적인 것인 까닭에 사회통념상 일상생활에서 허용되는 단순한 농담 또는 호의적이고 원유적인 언동으로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원고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서 원고의 인격권을 침해하였다고 할 것이고 이로써 원고가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은 경험칙상 명백하다.② 96년 국민대 교수 성폭행 사건96년 12월 공과대학의 한 교수가 대학원 입학을 앞둔 여학생과 저녁식사와 술자리를 함께 하고 드라이브를 한 뒤 여관으로 유인해 성폭행했다. 여학생의 학부모는 우연히 딸의 일기장을 보다가 사정을 알게 돼 교수를 고소했고, 공대 여학생회와 총여학생회는 학교 측에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60∼70%의 강제적 불륜관계가 있었지만, 눈에 보이는 폭력이 없고 반항의 증거가 없기 때문에 기각한다. 그러나 고소인도 무고죄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피해 여성의 거부의사가 분명했음에도 교수와 학생이라는 관계에서 좀체 표출하기 어려운 강한 저항만을 판단의 근거로 삼은 것이다. 가해자 교수는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다가 2003년 4월 결국 학교에 스스로 사직서를 냈다.③ 98년 12월 부산대 김교수의 성폭행 사건98년 부산대 수학과 교수는 학술세미나장에서 만난 피해자에게 유학추천서를 써주겠다고 접근해 개인조교로 곁에 두고, 2월 7일부터 7월초까지 모두 16차례에 걸쳐 성폭력을 했다.‘반항하면 유학갈 때 추천서를 써주지 않겠다, 고소하면 부도덕한 여자임을 출신학교에 알려 더 이상 공부를 못하게 하겠다, 청부살인하겠다.’등의 협박을 했다. 이에 피해자는 11월 경찰에 가해자를 고소하고 가해자는 즉각 구속되었으나 피해자에 대한 가7일 교육부 재심위에 징계 재심의 신청하면서, 재심위에서 파면 징계 취소 처분했다. 학교 측에서도 재조사하여 2004년 2월 3일 학교 재단 교원징계위원회에서 다시 파면처분 결정했다. 2004년 2월 7일 피해자가 H교수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하고, 3월 H교수가 교육부 교원징계심의에 파면처분 취소 청구했다. 결국, 2004년 6월 서울마포경찰서에서 H교수 혐의 인정하여 불구속 기소되었고,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으로 수사 지휘 건의 및 사건 송치되었다. 2005년 1월 12일 2년간의 법정투쟁 끝에 실형을 선고했다.?판결이유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 이용운 판사는 판결문에서 "교수로서 자신이 감독해야 할 학생을 성추행 했다는 사실은 비난 받을 여지가 많고, 피해학생은 지금도 정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신적 충격이 큰데도 피고인은 범행을 부인하고 반성의 기미가 없다"며 실형 선고의 이유를 밝혔다.⑤ 2007년 경희대 S교수 성폭행 혐의사건2007년 1월 경희대의 한 명예교수가 교내에서 여성에게 성폭력을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이 사건은 2006년 11월 14일 처음으로 성폭력 상담실로 신고 되었고, 이후 가해자가 경희대 소속이라는 것을 알고, 성폭력 상담실에서 성폭력 사건으로 접수하게 되었다. 그 당시 검찰 조사결과와 사건 발생 장소가 학내 교수 회관이었다는 사실과 교수라는 신분은 이후 학내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고 판단되어 총여학생회는 학교 당국의 빠른 해결을 요구했다. 총여학생회는 18일 오후 1시 대학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폭력특별위원회는 피해자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고, 성폭력특별위원회는 성폭력 사건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피해자 중심으로 논의하고, 회의석상에서 피해자를 의심하는 발언을 한 데 대해 공식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그러나 2월 16일 “피해자 무고죄로 기소”라는 것을 “무고죄 판결 확정” 이라는 기사를 속출하여 총여학생회는 궁지에 몰렸다. 일부 네티즌과 재학생은실이다.
겨울의 환(幻)◎ 작가소개김채원(金采原, 1946∼ ) 소설가* 1946년 경기도 덕소 출생* 1968년 이화여대 미대 회화과 졸업* 1975년 에 '밤인사'로 추천, 데뷔* 1989년 에 발표. 이 작품으로 제13회 이상문학상 수상* 주요작품으로 단편 ≪얼음집≫ ≪몽수리공원에 내리는 가을≫ ≪밀월≫ ≪봄의 환(幻)≫ 등이 있으며, 작품집으로 ≪먼집 먼바다≫ ≪초록빛 모자≫ 등이 있다.그의 소설은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그 분위기는 대부분 짙은 상실감과 담담한 절망감 속에서 형성된다. 여기에서 상실감은 과거의 기억과 연관되어 있으며, 절망감은 현재의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 과거의 기억은, 그것이 상처에 관한 것일지라도 유년의 순수함이나 추억의 음영을 가지고 있어 아름답게 회상된다. 그러므로 현재의 상황 역시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숨막힐 듯한 답답함이 아니라 오히려 담담한 것일 수 있다. 이러한 과거의 추억들은 현재의 심리적 상황과 나란히 배열되면서 주인공의 내면적 반성을 촉발시킨다. 그의 소설 속에서 서사성이 커다란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인물의 내면적인 상황에서 비롯되는 이러한 감각적인 분위기, 그리고 그 상황의 이미지만이 압도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설적 분위기를 더욱 뚜렷하게 부각시키는 것은 그녀만의 감각적인 문체이다. 그의 소설에서 현실의 상황은 대부분 하나의 주관적인 시선에 의해 묘사된다. 즉 서술자가 투명한 카메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세계의 인상과 그와 연관되어 있는 기억들을 나름의 형식으로 굴절하고 변형해 내는 프리즘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서술자는 다양한 색채, 음영, 소리, 냄새 등의 감각을 포착해 내며, 그럼으로써 소설은 일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이미지 덩어리가 된다. 그 안에서 인물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술회한다. 그러므로 그의 소설의 문체는 현저히 독백적이다. 과 같이 일인칭 화자가 나오는 경우는 물론이며, 그 밖의 경우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독백적 경향 이미지로 풀려나간다. 따라서 이 작품은 사건을 통해 현실에 도달하기보다는 이미지를 통해 느끼게 한다.서사구조를 살펴보면 이 작품은 7개의 단락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개개의 단락은 화자의 과거에 대한 회상과 현재에 대한 인식이 교차됨을 보여준다.1단락은 여성임을 발견하는 글쓰기가 시작되는 현재로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낮에 일어난 산불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서술된다. 망자들의 한을 녹이는 산불처럼 나의 글쓰기도 나의 응어리를 푸는 것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포되어 있다. 2단락은 모녀가 공유하는 경험과 자질을 통하여 어머니와 딸의 육체적, 정신적 동질성을 암시하는데 닮은 손과 동치미 그리고 된장찌개에 대한 기억은 그들이 따뜻한 밥상을 차리지 못하고 부수는 여자임을 즉 모성이 결여된 존재임을 나타내는 상관물이다. 3단락에서는 남편과 나의 불행한 결혼에 대한 나 의 환상이 깨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당신 과의 만남으로 인해 여성임을 확인하는 4단락은 작품의 의미가 전환되는 부분으로 실패한 결혼을 마감하고 다시 모녀만의 생활로 돌아온 안도감은 소멸해 가는 어머니를 감당하는 의무 때문에 갈등을 동반한 불만감으로 변모한다. 이미3단락의 말미에 어머니와 딸의 갈등 관계가 제시되고 4단락에서는 어머니의 관절염으로 외부로의 접촉이 차단된 채 소외와 밀폐가 지속되는 모녀 관계가 나타난다. 면실유는 사러 시장으로 가는 일상적인 외출을 통해 화자의 이중적인 내면이 서술된다. 즉 쾅하고 닫히는 문소리 는 어둠이 몰려오는 마음 이면서 동시에 새로움의 장을 기대하는 소망의 마음 이기도 한데, 그것은 공간에 대한 화자의 인식에 기인한다. 동일한 일상의 공간이지만 아픈 어머니가 있는 문안의 공간은 노쇠와 소면 그리고 죽음의 공간인 반면 화자가 대면하는 문 박의 공간은 활기와 생성 그리고 삶이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 등장한 당신 의 출현이 너무 적극적이어서 화자는 상상의 산물 이라고 생각한다.5단락은 담배를 매개물로 산불과 할머니 그리고 순젱이를 연상하며, 이 하는 두려움 때문에 현실로부터 도피하려 한다. 즉 어머니와 할머니가 다투던 화자의 유년시절과 동일하게 화자도 현재의 어머니와 갈등하는데, 두 사람 사이에서 당신 의 존재가 불화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여기서 당신 은 화자의 이야기를 듣는 피화자이며 부재하는 부성의 대체물로서 어머니와 그를 동시에 수용할수 없다는데 화자의 갈등이 있다. 그러나 끊임없이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해석하는 글쓰기의 과정을 통해 화자는 그녀 주변의 모든 인간관계를 새로이 정립한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불화를 거울로 자신의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며, 그런 이해의 시선은 당신 을 포함한 주변인물에 대한 이해로 확산되고 결핍을 갈망하는 딸이 아닌 대립과 투쟁을 극복하는 어머니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다.이와 같이 일곱 개로 분절된 각각의 단락은 대체적으로 시간적 순서에 따라 서술되고 있으나 개개의 단락의 내부 구조는 기억의 연산작용에 의한 비연대기적, 비선조적 질서를 가진다. 즉 현재의 화자가 접촉하는 하나의 사물은 그것과 관계된 과거의 사건을 환기시켜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면서 서사는 진행된다.-여성성 획득 과정-1) 당신어떤 여자라 할지라도 성을 무시하고 자기에게 위치를 부여하려고 하는 것은 불성실한 행동이 라고 본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의 주인공인 나 의 삶은 의미가 없다고 말할수 있다. 즉 나 는 성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를 사람 이라고 느끼면서 사는 인물이었다.어느 때, 목욕을 하고 나서 새 속치마를 꺼내어 입을 때, 혹은 화장을 할 때, 혹은 생리 냅킨을 꺼낼 때 자신이 여자의 흉내를 낸다는 느낌에 젖게 됩니다만 그 외에는 언제나 나의 용모나 성따위를 전혀 잊고 있는 것입니다. 즉 외부에서 보는 나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나 그것일 뿐입니다.이런 나 에게 당신 은 여성성을 발견하는데 절대적인 원인이 된 인물이다.나 는 괴물 같은 살림살이 에 몰두하며 정신적으로 힘들고 숨쉬기 어려운 결혼 생활을 끝내고 친정으로 돌아오는데, 노모와 자기만의 공간을 원래의 자기 자리 라고 생각한소리없이 겹쳐진다.소멸해 가는 어머니를 담당하는 것만이 저의 운명 이라고 수락해버리는 여자가 감당해야 하는 고단한 일상의 삶은 어둠의 형식, 환멸의 형식의 삶이다. 그것은 여자에게 안락함 속에서도 왠지 모를 갈증 으로 허덕거리게 하거나 심한 갑갑증 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의미가 탕진되어 버린 불모의 일상적 삶에 수동적으로 함몰된 나 에게 다가온 당신 이란 어떤 존재인가.당신이 저를 어둠 속에서 불렀을 때, 갑자기 거리의 많은 사람들, 모든 것이 다 물러가고 당신과 나, 아니 내가 아닌 내 눈만이 거기에 있던 것과도 흡사합니다. 그것은 인생에 있어서 어떤 것, 인생이라고 하는 것 속에서 우리가 뽑아낼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것을 순간적으로 맛보게해 준 것이었을까요. 순간이 영원으로 변하는 그 가능성, 아니 무엇인가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열리고 더욱 열리며 아름다운 자유의 개념 같은 것, 인간이 근본적으로 찾고자 하는 조건 같은 것. 그런 것에의 형상화가 아니었을까요.당신 은 어둠의 형식, 환멸의 형식의 삶에 허덕이고 있는 나 를 그 어둠과 환멸 속에서 불러내 순간을 영원으로 열어주고, 그 가능성의 지평에 세우는 존재, 혹은 무엇인가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열리고 아름다운 자유 에로 데려가 나 의 삶을 활짝 꽃피게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기에 당신 은 실재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나 의 삶이 머금고 있는 환(幻)으로, 당신 은 나 의 삶을 속박하고 있는 고립, 유폐의 사슬을 풀어주고, 보다 넓은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매개적 존재이다. 그래서 나 는 애타게 허공을 향해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환을 쫓아 나아가는 것이다.이렇듯 당신 을 사랑함으로써 발견된 여성성은 따뜻한 밥상을 차리지 못한 어머니에게서 아닌 언제나 따뜻한 밥상을 차려놓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전통적인 여인인 할머니에게로 귀결되고 있다.2) 불과 눈에서는 모두 7개의 단락으로 교체되며 산불과 눈 이라는 대립된 사물이 등장한다. 이야기를 서술하는 나 는 이를 경험하는 나 와 다른 존재라고 할수 있는데 전자계 중 어머니와 딸 사이의 유대감을 기초로 하여 형성되고, 성인이 되었을 때 모녀 사이에 공생관계를 형성할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양과 마찬가지로 우리 문학도 어머니에 대한 딸의 동일시 및 어머니로부터의 분리가 딸의 성숙한 정체성을 획득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그중 도 주인공인 나 가 부성이 결여된 모계구조 속에서 나와 어머니, 나와 할머니, 어머니와 할머니의 관계를 통해 여성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간다. 나이 들어가는 여자의 떨림 으로 대표되는 여성의 정체성 획득은 나 의 유년 기억을 통한 섬세한 자기 성찰을 통해 나타나고 있으며, 이때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은 어머니의 음식과 관련된 장면들이다.어머니의 음식에 대한 나 의 기억은 김장과 된장찌개로 이두 가지는 서로 상반된 감정과 추억으로 나타난다. 김장을 하던 기억은 할머니와 어머니, 나 와 동생이 넓은 마당에 모여 서로의 정을 확인하는 유일한 장면으로써 김치를 담그는 광경의 세밀한 묘사는 온갖 종류의 양념과 재료로 맛을 낸 김치처럼 풍요와 조화로 가득한 정겨운 풍경이다.그에 반해 된장찌개는 소외와 갈증의 기억으로서 작은 어머니를 얻어 나갔다가 병사한 아버지와 그로 인해 방황하며 화투로 하루를 보냈던 어머니의 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나 와 동생은 화투 손님에게 방을 빼앗긴 채 부뚜막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며,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어머니가 아닌 어린 나 이다. 일반적인 가옥 구조 속에서 주부의 노동 공간은 부엌이며, 아동의 놀이 공간은 방이라 할수 있는데 나 의 어머니는 친구들과 함께 딸의 공간을 차지한 채 딸로 하여금 자신의 음식을 공급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 때문에 나 는 어머니에 대한 동일시가 이루어지지 않고 정신적·심리적으로 소원한 관계가 된다. 그리고 풍성한 양념들로 맛을 낸 김치와는 달리 된장찌개는 아침에 먹던 것이며, 항상 파가 빠져있다. 이는 어머니와 나 ,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어긋난 관계와 훼손된 삶을 상징하는 요소로서 불화와 결핍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 것
♧ 송요찬(宋堯讚)생몰년 : 1918∼1980활동분야 : 군인·정치가본관 : 여산(礪山)출생 : 충청남도 청양▷ 업적1946년 2월 군사영어학교 제1기로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된 이후 국방경비대 소대장과 강릉 파견대장을 거쳐 1947년 소령으로 진급, 38도선 방어부대 대대장으로 근무하였다.1948년 7월 경기도 수색에 있는 보병학교 초대교장을 지냈고, 1949년 1월 중령으로 진급된 이후 제주도폭동진압작전·오대산공비소탕작전·지리산공비소탕작전 등에 참가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1950년 3월 헌병사령관으로 임명되고, 재직중 북괴군의 서울점령 직전인 6월 27일 한국은행 지금(地金)을 진해로 무사히 반출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1950년 9월 준장 진급과 동시에 수도사단장에 임명되어 원산·함흥·청진을 함락시키는 등 동부전선에서 빛나는 전공을 올렸다.중공군의 한국전 개입으로 흥남을 거쳐 철수하여 묵호에 상륙, 재정비한 뒤 총반격전에 나선 그는 수도사단장으로 강릉을 재탈환하고 이어 화천 북방에 위치한 수도고지에서 40일간의 혈전 끝에 중공군을 포함한 적군 2개 사단을 섬멸하는 전공을 세웠다. 이로 인해 1952년 7월 소장으로 진급됨과 동시에 제8사단장에 임명되었다.휴전 뒤 1953년 7월 미국방성 초청으로 미육군 지휘참모대학에 유학, 1년간 수학한 뒤 1954년 8월 제3군단장에 임명되고, 그해 10월 육군중장으로 승진되었다.1956년 9월 국방대학원에서 수학한 뒤 1957년 5월 제1야전군사령관, 1959년 2월에는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다. 육군참모총장 재직시 10만감군, 정군(整軍), 군인연금제도의 신설 등 군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특히 자유당에 의한 3·15부정선거에 항거하여 일어난 4월의거 때에는 계엄사령관으로서 군의 정치적 중립을 고수하고 국민에게 신뢰감을 부여함으로써 유혈사태를 방지하고 4월의거를 성취시키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였다.사태 수습을 마무리짓고 허정(許政)의 과도정부 출범과 함께 곧 1960년 5월 참모총장직을 사퇴, 예편하고 미국 조지워싱이것은 그가 성인이 된 후 한학에 큰 조예를 갖게 된 동기가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농사꾼으로 키울 아버지의 의사를 반대하고 화성공립보통학교에 입학시켰다.송장군이 보통학교 4학년이 되던 해인 1927년 3월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끼니를 걱정할 만큼 가세는 어려워졌다. 간신히 보통학교 6학년 과정을 졸업하게 된 송장군은 집안사정을 고려하여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농사일을 돕고자 하였으나, 어머니의 완고함으로 어렵게 봉산중학을 마칠 수 있었다. 그후 그는 한학에 매진하고자 2년여간 금강산의 한 암자에 들어가 사서와 삼경을 수학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이무렵 일제는 만주침략이후 소위 '대동아공영권'이란 이름하에 침략적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일제는 근로보국단을 통해 한국청년들을 강제로 동원하고 또 선만척식회사를 통해 충남 일원에서 만주로 보낼 농업 이민자 3천 여명을 강제로 모집중에 있었다. 이에 송요찬은 강제로 노무자로 끌려가느니 차라리 지원병에 응모하여 군인이 되는게 낫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6개월의 훈련을 거친후 1939년 12월 일등병이 되었으며, 일제의 강요에 따라 나카무라 사다오란 이름으로 창씨개명도 하게 되었다. 그는 약 4여년동안 지원병훈련소에서 조교생활을 하면서 군조(중사)까지 진급하였으며, 그후 용산 소재의 조선군사령부 예하 제23부대로 배치되었다. 그는 1945년 1월 조장(상사)로 진급하여 훈련장교 보좌관을 수행하던중 환희의 해방을 맞이하였다.해방 직후 미군정하에서 일군 육사출신인 이형근과 지원병출신 최경록이 소장 경력자들을 군사영어학교에 입교시키기 위해 개별적으로 많을 사람들을 접촉하고 있었다. 송요찬은 특별지원병 제4기출신인 최경록을 찾아가 상의하여 군사영어학교에 입교하게 되었다. 정식으로 영어교육을 받지못한 그는 학교교육이 끝나면 곧장 하숙집으로 돌아와 밤이 늦도록 공부를 하였다. 당시 군에서는 그의 독학열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이곳에서 소정의 교육을 마친 송요찬은 1946년 5월 1일 육군참위(소위)로소탕작전을 완료하고 육본 계획에 의헉 9연대는 2연대에 임무를 인계하고 대전으로 이동하여 부대 정비와 교육훈련을 실시하였다. 그러던 중 49년 2월 1일 연대는 서울로 이동하여 수도사단(이준식대령)에 편입되었다가 강릉에 주둔한 제6사단 제10연대장으로 전속발령을 받았다. 그는 강릉에서 북한 38경비대가 월경하여 곳곳에서 만행을 자행하자 경비를 강화하는데 주력하였다. 그는 적의 예상 침투로를 철저히 차단하고 토벌작전을 감행하여 대부분의 유격대를 소탕하였다.그는 양양지역 작전등으로 공로를 인정받아 7월 15일부로 대령으로 진급한후 9월 28일 제5사단(백선엽대령) 제15연대장에 보임되어 호남지구공비토벌작전을 수행하였다. 그는 제주도에서의 경험을 살려 민심수습과 토벌작전을 병행하였다. 그는 작전중 팔에 관통상을 당하기도하였으나 항상 일선부대에서 작전을 지휘하였다.4월 18일부로 헌병사령부에 임명되었다. 이무렵 당장 직면한 문제는 남북교역문제였다. 일부 고급장교들이 정보수집이라는 미명하에 북한과 상행위를 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그리하여 각 지역을 조사한 경과 제보가 사실이란 것을 확인하고 문책하려 했으나 고위층으로부터 압력을 받아 무산되었다. 그의 눈에는 나라가 망해가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할 뿐이었다. 정보수집을 하고 있었던 것은 북한쪽이었다. 그는 결국 보병학교 보수생으로 자원하여 교육을 받던 중 남침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는 헌병사령부로 긴급 복귀하여 낙오병수습, 군보급로 교통관리, 포로수용 등 임무를 수행하는데 주력하였다. 그는 서울철수시 한국은행의 금괴상자 90여개를 구용서총재와 협의하여 사고없이 대전으로 운반하는데 성공하였다.그는 낙동강방어선으로 철수하기까지 후방지역의 민심안정과 낙오병수습 등을 수행하다가 8월 10일부로 대구방위사령관의 직책을 겸임하게 되었다. 송요찬대령은 내무부 전국비상경비사령부와 긴밀한 협조체제를 이루면서 대구시민들과 피난들을 안정시켜 나갔다. 그러던 중 9월 1일 수단사단장에 임명되었다.사단장으로 명령을 받은 송대령은 안강고산 일대의 적을 격파하였다. 사단은 이 전투과정에서 제1대대장 장춘권소령이 복부관통을 당하는 등 일부 손실이 있었지만 적을 격퇴하고 개전이래 최대의 전과를 획득하였다. 즉, 1개 사단분의 장비를 노획한 것이었다. 전차 6대, 야포 4문, 박격포 11문, 기관총 530정 소총 8천정, 1개화차의 의료약품 등이었다.사단은 3사단과 함께 적의 방어선을 돌파하여 북진을 계속하여 마침내 원산에 동시 입성하였다. 원산 서측방에서 수도사단이 그리고 남측방에서 제3사단이 각각 진격한 것이다. 국군이 원산에 입성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약 9만에 달하는 잔류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입성하는 국군을 열렬하게 환영해 주었다.그후 사단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부득이 흥남을 통해 해상철수하여 묵호에 상륙하였다. 이때 아군은 한강 남안지역으로까지 진출한 중공군을 소탕하도록 작명을 하달하였다. 사단도 이 계획에 따라 강릉을 목표로 반격작전을 개시하였다. 강릉남쪽주변 일대에 견고한 진지를 지원포병으로 격파하고 반격전을 개시하여 작전 4일만에 강릉에 돌입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날 총참모장 정일권소장과 군단장김백일 소장이 지휘소를 방문하여 "송장군. 이 추위속에서 정말 고생이 많았소. 이렇게 수도사단이 목표지역을 제일 먼저 점령확보해주니 우리 국군의 체면을 크게 세워줬어요'라고 치하하였다.그 직후 맥아더원수의 한국전선 시찰시 수도사단을 방문하여 "제너럴 타이거 그러한 용기와 결의를 가지고 끝까지 잘 싸워주길 바라겠소"라고 격려하여 미 고위지휘관들 사이에 매우 용맹한 장군으로 알려져 타이거라는 별명으로 인기가 높았다. 그후에도 송요찬장군은 대관령에서의 중공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물리치는 등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사단은 10월 월비산 탈환작전에 성공하자 사단장이 월비산 정상에 올라가 "우리는 종이 호랑이가 아니다. 귀관들은 상승 수도사단의 참 호랑이자 동해의 호랑이임을 자부하라"고 외치면서 이날의 전공을 치하하고 격려한 다음 유공 장병들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하였다. 이 쾌승의 여세를 몰아 사단은 서부전이때 수도사단은 제2군단 예하로 편입되어 다시 전선에 투입되었다. 지형능선, 621고지 전투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수도고지 및 지형능선 전투가 무려 3개월여 동안이나 치열한 공방전을 계속하였다.작전을 끝난후 제8군사령부의 긴급 호출이 있어 내려가게 되었다. 그가 도착하자 뜻밖에도 이승만대통령을 비롯하여 국방부장관, 군수뇌장성들과 미제8군휘하 미군장성들이 참석해 있었다.밴플리트 장군은 오찬에서 "오늘은 우리가 항상 존경해 마지않는 대통령각하께서 전쟁을 통하여 가장 용감하게 싸운 장성에게 손수 계급장을 달아 주시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 동석한 모든 장성들이 모두 놀라는 표정을 했다. 그 순간 밴플리트 장군이 '타이거 송'을 거명하였다. 그러한 속에 이승만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으면서 "송장군.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그동안 용감히 싸워줘서 고맙습니다"하고 별 둘을 달아 주었다. 소장으로 진급한 송장군은 2년여동안 생사고락을 같이 해온 수도사단 장병들과 헤어지게 되었다. 52년 7월 12일부 남부지구경비사령관으로 전속명령을 받은 것이다. 누구보다도 공비토벌 경험이 풍부한 송요찬 소장을 발탁하여 초대 사령관에 임명한 것이다.그러나 그는 사령관으로 부임한 지 3개월여 만에 다시 수도사단장에 부임하였다. 그는 그후 중부전선에서 휴전회담을 앞두고 격전지였던 수도고지는 물론 금화, 평강, 철원을 잇는 철의 삼각지에서 적의 7.13 최후공세를 저지하고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그는 그후 미육군참모대학에서 10개월동안 정규과정을 마치고 귀국하여 3군단장에 임명되었다. 약 2년여 동안의 재임기간중 창군 최초로 모든 부정행위를 척결하고 군단 운용의 정상화를 위해 헌신하였다. 중장으로 진급된 후 약 10개월 동안 국방대학원에서 수학하고 57년 야전군사령관에 보임되었다. 그리고 59년 제11대 육군차모총장에 임명되었다.4.19혁명로 자유당 정권이 붕괴되는 과정에 있어서 송요찬중장은 계엄사령관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견지하고 민심의 동향을 파악하여 적
1. 커뮤니티란?인터넷의 대중화는 실생활의 여러 형태들을 그대로 인터넷상에서도 구현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고 이러한 인터넷과 실생활의 접목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온라인 커뮤니티(online community), 즉 가상 사회이다.특정한 경계 혹은 장소를 초월하여 유사한 관심과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컴퓨터에 의해 매개되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반복적이며 지속적으로 상호작용 함으로써 사회적 관계와 유대를 형성해 가는 집단을 말한다.2. 커뮤니티의 장점 (회사측 입장)사이트 내에 사이트의 주제에 도움이 되는 커뮤니티 공간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활동을 하게되면 지속적으로 방문을 유도할 수 있을 뿐아니라, 그 자체가 마케팅의 역할을 한다① 사이트에 대한 소속감을 부여② 자체적으로 회원이나 이용자가 늘고, 사이트 방문율을 높임③ 자체적인 데이터 생성으로 사이트의 컴텐츠를 늘려줌④ 입소문에 의한 마케팅 실현3. 커뮤니티의 단점 (회사측 입장)사이트의 목적이나 주제와 내용이 맞지 않는 커뮤니티, 관리의 부재로 인해 주제가 없어진 커뮤니티는 사이트에 악영향을 미친다.또한 커뮤니티는 활성화되었는데 오히려 이것이 서버의 동시 접속자수를 늘려 사이트 유지에 드는 비용이 늘어나게 되고 그에 상응하는 수익을 얻지 못해 적자를 보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4. 유해 커뮤니티와 해결방안인터넷의 특성상 자신의 신분을 감추는 것이 가능하므로, 남의 눈치를 보며 쓰고있던 가식의 가면을 벗고 자신의 진정한 모습으로 만나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호감을 느끼고 고통을 동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 한지도 모를 것이다.하지만, 자살커뮤니티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판적인 사고방식과 삶에 지쳐있어 어두운 생각을 갖고있기 때문에 자살을 부추기거나 청부자살을 유도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것이다.그리고 군대를 기피하는 사람들에게 문신을 해주는 곳을 알선하는 커뮤니티도 생겨나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다.▷ 해결방안이에 따라 '커뮤니티 가이너'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겨났다.온라인 커뮤니티는 누구나 쉽게 만들고 참여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이 가상의 개방형 공동체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커뮤니티 가드너는 그런 공동체 구성원들이 편리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도 할 수있다.쉽게 말해서, 커뮤니티에 물(지원서비스)을 주고 벌레(유해커뮤니티)도 잡아주는 업무라고 할 수 있다. 가드너(정원사)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매일 5천여개의 새로운 카페가 생겨나고 있다. 장래성이 있는 신생 커뮤니티가 큰 나무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네티즌들의 각종 문의나 건의사항 처리는 물론 이벤트 기획, 명예훼손 등의 법률문제까지 처리해 줘야 한다. 이같은 기본적인 커뮤니티 서비스 운영 외에 커뮤니티 서비스의 장기 수익모델 구상 등 회사의 경영전략에도 커뮤니티 가니너가 관여한다.
1. 객체 지향의 개념1) 객체① 정의- 효율적으로 정보를 관리하기 위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분류하는 개념적인 단위- 특정 대상을 표현하는데 필요한 정보들의 종합적인 집합체- 수치화한 자료, 자료처리에 필요한 활동 포함② 효과- 사용자 관점으로 표현하므로, 훌륭한 대화 수단이 된다.- 객체는 잘 변하지 않아서, 안정된 시스템 모델을 얻을 수 있다.- 객체별로 독립적으로 관리되어, 모듈화가 잘된 프로그램을 얻는다.- 분석에서 작성된 객체 모형이 설계 단계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된다.③ 용어- 속성 : 객체가 가지고 있는 자료나 특성- 프로시저(연산) : 객체가 수행하는 활동- 메소드 : 객체들을 소프트웨어로 구현된 연산2) 캡슐화① 정의- 내용물이 보이지 않도록 포장하여 보호하는 것② 효과- 객체에 포함된 정보의 손상과 오용을 막을 수 있다.- 연산 수행 방법이 바뀌어도 연산 자체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자료가 변해도 다른 객체에 영향 주지 않아서 독립성이 탁월하다.- 처리된 결과만 사용하므로, 객체의 확정성과 이식성이 뛰어나다.- 연산만 알면 객체를 이용하여 새로운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다.3) 메시지① 정의- 어떤 객체로부터 특별한 응답을 얻기위해 응답을 생성하는 활동을 수행하도록 요청하는 것- 객체의 이름, 연산 이름, 연산에 필요한 인자 포함② 소프트웨어의 구성- 객체 : S/W 를 구성하는 단위(building block)- S/W :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체들의 집합- 객체는 전체 S/W의 일부 기능을 맡아서 수행함- 메시지 : 작성된 객체들을 연결하는 수단4) 클래스① 정의- 같은 자료 구조와 연산을 가지는 객체들의 집단- 자료 구조와 연산을 한 번만 정의하여 공유함- 객체의 속성을 정의하는 추상적/개념적인 틀② 연산의 다형성- 연산이 같더라도 클래스가 다르면 전혀 다르게 수행하는 것- 여러 객체가 같은 자료 구조와 연산을 가질 수 있음5) 상속① 하위 클래스의 작성- 상위 클래스의 속성이 아래로 전달되 그대로 적용됨- 상위 자료 구조와 연산을 그대로 받아 사용 가능함- 클래스는 상속에 의한 계층 구조를 가짐② 메소드의 탐색- 객체결정- 소속 클래스를 탐색함- 상위 클래스를 탐색함2. 객체 지향 분석객체 지향 분석 절차- 실세계로부터 객체를 선정한다- 객체 사이의 의존 관계를 정의한다- 객체의 속성을 정의한다- 객체의 연산을 정의한다- 객체 사이의 통신을 정의한다1) 객체의 결정① 객체 후보의 선정- 시스템과 상호 작용하는 외부 시스템- 업무 영역에 속하는 사람의 역할- 업무상 발생하고 관리되는 사건- 업무상 구성되는 인적 조직- 업무 정보나 활동 주체를 보관하는 장소- 여러 하위 요소로 구성된 구조② 의미 있는 개체의 선별- 시스템이 처리할 둘 이상의 속성을 가진다- 동일한 클래스의 모든 객체에 적용된다- 속성값을 변경하는 몇 가지 연산을 가진다- 구현 기술과 무관하게 문제 해결에 필수적이다2) 객체 사이의 구조 결정① 상속 관계의 표현객체 사이에 존재하는 상속 관계를 찾아서 상하로 연결하면, 공통 속성을 중심으로 몇 개의 클래스로 분리되는 분류 구조가 형성② 부분전체 구조개발할 시스템의 경계를 설정하고 시스템의 목적을 명확히 하는데 효과적③ 주제의 설정시스템을 주제 단위로 나누어서 주제별로 모델링하는 것이 효과적3) 속성의 정의① 속성 항목- 물리 정보 : 색깔, 무게 주소, 재질 등- 논리 정보 : 이름, 역치, 활동 순서, 운선 순위 등- 상태 정보 : 꺼짐, 켜짐 등- 보관 정보 : 원시 자료, 측정값 등② 필수적인 속성- 문제 해결에 반드시 필요- 시스템 내부에 일정 기간 유지- 유도된 결과 값이 아니라 원시 자료- 복합 자료 구조보다는 단일 항목으로 표현- 객체 식별 항목은 설계의 대상이므로 제외4) 연산의 정의① 객체 상태도- 객체의 상태는 사각형- 최초 상태에서 화살선을 따라가며 연산을 파악② 연산의 분류- 기본 연산 : 한 번 수행하면 효과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연산- 복합 연산 : 필요할 때마다 다시 수행해야할 연산5) 객체간 통신 방법의 정의- 메시지 : 객체이름, 연산이름, 인자의 세 부분으로 구성- 수신 객체 : 메시지를 분석하여 결과를 전송 객체에게 반납함- 객체 지향 분석의 목적 : 시스템을 구성하는 객체들을 정의하는 것3. 객체 지향 설계1) 객체 지향 설계 항목① 프로토콜의 확정- 독립적인 객체를 동적으로 연결하는 규칙을 잡음- 각 객체가 수행할 연산을 정의함- 객체가 처리해야 하는 메시지- 메시지 교환을 위한 최소의 인터페이스② 구현 기술의 결정- 객체의 연산 수행에 필요한 세부 사항을 결정- 공개되지 않는 내부 자료 구조의 이름, 유형, 초기값- 객체 내부에서 연산 수행 절차와 기술- 상속된 연산과 자료 구조를 탐색하기 위한 클래스 참조 정보2) 객체 지향 설계 절차① 객체 지향 분석- 전략수립 : 실세계의 정보 처리 과정과 문제를 정의, 구현 전략을 비정형적으로 수립- 객체정의 : 정의된 문제로부터 객체를 선정, 객체의 속성을 결정, 수행할 연산을 결정② 객체 지향 설계- 프로토콜 정의 : 객체가 수행할 연산을 확정, 메시지 교환에 필요한 인터페이스의 결정- 구현기술 정의 : 속성을 표현하는 내부자료구조와 연산이 수행되는 절차와 알고리즘 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