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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클래디에이터터를 보고 평가A좋아요
    Ⅰ. 시작하는 말역사 영화 설명하기 과제를 받아들고 고민을 하였다. 어떤 영화를 볼까? 17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열 네 살의 어린 왕 루이 14세 가 음악과 연극을 통해 절대권력의 태양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내용의 「왕의 춤」을 볼까? 아님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끈 프랑스의 국민영웅이고 패전의 프랑스를 구하는 사명을 신탁 받았다고 믿고, 1429년 왕위계승권을 빼앗긴 샤를 7세를 도와 오를레앙을 해방시키고 프랑스 대관을 실현시겼고, 영국군에게 붙잡혀, 31년 이단자로서 화형 당하였으며, 19세기 이후에는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되었다. 1920년 가톨릭의 성녀가 되었던 수식어가 무진장 긴「잔다르크」? 아님 역사적 배경은 조선 영 정조시대이고 중흥 정치라는 이름 아래 조선시대 가장 안정적인 정치와 경제를 보여준 시기이지만 그 이면에는 사도 세자의 죽음과 노론과 소론 세력간의 갈등과 그 안의 왕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인 「영원한 제국」(개인적으로 이것은 예전에 책으로 읽었는데... 재미와 안타까움이 교차했던 것으로 기억되는 책이었다)?? 많은 생각이 오갔고 나는 결국 이전부터 보고 싶었으나 보지 못했던 영화인 「클래디에이터」로 결정했다. 재개봉이 될 때도... 비디오로도 보지 못했던 글래디에이터!! 앞서 생각했던 영화보다 재미도 있겠거니와 수업시간에 했던 로마의 역사를 한번더 정리해 보는 것이 좋을 듯 싶어서이다.화창한 토요일 오후, 혼자서 기숙사 휴게실에서... 주위에 사람들은 벌써 다 보았단다. 그 영화 괜찮더란 말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ㅠ.ㅠ) 하지만, 쓸쓸함도 잠깐 영화에 점점 몰입되었다. 다행히도... ^^우선 이 영화의 줄거리와 멋있는 러셀크로와 주요인물과 감독인 리들리 스콧에 대해 이야기하고 역사이야기를 해보려한다.Ⅱ. 영화이야기1. 줄거리영화는 처음 이렇게 시작한다. 전성기 시대의 로마 제국은 아라비아 사막에서 영국 북부의 국경에 이르렀으며 전세계제국의 25%가 로마황제의 통치를 받았다... 서기 180년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가 게르마니아 야공화국 체제로 복귀시킬 것을 계획한다. 이를 알아챈 마르쿠스 황제의 아들 콤모두스는 권력에 눈이 멀어 그의 아버지를 살해한 후 자신을 황제로 선포하고 막시무스 마저 살해할 것을 명령한다. 콤모두스의 부하들에게 가족을 몰살당하고, 막시무스는 노예상인에게 붙잡이고 자신의 신분을 속인채 노예로 팔려 검투사가 된다. 공화제에 대한 요구를 잠재우기 위해 160일간의 검투 시합을 연 새로운 황제 코모 도스는 막시무스가 검투영웅이 된 것을 알고 놀라지만 천부적인 잔인성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눈이 무서워 어쩌지 못한다. 기나긴 여정 끝에 명성을 날리는 검투사로서 로마에 돌아온 막시무스는 콜로세움을 배경으로 대결을 펼친다.그러던 어느 날, 오래 전 사랑했던 황제의 누이 루실라를 다시 만나게 된다. 어느새 민중의 영웅이 된 막시무스. 드디어 막시무스는 예전의 부하들과 은밀히 만나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존경하던 황제를 살해한 난폭한 황제 코모두스에 대한 복수를 결의한다. 아직도 막시무스를 사랑하고 있는 루실라는 동생 코모두스를 배신하고 막시무스의 반란을 도우려 하는데... 영리한 황제는 결국 루실라의 아들로 그녀를 협박해 반란 계획을 알아낸다. 그를 도우며 공화정을 지키려는 황제의 반대세력인 그라쿠스도 역시 잡혀들어 간다. 그 후 황제는 막시무스를 그냥 죽이지 않고 비열하게 독침으로 찔러 군중이 보는 앞에서 결투를 한다. 그러나 막시무스는 코모두스를 결국 이긴다. 죽어가는 막시무스는 로마를 공화정으로 이끌어 나갈 것을 그라쿠스에게 말하고 아내와 아들 곁으로 간다...2. 배우 & 감독막시무스 역에 러셀 크로는 「클래디에이터」에서 검투사가 된 장군, 영웅이 된 검투사 의 격렬한 액션과 내면의 강한 복수심, 영웅다운 카리스마를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루실라 역에 코니 닐슨은 지적이고 매력적이며 그 누구보다도 강인했던 여성.. 하지만, 그녀도 사랑 앞에선 약한 여인으로 나온다. 그리고 코모두스의 호아퀸 피닉스는 막시무스의 복수의 대상인 황제 코모두스는 막시무스 만큼 강한 힘을향을 받는다. 그래서 정치지도자를 뽑는 방식에 대한 결정은 한 사회가 내리는 정치적 결정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잇다. 로마는 유례가 없을 만큼 오래 존속한 제국인 데다 군주제로 시작해서 공화제로 바꾸었다가 다시 군주제를 골랐으므로 로마는 고대에선 보기 드문 정치적 실험을 한 셈이고, 자연히 이 문제에 대해 좋은 교훈들을 보여준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오현제 시기에 전통적 세습 방식에 대한 대안의 실험이다.2세기에 로마는 현명한 황제 다섯명이 잇따라 나오는 큰 행운을 맛았다고 한다. 그래서 네르바(96~98)부터 트라야누스(98~117), 하드리아누스(117~138), 안토니누스 피우스(138~161)를 거쳐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161~180)로 이어진 이 시기에 로마는 마지막 번영을 누렸다. 카르타고와의 투쟁에서 드러난 로마의 굳센 기상은 이미 오래전에 사그라졌고 쇠락의 기운이 모든 부면들에 어리고 있었지만 그들 현명한 황제의 선정 덕분에 로마제국은 2세기에 가장 넓은 지역을 지배했고 산업과 교역은 어느 때보다 흥성했으며 사회는 풍요로웠다. 그래서 로마제국 쇠망사 를 쓴 에드워드 기번은 인류가 이 시기보다 더 행복했던 시절은 없었다고 말했다.5현제시대, 즉 로마의 평화시대는 도시화 정책이 침투하고 있던 시대이기도 하였다. 제국각지에 로마식 도시가 세워져, 속주민에게는 널리 로마 시민권이 주어졌고, 로마문화가 속주의 구석구석까지 스며들고 있었다. 이리하여 도시의 번영은 2세기에 이르러 그 절정에 다다랐다. 중앙에 광장을 두고, 신전·바실리카·극장·원형극장·공공목욕탕·수도를 구비한 로마식 도시가 세워지고, 도시문화의 주체를 이룬 것은 도시의 부유층이었다. 그들은 도시참사회를 구성하고, 도시의 관리(정무관)에 취임, 무보수로 도시를 위하여 헌신하였다. 한편 제국정부는 도시의 부유층의 경제활동에는 전혀 간섭하지 않는 자유방임정책을 취하여 제국은 경제적으로도 크게 번영하였다. 제국 각지의 특산품 거래가 자유로이 이루어지고 안정된 통화의 뒷받침으로 게르마니욱 가속화되고 있었다. 다음에는 산업의 원심적 경향, 즉 중심의 이동과 경제권의 분립, 게다가 시장에도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우선 수송의 난점과 신용의 불확실성에 직결되는 문제였다. 또 고대자본주의 를 지탱하고 있던 속주의 징세청부와 고리대금자본의 형성·발전이 두절되고, 확대재생산도 불가능하여 속주의 각 블록 경제권 번영에도 불구하고 차차 자유로운 사기업이 저지되어갔다. 더구나 시장이 한정되어 있었던 점, 즉 건전한 사회적 중산층이 형성되지 않아, 일반시민이 구매자가 되는 사회가 이룩되지 못했던 점은 번영의 저변이 매우 취약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대토지소유제의 보급은 자급자족적인 경제체제로의 이행을 촉진시켜 경제의 중심이 도시에서 농촌 및 사유지로 옮아갔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것이 도시의 노화현상이며, 나아가서는 농촌 및 사유지에서의 계층의 분화였다. 이리하여 로마제국의 세포라 할 도시들이 그 기능을 잃어가는 한편 소작인에게 가하여지는 부담도 점차 무거워져갔다.이 영화의 배경은 마루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뒤를 이은 아들 코모두스(재위 180~192)가 전제 정치를 행하여 전제정치를 행하여, 그가 암살된 후 혼란을 수습한 것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재위 193~ 211)였다. 그러나 그후 결국 게르만의 민족이동으로 내부의 갈등이 심화로 로마제국은 멸망하고 말았다.Ⅳ. 역사와 영화1. 역사 & 등장인물로마의 철인황제(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121년 4월 26일 로마에서 집정관 안니우스 베루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성실하고 진중하여 황제인 하드리아누스의 사랑을 받았고 프론토등의 훌륭한 스승에게 교육을 받았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후계자로 안토니우스 피우스를 지명했고, 하드리아누스가 사망하자 황제로 즉위한 안토니우스는 아우렐리우스를 양자로 삼았다. 아우렐리우스는 이 때 부터 정치 입문하게 되었다. 그 후 아우렐리우스는 세 차례나 집정관을 역임하면서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 후 아우렐리우스는 세 차례나 집정관을 역임하면서 정치에 관한 업무와 방법간성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한 평화주의자였으나, 부득이 무기를 들게 되면 영화에서 보듯 몸소 변방의 전선에 나갔다. 그의 죽음도 전장에서 얻은 역병 탓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런데, 코모두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역사가 디온 카시우스는 영화에서처럼 아들 코모두스가 황제를 독살했다고 기록한다. 하지만 마르쿠스 황제는 천연두 같은 전염병으로 죽었으리라는 것이 정설이다. 영화와 달리 온후하고 의심을 모르는 아우렐리우스는 아들을 무척 아껴 일찍부터 권력에 개입시켰다고 전해진다. 응석받이 코모두스는 '로마인들에게 내려진 가장 극악한 저주'로까지 불리는 폭군이 됐다. 현명한 아우렐리우스가 후계자 선택만은 이상하게 어리석었다는 역사의 평가로부터 의 상상력은 발동한 셈이다.오현제의 마지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에겐 아들 콤모두스가 있었다. 불행하게도 콤무두스는 어릴 때부터 성품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냈다. 그는 천박했고 염치가 없었고 잔인했고 음탕했다. 그러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아들을 무척 사랑하여 잘못을 제대로 꾸짖지 못했고, 그를 후계자로 키우려고 일찍부터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어린 아들을 싸움터로 데리고 다녔고 마침내 열다섯살 밖에 되지 않은 아들을 공동황제로 선포했다.역사는 가장 좋은 사람의 선택 이라는 원칙을 버리고 세습원칙으로 돌아간 그이 결정이 불행한 선택이었음을 또렷이 보여주었다. 그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콤무두수는 열여덟살이 었다. 그는 황제를 맡기에 너무 어렸을 뿐만 아니라 통치엔 관심도 자질도 없었다. 그는 3백명의 여첩들과 남첩들을 각각 거느라고 갖가지 음악을 즐겼다. 그는 검투경기를 좋아해서 스스로 검투사 차림을 하고 검투사들과 맹수들하고 싸우기까지 했다.후에 루실라는 원로원 의원들과 연합해 코모두스에게 암살자를 보냈다. 실패한 그 암살자는 죽기 전에 경솔하게도 자신의 배후를 발설했고, 다른 의원들처럼 루실라 역시 처형당했다. 영화에서처럼 코모두스는 육체적인 강인함을 과시하기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이 헤라클레스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해 입었다.
    사회과학| 2003.06.08| 6페이지| 1,000원| 조회(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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