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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기행] 부여 부소산성을 다녀와서..(백제 역사 기행문) 평가C아쉬워요
    부여 부소산성 기행을 마치고...과제를 부여 받고 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평소에 역사라고는 아는것도 없고 관심도 없는 지라... 무엇을 중심으로 어디를 가보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처음으로 과제를 부여받았을 때 문듯 떠오른 곳이 있었다. 그곳은 서울시 송파구에 있는 백제고분이다. 어려서부터 송파구에서 자라온 나는 백제고분을 봐왔다. 안에 들어간건 15여년 동안 손에 꼽을정도 백제고분 밑으로 난 차도를 지나치면서 수도 없이 인식해 오며 살았다. 그러나 정작 난 백제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백제라하면 중고등학교때 국사책에서 본것이 전부이고 그나마 지금에 와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현실이다. 그래서 일단은 백제에 대해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백제란 나라는 어떠한 나라인가?주몽의 아들인 온조가 시조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온조설외에 비류백제설, 구태백제설, 대륙백제설, 소서 백제설이 있고 그외에도 많은 설들로 논쟁이 되고 있다.백제 첫 도읍은 위례성. 그후로 웅진, 사비성으로 이동하게 되었다.처음에 위례성에서 나라를 건국하고 발전하다가 근초고왕때 백제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한강 이북 지역과 남쪽으로 탐라까지 영토를 넓히게되고 바다 거너가 중국과 일본에도 세력을 떨쳤다. 백제 5세기에는 고구려의 힘에 밀려 세력의 약화되고 장수왕의 공격으로 위례성 빼앗겨 금강 유역의 웅진(공주)으로 도읍 옮기게 되었다. 백제는 고구려 세력이 남쪽으로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 신라와 군사 동맹을 맺었고 그 후 도읍을 사비(부여)로 옮겨 국력을 회복하였으나 끝내 멸망하게 되었다.여기까지의 기초 지식을 가지고 우리는 M.T날을 맞이하였다. 과 M.T코스 중에 부여 부소산성 기행이 잡힌 것은 운명의 장난인가? 단순한 우연이일까?부소산성에 도착한 우리는 더운 날씨에 한숨을 쉬었다. 입고 왔던 겉옷은 벗어서 허리에 메고 사비문을 지나 산성의 고불꼬불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조금 올라 갔을까? 한 아저씨게서 우리를 맞아 주셨다. 우리는 그분께 그 곳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았던 터라 많은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아저씨께서 해주신 부소산성에 대한 설명과 백제의 세 충신들과 의자왕에 대한 이야기는 백제 역사에 대한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이 곳 부소산성은 평상시는 궁궐의 후원으로 유사시엔 왕궁을 방어하는 최후의 성곽이었으며 머리띠식(테뫼식)과 포곡식이 함께있는 2,500m의 복합식 산성이다...... 성충은 백제 의자왕(재위 641∼660) 때 충신으로.. 좌평으로 있으면서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다 옥중에서 단식을 하다 죽고 흥수는 백제 의자왕 20년(660) 나당연합군이 공격해 오자...탄현을 지키라고 의자왕에게 간곡하게 당부, 탄현을 지키다. 대신들의 반대로 지키지 못하고 유배되어 죽게되며, 계백은 나당연합군이 공격해 오자 결사대 5,000여명을 뽑아 지금의 연산인 황산에서 싸우다 전사했다.의자왕에 대한 이야기는 삼천궁녀를 거느리며 향락에 빠진 이야기가 가장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우리는 삼충사 앞에서 이야기를 듣고 시간에 쫒기며 반월루, 궁녀사, 사자루를 거쳐 낙화암에 이르렀다. 중간에 땀을 식히기 위해 수돗가에 들렀지만 맛이 이상해서 목을 축이진 못하고 세수를 하는데 그쳤다. 낙화암에 도착한 우리는 절경에 빠져 잠깐의 휴식을 가진 후 낙화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촬영을 끝으로 아쉬운 맘을 달래며 차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M.T의 남은 일정대로 움직였다.M.T 에서 돌아온 다음 부소산성 기행을 떠올리며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얼마지않아 난 인터넷의 방대한 정보량을 통감하게 되었다. 너무 많은 정보로 어떠한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 알기도 힘겨웠다. 그렇게 찾아본 정보를 토대로 나 나름대로 백제의 마지막왕 의자왕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백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왕과 귀족들이 치열하게 맞섰던 나라이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흔히 옛날의 왕이라고 하면 "짐은 곧 나라이니라."라고 말한 루이 14세 같은 인간처럼 어마어마한 권력의 왕을 생각하기 일수인데 실제론 그렇지 않다. 의자왕은 자신의 아버지인 무왕이 왕권을 강화한 것처럼 더욱 강화시켜서 신라와 싸워나갔고 한다. 이는 삼국사기에도 보면 나오는데 신라와 싸울때 의자왕은 찔끔찔끔 땅을 점령해 가는 것이 아니라 몇십개씩 한번에 대전쟁을 하여서 성을 뺐는 것으로 나와있다. 삼국사기에 보면 몇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의자왕은 해동증자라고 불린 분이며 그만한 업적을 남기신 분이다. 그런데 그분이 갑자기 후반에 들어서 술과 여자에 빠진다라... 어찌보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백제가 망한 이유는 왕권강화에 반대한 귀족들의 반목과 배신에 있다. 그것이 의자왕을 패망의 군주로 몰아넣은 것이다. 의자왕이 술과 여자와 파묻혔다고 하는데 이는 진사왕과 같은 경우로 해석할 수 있다. 백제의 16대왕인 진사왕은 조카인 아신왕에게 밀려 권력을 잃게 된다. 그 뒤의 생활을 기록에서는 사냥이나 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래서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 할 때 왕은 한가로이 사냥이나 즐기는 어리석은 군주로서 그 모습이 나온다. 의자왕도 같은 이치인 것이다. 의자왕 또한 왕위에서 밀려난 후 술과 여자에 파묻힌 폐인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엄연히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문/어학| 2005.06.08| 2페이지| 1,000원| 조회(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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