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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유산] 경복궁 창덕궁
    < 서 론 >들어가기에 앞서……궁궐에 대한 간략한 개관1. "궁궐은 과거 임금님이 살았던 곳?"서울에는 이른바 5대 고궁이 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덕소궁)이 바로 5대 고궁이라 불리 운다. 평소 이들을 이야기할 때 궁궐과 고궁 중 어떤 말을 써야 할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궁궐이라 하기에는 동화 속에 나오는 먼 옛날이야기가 연상되고, 고궁이라 하기에는 죽어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현재도 정치, 행정기능이 살아있는 일본의 황궁, 영국의 버킹엄궁은 고궁이라 하지 않기에....)그렇다면 궁궐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궁(宮)과 궐(闕)의 합성어라 이야기 할 수 있다.임금과 신하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하는 청사가 집합된 지역을 외전(外殿), 즉 궐(闕)이라하고, 임금과 그 가족, 권속들이 살림하는 구역을 내전(內殿), 즉 궁(宮)이라 한다. 쉽게 이야기해서, 지금의 정부종합청사나, 요즘 화제가 되는 행정수도와 같은 지역을 궐(闕)이라 할 수 있고, 지금의 청와대쯤이 궁이라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2. "서울의 궁궐이 왜 5개 일까?"앞서 말한 고궁이 왜 다섯이나 생겼을까? 실로 서울에는 5대 궁궐 이외에도 여러 다른 궁(宮)이 있었다. 별궁, 행궁이 이것이다. 왕은 무슨 욕심이 많아서 그렇게 많은 궁을필요로 했을까? 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법궁, 이궁 (양궐 조선왕조의 국왕들이 법궁과 이궁 두 궁궐을 유지한 경영내지 이용방식을 양궐체계라 이름을 붙일 수 있겠다. 법굴이라 함은 왕이 사는 것을 말하는데, 왕이 실로 들어가서 사는 공식적 궁궐들 가운데 으뜸이 되는 궁궐을 법궁이라 하였다. 이와 더불어 국왕이 정상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즉 화재나 뜻하지 않은 변고가 생겼을 때, 또는 왕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옮기고 싶을 때, 옮겨가서 상단기간 머물며 활동한 공간이 필요하였다. 이를 위해 이궁이 필요했던 것이다.따라서 정치적 격변, 전란등으로 국왕이 거처가 바뀌기도 하였으며, 궁궐을 새로 짓기도 하였다. 이러이 있어 근정문의 동각루(東角樓)와 연결되어 서루(西樓) 3칸(상하층의 다락집)이 되었다.서쪽에도 같은 규모의 행랑이 만들어져 서각루(西角樓)에 이르며 여기에서 남행랑이 구성되는데, 그 중앙에는 근정문 3칸이 설치되고 근정문 좌우행랑 각 11칸이 남행랑이 되었다. 또 동서 각루 각 2칸씩이 배치되었으며, 근정문 남쪽에 3칸의 오문(午門)이 있고, 좌우의 각 17칸의 행랑, 수각(水閣) 3칸, 그 남쪽에 명당수가 서쪽에서 동으로 흐르고 있으며 돌다리가 있었다.오문 좌우의 행랑은 동서로 꺾이어 근정전 남행랑에 연결되었으며, 그 규모는 각 17칸씩이고 동서 각루가 2칸, 행랑에 각각 일화문(日華門:東門)과 월화문(月華門:西門)이 열려 있다. 근정전 북쪽에 임금이 평상시 집무하는 보평청(報平廳)이 있어 이곳을 시사지소(視事支所)라 하는데, 그 규모는 5칸이다. 동서에 이방(耳房)이 각 1칸씩 딸렸고, 남천랑(南穿廊) 7칸, 동천랑 15칸, 서행랑 5칸, 동행랑 15칸이 윤곽에 설치되었다.왕의 침전은 강녕전(康寧殿)이며 이 구역은 보평청 북쪽에 구획되었다. 강녕전은 7칸, 동서의 이방(耳房)이 각 2칸씩, 북천랑 7칸, 북행랑 25칸, 그 동쪽 귀퉁이에는 3칸이 계속 되고 서쪽에도 이와 같은 3칸이 있으며 남천랑 5칸이 구조되어 있었다. 강녕전 남쪽에 3칸의 연생전(延生殿)과 강녕전 남천랑에 이어지는 천랑 7칸과 동행랑에 이어지는 천랑 5칸이 있고, 또 이웃에 경성전(慶成殿) 3칸과 그 둘레의 천랑 7칸과 5칸이 이어져 있었다.그 밖에 등촉인자방(燈燭引者房) ·상의원(尙衣院) ·양전사(兩殿司) ·옹방(甕房) ·상서사(尙書司) ·승지방(承旨房) ·내시다방(內侍茶房) ·경흥부(敬興府) ·중추원(中樞院) ·삼군부(三軍府) 등의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④ 무엇을 ??(1) 광화문경복궁의 정문(正門)이자, 국권(國權)이 드나드는 왕권의 상징성을 갖는 문이기도 하다. 창건초기에는 오문(午門)??이라 칭하다가 세종 조에 이르러 동서남북 4방위의 문들이 각각 이름이 붙여 져 오문(남문건이 벌어지고, 왕이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주인을 잃은 빈 궁궐이 되었다. 1910년 국권을 잃게 되자 일본인들은 건물을 헐고, 근정전 앞에 총독부 청사를 짓는 등의 파괴행위로 궁의 옛 모습을 거의 잃게 되었다. 광복이후 궁궐 안에 남아있는 주요건물은 근정문·근정전·사정전·천추전·수정전·자경전·경회루·재수합·함화당·향원정·집옥재 등이 있다.비록 궁궐 안 대부분의 건물들이 없어지기는 하였지만, 정전·누각 등의 주요 건물들이 남아있고 처음 지어진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조선의 정궁의 모습을 대체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2) 창덕궁창덕궁(昌德宮)은 1405년(태종 5년)에 정궁(正宮)인 경복궁(景福宮)의 이궁(離宮)으로 창건된 궁궐이다. 세종(世宗) 때 집현전과 장서각 등을 세웠고, 1459년 세조(世祖)가 옮겨오면서 규모를 15만여평까지 넓혔다. 1592년에는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불에 타버렸는데, 1606년(宣祖 39년)에 복구하기 시작하여 1610년(光海君 2년)에 끝마쳤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화재와① 누가, 언제 ??정변이 있어서, 1623년 인조반정으로 궁궐일부가 소실되었고, 1803년에는 인정전이 전소되어 그 다음 해에 다시 지었으며, 1917년에는 대조전과 희정당을 비롯한 여러 내전(內殿)이 불에 타는 등 피해가 컸다. 그러나 창덕궁은 조선시대 궁궐건축의 명맥을 이어온 유일한 궁이며, 광해군 이후 고종까지 13대에 걸쳐 258년간 본궁으로 쓰였던 곳으로서, 경복궁보다도 더욱 궁궐다운 궁궐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모든 넓이는 135,212평이고 궁궐 건물 13동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으며, 나머지는 복원공사중이다.창덕궁은 태종 4년 10월부터 시작하여 태종 5년(1405) 10월까지 1년간의 공사 끝에 이궁(離宮)으로 창건되었다. 궁명(宮名)은 창덕(昌德)이며 정전(正殿)은 인정전(仁政殿)이다. 태종 11년에 진선문과 금천교를 짓고, 태종 12년(1412)에 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세웠다. 세조가 즉위하면서 인정전을 다이자, 어차고의 서측편에 위치한다. 북측으로는 인정문 좌월랑과 담장으로 연결시켰고, 남측으로는 인정전 외행각의 동행각과 연결하였다. 그러나 숙장문과 함(5) 인정문 (보물 제813호)임금이 만조백관과 조회를 하려면 인정전에 모인다. 인정문을 들어서야 참예할 수 있다. 인정문은 인정전을 에워싼 행각의 대문으로 남쪽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나지막한 댓돌에 설치한 돌층층다리를 올라서면 좌,우,중앙 3간문을 들어서게 된다.다른 곳의 대문과는 그 구조와 장식이 다르다. 원래의 모습에서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행각(行閣)은 전시장으로 쓰던 것을 개조하여 복원하였다. 태종 5년에 창건한 것이나 임진왜란을 겪고 복구되었다가 인조반정 때 손상을 입었다. 영조 20년(1744)에 불에 탔는데, 이듬해 곧 중건되었다. 순조 3년 인정전이 불에 타 이듬해 재건되는데, 이때 인정문의 보수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6) 인정전 (국보 제225호)임금이 높이 앉아 내려다볼 수 있도록 어좌를 중앙에 두고 여러 가지 장엄을 베풀면서 권위있게 지은 법전이 각 궁궐마다 있다. 인정전은 창덕궁의 법전으로 궁궐의 배설로는 외전의 중심이 된다. 외전은 보통 내전의 남쪽에 있어 중요한 전각들을 자오선을 주축으로 하는 선상에서 좌향시키기 마련인데, 창덕궁은 경복궁에서와 같은 규범에서 벗어났다. 이궁이란 점을 강조하면서 지형에 따라 적절히 배설하는 방도를 강구한 것이다. 건물형태는 이중의 월대 위에 중층으로 세워진 집인데, 들어가 보면 아래 위층이 트여 있다. 20칸 크기의 다포계 공포양식을 지닌 전각으로, 조선조 말기의 양식을 보여준다. 전각안 천정 중앙에는 봉황 한쌍이 장식되어 있고, 북측 중앙에 닫집으로 장엄된 용상(어좌)이 설치되어 있다.(7) 선정전 (보물 제814호)보통 때 임금이 신료들과 만나 정사를 의논하는 곳을 편전이라 부르는데, 이 전각이 창덕궁의 편전이다. 건물 중앙에 임금이 일월오악병(日月五嶽屛)을 배경으로 앉고, 그 앞에 대소신료들이 위계에 따라 동서로 벌려 앉았다. 동쪽엔 문관이, 다래를 따먹기 위해 이곳으로 옮겨 심은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래나무는 낙엽이 지는 덩굴식물이나, 이 나무처럼 줄기의 둘레가 70cm나 되는 것은 깊은 산속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창덕궁 후원은 앵두나무, 살구나무, 밤나무, 감나무, 배나무, 산딸기나무, 다래나무 등이 심어져서 과수원의 기능도 하였던 것이다.④ 어떻게 ??창덕궁의 공간구성은 고대 궁궐 제도의 규범으로 전해지는 에 따른 공간구성의 기본적인 원칙과는 크게 다르다. 주어진 지형지세를 활용한 자유로운 공간 구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주변 경관과 조화를 중시하여 한국적인 궁궐의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례의 궁궐제도는 어디까지나 규범일 뿐 이를 활용도에 맞게 창의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창덕궁은 응봉 비좁은 곳에 자리를 잡았고 그 지세가 평탄하지 않았다. 따라서 건물의 배치가 자유롭고 지형조건을 최대한 이용하여 건물들이 위치하고 있다. 건물이 남북방향으로 배치되었던 경복궁과는 달리 건물들이 동북방향으로 옆으로 놓였다.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은 서남 모서리에 있고 법전인 인정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문을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길을 꺾고 금천교를 건넌 후 다시 왼쪽으로 꺾어야한다. 편전인 선정전은 인정전의 동쪽에 있으며, 침전인 희정당과 대조전은 다시 편전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창덕궁의 후원은 궁궐의 북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창덕궁의 동쪽으로는 창경궁이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창덕궁의 공간 구성은 자연의 지세를 최대한 활용했던 고려궁궐의 기본배치를 충실히 계승하고, 고려시대 이래 관습적으로 이어오던 궁중 생활의 편의를 도모한 것으로 보인다.창덕궁 침전 동쪽에는 성정각과 승화루가 있고 낙선재 지역은 후궁들이 거처하던 곳이라 단청하지 않은 소박한 건물들이 있다. 뒤뜰의 화계나 꽃담, 괴석 등이 대단히 아름답다. 창덕궁 후원을 '비원(秘苑)'이라고도 하는데, 실록에는 금원(禁苑), 후원(後苑), 북원(北苑) 등 표현이 많다.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에는 상림(上林)이라 표현되기도 했다. 비원이란 이름은
    인문/어학| 2005.06.24| 38페이지| 2,000원| 조회(3,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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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문화유산] 종묘 답사기 평가C아쉬워요
    1. 종묘(宗廟) 가는 길에서....지난 창덕궁 답사에 이은 두 번째 답사인 만큼, 좀 더 성숙된(?)모습으로,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제 조금은 달라져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집을 나섰다. 지난 시간 수업을 통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춘 상태라 답사를 한다는 것이, 나로 하여금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더 해 주었다. 하지만 솔직히 왕의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는 조금은 고리타분한(?) 주제와, 지난 시간에 졸음과 싸우면서 보았던 비디오, 그리고 그 우울한 음악이 떠오르면서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처음 종묘를 방문하는 것이라, 지하철역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 인지 몰랐기 때문에 서둘렀다. 결국 20분전에 도착.... 9시수업도 겨우겨우 오는 나로서는 조금 오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주변을 둘러 보았다. 종묘 앞 공원에는 생각보다 노숙자가 많았다. 종묘 앞이라서 그런지 이분들이 돌아가시면 누가 제사를 지어주나 하는 측은한 마음도 들었다. 공원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동상이었다. ‘종묘 앞에 왠 동상인가?’ 하는 물음과 함께 자세히 들여 다 보니 월남 이상재 선생의 동상이었다. 어렴풋이 국사시간에 배운지식을 떠올리며, 독립운동가, 사회운동가, YMCA, 기독교라는 단편적인 기억들을 끌어내었다. 종묘 앞에 동상을 세운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우연일수도 있는데, 내가 과장해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내 지식으로서는 어떠한 답을 내리기에는 무리였지만, 종묘와 이상재 선생은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어찌됐든 나에게 있어 종묘 앞의 첫인상은 노숙자 분들과 이상재선생 동상이었다.2. 종묘(宗廟) 앞에서9시 남짓해서 선생님이 오셨고, 종묘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를 비석으로 데리고 가셨다. 정확한 명칭은 기억이 안 나지만, 마차와 수례에서 내리는 지정된 장소를 나타내주는 비석이었다. 종묘 밖에 방치(?)되어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의 설명이 없었더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비석이었다고 생각된다. 매일 아무생각 없이 지나쳤던, 학교 앞 천하대장군이 문득 떠올랐다. 이후에 정문을 통해 종묘에 들어갔다.종묘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신로였다. 수업시간에 그렇게 설명을 들어 놓고서도, 신로 한가운데 서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말았다. 보도블록에 익숙한 나로서는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표시된 길을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착오라 생각하며 멋쩍은 듯이 내려왔다.3. 망묘루(望廟樓), 공민왕신당(神堂), 향대청(香大廳)조금 위로 오른편에 위치한 작은 연못을 보았고, 이어지는 천원지방이라는 설명.....이제는 조금 익숙해지는 단어이다. 나도 모르게 문화적 지식이 늘어가고 있구나 하는 흐뭇한 마음과 함께, 연못을 지나 지도가 나와 있는 설명판을 중심으로 전반적인 종묘 지리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임금이 거주했던 망묘루에 도착했다. 이후 선생님께서 설명하신 내용 중에 흥미로웠던 점은 망묘루 옆에 위치한 공민왕 신당이었다. 지난 수업시간에 나름대로 열심히 들었다고 생각했으나, 공민왕 신당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선생님 말씀대로 조선왕을 모시는 곳에 왜 뜬금없는 공민왕 신당이 있는 것인지?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해보라고는 하셨지만, 머릿속에 멍해지면서 아무런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나온 대답 중에 하나가 왕의 정통성을 뒷받침하기 위함이라는 것과 선생님이 들려주신 종묘공사 현장에서 떨어진 공민왕의 영정이야기였다. 확실한 답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당시 태조가 바라본 공민왕은 본받고 싶었던 인물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4. 어숙실(御肅室), 판위대(版位), 전사청(典祀廳) 제정(祭井)이후에 길을 따라 올라가니 작은 건물들이 보였다. 제사를 진행하기 앞서 여러 준비를 했던 건물들이었다. 당시 임금들이 제례를 지내는 것을 꺼린 이유 중의 하나가 굉장히 엄격한 예를 갖추는데 오는 귀찮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며, 이곳에서 당시 사람들의 근엄한 얼굴들이 떠올려 보았다. 네모 판으로 부각된 판위대가 인상적이었고, 음식을 검사하는 장소를 보면서 어떠한 음식들이 올려졌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앞섰다. 지난 시간 비디오에서 설명이 나오는 것 같았으나,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던 점에 아쉬움과 후회가 들었다. 그리고 옆에 위치한 제사 때 사용했던 우물 제정을 보면서 영화 링에 나오는 우물이 떠오른 이유는 무엇인지......당시에는 좀더 세련된 모습이었을지는 모르겠으나 별 특징이 없는 우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5. 정 전 ( 正 殿 )드디어 동문을 지나 정전에 들어가게 되었다. 생각보다 꽤 크고 웅장한 느낌을 받았다. 지난번 경복궁에서 근정전을 마주보며 느낀 웅장함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주변 사람이 별로 없어서 였을까?’ ‘아님 이미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기때 오는 무의식적 감정이었을까?’ 아무튼 근정전 보다는 좀더 숙연함을 겸비한 장엄한 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일렬로 세워진 많은 문들과 함께 꽤나 잘 정비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넓고 높다란 ‘월대’라는 돋움대는 광장처럼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에 다시 왕들의 신주를 모시는 ‘신실’이 긴 폭으로 웅장하게 서 있었다. 월대는 제례자와 악공, 무녀 등 행사 참가자들의 공간이라고 하는데, 함부로 오르지 못할 것 같은장엄함과 신성함이 느껴졌다. 위에는 돌들을 자연스레 깔았지만 다소 울퉁불퉁해 보여서 가볍게 보기에는 마감 처리가 조금 미진한 듯 생각되었다. 전체적인 구조와 구도를 볼 때 빗물 잘 빠지게 하기 위함 일수도 있고, 어느 한 학생이 이야기 한 것처럼 현세의 어려운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의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특이한 것은 배수구로서, 기능적인 면보다는 제례자들의 인세에 물든 때와 찌꺼기를 이 배수구로 내 보냄으로서 깨끗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제례에 임하라는 상징적인 면이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마당, 월대, 정전 세 부분은 이승, 중간적 공간, 저승으로 공간을 암시한 듯 하며(특히 구름문양의 다리), 월대에 선 제례자들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신과 인간을 연결시키고 우주를 하나로 어우르는 역할을 했다는 자료를 떠올리며, 그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부분은 남문과 동문의 외형적 차이점이었다(빗살무니, 홍살문?). 즉 남문에는 귀신의 출입을 위한 사이사이 공간이 있었다. 일반인들이 제사 지낼 때 대문을 조금 열어 두는 것과 같은 이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정전의 서문으로 발길을 돌렸다.6. 영녕전(永寧殿)정전의 서문을 거처 나오는 길에 있어 문의 주춧돌 모양이 다른 점을 이야기 했다. 개인적으로 별로 신경을 안 썼지만,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았다. 당시 나는 여기 까지 왔는데, 사진 한 장이라도 건지자는 마음에 사진 찍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영녕전에 들어가 보니 정전보다 조금 작은 규모라는 것 이외에는 다른 점을 찾지 못했다. 굳이 차이점을 이야기 하자면 담의 높이가 조금 낮은 것 같았고 정전의 수평적, 수직적 웅장한 규모에 비해 다소 아담하고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정전의 경우 가운데 칸을 중심으로 대칭 구조였으나 영녕전의 경우 가운데 기둥을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는 설명과 함께, 두 건물 모두 양쪽으로 증축된 결과라는 수업내용과 연결 시켜 생각을 해 보았다.전반적인 종묘에 대한 느낌은 건물을 하나하나 얹은 구조물이라고 해야 할까?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직선과 온화한 곡선의 조화’, ‘정교하진 않지만 자연과 잘 융화되는 건축물과 공간’이라는 것이 조금은 이해가 갔고, 이를 바탕으로 꼭 필요한 공간만을 담고 있는 ‘담백함’이라는 것이 종묘의 가치가 아닐까 생각했다. 더불어 당시 국가 임금을 모셨던 중요한 행사장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느낀 점은 종묘의 근엄함과 웅장함의 교차라고 요약하고 싶다.
    인문/어학| 2005.06.03| 4페이지| 1,000원| 조회(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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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문화] 창덕궁 답사기 평가B괜찮아요
    ? 불길한 출발언제나 그렇듯이, 듣기 싫은 자명종 소리에 눈을 뜨며 아침부터 긴 한숨이 흘러 나왔다. 오늘은 창덕궁을 가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오늘 오후수업이 있어서, 오전 중으로 창덕궁과 경복궁을 둘러 볼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웠다. 물론 창덕궁을 간다는 것 때문에 한숨이 나오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미리 다녀왔어야 하건만, 과제니 약속이니 하며 미루다, 미루다 결국 시간에 임박해서 허둥지둥 서두르는 내 모습에 스스로 짜증이 났던 것이었다. 더구나 이번 주제에 관한 발표조여서 경복궁까지 가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의 게으름을 심하게 질타하고 있었다.'레포트는 언제 쓰고, 파워포인트는 언제 만들고, 답사보고서는 언제 쓰나?' '아~ 맞다 학생들에게 나누어줄 핸드아웃도 만들어야 하는데' '발표준비를 어떤 식으로 해야 하지?' '답사할 때 어디를 중점적으로 볼까?' 이런 잡다한 생각들이 내 머리를 맴돌았다고, 이런 고민들로 인해,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하는 모습을 보신 어머니께서 한 소리 하셨다. 요즘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냐는뀉걱정만 했지 실제 행동을 하지 않는 내 모습을 돌아 보게 되었다. 어디선가에서 들었던 고민은 행동하면서 하라는 말을 되새기며, 마음을 가볍게 먹기로 했다. 이러다간 되던 일도 안되겠다 하는 마음과 함께, 즐겁게 답사를 하기로 다짐을 하며 집을 나섰다.하지만 어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출근길이라 만원인 지하철 안에서, 답사 하기 전에 하나라도 더 보자 하는 맘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보며 안절부절 했던 것이 사실이다.? 창덕궁 앞에서결국 예상대로 9시 10에 종로3가 도착. 9시 15분에 있는 첫 관람을 들어가고자 했던 나의 계획과 차질 없이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이게 왠걸? 인터넷 지도상으로 본 지하철 종로3가역과 창덕궁까지의 거리 생각보다 길었던 것이다. 지도로 봤을 땐 분명 코 앞이었는데?서둘러서 창덕궁 앞에 도착했지만 표를 끊은 시간은 5분 지나버린 20분뀉.어떻게 안되겠냐는 물음에 매표소 아가씨는 45분에 들어가변 뿐이었다. 결국창덕궁 앞 의자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또 다시 책에 몰두했다. 도서관에서도 잘 이해가 안가던 책이었는데, 창덕궁 앞에서 읽는 다고 해서 잘 읽혀질 리가 없다.주변에 매점과 화장실을 두리번거렸다. 이것도 하나의 답사라고 말도 안 되는 자기변명을 하며뀉. 그러던 도중 몇 대의 관광버스가 내 앞에 정차하였고, 창덕궁을 보러 왔는지 많은 사람들이 차에서 내렸다. 처음엔 우리나라 사람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갔지만, 얼마 안되서 그들이 일본 사람들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만약 우리나라 아주머니들이었다면, 차에서 내리자 마자 담배를 그렇게 멋드러지게 우르르 모여서 피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들은 30분에 시작하는 일본어 관람을 위해 입장을 했다. 얼마 후 또 하나의 관광버스가 내 앞을 지나갔다. 대부분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셨다. 동요에 나오는 꼬부랑 할머니를 연상시킬정도의 안쓰러운 모습의 연로하신 분들이었다. '혹시 이분들과 함께 관람하는건 아닌가?' 하는 불안함과 함께 발걸음은 돈화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돈화문과 금천교돈화문은 창덕궁의 첫 번째 대문이었다. 임진왜란때 불타 선조때 다시 지은 건물이라는 것을 읽은 적이 있으나, 주의 깊게 관찰하지는 못하였다. 입장시간만을 기다리며 돈화문 앞에있는 시계만 쳐다본 것이 문제였다. 45분이 되자 안내원과 함께 1시간 20여분여의 관람이 시작되었다. 들어서자 마자 왼편에서는 안내판과 관련된 도색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냄새가 워낙 독해서 가이드가 금천교 앞까지 바로 안내 하였다. 역시 예상대로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한팀이 되어 관람을 시작하였다. 너무 걸음걸이들이 느리셔서 측은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가이드 말을 잘 따르지 않아서 걱정이 되었다. 어쨌든 금천교위에서부터 가이드의 설명이 들어갔다. 개략적인 내용은 금천교란 가장 큰 의미는 궁궐 안과 밖의 경계선을 짓는 역할이라고 한다. 더불어 그 아래로 물을 흐르게 하여, 악한 기운을 물로 차단한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름 짓기를와 내 천(川)을 따서 지어진 이름이라 하였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위해서인지 가이드의 차분한 설명이 친숙하고 이해하기 쉽게 느껴졌다.? 인정문과 인정전금천교를 지나 진선문을 거쳐 인정문을 향했다. 미리 읽어본 책 내용과 같이, 문들이 모두 북향이 아닌 금천교에서 한번 오른쪽으로 꺾고 다시 진선문을 지나 왼쪽으로, 즉 북으로 향하는 방식이 다른 궁궐과 다르다는 내용이 이해가 갔다. 책으로 이해하려니까 쉽게 다가오지 않은 부분들이 직접체험을 통해 쉽게 다가왔다. 진선문에서 인정전으로 가는 길은 꽤나 장엄한 느낌이었다. 곧게 뻗은 돌길 좌측에는 인정문 그리고 주위를 둘러싼 큰 외벽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은 것 같다. 마치 다른 세계로 빠져들어가는 입구란 느낌이 들었다.인정문으로 올라 인정전으로 들어섰을 때, 정렬되어 있는, 키 작은 받침돌을 볼 수 있었다. "아 이게 품계석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가이드의 동쪽에는 문관, 서쪽은 무관의 자리라는 설명과 함께 중요 행사가 행해졌던 곳이라 설명을 덧붙였다. 지붕위의 조그만한 인형이 무어냐고 질문하신 분이 계셨다. 솔직히 책을 읽어 보았지만, 나 또한 그것에 대한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조그마한 토기인형들을 잡상(雜像)이라 부른다고 하며, 서유기의 인물들과 토신들이 대부분인데 이들은 모두 살(煞)을 막아주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어쨌든 인정전에 대한 나의 인상은 조금은 미약한 인상이었다. 나라의 관료들이 모여서 조회를 하는 장소라 함은 굉장히 크고 웅장한 곳일거라 상상했기 때문이다. 영화나 TV와 같은 대중매체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영웅이나 마지막 황제에 나오는 어마어마한 궁궐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선정전인정전을 지나 선정전을 들어섰다. 선정전은 규모가 크지 않은 단층 건물이었다. 인상적인 부분은 가이드의 말처럼 지붕이 유약을 바른 청기와라고 점이었다. 하지만 날씨가 흐려서 인지 눈에 확 들어 올 정도의 푸른빛은 보기가 힘들었다. 관람이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어르신들의 걸음이 워낙 늦고,히 힘들어 보였다. 가이드가 앞으로 많은 오르막길이 있으니 힘드신 분들은 여기서 기다리는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뀉 가이드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남겠다는 분들은 한 분도 안 계셨다. 지금 못보면 평생 못본다는 한 할머니의 말에 모두가 공감하시는 듯 했다. 그분들의 불타는 의지에 반해, 레포트 한번 잘 써보자고 온 내 자신이 조금은 초라해 보였다.? 희정당 대조전인정전을 지나 임금님의 거쳤였던 희정당과 바로 뒷편의 왕비의 처소 대조전을 들어갔다.대조전을 올라기위한 계단은 다른 어느 계단 보다 높았다. 그만큼 외부의 출입을 제한한다는 의미로 생각되었다. 특이한 점은 대조전에 용마루가 없다는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예로부터 왕은 용으로 상징되어, 용(=왕)이 실제로 깃드는 곳의 위에 또 용을 올릴 수 없기 때문에 왕이나 왕비의 침전에는 용마루를 올리지 않는다는 학설이 있다고 한다. 같은 예로 경복궁의 강녕전, 창경궁의 통명전을 들수 있다는 설명을 끝으로 다음 코스로 향했다.? 부용지, 주합루, 영화당상당히 많은 오르막을 거쳐 내려 온 후에야 한껏 운치 있는 건물을 만나게 되었다. 연못 옆에 세워진 건물 바로 부용지이다. 아 진짜 저기서 식사를 하면 시가 절로 나오겠구나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 반대편에 세워진 주합루를 보았다. 무슨 건물일까? 추측하던 중에 아래는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 쓰였고, 위에는 열람실로 쓰여진 주합루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었을 법한 규장각이 바로 아래층 서고라 한다. 이와 더불어 나의 눈을 이끈 것은 해시계였다. 원래 보는 법도 모르지만 날씨가 흐려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바로 아래건물인 영화당 앞에서 10분간 휴식을 가졌다. 영화당 앞이 바로 과거 시험을 보던 자리라 한다. 지금은 많은 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주변으로 화장실과 편의시설이 있었다.? 불로문과 연경당짧은 휴식 이후 불로문을 거쳐 다음 장소로 들어갔다. 지나가면 오래산다는 불로문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이 떨어지자 마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는 한 할아여기저기서 우스개 소리를 늘어 놓으셨다. 어린아이처럼 밝게 웃으시는 할아버지를 보고, 사람마음이란 누구나 똑 같다는 생각과 함께,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하는 바람을 마음속으로 빌었다.얼마 안 있어, 도색이 되지 않은 허름한 건물이 보였다. 한 할머니께서 '저건 그냥 시골집 같네 그려'라는 말을 하셨다. 그 건물이 바로 연경당이다. 연경당은 정확히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순조라 했던 것 같다.) 한 임금이 조선의 양반생활을 경험하고자 하여 지어진 집이라고 하였다. 들어가 보니 민속촌이나 여타 다른 장소에서 볼 수 있는 대청마루와 사랑방, 안채등으로 이루어져있었다. 뒤편으로 돌아가다보니 굉장히 낮은 문이 있었다. 이 문을 고개 숙여 지날갈 때, 가이드가 옆에 있었기에 왜 문을 낮게 만들었는지 이유가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가이드는 웃으며, 정확한 정설은 없다고 한다. 다만 궁궐에 있는 낮은 문들은, 지나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낮은 자세를 취하게 하여, 임금이나 높은 사람을 만나기 전에 몸가짐을 바로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된다고 한다.? 오솔길을 지나 되돌아가는 길, 낙선재연경당을 끝으로 후원의 관람은 마지막인 듯 했다. 지도상으로 굉장히 큰 후원이었는데, 다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오솔길을 지나 가파른 산을 넘어 다시 입구 쪽으로 향하는 듯 했다. 내려가면서 가이드가 돌담에 대한 설명을 했다. 엇갈려 쌓는 것이 튼튼하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나쁜 기운을 물리 치기 위해서 란다. (도깨비와 관련해 설명을 해주었는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참을 내려 온 후에 낙선재를 들렸다가 간다고 했다. 낙선재는 마지막 덕혜공주와 그 따님께서 불과 89년에 돌아 가셨다고 한다. 따라서 당시까지 실제 거주지로 사용되었었지만, 지금은 다시 새로 전통건물에 맞게 뜯어 고쳤다고 한다. 낙선재 주변에 상당히 많은 일본인 관람객이 있다는 걸 느꼈다. 덕혜공주가 실은 일본인이었다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 "왜 나는 몰랐지?" 하는 부끄러움과 함께, 붐비는 일본인들 사이를 헤치고 건물.
    인문/어학| 2005.05.19| 5페이지| 1,000원| 조회(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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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경제| 2005.05.19| 17페이지| 1,000원| 조회(1,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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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Discussion1. Which color can be represented of Korea ? Define ‘‘Color of Korea’’ according to your own opinion.2. If you have to make an advertisement of ‘Coca-Cola’, Which race or ethnicity are you going to choose ? And why ?
    사회과학| 2005.05.19| 17페이지| 1,000원| 조회(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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