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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리학, 독일 영화] 영화 <엑스페리먼트> 감상문
    , 충격적 심리 실험잘못된 심리학 실험에 관한 혼돈을 보여주는 독일 영화로 상황이 사람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실험을 통해 인간의 간사함을 꼬집는다. 는 독일에서 2001년 최고의 영화로 뽑혔고 몬트리올 국제 영화제에서도 감독상을 받는 등 독일 내외에서 많은 호평을 받은 스릴러물이다. 그리고 내가 심리학 레포트 주제를 듣자마자 생각났던 영화이기도 하다.인간은 사악한 존재일까? 한줌의 실마리와 세뇌를 주기만 하면 그 상황에 도취되어 이성을 잃어버리는 약한 존재일까? 는 그렇다고 답한다. 심리학의 권위, Dr. 톤은 인간의 본성을 파헤치기 위한 충격적 심리 실험을 위해 신문광고를 통해 참가자를 모집한다. 그리고 14일간 이들을 고립시키기 위한 거대한 미로 같은 지하 임시감옥을 셋팅한다. 연구자들은 감옥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실험자들의 모습을 감시할 것이다. 이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절대 연구자의 개입은 없다. 오직 실험실의 생쥐처럼 이들을 관찰하고 기록할 뿐이다. 이름대신 번호표를 달고 고개를 숙인 채 일렬로 걸어가는 죄수들과 곤봉을 차고 이들을 통제하는 간수들. 엄격한 심리테스트를 걸쳐 선발된 20명의 표본들 - 전직기자인 택시운전자 타렉, 7년간 한 번도 지각을 해 본적이 없는 항공사 직원 베루스, 엘비스 모창가수 등. 이들은 12명의 죄수와 8명의 간수로 나뉘어 14일간의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 사회에서 무슨 일을 했건 평등한 지원자 20명은 12명의 죄수와 8명의 간수로 나뉜다. 개인의 지적, 육체적 능력은 상관없다. 단지 누구는 죄수이고, 누구는 간수일 뿐이다. 간수복을 입은 이들과 죄수복을 입은 이들은 복장만 다를 뿐 동등한 피실험자이다. 각자의 감방에 들어가 창살이 닫힌 뒤에도, 감옥은 현실이 아니라 일종의 게임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모두가 평등하다고.하지만 명령을 내리고 누군가 불복하고, 다시 그 명령을 따르게 하기 위해서 ‘폭력’을 사용하는 순간 그들의 위계는 철저하게 가려진다. 피험자들은 일단 실험실에 들어서입는 것까지. 간수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반대로 선글라스와 제복, 곤봉 등을 지급받는다. 실험은 단순하게 시작한다. 소화가 안 돼 우유를 마실 수 없다는 죄수와 음식을 남길 수 없다는 규칙이 충돌한다. 타렉이 대신 우유를 마시고 승리를 거둔다. 수모를 당한 간수는 다시 돌아와 타렉에게 팔굽혀펴기를 시키고, 역전을 한다. 다음날 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이번에는 모든 죄수가 함께 팔굽혀펴기를 한다. 집단적으로 저항을 한 것이다. 자신들의 명령이 무시당한다는 것을 느낀 간수들 역시 하나로 뭉친다. 그리고 ‘통치’에는 모멸감을 주는 것이 가장 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죄수’의 옷을 벗기고, 침대를 뺏는다. 다음날 타렉이 다시 도발을 하자, 이번에는 한밤중에 타렉을 납치하여 머리를 밀어버린다.는 좁은 공간, 모든 것이 감시되는 감옥 안에서 상황이 벌어진다. 모든 것이 서로 노출되고, 연구자들이 다시 카메라로 감시함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통제불능으로만 흘러간다. 아니 통제를 위하여, 스스로 통제를 벗어난다. 단지 간수의 옷을 입었다는 것만으로 그들의 인격이 바뀐다. 바뀌지 않으면 견뎌날 수 없다. 간수들의 폭력에 반대하던 간수는 오히려 따돌림을 받고, 폭력의 희생양이 되어 감방에 갇힌다. 그 상황은 누구도 제어할 수 없다. 묘한 것은, 그들의 인격이 점차 희미해진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기사를 쓰기 위해 끊임없이 도발을 감행하던 타렉 역시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고는 표정을 잃어버린다. 죄수복을 입은 그들은 단지 77번, 혹은 69번일 뿐이다. 죄수들은 간수들에게 철저하게 굴복한다. 간수들은 자신의 제복에만 권위를 부여하고 인격을 버린다. 타인을 굴복시키는 일처럼 황홀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간수들은 마침내 연구소를 장악하고‘무력독재’를 완성한다.TV에서 활동하다가 로 데뷔한 감독 올리버 히르쉬비겔은 정말 집요하다. 농담을 하며 감옥으로 들어가던 사람들이, 침묵에 빠져드는 죄수로 전락하는 과정을 차갑게, 어떤 부연도 없이 정면으로 카메라를 들이댄다. 타렉의 머리가 깎이고 하지켜보기가 힘겨워진다. 는 직설적이다. 끈질기고 악착같다. 숨이 막힌다. 관객 모두에게 가장 지독한 상황의 목격자가 되기를 강요한다. 그런 점에서 는 성공했다. 단 한번도 눈을 돌리지 않고, 정공법으로 인간이란 존재의‘본질’을 파고들면서 관객의 호흡곤란을 일으킨다. 슬쩍 엿본 광경이 너무나 소름끼쳐서 숨소리가 저 너머로 들릴까 두려워하듯.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타렉과 간수인 베루스다. 7년간 단 한번도 회사에 지각한 적이 없을 정도로 규율을 잘 지키던 베루스는 지배자가 된 순간 모든 이성을 잃어버린다. 아니 잃어버린 것은 인간성이고 지나칠 정도로 합리적이 된다. 그가 원하는 것은 효과적이고 일사불란한 통제이고 방법은 폭력이다. 본보기로 한 사람을 괴롭히고 한 사람의 잘못을 이유로 전체에게 물리적 위협을 가한다. 만약 그가 정상적인 사회제도 안에 있었다면 아주 양순하고 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잔인한 독재자가 된 것은 감옥이라는 ‘환경’ 때문일까, 아니면 인간의 본성 그 자체 때문일까. 타렉의 도발과 저항은 처음에는 직업의식이었고 나중에는 일종의 본능적인 생존의식이다. 혹시 타렉이 간수의 입장이었다면 그 역시 베루스처럼 변하고 그 경험을 기사로 쓰지 않았을까. 는 그 누구도 결코 이 지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진실을 던져준다.극한에 몰린 인간 실험. 자유의지는 과연 환경을 이길까? 는 실화에 기초한 영화다. 1971년 스탠퍼드에서는 필립 짐바르도 박사의 지휘 아래 감옥 시뮬레이션을 실험했다. ‘환경변화에 따른 심리변화 실험’이란 주제로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 인간은 극한 환경을 선한 의지로 이겨낼 수 있는 존재인가’라는 인간 본성에 관한 의문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려는 것이었다. 거대한 가상 감옥을 만들고, 에서 묘사된 것처럼 신문광고를 통해 참가자를 모집했다. 역시 2주일 예정이었지만 실험은 5일 만에 끝나버렸다. 그 상황은 에 그려진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당시 한 참가자는 “감옥에 있으면서 이것은 단지 실험이졌다. 그곳에서 나올 때 나는 416번 숫자 그 자체였을 뿐이다”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당시 이 실험은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었고, SPE(스탠퍼드 감옥 실험)라는 이름의 록밴드가 나오기도 했다.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성’을 찾는 ‘실험’은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다. 몇년 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국의 TV쇼 는 정글이나 오지에서 사람들이 협조하고 또 경쟁하면서 서로를 탈락시키는 프로그램이었다. 처음에는 팀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팀 내에서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팀에서 누군가를 탈락시킬 때에는 냉혹해진다. 처음에는 팀에 도움이 안 되는 ‘약한’ 사람을, 그 다음에는 너무 강해서 각자에게 위협이 되는 ‘강한’ 사람을 탈락시킨다. 때로는 그룹별로 갈려 상대방을 말살시키기도 한다. 만약 그들에게 권력이 주어진다면 그들 역시 의 간수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폭력에 물들고 스스로 자신의 인간성을 말살시켜버리는 어쩌면 인간의 본능이라할 야만적인 행동을. 와 의 차이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폭력을 용인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있다. 간수들에게는 최소한의 폭력이 인정된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 죄수들을 제어하기 위한 폭력이 용인된다. 하지만 한번 시작된 폭력은 멈출 줄 모른다. 끊임없이 강해지는 폭력은 주고받기를 거듭하다가 광기로 폭발한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를 보는 것과도 같다. 이성으로 만들어진, 사회제도가 언제나 인간의 광기와 폭력으로 허물어지고 끝내 체제 자체가 무너져내리는 상황들.를 보고 나면 인간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 의심하게 된다. 철저히 파괴되는 인간성을 들여다 보며 내가 간수라면...? 내가 만약 죄수라면... 이라는 말을 되내이게 된다. 인간은 통제력이 주어져야만 하는 것일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의심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나찌가 만든 지클론 개스(유태인 학살전용 깨쓰)의 보턴을 누른 사람들은 평범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다. 인간은 시스템에 따라서 행동한다. 자유의지나 악마적 행위나 인간 존재 자체에서 악' 역시 결코 둘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통찰하게 하는 영화이다.*참고*197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 대학에서 시도되었던 감옥 실험 당시의 상황을 실험을 주도했던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기록에 기초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어느 날 우연히 지역신문의 한 귀퉁이에 난 작은 광고를 보게 된 것이 그 ‘악몽’의 시작이었다. 감옥과 비슷한 환경에서 일반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에 대한 2주간의 실험에 참여할 아르바이트생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하루에 15달러라는 나쁘지 않은 보수와 색다른 경험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지원한 나는, 연구진들의 각종 테스트와 인터뷰를 통과해 최종적으로 선발되었다.그렇게 선발된 나와 다른 23명의 학생들은 동전을 던져 실험기간 중에 간수 역할을 할 12명과 죄수 역할을 할 12명을 뽑고는 곧 연락이 갈 것이라는 말만 듣고 일단 헤어졌다. 그런데 그 며칠 뒤 일요일 아침, 갑자기 경찰이 집에 들어와 무장강도 혐의로 나를 체포하는 것이 아닌가? 수갑이 채워진 채 경찰서로 끌려간 나에게 경찰은 지문날인을 시키고 사진까지 찍었다. 그리고 다시 눈이 가려져 어디론가로 데리고 갔다. 물론 그것이 감옥 실험의 시작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겁에 질려 있던 나는 그때까지 단 한마디의 저항도 하지 못했다.그렇게 도착한 감옥에서의 경험은 처음부터 아주 불쾌했다. 간수들은 내 옷을 다 벗기고 이상한 약품 같은 것을 몸에 뿌렸고, 속옷 없이 커다란 드레스처럼 생긴 죄수복을 입게 하고, 발에 쇠사슬까지 강제로 차게 만들었다. 그것은 잡지에서 언뜻 보았던 실제 감옥의 상황과 아주 비슷했기 때문에, 나는 그때까지 그것이 실험의 일부인지 아니면 실제 상황인지에 대해 전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내가 그것이 실험의 시작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간수들이 머리에 스타킹을 씌울 때였다. 헤어스타일을 통해 개성을 드러내고 차별화를 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직접 머리를 깎지 못하니 스타킹을 이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있었다.
    독후감/창작| 2003.11.10| 5페이지| 1,000원| 조회(1,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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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 사실주의] 테오도르 슈토름 평가A+최고예요
    테오도르 슈토름(Theodor Storm, 1817∼1888)인문과학대학 국어국문학과 안은경《작가 연보》1817년 법률 고문관과 변호사를 지낸 아버지 요한 카지미르 슈토름과 어머니 루치엔 볼트젠 사이의 장남으로 슐레스비히의 후줌에서 출생1837년 킬 대학 진학, 법학 공부. 10살 연하의 베르타 폰 부한과의 불행한 첫사랑 체험1838년 베를린 대학으로 옮김1839년 다시 킬 대학으로 옮겨 와 학업을 계속함. 테오도르 몸젠(Theodor Mommsen)과 티효 몸젠(Tycho Mommsen) 형제를 사귀면서 창작에 대한 자극을 받아 시를 집필하기 시작,「세 친구의 가곡집(Lieder dreier Freunde,1843)」을 펴냄1843년 학업을 끝내고 후줌으로 돌아와 변호사가 됨1844년 제게베르크 시장 딸이자 사촌 누이인 콘스탄체 에스마르히(Constanze Esmarch)와 약혼1846년 결혼. 슈토름을 사랑한 그의 가정에 동거하게 된 도로테아 옌젠(Dorothea Jensen)도 있었으나 그녀 때문에 가정에 불화가 일자 가정의 평화를 위해 그녀를 집에서 내보냄1848년 민중 봉기에 가담, 덴마크 지배에서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을 독립시키기 위해 투쟁. 정치시와 애국시를 집필하고 신문에 기고하는 저널리스트로 활동1852년 덴마크로부터 변호사 직을 박탈당함1853년 프로이센으로 망명하여 12년간의 망명 생활. 포츠담으로 가 프로이센 법원의 검사 시보로 일함. 포츠담 망명 시절에 쓰여진 노벨레 「임멘 호수(Immensee, 1852)」가 대성공을 거두었음. 문학 단체인 과 에 가담해 다수의 문인들과 접촉을 가짐1856년 하일리겐슈타트(Heiligenstadt)로 옮겨 법원 판사로 일함.「저택에서(Auf dem Staatshof,1858)」, 「성에서(Im Schloβ,1862)」, 「대학에서(Auf der Universitat, 1863)」가 창작됨1864년 고향이 덴마크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자 12년간의 망명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와 지사(知事)로 취임. 유명발하게 편지를 교환1867년 비스마르크 통일 정책의 일환으로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이 프로이센에 합병되자 후줌에서 지방 법원 판사로 일함1880년 프로이센의 합병에 대한 불만과 법원에 가해지는 행정 조치 등에 반발하여 63세로 조기 퇴직. 후줌 근처에 있는 하데마르셴(Hademarschen)으로 거처를 옮김1886년 맏아들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1888년 오랫동안 위암으로 고생하다 하데마르셴에서 사망《작품 세계》슈토름은 서정 시인이자 노벨레 작가로서 고향 후줌(Husum)과 연관된 향토적인 소재를 주로 다루었다. 그는 아이헨도르프, 하이네, 뫼리케를 계승하여 가곡풍의 체험 서정시를 창작하였다. 고향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애수에 젖은 어조로 읊고 있는 그의 시는 목가적인 삶이 허물어지고 있음을 개탄하거나 아니면 목가적인 삶을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사로 서술하면서 좋았던 옛 시절에 대한 회상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그의 시에는 풍경화와 같은 평화로운 모습과 목가적 삶을 위협받아 긴장하고 있는 인간 모습이 함께 등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들에는 항상 북해에 면해 있는 잿빛 도시가 등장하는데 이 잿빛 도시는 오솔길과 숲과 목장이 어우러져 있는 전원적인 시골 풍경을 나타낸다.) 이러한 한가로운 고향 생활과 고향 풍경, 그리고 가족을 주제로 다루는 슈토름의 작품들을 폰타네는 지방 색채를 띠는 너무 협소한 소재라고 생각했다. 슈토름은 프로이셴(Hermione von Preuschen)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신의 소재 선택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유를 밝히고 있다. “나는 내부로 깊이 파고들기 위해 외적으로 협소한 것을 필요로 합니다. Ich bedarf auβerlich der Enge, um innerlich ins Weite zu gehen.“(1881년 9월 21일자)그는 자신이 몸담고 살았던 협소한 고향의 친숙한 주변 환경을 소재로 삼아 소박하면서도 적절한 상징을 활용하여 만인이 공감할 수 있는 체험의 세계로 가공하였다. 이러한 독특한 창작 기법으로 그는 가곡풍의 민중 사안으로 표현하여야 한다.”는 것과 “모든 시구는 시인의 감정이나 환상에서 유래하여야 하지만 단순한 언급의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과 “모든 서정시는 고상한 의미를 담고 있는 즉흥시여야 한다.”는 것 등이다. 폰타네는 슈토름을 가리켜 괴테 이후에 나타난 가장 훌륭한 서정 시인으로 그와 필적할 만한 서정 시인은 서너 명에 불과하다고 하였으며, 토마스 만은 그의 시를 “진주 알 같은 서정시”라고 극찬하였다.그가 창작한 노벨레들의 소재 역시 서정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원적이고 향토적인 것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어린 시절의 고향집과 고향 산천에 대한 회상과 청순한 사랑의 추억들 같은 주제들이 연대기적으로 서술되며 주마등처럼 나열된다. 슈토름이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 잔치나 교양을 함양하기 위해 마련된 독서의 밤이나 함께 노래를 부르는 합창단 모임 등을 작품에 즐겨 삽입하고 있는 것은 협소한 고향에서 영위되고 있는 평온한 삶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소망에서 기인하고 있다. 또한 실용화되었으나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에서 조화로운 인간 모습을 상실하지 않으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그가 소망하는 이러한 조화로운 인간상은 당시로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간주되었으나 그는 이러한 인간상을 유지시키기 위해 인간상 상실에 대한 위험이나 인간상 상실 그 자체를 형상화하였다.《슈토름의 노벨레 이론》“나의 노벨레 작법은 서정시로부터 생겨났다.”고 할 정도로 그의 노벨레의 소재와 정조는 서정시와 유사점을 지니며 서정성이 서사적인 줄거리를 뒤덮고 있다. 슈토름의 노벨레는 크게 나누어 2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현실 폭로 노벨레(Desillusionsnovelle)와 연대기 노벨레(Chroniknovelle)이다.슈토름은 등장 인물과 그의 주변 세계를 사회와 밀착시켜 사회 심리학적으로 상세하게 서술하면서 등장 인물의 인도적 인간상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러한 서술 기법에 의해 창작된 노벨레를 현실 폭로 노벨레라고 하며 「들녘 마을 밖에서(Drauβen in der 벨레라고 한다. 문화와 역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곁들이면서 교회의 독선적 영혼 지도를 비난하고 반봉건적 태도를 나타내 보이는 노벨레「레나테(Renate, 1878)」, 「후견인 카르스텐(Carsten Curator,1878)」, 「백마의 기수」등은 연대기 노벨레에 속한다.슈토름은 노벨레가 드라마와 같은 엄격한 형식과 갈등 구조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노벨레는 이전처럼 진기한 사건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끌거나 사건의 급변을 통해 사람을 놀라게 하는 한계지워진 그러한 서술이 아니다. 오늘날의 노벨레는 드라마의 자매이며 산문 문학에서 가장 엄격한 형식을 지닌 영역이다. 노벨레는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삶의 가장 심오한 문제들을 다룬다. 노벨레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드라마에서와 마찬가지로 중심부에 놓인 갈등이 필요하며 이 갈등을 기초로 하여 전체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구성된다. 그 결과 모든 비본질적인 것이 제거되고 가장 완결된 형식이 나오게 된다. 노벨레는 예술 부분에서 꼭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켜 줄 뿐만 아니라 이를 요구하기도 한다.” (문학전집 서문, 1881)그의 대부분의 노벨레는 틀 구조에 의한 회상이나 고향의 풍경 묘사로 무상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의 삶을 조명하고 있으므로 그의 노벨레가 자신의 노벨레 이론에 입각하여 창작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고향과 가정에 국한된 그의 문학은 ‘피(Blut)와 땅(Boden)’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독일 국수주의자들에 의해 향토 예술(Heimatkunst)로 불려지기도 하며, 2차 대전 이후에는 시대를 초월한 자연시(Naturlyrik)와 운명 소설(Schicksalsnovelle)의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작품 소개》◎「임멘 호수(Immensee,1850)」못 이룬 사랑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작품은 개개의 장(Kapitel)이 시의 한 소절에 해당하는 한 수의 서정시와 같아서 순결한 사랑을 갈구하는 젊은 독자층으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으면서 슈토름 생전에 30판이 발행되어 나올 정도로 대성공을 거둔 절의 친구 에리히(Erich)가 선물한 카나리아가 새장에서 지저귀고 있던 일, 고향을 떠나오며 그녀에게 자기를 기다리라고 해놓고는 편지 한 장 쓰지 않았던 일, 동료 대학생들과 어울려 술집을 누비며 거지 소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었던 일, 임멘 호수를 상속 받은 에리히가 엘리자베트에게 끈질기게 청혼하여 결혼을 하고 엘리자베트가 몰래 자기를 임멘 호수로 초대했던 일, 그 곳에서 남의 아내가 되어 살고 있는 옛 애인 엘리자베트를 만난 일, 호수에서 수영을 하며 보았던 수련 등들을 회상하는 동안 어느덧 해는 지고 달이 중천에 걸려 있다.어릴 때부터 사랑해 온 사이지만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간 옛 애인을 회한에 넘쳐 회상하는 노인의 이야기에는 후기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에피소드가 배제되어 있다. 그의 작품에서 에피소드는 모티브를 부여하고 있기 마련인데 이 작품에서는 정취를 매개하는 장면들에 나타나는 상징물들이 모티브를 제공하고 있다.◎「대학에서(Auf der Universitat,1863)」슈토름은 사랑을 주제로 하는 이 단편 서사 작품에서 파국에 이르게 된 원인을 예리하게 파헤침으로써 사회 비판적 성향을 나타내 보인다. 즉 파국에 이르기까지 한 인간의 성격이 어떻게 변해 나가는가를 완벽하게 그리고 있다.줄거리 ▶ 이야기는 보고를 하고 있는 나(Ich)라는 인물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소시민 가정에서 가난하게 자란 아가씨가 관습의 속박에서 벗어난 멋진 생활을 꿈꾼다. 그녀는 명문가의 소녀들로부터 경멸을 당하기가 예사였으며 함께 춤을 연습할 때도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한다. 융커 출신의 대학생 조합에 관여하였을 때도 마찬가지의 경험을 하게 된다. 대학생 조합의 오만 불손한 태도는 그녀를 죽음으로 이끈다.슈토름은 이 작품에서 우월한 신분에서 생겨날 수 있는 오만한 행위에 대해 혐오를 보내면서 소시민의 정당한 삶을 옹호하고 있다. 이 작품은 정치적인 투쟁 문학의 수준에 이르고 있지는 않지만 봉건 귀족이라는 불평등한 신분과 그들의 정치 지배에 비판을 가있다.
    인문/어학| 2003.06.13| 5페이지| 1,000원| 조회(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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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여문학론] 사르트르의 참여문학론 평가B괜찮아요
    사르트르의 참여문학론본고는 문학의 타율성에 대한 제이론중 사르트르의 참여문학론에 관한 정리를 목적으로 한다. 자유에 대한 관심과 그 실천의지로 점철된 사르트르의 전생애에 걸친 활동과 지성적 편력의 과정은 각 단계에 따라 다소 다른 내용의 울림을 갖는다. 사르트르의 변모과정을 세 단계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①{存在와 無}가 발표된 1943까지의 실존주의적 이론기, ②사르트르가 문학에 환멸을 느끼게 되는 1954년까지에 이르는 문학을 통한 사회주의적 참여기({文學이란 무엇인가}은 이 시기의 저작임), ③1954년 이후 말년에 이르기까지 문학보다는 정치적 투쟁의 일선에서 주로 활약했던 무정부주의적 투쟁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따라서 그의 참여문학론의 본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상적 토대가 되었던 ①의 시기의 저작 및 초기 비평과 본고가 주목하는 {文學이란 무엇인가}가 발표되었던 ②의 시기의 변화양상에 주목해야 한다.본고에서는 위의 내용을 전제로 ①사르트르의 존재론, ②사르트르의 언어관, ③{文學이란 무엇인가}의 작가사적 의미, ④참여문학에 관하여 살펴 볼 것이다.1. 사르트르의 존재론사르트르의 인간은 "아무런 핑계 없이 홀로"인 존재이다. 따라서 그의 존재론은 철저하 개인적인 존재론이며, 이 단독자로서의 인간에게 있어 타인이란 투기에 의한 개인의 실존의 성취를 가로 막는 적대자의 모습으로 부각된다. 타인은 그의 시선을 덫으로 자아, 즉 '나'를 항상 즉자의 상태로 잡아 놓으려 한다.한 개인의 실존적 성취는 그를 즉자의 상태에 머물도록 강요하는 외부적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순수한 자유의지에 따른 실존적 투기에 의해 가능해 진다. 인간은 선험적으로 결정된 어떤 의미나 본질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그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생성의 존재인바, 이 생성의 기본적인 조건이 바로 외부적인 것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인 것이다.사르트르는 인간이 홀로이고 자유로운 이 상태를 "자유롭도록 처단당한 상태"라고도 했는데 그 이유는 그의 존재론에 있어 존재가 확고한 객관성의 세계 의미한다.인간은 자유 그 자체이지만 자유는 하나의 고정된 실체로 제공되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이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고, 이런 의미에서 자유는 인간의 투기의 지향점을 이루는 것이지만 또한 그것은 영원히 무화되는 자유이기도 하다.인간의 홀로 있음, 그 자유의 상태가 처단당한 상태인 이유는 이 같은 존재와 자유의 비확정성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이다.사르트르의 존재론은 타인을 위시한 외부세계는 곧 구속이라는 인식 위에서 요구되는 타인과 외부세계에 대한 부정의 작업과, 자유는 인간의 실존적 구성체라는 자각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의 확립이라는 작업을 동시에 요구하는 부정과 생성의 場이다. 이 같은 양극적 인식 위에서 사르트르가 두 가지 작업의 동시적 수행을 목표로 선택한 수단이 문학, 즉 언어체계의 새로운 구성이다.2. 사르트르의 언어관사르트르에게 있어 기존의 세계는 무의미하다. 혹시 그것이 객관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해도 사르트르는 그것을 거부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 외부세계에 대응하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자 한다. 그것은 언어를 통해서 만들어 진다. 그러나 나와 세계가 언어에 의해 매개되기 때문에 결국 이 새로운 세계라는 것도 결코 객관적인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 의미는 언어의 영역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사르트르의 언어관의 몇 가지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① 파롤parole적 언어새로운 가공의 세계로서의 사르트르적 언어 체계가 파롤parole의 세계라는 것이다. 언어를 필수적 매개체로 하는 이 가공의 세계는 바로 언어 자체의 불완전성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객관적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사르트르는 랑그의 사회성을 부정하고 파롤을 랑그의 대용물로 삼고자 한다.이렇게 될 때 문제가되는 것은 그 세계의 내용이나 의미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구성하느냐 하는 방식과 방법의 문제이다. 파롤에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객관적 내용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를 문학작품에 연장시킬 때 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라는 생각, 문학작품의래로 쏠리게 되지만, 미래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 즉 無이기 때문에 언어의 지시대상은 無가 되기 때문이다.결국 문제는 "말이라고 하는, 비어 있음을 통해 지시하는 이 유일한 기호를 가지고 어떻게 확고한 세계를 만들어 내느냐"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에 대해 사르트르는 "실현의 도구 l'instrument de r alisation"로 규정함으로써 답을 제시하고 있다.언어를 통하여, 언어 체계 위에 수립되는 가동의 세계는 말할 것도 없이 기존의 세계를 부정한 입장에서 세워지는 것이지만, 아직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래의 지평에 속한다. 따라서 그 세계는 미래와 마찬가지로 무이지만, 그것은 또한 기존의 세계를 거부하는 개인의 바람·願望의 세계이기도 하다. 이 같은 원망과 부재 사이의 간극을 메워주는 것이 바로 언어의 기능이라고 보았다.이에 따라 언어의 의미도 "무엇을 지시함으로써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그 비어 있음을 채움으로써 획득"되는 것이다. 행동이야 로 "언어의 척도"인 것이고, 이처럼 행동·실천과 결합된 언어는 無라는 파롤의 세계에서 행동과 실천을 통해 실현되는 랑그의 세계로 스스로 도약한다.언어는 "타자를 위한 존재 l' tre-pour-l'autrui"이 . 행동과 결합된 모든 언어 활동은 미래에 대한 약속이거니와, 그 약속이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같이 끌어 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이렇듯 나로부터 분리시켜 타인과 결합하게끔 만드는데, 사르트르는 이것을 언어의 파괴력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이 말 속에는 타인과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응집력을 내포함을 주목해야 한다.3. {文學이란 무엇인가}의 작가사적 위치{文學이란 무엇인가}는 1948년 발표 당시에도 여러 의미에서 숱한 반향을 일으켰지만 사르트르 자신에게 있어서도 큰 전환을 의미한다.첫번째 문제인 "언어를 구체화시키고 행동에 방침을 정해주는 추상적 기획이 無일 수 있느냐"에 대해 사르트르는 마르크시즘의 역사철학을 빌어 그 추상적 기획이 무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해 상동성에서 찾아보는 것이다. 너와 나의 개인간의 대타 관계 그 자체가 어떤 사회성, 어떤 이데올로기적 구조에 대한 대응적 성격을 지니는 것이라 한다면 사르트르가 보여주는 변화란 기실 초기에 철학적인 테두리에만 국한되어 있었던 그의 존재론이 사회적 의미가 확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 그 자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자유는 이미 실현된 실체가 아니라 행동과 실천에 의해 실현시켜야할 대상이다. 그 행동과 실천은 실존의 차원에서 투기의 방식으로 구체화된다. 타인은 나의 투기를 가로막아 나를 즉자의 위치, 사물의 위치에 머물게 함으로써 그러한 자유의 성취를 막아 즉자의 위치로 소외시키고 물화시킨다.이 같은 존재론적 차원에서의 즉자와 대자, 그리고 대자로의 발돋음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으로서의 실존적 투기, 그러나 그것을 가로막는 타인과 나의 관계는 자본주의적 사회 구조 속에서의 부르조아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계급투쟁의 구조와 엄밀하게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마르크시즘에 입각할 때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인간적 실현을 기대한다. 그러나 일단 노동이라는 행위가 자본주의적 구조 속에 편입되어 버릴 때 그것은 자아의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그 노동에 의해 만들어진 물건, 죽 상품과 그것의 가치에 의해 인간을 소외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인간의 의식까지도 물화시켜버림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들을 사물의 위치로 전락시킨다. 이것을 마르크스는 사용가치에서 교환가치로의 전환으로 설명하고 있거니와, 이렇게 교환가치로 전환된 노동생산물은 노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들과는 무관한 것, 그것의 소유와 사용이 가로막혀 있는 사물 그 자체, 물신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양자 모두 인간성의 실현, 그것을 통한 해방과 자유의 실현을 위해 우선 요구되는 것은 바로 그들을 사물의 위치로 소외시키는 사회구조와의 투쟁, 즉 계급투쟁의 과제로 귀결된다.4, 참여문학론1945년 {현대}지 창간 이후의 사르트르의 문학은 參與文學으로 특징지워진다. "요컨대 말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말하는 것이 곧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산문가가 말을 잘 쓰기 위해서는 전달해야 할 전언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르트르에 의하면 형식의 결정이 주제-전언의 결정에 앞서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주제가 공개된 문제라면, 산문가는 사회, 혹은 형이상학의 새 요구에 의해 새로운 언어와 수법을 찾아내야만 한다.글쓰는 것이 상황 속에 그처럼 자신을 참여-구속시키는 것이라면, 어째서 글을 쓰는 것일까? 글은 반드시 글을 쓰는 사람과 그것을 읽는 사람을 요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타자를 위한, 타자에 의한 것일 따름이다. "작자는 이와 같이 독자의 자유와 교섭하기 위하여 작품을 쓰며, 말하자면 그 작품을 존속시켜 줄 것을 독자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다. 그밖에 자기가 독자에게 준 신뢰를 독자가 자기에게도 돌려줄 것을 요구하고 독자편에서도 작자의 창조적 자유를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며, 그리고 이번에는 다시 독자측에서도 작가와 호응하는 호소를 해서 거꾸로 작자측의 자유를 환기시켜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사르트르에 의하면 작가는 글쓰기에 의해 자기로 하여금 남에게 인식되기 위해 남의 의식에 의지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세계는 독자가 그 세계를 변경하려는 경향을 가지면 가질수록 생기를 띄게 된다. 세계는 작가와 독자의 자유의 결합된 노력으로 지탱된다. 그래서 사르트르가 보기에 사실주의의 과오는 현실적인 것을 靜觀에 의해 드러낼 수 있다고 믿고 따라서 불편부당의 공평한 현실묘사가 가능하다고 믿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작가와 독자는 세계를 변형할 수 있는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 세계에 구속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글쓰기가 독자와의 결합된 노력으로 세계를 드러내고 변혁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누구를 위해서인가. 사르트르는 여기서 주제의 선택은 독자의 선택이며, 문학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나 권력에 봉사하지 않아야 한다는 관점에 의거에서 작가는 자기 동시대인을 위해 써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고 있다.
    사회과학| 2002.11.30| 6페이지| 1,000원| 조회(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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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 이데올로기 읽기 평가B괜찮아요
    1. 들어가는 글《독일 이데올로기》는 맑스와 엥겔스, 즉 마르크스주의 창건자들의 공동 저작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이다. 이 내용들은 1845년 프랑스에서 추방당한 맑스가 브뤼셀로 이주해 살던 시기에 쓰여진 것이다. 바르멘에 살던 엥겔스도 1845년 봄 브뤼셀로 가서 다음 해 가을까지 그곳에 머물면서 작업을 함께 했다. 《독일 이데올로기》는 사적 유물론을 처음으로 완성된 형태의 이론으로 끌어올린 저작이다. 그들은 우선 자신들의 비판의 화살을 독일의 헤겔학파에 내재한 관념론적 역사관에 대해 돌렸는데, 여기에는 비일관적이고 본질적으로는 형이상학적인 유물론적 견해를 지녔던 포이에르바하도 포함되어 있다. 상당한 부분이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비판으로 할애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 이는 둘 다 한때 그의 열렬한 학도였으나 그를 비판하는 것이 사적 유물론, 변증법적 유물론의 출발이 된다는 것일게다.《독일 이데올로기》에는 이전까지 두 사람이 준비해 온 모든 유물론적 개념들이 정리되고 있다. 사회 생활에 있어서 물질적 생산의 결정적인 역할이 제시되고 있으며, 생산력과 교류 형태 발전의 변증법이 최초로 제시되고 있다. 이로써 역사적 유물론의 개념이 체계화 되었으며, 역사 전체의 서술이 과학적인 일관성을 띠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의의들로 이 《독일 이데올로기》는 중요한 저작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2.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맑스는 를 통해 그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개의 번역판이 있는데, 하나는 맑스가 1845년 봄에 기록한 원문을 번역한 것이고, 두 번째 것은 엥겔스가 약간의 수정을 가하여 1888년에 최초로 출판한 것을 번역한 것이다. 이 테제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다른 과제와의 연관 하에 쓰여진 것으로, 이 책의 제 1장에 나오는 몇 가지 일반적 개념들에 대한 최초의 생각들을 보여주고 있다. 에 들어 있는 거의 모든 기본적인 생각들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더욱 발전되었다. 여기에서 맑스는 인간의 본질 에 관한 유물론적 개념을 제시한폐지를 위한 조건은 바로 종교를 발생시킨 사회적 모순들을 혁명적으로 페지시키는 일임을 주장한다.특히 11번째 테제를 보자면,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여러 가지로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시키는 일이다. 맑스는 이것을 그 앞의 10개의 테제들로부터 떼어 내어, 이 테제의 총괄적 특성을 강조하고 있다. 맑스가 본질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곧 세계란 단순히 세계에 관한 우리의 사고 방식을 바꾼다고 해서, 현존하는 것들을 이론적으로 비판한다고 해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세계를 분명히 파악해야 하며 또한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실제의 행위, 즉 물질적인 혁명적 실천으로써 세상을 변혁해야 하는 것이다. 이 테제야말로 맑스주의 이전의 모든 철학과 맑스의 철학을 근본적으로 구별짓는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창조된 이론을 혁명성과 혁명적 실천으로 연결시키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맑스는 역사적 사실과 사회적 사건들을 살펴봄으로써 실천의 중요성을 절실히 실감하고 있는 것일게다.3. 전체적인 내용(Ⅰ)책 제목이 《독일 이데올로기》인 만큼,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면서 과학적 공산주의의 철학적 원리들을 완성하는 이론 전개식으로 되어 있다. 《독일 이데올로기》는 논쟁적인 저작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세계관에 적대시되는 모든 견해들을 비판하는 내용이 신랄하게 주를 이루고 있어 그 내용에 넘치는 힘이 있으며 의미 또한 심장하다. 공격을 가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들이 비판하고 있는 견해들과 자신들의 의견을 대비시켜 이야기한다.책의 도입부를 보면 맑스는 잔인하다 싶을만큼 독일의 이데올로기에 신랄한 비판을 던지고 있다. 독일의 비판체계는 헤겔 체계에서 성장한 것이라 문제 자체내에서 이미 신비화가 자리잡고 있고, 이러한 사실이야말로 헤겔체계에 대한 비판이 불가능했다는 근거가 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비판가들은 모든 것을 종교적 영역에 집어넣어버렸고, 헤겔의 논리적 범주에 같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문구에 머무를 뿐이고 현실세계에 대해서는 어떠한 공격도 하지 못한다.그래서 맑스는 이들이 간과하고 넘어간 인간과 물질적 환경과의 관련에 대한 것을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출발점으로 삼는 전제는 현실의 개인 및 그들의 행위이며, 또한 이미 존재하는 것과 그들의 행위를 통해 산출된 것을 비롯한 그들 생활의 물질적 조건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순전히 경험적인 방법으로만 확인될수 있을 뿐이다.무엇보다도 맑스와 엥겔스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물질적 조건 그 자체의 역사적 성격, 즉 인간의 활동으로 더욱 변화를 거듭하는 성격이다. 이 조건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생산 , 즉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적극적인 관계, 영향력의 측면이며, 다른 하나는 생산관계 이다. 생산관계는 생산 활동에 있어서의 인간의 상호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며 이러한 상호 작용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생산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생산관계 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사람들이 생산 속에서 맺게 되는 교류 관계 라는 말 속에 포함된 모든 것에 우선시하는 기초적 관계를 두었다. 인간 역사의 제 1전제는 당연히 살아있는 개인들의 실존이다. 그리고 그것에 따라 주어진 자연과의 관계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활수단을 생산하는 것으로 인해 동물과 구별될 수 있고, 그 생산양식은 바로 활동방식, 즉 생활양식이자 존재양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는 것을 질문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여기서의 핵심은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것이고, 이는 인간의 역사에서 생산양식이 갖는 역할을 설명함으로써 도출되어진다. 따라서 개인의 존재양식이란 곧 생산양식이며, 분업의 발전이란 사적 소유의 발전이란 것을 말하고, 사유의 변화와 발전은 사회의 물질적 생활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생산은 인구의 증가로 인해 나타나게 되는데 거기에는 개인들이 상호 교통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생산력의 확대는 새로운 분업의 고 봉건적, 신분적 소유가 그것이다.(Ⅱ)이처럼 맑스는 활동하는 인간에서 출발하였고, 그 인간이 사고와 사고의 산물을 변화시킨다고 하였다. 의식이 삶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의식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맑스는 맑스 입장에서 본 역사와 의식의 생산을 다음부터 기술하게 된다. 맑스는 역사에 대해 역사를 만들려면 먼저 인간은 생활할수 있어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이는 물질적 생활을 생산하는 것이 최초의 역사적 행위가 된다는 말이다. 의식주에 관한 최초의 욕구가 새로운 욕구를 낳게 되고 이는 인간의 번식으로 이어지며 그것이 사회적 협업의 바탕이 된다고 밝히며, 인류역사는 산업 및 교환의 역사와 관련지어져 연구, 개작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세가지 전제이며, 이것으로부터 의식은 순수의식이 아니라 물질에 붙들려 있다고 말한다. 그 물질이란 다름아닌 언어 이며 언어가 실천적이고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 존재하는 현실적 의식이기 때문에 의식은 처음부터 하나의 사회적 산물인 것이다. 이 의식은 자기에서 타인으로, 또 자연으로 발전하게 되고 현실적인 표상이 아닌 자의적으로 무엇을 나타나게 되려면 분업의 과정을 통해야 한다. 초기의 자연스러운 분업에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화가 이루어지는 진정한 분업의 단계에서 의식이 순수한 이론으로 나아갈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활동의 분화를 통해 생산물의 향유는 생산과 전혀 무관한 계층의 몫으로 돌아가게 되고 이러한 불평등한 분배는 곧 그에따른 소유라고도 말할수 있다. 활동이 자유의지가 아닌 자연발생적으로 분배되는 한 그 분업의 힘은 개인을 구속하게 되고 일종의 폭력으로 고착된다. 이러한 구속은 현대에선 간단히 소외라고 표현되며, 공산주의라는 세계적인 혁명을 통해 지양될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실천적 유물론자, 즉 공산주의자들에게는 현존의 세계에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맑스는 이전까지 역사 무대에서 주목되어 왔던 시민사회란 것이 생산력에 의해 조건지워지는 것임이 존재하는 것이다.여기서 알 수 있는 두 가지는, 첫째, 생산제력은 개인들로부터 완전히 독립, 분리되어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생산제력을 이루는 각 개인들은 서로 적대적으로 실존하는 반면에 연계를 이룰때만이 현실적인 힘을 이룰수 있기 때문이고, 이 힘은 사적소유자인 개인의 힘으로 나타나게 된다. 노동은 자율적 활동이 아니고 개인이 자기의 실존을 위축시킬 때만 가능하게 되고, 물질생활이 목적으로, 노동이 수단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여기서 발전하는 것이 두 번째로서, 이제 개인은 자기 생존을 위해서라도 현존하는 생산력의 총체성을 자기 것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총체적 능력으로 발전하게 되고 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뿐이다. 전유란 단결과 혁명에 의해서만이 가능한데, 이 단결이라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 자신의 성격에서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이전의 사회적 지위로 인해 자기에게 있던 것을 벗어던지고, 비로소 자기실현은 물질적 생활과 합치되는 것이다. 이때 단결한 개인들은 총체적 생산력을 가지고 사적소유는 종말을 고한다.(Ⅲ)어떤 시대에서나 지배계급의 사상이 곧 그 시대의 지배적인 사상이 된다. 그 계급은 물질적인 것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지배하는 세력이라는 것이다. 이 계급은 자신의 이익에 합치되는 사상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혁명을 일으킬려는 피지배계급은 기존사회상태의 사상의 근본적인 부정을 그 목표를 삼게 된다. 그 지배계급의 사상이라는 것은 이른바 사변철학이 행해온 것들과 일치되는 것으로서, 역사에서 유물론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고 사변적인 말들을 늘어놓게 되었다. 이데올로기의 지배자들이 역사를 그들의 독단과 왜곡 속에서 파악해온 것이다.이데올로기의 현실적인 토대들을 살펴보자면, 그 토대란 교통과 생산력, 소유에 대한 국가와 법의 관계, 그리고 자연발생적, 문명적인 생산양식과 소유형태로 볼수 있다. 도시와 농촌이 분리 되면서 도시와 농촌은 대립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조차 장인과 것이다.
    인문/어학| 2001.05.15| 6페이지| 1,000원| 조회(1,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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