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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프카의 '선고' 평가B괜찮아요
    게오르그의 익사의 의미; 분열된 두 개의 자아와 아버지카프카의「선고」카프카는 기이하고도 짧은 이 단편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가. 선고 에서 묘사되는 게오르그와 그의 아버지와의 관계는 도저히 친자 지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상식적이며, 가장 비상식적이고 충격적인 것은 아버지의 일방적인 매도와 비난에 순종하여, 자살의 길을 택하는 게오르그의 모습이다. 이처럼 현실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들을 아이러니 하게도 사실적인 묘사와 함께 교묘히 섞어 표현하여, 숨겨진 세계의 단면을 포착해내는 것이 카프카 소설의 특징이다. 따라서 그의 소설에 나오는 이 기이한 인물들간의 관계는 표현된 그대로 해석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도대체 게오르그는 특별히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왜 아버지의 말에 순순히 굴복하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묘사되는 게오르그의 모습은 오히려 무엇엔가 쫑기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자살하는 것일까. 또한 게오르그의 아버지는 왜 자식을 그토록 비난하고 끝내는 사형선고를 내리는가. 이것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우선 작품 속의 게오르그와 그의 아버지로부터 보편적인 부자관계의 굴레를 벗겨내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의미없는 혈육애를 소멸시킨 위에서 게오르그와 아버지, 그리고 페테스부르크의 친구가 만들어 내고 있는 대립구도에 주목하여야 한다. 대립구도 속에서 이 세 인물들이 어떤 관계는 맺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그의 익사를 해명할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접근방법이다.우선 게오르그와 아버지와의 관계를 살펴보자. 그들의 관계는 2년쯤 전에 어머니가 죽음으로써 일종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그 전까지 모든 결정권을 독차지하고 사업을 주도적으로 꾸려나가던 아버지는 사업에 소극적이 되었을 뿐더러 식사도 잘 하지 않고, 어두침침한 방안에 틀어박혀, 건강마저 안 좋아진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반면 게오르그는 이후, 모든 일에 대해서 큰 결의를 가지고 대처하며, 사업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지금은 결혼을 계획하고 있다. 이처럼 역전되어 버린 관계 속에서 게오르그는 아버지에게 소홀했던 것을 반성하는 등 아버지를 존중하고, 아버지에게 배려를 베푸는 모습을 보이는데, 아버지는 도리어 그런 게오르그를 비난하고 익사형(溺死形)을 선고하기까지 한다.대체 왜 게오르그는 여기에 순종했던 것일까. 아버지의 몸집은 역시 거인 같다 라는 독백과 글 전편에서 우러나는 아버지의 강한 성격, 이에 반대되는 게오르그의 공손함(때로는 비굴하다 싶을 정도로)은, 게오르그가 비록 어머니의 죽음 이후, 어느 정도의 자신감을 갖고 독립적으로 행동하고는 있었으나, 여전히 아버지의 거대한 그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끝내는 아버지의 권위에 굴복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작품에는 카프카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아버지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심, 무력감, 공포, 혐오, 증오, 아버지로부터 독립하고 싶은 열망,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육친으로서의 애정을 포함한 갖가지 콤플렉스의 흔적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카프카가 강하고 남성적인 성격의 아버지 밑에서 위축되고 자신감 없는 성격의 인간으로 성장하였고, 이 때문에 평생을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괴로워했었다는 점을 참고하면 이런 생각은 더욱 설득력 있게 보인다.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그의 죽음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을 뿐더러, 아버지의 비상식적인 태도 역시 이해할 수 없으며, 이 글에서 상당한 비중을 가지고 묘사되고 있는 페테스부르크의 친구에 관해서도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게오르그가 기꺼이 사형 선고에 응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게오르그 자신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아버지의 권위에 굴복해 버렸다기보다는, 게오르그 스스로가 아버지가 자신에게 내린 사형 선고의 정당함, 혹은 필요성을 깨닫고 묵묵히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아버지의 말에 따름으로써 게오르그는 근본적으로 아버지와의 결속감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그렇다면 게오르그는 아버지의 판단이 왜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아버지는 게오르그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식인 너는 환호를 지르며 세상을 활보하고, 내가 생명을 다 바쳐서 지금까지 쌓아올린 가게를 폐업했다. 그리곤 마음껏 즐기다가 이젠 신사의 얼굴을 하고는 아비로부터 도망치려 하고 있다. 너는 이불로 나를 완전히 덮어 버리려고 했다. 너는 이미 아비를 완전히 눌러버렸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 반면 아버지가 동정하고 칭찬하고 있는 페테스부르크의 친구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가. 그 청년은 가장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식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그를 끔찍이 생각하고 있다. 내가 그를 위해서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린 일이 없다고 너는 생각하느냐? 말하자면 내가 이곳에 있는 그의 대리인이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게오르그는 매우 바람직한 인물이다. 사업에도 성공했고, 젊고 건실하며, 재산가의 딸과 결혼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반면 페테스부르크의 친구는 그렇지 않다. 그는 고국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미 수년 전에 러시아로 도망치듯 망명해 버렸다. 그러나 페테스부르크에서의 사업도 신통치 않아, 사람들과의 접촉도 끊고 외롭게 독신 생활을 하고 있다. 즉, 그는 일종의 실패자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왜 친구를 친자식인 게오르그보다 더 좋아하고 있는 것인가. 단서는 이 구절 안에 있다. 그러나 그 후에 아버님은 그와 아무런 격의 없이 말씀을 하시곤 하셨습니다. 당신께서 거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시며 한 두 마디 질문하시는 것을 보고는 저는 마음속으로 자랑스러운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는 그때 러시아 혁명에 관한 기묘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했었습니다. 예를 들면 그가 장사 차 키에프를 여행했을 때 폭동의 와중에서도 발코니 위에 서 있었다는 어떤 신부(神父)의 이야기 말입니다. 그 신부는 스스로 손바닥에 커다란 피의 십자가를 새겨서 그 손을 펼쳐 군중에게 호소했다고 했었지요. 아버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여기저기에서 꽤 재미있게 반복해서 말씀하시곤 하셨어요.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친구의 이야기꾼 으로서의 재능이다. 그것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요령있게 포착하여 재미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작가적 재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게오르그의 재능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세상의 질서에 잘 적응하고 성공을 거두는 소시민적 생존의 재능이다. 결국 아버지는 세속적인 기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준을 벗어나는 문학의 세계를 옹호하는 입장에 서서 친구를 칭찬하고 아들을 비난했던 것이다.그러나 역시 의혹은 남는다. 게오르그가 아버지의 판단이 정당함을 아무리 수긍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 권위에 굴복함으로써 아버지와의 유대 관계를 공고히 하고 싶은 욕구가 아무리 강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자살의 길을 택한다는 것은 여전히 무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자살을 한다는 것은 전적인 자기 부정의 행위이다. 자기 부정의 이유가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운 외부상황 때문이든, 근본적인 자기 회의 때문이든, 그것은 현재 상태에 대한 철저한 부정을 전제로 한다. 자살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선택이며, 그것은 필연적으로 현재 상태에 대한 부정과, 자살을 통해 무언가 더 나은 상태로 이동할 수 있다는 희망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게오르그가 자살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게오르그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하나 있다면 아버지에 말에 따를 수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게오르그 자신은 죽는 결과로 나타났다면, 그 역시 그다지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 게오르크라는 인물 자체가 이 작품 속에서는 그다지 큰 의미가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게오르그가 이 작품의 화자로서, 그리고 주인공으로서 비중있는 인물이었음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는 동시에 카프카가 이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것을 위해 필요했던 하나의 도구였을 따름이다. 그렇게 보자면 친구나 아버지도 마찬가지이다. 선고 의 세계에서는 이 등장인물들이 제 아무리 하나의 완벽한 개체적 인물로 묘사될지라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실제로 그들은 단지 카프카의 의도에 의해서 맡은 배역을 충실히 하고 있는 반쪽짜리 인간들이며, 이들에게서 보통 리얼리즘 소설의 인물들에서처럼 완결된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발견하려는 시도는 공허한 것인 것이다.
    인문/어학| 2001.12.20| 3페이지| 1,000원| 조회(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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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볼테르의 '깡디드'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이에 대한 볼테르의 대답「깡디드」볼테르는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였는가, 혹은 이 소설 자신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소설을 사상을 표현하기에 매우 적합한 도구로 생각했던 그 시대 사상가들을 생각해 보면, 그리고 볼테르 자신도 이런 생각에 동의하여 75세가 넘어서까지 소설쓰기에 매달렸던 일을 되새겨 보면 대답은 매우 분명한 것처럼 보인다. 소설「깡디드」는 볼테르가 당시 라이프니츠의 예정 조화설 을 비판하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썼던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그것 자체는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볼테르 자신이 이 소설에 깡디드냐 낙천주의자냐 라는 제목을 붙였다는 사실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 속에서 묘사된 세계의 모습, 인물들의 모습은, 이것은 이것이다 라고 단정하기에는 부적합한 총체적인 불확실성을 담고 있다는 사실 역시 분명하다. 볼테르가 이를 의도했던 간에 혹은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여기서 말하는 불확실성이라는 말은 혼돈, 혹은 카오스 혹은 다면성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들과 강한 연관을 지닌다. 깡디드 에 묘사되고 있는 세계의 모습들을 보자. 깡디드 는 사실 전쟁, 부정부패, 광신, 약탈, 사기, 병, 도둑질, 강간, 매음, 독단, 무자비함 등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惡)적인 것들의 나열이다. 노파나 뀌네공드가 겪는 처참한 윤간과 살육의 경험들은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상상하는 것만도 역겹고 끔찍하다. 이렇게 어둡고 참담한 세상의 모순들은 인간을 한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과연 이런 모순들의 원인은 무엇인지, 그것들을 영원히 제거할 수는 없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문학작품들이나 영화에서 흔히 발견되는 말들, 신이 존재한다면, 왜 저 악당에게 벌을 주시지 않는 것인가, 혹은 왜 세상은 이렇게 불공평한가. 등등의 주인공(?)들의 절규는 세상의 모순이 인간에게 어떤 과제를 부여하고 있는지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라이프니츠나 볼테르나 시작은 바로 여기서부터인 것이다. 神) 이었다. 중세인들이 믿었던 신 이란, 우주 전체이며, 질서이며, 조화이며, 해답 그 자체였다. 전형적인 중세적 답안을 내놓았던 라이프니츠의 예정 조화설 에 따르면, 세계의 구성요소인 단자(單子, monade)들은 부분적으로는 불완전한 상태(모순!)을 보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최선의 상태를 이루며 향해간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해피엔딩이란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리고 인간의 능력으로 신의 영역을 넘나들고 있는 현대인의 눈으로 바라볼 때, 그들의 말은 얼마나 빈약하고 설득력 없는 말처럼 들리는가. 또한 얼마나 자기만족적으로 들리는가. 기능주의 이론이 근본적으로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으로부터 비롯되고, 결과적으로는 현실을 정당화하는데 기여하듯이 그들의 이론은 중세적 질서 속에서 그야말로 만족하며 살 수 있었던 종교 권력자들이나 왕과 귀족들에게서, 혹은 신 이라는 존재에 대해 맹목적인 숭배를 바쳤던 철저한 관념론자들에게 나왔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이론은 실제로 실존적인 고통을 당하고 있는 당사자들에게는 그림 속의 떡처럼 허황되고 거짓된 것일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이론은 그들의 세계를 설명하기에는 용이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들이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이 곧 세계였으며, 그 세계에서는 결국 모든 일이 그런대로 순조롭게 해결되었음이 분명하다. 크고 작은 불행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물질적인 부와 권력이 있었으므로 그들은 철저한 불행으로부터는 보호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세계는 거짓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 그 세계 역시 사실이다. 너무나 분명한 질문에 누구나 대답하기 어려워하는 이유, 저마다의 대답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의 의견을 단순히 계급적 기반에서 비롯된 편협한 보수논리로 치부하고 무시해버릴 수 없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행복과 선은 실재하며, 여기에는 부자나 가난뱅이, 권력자나 보통사람, 그들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일견 세상이 최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는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결국 사람의 가치관을 결정하고 어느 쪽에 서느냐를 가름하는 것은 결론적으로 무엇을 취하느냐일 것이다. 세계는 결과적으로 선(善)하다라는 의견이거나, 세계는 결과적으로 악(惡)하다라는 의견이거나, 혹은 제3의 의견이거나.재미있는 것은 예정 조화설 이 결과로서 일종의 엔딩 을 상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행복해 질 것이라는 이런 신념 체계는 기독교적 세계관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직선적 역사관의 대표적인 예인 기독교적 역사관에서는, 신이 창조하여 시작된 이 세계는 악의 유혹에 인간이 굴복하면서 타락하게 되며, 결국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이 승리하여 사악한 세계는 사멸하고 영원한 천국이 건설된다. '해피엔딩 이다. 또한 한 인간의 삶에도 끝 이 존재한다. 기독교적 세계 속에서 현실 세계와 사후 세계는 대체로 역설관계에 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힘들다는 성경구절, 지금 당하는 고통을 잘 참고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보통 기독교인들의 믿음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현실 세계에서의 고난을 견뎌내고 나면, 죽음 이후의 결과적 세계가 존재하고 이곳에서 모든 판결과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상정하는 것은 예정 조화설 의 논리구조와 상통한다. 물론 예정 조화설 의 논리는 현실세계 내에서도 모든 결과를 정당화하는 엄청난 낙천성을 발휘하고 있기는 하다.그렇다면 볼테르는 어떤 대답을 하였을까. 볼테르가 예정 조화설 적인 시각에 동의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또한 중세적인 모순들이 쌓이고 쌓여 대폭발을 향해 치닫고 있던 17세기의 비상식적이고 혼란한 상황을 정당화하거나 당연하게 생각하지도 않았음 역시 분명하다.깡디드 에서 볼테르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돌이켜보면, 역시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앞서서 언급한 참담하고 불합리한 세계의 모습 이다. 볼테르는 이런 어둡고 비참한 모습들을 집요하게 반복하고 묘사하는 것을 통해, 기존 우월성보다 규정적 우위에 있기도 하고 어느 순간 양질전화의 법칙이 성립하기도 한다. 아마도 이를 한 인간의 한정된 의식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르며, 현실 그 자체도 계속적으로 유동하며, 경계란 것도 순간순간 모호한 그 어느 곳에 존재했다가 사라질 것이다.어쨌든 이러한 볼테르의 기본적인 전략은 깡디드 에서 충분히 관철되고 있다. 각 에피소드들의 선택과 제시, 배열은 모두 질서정연하고 율동적으로 짜여져 있다. 깡디드 의 세계에서는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우스꽝스럽게 부활한다든지, 기막힌 우연이 연속된다든지 하는 비상식적인 사건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것은 다만 작가가 묘사하려는 세계를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일 뿐이다. 일단 깡디드 가 비웃고 비판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소설이라는 것에 동의하고 책을 읽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그런 것에 토를 달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집필된 깡디드 의 세계 안에서는 적어도 작가가 통제할 수 있는 한에서는 모든 사건의 전개가 작가 마음이다. 그 안에서 리얼리티 를 찾아내려는 시도는 영 잘못 짚은 것 이 되어 버린다. 독자들은 다만 책을 읽고 볼테르가 서술해 놓은 에피소드들을 따라가면서 인간들의 불행과 세상의 모순을 인식할 따름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장을 덮은 뒤, 잡다하고 소소한 비상식적인 일들 말고, 깡디드 라는 책의 세계 자체를 비판해야만 한다.그런데 이렇게 깡디드 에서 볼테르가 비판정신으로 온통 무장을 하고 날카로운 비난의 칼날을 휘두른 것 같은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문학의 원천은 콤플렉스라는 혹자의 말처럼, 자아 혹은 세계의 모순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이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해낸 작가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방법 역시 그 머릿수만큼 많았다. 그 중에 볼테르가 택한 방법은 이를테면 풍자 의 방법인데, 사실상 이 방법은 전술한 수많은 방법을 그 태도에 따라 대략 두 가지로 나누었을 때 한 쪽을 대표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가 풍자 소설에 든다는 것은 이미 많은 논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점이기도 하다. 풍자란 근본적으로 민중적인 글쓰기 방식이며, 카니발 이론에 의해서 설명되곤 한다. 카니발이란 번역하자면 축제 로서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공간이 아니라 특수하고 일회적인 공간이다. 따라서 축제의 공간에서는 아무리 기존 권력을 비웃고 비판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조선시대의 민중들은 마을 잔치 때, 마당극이나 판소리 등의 공연을 통해 기존 권력의 부정부패와 부조리함을 비판하고 웃음거리로 만들면서 카타르시스 효과를 얻었고, 이를 제지하지 않고 허용함으로써 기존 권력은 오히려 지배질서를 유지해 나갔다. 혁명 을 꿈꿀 수는 없었으나, 현실이 불만이었던 사람들에게 높은 양반 들을 비웃을 수 있는 자리가 제공된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으며, 그들은 마음껏 비웃어줌 으로 인해 쌓였던 불만들을 해소하고, 축제가 끝나면 다시 억압받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웃음 으로 현실이 가하는 무게를 덜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풍자 , 또는 희극적 글쓰기 는 하나의 문학적, 예술적 양식으로 자리잡았다. 따라서 일종의 지배담론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 문학을 택했던 볼테르에게 풍자라는 기법은 당연히 유용한 것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약간 거리를 두고(풍자가 일어나는 축제라는 공간은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공간이다.) 대상을 비웃는다는 여유있는 태도는 위트와 기지를 즐겼던 볼테르 자신의 성격과도 꽤 어울리는 것이었던 듯 하다. 여유. 그리고 가벼움. 볼테르가 묘사하는 세계가 결국 파국을 향해 치닫지 않고, 또다른 해피엔딩 으로 끝나는 이유중의 하나는 결국 한발 물러선다고 볼 수 있는 이런 풍자적인 정신이 깡디드 의 세계에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한편, 이처럼 볼테르가 일관된 전략과 기법을 이용해 하나의 세계를 묘사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지만 깡디드 에서는 서로 모순되는 정서적 태도들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모순의 극에서 극을 끊임없이 오간다. 그것은 끊임없이 깡디드 라는 세계와 맞닥뜨리.
    인문/어학| 2001.12.20| 5페이지| 1,000원| 조회(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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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시가문학사 평가B괜찮아요
    고전시가의 형성과 전개고전시가문학사(1) 머리말고전시가라는 용어는 국문으로 기록된 노래와 한시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쓰는 것이 좋겠다. 이 말은 곧, 우리 선조들이 지은 한시면 모두 우리의 시가문학으로 포괄된다는 말인데, 왜냐하면 한시에는 우리의 삶과 정서가 온전히 담겨있기 때문이다.사실, 표기문자가 무엇인가는 구비전승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노래는 어차피 입으로 부르면 귀로 듣는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노래를 문자로 기록하려는 욕구가 강렬해지고, 독자적인 문자가 고안된 이후에도 한자문학은 나름의 발전을 계속해 왔다. 따라서 한자문학과 국문문학은 병행하여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전제로 한국의 고전시가사를 살펴보도록 하겠다.(2) 통사적 의미와 그 양상우리 시가문학의 기원은 원시시대의 제의(祭儀)의 현장에서 불려지던 무가(巫歌)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당시의 예술은 시와 음악, 춤과 연극이 함께하는 종합예술이자 집단예술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에 실려 있는 각종 주문(呪文)형태의 무가들과 민요들에서 이 때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한편, 집단예술의 단계를 지나 개인적 정서를 본격적으로 표출한 서정문학단계의 첫 작품들로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황조가(黃鳥歌), 구지가(龜旨歌) 등 이른바 상고시가(上古詩歌)들을 들 수 있다. 이 노래들은 당대의 수많은 노래들 가운데 우연히 기록으로 살아남은 것이므로 이를 토대로 이 시기 고전시가의 전모를 파악하려 하는 시도는 매우 위험하므로 신중히 접근하여야 한다. 이 노래들은 표기 문자가 없던 사정으로 한자로 번역·기록될 수밖에 없었으므로 4언체의 고시 형태를 띠게 되어 매우 짧으며, 우리 노래의 일반적 기준에 비추어 보아도, 매우 간결하고 비서사적인 내용과 단순한 민요의 형태를 띠고 있다.당대의 노래를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본다면, 국가나 부족단위의 공동제의에서 부르던 본풀이류의 무가, 마을단위 혹은 가정단위의 무속신앙에서 불려지던 소규모의 무가, 개인적 차원의 즐거움이나 감정발산을 위주로 하던 비작위적이고 자연발생적인 노래가 있다. 첫 번째의 경우는 현재 신화의 형태로 잔존해 있거나 서사문학으로 발전되어 갔으며, 두 번째는 상당부분 첫 번째와 같은 양상을 보이거나 세 번째의 일부로 흡수되어 근대 이전의 고전시가로 전개되어 나왔다고 본다. 결국 우리 노래의 근원은 무속이 대표하는 종교 체험에서 발생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의 종교체험이란 풍요제의 놀이 를 말한다. 풍요제의의 내용들은 술 마시고 떼지어 춤추며 노래한다 는 것이었다. 이는 곧, 놀이 로서, 신성(神聖)과 유오(遊娛)의 이중적인 측면을 갖는다. 즉, 이들은 놀이를 통하여 신을 만날 수 있었고, 부족원들 간의 일체감을 이룰 수 있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레크리에이션의 원리와도 상통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현장에서 불린 노래들은 정연한 모습으로 짜여져 있었으며 기능이나 효용성의 면에서 열린 노래들이었다. 공무도하가 , 구지가 , 황조가 등은 이런 시기에 불리다가 한역의 힘을 빌어 잔존하게 되었던 것이다.공무도하가 는 뒷시대 이별노래들의 원형이 되는 노래로서, 무속제의에서 행해진 원초적 발화로서의 넋두리로 본다. 황조가 는 고구려 유리왕이 치희(稚戱)를 생각하며 지었다고 하는데, 부족간 갈등을 묘사하고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며, 유리왕이 왕비 송씨가 죽었을 때 지었다는 설과 민요였을 가능성 등이 제기되고 있다. 구지가 는 가락국 건국신화의 한 부분으로서 수로왕의 출생과 등극에 관련되는 의식을 노래하고 있는데, 노동요와 제의요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국가 창건 기념 행사에서 불려졌을 것으로 추측된다.상고시가 이후 노래의 새로운 시대를 이끈 주역은 도솔가(兜率歌) 를 필두로 한 향가(사뇌가)들이다. 이는 곧, 집단정서에서 개인정서로, 부르고 듣는 문학 에서 기록문학으로 넘어가게 되는 단서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 도솔가 이후에도 삼국유사의 14수와 균여전의 11수가 전하는데, 현재 제목만 남아 있는 고구려, 백제의 노래들도 당시에는 향찰을 이용하여 표기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직까지 전하고 있는 이들 향가는 불교적인 색채를 강하게 띄며, 구도적인 삶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고려로 이어지면서 향가의 전통 역시 그대로 계승되어 균여의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와 도이장가(悼二將歌)등을 낳았다. 그 밖에도 고려의 처용가 나 사모곡 등도 향가의 형태적 범주와 유관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향가를 제외한 고려가요들은 훈민정음이 창제된 조선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문헌에 정착될 수 있었는데, 그 전까지는 구전되거나 역시 유일한 표기 수단이었던 향찰을 이용하여 기록되었을 것으로 본다. 따라서 조선조 문헌에 등장하는 고려노래들은 삼국시대와 고려조 향가의 연속선상에 놓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주로 고려사(高麗史) 악지에 그 유래와 함께 소개되어 있는 가사 부전(不傳)의 고려가요들은 가사가 전해지는 본격 고려노래들과 같은 성격의 것들이면서, 삼국시대의 노래들을 효과적으로 연계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가사가 전해지는 고려노래들은 고려사 악학궤범 , 악장가사 , 시용향악보 , 악학편고 , 대악후보 등에 전문 혹은 일부가 실려 있다. 이들 가운데는 창작된 노래도 있지만, 원래 민중의 노래였던 것이 궁중악으로 편입되면서 내용적, 형태적 측면에서 궁중악에 맞도록 개작되거나 개편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민요가 궁중의 속악가사로 편입되는 과정은 구비문학이 기록문학으로 이행하는 과정과 함께 이해할 수 있다. 한편, 그러한 개별노래들 간의 상호교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을 가능성 또한 농후하다. 그뿐 아니라 당악 등의 외래음악은 고유 음악의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고 그에 따라 새로운 가사의 수요도 증대되었을 것이다. 이때의 노랫말은 기존의 민간에서 채집된 것이거나 새로 지은 것들이었는데 그런 노래말들과 기존의 악조가 잘 맞지 않는 경우에는 여러 노래말들을 부분적으로 합성하거나 여음을 첨가하기도 하고 반복구와 병행구를 첨가하기도 하였다.조선조 사람들은 남녀상열지사, 충신연주지사, 송덕지사 등의 관점에서 고려노래들을 수용하였다. 조종(祖宗)의 공덕을 칭송하는 일이나 임금에 대한 충성을 노래하는 일 모두 강력한 왕권 중심의 통치질서 확립에 필수적인 행위들이었으므로, 이러한 일들이 집단적 지배 이념의 선양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개인적 감정을 절실하게 을은 노래들이 대부분 배척되던 당대의 상황은 쉽게 납득될 수 있을 것이다.대부분의 고려노래들은 민요적 성향을 띤 것들이었다. 따라서 사랑이나 별이를 노래한 것들은 모두 남녀간의 원초적 감정들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임금에 대한 사랑 은 대개 작위적인 주제, 표방된 주제일 뿐이었으며, 이들 노래의 임은 궁중악으로 편입되면서 임금으로 바뀌게된 것이다.고려후기에 등장하여 조선조 중엽까지 왕성하게 창작, 가창된 경기체가도 당대 속악의 범주에 속하는 노래 장르였다. 사대부 관인계층의 자긍심과 풍류, 왕조의 문물제도와 임금에 대한 찬양 및 송축, 자연속의 생활, 유료 및 불교 이념 등 경기체가의 주제들은 다방면에 걸쳐 있다. 그리고 상당수의 노래들이 연장체로 되어있어 규모가 비교적 크고 내용 또한 풍부하다. 그리고 같은 시기의 악장을 간과할 수 없다. 조선 초기, 곡예적 상황에서, 왕조 영속의 당위성이나 삼대지치의 이념을 고양할 목적으로 당대에 존재하던 시가들의 형태를 차용하고 왕에 대한 찬양을 내용으로 하여 교술적 어조로 전개하는 특수한 문학 이 바로 악장이다. 변격악장들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한 마디로 규정할 수는 없겠으나 이것들에 표면화되는 장르적 성향은 교술이었다. 교술은 왕의 공덕와 업정을 찬양함으로써 삼대지치를 재현하고 왕조 영속의 당위성을 주장한다 라는 정치적 목적의식을 대전제로 했기 때문에 표출될 수 있었던 장르적 성향이라 할 수 있다.공동제작의 악장이면서 선초악장의 결정판으로 를 들 수 있다. 이후에는 이와 필적할 만한 규모의 악장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며, 특히 이 노래 이전에 왕성하게 현상되던 개인 제작 악장도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따라서 악장=아부문학 이라는 오해가 이 노래로 인하여 해소될 수 있었다.한편, 고려의 음악들이 쇠퇴하면서 대엽이라는 조선조의 노래가 자리잡기 시작하였으며, 노래말 또한 조선조의 이념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창작되기 시작하였다. 가곡, 즉 후대 시조문학의 근원과 출발이 고려속가에 있었다는 것이다. 조선조의 주류는 가곡이었다. 안민영의 자작 노래집인 금옥 부 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에 시조창이 이미 등장해 이었음을 알 수 있으나, 당대의 가객들은 가곡을 정음으로 간주, 고수하고자 하였다. 이는 가곡의 유지, 발전이 곧, 자신들의 기득권과 직결된다고 생각한 프로의식의 소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대세는 어찌할 수 없어서, 3대 가집을 포함한 나머지는 모두 가곡집이다. 그리고 가곡은 반드시 격식을 갖춘 관현악 반주를 요구한다. 그러나 시조는 무릎 장단만으로도 가능하다. 이런 점이 가곡의 쇠퇴와 시조의 등장을 가속화시켰을 것이다.
    인문/어학| 2001.12.20| 4페이지| 1,000원| 조회(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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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가 의식의 형성
    예술가 의식의 형성인문학부 9701188 백하영들어가며오늘날 예술가들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 즉 그들에게는 교육과 노력 이외에 어떤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정신적인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의식, 그리고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던 아니던 간에 모든 예술가 라는 사람들은 무언가 수준높은 차원의 일을 하고 있다는 통상적인 관념은 몇 백년 전에는 절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저 멀리 고대 그리스 시대로 돌아가 굳이 플라톤의 시인 추방론을 끄집어내지 않아도 된다. 불과 두 세기 전 우리 나라의 예술가들은 환쟁이, 딴따라, 남사당패 등으로 불리며 천민보다 못한 대우를 받곤 했다. 예술가로서 가장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하는 경우조차 대부분은 궁정에 소속된 경우였으며, 이는 서양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화가들은 교황이나 귀족, 왕들에게 주문을 받아 그들의 취향대로 그림을 그려야 했으며, 음악가들 역시 문화를 즐길 여유가 있는 상층계급에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했다. 물론 문학의 영역에서는 그 독특한 특성 때문에 미술이나 음악과는 약간 다른 양상이 벌어져, 문학적인 능력이 상류층으로서의 필수적인 요건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전문적인 문학인으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언제나 현실적인 지위나 관직을 자기의 본분으로 생각했다.결국 오늘날과 같은, 다소 오만하기까지 한 예술가 의식 이 형성된 것은 어떤 역사적인 계기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예술가 의식이 태동하고 발전하여 오늘날과 같은 양상을 띄게 된 것은 근대 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 나라를 비롯한 제 3세계 국가들에게 근대란 것은 서양처럼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강제적이고 압축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예술가 의식 의 발생과정을 추적하려면 우선 서양의 역사, 그 중에서도 18, 19세기를 집중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 나라의 근대 문학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낭만주의나 리얼리즘, 자연주의 등의 여러 사조들도 병행해서 나타난 현상인 것이다.그런데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의 전개에 대응하는 예술의 대응은 이 때에 매우 독특한 양상을 띤다. 그것은 이중적 저항이다. 이 때의 낭만주의 예술은 절대주의와 국가의 간섭주의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저항인 동시에, 부르주아지의 출현의 기반이 되는 산업혁명의 또다른 결과-삶의 기계화와 평준화 및 비인간화에 대한 저항이었던 것이다. 이 때의 낭만주의적 개인주의 역시 경제적 자유주의의 문학적 대응양식임과 동시에 인간을 소외시키는 방향으로 재편되어가던 사회질서에 대한 반항이기도 했다.전기 낭만주의18세기 중엽이후 또다시 변화가 찾아온다. 종래 시민계급의 낙관적이고 건강한 세계관과는 전혀 상반된 멜랑꼴리와 비가적 정서, 도피주의가 예술 사조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추동력이 작용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주정주의의 자기 객관화이고, 다른 하나는 낭만주의 운동의 추진세력의 성격 변화이다.처음에 부르주아적 계급의식의 표현이자 귀족적인 냉정성의 거부로 시작되었던 주정주의는 일단 예술적인 객관화의 길을 발견하게 되자 곧 독립하여 감수성과 자발성에 대한 숭배로 발전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일부러 감정적인 충격을 찾다가 차츰 자기 감정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게 되었고,{) 19세기의 작가, 플로베르는 그 자신의 절실한 경험으로 말미암아, 이런 현상을 후에 이렇게 통 찰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되거나 고착화되어 플로베르의 시대까지 연속된 것이 아 닐까. 정신적 영감이라는 것과 유사한 모든 것을 경계해야 하오. 그런 것은 일부러 지어낸 열 광과 선입견일 따름이거든. 이런 열광은 대부분의 경우 그 자체로부터 나오 것이 아니라, 다만 자신에게 의도적으로 불러일으킨 것에 지나지 않아. 더욱이 우리는 영감 속에서 사는 것이 아 니지 않소. 루이즈 콜레에게, 1846년 12월 13일마침내 예술은 단지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고 공감을 환기시키는 것 이외의 다른 아무 목표도 추구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또한 18세기 초 독자층을 구성하고 있었던 낭만주의는 바로 이런 광범위한 환멸감, 배신한 부르주아지들에 대한, 이상과는 너무도 다르게 진행되어간 혁명의 현실적 모순과 비극에 대한 깊고 강한 환멸감의 대지에 뿌리를 박고 자라난다. 그들이 섭취한 양분은 과거나 자연에 대한 환상이었으며, 이미 현실로부터 유리되어 가고 있었던 그들이 택한 고독한 천재의 상은 현실이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무거운 비관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고독하고 다소 신경질적이고 병적인, 그러나 현실에 순응하고 적응할 수밖에 없는 범인들로서는 감히 다가가기 힘든 위대한 정신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예술가. 우리가 지금 예술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약간의 과장이 섞여 있다고도 볼 수 있는 이런 이미지는 바로 이런 낭만주의적 조건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현실로부터 소외된 예술가혁명의 결과는 기대하지 않았던 비극적 현실 말고도 또 있었다. 그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어 버린 고향에 대한 상실감이었다. 고향을 상실하고 고독하게 되었다는 감정은 이제 새로운 세대의 결정적인 체험이 되었고,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현실적으로 무력하게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느꼈다. 낭만주의자들이 현실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는지, 여기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현실과 예술의 단호한 분리. 이를테면, 토마스 만의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형상화되고 있는 현실로부터 유리된 무력한 예술가 는 바로 이 시기 이전까지는 전혀 발견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현실에 대한 낭만주의자들의 태도는 지극히 이중적이며, 이중적이기에 더욱 낭만적이다. 그들은 현실을 경멸하고 부정하면서도, 동시에 현실을 신비화하며 이에 대해 무력해한다. 그들은 모든 종류의 외적 구속에 대해 극단적인 거부감을 표시하지만, 현실적인 변화를 꾀하기 위해 현실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현실을 감당하고 책임질 능력이 없고, 오히려 현실 속에 아무런 방비 없이 내던져져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클라이스트는 현실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는데, 반면에 본질에 대해서는 많이 과 예술성, 삶과 예술의 갈등이었다. 낭만주의에 대한 절대적인 찬가를 외치던 하이네가 후에 이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아이러니 를 구사하기 시작했듯이, 토마스 만 역시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이 두 개의 세계 양쪽에 거리를 두고 선호를 유보하는 비판적 태도를 보이는데, 이렇게 해서 그는 독일의 반어(ironie) 전통을 잇는다.이런 경향은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의 대표적인 작가 플로베르에게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이미 앞에 짧게 언급된 바와 같이 플로베르는 최후의 낭만주의자이자 뛰어난 자연주의자였다. 청년기의 플로베르는 사실 매우 강렬한 낭만적 기질의 소유자로서, 당시 그와 그의 친구들은 광기와 자살의 끊임없는 위협 속에서 청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샤를르 보바리는 히스테리의 극단을 보여주는데, 그 내면적 묘사는 오로지 플로베르만 이 해낼 수 있었다. ... 예를 들어, 의 끝부분에서, 출판되지 않은 몇 페이지는 작중인물의 히스테리가 아니라 분명히 작가 자신의 어떤 히스테리를 보여주고 있다. 사르트르이런 끔찍한 정신상태-환상과 우울증, 감정적 폭발, 신경질과 극도의 민감함-를 겪고 난 후, 그의 생활은 규칙적이고 타협을 모르는 비인간적인 작업방식으로 대선회를 하는데, 하우저는 이를 플로베르가 젊은 시절의 낭만적 기질이 그를 인간으로서 파멸시킬 뻔했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시는 결코 쇠약한 정신의 산물이 아니오. 신경과민이 바로 그런 쇠약한 정신의 상태이 지. 그렇게 무엇을 과도하게 느끼는 능력은 일종의 결함이오. ... 관념이 몸 속을 지나갔 으나 거기에서 그 관념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몸은 소멸해 버린다오. 이런 것으 로부터는 천재도 건강도 나오지 않아. 루이즈 콜레에게, 1852년 7월 6일그는 평생동안 엄청난 의지력과 무자비한 자기단련을 통해 그 자신의 낭만적 기질과 싸웠고, 그가 내세웠던 예술을 위한 예술 작업을 통해 낭만주의로부터 벗어나 이를 대상화하고 분석하고, 극복했던 것이다. 그는 진정으로 존재하는 인 같은 것이 찍혀 있는 것같이 느끼기 시작하고 다른 사람들, 평범하고도 정상적인 사람들과 이유를 알 수 없는 갈등에 빠져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요. 당신을 모든 사람들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는 반어, 불신, 반항, 인식, 그리고 감정의 심연이 점점 더 깊어지기만 해서, 당신은 고독해지고 그때부터는 더 이상 서로간에 이해가 불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 같은 책 p47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언제나 달랐던 탓에 언제나 나는 (불행히도 충분히는 아니고!) 완전히 외부와 차단된 혹독한 고독 속에 유폐되어 있었소. 사람들은 너무도 자주 나를 모욕했소. 그만큼이나 내가 사람들을 경악시키고 떠들어대게 만들었던 것이겠지. {) 루이즈 콜레에게 보내는 편지. 1846년 9월 18일자아분열예술가들의 현실에 대한 부정은 당시 사회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부르주아지들에 대한 공격이기도 했다.{) 그는 의식적으로 부르주아를 경멸했고, 자신이 부르주아가 아님을 자랑스럽게 생각했 다.그런데, 이들 작가들 시대에 와서는, 이미 작가들 자신이 사회 전반에 깊숙히 자리잡은 부르주아적 삶의 태도와 취향을 체화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태도는 더욱 모순적인 태도를 띈다. 예술가로서의 삶과 시민으로서의 삶 사이에서 방황하는 한 예술가의 고뇌를 형상화하고 있는 토마스 만의 에서 리자베타는 토니오 크뢰거가 시민-그릇된 길에 접어든 시민 이라고 단정하고, 토니오 역시 그 대답에 놀라워하지만, 곧 이를 인정한다. 이미 작가 자신도 스스로를 시민 계급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토니오 크뢰거는 그들의 좋지 않은 생활습관을 역겹게 여기고 있었고, 그들 개개인의 약점을 이사할 정도로 훤히 통찰하고 있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볼 때 시를 쓴다는 것이 방종한 짓이며 원래 온당치 않은 짓이라는 것은 그 자신도 느끼고 있었으며, 그것을 이상한 짓거리라고 간주하는 모든 사람들의 의견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토마스 만.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 8권 p12는 것이다.
    인문/어학| 2001.12.20| 13페이지| 1,000원| 조회(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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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시마 유키오의 미학
    완벽과 극단-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 -인문학부 9701188 백하영들어가며소화(昭和) 11년(1936년) 2월 28일, 즉 2.26사건 발발 2일째, 근위보병 제 1연대 소속의 다께야마 신지(武山信二) 중위는, 사건발생 후 반란군에 가입한 친구들 문제로 번민을 거듭한 끝에, 황군(皇軍)끼리 서로 쏘아 죽여야만 하는 사태로 치닫게 된 정세를 통분, 요쯔야구 아오바쬡우에 위치한 자택의 8장 짜리 방에서, 군도(軍刀)로 할복자살하였으며, 그의 부인 레이꼬(麗子)도 역시 남편의 뒤를 따라 칼로 자결하였다. 중위가 남긴 유서에는 황군만세를 기원한다 란 단 한 구절이 쓰여져 있었을 뿐이며, 부인의 유서에는 군인의 아내로서 올 것이 왔습니다 라는 말과, 부모보다 앞서가는 불효에 대한 용서를 빌고 있었다. 열녀열부의 최후, 참으로 혼백마저 울릴 기개 있도다. 중위 나이 향년 30세, 부인은 23세였다. 화촉을 밝힌 지 아직 반년이 채 안되었을 때였다.이상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 이란 소설의 도입부 전문이며, 이 소설의 줄거리를 거의 한 문장으로 요약해서 제시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머지 부분에서는 이 젊고 아름다운 두 부부, 다께야마 중위와 레이꼬의 행복했지만 짧았던 신혼부터 비장한 자결에 대한 묘사가 이루어진다. 즉, 이 소설은 죽음 에 대한 소설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죽음이나 삶에 대한 성찰이나, 죽음 이전과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극도로 아름다운 죽음의 의식이 가장 탐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목격할 뿐이다. 그들이 죽기 전에 치르는 격렬한 성행위도 결국 죽음의 의식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것은 마치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과도 같다. 하얗고 아름다운 레이코의 몸과 중위의 보리밭 같은 광택 으로 덮힌 몸이 더없는 간절함으로 얽히는 장면, 칼로 복부를 깊숙히 찌른 후, 이 칼을 다시 휘저어서 창자와 피를 밖으로 끄집어내면서 죽는 끔찍한 장면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면, 장면들을 선명 어떤 행위에-그것이 비록 죽음이라 하더라도- 미적 의미와 미적 감정을 부여할 때, 그것은 아름다움이 되며, 더 나아가 성스럽고 숭고한 의식이 된다. 우리는 여기서 이데올로기와 아름다움이 서로 어울리고 하나가 되는 경지를 발견하게 된다. 죽음을 통해 아름다움을 완성하려 했던 탐미주의자 미시마 유키오의 죽음의 미학, 우국 은 결국 그가 이 참혹한 미의 제단에 바치는 그 자신의 피인 셈이기도 한 것이다.그의 이 소설에서는 이 최고로 아름다운 죽음을 위해 인간의 미감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요소들이 신중히 선택되어 쓰여지고 있다. 이제 그것들이 어떻게 상호작용 하면서 이 죽음의 제단을 장식하고 있는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본론이 소설은 극단적 이다. 자살을 하기로 하는 중위의 결심도 극단적일 뿐 더러, 이를 따르기로 하는 레이꼬의 결심도 극단적이다. 주인공들의 결심이 이렇게 극단적이니 이야기도 결국 극단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아직 각각, 서른과 스물 셋 밖에 안 된 젊은이들이 스스로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처럼 극단적인 이야기를 또 찾아볼 수 있을 것인가.극단성이란 타협을 용인하지 않는 상태에서 나온다. 가장 고밀도의, 가장 순결한, 가장 아름다운, 가장... 이처럼 가장 과 형용사 의 결합이라는 극단적 형태는 예술적 상태, 미적 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예술의 체험, 미적 체험 역시 일상에서 순간적으로 탈출한 고밀도의 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 체험을 통해서 사람들은 시간을 이탈하여 각자의 주관적인 시간 속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내면적인 희열로 정신이 고양된 순간, 이 황홀경의 상태 속에서 인간은 시간을 통해 시간을 지양한다. 이를 위해서 사실, 예술가들은 일상의 시간을 일그러뜨리고 자신의 시간을 투사하며, 이를 감상하는 사람들 역시 자기들만의 주관적 시간을 창조해낸다. 이런 미적인 시간 속에서 뉴턴 식의 시간개념이 설 자리는 없다. 더 이상 시간은 초나 분 같은 양적 단위로 계산되지 않으며, 완벽하게 질적인 시간으로 변모한다. 이런 몰아의 시간 속 일부인 것이다. 물론 이 경우 각각의 삶과 죽음의 의미는 그 범주를 약간 달리한다.그런데 이 소설에서의 극단성은 단지 예술적 체험과 연관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단지 부분적인 연관에 불과하다.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해서 흐르고 있는 가장 커다란 줄기, 이 이야기를 추진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 그것은 완벽성이다. 즉, 이 이야기가 이루어질 수 있고,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매듭으로 묶고, 각각의 장면들을 통제하며, 긴장을 유지하는 원리는 완벽성에의 극단적인 추구인 것이다.주인공들부터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완벽하게 아름다운 육체의 소유자들이다. 다께야마 중위와 레이꼬의 외모를 묘사한 부분을 보라. 참으로 늠름한 생김생김으로, 짙은 눈썹도, 크게 뜬 눈동자도, 청년의 정갈함과 떳떳함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새하얀 예복을 차려입은 신부의 아름다움은 그 무엇에도 비할 데가 없었다. 우아한 눈썹 아래 동그란 눈에도, 오똑한 콧날에도, 도톰한 입술에도, 요염함과 고상함이 함께 어려 있었다. 살포시 예복 소매에서 고개를 내밀고 부채를 쥐고 있는 손마디 끝은, 섬세하면서 가지런히 놓인 것이 흡사 박꽃의 봉우리 같았다. 만약에 주인공들이 중년이나 노년의 쭈글쭈글한 부부였다면, 불구이거나 추녀였다면, 아니 약간의 결함이라도 있는 사람들로 그려진다면 아름다운 죽음의 의식은 이루어질 수 없다.여기서 보편적 미인의 기준이 존재하느니 마느니, 미가 상대적이니 절대적이니 하는 것을 논의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절대적 아름다움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무엇을 아름답다라고 느끼는 인간의 감각기관과 관념적 의미부여가 문제라는 입장인데, 그것은 저 원시시대에 공리관념에 의해 아름다움이란 느낌 이 탄생한 이래, 한 개인을 사회화시키는 역사적, 사회 문화적 조건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다양한 양상을 띈다고는 해도 개인 역시 사회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보편적 아름다움이 없을 수는 없는고 있다. 애초에 레이꼬가 아무런 갈등 없이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남편의 뒤를 따르기로 결정한 것부터가 이들의 완벽한 사랑을 증명하고 있으며, 이것은 다시 밀접하게 죽음의 의식을 완벽하게 하는 기능까지도 수행하고 있다. 죽음의 의식의 완결성은 이중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함께 있지 못하는 낮시간 동안에도, 중위는 훈련 도중 짬짬이 아내를 그리워했으며, 레이꼬도 하루종일 남편의 모습을 좇고 있었다. 그들은 육체적으로도 완벽한 한 쌍이었다. 레이꼬는 첫날밤으로부터 한 달이 채 될까말까 할 때, 사랑의 기쁨을 알았으며, 중위도 이를 알고 기뻐하였고 두 사람 모두 실로 젊고 건강한 육체의 소유자들이라 이들의 사랑 행위는 매우 격렬하였는데, 이것은 밤에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의 사랑은 죽음을 결심한 순간에 가장 아름답고 완전무결해진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순간, 두 사람의 가슴 속에서는 갑자기 해방된 듯한 환희가 불끈 솟구쳐 올랐다, 기쁨은 너무도 자연스레 가슴 속에서 솟구쳐 나와 마주 대한 두 얼굴은 저절로 미소지었고, 레이꼬는 신혼 첫날밤이 다시 찾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 유키오는 서술하고 있다.이들이 죽은 것이 화촉을 밝힌 지 반년이 채 안되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아직 서로의 허물없고 추한 모습들이 드러나기 전, 일상에 찌들어 나이를 먹고, 서로에 대한 낭만적인 사랑이 관성과 습관으로 바뀌기 전, 그리고 아직 이들이 연민의 정 없이 상대방의 육체를 쓰다듬지 않아도 되는 아름다운 젊은 육체를 가지고 있을 때, 즉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낭만적인 사랑의 감정이 한 치의 손상없이 그야말로 100%유지되고 있을 때, 그들의 죽음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여기에 유키오의 중요하고 특징적인 미감이 나타나 있다. 고된 삶을 함께하며 쌓이는 부부간의 특별한 아름다움, 삶이 주는 온갖 추하고 아름다운 경험들을 겪은 노인들의 정신적인 깊이가 있는 아름다움은 그에게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감각적이고, 외적인 극단성을 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는 이 소 리에 귀를 기울이며, 귀중한 시간의 한 순간, 한순간을, 그 부드러운 발바닥이 일으키는 삐걱 거림으로 가득 채우려고 해보았다. 그렇게 시간은 빛을 발하며, 보석처럼 되었다.심지어, 그들은 지나치게 오래 섹스를 하는 것도 자제하는데, 그것은 지나치게 욕구를 탐닉하다 마지막의 감미로운 추억을 망칠 것은 두려워해서 이다.완벽성에 대한 집착은 중위의 자결 결심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 애초에 죽음을 결의한 순간까지 그의 삶은 완전무결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는 국가에는 충성스러운 장교였고, 친구들에게는 신의있는 벗이었으며, 한 지아비로서의 의무 역시 소홀히 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준수한 용모와 단련된 육체, 그리고 아름다운 아내와 모자랄 것 없는 경제기반까지 갖추어 정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러나 2.26사건으로 인해 그가 한 무사로서 가장 상위에 두었던 두 개의 가치-충성과 신의가 치명적인 충돌을 가져온다. 그는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완벽했던 그의 삶은 이제 커다란 균열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완벽했던 삶을 훼손시킬 바에야 죽어버리겠다는 생각, 이것이야말로 자기가 믿는 완성을 향한 가장 극단적인 추구인 것이다.앞에서 강조했던 갈등 없는 상태 는 바로 이런 완벽성을 위한 조건이다. 레이꼬가 그 젊은 목숨을 버리는 데에 아무런 갈등 없이 동의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은 중위와 레이꼬의 가장 정신적이고도 육체적인 결합-죽음을 가능하게 하며, 상반된 요소를 가진 이 두 이성간의 결합은 동시에 세계의 완성이기도 하다. 섹스는 성의 양극단의 결합이며, 그것은 자기에게는 없는 것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갈망의 행위이다. 따라서 그것은 완전해지려는 욕구가 되는 것이다. 가장 다른 타자와 가장 근접하는 순간,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육체적 쾌감에다 엄청난 정신적 쾌락을 더해 준다. 그런데 서로 상반된 요소가 쉽게 화합하고 결합할 리가 없다. 따라서 레이꼬의 갈등 없는 절대적인 순종 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미
    인문/어학| 2001.12.20| 6페이지| 1,000원| 조회(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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