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1
검색어 입력폼
  • [사회학] 맨발의 겐 서평
    '전쟁‘이라는 낱말을 들으면 평범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TV화면을 통해 보여지는 최첨단 무기들이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3류 전쟁영화와 같은 장면들이 떠오를 때가 많다. ’나‘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죽고 부상당한 군인과 민간인들의 수치를 보며 가끔 혀를 차며 애석한 말 한마디 주변의 친구들과 주고받고 그렇게 지나보내는 일이 많다.나카가와 케이지의 자전적인 만화작품 ‘맨발의 겐’은 전쟁이라는 단어가 가진 추상적인 의미를 우리 삶의 가까운 곳으로, 즉 ‘나’ 자신의 현실적인 문제로 느껴지도록 만들어 주는 책이었다.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내에서 전쟁에 적극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소위 ‘비국민’으로 몰아세우고, 전쟁이 끝나고 나서 미군정이 들어서자 전쟁에 열렬한 지지자였던 사람들이 이름만 바꿔달아 다시 일본사회의 주류 지배권력을 독차지하는 모습은 일제시대 일본에 협력하며 한국인들을 착취했던 사람들이 오늘날 까지도 한국사회의 지배적 위치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전쟁이 평범한 사람들 개인에게 가하는 위협과 그 참상은 책에서 묘사되어 있는 것처럼 매우 비참하다. 자신의 삶의 터전과 사랑하는 가족을 잃게 되고 그 고통에 대한 책임은 어느 누구도 지려하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끔찍한 전쟁을 원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소수의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전쟁을 벌이고 국가와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로 그 구성원들의 머릿속을 통제하려는 강력한 조처들을 통해 철저하게 자신들의 계획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의 분노를 억누르는 것이 현실이다. ‘맨발의 겐’은 그 모습을 매우 잘 그리고 있다.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당시 그곳에 있었던 작가의 경험을 통해 상상하는 것조차 힘든 45년 8월 히로시마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언제나 자신의 구미에 맞지 않는 국가들에 대해서 인권과 대량살상 무기 계발을 핑계로 전쟁을 감행하는 미국이 원자폭탄과 같은 끔찍한 대량살상 무기를 실전에 사용했던 유일한 국가라는 사실은 패권적이고 위선적인 미국 지배자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좋은 예인 것 같다.‘맨발의 겐’이라는 만화책이 출간된 것에는 원폭투하 당시의 끔찍한 모습을 알리고 작가의 반전평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 경험의 충실한 묘사라는 측면에서 매우 훌륭한 작품인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단지 아쉬운 점은 주인공 ‘겐’의 입을 통해서 너무나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 탓인지 조금은 신파극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전쟁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 나아갈 것인지, 어떻게 하면 전쟁 자체를 막아낼 수 있을 지에 대해서 지나치게 ‘개인’의 측면에서 접근한 나머지 적절한 대안적 메시지를 주고 있지 못한 것 같다.물론 ‘맨발의 겐’은 옳게도 가해자로서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해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다. 소수 지배자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벌어진 전쟁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파탄 났다.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소수의 지배자들에게 있다. 다행이도 책속의 주인공 ‘겐’은 매우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우여곡절은 많이 있으나 방향성에서 보자면) 잘 개척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군국주의 국가에 맞서 어떻게 싸워야 기득권을 가진 그들의 힘을 약화시키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전쟁은 특히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전쟁은 발전 된 생산력에 걸맞게 그 이전의 체제에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끔찍한 대량살상을 낳는다. 소수의 지배자들은 여전히 전쟁을 통해서 막대한 이득을 챙기고 제국주의 국가는 군사력을 통해 패권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평범한 사람들을 거리로 나가게 만들고 있다. 인간의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거대한 물결의 반전운동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독후감/창작| 2004.05.27| 2페이지| 1,000원| 조회(466)
    미리보기
  • [전쟁] 전쟁은 왜 일어나고, 그 대안은 무엇인가
    전쟁은 왜 일어나고, 그 대안은 무엇인가2001년 9월 11일 세계자본주의의 심장이라는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2대의 항공기 테러로 산산조각나고 펜타곤이 불타올랐을 때, 미국 지배자들의 일방주의적이고 독선적인 정책에 대해 반대하지만 추락하지 않는 독수리 미국이라 생각했던 평범한 전 세계의 사람들에겐 잠시 ‘통쾌함’이라는 느낌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쌍둥이 빌딩에 아침부터 출근해 있었을 사람들이 누구였는가를 떠올려 본다면 그들이 평범한 노동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씁쓸한 기분을 감추기 힘들었을 것이다. ‘테러’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지지할 수는 절대 없다. 하지만 기간의 1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중동의 평범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며 살아야만 했던 삶의 조건들을 되돌아본다면, 모순적이게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현실이 안타깝게 다가온다.미국과 영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발칸반도 등지에서 전쟁을 벌이기 전에도 세계 전역에서 피를 부르는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알제리·앙골라·콩고·소말리아·르완다·체첸·아제르바이잔, 기타 등등. 사실, 지난 20세기를 돌아보면 전 세계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다시피 했다. 그 가운데 단연 두드러진 것은 제1?2차 세계대전이다. 양차 세계대전에서 각각 1천6백만 명과 5천만 명이 죽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양차 대전 사이에 러시아 내전, 중일전쟁,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 아일랜드 독립전쟁과 내전, 스페인 내전 등이 있었다.1945년 이후의 유력한 흐름은 냉전이었다. 그러나 한반도, 말레이시아, 아덴, 그리스, 쿠바, 과테말라, 베트남, 캄보디아, 짐바브웨, 모잠비크,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아일랜드, 엘살바도르 등지에서 수많은 국지전이 벌어졌다. 목록은 거의 끝이 없다. 전쟁을 시작할 때마다 지도자들은 평화, 안보,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쟁이 끝날 때 평화는 다음 전쟁 때까지 휴지기일 뿐임이 밝혀진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부시와 블레어가 이라크 점령에 성공한다면,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리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토록 많은 생명을 파괴하고 인간적 자원을 엄청나게 낭비하는 전쟁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수천 년의 역사와 수백 년의 이른바 서양 문명과 계몽주의에도 왜 우리는 여전히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오히려 전보다 더 끔찍한 전쟁이 더 빈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인간 본성 탓이라고 간단히 무시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체념이나 심지어 전쟁 정당화로 연결될 뿐,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못한다. 또한 잘못된 설명이기도 하다. 그것은 인류가 수렵·채집 생활을 하면서 수백만 년 동안 전쟁 없이 살았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 또, 왜 세계 일부 지역에서는 오랫동안 평화가 지속된 반면 중동 같은 다른 지역들은 충돌의 온상인지도 설명할 수 없다.민중 봉기를 제외하면, 전쟁을 벌이는 것은 “민중”이 아니라 정부와 국가다. 정반대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정서·이상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층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가 다반사 이다. 그리고 자국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그 국가를 통제하는 지배계급의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현대 세계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먼저 우리가 살고 있는 경제 체제, 즉 자본주의 내부에는 전쟁으로 치닫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아야 한다.자본주의는 경쟁적 착취 체제다. 소수의 지배자들이 압도 다수 노동자들로부터 날마다 부를 쥐어짜내는 것 자체가 격렬하고 끊임없는 충돌을 낳는다. 이런 충돌을 봉쇄하고 억압하기 위해 부자들은 사회 위에서 그것을 통치하는 국가 기구들 즉 군대, 감옥, 경찰 등등의 특별 기구들을 만들어 낸다. 이런 국가는 자국민을 통제할 뿐 아니라 영토, 무역, 자원 등등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국가나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능력도 있다. 그 때문에 전쟁의 역사는 곧 착취의 역사였다.대략 5백 년 전 서구사회에서 자본주의가 등장하자 이것은 더욱 강화됐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기업주가 아무리 개인적으로 인간적이더라도 기업은 모두 다른 기업과 끊임없이 경쟁해야만 한다. 이런 경쟁이 자본주의체제 전체를 정의한다. 구멍가게는 구멍가게끼리 경쟁하고, 백화점은 다른 백화점과, 섬유회사는 다른 섬유회사와 경쟁한다.결국, 경쟁은 자본을 더 많이 축적하기 위한 경쟁이다. 이런 경쟁 압력 때문에 자본주의는 그 전 어떤 경제 체제 보다 더 파괴적이고 더 위험하기도 하다.자본주의 나라들 내에서는 국가가 노동자들을 억압할 뿐 아니라, 일반으로 말해 자본주의 기업들 간의 경쟁이 합법적·비폭력적 한계를 벗어나지 않도록 유지하는 구실도 한다. 그러나 경쟁은 사라지지 않으며 국가를 통해 국제적으로 재연돼 거듭거듭 전쟁으로 이어진다.18세기와 19세기 초에 영국 국가는 인도, 캐나다, 서인도제도, 마침내 유럽을 지배하기 위해 프랑스와 전쟁을 벌였다. 산업혁명에 성공하고 이런 전쟁에서 승리한 덕분에 영국은 19세기에 사상 최대의 제국을 거느린 세계 지배 국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20세기의 끔찍한 전쟁들은 단순히 자본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제국주의라는 19세기 말에 시작된 특정 단계의 자본주의의 산물이었다. 19세기 말에 자본주의 공업은 유럽의 모든 주요 열강으로 확산됐고 중소기업들 간의 경쟁은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거대 독점자본들 간의 경쟁으로 바뀌었다.그 결과 몇몇 제국주의 열강들이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을 정복하고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군대들이 별볼일 없는 무기를 가진 “원주민들”을 학살한 식민지 전쟁들이 잇따랐다. 그러나 그것은 또 여태껏 상상하지 못한 대규모 전쟁을 가능하게 하기도 했다.세계가 이미 분할돼 있었으므로 유럽 국가들 간의 경제적·군사적 세력 관계 변화가 곧바로 세계 새로운 분할로 이어지게 됐다. 특히, 독일이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유럽의 주요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다. 독일은 1870년에야 통일 국가가 됐으므로, 19세기에 진행된 식민지 쟁탈전에서 빠져 있었다.그러나, 이제 독일은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또는 중동부 유럽에서 독일의 “정당한” 몫을 차지하기로 결심했다. 영국·프랑스·러시아는 이를 저지하기로 결심했다. 이것이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결과의 진정한 원인이었다. 유럽의 지배계급들은 식민지와 이윤을 위해 자국 노동자들과 청년들을 전쟁터로 보내 서로 수백만 명을 죽이게 했다.제2차 세계대전은 근본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연속이었다. 영국 정부가 전쟁을 벌인 이유는 파시즘에 반대했기 때문이 아니라 영국 제국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미국이 전쟁에 뛰어든 것은 프랑스 국민을 해방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태평양에서 일본의 위협에 맞서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미국은 궁극적으로 독일의 도전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오늘날의 전쟁들도 근본적으로 똑같은 제국주의적 이윤·정복 행렬에서 비롯한 것이다. 물론 그 상황은 다르다. 1989∼91년 소련의 붕괴로 새로운 상황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 때 미국 지배계급은 미국의 거대 기업이 지배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확립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세계의 주요 산유국들을 지배하는 것이었다.미국 국가에게 2001년 9월 11일은 또 다른 “기회의 창”이었다. 그 덕분에 부통령 딕 체니,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그의 부관 폴 월포위츠, 기타 주변 인물들은 이런 전략을 공격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확신했다. 그들의 목표는 이라크 석유에 대한 지배권을 얻고,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미국의 지배력을 강화하며, 어떤 국가도 미국의 권력을 무시하거나 앞으로 그에 도전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보내는 것이었다.바로 이것이 지금의 상황을 매우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영국의 지배자들은 언제나 세계 무대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으로, 유럽에서 미국의 주요 대리인으로 역할을 해왔다.그러나 중동과 세계 다른 지역의 국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을 주도하고 싶어 하는 프랑스나 독일도, 러시아나 중국도 미국의 힘 앞에 순순히 주저앉지 않는다.이후의 충돌 가능성은 끔찍하며,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동안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평화로운 세계, B-52 폭격기·집속탄·핵전쟁 위험이 없는 세계를 원한다면 이 전쟁에 있는 힘껏 저항해야 함과 동시에, 그 본성상 전쟁을 낳는 자본주의 체제를 끝장내는 운동도 건설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과학| 2004.05.27| 4페이지| 1,000원| 조회(350)
    미리보기
  • '이갈리아의 딸들' 서평 평가A좋아요
    이갈리아의 딸들2003년 9월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렸던 제 5회 월경페스티벌에 참여했던 신선한 경험을 안고, 함께 갔던 친구의 권유로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가슴속에 깊이 남아있다. ‘여성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무척이나 새로운 상황설정은, 월경페스티벌에서 보여주었던 ‘월경하는 남성’이라는 주제의 연극처럼 그것을 접하는 남성들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으로 느껴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가령 ‘강요된 침묵 : 억압과 폭력의 남성 지배문화’(엠마뉴엘 레이노, 2001)라는 책에서 작가가 여성들이 느끼는 일상적인 신체적 위혐감에 대해서 주장하면서 남성들에게 던진 다음의 질문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이성애자인 당신이 동성애자(게이)와 단 둘이 밀폐된 공간에 있게 된다면 어떤 느낌이 들것 같은가?”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대부분의 예술 작품에서 사회적 문제를 다룰 때 소위 전형적인 상황과 인물을 설정한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한 개인의 사고체계는 매우 복잡하고 모순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여성 억압이 구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례들이 대체로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그려진 것과 똑 같은(현재와 성 역할이 바뀌긴 했지만 남성을 여성이라고 부른 것뿐이므로) 경우를 현실에서 직접 보는 것은 쉽지는 않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을 읽는 여성이나 남성이나 읽는 동안 오늘을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비추어 보아 조금은 과장되고 어색하게 다가오는 지도 모르겠다.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처음 이 책이 발간된 이후 20여년의 시간이 지났고 남성과 여성이 뒤바뀌기는 했지만 당시 여성이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 설명해 주고 있다. 그동안 흘러간 시간만큼이나, 민주주의의 확대와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해온 역사만큼이나 오늘날 여성의 삶의 조건은 달라져왔다.하지만 여전히도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삶을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현실이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일상적인 강간의 위협과 가정 내 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며, 사회의 생산 영역에 편입되더라도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일이며 남성은 도와줄 뿐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출산과 양육에 있어서도 여성은 대상화된 수단일 뿐이지 그 주체로서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 출산·양육의 혜택은 사회 전체가 얻는데도 말이다. 임금에 있어서도 가족임금 제도로 인해 가장 양성평등적 제도가 잘 갖추어져 있다고 하는 북유럽 국가들에서 조차도 남성 임금의 80%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지금도 ‘행복한 가정주부’가 되는 것이 여성들이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말하는 여성이 많이 있을 정도로 사회진출을 통해 자신의 자아실현을 한다는 것은 여성에게 먼 일처럼만 보인다.오늘날 자본주의의 한계들이야말로 중요한 개선을 가로막는 핵심 장벽이다. 보육시설 확대, 남녀간 임금과 기회의 평등, 여성의 능력계발 등은 대규모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법적 평등과 여성 교육을 위한 오래된 투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임금과 기회의 진정한 평등은 여전히 먼 일이다. 여성은 여전히 불안정한 삶과 신체적 공격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다.
    독후감/창작| 2004.05.27| 2페이지| 1,000원| 조회(687)
    미리보기
  • [언론법제] 표현.언론의 자유에 대하여
    표현?언론의 자유에 대하여.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굳이 둘을 구별하자면 언론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 중에서 언어와 인쇄를 매체로 사용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가기 위해서 먼저 표현의 자유 일반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밝히고 난 후에 그 중에서도 특히나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서 서술하겠다.사람의 얼굴 생김이 다양한 만큼이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 역시 무척이나 다양하다. 모든 개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를 가지며 타인의 그러한 권리에 대해서도 존중해 주어야 하는 의무 또한 가진다. 물론 그것은 표현의 청중, 관객, 독자가 되는 이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면서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완전히 무시해도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즉, 새벽에 확성기를 틀어놓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표현의 자유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일정 부분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지는 실재로 방종에 더 가까운 자기표현에 대한 규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포르노’에 대한 규제나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문제에 대해서 국가권력이 일정부분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고 현실에서도 그런 규제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준을 가지고 규제를 할 것인가는 소수의 결정권자에게 맡겨져 있고, 공정성과 ‘정의’의 원칙보다는 결정권자들이 가지는 계급적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이 대부분이다.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그 사회체제가 권위적인 사회일수록 더욱 강력하게 나타난다. 70~80년대 군사독재 시절에 TV,영화, 출판 등에 있어서 더욱 검열이 심했고 평범한 사람들의 복장과 패션에 대해서도 규제를 가했던 역사적 경험이 이를 뒷받침 해준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는 그것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설파하는 다양한 도덕적 이유들 이면에 사회 구성원들을 국가 권력이 통제하려는 의도가 깊게 깔려있기 마련이다. 한 예로 지배자들은 자신들이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을 때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을 취해서 지배자들을 향한 대중의 분노를 잠재우려고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최근 노무현 정권을 비롯한 기성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분노가 달아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를 도입하려고 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또한 국가 안보를 핑계로 한 표현의 자유 억압은 사상의 자유에 대한 억압의 형태로 나타난다. 지난 99년 마르크스주의 서적을 출판하는 ‘책갈피’출판사 대표가 이적표현물을 출판했다는 죄목으로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었던 사례가 보여 주듯 북한에 대해서 비판 하며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이야기하는 책이라 할지라도 지배자들을 위협하는 사상에 대해서 탄압하는 것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예외 조항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마르크스는 그의 저서 ‘공산주의 선언’ 첫 문장에서 “지금까지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계급투쟁에서 어떤 사회세력이 승리하느냐에 따라서 역사는 진보하거나, 투쟁하는 두 세력의 공멸로 끝이 났다고 즉 퇴보하기도 했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역사를 통틀어 보았을 때 시기에 따라서 불균등 하기는 하나 사회는 진보해 왔다. 좀더 일상적인 표현으로 바꾸어 보자면, 인간의 역사는 개인의 자유가 더욱 확대되어 온 역사이다. 물론 그것은 선한 지도자에 의한 시혜도 아니었고, 매우 특별한 개인들에 의해 얻어진 것도 아니었다. 주인의 사적 소유물이었던 노예에서 비록 불평등한 조건이긴 하지만 신체의 자유를 얻고 고용주와 자유계약을 할 수 있는 노동자가 되기까지 그 역사는 많은 피를 요구해왔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사회에서는 그 사회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모든 종류의 투쟁을 지지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할 것이다.언론의 자유는 앞서 밝힌 표현의 자유의 한 부분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일상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매체가 필요하며 그것을 담당하는 것이 언론의 기본적인 역할이다. 또한 한 사회의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의 기능을 담당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언론의 역할로 인해서 언론은 공공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양한 언론기관이 존재하고 그 설립취지에 따라 자신의 독자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즉, 완전히 중립적인 언론이란 존재할 수 없다.
    사회과학| 2004.03.20| 2페이지| 1,000원| 조회(356)
    미리보기
  • [정치외교] ASEM의 발전과 제문제
    ASEM의 발전과 제문제1996년 3월 1일 아시아와 유럽의 동반자 관계 구축을 목적으로 설립 된 아시아유럽정상회의 (Asia-Europe Meeting). 1994년 10월 싱가포르에서 WEF(World Economic Forum:세계경제인포럼) 주관으로 개최한 아시아·EU(European Union:유럽연합) 회의에서 구상하였다.참가국은 2000년 현재 아시아에서는 브루나이·중국·인도네시아·일본·필리핀·싱가포르·말레이시아·한국·타이·베트남, 유럽에서는 EU(European Union:유럽연합) 15개국이다. 자유무역 촉진, 양 지역의 무역과 투자 확대, UN(United Nations:국제연합)의 개혁 촉진, 환경문제 개선, 약물·화폐위조·국제범죄·테러에 대한 협력강화 등에 노력한다.아시아적 입장에서 본다면 ASEM은 90년대 초반부터 유럽지역에서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배타적 지역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며, 유럽의 입장은 역동적인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과의 체계적인 연결고리를 마련하여 미국의 영향력이 독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ASEM의 전개⑴ 2차 대전 종료 전 - 유럽과 ASEAN 국가들 간의 관계는식민-피식민지 구도 위에서 형성⑵ 2차 대전 종류 후 - ASEAN 국가들의 독립 후 기존관계의 청산으로 인해그 동안 공유하였던 이익 상실에 대한 우려 존재.⑶ 1973년 - 영국이 EC에 가입할 것이라고 전망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영국 시장에서 영연방국가로서의 특혜를 EC에서도 누릴 수 있도록 하기위해72년부터 EC회원국들과의 관계 확대에 주력⑷ 1980년 - 1978년 1차 ASEAN-EC장관회의(AEMM)에서 공식적인 정치적 대화 시작,1979년 경제문제를 주제로 한 협의 추가.1980년 EC-ASEAN 기본협약을 통해 제도적으로 정착⑸ 1991년 - 9차 AEMM 회의에서 경제적 대화로 발전시키려는 본격적 시도되었으나동티모르 둘러싸고 포르투갈-인도네시아 갈등으로 무산⑹ 1994년 - 독일 칼루스에에서 열린 11차 AEMM에서 양측이 균형 된 동반자적 관계로 발전할 것에 합의 -> ASEM 성립 기반 마련⑺ 1, 2차 ASEM정상회담⑻ 3차 ASEM 정상회담. 2000년 10월 한국의 서울에서 개최※ 몇 가지 살펴볼 점① ASEM 정상회담에 대한 초기 한국 일본의 입장: 일본의 경우 초기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통상관계나 안보차원의 대미관계에서 마찰이 빚어질 것을 걱정하여 태평양지역 국가들의 눈에 배타적으로 비칠지도 모를 대화기구에 참가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했다.한국의 경우도 대유럽관계 제고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었으나 어떤 손익을 갖게 될 것인가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소극적 태도 보였다.② 왜 1996년이라는 특정 시점에 ASEM은 시작되었는가?: APEC의 진행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고 미국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확대 될 것이라는 우려를 유럽이 가지고 있었다.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이 교역상대국들에게 지나치게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일방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자유무역에 대한 이론과 태도가 일치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따라서 ASEM은 이러한 불만을 미국에 전달하는 수단으로 인식되었음.③ ASEM이 가지는 의미: 1995년 수립된 WTO 체제의 원칙 위에 미국, 유럽, 아시아를 묶는 연결 고리. 또한 미국으로 하여금 정직하게 다자주의에 응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 할 수 있다. 미국이 공격적으로 일방적 통상정책을 집행하려고 할 때 이르 집단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특히나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유럽의 EU와 같이 미국의 일방적 경제정책에 대응할 만한 구체적인 수단을 결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ASEM을 협상력 제고의 수단으로 인식했다.⊙ ASEM의 문제점⑴ 제도화 수준 조절의 문제- 아시아 회원국들은 ASEM이 개별국가들의 주권을 제약할 정도로 제도화되는 것 거부.But, 대화의 과정 감독 통제하고 협약불이행 처벌할 수 있는 제도 없이는 가시적 성과산출해 내기는 어려움이 있다.- 연성제도화 : 공식적이고 법적인 지위가 부여되지 않은 다양한 차원의 접촉을 빈번하게 가짐으로써 타협과 조정 시도함. 결론은 합의에 의해 도출되며 회원국의 자발적 선의에 의해 추진되어짐. 그러나 ASEM은 자신의 운영을 다각적으로 지원할 전문화된 기구들이 미비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 장기적으로는 법적, 제도적이라기 보다는 구조적이며 실질적인 협력에 기초한 것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ASEM에서 아시아 회원국들이 해결해야할 문제는, 아시아 국가들이 당면한 정치경제적 상황이 유럽국가들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설득하고 인식시킴으로 해서 협상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어내는 도구로 활용할 것인가 이다.⑵ 아시아적 정체성의 활용 문제- 아시아의 제도적 통합은 유럽의 그것에 비해서 훨씬 뒤떨어져 있다. 아시아라고 불리는 지역 내에도 수없이 다양한 문화적 역사적 다양성이 존재하고 있으며 통합의 주요요인 이라고 할 수 있는 지리적 인접성도 결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시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아시아인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만의 가치가 경제적 발전요인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보여진다.♣ 아시아적 가치①사회조직의 중심은 가족이며, 가족의 개념이 정치체제내에서의 책임과 권위의 구성모델을 제시한다.②공동체와 집단의 이익이 개인의 그것에 우선한다. 따라서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공동체에 대한 의무에 종속된다.③정치적 결정은 대립보다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 진다.④사회적 통합과 조화가 우선권을 가지며 이는 도덕적 원칙과 강한 정부에 의해서 달성된다.⑤경제적 성장은 사회통합과 강한 정부의 산물이다.- 미국의 약탈적 자유주의에 대한 반발로 아시아 국가들이 집단 행동을 보이는 경향이 있으며 대항을 위한 사상적 도구로서 아시아의 정체성이 이용되고 있다.- 동아시아 경제협력체(EAEC) : 1990년 12월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에 의해 제안됨.* 아시아적 정체성이 현실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한 예.* 순수한 동아시아 국가들만으로 구성된 정치경제적 공동체 수립을 지향,미국과 유럽의 정치경제적 힘에 맞서고자 하는 아시아인들의 시도라는 점에서APEC과 구별 됨.But, 미국은 일본 주도하의 반미적 경제공동체 형성 반대말레이시아를 포함한 동남아 국가들은 자국 경제의 일본종속화 우려세계경제에 의존적인 동남아 국가들은 자신의 경제활동 범위 축소될 우려유럽과 미국으로 하여금 더욱 배타적 경제블록 형성 유도하게 될 가능성
    사회과학| 2003.12.17| 4페이지| 1,000원| 조회(272)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2
2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0
  • A좋아요
    1
  • B괜찮아요
    1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22일 금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0:19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