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1919년 단성사에서 상영된 ‘의리적 구투’로부터 시작된 한국의 영화 시장은 60년대 잠시 황금기를 맞이한 이후 계속해서 외화와의 경쟁에 밀려 침체기를 걷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한국 영화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 CJ CGV에서 발표한 2004년 5월 영화산업분석 자료에 따르면 5월 서울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61.4%로 집계됐으며 1월부터 5월까지 68.1%의 점유율을 유지했다. 이제 더 이상 한국영화를 극장에서 보면 돈 아깝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와호장룡’, ‘영웅’의 프로듀서인 에드코 필름의 빌 콩 대표는 “아시아에서 가장 존경하고 부러운 영화가 한국영화다. 작가와 감독의 창의성이 놀랍다. 아시아에서 한국영화가 있어 자랑스럽다.”고 한국영화 수준을 높이 평가했다.90년대 ‘쉬리’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타이타닉’을 침몰시킨 이후 한국영화는 계속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세계적으로 자국영화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30% 정도를 유지하는 나라는 미국을 제외하고는 일본, 프랑스 정도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현재 50%를 훨씬 넘고 있어 최소한 국내 에서는 미국영화를 압도하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 보이’가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영화의 힘’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지난달 ‘뉴스위크’는 ‘Hollywood East’(할리우드의 동쪽)라는 커버스토리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대를 세밀하게 다뤘다. 바야흐로 한국영화 90년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시장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셈이다.앞으로 영화산업이 지니는 가치와 세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한국영화의 역사적인 발전과정을 살펴봄으로써 현재의 양적, 질적 성장의 이면에 숨어있는 문제점을 찾아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에 대해 연구해보겠다.본론1. 영화산업의 가치1) 고부가가치 창출새로운 학문으로 등장하는 문화경제학 (Cultural Economics)은 문화투자가 국민 경제에 있어서 최종 소비적 의미만 가지고 는 것이 아니라, 생산, 고용 및 부가가치와 같은 경제지표에자의 등록제를 도입한 것이다. 영화법이 공보부에 등록한 제작업자만이 영화를 제작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국가가 영화를 ‘산업’으로 인식하고 영화산업을 정부의 규제 아래 두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국산영화 수출추천제와 함께 외국영화 수입추천제를 실시함으로써 외화 수입이 규제되어 1959년도에 최고 203편까지 수입되던 것이 1962년에는 79편으로 줄어들게 된다. 이 최초의 영화법은 규제조항이 대부분이라는 특성을 가진다.이것은 1963년에 단행된 1차 개정을 통해서 본격적인 ‘기업화 정책’으로서의 성격을 띠게 된다. 제작업자의 구비 시설은 35미리 이상 촬영기, 조명기, 건평 200평 이상의 견고한 시설로 된 스튜디오, 녹음기, 전속의 영화감독, 배우 및 기술자 등이며, 연간 15편 이상의 국산영화 제작 실적을 유지하지 못한 경우에는 등록을 취소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은 상당한 물적 조건과 인력을 갖춘 영화사만이 영화를 제작하도록 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도록 한 것이지만, 지나친 등록요건은 몇몇 영화사만이 살아남도록 하였다. 이것이 영화산업을 쉽게 통제하기 위한 의도였음은 쉽게 알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제작사 중심의 편향된 산업구조를 낳았다. 그리고 외국영화 수입추천권을 국산영화제작, 수출편수 및 수상실적과 연계시키는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수입쿼터를 국산영화 제작업자에게 돌려주는 제도를 마련하였다. 제작편수가 1962년부터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는 것은 역시 이 수입추천권을 따내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장기적으로는 수입추천권을 따내기 위한 저질작품 양산의 원인이 된다. 본격적인 기업화 전략은 제작편수와 수출편수 같은 규모를 강조하는 특징을 보이는데, 이에 따라 영화제작 편수는 꾸준히 증가하였고, 수출편수 역시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1966년의 2차 개정에서는 연간 의무제작편수를 15편에서 2편으로 완화했고, 스크린쿼터제를 도입했으며, 외국영화 수입쿼터제를 신설하고 국제영화제 출품 및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2년을 기준으로 관객 수 천만 시대가 열린 것이다. 작년, 극장 매출은 7천억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영화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라 하겠다. 이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한국영화의 관객 점유율이다. 2002년까지 엇비슷한 점유율을 보였지만 2003년은 헐리웃 영화로 대표되는 외국 영화를 훌쩍 뛰어넘는 성과를 보여주었다. 이는 등 작년 한해 굵직한 대박 영화의 성공뿐만 아니라 멀티플렉스 극장의 확산과 현존하는 스크린 쿼터제, 관객 인식 변화와 같은 여러 요인에 따른 결과일 것이다.. 연도별 전국 상영관 현황{연도극장수스크린수좌석수멀티플렉스* 스크린수(%)*************,068168(20.5)2002309977240,652432(44.2)20032801,132256,474595(52.6)* 7개관 이상. 2003년 전국 상영관 현황{시 도 별극장수스크린수좌 석 수2002년 스크린수서 울5527264,075252부 산178021,71975대 구86414,88348인 천105612,71541광 주104311,31540대 전7397,57442울 산6164,94117경 기5728353,756218강 원17206,74521충 북9245,77626충 남13326,42425전 북154310,78235전 남144710,66631경 북16407,99948경 남194911,68435제 주7245,42023합 계2801,132256,474977전국 상영관과 스크린 수이다. 상영관은 서울, 경기 수도권이 압도적으로 많다. 특이한 점은 위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극장 수는 줄어가는데 비해 스크린 수는 늘어간다는 것이다. 이는 멀티플렉스 극장의 출현으로 설명할 수 있다. 멀티플렉스란 원래 6개 이상의 스크린과 최첨단 설비를 갖춘 극장을 의미한다. 많은 스크린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영화를 다양한 시간대에 골라볼 수 있는 선택권을 준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이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시설의 선택권까지 인프라 구축은 새로운 영화진흥정책의 과정이므로 스크린쿼터와 맞바꾸는 식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리고 2002년 이후에 쿼터축소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다는 견해를 제출했으나 이런 주장이 무시되고 다시금 한미 정부간의 일방적 협상의 조짐이 보이자 영화계를 비롯한 문화인들은 전국적이고 국제적인 서명운동을 전개하였다.(1999년 10월)과정 5. 2000년 2월에 한국에서의 스크린쿼터 사수투쟁을 기록한 영화 '노래로 태양을 쏘다'가 베를린 영화제 영포럼 부문 공식 초청받고,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영상문화 다양성을 위한 국제연대기구' 구성을 세계 영화인에게 공식 제안했다. 깐느 국제영화제에서 '영상문화 다양성을 위한 국제연대기구'(Coalition for Cultural Diversity in Moving Images, 공식 홈페이지 www.screenquota.org ) 구성을 위한 국제 연대활동을 개시하였다.다음에 첨부된 내용은 스크린쿼터제의 경제적 효과와 한미투자협정(BIT)에 관한 스크린쿼터 문화연대의 보고서이다.1. 스크린쿼터제는 한국 영화산업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해 온 시스템이자 일종의 ‘범퍼’였다스크린쿼터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에 대한 자본공급을 안정화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향후 스크린쿼터가 축소될 경우 매우 심각한 경제적 부작용이 예상된다. 그 파생효과에 대한 우리의 연구결과를 금액으로 산정하면 다음과 같다. 현행 146일 상영, 한국영화산업 규모 2조6,248억을 기준으로 할 경우, 스크린쿼터 1일 축소할 경우 영화시장의 규모는 약 327억 9천 6백만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10일 축소 시 약 3,084억 3천 2백만원, 20일 축소 시 5,736억 6천 8백만원, 30일 축소 시 약 7,955억 5천 8백만원, 40일 축소시 9,741억 5천 3백만원, 그리고 50일 축소 시 1조 1,094억 5천 2백만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스크린쿼터는 한국 영화시장 보제작에 들어간다. 물론 영화라는 것이 흥행이 되어야만 자금을 회수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됨으로써 더 많은 투자자금의 유입과 그로 인한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보다 질 좋은 영화가 탄생하게 된다는 데에는 별다른 이의가 없다.하지만 흥행이 되는 한 장르만의 영화, 즉 오락이나 폭력 일변도로만 영화가 제작되면 저예산 영화나 단편영화, 독립영화 같은 예술적, 그리고 사회비판적인 영화의 기능들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한국영화계에서 무조건 오락, 폭력 장르의 영화만을 만든 것은 아니다. 라든지 , 와 같은 영화들이 그러한 장르를 탈피해서 잔잔한 감동을 주었고 비록 고양이를 부탁해 는 흥행에 실패했었지만 와 는 작품적인 면에서나 흥행적인 면에서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았던 것을 보면 아직 이러한 장르 편식 문제에 있어서 그 해결점이 안 보이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더욱이 우리는 홍콩의 영화 산업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홍콩영화를 대표했던 장르는 느와르와 무협액션이었다. 그러나 홍콩은 새로운 장르에 대한 시도가 부족해 현재는 시장이 많이 위축되어 있는 상태이다. 현재 승승장구하고 있는 한국 영화산업의 근간에는 소재의 다양화이다. 앞으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꾸준한 발전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장르의 개발, 소재의 다양화가 필수적이다.2) 소수 스타의 겹치기 출현스타 시스템은 할리우드 영화산업에서 비롯되었으며 흥행의 성공을 보장하고 소비를 유통시키는 대중문화의 중추로서 스타를 생산 관리 활용하는 미국적 자본주의 상업주의의 산물이다. 스타는 기대 수익이 높은 대신에 짧은 생명주기로 인한 불확실성과 그에 따른 위험 프리미엄으로 더욱 유명해지고 더욱 높은 시장 가격을 호가한다. 한국 영화계 역시 적은 수의 스타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스타들이 소화해 내지 못하는 영역은 있기 마련이고, 기획하고 있는 작품의 캐릭터가 그 배우들 속에 없을 수도 있지만, 대개 영화인들은 새로운 배우를 찾기보다는 작품을 스타에 맞춰 수정하는 쪽.
{수요공급 살인사건을 읽고...사랑=상호의존적인 효용함수「수요공급 살인사건」은 두 명의 경제학자(윌리엄 브라이트와 케너스 G 엘징거)가 마셜제번스 라는 필명으로 경제학적 관점에서 쓴 추리소설이다. 제목에서 보이듯이 이 추리소설에서 사건해결의 주요 열쇠는 수요와 공급 법칙이다. 수요공급법칙은 경제학의 가장 기본이자 핵심적인 법칙으로 값이 싸지면 더 많이 소비하고 값이 비싸지면 덜 소비하는 소비자의 행동을 설명한 이론이다. 이 책은 사건의 해결자로 하버드대의 경제학자인 헨리 스피어맨을 등장시켜 경제학적으로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범인을 찾아낸다. 헨리 스피어맨은 모든 행동을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려고 한다. 심지어는 사랑 마저도 경제학적으로 상호의존적인 효용함수 라고 표현한다.이야기는 한 휴양지의 호텔에서 시작된다. 호텔에서 두 번의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첫 번째 희생자는 전직 장군출신의 남자이고, 두 번째 희생자는 전직 판사출신의 남자이다. 이 둘은 서로 연관성이 없지만, 각각 자신의 행동 때문에 그들을 적대시 하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때문에 그 지역의 유일한 형사는 용의자중 그들에게 적대적이고 지역 흑인 운동을 주도하는 두 명을 범인으로 체포하고 그들로부터 자백을 받아내지만 그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던 스피어맨 교수는 휴가 중에 관찰했던 사람들의 행동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위배되는 행동을 한, 즉 오히려 비싼 값에서 소비를 한 진범을 의심하게 된다. 결국 스피어맨의 경제학에 근거한 범인의 추리는 적중하고 진범을 잡으면서 이야기는 끝난다.경제-고리타분한 학문?경제학 혹은 정치학 등 접미사에 학문을 의미하는 -학 자가 붙으면 일반인들은 그로부터 거리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대학의 전공자에게나 필요한 것으로 치부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학문들과 마찬가지로 경제학 역시 우리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에 있고 우리는 매일매일 경제 활동을 하고 있다. 「수요공급 살인사건」은 딱딱하게만 생각되는 경제학을 흥미를 끌 수 있는 추리소설과 접목시켜 쉽게 이해시키려하고 있다. 책의 첫 페이지를 펼쳤을 때 간간히 설명적으로 등장하는 경제학적인 개념들에 책의 전반을 짐작하고 역시 경제학과 추리소설이라는 분야의 접목이 무리였다. 고 실망하는 감이 있었다. 하지만 책은 후반으로 갈수록-책에서 사건의 해결을 위한 경제학적 요소의 힌트를 주기위해 활자를 흐리게 인쇄한 부분이 없었다면-일반 추리 소설을 읽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둘 사이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경제학에 쉽고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얼마 전 TV시사 프로그램에서 강남의 집값에 대해서 다룬 것을 보았다. 그들이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기를 간단한 경제학의 논리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기준하여 아파트의 가격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데 무턱대고 아파트의 신축을 금지시키고, 높은 세금만으로 거래를 줄이려고 하니 오히려 집값을 더 오르게 하려는 정책이라고 했다. 그 프로를 본 후 에 그 내용을 떠나서 그들이 강남 문제를 경제학적인 마인드로 분석하는 모습에서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에게 경제학적인 마인드가 얼마나 내제되어 있는가? 나 역시 경제학을 학문으로만 바라봤지 실용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 론지난해 10월 우리 극장가에 퓨전 역사극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영화 이 개봉했다. 은 서기 660년 현실주의자 김유신의 5만 군과 우직한 계백장군이 5천 군사를 이끌고 '황산벌'에서 대결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상사와 전투를 다룬 영화다. 영화는 신라의 언어와 백제의 언어(지금은 경상도사투리, 전라도사투리라고 부르는) 사이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코믹하게 다뤘다. 영화 속의 '거시기'는 이 영화의 화두다. 거시기 는 전라도 사투리로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잠시 영화 속의 대사를 빌려오자.{계백장군 : 이번 황산벌 전투에서 우리의 전략 전술적인 거시기는 한마디로 머시기 할 때 까정 갑옷을 거시기 하는것이여.영화 중계백장군의 저 말은 첩자를 통해 신라진영으로 흘러들어 간다. 신라에서는 암호해독관을 등장시켜 해석을 시도한다. 지금은 이런 상황이 코믹스럽게 그려지지만 거시기 에 대한 사용이나 경험적 공유가 없었던 신라인들에게 그것은 암호와도 같은 것이었다.이제 이 거시기 를 들고 비트겐슈타인으로 가보자.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후기 철학에서 단어를 반복해서 보고, 어떻게 사용되는가를 통해서 의미를 알게된다고 생각했다. 거시기 는 그것이 쓰이는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생활형태가 같은 백제라는 사회에서는 통용되지만, 신라에서는 무의미한 단어가 된다.이런 현상은 현재 사이버 상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지금의 우리는 한국이라는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다. 백제와 신라의 물리적 사회가 사이버 상으로 확장되면서 언어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사이버 상에서 물리적인 요소들로부터 벗어나 세분화된 목적에 따라 새로운 커뮤니티들이 생성되었다. 이런 커뮤니티 활동 중에 우연적으로 또는 필연적으로 커뮤니티에서 통용되는 새로운 단어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렇게 사이버 상에서 생성된 신조어들은 오프라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점차 그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이렇듯 지금까지 딱딱한 틀 안에 갖혀있던다시금 상아탑을 나와 은거와 방랑을 거듭하다 1951년 작고하였다. 그가 남긴 3만 쪽에 이르는 노트를 제자들이 정리하여 『철학적 탐구 Philosophical Investigations』를 비롯한 여러 권의 유작으로 출간하였다.비트겐슈타인 연구가들은 보통 『논고』를 기점으로 해서 그의 철학을 전기와 후기로 나누며, 후기 철학의 대표작으로는 『철학적 탐구』를 꼽는다. 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철학과 후기 철학의 관계는 아직까지 중요한 쟁점으로 남아있다. 이제 비트겐슈타인의 전·후기 철학의 언어관을 고착하고 이로부터 세계의 개념 및 언어와 세계의 관계 문제가 각기 어떠한 방식으로 유추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2. 비트겐슈타인의 전 후기 철학 비교1> 전기-의미그림이론『논고』에서 비트겐슈타인이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는 “어떻게 언어가 세상을 나타낼 수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른바 그림이론(Picture Theory)에 의해서 이를 설명하는데, 그의 주장을 간략히 요약하면 이렇다. “언어는 세계에 대한 일종의 그림이며, 그러한 한에 있어서 언어는 의미를 갖는다.”{세계사태 (사실)대상언어문장 (명제)이름그는 먼저 그림과 세계의 관련방식(양자 구성요소들간의 대응관계,구조 동일성의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고, 이 방식을 언어에 적용함으로써 언어가 세계의 그림임을 논변한다.“그림 속에 있는 요소는 세계 속에 있는 대상에 대응하고, 그림 속에 있는 요소의 배열은 실재하는 대상의 가능한 배열에 대응한다. 문장은 이름을 포함하고, 이 이름이 세계 속에 있는 대상에 대응하며, 문장 속에서 이름의 배열 역시, 세계 속에 있는 대상의 가능한 배열에 대응한다. 따라서 그림이 위와 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나타내듯이, 언어 또한 그림과 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표상하는 것이다. 언어는 세계에 대한 일종의 그림이다”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실재를 표상할 수 있으려면, (문장이 사태[가능한 사실]를 표상할 수 있으려면) 문장과 사태 사이에 공통적인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문장과 문장생각할 때와 비슷하다.이러한 그의 이론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언어의 의미를 그 언어의 다양한 사용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과 언어가 일종의 게임과 같은 것이기에 (즉, 다수의 참여와 그 게임의 규칙준수가 전제되기에) 언어에는 공공성이 있다는 것이다.우리가 는 것은 마치 놀이를 하듯이 (진지하게 그러나 이것을 의식하지는 못한 채로) 하나의 활동을 하는 것이며, 이것은 언어가 우리 삶의 한 형식이라는 사실을 뚜렷이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말의 의미를 논할 때, 언어의 형식적인 구조보다는 실제적인 활동문맥이, 불변의 대상적 세계보다는 삶의 형식이 초점이 된다. 즉, 한 진술의 참·거짓을 판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언어행위가 주목되는 것이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러한 언어활동의 다양성에 대한 정당화의 근거를 언어활동 자체를 떠나서 찾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마치 다양한 게임들을 통해 이들의 공통된 규칙을 찾지 못하고 다만 가족과도 같은 유사성만을 발견하듯이, 언어활동 역시 그 자체를 벗어난 상태에서 그 의미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또한, 언어활동은 다수가 참여하며 다수가 합의한 규칙 속에서 이루어지기에, 언어란 일종의 집단 게임이다. 즉, 언어는 그 게임의 성격상 공공성을 띈다. 이러한 논의에서 “언어게임의 최종적인 정당성은 그 게임의 집단적 실천에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사적 언어의 불가능성 또한 그의 이론에서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그러나 그의 언어게임이론에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그중 하나는 하는 것과, 또 하나는 하는 것이다.위에서 언급한 대로, 다양한 언어게임이 각자의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특정방식을 실천하는 문맥체계이기에 그 진리기준은 특정문맥에 종속된 상대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실천방식을 인간의 원초적인 (보편적이고 자연적인) 실천방식에 기반을 둔 것이라는 면에서 보면, 진리는 상대적일 수 없다. 물론 우리는 여러 상이한 언어게임 속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모든 언어게임들에 앞서 그것들산출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2> 상호작용과 공동체문화사회적 상호작용성은 사이버 세계가 만들어 가는 또 다른 문화이다. 사이버 세계란 수많은 상호작용과 커뮤니케이션 관계로 형성되는 세계이며 공동체의 세계다. 이런 사이버 공동체는 물리적 공동체에 비해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첫째, 물리적 공동체와 달리 사전에 결정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 의해 선택되고 결정된 것이다. 둘째, 사이버 공동체는 수적인 관심보다는 질적인 관심에 치중한다. 사이버 공동체는 아무리 소수라 할 지라도 모이고 뭉치게 해준다. 셋째, 사이버 공동체는 소수문화, 즉 사회적인 하위문화를 확장시킨다. 즉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거나 저항집단으로 남아 있는 세력들을 하나의 단위로 결합하여 공동체를 형성하도록 만드는 것이 사이버 공동체다. 넷째, 사이버 공동체는 공동체적 규범과 통제를 창출한다. 사이버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은 오로지 성원들의 의자다. 사회적인 규범이나 가치보다는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원하는가에 따라 공동체의 규범을 달라진다.사이버 세계에서 언어적 규범을 깨고 새로운 규칙으로 신조어들이 만들어 질 수 있는 이유는 이런 사이버 세계, 사이버 공동체가 지니는 특징들 속에서 가능하다. 궁극적으로 이런 특징들은 사이버 세계 속의 자아가 자유롭게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사이버 세계 속의 자아는 물리적인 속박에서 벗어나 탈육체화된 자아로 철저히 자기중심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욕망이 서로 맞는 자아들이 모여 사이버 상에 공동체를 형성하여 그들만의 규범 속에서 더욱더 탄탄한 유대관계가 생성된다. 사이버 세계에서 신조어들은 이런 유대관계를 더욱 강화시켜주는 요소가 된다.2. 사이버 언어사용의 사례분석비트겐슈타인의 언어이론을 현재 인터넷과 청소년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몇 개의 단어들로 설명해 보고자 한다. 인터넷 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공동체에는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이 공동체들은 약간의 배타적인 경향을 지니며, 그 구성원들만이오는 즐 이라는 단어는 위에 설명했던 초딩 과 만나면서 정반대의 의미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라인 게임에서는 게임명과 함께 붙여서 리니지라고 하면 즐린 , 바람의 나라면 즐바 , 디아블로의 경우에서는 즐댜 등 여러 사람이 함께 플레이를 즐긴 후에 계속 즐겁게 게임을 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게임에서 다른 게이머들과 관계를 맺을 때도 많이 사용되었다. 온라인 게임의 가장 큰 특성은 익명성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유저들 특히 나이 어린 유저들은 온라인 게임에서 비양심적인 행동 흔히 말하는 사기와 PK(player kill)등을 아무 거리낌 없이 자주 하는데 아이템 장사를 할 때에도 사기를 치려고 하는 유저들이 많다. 따라서 말도 안 되는 금액이나 조건으로 아이템을 사기 치려고 하는 유저들을 만났을 때 즐거운 게임하세요 라는 말보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고 빨리 꺼져라. 됐으니 빨리 꺼져라. 더 이상 보기 싫다" 라는 의미가 담긴 뜻으로 즐 이 사용되고 있다.최근에도 즐 은 두 가지의 상반된 의미로 모두 사용되고 있다.1. 그냥 한 글자로 쓸 때에는 상대의 말을 무시하거나 상대방의 말이 말도 안 된다는 뜻으로 쓰이는 온라인 상의 비속어라 할 수 있다.2. 한편으로 "즐~" 뒤에 게임의 이름을 붙인다면 즐겁게 하라는 좋은 뜻으로 사용된다.물론 최근에 있어서는 1번의 의미로 보다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게시판이나 온라인 게임 속을 들여다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초딩즐”이라는 말이다. 이 말을 해석해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고 얼른 사라져 버려 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리고 최근에 있어서는 즐 의 변형된 형태인 KIN 의 형태로도 많이 사용된다. 이 KIN 의 경우는 즐 이라는 단어의 나쁜 의미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놀리려는 의도로 많이 사용된다.이러한 단어들이 생소한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인터넷 아이디를 소유하고 있는 정도의 수준이라면 이런 단어들을 심심치 않게 접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단어들이 특정 집단 내에서 있다.
외국어 학습 방법 리포트*자신의 외국어 학습목표와 학습환경 소개하기1. 외국어 학습목표 기술하기세계화는 최근 국가 간에 상품, 서비스, 자본 등의 이동을 촉진시키고 정보의 교환을 확대시키는 정보통신기술과 그 인프라가 발달됨에 따라 급진적으로 확대되어 나가고 있다. 그리하여 국가들의 장벽이 없어지고 하나의 생활권을 형성하여 지구촌이라는 용어로 쓰여지고 있기도 한다. 이런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외국어 사용능력은 중요한 요소이다.특히 그 중에서 영어는 세계화 시대의 세계 공용어로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 요소이다. 또한 현대 사회를 지식 기반 사회라 하여 새로운 정보를 얼마나 빠르고 많이 보유하고 있는가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영어가 세계공용어가 된 것은 많은 수의 사람들이 영어를 사용하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세계에 영어권 국가들이 특히 미국이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중요한 정보들은 대부분이 영어로 전해진다. 이런 영어는 정보화 시대에서 정보를 습득하고 활용하기 위해서 꾸준히 학습해야할 대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 사용 능력은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서 즉, 입사하기 위해서 요구된다. 이런 요구는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학원이나 교재 등을 통해서 토익이나 토플 같은 검정 시험에서 고득점을 얻기 위해서 영어를 학습한다. 그렇다보니 대부분의 학습 방법이 답을 찾기 위한 요령을 배우는데 그치고 있다.영어 이외에도 일본어, 중국어와 같은 제2외국어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영어는 기본으로 최근 국제사회의 새로운 무대로 떠오르고 있는 전망 있는 국가의 언어를 학습하고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외국어는 사회에 진출하기 위한 요구조건이기 때문에 소위 찍기 위주의 편법으로 학습하는 것이 요즘의 실태이지만,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꾸준히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목표를 세워야 할 것이다.2. 외국어 학습환경 기술하기나의 외국어 학습환경은 우선 대부분이 토익과 관련된 서적과 테이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주로 했다. 영어를 배우는 것이 아닌 문제를 푸는 것을 배워온 것이다. 이런 결과 내 실제의 영어 대화 실력은 초등학교 때 횡단보도 앞에서 주번을 섰을 때 한 외국인이 내게 "Thank you"라고 말했을 때 "You`re welcome"이라고 말했던 수준에 머물러 있던 것이다. 입시 환경에 적응해나가다 보니 죽은 영어를 연마하고 있었던 것이다.대학을 사회 과학 계열로 진학한 후에는 비단 영어에서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영어 원주민 교수에게 영어 강의를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매우 당황했다.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도 않고 말하는 것도 전혀 연습이 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수업을 들으면서 외국어로 의사 소통한다는데 점점 흥미를 가지고 조금씩 사람들과 영어로 대화를 하면서 익숙해지고 있었다. 마침 수업을 진행하던 강사가 나와 동갑내기여서 그를 통해서 여러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도 한국에서 일정기간 지내면서 한국어를 대충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자연스럽게 학문의 분야가 아닌 일상생활로 대화를 하면서 회화능력을 키워갔다. 머릿속에서 외국어로 사고과정이 이루어지는 순간 죽어있던 문법과 어휘에 생명을 갖게 된 것이다.외국어의 영역을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로 구분해본다면, 지금까지 대부분을 강의와 책들에만 의존해 왔다. 이는 시험에만 대비해왔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대의 경쟁력인 외국어를 시험대비로만 학습한다는 것은 죽은 언어를 배우는 것이다. 외국어 학습에 흥미를 갖기 위해서는 시험 보는 기술이 아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나는 나름대로 책과 강의를 통해 배운 외국어를 익히기 위해서 주로 영작과 영화보기를 하고 친구와 외국어로 대화하기를 하고 있다. 영작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여서 한글과 영어로 된 조그만 포켓북을 가지고 한글을 영어로 옮긴 후 비교를 해보는 것인데 어휘나 문장 구조를 익히는데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영화보기는 외국인과 대화하기를 시도하기 힘들 때,외화를 보면서 그들의 억양과 어감을 익를 공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자투리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따라서 학기 중에는 통학에 걸리는 3시간 가량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고 주말을 이용하고, 방학기간 중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 실력을 쌓아 나갈 것이다. 앞으로 크게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영역에 관해 구체적인 학습계획을 세워보겠다.▷ 듣기 학습 계획그 동안 중고등학교시절의 듣기평가와 토익의 L/C영역을 통해 듣기를 연습해왔다. 그러나 이런 시험을 통해 습득된 듣기 실력은 피상적으로 대화의 일부분만을 통해 답을 찾는 훈련이어서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듣기 실력향상을 위한 방향이 못됐었다. 듣기는 어렵지만 가장 실용적인 분야이다.만약 외국어 방송의 내용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면 영어공부에서 한 차원 벗어난 국제정보흐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외국인과의 대화 중에 상대방의 질문이나 중요한 내용의 언급을 놓치면 비즈니스상황에서는 영어공부를 한 의미가 없게 되는 수도 있다. 무작정 듣는다고 실력이 느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앞으로 듣기에 구체적인 학습계획을 세워보자.듣기의 기초는 발음 현상이다. 발음을 정리하면, 그렇지 않은 학습자 보다 훨씬 빨리 자신이 정한 목표를 이룰 수 있다. 듣기가 안 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소리가 나뉘어서 들리지 않는 것이다. 기본적인 연음법칙이나 생략 등을 정리하면 어느 정도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이렇게 발음을 튼튼하게 해 주면, 나중에 회화 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다음으로 받아쓰기훈련을 지속적으로 할 것이다. 한 학원에서 듣기 수업을 들었을 때 한 달간 받아쓰기 연습을 한 적이 있었는데 듣기와 문법적인 부분에서 큰 도움이 되었었다. 따라서 꾸준한 받아쓰기를 통해 기초적인 문법을 다지고 기본적인 듣기 실력을 키울 것이다. 그 방법은 스크립트가 있는 테이프를 선정해 듣고 적는 것이다. 우선 한 문장을 중심으로 연습을 하다가 두세 문장정도를 한꺼번에 듣고 받아쓸 수 있을 때까지 꾸준히 연습하면 외국어가 좀더 귀에 친숙하고 머릿속에서 좀. 독해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많이 읽지 않기 때문이다. 영문으로 된 소설을 세 번 읽을 것이다. 처음에는 사전 보지말고 모르는 표현에 밑줄을 그으면서 내용을 상상하면서 읽고 두 번째는 사전을 찾으면서 읽고, 세 번째는 내용을 음미하면서 읽는 연습을 하면 실력이 상당히 향상될 것이다. 독해를 할 때 중요한 것은 죽 읽어 나가면서 전체의 뜻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에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오더라도 개의치 않고 계속 읽어나가면 글의 맥락과 표현 방식에 점차 익숙해지게 된다. 그리고 전체적인 뜻을 파악하는 연습을 하면 빠르고 즉각적인 이해력이 저절로 길러질 것이다. 앞으로 한 권씩 여러 분야의 책을 골고루 읽는 습관을 기를 것이다. 그러면 언어지식은 말할 것도 없고 언어 외적인 주제 의식까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쓰기 학습 계획글을 쓴다는 것과 말하는 것은 둘 다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표현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글을 쓰는 쪽이 말하는 쪽보다 훨씬 어렵다. 우리나라 말을 보아도 자명한 일이다. 글을 잘 쓰려면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 을 하라고 하였다. 우리는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그것을 글로써 표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왜 그럴까? 글은 말과 달리 일정한 형식과 논리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을 녹음해서 그대로 써보면 앞뒤가 맞지 않은 말, 동어반복을 무수히 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말도 그러한데 하물며 영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제대로 글 쓰기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문법의 문제이다. 글을 제대로 쓰려면 문법의 비중이 많이 커진다. 따라서 말할 때 보다 문법사항에 훨씬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얼굴을 마주 대고 이야기를 하는 회화의 경우는 상대방이 잘 이해 못하면 다시 설명할 수도 있고, 말뿐만 아니라 몸짓, 눈짓으로 뜻이 통하는 경우가 많지만 글 쓰기는 이런 효과가 없기 때문에 잘못 쓰면 오해의 소지가 커지게 되어서 신중하게 써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영작을 학습함에 있어 문법정 공부는 분명히 적은 양이었고 외국어 필수라는 현실에 대해 민감하지 않았다. 인터넷의 짧은 문장을 해석할 정도이고, 길거리에서 나오는 안내방송 약간 들리는 정도에 스스로 만족하고 있을 때 남들은 나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이며 앞서 나가고 있었다.▷ 나의 외국어 학습 환경은?나는 신문방송학을 전공으로 직접적으로 외국어를 접할 기회는 거의 없는 편이었다. 다만 대부분의 인문계열의 학생들이 그렇듯 매월 토익시험을 치르면서 토익과 관련된 서적과 테이프를 중심으로 외국어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다. 토익은 Listening과 Reading능력만을 보기 때문에 자연히 Speaking과 Writing능력은 이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원어민 교수의 교양을 신청해서 외국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을 떨쳐버리고 친구들과의 외국어 토론을 통해 나름대로 부족한 점을 연습하고 있다.▷ 나의 외국어 학습목적 및 목표는?나의 외국어 학습의 1차 적인 목표는 취업을 위한 자격획득이다. 나는 앞으로 졸업을 한 뒤 일반기업체의 기획실이나 홍보실에 취업할 계획이다. 따라서 현재 직접적으로 필요한 외국어 능력은 토익점수와 비즈니스 실무영어 사용능력이다. 하지만 궁극적인 외국어 학습의 목표는 모국어인 한국어처럼 읽고, 쓰고, 듣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즉, 외국인과의 언어활동에서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지금은 외국어를 도구나 수단으로 학습하고 있지만, 앞으로 언어를 문화로서 의사소통을 위해 학습하고싶다.▷ 외국어 학습 Time Schedule나는 아직 학생의 신분이기 때문에 학습 시간 계획을 세우기 전에 학기중과 방학중의 구분이 필요하다. 외국어와 무관한 전공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따로 시간을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학기 중에는 외국어에 대한 감각을 떨어뜨리지 않을 정도의 학습을 진행해야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학기 중에는 이동시간이나 수업간에 남는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방학중에다.
우리는 직접 경주를 방문(4월 4일 ~5일),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에 걸쳐 경주역사지구를 돌아보았다. 경주라는 이름은 그 이름만으로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경주와 경주가 담고 있는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가. 직접 방문해보지 않으면 그 엄청난 수의 역사유물과 아직도 저 땅 속 어디엔가 묻혀 세상에 나오기만을 바라고 있는 역사유물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도 없을 것이다.우리는 이틀 동안 5개로 나눠어진 경주의 역사지구를 최대한 돌아보고자 노력했다. 이틀이라는 시간은 경주의 모든 역사를 우리 눈에 담기엔 절대적으로 부족했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고 생각한다. 발표는 경주 기행문식이 될 것이며, 아래 유물들에 순서 매긴 것은 우리가 보여줄 사진순서와 동일하다.1. 경주가 유네스코가 보호하는 세계유산이 된 이유- 신라시대 천년의 문화적 업적과 불교 및 세속건축의 발달을 보여주는 뛰어난 유적이다.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인 경주는 경주역사지구 라는 이름으로 매우 독특한 위치에 등재되어 있다. 다른 유적들은 단일 품목으로 올라 있지만, 경주는 도시 전체가 몇 구역으로 나뉘어 등재되어 있다. 경주와 같은 경우는 국제적으로도 흔치 않다. 가령 동아시아에서 경주와 가장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을 일본의 교토와 비교해 보아도 경주의 특이성은 드러난다. 교토의 경우 경주처럼 도시 전체가 등재된 것이 아니라, 단일 품목으로서 17개가 등록되어 있다. 한 도시에 등록 유산이 17개나 되어 독특한 경우이지만, 경주처럼 지역별로 뭉뚱그려 지정된 것은 아니다.경주역사유적지구(Kyongju Historic Areas)는 신라천년(B.C 57 - A.D 935)의 고도(古都)인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있는 불교유적, 왕경(王京)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이미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일본의 교토, 나라의 역사유적과 비교하여 유적의 밀집도, 다양성이 더 뛰어난 유적으로 평가된다.세계유산으로 등록된 경주역사유적지구는4차 회의에서 경주역사지구와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이 등재되어 현재 총 7점의 유산이 세계 유산 목록에 올라있다.2. 경주 탐방기{1.천마총-고분의 구조를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천마총(155호 고분)은 내부에 직접 출토유물을 전시하고 있어 대릉원의 고분 가운데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봉분의 높이는 12.7m이고, 봉분의 밑 지름 이 47m나 된다. 천마총의 발굴은 1973년 4월 6일부터 12월 4일까지 진행되었다. 당시 황남 대총을 발굴하기 전 연습 삼아 발굴해보자 해서 삽질이 시작되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내부는 세상이 떠들썩해질 만큼 놀라웠다. 찬란한 신라문화의 보물창고가 천년 만에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우선 천마총은 고분의 축조방법을 알게 하는 충실한 견본이 될 만하다. 먼저 땅을 고르고 목곽이 놓일 자리를 40cm정도로 판 뒤 어른 머리 크기의 냇돌을 깔았으며, 분구 밑바닥 전체에 점토를 다져 두께 15cm 정도의 기초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폭 50cm, 높이 약 40cm로 냇돌을 깔아 일종의 받침대를 만들고, 그 위에 동서 6.6m, 남북4.2m, 높이 2m 크기의 목곽을 놓았다. 목곽은 결국 지상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목곽 위와 주위에는 직경 23.6m,높이 75m가 되게 돌을 쌓은 뒤, 물이 내부로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점토를 20cm 두께로 발랐다. 곽 안에는 동서로 길게 2.15mx1m의 목관을 놓았고, 동쪽의 머리끝에서 50cm 떨어진 곳에 l.8m x 1m 0.8m 되는 크기의 부장품 목궤를 놓았다. 출토된 장신구의 유물은 한결같이 순금제였으며, 신분을 가늠할 수 있는 마구류도 이제까지 출토되지 않았던 진귀한 것이었다. 출토된 유물들로 미루어 5세기말에서 6세기 초의 능으로 추정된다. 특히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관은 경주시내에 있는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들에서 출토된 금관보다 크고 장식이 한층 더 호화로운 것이었다. 또한 자작나무로 만든 말다래(말이 달릴 때 튀는 흙을 막는 마구)에 하늘관심사가 되었으며, 이는 첨성대 건립의 좋은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며 현재 동북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긴 하나 거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6.계림-사적19호. 계림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을 간직한 숲이다. 원래 신라를 건국할 때부터 있던 숲으로, 시림이라고 하던 것을 알지가 태어난 뒤로 계림이라 하였다. 탈해왕 4년(60)에 왕이 금성 서쪽 시림 숲 사이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온통 환한 빛으로 가득하여, 날이 밝은 후 신하를 보내어 살피도록 하였다. 신하가 시림에 이르러 보니 금으로 된 조그만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 울고 있어 돌아와 고하니, 왕이 즉시 시림으로 가서 궤짝을 열어 보았다. 그 속에는 총명하게 생긴 사내아이가 있었고, 왕은 하늘에서 보낸 아이라 하여 태자로 삼았다. 아기라는 뜻의 '알지'라는 이름을 주고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씨라 하였다. 왕은 알지를 태자로 삼았으나 후에 알지는 파사에게 왕위를 양보하였다. 그 후 알지의 7대 후손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미추왕이다. 이후 내물왕부터 신라가 망할 때까지 김알지의 후손이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으며, 계림은 신성스러운 곳으로서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이곳에는 조선 순조 3년(1803)에 세운 김알지 탄생에 대한 비(碑)가 남아있다.7.석빙고를 둘러봄8.반월성-신라 파사왕 22년(101)에 쌓은 성으로 신라시대 궁궐이 있었던 도성터이다. 지형이 반달처럼 생겼다 하여 반월성이라고도 한다. 남쪽으로는 성벽 아래로 남천이 흘러 자연적인 방어시설이 되고 동쪽으로는 임해전으로 통할 수 있는 문터와 성벽 밑으로는 물이 흘러 내리도록 인공적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었음이 조사 결과 밝혀졌다. 즉 성벽 전체를 물이 돌아 흐르도록 해서 성을 보호했던 것이다. 성 안에 많은 건물)에 금당을 짓게 되었다. 선덕여왕 12년(643)에는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자장의 권유로 외적의 침입을 막기위한 바램의 9층목탑을 짓게 되는데, 각 층마다 적국을 상징하도록 하였으며, 백제의 장인 아비지에 의해 645년에 완공되었다. 이와 같이 황룡사는 93년간에 걸친 국가사업으로 조성된 큰 절이었으며, 신라의 3가지 보물 중 천사옥대(天賜玉帶)를 제외한 2가지 보물이 황룡사 9층목탑과 장육존상이었다는 것에서도 황룡사가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신라의 땅이 곧 부처가 사는 땅'이라는 신라인들의 불교관이 잘 나타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황룡사는 고려 고종 25년(1238)에 몽고의 침입으로 모두 불타 없어져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다. 늪지를 메워서 그 위에 지은 황룡사는 중문·목탑·금당·강당이 남북으로 길게 배치된 1탑식 배치였다. 그러나 장육존상과 목탑 등이 조성된 후 금당 좌우에 작은 금당이 배치되는 1탑 3금당식으로 바뀌고, 탑의 좌우에 종루와 경루(經樓)가 대칭을 이루어 배치되었다. 또 사방은 복도와 같은 회랑으로 둘러싸여, 독특한 가람배치를 보이고 있다.『삼국유사』에 의하면 종루에는 거대한 종이 있었는데, 몽고가 침입했을 때에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1976년부터 시작한 발굴조사에서 금동불입상·풍탁·금동귀걸이·각종 유리 등 4만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높이 182㎝에 이르는 대형치미는 건물의 웅장한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금당에는 솔거가 그린 벽화가 있었다고 전하며, 목탑지에서 발견된 당나라 백자항아리는 당시의 문물교류를 잘 알 수 있게 한다.17.황룡사지18.명활산성-사적 제47호로 이 산성은 경주시의 동쪽에 해당되는 이곳 명활산(明活山)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둘레를 따라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은 신라시대(新羅時代)의 석축성(石築城)으로 전체 길이 6km에 이르는 포곡식(包谷式)산성(山城)이다. 성을 쌓은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신라 실성왕 4년(405)에 명활성을 공격해 온 왜병을 격퇴했다는 기록이 있다. 원래는 토0여년의 차이가 있어 이들의 무덤이 한곳에 모여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신라 초기에는 이와 같은 대형무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었다.23.목 없는 불상-삼릉골을 따라 올라가 남산에서 처음 만나는 불상은 목이 잘린채 결가좌부하고 있는 부처님이다. 손도 잘린채 몸만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털끝만큼도 흔들리지 않는 그 모습이 의연하다. 높이 1.6m 무릎너비 1.56m 정도의 크기이다. 이 불상은 원래 계곡에 묻혀있었는데 지금의 자리에 옮겨진 것이다.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엇주름이 자연스럽고 옷을 여민 매듭과 장식이 무척 정교하며 단아하다. 당시 스님들의 복장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사실적이며 기백이 넘치는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24.마애관음보살상-경주 남산의 삼릉계곡에 있는 이 불상은 돌기둥 같은 암벽에 돋을새김한 것으로 연꽃무늬 대좌(臺座)위에 서 있는 관음보살상이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만면에 미소를 띤 얼굴은 부처의 자비스러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손에는 보병(寶甁)을 들고 있어 보관과 함께 이 불상이 현세에서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불상 뒷면에는 기둥 모양의 바위가 광배(光背) 역할을 하고 있는데, 자연미에 인공미를 가한 느낌이다. 이 불상은 정확한 연대와 조각자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의 동편에 위치하고 있는 머리 없는 불상은 남쪽으로 약 100m 떨어진 지점의 소나무 숲속에서 출토되어 이쪽으로 옮겨온 것이다.25.선각육존불-지방유형문화재 21호로 지정되어진 삼릉골 마애선각육존불상은 앞뒤로 솟은 큰 바위에 (앞위 바위는 폭 약 4m 뒤의 것은 높이 4m에 폭 7m 정도이다) 붓으로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각각의 암벽에 삼존불을 그려놓았다. 앞쪽바위에 그려진 삼존불의 본존은 입상, 좌우 협시보살은 좌상이다. 본존의 높이는 2.65m 협시보살의 높이는 1.8m 정도이다. 본존은 오른손을 올려들고 왼손을 배에 대고 있으며,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