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장식기법’에 대한 정리-도예에 있어 장식은 아주 중요하다. 장식은 자기만의 창작품으로 개성을 부여하는 절대적인 방법이므로 장식에 있어서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여기에서는 일반적인 장식기법과 최근에 이용하는 장식기법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1. 조각하기조각기법은 장식기법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것이며, 음각과 양각이 있다. 과거에는 선을 그어 이용한 음각이 주로 많았으나 근래에는 음각도 하지만 돌출되는 양각도 많이 한다.1) 양각기법-문양이 기물의 표면에 도드라지게 하는 기법이다. 문양부분을 남겨두고 나머지 부분을 깎아내는 방법으로 부조와 같이 반입체감을 나타낸다.-방법-ㄱ) 기물에 그림을 그린다.ㄴ) 조각도로 천천히 힘을 약하게 주면서 조각해야한다.ㄷ) 기물의 두께를 정확히 알아서 조각하고 조각아 끝난 후 잘 건조하여 고르지 못한 부분을 페이퍼로 정리해 준다.2) 부조기법-일부 건조상태의 기물에 덧붙여 반입체감이 나도록하는 장식기법으로 저부조와 고부조가 있다.-방법-ㄱ) 원하는 부조할 그림을 연필로 기물표면에 정확히 그린다.ㄴ) 그린 문양에 약간의 물칠을 하고 점토를 문양대로 덧붙여 준다.ㄷ) 점토를 붙인 문양을 조각도를 정확히 다듬어 정리한다.ㄹ) 부조된 부분과 기물의 바닥부분을 정리한다.3) 음각기법-성형 후 기물이 일부 건조되면 조각도 칼날 부분이 날카롭고 예리한 도구를 이용하여 기물표면을 직접 파서 문양을 새겨 넣는 장식기법이다. 고려청자에는 음각기법이 훌륭하게 사용된 작품들이다.-방법-ㄱ) 문양을 기물에 정확히 그린다.ㄴ) 일정한 힘을 가하여 조각도로 조각하여 정확한 선각이 되도록 한다.ㄷ) 세련된 선각은 자신감을 갖고 대담하게 조각도를 움직여야 한다.4) 투각기법-성형 기물이 일부 건조된 후 예리한 조각도를 이용하여 구멍을 뚫거나 파내어 문양을 넣는 장식으로 문양을 투각하는 경우와 문양 이외의 부분을 파내는 경우가 있다.-방법-ㄱ) 예리한 조각도를 이용한다.ㄴ) 투각할 부분을 연필로 그리고 투각하는데 주의할 점은 한손으로 투각할 기물수도 있고 나무줄기처럼 대바구니처럼 등 여러 가지 디자인으로 붙이는 기법이다. 부착 시 빗으로 상처를 내준 후 이장을 칠하여 흙가래를 붙이고 손가락이나 적당한 도구로 떨어지지 않게 눌러 붙인다.ㄴ) 색소지 점토 붙이기:(순서)-백토에 원하는 고화도 안료를 선택하여 혼합한다.-안료가 점토와 골고루 혼합되도록 잘 반죽한다.-일부 건조된 기물에 문양을 연필로 그려준다.-안료와 혼합된 점토를 흙가래를 만들어 준다.-흙가래를 눌러 평평하게 만들어준다. 칫솔에 물칠을 하고 색점토를 붙일 부분에 문지르 고 색점토가 잘 붙도록 붙인다.-너무 세게 누르면 기물이 파손될 우려가 있으므로 주의한다.2). 점토 구슬 붙이기-점토 구슬은 점토를 직경 1~1.5cm 정도의 구슬을 만들어 기벽에 붙여 손가락이나 압인으로 누르면 점토가 눌어지면서 가장자리 부분에 균열이 가벼 손가락 자국이나. 압인의 문양이 새겨지는 재미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점토 구슬을 만들어 눌어준다.-기물에 빗질하고 점토구술을 붙인다.-도구를 이용하여 약간의 힘을 가해 눌러준다.-여러 곳에 재미있게 위치를 잡아 붙여주고 도장을 찍는다.3). 석고틀을 이용한 점토붙이기-일부 건조상태의 기물에 점토조각을 붙이는 것은 부조기법과 동일하나 문양을 조각한 석고틀을 이용한다는 것이 이 기법의 특징이다. 섬세한 문양을 부조로 하여 표현할 경우나 하나의 문양을 여러 기물에 반복적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 사용하면 편리하다.-석고 문양판에 점토구슬을 한쪽에서부터 밀어주며 눌러준다.-튀어나온 흙을 제거하고 얇은 점토조각을 점토 덩어리로 눌러 떼어 낸다.-성형된 기물의 붙여줄 부분에 흠집을 낸다.-떼어낸 점토를 붙여준다.-문양이 상하지 않게 주의하면서 붙여준다.4). 이장붙이기-이장을 손바닥이나 혹은 주걱 같은 도구에 묻혀 기면에 밀착시켰다가 즉시 떼어 내면 이장이 점력에 의하여 손바닥에 불규칙하면서도 규칙적으로 달라붙어 올라오다가 한도에 도달하면 떨어진다. 이 작업을 전면에 반복하게 되면 삼각뿔의 이장의 형태가 무수히 생기게 된다. 다른 색의 두 가지 이상의 색 화장토를 이용해 흘려 섞어주므로 자연스러운 무늬를 만들어 마블링 효과를 내는 기법이다. 혼합하는 방법이나 색에 따라 효과를 낼 수 있다.8). 솔로 뿌리기-색 이장을 기물에 구두 솔이나 칫솔을 이용하여 뿌려주어 장식하는 기법으로 서로 다란 색을 겹쳐서 뿌리거나 그라데이션효과를 주어 자연스럽고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종이나 테이프 라텍스 등을 이용해 문양을 그리고 솔로 뿌리면 화장토가 그곳에는 뿌려지지 않아 문양을 나타낼 수도 있다.-여러 가지 색화장토와 칫솔을 준비한다.-가위로 재미있는 문양을 오려 기면에 붙여준다.-칫솔을 이용하여 색화장토를 뿌린다.-다른 색화장토를 이용하여 그라데이션효과를 내어준다.-종이를 떼어내면 화장토가 묻지 않은 부분은 문양으로 나타나게 된다.9). 종이 찢어 붙이기-기물에 붙일 종이를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찢어 준다.-찢은 종이를 기물에 붙도록 물에 적셔 기물에 붙여 준다.-종이 붙인 후 화장토를 붓으로 칠해준다.-화장토가 건조된 후 조심스럽게 종이를 뜯어낸다.10). 종이 오려 붙이기-종이 붙이기는 오려 붙이는 방법과 자연스럽게 찢어 붙이는 방법 두 가지가 있는데 장식할 문양이 정확하게 표현할 때는 주로 오려붙이기를 사용한다. 종이를 원하는 문양으로 오려 물에 적셔 붙이고 화장토를 칠해 문양을 선명하고 깔끔하게 표현할 수 있다.11). 이장 흘리기-1이장 흘리기는 기물에 화장토를 자연스럽게 바르는 기법으로 인간의 이기심을 버리고 중용과 중도의 경지를 나타낼 수 있는 기법이다.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모습을 표현할 수 있고 너무 마른 기물에 이장 흘리기를 하면 균열이 갈수 있으므로 주의하여야한다.12). 이장 흘기기-2자연의 미와 재료의 특징을 나타내는 효과적인 기법으로 제작방법은 기물에 화장토를 붓고 빠른 움직임으로 기불을 임의대로 움직여 주어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화장토의 무늬를 만들어 준다.13). 화장토 칠하기-이 기법은 분청사기의 귀얄문분청사기로써 잘 알려진 것으로 많이 이용하던 것이다. 제작무 깊지 않고 고르게 긁어 낼 수 있도록 한다.ㄹ. 조화기법: 이 기법은 귀얄, 박지 기법과 같이 조선조 분청사기에서 많이 이용하던 기법과 반대되는 기법으로 화장토를 기물전체에 바르고 문양을 그려 긁어내어 태토의 색이 문양의 색이 되게 하는 기법이다.ㅁ. 수화기법: 수화기법은 화장토를 전체적으로 바르고 화장토가 마르기 전에 손가락을 이용하여 문양을 그리는 기법으로 자연스럽고 소박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4. 빗살치기-빗살치기는 조선조 시대에서고 볼 수 있는 기법으로, 최근에도 도예가들이 여러 가지 변화된 빗살로 간단히 재미있게 표현하는 장식기법이다.이 빗살 문양은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고, 빗의 살 간격을 넓히거나, 좁히고 살의 날을 굵게, 혹은 가늘게 하느냐에 따라 변화 있고 재미있는 효과가 나게 된다. 도구는 머리 빗는 빗을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여러 개로 절단하여 사용할 수도 있으나 가능하면 대나무조각이나 금속판을 사용해 자기 개성에 맞도록 여러 가지 형을 만들어 쓰는 것이 좋다.5. 피라핀 이용기법-피라핀이나 왁스를 이용하여 문양을 그리고 화장토를 발라주면 문양에만 화장토가 묻지 않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장식기법이다. 간혹 피라핀을 칠한 위에 화장토가 맺히는 경우가 있는데 그 우연한 효과를 일부러 이용하기도 한다. 피라핀은 쉽게 굳는 단점이 있어 섬세하거나 정확한 문양을 그리기에는 부적합하므로 속도감 있는 자연스러운 문양을 그릴 때 이용한다.6. 라텍스 이용기법-라텍스 액체상태에서 그림을 그리면 시간이 경과 후 고무처럼 굳는 성질을 장식기법에 이용하는 방법으로 성형한 기물 위에 라텍스로 문양을 그린 후 화장토를 칠해 화장토가 어느 정도 건조되면 라텍스를 떼어낸다.라텍스는 쉽게 굳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문양을 그려준 후 붓을 물에 빨아주어 굳는 것을 방지하여야 한다.7. 찍기가. 인화상감: 도장찍기는 고려상감청자의 인화문을 찍고 주위에 잇는 잎이나 줄기는 음각하여 백토는 백상감과 흑상감을 하여 아름답고 선명하게 하여 주었다.도장찍기는 과거에 한 것으로 인감기법가. 백상감: 백상감은 철분이 많은 적토조지로 형태를 만들어 일부 건조시켜 원하는 문양을 음각한 다음에 백토이장을 만들어 음각된 부분에 넣어 주는 것이다. 백상감은 보통 일반소지로 쓰이는 백토보다는 내화성이 강하고 점력도 좋아야 한다. 백토이장이 너무 묽으면 조각한 부분에서 밖으로 흘러 나와 상감이 제대로 안되고, 반대로 지나치게 되직하면 음각부분에 잘 침투하지 못하고 표면이 고르지 않게 되며 기포가 생겨 좋지 않게 된다. 조각할 때 주의할 점은 조각의 깊이를 2~3mm정도로 해야 한다. 또 상감할 때 수축관계가 중요하므로 항상 일부건조된 것을 조각하여 수분이 많을 때 상감하는 것이 좋다. 특히 면상감에서는 수축비율이 잘 맞도록 주의하여야 한다.나. 흑상감: 흑상감 제작방법은 백상감기법과 같다. 흑상감도 백상감처럼 성형할 때 쓰이는 소지보다 내화성과 점력이 강해야하고 적토소지보다도 훨씬 색이 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분과 망간 등의 농도 짙은 원료가 더욱 많이 첨가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무조건 철분과 망간만이 많이 넣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철은 내화도가 낮기 때문에 높은 화도에서는 흘러내리므로 내화성이 강한 원료를 첨가하면서 망간과 철분을 넣어야 한다. 흑상감은 백상감보다 사용범위가 더 넓다고 할 수 있다.다. 면상감: 고려상감청자에는 흔하지 않은 기법으로 이 기법은 제작과정에서 기면을 깊게 혹은 지나치게 넓게 음각 처리하여 화장토를 넣어주면 건조과정에서 화장토가 균열이 생긴다.라. 선상감: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하여 선으로 문양을 음각하고 화장토를 음각한 부분에 넣어서 선의 문양을 자유롭게 장식하는 상감기법이다.마. 색상감: 제작하는 방법은 백상감기법과 거의 같으나, 다만 색 이장을 만들 때 백토에 여러 가지 안료를 첨가해서 만들어야 한다. 또한 이 색상감은 백토 이장과 흑토 이장을 같이 적절하게 이용하여 사용할 수도 있다. 색상감은 무엇보다도 안료를 적절하게 잘 배합하여 아름다운 색상과 다양한 색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바. 곡
-웹을 통한 미술관교육-차례1. 머리말1) 미술관교육의 대두2) 21세기에 맞는 미술관교육2. 본문1)웹을 통한 미술관교육2)웹을 통한 미술교육과 미술관교육의 연관성3)국내 웹을 통한 미술관교육의 개선방안- 학교 미술교육과정의 웹 활용 개선방안- 인터넷 교육적 환경 개선방안- 미술관의 교육자원 개선방안3. 결론1.머리말(1)미술관교육의 대두1980년에 이르러 서구에서는 문화이론, 예술행정 및 경영 그리고 미술교육의 영역에서 미술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미술교육분야에서 미술관 교육에 대한 실무적 차원에서의 논의가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 등으로 미술관 실무자들에 의해서 진지하게 거론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미술교육영역에서 학자들이 미술관을 교육의 장으로 논의하는 것은 전통적 개념의 미술교육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움직임이다. 전통적 개념의 미술교육은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그 관심을 국한 시켰지, ‘미술관’과 같은 대안적 사회기관의 교육적 기능에 관해서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해왔던 것이 사실이다.‘미술관교육’이라는 개념은 미국에서 탄생하였다는 견해가 근래에 와서 학자들 사이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럽의 미술관 개념이 미국에 이식된 이래, 미국의 미술관들은 자신의 정체성 확립에 있어 대중들에게 미학교육 그리고 미술 교육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미술과의 기본적 임무로 상정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미술관의 기능은 수집, 보존, 분류 그리고 소장품해석이라는 차원으로 요약되는데, 미국의 미술관은 일반적으로 ‘소장품의 해석’이라는 부분에 그 강조성을 두고 있다. 소장품 해석이라는 부분은 여타의 부분과는 달리, 소장품과 관람자 층과의 접촉이라는 점에 관련된 것이다. 이는 미술관에서 전시와 교육이라는 부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미술관이 미국에서 대중들이 접근할 수 있는 복합문화적 공간으로 이해되는 것은 전적으로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라는 미국의 이상의 발현 인식을 통해 더욱 정보화, 대중화 되어간다.1995년 말에 ICOM은 “ICOM의 인터넷 정책 설명”에서 인터넷에 관한 기조 역할을 맡게 되리라는 입장을 밝혔다. ICOM은 박물관들이 사회를 위해 더욱 충실한 역할을 하기위해서 그들의 프로그램과 소장품들을 게재함으로써 인터넷에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컴퓨터 기술은 박물관이 대중 서비스의 새 모델을 만들고 박물관의 새로운 개념에 부합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컴퓨터 기술을 통해 박물관 정보에 대중이 접근하게 하는 것은 박물관의 문을 대중에게 열어두고 학자들이 소장품에 접할 수 있게 하려는 오랜 노력의 결과이다. 예전에는 박물관 정보에 일반인이 접근하는 것은 상호소통의 결여와 문화적 권위의식 때문에 매우 한정적이었으나, 박물관이 진보하면서 문화를 민주화하고 문화적 기회로부터 평등을 이루는 것이 보다 현실화되었다.박물관은 1993년부터 인터넷을 이용해 왔다. 처음엔 주로 전자우편을 보내고 받는다든지, 원격 컴퓨터에서 파일을 보거나 전달한다든지, 대학이나 도서관의 목록에서 정보를 검색하는 식으로 문자가 기반이 된 환경으로 쓰였다. 1995년부터는 박물관들은 전세계에 걸친 커뮤니케이션 네트웍을 교육자원으로 이용하는데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월드와이드 웹의 개발로 단지 문자화된 서류뿐만 아니라 이미지나 소리 비디오까지도 전송할 수 있게 된 최근의 인터넷의 발전은 박물관으로 하여금 더욱 광범위한 청중을 찾아 끌어들이고 교육할 수 있는 영역을 제공한다. 박물관들은 인터넷에 오가는 대화에 참여함으로써 기여를 할 수도, 혜택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컴퓨터의 이용의 증가로 세계의 미술관 전산 연결망 프로젝트가 가속화됨에 따라 소장품 정보를 관리할 표준의 필요성이 확산되었고 최근 미술관들이 웹사이트를 만들어 가면서 미술관들은 온라인 소장품 정보의 적절한 기준을 만들어야 하는 필요가 점차로 절실해지고 있다. 미술관들은 소장품 카달로그를 통합하기 위한 목적으로 포맷과 내용의 표준을 고려술관http://www.ilmin.or.kr가나아트웹갤러리http://www.gannaart.com/cybergallery국제화랑http://www.kukie.org갤러리현대http://www.galleryhyundai. com가산화랑http://www.gasan.co.kr/set.htm갤러리아즈http://galleryaz.com/gallery/갤러리에이엠http://galleryam.com/index.htm갤러리대아http://artinseoul.co.kr/main/동성갤러리http://www.dsgallery.net/삼성어린이박물관http://www.samsungkids.org/경인미술관http://www.kyunginart.co.kr/main.html로댕갤러리http://www.rodingallery.org/서울성곡미술관http://www.sungkokmuseum.com/한원미술관http://www.hanwon.co.kr/museum/아트선재센타http://artsonje.org/iindex.asp선화랑http://www.sungallery.co.kr/파인갤러리http://www.pinegallery.co.kr/경기도호암미술관http://www.hoammuseum. org경기도박물관http://www.musenet.or.kr/모란미술관http://www.yescall.com/moran/경주국립경주박물관http://www.kyongbuktour.or.kr/kyoungju/korean/downt2.html공주국립공주박물관http://mediart.hcc.ac.kr/~kjm/부여국립부여박물관http://www.puyomuseum.go.kr/광주국립광주박물관http://namu.museum.go.kr/~kwangju/성곡미술관http://sungkokmuseum.com/부산롯데화랑부산점http://myhome.shinbiro.com/~lotjung/index.html청주무심갤러리http://www.moosimgallery.co.kr/가상예술마을http://ww의 한계 등으로 학생들에게 충분한 자료를 제시하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다.미술감상교육에 대한 논문 가운데 감상교육에 대한 교사의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미술감상교육의 문제점을 분석해 본 것이 있다. 이 논문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미술교사들이 가장 지도하기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영역이 바로 감상영역이고 많은 교사들은 현행 미술감상교육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이것은 교육현장에서 표현위주의 감상경시 풍조가 지배적이며 감상지도의 관점, 관련지식의 부족과, 감상자료?기자재의 미비 등으로 감상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되었다.이러한 미술감상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인터넷은 고대부터 오늘날에 걸친 전세기를 통해 만들어진 작품들, 미술이 발달한 프랑스에서부터 가까운 일본까지 걸쳐 전세계 각국에서 만들어진 작품들, 회화를 비롯한 판화, 조각 등 미술 전분야의 작품들, 고흐와 같은 거장의 작품에서부터 이웃 초등학교의 어느 어린 학생의 작품에까지 이루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고 다양한 작품들이 내재되어 있다. 또 인터넷은 학교나 가정, 어디에서나 활용할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에 시간적, 공간적인 구애를 받지 않는다. 따라서 교사나 학생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여건에 따라 많은 시간을 들여 미술작품감상을 심도있게 할 수 있고, 감상능력 및 감상지도능력을 키울 수 있는 여건도 조성해 주는 것이다.7차 교육과정에서는 초등학생 1학년부터 컴퓨터 사용시간을 주당 2시간으로 하고 있으므로 웹을 통한 초등학생의 전학년의 학습이 가능하다. 최인희의 논문통계에 따르면 교사들의 56.4%가 작품감상자료로서 인터넷이 사용되고 있으나 학생들의 연령에 따른 적합한 흥미를 주었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부정적인 대답(‘보통’에 67.5%)을 보였다. 학생들이 인터넷을 통한 미술수업에 대한 반응은 매우 긍정적으로 나타났으며 그 이유로 재미있게 배울 수 있고 미술에 자신감이 생길 수 있으며, 감상능력을 신장할 수 있었다고 답하였다.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미적체험’다루기 때문에 교사들이 교육계획을 잘 하기만 한다면 다른 분야의 교육 내용을 훌륭히 통합시킬 수 있다. 인터넷의 검색의 절차에서 볼 수 있듯이 통합적인 교육이 가능한 것이다.인터넷을 통한 가상미술관의 교육적 활용은 교과서 중심 또는 교사중심의 교육이 학습자 중심 또는 생활중심의 교육으로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의 유명한 미술관과 관련한 웹사이트들을 찾고 아동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정리하여 링크시키고 다양한 미술관련 정보들을 제공하여 교과서 지면의 한계와 교사의 참고작품 제작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아동들의 전세계의 다양한 작품들을 교실에서 또는 가정에서 쉽게 접하게 할 수 있다.인터넷을 통한 미술관 감상체험을 통하여 작가의 작품 제작의도와 시대상황, 작품재료의 특성을 이해하는 과정의 하나로 경험활동과 표현활동을 동시에 실시하여 작품의 본질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작가가 되어 원화 그림을 더 크게 그려보기도 하고 체험활동을 통하여 얻어진 느낌을 종합하여 표현 발표할 수도 있다. 또한 표현과정 속에서 작품의 중요성을 깨닫고 작가정신과 현실에 기반을 둔 경험들과 생각을 창의적인 표현활동에 접목시킬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표현 기능을 더욱 향상,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한다.앞서 말했듯이 감상활동이야 말로 미술관과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미술관에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므로 어린이들이 미술품을 애호하는 태도를 기르기에 적절한 장소이다.미술경험에 있어서 인터넷의 활용 가능성에 대해서 우선 인터넷이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미술작품에 경제적이고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한다는 점, 그리고 정보전달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설치되어 있다면 미술작품에 관한 방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흡수할 수 있고 컴퓨터의 기능을 통해 그 방대한 정보들을 신속하고 조직적으로 정리?보관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예술이 특권측의 전유물로 간주되었던 점을 고려해 볼 때, 이제는 있다.
대안학교에서의 사이버 교육의 필요성과방안에 대한 토론-정리목차-1. 대안교육 개념2. 대안교육의 유형 및 현황3. 대안교육의 문제점4. 대안교육에서의 사이버교육의 필요성과 방안5. 종합의견1. 대안학교의 개념대안교육은 19∼20세기에 개발 중심의 근대적 가치가 생존경쟁의 가치, 적자생존의 가치로서 인간간의 유대를 단절하고, 공동체를 와해시키고, 자연환경과의 친화력을 약화시키고, 인간성을 비인간화하는 교육에 대한 반기로 나타난 운동이다.이러한 움직임 중 대안학교는 정규학교나 비정규학교에서 교육 이념 및 운영방식의 독특성을 가지고 기존의 학교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시도하는 대안적인 학교의 형태를 말한다. 즉, 지식 위주의 기존 학교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차원에서 모색되고 있는 다양한 실천운동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한편, 교육법에서는 다음과 같이 대안학교에 대한 개념을 명시하고 있다."자연친화적이고 공동체적인 삶의 전수를 교육목표로 학습자중심의 비정형적 교육과정과 다양한 교수방식을 추구하는 학교를 말한다."2. 대안학교의 유형 및 현황1).대안교육의 유형A.제도교육과의 관련 정도에 따라-a.제도교육의 틀 속 : 교육과정 운영이나 학교운영에 있어서 국가의 감독과 통제를 받는 공사립학교, 거창고등학교, 참교육운동, 열린교육 등-b.제도교육 틀 곁 : 정규학교는 아니지만 각종학교인 학력인정 고등학교와 같은 형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와 영산성지고등학교 등-c.제도교육 틀 밖 : 제도교육과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형태의 대안교육으로, 민 들레 학교, 숲속마을 작은 학교, 예수가정, 공부방 등B.운영 형태에 따라-a.정규학교형 : 일반학교와 같은 형태로 운영되는 형태로 거창고등학교, 풀무농업고등기 술학교, 영산성지학교-b.계절학교형 : 여름 혹은 겨울방학 동안을 이용하여 교육이 이루어지는 형태로 대구의 민들레 학교, 경남 산청의 숲속마을 작은 학교, 서울 따로 또 같이 만드는 학교, 부산 창조학교 등-c.방과후 프로그램형 : 학생들이 학교활동이 끝난 다음 동네에적인 것은 서울지역공부방연합회, 여럿이 함께 만드는 학교 등-d.유아교육프로그램형 : 유아대상대안교육의 범주에 열린교육을 넣고 있음.C.부산교육연구소 열람 자료에 의한 대안학교 유형-a.자유 학교형 대안학교 1970년대 미국, 독일 등지에서 등장한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 는 것으로, 학교 설립의 주된 동기가 종래의 학교 교육이 지나치게 아이들을 통제, 억 압하며 교사 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비판하고, 아이들의 무한한 잠재 가능성 에 대한 굳은 신녀을 기초로 하는 교육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대표적인 사례로, 영국의 "섬머힐", 독일의 "자유 대안 학교", 일본의 "기노쿠니 아이들 의 마을" 그리고 우리나라의 "자유 학교 물꼬"(2000년대 초반 상설 학교 설립 예정)가 가장 가까운 형태라고 볼 수 있다.-b.생태 학교형 대안학교 이 유형의 전형은 1982년에 설립된 영국의 하트랜드 지방의 "작 은 학교"라고 할 수 있다. 이 학교는 마을 안에서 소규모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식 교 육 뿐만 아니라 의식주에 관련된 기본적인 활동들을 교육내용으로 삼고, 마을의 다양한 생산자들이 교사로 봉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학교에서는 주로 생태와 노작, 지역 사회와 학교의 결합을 중시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개교한 간디청소년학교가 교 육이념이나 방식에서 유사하다.-c.재적응 학교형 대안학교 부적응 학생을 주된 대상으로 하는 학교로서, 영광의 "성지고 등학교", 일본의 "생활학교"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성지고등학교의 경우 주로 일반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거나 도저히 적응하기 어려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사 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통하여 교육적 결실을 맺고 있다.-d.고유 이념 추구형 대안학교 이 유형의 학교는 매우 독특한 교육 이념과 방식을 바탕으 로 대안 교육을 실천한다. 대표적인 예로 독일의 발도르프 학교인데, 여기서는 인지학 이라는 독특한 철학을 체계화한 르돌프 슈타이너 사상을 기반으로 1919년에 처음 설립 되었으며, 꾸준히 보급되고 있사회와 일체화된 교육을 지향하는 풀무 농업 고등 기술학교 역시 이 유형에 속한다. 이외에 나 름대로의 이상을 가지고 대안적인 교육을 추구하는 많은 학교들이 있다.2).대안학교 관련 법규98년 3월 개교를 희망하는 대안학교에 대하여 97년 11월말까지 관할 교육청에 학교설립에 필요한 관계 서류를 제출하면 개교할 수 있도록 되었다. 최근 국무회의에서 『고등학교 이하 각급 학교설립·운영규정』등 고교설립준칙 관련 2개 법안이 원안대로 통과, 공포됨으로써 대안학교가 정규학교의 지위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현재 전남 영산 성지학교(국내 유일 중도탈락자 전담 수용 대안학교)가 정규 고등학교로 개편인가 되었으며, 충북 양업고등학교가 자체 부지를 매입하여 도교육청으로부터 학교설립계획의 승인을 받았고, 숲속마을 작은 학교를 표방하는 산청의 간디학교도 정규 고등학교로서 개교하였다.나아가 이 법규에서는 특성화고교라는 새로운 고교유형을 창설하고, 여기에 대안학교를 포함시킴(제69조의2 제2항 제4호)으로써, 고교유형의 다양화, 특성화 차원에서 영산성지학교형과 같은 중도탈락자 전담 수용 대안학교 뿐만 아니라 자연과 어울리는 다양한 체험학습을 통한 인성함양에 초점을 맞춘 전인교육 지향 대안학교도 설립요건을 갖추어 정규학교로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학생의 적성 등을 우선 고려한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입학방법상 특례를 적용하되 학교별 필기시험에 의한 전형은 금기(제 69조의2 제2항 제4호 및 제112조의7 제2항).-일반계·실업계·특목고 등 다른 계열로의 전·편입학 허용(제74조의2).-거주지 제한없이 전국단위로 학생모집 가능(제112조의5 혹은 제112조의6).3). 대안학교의 이념A.평화교육a.개개인의 마음의 평화, 계층간, 민족간, 국가간, 인종간의 화해, 인 간과 자연과의 조화적 공존, 지구와 우주와의 어울림.b.체제를 초월해서 남한과 북한의 민족공동체 이념의 구현을 위한 것에 초점을 둔다.B.노작교육a.페스탈로치의 '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일한다.'의 물을 대고 모를 심고 소를 모는 일 자체가 효과적인 교육이라고 봄.b.체험을 통하여 자연에 아름다운 질서와 법칙이 있고, 우리 삶도 그 법칙 안에서만 편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배움.c.노동은 문화의 원동력이요, 개성의 실현방식이요, 그러므로 고귀한 것이고, 인간교육의 가장 귀한 방법의 하나.d.그러나 현재, 체험이 따르지 않는 읽기, 쓰기, 셈하기 교육이 주류를 이루고, 노동은 천시되고 있다.C.인간화 교육a.사람됨을 일깨워주는 교육b.소크라테스에서 유래 : 가치에는 원래 변하는 측면과 변하지 않는 측면이 있는데, 변하지 않는 것이 보다 본질적인 가치라는 것, 또 올바른 지식은 올바른 삶으로 유도하는 것이기에, 실용적 지식보다 올바른 지식이 중요하며, 이에 교육의 목적은 입신출세하는 데 있지 않고 자기 영혼을 돌보아 자기를 최선으로 실현하는 데 있다.c.삶과 문화와 역사에 대해 아름다운 꿈을 키워주는 문학, 역사, 철학 등을 주축으로 하는 인문교육(초등교육 단계에서는 독서교육등), 최고의 가치는 각자의 개성의 실현에 있다는 각자의 정체성과 주체성 확립교육, 그리고 교사와 학생과의 인간적인 관계의 정립, 즉 인간의 사귐에 관한 것이 요청됨.d.환경교육, 미래교육, 인권교육 등4.) 우리나라의 대안교육 실태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의 차터스쿨과 같은 제3의 제도적 노력은 전무한 실정이다.97년 개정된 초중등교육법에서 이른바 '대안학교'를 특성화학교라는 새로운 학교유형으로 법제화하여 제도교육권에 편입시키면서 민간부문의 대안교육운동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대안교육은 주류 제도권교육의 울타리를 맴도는 비주류적 성격이 강하다.이는 기존의 학력중심사회에 편입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님과 동시에 문제학생 위주의 재적응 교육이라는 협소한 범위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대안교육의 이념이나 문제의식, 해결방안을 구체화할 수 있는 교육과정, 제도적 대안이나 전략이 부족하다는 스스로의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는 결과라고 생각한다.따라서 우리나라의 대안교육이 활성제3의 제도권 교육으로 표준화되고 통일되어질 필요성이 있다.현재 민간부문에서 실시되고 있는 대안교육이 실험적 측면만 중시되고 교육의 대상범위가 한정되어 비주류적 교육이념으로 맴도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법적, 제도적 지원이 절실한 것이다.또한 교육현실이 지역적인 차이를 보이는 것을 감안하여 지역사회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여건의 조성, 대안교육의 실효성을 거두기 위한 학력인정제도의 보완 등을 통해 대안교육이 하나의 실험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교육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는 토대가 되어야 한다.3. 대안교육의 문제점-재정이 부족하고 시설이 영세하며 오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왕래와 지원이 어렵다.(대부분의 대안학교가 시골 농, 어촌에 위치하고 있어서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대안학교에 대한 인식 부족과 근거 없는 부정적 시각으로 주변 사람들이나 지역으로부터 배척을 받고 있다.(수많은 학부모들로부터 "자퇴생 집합처"니 "꼴통학교"라는 부정적인 인 식을 심어준다.-교사 및 행정 지원 인력의 부족으로 교과운영 및 학습자료 준비, 효율적인 학습지도학생지 도에 어려움을 갖고 있으며, 대안적인 교육과정의 개발과 새로운 교사의 배출 문제가 어렵 다.-학력인정 허용 문제와 학교의 자율적인 운영, 수업방식의 자율적 허용이 아직도 확립되지 못하고 있다.-학벌과 경쟁을 강조하는 사회분위기가 대안교육 체제를 비현실적이고 부적응적인 학생들 만 교육하는 곳으로 간주한다.-대안학교는 고등학교 과정이 주류를 이루고 반대로 중학교 과정의 학교는 드물다.4.대안교육에서의 사이버교육의 필요성과 방안-대안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점의 관점에서 논의해 본 결과문제점1)교사 및 행정 지원 인력의 부족으로 교과운영 및 학습자료 준비, 효율적인 학습지도학생지도에 어려움을 갖고 있으며, 대안적인 교육과정의 개발과 새로운 교사의 배출 문제가 어렵다.- 사이버 교육의 필요성 : 모든 교과의 교사가 각 대안학교마다 있기 어렵다. 때문에, 사이버 교육을 활용해서
** 巴金의 **? 목 차 ?1. 파금에 대하여1) 파금의 생애와 창작활동2) 파금의 문학사상, 아나키즘과 인도주의2. 에 대하여1) 의 내용분석2) 의 인물형상3) 의 주제의식1. 巴金에 대하여1) 巴金의 생애와 창작활동 (1904 ~ )현대 중국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현대 작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파금은 생존 작가 중 가장 고령층에 속하면서도 여전히 왕성한 창작열을 보여주고 있는 뛰어난 작가다. 그는 몇 차례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하였으며, 중국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다.그는 본명이 이비감(李?甘)으로 1904년 사천성 성도(四川省 成都)의 봉건관료지주 가정에서 태어났다. 조부 및 부친이 모두 관직을 맡았던 그의 집은 파금 본인의 진술에 의하면 한 집에 ‘한 항렬이 위인 어른이 20여 명, 형제자매가 30여 명, 남녀 하인이 50여 명’이나 되는 봉건대지주 가정이었다.이러한 가정에서 어린 시절 그의 사상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그이 모친이었다. 모친은 그에게 “빈부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고통 속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파금은 회상하고 있다. 모친에게서 받은 이러한 ‘사랑’의 사상은 그의 전 생애에 걸쳐 가장 기본적인 핵심사상이 되고 있다. 그가 10세에 모친이 작고하고, 13세에 부친이 작고한 후, 근느 봉건대지주 가정에서 벌어지는 내적인 추악한 배금사상, 황음무치(荒淫無恥), 허위적 도덕 등에 대하여 많은 회의와 불만을 품었다. 또한 형제들이 봉건예교윤리의 사슬을 벗어나지 못하고, 압박과 재난을 당하는 것을 보고 그는 봉건가정과 제도에 대한 반감과 더불어 자유로운 생에 대한 갈망을 키웠다.1919년 5.4운동의 폭발은 지식욕과 신사상에 굶주려 있던 파금에게는 새로운 세계의 도래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 시기 [신청년][매주평론][소년중국] 등 당시의 진보적 잡지를 탐독하고, 20년 9월 성도의 외국어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외국 문학작품을 접하게 됨에 따라, 점차]를 번역하기도 하였다.27년 1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그는, 크로포트킨의 [윤리학의 기원과 발전]을 번역하는 동시에 프랑스 대혁명과 러시아 부르조아 민주주의자들에 관한 탐구를 시작했다. 그는 중국 초기의 무정부주의자들인 오치휘, 이석증 등을 비판하고, 이러한 자신의 심경을 작품으로 창작하였다. 여기서 탄생한 것이 그의 최초의 작품인 중편소설 [멸망]이다. 내용은 청년시인이 그 지역을 통치하고 있는 봉건군벌의 계엄사령관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체포되어 참살당하는 비극이다.파금이라는 필명도 이때부터 사용한 것으로, 필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무정부주의자 바쿠닌과 크로포트킨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파금은 이를 부정하고, ‘파’는 친구의 이름을 빌려 썼을 뿐이며, ‘금’은 크로포트킨이 맞다고 자술했다.28년 다시 상해로 돌아온 그는 본격적인 창작생활에 몰두한다. 작품은 대략 다음과 같은 세 종류의 주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로는 대략 다음과 같은 세 종류의 주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로는 봉건군벌에 대항하여 반제반봉건투쟁을 벌이는 지식청년들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멸망]의 속편이라 볼 수 있는 [신생](1931), 31년에서 33년 사이에 관성한 [안개][비][번개]로 구성된 ‘애정삼부곡’ 등이 이에 속한다. 둘째로는 노동자 농민들의 고통스런 생활과 그들의 투쟁을 주제로 한 것으로, [사정(砂丁)](1932), [맹아(萌芽)](1933) 등이다. 이는 1931년 그가 절강성 장흥탄광에서 직접 겪은 생황을 소재로 하여 광산노동자들의 비인간적인 생활과 자본가들의 잔혹한 착취를 폭로한 작품들이다. 셋째로는 봉건제도 및 봉건예교의 ‘사람을 잡아먹는’(노신의 [광인일기]참조)죄악을 폭로, 비판하고 새로운 생명의 반항정신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격류삼부곡’의 제 1부이자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가](1931)가 이에 속한다.파금은 뒤이어 38년에 ‘격류삼부곡’의 두 번째인 [춘]을 완성하고, 40년 마지막으로 [추]를 창작하였다. 이 작이고, [제4병실]은 공립병원의 부패, 병자들의 질고와 죽음의 고통을 묘사한 작품이다.49년 이후에는 중국작가협회 부주석, 상해분회주석 등을 맡았고, 잡지[수확]을 창간하여 문예활동에 계속 종사하였다. 특히 이 시기에는 산문 창작에 치중하여, 10여 편의 산문집을출간하였고, 한편으로는 보고문학 창작에도 심혈을 기울였다.요문원(姚文元)은58년 10월부터 시작하여 [파금의 ?멸망?의 무정부주의 사상을 논함], [파금소설 ?가?의 역사상에 있어서 적극적 작용과 그 소극적 작용]등과 같은 평론을 발료하여, 파금을 “개인주의, 무정부주의, 애정지상주의에 빠져 있으며, 반동적인 극단적 개인주의자”라고 비난하였다. 파금은 이러한 비난에 대해 [작가의 용기와 책임감]이라는 글을 발표하여 “작가는 마땅히 독립적으로 사고를 해야 한다. 작가는 단순한 스피커가 아니며, 부화뇌동할 수도 없다. ...문학에는 선전 및 교육 작용이 있다 그러나 모든 선전이 문예는 아니며, 문예는 자신도 모르는 외적 영향으로 인간의 영혼을 빚어내는 것이다” “생활에 깊이 파고들어가 관찰하고 제재를 선택하는 바, 모두 작가 자신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지 지도에 의해 안배되는 것이 아니다”는 등의 자신의 견해를 표방하였다.그러나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후에 파금은 상해에서 ‘반동권위’, ‘무정부주의자’ ‘30년대의 낡은 인물’ ‘반혁명분자’ 등의 죄명을 쓰고 노동 개조형을 받았다. 이 기간에 그의 부인은 건강이 악화되었으나 변변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문혁이 종식된 후 그는 73세의 고령으로 다시 창작에 몰두하였다. 이 기간의 작품은 대부분 과거에 대한 회상과 감상을 기술한 것들로 79년 이후 [수상록(隨想錄)][탐색집(探索集)][鎭話集][病中集] 등을 계속 출간하여, 고령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주고 있다.2) 파금의 문학사상, 아나키즘과 인도주의파금의 작품을 통해 나타나는 작가의 사상을 단순하게 어느 한가지로 응축시킬 수는 없지만, 보다 선명하게 그의 문학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특징부단한 진화와 발전을 긍정하고 옛것의 소멸과 새것의 탄생에 대한 믿음을 표방하였다. 셋째로 파금은 최초에는 피압박자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개읹거 테러리즘을 용인하는 태도를 취했으나, 제도와 사회구조의 소멸이 아닌 개인의 소멸은 아나키즘에 무용하다는 것을 인식하였다.이러한 그의 사상을 집중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멸망]과 [신생]등의 초기 작품들이고, 또한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기존의 권위와 제도에 대한 부정을 그의 작품들이- 예를들면 ‘격류삼부곡’이나 ‘애정삼부곡’등도 모두 이런 사상을 근저에 담고 있음은 쉽게 감지되는 사실이다-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파금이 지니고 있었던 아나키즘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그 다음으로는 인도주의적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그는 러시아의 톨스토이와 프랑스의 로망 롤랑 등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아, 인생의 고통과 어려운 투쟁을 묘사하고, 그 어두운 면을 폭로하고, 사회의 죄악과 인류와 육체의 병태를 표출하고, 이를 통해 사회의 개조를 도모한다는 톨스토이 예술관을 자신의 문학관으로 견지하고 있다. 그는 “나는 나의 적막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나의 열정을 발산하기 위해, 나의 비분을 노해내기 위해, 불합리한 사회제도에 의해 희생된 청년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자술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그의 문학에 대한 자세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이와 같은 인도주의적 예술관은 봉건가족제도 및 윤리사상에 대한 비판과 그 폐해를 폭로하는 작품을 그가 지속적으로 창작했다는 점에서도 뚜렷하게 증명되고 있다. ‘격류삼부곡’, [게원], ‘애정삼부곡’ 등의 주제는 바로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2. 에 대하여1) 의 내용분석이 작품은 사천 성도(成都)에 사는 고(高)씨 가족이 격동시대에 겪는 갖가지 역경과 고뇌를 통해 전통에 대한 젊은이들의 반항과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모습들을 묘사하고 있다. 이들 젊은이들은 각신(覺新), 각민(覺民), 각혜(覺慧) 형제와 그들의 고종사촌누이인 금(琴) 등과 그들의 친구들로서 대표되고 있다 둘째인 각민은 조부의 명령에 반항했기 때문에 고종사촌인 금과의 사랑을 요행히 지속시킬 수 있었다. 또한 3형제 중 가장 나이 어린 각혜는 작가 자신의 자화상으로 볼 수 있는데, 여기서 그는 결단성 있는 진보적인 청년으로 등장한다. 그는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봉건적인 대가정의 부패와 모순에 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서슴치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사랑하던 여자인 하녀 명봉(鳴鳳)은 봉건제도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그만 풍(馮)영감의 첩으로 가게 된 전날 밤에 연못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명봉의 죽음 이후로 집안에 대한 분노를 한층 더 불태우던 각혜는 조부가 세상을 떠난 후 결국 집을 뛰쳐나와 상해로 떠나는 배를 탄다.소설 는 대가족의 생활의 이면을 통해 봉건사회의 어두움과 부패를 낱낱이 파헤치고, 봉건적인 윤리도덕의 허구성을 고발하는 동시에 5.4 운동 이후 봉건적 잔재에 대항해서 새로운 사상과 윤리를 제시하는 젊은 청년들의 영웅적인 행위를 예찬하고 있다. 일찌기 많은 중국 대륙의 젊은 청년들은 이 소설의 주인공 각혜와 각민을 그들의 화신으로 여기며 새로운 삶에 대한 용기를 얻었던 것이다.2) 의 인물형상이 작품 속에서 파금은 성격이 다른 세 유형의 청년을 부각시켜놓았다. 첫째는 각신으로, 현실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반항할 힘이 없고 우유부단해서 무슨 일에나 독자적인 판단을 못 내린다. 모든 문제는 절충주의로 해결하려 하나 결국은 자기 자신이 봉건주의의 중압 밑에서 희생되어 간다. 둘째는 각민으로, 그는 각신처럼 모든 일에 순종적인 자세를 보이지는 않는다. 봉건세력이 그의 애정이나 행복을 위협하려고 했을 때 그는 분연히 일어서서 반항하지만 그런 대로 절제심을 발휘하여 성격도 냉정하다. 셋째는 각혜로, 그는 몹시 진취적이며 반항정신이 확고하다. 그는 봉건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으며 끝내는 집을 버리고 자기의 앞날을 개척하기 위해 대도시로 떠난다. 그러나 작품에서는 각혜에게 확실한 앞길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집을 떠나서 사회에 발을 내디.
1.인적사항나이: 28세성별: 여혈액형: B직업: 주부, 야간대학원생가족관계: 남편-친정: 부모님은 내담자 고3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심. 언니1명 결혼했음.-시댁: 시부모님, 남편은 3형제중 막내, 큰형결혼, 작은형 미혼.2. 주호소(주문제)시댁쪽 손위 형님과의 관계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고 호소하며 이것이 누적 되어 자기 감정을 콘트롤 할 수 없는 자신에게도 화가 난다고 함.3. 축어록co1: 안녕하세요. 임성재씨와의 상담을 맡은 정혜원이라고 합니다. 제가 알기론 시댁 형님과의 관계 문제로 찾아오셨다고 들었는데..cl1: 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게 이렇게 힘든건지 몰랐습니다. 너무 미워하게 되니까 제 자신이 참 괴로워요.co2: 형님이 어떤 분이신가요?cl2: 우리 형님은요, 사람이 속이 배배꼬인 사람같아요. 말을 어찌나 이쁘게 하는지...(감정이 많이 안 좋은 상태라는 걸 말투에서 느낄 수 있음) 제가 대학원을 진학한다고 했을때도 그래요. 단번에 하는 소리가 “왜에~ 박사하고 교수하려고?” 그러는거에요.co3: 형님이 대학원 진학을 곱게 보진 않으신거 같네요. 실례지만 형님은 학교를 어디까지 나오셨나요?cl3: 고등학교 나왔죠. 아주버님도 그렇고..co4: 남편되시는 분은요?cl4: 전문대졸업하고 저희 결혼 즈음해서 다시 4년제 대학에 진학했어요. 학벌보다는 자기가 일하는 분야에서 필요하니까.. 자연스레 필요에 의해서 더 공부하려고 하는 거같아요. 나중엔 자기도 대학원 갈꺼라고 하는걸 보면..co5: 형님이 학벌 쪽으로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cl5: 제가 그런 걸로 열등감을 느끼게 행동한 것 같진 않아요. 뭐 내가 어떻게 행동했건 상대가 느끼는 건 또 틀릴 수 있겠지만.. 글쎄요 학벌로.... 느낄 수도 있겠죠. 자기 애들 공부로 들들 볶는 거보면.. 세상에 큰애가 초등학교 3학년인데 과외비로 100만원이 들어간다는게 말이 돼요?co6: 살림 형편이 괜찮으신가 보네요?cl6: 아주 잘살아서 어린 애를 백만원짜리 과외시키고 하면 제가 퇴원하셨어요. 그러면 그 깟 30만원 저 같으면 그냥 저 혼자 내고 말겠어요. 그러면서 말을 또 얄밉게 “음~ 얼마 되지도 않는 돈 나눠서 낸다고 나 욕하면 안돼~” 이래요. 그런 말이나 말지.. 얄밉게..co8: 그래서 형님에게 언짢은 내색을 해보셨나요?cl8: 전 그래도 손 아래쟎아요. 싸울 작정인거 아니면 참아야죠. 아직까진 제 기억에 크게 싫은 내색 한다거나 대들거나 하는 적 없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저희 어머님, 아버님은 좋으신 분들이에요. 남들이 그래요. 시어머니 노릇을 형님이 대신 한다고 생각하라고 대신 시어머님은 보통 시어머님보다 훨씬 좋으신 분 아니냐구.. 그건 저도 알아요.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막상 형님만 맞닥뜨리면 전화통화를 해도 그래요. 정말 말을 한번도 곱게 저한테 한적이 없는 것 같아요. 아주 사람을 살살 약을 올려서 제가 울화통이 터질려고 한다니까요. (감정이 고조됨)co9: 약을 올린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 인가요?cl9: 아니 약을 올리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황당한 경우가 많아요. 말을 하려고 하니... 한 두개가 아니라서 예전 것 까지 소급돼 올라와서 또 막 열받으려고 하네요. 결혼하고 처음 맞는 명절이 있을 때 였어요. 어느날 아무런 연락없었는데 갑자기 형님전화가 왔었어요. 그것도 많이 화가나신 목소리로요. 앞으로 무슨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집고 넘어가야 겠다면서요. 제가 일찍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또 남자 형제가 없고 친척과도 사이가 안좋아서... 부모님 제사를 시집간 언니와 제가 지내왔는데 그 제사 때문이더라고요. 저는 시집을 갔고 그리고 처음 명절이라서 당연히 시댁으로 가야 하는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머님이 형님한테 이번에는 처음이라고 저의 제사를 지내고 올라오게 하는게 어떻겠냐고 형님과 의논을 하셨나봐요... 형님은 그 소리가 저한테 흘러나온거라고 생각하시고 화가나셔서 저한테 전화를 하신거구요. 상황설명은 하나도 안들으시고는 먼저 안된다는 말씀부터 하시고 따지는 소리로 말씀하시는 것부터 저는 더 잘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그래서 저도 한마디 했죠. 언제 제가 안 간다고 했느냐 가려고 했는데 왜그러시냐고. 좀 서운하다고, 처음은 그렇다고 해도 나중에 둘째 형님이 들어오시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그런데 그 말끝에 제가 감정이 너무 상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러면 알았다고 하실 수 있지 않나요. 제가 간다고 했는데... 그런데 뭐라하시는줄 아세요. 절대 그런 꼴 못보고 그렇게 마음이 약해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겠냐는 거예요. 너무 기가 막히더라고요. 제가 너무 한건가요. 그냥 그렇게 그 명절은 제가 선물과 간단한 편지 글로 잘 넘어갔지만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일은 마음에 많이 남아요. 그리고 그때는 처음이라서 그렇게 넘길수 있었던 것 같구요.co11: 그럼 다음에 또 비슷한 일이 생기면 이번처럼 안하고 다르게 하실 건가요?cl11: 그때 일은 제가 지금생각해도 이렇게 화가 나는데.... 그리고 정말 첨이라서 그렇게 넘어갔지.. 이젠 저도 그렇게 당하지만은 않고 싶어요. 모르겠어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막상 또 그런 상황 닥치면 그냥 손 아래라는 이유로 그리고 어머님을 봐서나 집안에 여자 잘 못 들어와 시끄럽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아서 늘 제가 참곤 하는데 이렇게 참으려니.. 속병만 생기는 것 같아요. 저번 추석 명절때도 기가 막혔어요. 제가 무척이나 많이 아팠거든요. 회사도 못 나갈정도로, 걸음도 잘 못 걸을 정도로 많이... 내일이 명절인데 걱정부터 됐지요. 사실 형님이 제일 걸렸어요. 그랬는데 올것이 왔지 뭐예요. 어떻게든 몸을 추스르고, 시댁에 갔는데 형님이 도끼눈을 하시고 계시더라고요. 문을 들어서 신발을 벗는 순간 형님의 말씀이...' 나는 또 다 죽은줄 알았네 뭐 말짱하네...'하시는거예요. 사실 아침 10시반정도 늦은것도 아니고 음식도 시작하지 않았을 때였거든요. 형님도 고작해야 30분 먼저 오신것 같았고...윗사람으로서 하실 말씀이 아닌게 아닌가요?... 저는 정말로 이해가 가질 않아요.c 소리... 아니면 어쩌겠냐는 소리고 어쩔때는 자기도 듣기 지겨운지 화만 내기 일수죠... 그것도 야속해요 왜 내 속을 몰라 주는지..co13: 그렇게 형님으로부터 스트레스 받을때마다 이런 사정을 주로 누구한테 토로하시나요?cl13: 언니랑 친구한테 해요. 전 친정이 없쟎아요. 남에게 화가 나서 얘기를 해도 물론 상대방은 나와 관계된 사람들이니까 날 옹호해 주기는 해도 그러고 나면 찝찝한게 기분이 이상해요. 저는 솔직히 형님하고는 가족 같은 느낌 들지도 않지만 그래도 신랑입장에서 생각하면 제가 이렇게 자기 가족 흉을 본다는게 안 좋은 거긴 하쟎아요. 그래서 이래저래 제가 속병, 홧병만 생기는 것 같아요.co14: 형님과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해보신적은 있으신가요?cl14: 관계가 지금 많이 나쁘진 않아요. 물론 좋지도 않지만 제가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한다거나 기분 나쁜 거 별로 전 내색한 거 같진 않아요. 가끔은 좀 알으라고 그냥 퉁명스럽게 전화 받거나 할 때 있어요. 그래도 주로 저 혼자 삭히는 편이죠. 다른 사람한테 형님 욕하거나 하지만 그래도 풀리진 않아요. 이게 차라리 친구면 싸움이나 하죠. 시댁 형님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저만 속병이 생길 것 같아요. 이젠 전화 목소리도 듣기 싫고 만나서 얼굴 쳐다보는 거는 더더구나 싫어요.co15: 본인이 그런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걸 형님은 아실까요?cl15: 글쎄요. 눈치를 챌 수도 있겠죠. 저도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겉으로 어느 정도 표정이나 말투에서 표시가 날 테구요.. 아니 어떤 때 형님이 느끼기도 하나봐요. 그러면 다시 제게 물어요 “왜 언쨚아? 난 그런 뜻이 아니라...” 하면서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전 그 말투가 더 짜증스러워요.co16: 형님에게 자신의 감정을 말해보려고는 해보셨나요? 가령 내 생각은 이러하다, 혹은 형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 기분이 조금 상한다 등..cl16: 제가 말을 해서.. 대화로써 풀릴 사람 같으면 이렇게 맘 고생하고 스트레스 받지도 않죠. 형님이랑 나그건 더 그렇겠죠. 그런데 아주 가끔 사람 헷갈리게 하는 소리 할 때가 있긴 있어요. 저는 명절 때마다 예의상이라도 아니 사람 사는 정이 그렇잖아요. 명절 때면 작은 선물이라도 주고받는 게 인정 아니겠어요. 늘 작은 거지만 저는 준비를 하거든요... 저도 자꾸 감정이 쌓이다 보니까 치사해 지내요.. 한번도 저는 형님한테 받아본 적이 없답니다. 그래도 이제 아마 제가 선물 안하면 서운 하다고 하실 거예요. 또 어쩔 때는 다 그렇다며 자신이 이러고 싶지 않아도 돈이 없어서 그런다고 미안하다고 하실 때는 정말 제가 못된 사람이였나 하는 생각을 들게 잘 하실 때는 있는데 그럴 때 정말 헷갈린다구요. 그러면서도 매번 부딧치면 여우로 변해버리고 제가 늘 황당하답니다.co18: 그럼 형님이 간혹 잘 해주실때도 있으신가요? 형님을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라던지..cl18: 제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느낄 때가 바로 그럴 때에요. 우리 형님은 말만 그렇게 하시지 막상 일을 하게 되면 또 저를 위해 주시기도 하시죠. 예를 들면 아까 말했던 명절때도 말씀은 그렇게 하시면서도 막상가서 음식을 하게 되면 저는 거의 옆에서 돕는 편이지 많이 하지는 않아요. 물론 제가 못해서 그렇기는 하지만요. 저녁 쯤에는 늘 힘들었지...하는 말씀을 하세요. 아픈데와서 고생했네....하시면서요. 그럴때면 아까 마음 상했던 내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지요. 형님을 보면서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속담이 있지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전 그 말을 형님을 보며 실감 한다니까요.co19: 어떤게 형님의 진심인지 모르게 헷갈리시겠네요.cl19: 맞아요. 선물도 그래요. 말씀은 마음이 더 중요한거라고...물질이 뭐가 중요한거냐고 그래요. 알아서 전화 한통만 하면 되는거라고 하는데 이 말을 진실로 받아드려야 하는지 아님 가식의 말로 들어야하는지...그러고도 말로는 늘 없어서 그런다고 하시죠...돈말이예요. 저희 집은 무슨 일이 있을때 거의 형제들이 똑같이 나누어서 하거든요. 집안행사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