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교주의 논쟁과 임화의 사상99011129 김영옥1. 기교주의란?기교주의라는 용어는 김기림의 시에 있어서의 기교주의의 반성과 발전 이라는 논문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그는 그것을 시의 가치를 기술을 중심으로 하고 체계화하려고 하는 사상에 근저를 둔 시론이라 정의하였다. 이 논문을 바탕으로 1935년 12월부터 1936년 3월에 걸쳐 있었던 기교주의 논쟁에서, 논쟁의 세 축이 되는 임화 ·박용철· 김기림 이 세 사람에 따라 조금씩 의미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로 김기림이 정의한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쓰였다고 볼 수 있다.임화가 지적했듯이 기교주의 논쟁은 시에 대한 근본 입장의 차이에서 기인 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 기교주의 논쟁은 단순히 詩作에 있어서의 기교의 측면만을 논한 것이 아니라 당대 시단의 제 경향에 대한 평가 및 시의 본질과 기능, 근대시의 발전 방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논의를 하였다.2. 기교주의를 논할 당시의 카프 최고 자리의 인물로서의 임화의 실정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카프가 과거와 같은 실천적인 행동이 거세되고 위축되었으며 1935년 6월 카프가 공식적으로 해체된 사실은 프로시의 미래를 더욱 암담하게 했다. 이런 실정에서 문단의 주목을 끌만한 작품이 나오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나마 비평계는 창작부 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었고, 이들의 비평은 대부분 이러한 현실적 압력과 침체의 늪에서 어떻게 새 활로를 찾을 것인가에 대한 이론적 모색이었다.⇒김기림의 논문에 반론을 취하는 형식인 담천하의 시단 1년 을 쓰게 된 것도 이처럼 강화된 일제 압박과 그에 따른 진보 세력들의 후퇴 속에서 프로시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3. 기교주의 논쟁의 전개 과정·김기림, 시에 있어서의 기교주의의 반성과 발전, 1935년 2.10-2.14Re: ·임화, 담천하의 시단 1년, 1935년 12월Re: ·박용철, 올해 시단 총평, 1935년 12.24-12.28·김기림, 시인으로서의 현실에의 적극관심, 1936년 1.1-1.6Re: ·임화, 기교파와 조선 시단, 1936Re: ·박용철, 기교주의 설의 허망, 1936년 3.18-3.25·김기림,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 1939 →자신의 시론 재정립4. 기교주의 논쟁에서의 임화의 논리「담천하의 시단 1년」은 당시의 조선 시단의 실정에 대한 인식이 기본이 되고 있다. 그러한 인식을 하는 임화 자신의 사상의 기본은 그의 동일 글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시인일 수 있는 명예와 그 자격은 그가 시대 현실의 본질이나 그 각각의 세세한 전이의 가장 민첩하고 정확한 인지자(認知者)이며, 그 시대가 역사적 전진을 위하여 체현한 바 시대적 정신의 가장 솔직 대담한 대변자인 데서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라는 입장을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임화는 당대 조선 시단의 경향을 복고주의, 기교주의, 프로시의 세 가지로 나누고 있다. 임화가 생각하는 근대시의 진정한 후예는 프로시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만하며 그러므로 프로시를 제외한 두 가지 경향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먼저 복고주의 경향에 대해 한때는 신시 운동의 선구자였던 문인들이 1930년대 들어서 창가, 가요와 같은 정형시로 기울고 있는 것을 지적하며 그들을 보수적이고 낭만적인 민족주의와 예술지상주의의 옹호자 라고 비판한다.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기교주의 논쟁 의 실질적인 발단이 되는 부분인 기교파에 대한 지적이다. 그는 김기림의 시와 시론에 주목하여, 그가 주장한 비판적 지성에 의한 질서에의 의지나 문명 비판이 실상은 인텔리겐치아 유의 소비적 취미와 감각적인 심미성에서 그치고 있음을 비판한다.「기교파와 조선 시단」은 임화 자신의 기존 글에 대한 박용철, 김기림의 반론 혹은 임화의 글에 대한 그들의 자답 형식의 글에 임화가 다시 한 번 자신의 논리를 강조하는 글이다.김기림의 경우에는 임화가 지적한 내용 의 부실에 대해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으므로 주목할 만한 논리보다는 자신의 지난 글에서 지적했던 바를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정도에서 그쳤으나, 대체로 담천하의 시단 1년 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박용철의 「乙해 시단 총평」에 대한 맹렬한 비판을 가한다.박용철이 시 창작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예술이전의 부르는 표현될 충동 즉 영감 과 그것을 언어의 기술 로써 표현하는 과정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시적 변용-19세기 낭만주의 시론에서 말하는 자기 동일시의 개념- 이라 한 것을, 즉 그의 시론에 대해, 나는 서정시라는 것이 영혼의 감동을 노래하는 것이라 든가 감정은 다만 하나의 온전한 상태이라든가, 그 자체는 말을 갖지 않았다 든가 하는 신비적이고 계시적인 영감에 의한 시작설을 믿을 수 없다 고 비판한다.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서과목명: 문학세미나담당교수: 김영옥소속: 어문학부학번: 99011129성명: 김영옥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라는 책을 세미나 커리로 선정하게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나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리얼리즘 계열의 문학을 논하기 위해, 소위 사회 참여적인 문학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번 주제에서 할 수 있는 논의거리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리얼리즘 문학의 기능과 한계에 주목하여 이 보고서를 쓸 생각이다.리얼리즘이라. 외국의 예에서도 볼 수 있겠지만 특히 외세에 의한 恨의 역사를 살아온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문학 양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전환기에서부터 해방기까지의 詩史는 시대상황을 빼놓고서는 이해하기조차 힘든 작품들이 많다. 전형적인 예로써 카프 문학을 들 수가 있다. 카프에 속하는 시인의 작품 안에는 검열로 인해 삭제된 부분이 xxx등으로 표시된 시가 수두룩한데, 그때의 시대 상황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가 없고서야 그 시의 참된 의미나 의도 등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며 오히려 왜 시에 장난을 쳤는가 하는 의문까지도 들 수 있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카프에 속하는 시인의 시에는 선동적인 단어 또한 심심찮게 발견된다. 그러한 경향은 시대가 조금 달라지기는 해도 신동엽·김수영 등에서도 이어지며 시에서뿐만 아니라 소설에서도 발견된다. 이청준 氏의 『마지막 테우리』가 그의 적절한 예가 될 줄로 믿는다.이러한 문학이 궁극적으로 목표하였던 바는 미루어 짐작해 보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리얼리즘 군의 작가들은 文學을 그들의 수단으로 삼아서, 어쩔 때는 오히려 무기로 삼아서 전투적으로 현실에 뛰쳐 들어 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들의 문학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위한 서정장르로서의 문학이라기 보다는 현실의 문제점 혹은 모순 등을 지적하는, 대중을 선동하기 위한 문학으로 많이 쏠리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적지 않은 리얼리즘 계의 작가들이 현실 삶에 참여하는 것을 잊지 않고서도 문학성까지도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을 간과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많은 리얼리즘 계의 작가들은 문학성을 포기하고서라도 무엇 을 쓰는가에 집착하는 것이 현실이다.과연 리얼리즘 문학은 사회 변혁의 가능성을 위해서 문학적인 기능까지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일까? 수업시간 중에도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가 조금 나오다가 말았던 것 같다. 한 명의 학생이 꼭 난·쏘·공만을 지목해서가 아니라 리얼리즘 문학이라면 차라리 적극적으로 현실을 거르지 않은 채로 세상에 내놓아야 하며, 반대로 조세희의 작품처럼 현실을 미화하여 표현하는 것은 혜택 받은 자로서의 시혜성이 엿보이기 때문에 가식적인 것, 같다라고 말한 게 생각난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회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하더라도 문학은 문학인 것이다, 는 대목이다. 또한 그러한 발상이 더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리얼리즘의 원래 목표가 대중을 선동하여 현실의 문제점을 그들의 행동력을 바탕으로 개선하는 것이었다, 라고 한다면 더욱 더 원래의 의도에서 벗어나고 마는 것이다.카프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문학이 직설적으로,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형태로 표현된다면 그것을 읽고서 분노하는 자들은 작품 속에 드러난 문제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자들뿐일 것이다. 실제로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을 책 속에서 읽는다고 해도 대중은 그것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을 것이며, 오히려 이것이 왜 리얼리즘 문학인지에 대해 의아해 할 것이다. 현실은 원래부터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그러한 현실은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다른 부분이기는 해도 여성문제를 다룬 리얼리즘 계의 작품들이라 해도 그것을 현실 그래도 담았다면 그것을 읽고서 흥분하는 것은 직접적인 피해를 당하고 있는 여성뿐인 것이다. 진실로 여성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그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며, 진실로 진실로 여성문제를 올바르게 대중 모두에게 인식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에 직접적인 피해를 받고 있지 않은 여성과 남성을 포함한 모두에게 현실을 자각할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표현된 문학이 필요한 것이다. 즉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모순된 현실에 낯설게 하기 의 홍수를 퍼부어야 한다. 일반의 리얼리즘 작가들이 쓰고 있는 표현 방식인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을 기존의 문학에 대비된 낯설게 하기 효과라고 보는 견해도 있을 것이나 거친 표현력을 수단으로서 낯설게 하기 를 시도하기엔 그것은 너무 낯익은 발상이 되고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