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目 次 >Ⅰ.서론Ⅱ. 포스트모더니즘1. 포스트모더니즘의 발생배경2.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3.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4.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진리관Ⅲ. 포스트모더니즘과 교육1.포스트모더니즘철학의 교육적 시사(방법론적)2.포스트모더니즘과 교육과의 관계3.포스트모더니즘의 교육적 수용과 이해4.포스트모더니즘의 교육적 의의와 한계5.우리나라의 교육과제Ⅳ.결론Ⅰ.서론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연극과 미술 분야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거론되는가 하면 문학이론과 비평분야 그리고 건축분야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뿐만 아니라 철학에 있어서 포스트 모던철학이 거론되고 사회과학에 있어서는 물론 자연과학에 있어서도 포스트모던 과학에 대한 논의가 대두되고 있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포스트모던'이라는 말이 우리 시대의 문화를 특징짓는 말로서 부각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학부시절에 철학을 전공하여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현상이 시대의 변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 시대적 변화를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이 요청됨을 알 수 있다. 먼저,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적 시대에서 붕괴의 시대로 변화하고 경제 또한 절약이 미덕이었던 시대에서 소비가 미적이 되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인간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도 형이상학적인 시대에서 시호화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또 이성붕심에서 감정중심으로 문화의 측면에서도 수동적인 정적문화의 시대에서 능동적인 동적 문화의 시대로 변화되고 있는 실정이다.이러한 시대적 변화들을 토대로 포스트모더니즘이 요청되고, 변화의 시대 속에서 실천적인 행동에 대한 이론적인 정당화나 근거가 되어주고 있는 철학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던사회의 준칙을 피기하고 반발하는 것으로 분산과 다원화로 대적하는 모던사회의 확장으로도 볼 수 있다.이러한 상황 속에서 과연 오늘의 사회문화를 특징짓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엇인가, 또한 그것이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것이 주는 교육적 시사점은 무엇인가 등의 배경을 보면, 기존의 학문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며 인과적이고 계량적이며 객관적인 기준을 충족시켜야 학문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모든 학문은 고전물리학처럼 과학화되어야 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 고전물리학적 과학이라는 학문의 절대적 전형이 무너지고, 학문과 비학문의 경계도 무너짐으로써 학문적 다원주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현대의 이러한 학문적 상황을 정당화시켜 줄 이론적 근거가 요구되었는데, 이러한 요구와 더불어 나타난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2.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1)포스트모더니즘의 부정적 개념(소극적 측면)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은 철학, 과학, 예술 등의 각 분야에서 진리와 지식, 가치, 그리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기존의 이론체제나 설명체제에 있어서 그것이 표방하는 절대성, 객관성과 확실성을 부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의 상대성, 주관성과 우연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모더니즘이 가졌던 지적, 도덕적 권위의 허구성을 드러내고 나아가 그러한 인식에 더하여 새로운 설명체젤ㄹ 자유롭게 탐색하는데 있다. 그래서 기존의 사고체제나 하나의 통일된 원리나 이론, 법칙에 의해 관심대상을 설명하고자하는 전체적 획일성 사고방식을 거부한다. 부정적 개념의 진리와 합리성, 이성, 객관성의 절대적 기준을 부정함으로써 상대부의적인 사고와 개인주의적이며 허무주의적인 경향을 사회에 확산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상대주의와 허무주의, 혼란과 아노미의 시대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2)포스트모더니즘의 긍정적 개념(적극적 측면)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포스트모더니즘이 비이성주의와 상대주의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부정과 해체로 지워지는 포스트 모더니즘개념이 갖는 상대주의경향과 부정의 영향은 적극적 측면인 긍정적 개념으로 부정될 수 있다.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 자체를 자기 파괴적인 부정과 비합리적 상대주의 그리고 허무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은 잘못된 일면적인 이해와 결과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의 부정적 개념은 그 대혁명을 통해 표출되었다. 이성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주어져 있지만 스스로 계발하지 않기 때문에 성숙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계몽주의 사상은 결국 인간 이성과 이의 무한한 발전가능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산출하였다. 그런데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이성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취한다. 즉, 계몽주의적 현대인인 `목적`보다는 `방법`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1) 자신을 자연과 대립시키고, 2) 자신을 다른 인간과의 관계로부터 분리시킨다.첫째 방법은 근대의 자연과학에서 발전되었으며, 결국 자연을 인간이 무한히 지배할 수 있는 객관적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산업혁명은 바로 이러한 자연 과학적 객관주의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자아와 타인의 분리를 토대로 하는둘째 방법은 결국 사회적·정치적 이기주의로 발전되었으며, 현재 자본주의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 요컨대, 현대를 구성하는 계몽주의 사상은 인간 이성의 무한한 발전에 대한 믿음과 자연에 대한 지배, 그리고 주체와 객체 나와 타인을 구별하는 보편적 객관주의로 요약된다. 결국 현대에서 문제시되는 것은 이성에 대한 인간의 절대적 믿음, 즉 `인간 절대주의`인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에 대해 회의를 품는다. 즉, 인간 이성의 절대화와 보편화라는 현대성의 핵심에 대해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다원성과 유한성을 제시한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의 절대화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기소회를 야기할 수 있다는 비판적 반성을 통해 인간의 유한성과 역사적 구속성을 적극적으로 사유하여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자 하는 `유한성의 철학`인 것이다. 다시 말해 포스트모더니즘은,1)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는 대신에 인간과 자연을 포괄적인 관계 속에서 고찰하며,2) 인간의 무한한 발전을 믿는 대신에 기술 발전이 부분적으로는 퇴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자각하며,3) 모든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 하나의 이념 대신에 다양한 의견의 권리를 인정한다. 이처럼 오늘날의 사회는 하나의 진리에 결코 주입을 통하여 제대로 길러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실제 교육의 장 속에서 교사나 동료학생들과의 개방적이고 비판적인 대화의 경험과 공동의 지석, 노력의 과정에 참여하는 속에서만 올바르게 체득될 수 있을 것이다. 학교교육의 장은 기존의 사회적 전통을 일방적으로 전달 수용하기 위한 학습의 장이 아니라 개방적이고 비판적이니 대화와 탐구의 장이며, 그러한 대화와 탐구의 공동노력의과정속에서 전통이 습득되고 재창조되는 학습의 장이어야 하는 것이다.2.포스트모더니즘과 교육과의 관계우리 교육의 현실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할 상황에 직면해 있다. 오늘날 포스트 모더니즘적 문화가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지적될 수 있으나, 대부분, 부정적인 측면에서만 그 영향이 부각되고 있다. 예컨대, 포스트 모더니즘적 사고에 입각하여 교육에 대한 전통적 관점과 견해가 강하게 비판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교육의 지적?도덕적 기반과 권위가 뒤흔들리고 있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교육이나 실천은 모더니즘적 사고와 언어를 토대로 하여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우선 무엇보다 교육은 전통적으로 세계에 대한 객관적 지식과 보편적 가치를 학생에게 가르침으로써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합리적 이성능력을 기르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포스트 모더니즘적 관점에서 보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이나 신념체제는 특정한 사회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서, 결코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일 수 없으며, 특정한 관점과 가치관 하에서 형성된 하나의 해석체계일 따름이다. 그리고 교육을 통해 正典으로 신봉되는 표준화된 지식들은 특정한 계층이나 인종, 성의 관점에서 쓰인 왜곡된 지식에 불과하며, 이를 보편타당한 것인 양 가르치는 학교란 문화적 폭력의 현장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때문에 지식의 절대적 객관성과 합리성 그리고 이성의 순수성과 보편성에 가정을 바탕으로 전개되어 온 교육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은 허구적인 것으로 비판된다. 그리고 객관적 합리성이개인적 및 구조적 차원에서 교육의 효과를 새로운 시각에서 재음미할 수 있는 개념적 수단을 제공해 준다.4. 포스트모더니즘의 교육적 의의와 한계한국사회는 일제치하에서 벗어난 이래 약 반세기에 걸쳐 근대화를 위해 노력해 왔으나, 근대화를 채 소화해내지도 못한 상태에서 포스트모던의 사회에 돌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사회의 각 분야에는 포스트 모던한 삶의 야식들이 분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즉 우리 자신이 근대를 제대로 경험하고 성취하지도 못 한 상황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와중에 휩싸이게 되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충분한 이론적·실제적 정초작업이 없는 상황 속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관심과 욕구만 증폭되어 왔을 뿐 그에 대한 충족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근대적 가치와 이념의 급격한 붕괴를 겪으면서 그리고 주변의 변화와 더불어 일종의 가치공동화 현상까지 감지하면서 우리는 지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 불안을 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반면에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은 하루아침에 대두한 논의방식이 아니라 꽤 오랜 토론과정과 지적 전사를 갖고 있고,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근대적 도구이성비판에서부터 데리다의 해체론에까지 이르는 일련의 중요한 선행 논의들을 거치면서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지적 문화풍토 속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다양하고 깊이 있는 논의가 비판적 안목으로 계속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상에서 살펴본 내용을 바탕으로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이 교육에 미친 의의와 한계를 요점적으로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교육적 의의로는 소서사적 지식의 중시, 교육현장 내에서의 작은 목소리 존중, 과학적·합리적 이성의 극복과 그에 따른 감성적 기능 회복, 교육의 구조적 변화 촉발, 공교육 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제공 및 대안교육·실험교육 활성화의 토대마련, 교육 및 인간이해에 대한 지평확대, 보편성·획일성·전체성의 극복과 그에 따른 다양성과 다원성의 존중, 권위주의의 극복, 지엽적이고 특수한 삶의 문제들에 대한 의미부여, 페미니스트 교육학의 발이다.
♧한국 불교사1.삼국시대(1)삼국의 불교공인과 불교의 전개과정1)고구려2)백제3)신라(2)삼국시대의 불교의 의의삼국시대의 미륵신앙2.통일신라시대1)통일신라불교의 변화3.고려시대1)고려초기의 불교계와 광종의 불교통합운동2)고려중기 불교계와 의천의 천태종3)고려후기의 결사불운동과 조계종의 성립고려의 미륵신앙4.조선시대1)조선전기①조선초기의 억불정책(태종-세종)②세종의 흥불정책③성종과 중종의 억불정책2)조선후기①문정대비의 흥불정책②조선말기♧한국 불교사1.삼국시대(1)삼국의 불교수용과 불교의 전개과정현재로 삼국시대에 불교에 관한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삼국시대 대표적인 기록을 남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삼국시대의 불교내용을 증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삼국사기는 유학자 김부식이 남겼으므로 불교를 무시하고, 유교중심으로 서술했기 때문에 불교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알기에는 부족하다, 그리고 삼국유사는 신라의 스님이셨던, 일연이 저술하였기 때문에 신라중심의 불교내용이 풍부해서 고구려, 백제의 불교기록을 알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불교공인의 과정은 고구려, 백제, 신라는 다르게 나타난다.1)고구려먼저 고구려의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불기 915, 서기 372)이 중국의 전진왕 으로부터 불상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인도 출신 인 가야국의 수로왕비 허씨가 인도로부터 불교를 직접 가져왔다는 학설도 제기 되고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소수림왕 이전에 이미 불교가 우리나라에 뿌리내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고구려가 받아들인 시기의 불교는 중국의 격의 불교 였다. 이후 인도 의 중관사상 을 계승한 삼론종에 대한 연구가 발달하였고 유식학과 중국의 천태종, 열반종이 유입되어 교학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고구려 말기에는 도교가 성행하고 불교는 정치적 세력 투쟁에 휘말려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고구려의 패망을 맞았다.삼국 가운데에서 제일 먼저 불교를 받아들인 것은 고구려이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는 약 2 ,3백년 후에 중국에 전파되었고, 중국에서 한반도에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특히 백제는 일본에 불교와 선진문물을 전해줌으로써 일본 고대사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백제불교는 역시 사상적으로는 삼론에 치중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현실에 대한 적극적이고, 개척적인 긍정적 태도보다는 다분히 염세적 기복적인 경향으로 흘러갔던 것 같고, 앞서 말한 겸익의 영향도 있어 계율에 관하여서는 매우 정통적인 이해가 있었던 것 같다. 이와 아울러 백제 불교의 특징은 그 예술적 표현력의 탁월성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사찰 건축에 필요한 모든 기술, 즉 토목, 회화, 와전, 불상조각 등 다방면에 걸쳐 단연 고대 한국 미술의 으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때에 따라 유약한 기풍을 나타내고 사치한 경향으로 흘러, 불교 본래의 사명에서 벗어나는 폐단도 보였다.3)신라신라의 불교수용은 순탄하지 않았다. 고구려와 백제는 불교공인의 과정이 순탄했던 것에 비해 신라는 갈등과정이 있었다. 고구려와 백제가 4세기 후반에 불교가 공인되었다는 것은 그 만큼 4세기 후반부터 왕권이 강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그에 비해 신라는 진한12개국을 통합하면서 신라를 형성하게 되었고, 연맹국가에서는 천손이기 때문에 국왕이라도 귀족의 자격과 동등해서 이를 대체 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이념이 필요했다. 그래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국왕은 불교수용을 주장하였고 수용을 배척하는 귀족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불교를 공인하는데 갈등이 있었다. 연맹국가가 집권적 고대국가가 성립되기 위해 왕권강화와 불교수용은 새로운 정치적 이념이 되었다. 그리하여 신라는 6세기 전반이 되어서야 불교를 공인할 수 있었고,그 시기전 까지 신라의 정치적, 사화적 상황이 혼란했었고, 왕권이 약화되어있었음을 알 수 있다.이렇게 신라의 불교는 눌지왕 때 고구려를 거쳐온 묵호자에 의해 지방에 불교가 전해졌다. 그 후 법흥왕은 불교를 수용하려고 하였으나 고유신앙을 받들던 귀족들의 반대로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 씨족적 기반을 억누르고 중앙 집권적 국가를 확립하고자 했던 왕실파들은 법흥왕을 중심으로 대 사회상(〈숭산 박길진박사 화갑기념 한국불교사상사〉에 실림. 1975)에서 김교수는 불교의 수용과 역할 문제가 왕권강화 같은 정치적 차원에서만 강조된 것은 고대국가 형성과정과 불교를 지나치게 결부시켰기 때문이라며 국가의 기원은 삼국시대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기에, 불교의 전입과 국가의 형성과는 별도로 생각해야 한다고 제시했다.그러면서 김교수는 삼국 사이의 전쟁에 주목했다. 김교수에 따르면 불교가 수용된 4~5세기 전후부터 삼국통일이 이뤄질 때까지의 삼국관계는 전쟁의 연속이었으며, 잠정적 평화와 동맹관계는 약세를 면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전쟁으로 파괴된 물심양면의 보상은 백성에서 왕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가치관을 필요로 했고, 여기에 불교수용의 의의가 있다는 것이 김교수의 주장. 왕권이나 국가라는 정치적 입장보다는 전쟁이나 개인이라는 각도에서 삼국시대를 볼 필요가 있으며, 이렇게 볼 때 삼국의 불교수용과 발전은 전제왕권 강화를 위한 이데올로기만이 아닌, 일반백성을 위한 종교적 역할도 했다는 것이다. 피지배계층인 민중은 불교에 무관심했다는 이기백 교수의 주장에 대해 장지훈씨는 〈한국고대미륵신앙연구〉(집문당. 1997)를 통해 영묘사 장육상을 조성할 때 성중의 모든 남여가 다투어 진흙을 나른 것, 의상대사의 제자 진정스님의 집안은 다리 부러진 솥 하나만 있을 정도였지만 불교에 귀의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 등에서 보듯, 당시 일반민중들도 불교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며 불교를 지배계층을 위한 사상으로만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삼국시대 불교수용과 의의에 대한 이러한 정치적. 종교적 해석에도 불구하고, 불교사상 특히 인과응보사상이 삼국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은 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자신이 겪고 있는 고난에 대한 합리적 이유를 제시해 그것을 보다 잘 참고 견딜 수 있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주체적 의지와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세상에 태어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백성들에게 주었다. 대표적인 예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죽지랑 설화 김대성 설는 30대 문무왕에서 36대 혜공왕까지이며, 그 이후는 침체기라고 할 수 있다.원효는 일심과 화쟁 그리고 무애사상을 제창하였고, 665년에 당에서 귀국한 혜통은 밀교를 전하였으며, 671년에 당에서 귀국한 의상은 676년에 부석사를 창건하고 화엄을 널리 전파하여 해동화엄의 초조가 되었다. 691년에 귀국한 승전은 당의 현수 법장이 지은 등을 의상에게 전하였다. 성덕왕 때에는 봉덕사를 건립하여 국가와 백성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인왕도량을 베풀었고, 또 751년에는 김대성이 불국사와 석굴암을 창건하였다. 경덕왕 14년(755)에는 분황사에 약사여래를 조성하였다. 이 당시의 신앙형태는 특정한 부처나 보살에게 국한되지 않고 여러 불보살을 한꺼번에 믿고 예배하거나 아미타불, 약사여래 또는 미륵이나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등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신앙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토였다. 그와 함께 약사여래, 아미타불, 미륵불, 석가모니불을 사방불로 신봉하는 사방불신앙도 나타났다. 이처럼 경덕왕 때부터는 교학연구보다는 불보살에 대한 영험담이 성행하여 불교는 점점 타력신앙적인 경향으로 전개되었다. 또 경덕왕 때에는 왕실이나 귀족들을 위한 사찰이나 불탑, 불상 등의 조성이 성행하였다. 이러한 사찰을 원찰이라 하였는데, 특히 왕실의 원찰에는 담당하는 관청을 설치하거나 국가에서 관료를 파견하였다.태현은 유식학에 정통하여 를 저술하였고, 진표는 지금까지의 교화활동과는 다른 점찰법회를 크게 일으켰다. 이 법회는 중국에서 편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에서 설하고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참회의식이다. 점찰법회는 불교가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고대사회부터 행해졌던 주술과 점복이 불교의 참회법과 결합된 의식이다. 그러나 혜공왕 이후부터 불교는 점차 침체되어갔다. 그러한 가운데 830년에 당에서 진감이 귀국하여 쌍계사를 중심으로 선법을 전파하였다. 9세기로 접어들면서 수용되기 시작한 선은 이미 진덕여왕 무렵에 법랑이 중국 선종 제4조인 도신의 선법을 전래하였고, 이어서 신행은 신수의 북종선을 전래하였으나경에는 지방 호족들의 후원이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는데 있어 선종이 그 사상적 근거를 제공했기 때문에 선종을 대중화하는데 힘썼다. 호족들의 이러한 노력 등을 통해 이른바 선문9산이 성립되기에 이르지만, 당시 신라의 지배체제에 반발하고 있던 지방 호족들은 이를 계기로 점차 세력을 확대해 나아가 종국적으로는 신라의 멸망에 영향을 주었다.3.고려시대1)고려초기의 불교계와 광종의 불교통합운동송악의 호족 세력이었던 왕건이 918년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 정권을 세우고, 936년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고려 시대는 시작된다. 건국기에 왕건은 동요하는 민심을 무마하고 지방 호족 세력을 회유하기 위해 일련의 회유 정책으로써 불교를 숭봉하는 정책을 폈다. 그래서 신라 봉건 지배 계급의 이익을 위해 연례행사로 치러졌던 왕실 주체의 호족불교 행사인 팔관회 제도를 받아들였다.그리고 태조가 자손들에게 남긴 유훈 [훈요십조]에 나타나듯이 - 훈요 십조의 제 1조에 " 우리나라의 대업은 반드시 부처님의 가호에 힘입은 것이므로 선 . 교 사찰을 세우고 주지를 보내 분향 수도하게 할 지어다." 하며 불교 숭봉을 표방하면서도 동시에 " 후세에 간신이 정권을 잡아 승려의 청탁을 따르게 되면 각 종파가 서로 사찰을 뺏는 다툼을 벌일 것이니, 이를 엄금할 지어다." 라고 하여 불교에 대한 국가적 통제의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그래서, 불교는 지배층의 안녕과 복을 빌어 주고,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국교적인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민중들은 고려 왕권의 기만적 불교 통제 정책아래 소외되었고, 왕권의 비호 아래 날이 갈수록 불교는 점점 썩기 시작했다.통일신라말기에 지방호족들이 성장하면서 분권적인 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고려초기에 불교 또한 여러 종파들로 나뉘어져 있었다. 선종의 각파들과 교종(화엄종)이 견훤 세력을 지지하는 남악파와 왕건 세력을 지지하는 북악파로 분열되어 있었다.이런 분권적인 체제를 광종은 왕권을 강화의 일환으로 개혁운동을 통해 통합하기 시작하였다..
1. 구성주의의 기본 개념교육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려는 많은 노력중의 하나는 효율적인 교수 방법을 탐색하여 학습에 적용하는 것이다(김종순, 1996).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과거의 주된 노력은 주로 가르치는 교수에 중점을 두어 이루어졌다. 그러나, 과학분야에서 일어나는 패러다임적 변환처럼 교육분야에서도 주된 강조가 교사(teacher)-교수(instruction)에서 학생(student)-학습(learning)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즉, 인간이 지식을 형성하고 습득하는 과정은 개인적인 인지적 작용의 결과로 보는 상대주의적 인식론인 구성주의적 입장이 바로 그것이다 (강인애, 1997). 구성주의의 등장은 사회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농경시대에는 가정을 중심으로 도제관계의 형태를 빌린 교육이 이루어졌고, 산업시대에는 학교에서 집단학습의 형태를 띤 교육이 이루어졌다. 정보화시대로 특징지어지는 현 시대는 학습자 스스로 자신의 학습에 대하여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동시에 학습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학습활 수 있는 환경을 구현하려는 교육이 요구된다(강인애, 1997).그러나, 기존의 우리나라의 교육은 단편적 지식 암기 중심적이고 지식전달위주이어서 학생들의 능동적인 참여와 스스로의 지식구성이 어렵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종래의 수업은 객관주의에 입각하여 지식의 전달을 강조하였고 전문가에 의한 과제분석, 행동적 목표의 진술, 준거지향 평가, 프로그램된수업등은 학습자 스스로 의미있는 지식을 획득하거나 새로운 상황에 전이를 지원하는 데 여러 가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허창범, 1992 ; 김성기, 1994 ; Merril et al., 1990). 결국, 이와 같은 단점을 극복하고 학습자들이 유의미한 학습(meaningful learning)을 가능하게 하소고 전이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학습자들이 세상에 대한 의미를 스스로 구성할 수 있는 학습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과제로 등장했다.2.구성주의의 학습조건구성주의에 따른 수업의 목표가 문제해결, 추론, 비판적 사고, 그리고 지식의 적극적 사용 등으로 이루어진다면, 이러한 목표들에 도달하기 위한 학습조건들은 무엇인가? 이 조건들은 학습의 결과물보다는, 학습의 과정을 상당히 강조한다. 요약하면, 권장조건들은 다음과 같다.1)실제적인(authentic) 활동을 포함하는 복잡한 학습 환경을 제공한다.“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갖지 못한 학생들이 그런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학습을 하였다고 기대될 수는 없다.” 이러한 주장은 대부분의 구성주의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으며, 나아가 그들은 학습자들을 위한 과제의 단순화 작업은 실제 생활에서 당면할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의 학습을 억제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문제해결 기법들을 최대한으로 학습하기 위해서는, 학습자들은 복잡한 상황들과 마주쳐야만 한다. 학습 환경의 복잡성의 정도는 학습주제 및 내용, 학습 도구에 크게 의존하고 학습자의 나이와 특성에도 어느 정도 의존한다. 특히 과학과 수학 분야에서, 대부분의 구성주의자 수업의 목표는 학생들의 직관적인 개념들 혹은 오개념들을 노출시키는 데 두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학습 상황이 학습자들의 수업 전 모델들의 부정합성 혹은 부적합성을 명시적으로 밝혀 줄 수 있어야 하고, 나아가 보다 나은 모델을 구성하게 하든지 혹은 최소한으로 교사가 제시한 모델의 장점을 인식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2)학습의 통합적 한 부분으로서 사회적 타협(social negotiation)을 제공한다.학습은, 대부분의 경우에, 공동체적 활동이고, 문화의 공유 활동이다. 뷔고츠기의 표현에 따르면, 인간의 고등 정신 과정들은 사회적 문화적 상호작용을 통하여 발달한다. 구성주의자는 학습과 사고활동에 관해 이런 신념들을 갖고 있으므로 학습 환경의 중요한 특징으로 협동학습을 강조한다. 협동학습의 또 다른 중요 기능은 다른 사람의 견해 혹은 관점을 이해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학생은 어른들 그리고 보다 높은 능력의 동료들과 협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하여 학습한다. 협동과제의 경우에서처럼 학생들은 동료들의 사고 과정을 접하게 된다. 이 방법은 학습결과가 모든 학생들에게 제시되도록 만들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사고과정이 모두에게 제시되게 만든다. 뷔고츠키는 성공적인 문제 해결자는 어려운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담화를 한다고 지적하였다.3)수업내용을 다양한 양식으로 제시하고 표현한다.산만하고, 불규칙하고, 그리고 복잡한 사례들은 엉성하게 조직화된 수업내용 영역들의 전형적 보기이다. 일반적 원리들은 이러한 사례들에 폭넓게 적용되지 못하고, 또한 이러한 영역 내의 사례들 혹은 내용 모두를 대표하는 단 하나의 유추 혹은 모델을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학습자가 잘 조직된 내용영역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던 전략들을, 엉성하게 조직된 영역들에 적용하고자 하면, 학습자는 맥락 혹은 상황에 독립적인 표현들에 대해 지나친 단순화, 지나친 일반화, 지나친 신뢰를 하게 되는 오류를 범한다.4)반성적 고찰을 배양시킨다.반성적 고찰이란 "지식 구성과정에서 학습자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는 학생들의 능력"이라고 정의될 수도 있다. 자신의 사고과정 및 학습과정에 대한 인식은 인지적 정보처리 이론가들이 흔히 초인지(metacognition)라고 부르는 능력이다. 자신의 사고절차에 대해 보다 더 예민하게 인식하도록 학습자를 도와주는 일이 심적으로 풍부한 행동, 전략적 행동 혹은 인지적 전략들을 개발시키는 데 필수적이다. 구성주의자들은 반성적 고찰에, 비판적 태도 즉 어떤 구조들이 어떤 방법으로 의미화를 생성시켜 나가는가에 관해 학생들이 인식하도록 조장하는 태도도 포함시키고자 한다. 반성적 고찰이라는 목표는 수업내용의 다양한 제시와 다양한 관점들에 대한 이해에 의해 부분적으로 지원될 수 있다. 또한 반성적 고찰의 조장이라는 학습조건은 논리적 추론, 다양한 관점들의 이해, 자신이 옹호하는 신념들에 대한 어떤 입장의 확보와 같은 학습목표들의 획득에 필수적이라고 구성주의자들은 주장한다.5)학생중심의 수업을 강조한다.수업을 학생의 개별적 요구에 부응하도록 설계 실시해야 한다 는 생각은 구성주의에만 고유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구성주의자 수업에 특이한 점은 학생들의 학습 요구가 무엇이며, 어떤 방법으로 성취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데에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자신의 학습을 관리할 준비가 되어있는가는 별도의 문제이다. 문제는 학생들의 자립적인 학습관리 능력 유무와 자발적인 의지의 유무에 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교사나 수업설계자는 이중의 부담을 갖게 된다. 다양한 형식의 조언, 충고, 반성적 고찰의 안내, 초인지 전략, 설득 등을 동원하여 간접적으로 학생을 지도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3. 구성주의의 적용1)학습자에게 의미있는 과제를 제시하여 학습을 스스로 통제하도록 한다 (Learner Control).학생들은 무엇이 최선인가를 알고, 그 지식에 적절히 행동하는 능력이 있다. 따라서WBI, 재택수업, 온라인 가상학교 등을 제공하여 학습의 과정을 자신이 통제하도록하고 학습자의 흥미와 목적에 부합된 과제를 제시한다.▶ WBI, 재택 수업, 온라인 가상학교2)학습자의 의미 구성 과정을 도와준다(Computer와 Media의 활용)학습 내용의 구조화는 구성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스스로 의미를 구성하는 행동을 제한할 위험이 있다. 대안으로서 하이퍼텍스트 또는 하이퍼미디어의 환경을 제공 하여 새로운 방법을 사용하고 multilineal thinking을 하도록 하여 정보를 다양한 각도로 해석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도록 한다.▶ 코너 학습, Project 학습3)교사는 학생의 학습 활동을 도와주는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한다(Scaffolding).구체화되고 구조화된 지식이 전수자가 아닌 scaffolding의 역할을 하여 학습자의 성장을 돕는 학습 환경을 제공한다.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보다는 학습자를 도울 학습환경을 어떻게 설계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학습자의 측면에서 안내해 준다.▶ Team Teaching4) 학습자들이 실제의 환경 속에서 상호작용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제공한다 (Context).과제를 수행하는 맥락 안에서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역동적인 전체와 실제 환경의복합성을 반영하도록 하고(context) 동료학습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Situation Learning, PBL, Jigsaw, Collaborative Learning, NIE5. 학습 환경에 대해 반추해 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Assessment)수행평가, Portfolios, Authentic Assessment등을 통해 학습자 자신의 경험과 지식습득과정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구성할 수 있게 해준다.▶ 수행평가, Portfolios, Authentic Assessment 교실 내 수업 환경에서의 구성주의적 접근사례♣ 문제중심학습(PBL)-학생들 스스로 당면한 문제를 분석하여 본인들이 배워야 할 문제들, 각자 혹은 그룹의 학습목표를 정한 후 개인적으로 맡은 부분에 대한 연구 를 하는 자율 학습단계를 거쳐 다같이 모여 토론하고 평가하는 방식으로 학습을 진행, 평가는 학습내용, 문제해결과정, 그룹의 한 일원으로서의 토론기술에 관한 평가를 함. 학생들로 하여금 실제로 사회에 나와 그들이 대면하게 될 과제나 활동들과 유사한 과 제를 통해 그들의 사회적응력을 높일 수 있는 학습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구체적 상황에서 실제적 성격의 문제를 다루는 학습환경-실제로 의사가 하는 모 든 성격의 문제해결과정에서 학습자가 참여 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상황의 복잡함 을 그대로 지닌 문제를 다루게 함-문제를 해결해 가는데 필요한 인지적 활동들은 의사 들의 시연을 통해 문제 해결에 필요한 전반적인 문제 해결의 틀을 지니게 되고 그 개 념 틀에 비추어 자신의 문제 해결 방법을 비교하고 평가하게 됨 실제로 해결해야하는 문제를 다룸으로서 자신들의 결과에 흥미를 갖게 되고 적극적인 학습효과를 기대함.
김지용 「박지원의 문학과 사상」 한양대 출판부, 1994김진규 「연암소설의 풍자성 연구」 서강대 교육대학언 국어교육전공, 1999허수진 「연암소설에 나타난 작가 의식 연구」 숙명여대 교육대학원, 20001910년 처음으로 燕巖集 을 印行한 滄江 金澤榮(1850∼1927)은 燕巖 朴趾源(1737∼1805)의 문장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그의 생애는 청나라 중엽에 해당하나 그의 문장은 先秦의 문장을 지으려 하면 이는 선 지의 것이 되고, 사마천의 문장을 지으려 하면 이는 곧 사마천의 글이 되고, 한유와 소식 의 문장을 지으려 하면 이는 한유와 소식의 글이 된다. 웅장하고 광대하며 느긋하고 한가 하여 천 년의 역사에서 걸출함을 훑어 봐도 우리 나라 여러 문장가에 없었던 바다.{) 出生也 在淸之中世 而其文欲爲先秦 則斯爲先秦 欲爲遷 則斯爲遷 欲爲愈與軾 則斯爲愈與軾 壯雄 鉅 價遊閑暇 傑然 于千載之上 而爲東邦諸家之所未有也(, 金澤榮全 集 권 1).위의 글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연암의 문장이 後四家의 시와 함께 소재와 사상 및 字法·語法·法句에 있어서 한국 문학사상 하나의 획기적 성취에 도달하였다고들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암의 문학 연구는 대체로 그의 사상을 재검하는 데 기울었고, 문학의 본질적 연구는 한두 작품만을 대상으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으로 그 전체적인 연구의 성과는 매우 드물다고 할 수 있다.이에 본고에서는 기왕에 이루어진 연암의 문학에 대한 연구를 다시 검토하고, 그 성과물을 분류하여 연암문학의 전체적 특징을 몇 개의 작품을 들어 간략하게나마 고찰해보고자 한다. 본고에서 대상으로 삼은 작품은 , , , 등이다.이제 본 고찰에 앞서 여기서 간략히 연암의 문학에 대한 연구사를 검토해보고자 한다.1930년대 김태준{ ) 김태준, 조선한문학사 , 조선어문학회, 1931.과 권덕규{ ) 권덕규, 박연암의 을 평함 , 비평 제12호, 1932.로부터 거론되기 시작한 연암문학 연구는 195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본격적인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 시기을 도입하여 형태론적 연구를 시도한 점에서 연암 문학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 외에 연암의 문장과 문학사상에 대한 개별적 논문으로 씌어진 윤오영{) 윤오영, 연암의 문장 , 문학비평 3권 2호, 1971.과 조동일{) 조동일, 박지원의 문학사상과 소설론 , 한국소설문학의 탐구 , 일조각, 1978.의 연구도 새로운 성과이나 작품 밖에서 문학사상을 추구한 것이 취약점으로 지적되었다.1970년대 이후의 연구는 대상 작품이 열하일기 와 詩로 확대되고, 작가론과 작품론에 대한 연구도 문학관, 작품의 비교문학적 고찰, 작품의 형성 배경 연구 등으로 분리되어 연구 대상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 이들 중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박기석{) 박기석, 박지원문학연구 , 삼지원, 1984., 김영식{) 김영식, 박연암의 산문정신고 -열하일기를 중심으로- , 고려대학교교육대학원, 1975., 이종주{) 이종선, 열하일기의 서술원리 , 한국학대학원, 1982., 강동엽{) 강동엽, 열하일기의 문학적 연구 , 건국대학교대학원, 1982., 송재소{) 송재소, 연암의 시에 대하여 , 이조후기한문학의 재조명 , 창작과 비평사, 1983., 김영동{) 김영동, 박지원소설연구 , 태학사, 1993., 문영오{) 문영오, 연암소설의 도교철학적 조명 , 태학사, 1993.등이다.2. 燕巖의 생애와 문학관연암 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며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자는 美仲또는 仲美, 호는 燕巖또는 煙湘, 洌上外史이다. 아버지는 師愈, 할아버지는 지돈녕 부사 弼均이며, 어머니는 咸平 李氏 昌遠의 딸이다. 서울의 서쪽인 반송방 야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러나 가정이 어려워 제대로 공부할 방조차 없었고, 약질이어서 유년기에는 체계적인 공부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연암이 학문에 뜻을 두게 된 것은 16세(1752년, 영조 28) 때 진사 李輔天의 딸과 결혼한 이후이다. 장인에게 孟子 를 배우고 妻叔에게 史記 를 배우면서 본격적인 문장수업을 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다.50세(1786년, 정조10) 때에 친구인 愈忠文의 천거로 선공감 감역에 제수된 것을 필두로, 1789년에는 평시서주부·사복시주부, 1791년에는 한성부판관, 1792년에는 안의현감, 1797년에는 沔川郡守, 1800년에 이르러 양양부사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여생을 서울에서 보내다가 69세로 생을 마감하였다.연암이 활동하였던 시기인 18세기 후반에는 조선 사회가 중세 사회를 해체하고 근대 사회로의 지향을 촉진하는 여가적 전환기라 할 수 있다. 화폐의 유통과 수공업의 발달, 농업생산력의 향상 등으로 부의 축적과 집중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조선 사회를 지탱해 주었던 신분제도가 붕괴되어 갔다. 이러한 전환기적 사회에서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를 성리학적 이념으로 이끌어 가는 중세적 통치 질서를 비판하는 반중세적·반주자적 자세를 취하였다. 그들은 관념적·비현실적인 성리학의 허구성을 비판하면서 실용주의적 학문에 관심을 두고 숭상하기 시작하였다{) 정상진, 한국고전소설연구 (삼지원, 2000), 359쪽.. 이른바 實學派라고 불리었으며 이들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연암이다.연암은 실학파 중에서도 이용후생학파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이용후생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그것이 비록 오랑캐의 것이라도 취하고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를테면 백성과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는 명분에 구애되지 말고 선진문물을 수입하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주자학의 관념적 도선에 반기를 들고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면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백성들의 물질생활을 향상시키려는 연암의 노력이야말로 산업사회를 지향하는 근대적 각성의 표현이며, 그런 데서 근대적 사상가로서의 연암의 면모를 읽을 수 있다{) 김일렬, 고전소설신론 (새문사, 1991), 246쪽.. 그리고 그것은 그가 창작한 산문작품에서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연암의 문학관을 살피기 위해 이제 그가 지닌 사상과 문학에 대한 인식을 피력한 몇 가지의 럼 불만의 상태에서 글을 쓴다는 것이다. 다음을 보자.아이들이 나비를 잡는 것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앞다리는 반쯤 꿇고 뒷 발은 비스듬히 들고, 손가락을 벌리고 앞으로 가서, 손이 닿을 듯 말 듯 할 때, 나비는 날 아가고 만다. 사방을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열적게 웃고, 성난 듯 부끄러운 듯한 이 경지 가 바로 사마천이 바로 글 지을 때다.{) 見小兒捕蝶 可以得馬遷之心矣 前목半忌 後脚斜 指以前手猶然疑 蝶則去矣 四顧無人 然 而笑 將羞將怒 此馬遷著書時也.사마천이 치욕적인 수치와 분노에서 사기 를 집필하였던 것처럼, 연암 역시 작가가 글을 쓰게 되는 것은 자기의 뜻을 펴지 못한 채 억눌리고 소외된 데서 오는 사회적 불만 때문으로 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작가가 사회적인 불만에서 글을 쓰게 된다는 그의 주장에서 글을 통해 모순된 사회를 비판·풍자·조롱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그러면 이러한 불만이나 현실적인 문제를 핍진하게 그려내기 위해서는 어떤 표현이어야 할까? 이를테면 문학의 표현방법론상의 문제인데, 이에 대해 다음의 글이 주목된다.진실로 올바른 문장의 이치를 깨치면 집안 사람들의 일상적인 말도 오히려 근엄한 學官 과 나란히 서며, 아이들 노래와 마을의 속된 말도 훌륭한 문헌에 엮어 넣을 수 있다. 그러 므로 문장이 잘 지어지지 못하는 것은 글자 탓이 아니다. 字句의 우아함과 저속함을 평하 고 篇章의 높고 낮음만을 논하는 자는 모두가 합변의 기틀과 제승의 방법을 모르는 자들 이다.{) 苟得其理則 家人常談 猶列學官 而童구里諺 亦屬爾雅矣 故文之不工 非字之罪 披評字句之雅 俗 論篇章之高下者 皆不識合變之機 而制勝之權者也( 燕岩集 권 1, ).위에서 合變 이란 말은 부분적인 요소를 합쳐서 부분적인 요소들이 원래 지니고 있지 않던 새로운 뜻을 만들어 내는 변화{) 조동일, 한국문학사상사시론 (지식산업사, 1997), 263쪽.라는 뜻이다. 이는 문장작법을 말한 것이자, 연암이 문학을 유기적 조직체인 구조로 파악하고 있음을 보인 것이않도록 해놓고서 자아와 세계의 긴장된 대결을 통해서 적대적인 세계의 허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바로 연암의 소설{) 조동일, 위의 책, 276쪽.인 것이다. 이제 이러한 연암소설의 실체를 구체적인 작품들을 살펴보기로 한다.4) 賣官賣職의 諷刺, 이 작품은 연암의 한문 소설 중에서 그의 작가 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조선 후기 양반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공허한 명분에 사로잡혀 평민에 대한 침탈을 일삼은 양반층에 대한 풍자와 함께, 신분 질서가 크게 흔들린 당시의 사회상을 드러낸 이 작품은 투철한 실학 정신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문학이 경험적 사실성을 넘어서는 허구의 장치를 통해서도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는 좋은 본보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양반사회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관점을 보이지는 않으나, 양반 사류의 진정한 참 모습을 되찾아야겠다는 연암의 절박한 심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이 작품은 크게 세 장면으로 구분할 수 있겠는데, 첫째, 환곡을 갚지 못한 양반이 곤란에 빠지게 되자, 이를 본 고을 부자가 환곡을 갚아 주고 양반의 신분을 사고자 하는 부분, 둘째, 양반이 부자에게 양반 신분을 팔았음을 시인하고,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해 양반 매매 증서를 작성한 부분, 셋째, 천 석의 곡식을 대신 갚아 준 마을의 부자가 군수가 작성한 양반 매매 문권 이 체면만 따질 뿐 비생산적인 것에 불과함을 지적하자 새롭게 문서를 작성한 부분 이 그것이다.먼저 첫째 장면에서는 부자가 환곡을 대신 갚아 주고 양반 신분을 사고자 하는 부분으로 설정함으로써 이를 통해 무능력한 양반 비판과 신분 제도가 문란해진 사회상을 드러내주고 있다. 즉, 이 장면에 등장하는 양반은 어질고 글읽기를 좋아하는 군자로 표상되지만,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가지 못하는 무능력한 양반의 전형으로 제시되었다. 이러한 무능력은 양반의 아내가 하는 말을 통해 더욱 더 극명히 표출된다.즉, 양반이 꾸어 먹은 환자를 갚을 방도가 없어 밤낮으로 울기만 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자 그의 아내가
【서론】♣연구동기: 수업시간에 발표수업도 하고, 안락사 문제에 대해 배웠는데, 재미가 있어서 다시 한번 자세히 알고 싶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현재 사회적으로 관심이 큰 것도 중요하고, 안락사에 대한 나의 견해도 정리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안락사는 인간의 존엄성 도덕성인 측면 또한 윤리적인 측면에서 반대 되야 하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고통을 최소화한다는 의견 등으로 안락사의 허용을 찬성할 수도 있다. 또한 살인인가? 정당방위인가? 의 문제로도 대두된다. 네덜란드 같은 극소수의 나라는 안락사를 인정하고 있고 대부분의 나라는 비인정하고 있다. 우리는 옛날 고려장과도 비교해 볼 수 있는 안락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섣불리 판단할 수 없을 만큼 사회적 문제인 안락사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이미 사회의 하나의 사회 문제가 된 안락사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고 법적 허용에 대해 생각해보고 바람직한 사회성을 갖기 위한 주제로 정하게 되었다.◎안락사가 왜 문제가 되고 있는가?삶과 죽음은 고대 이래 철학자들이 전통적으로 다루어왔고 오늘날에도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데 현대 윤리학자들은 삶과 죽음의 문제를 전통적 입장과는 좀 다른 각도에서 다루고 있다. 그들은 추상적 차원에서 삶의 목적이나 그 실현 수단 등과 관련하여 논의되던 삶과 죽음의 문제를 구체적인 현실 차원으로 끌어내려 탄생과 사망의 문제로 다루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는 문제들은 뇌사, 인공유산, 안락사, 장기이식 등 주로 의학 및 생물과학과 관련된 윤리 문제들이다.현대에 들어 이러한 문제들이 중요하게 부각된 배경은 무엇보다도 의학 및 생명과학 지식의 증가와 의료기술의 발달이다. 생명과학자들 특히 의학자들은 그 동안 삶과 죽음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기 위해 사람의 생명을 연장하고 생식을 조작하는 기술을 발달시켰다. 의학자들은 죽음을 마치 하나의 질병으로 여기는 듯 죽음 그 자체와 싸우는 무기를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그리하여 인간에 대한 생명과학 지식이 증가하고 인공호흡기적으로 관리하려는 주장에서 출발한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그 말의 본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의 고통이나 단발마의 고통을 없애려는 어떤 의학적 개입을 생각하게 된다.1. 안락사(安樂死, Euthanasia)의 정의(定意)(1) 안락사의 정의① 옥스퍼드 영어사전 : 조용하고도 안락한 죽음을 야기시키는 행위② 웹스터 '새 국제 사전' : 치료할 수 없는 상황이나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는 사람을 아무런 고통도 주지 않고 죽여주는 행위나 관행③ 합리주의적 견해 : 인간생명이 불가역적인 죽음의 방향에서 인식되었을 때 이를 인위적으로 단축시키려는 인간의 행위2. 안락사의 역사(歷史)(1) 원시 민족 :① 한정된 식량면적에 기본인수(基本人數)를 적합시키기 위해② 전시행군(戰時行軍)이나 이동행진(移動行進)에 필요한 행동에 자유를 위해(2) '고대 스파르타'나 '희랍' : 생활능력이 없는 기형아나 기타 지능이 낮은 아이들을 도태하기 위하여 기아(棄兒)라는 형식으로 안락사 시킴(3) 고대 로마 : 기형아를 출생후 즉시 죽인다는 것을 법률로 허가(4) 게르만 족 : 기형아를 낳으면 내다버려 굶어 죽게 함.(5) 영웅적 자살(英雄的 自殺)3. 안락사의 분류(分類)(1) 생명체의 의사에 따라1)자의적 안락사 : 생명주체의 자발적 의사에 따르는 안락사. 적극적 요구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의뢰적 안락사와 소극적인 의사에 의한 승인적 안락사로 나누어 진다.2)비임의적 안락사 : 생명주체가 의사를 표현하고 있으나 시행자에게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상황에서 시행되는 안락사3)타의적 안락사 : 생명주체가 적극적으로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반하여 시행자가 실시하는 것. 강제적 안락사.(2) 시행자의 행위에 따라1) 소극적 안락사 : 생명체가 어떤 원인으로 죽음의 과정에 들어선 것이 확실할 때, 시행자가 그 진행을 일시적이나마 저지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방관하는 것.2) 간접적 안락사 :어떤 일정한 현실적 변화를 목표로 한 자기의 의도적 행위가 결과적으로 죽음로 악화되어 공동체에 많은 부담이 되며 그 희생을 더 이상 인내할 수 없을 경우, 그 생명주체는 생존의 의미가 없다고 거부되는 것.4.안락사에 대한 여러 의견들(1) 안락사와 자살의 차이 : 자살하는 사람은 대개 의료 행위와 무관한 이유로 한다. 즉, 자살은 임박한 죽음이나 그 밖의 다른 어떤 죽음을 가속화시키는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생명을 중단시키는 것 이다. 또한 자살하는 사람만이 그 자신의 죽음에 대한 유일하고도 독특한 원인이 된다. 따라서 자살의 경우 대체로 그 상황이 의료 행위와 무관하고 사람 스스로 생명을 빼앗는 것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안락사와 자살은 구별되어야 한다.(2) 직접적 안락사와 간접적 안락사의 차이① 죽음의 원인이 다르다.② 그 의도가 서로 다르다.(3) 안락사에 대한 반대 입장들① '히포크라테스 선서' 中 : …… 나는 죽음을 유도하는 독물(毒物)은 누구에게도 주지않을 것이며 가령 본인이 희망한다 할지라도 주지 않을 것이다. 또 이러한 배척(排斥)해야만 하는 행위에는 결코 가담하지 않을 것이다. ……② 카톨릭의 입장 : 1980년 5월 5일 신앙교리성성을 통한 교황의 안락사에 관한 선언 ∼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한편 죽음은 회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코 죽음을 재촉해서는 안된다.《참고》존엄사에 대한 카톨릭의 입장 : 교황 비오 12세는 의사들을 위한 연설에서 예외적인 방법을 사용하면서 생명을 연장할 의무는 없다고 언급. ⇒ 의식불명으로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는 식물인간을 존엄하게 죽게하기 위하여 인공 호흡기를 제거하는 등의, 소위 예외적인 방법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방법을 정당하게 중단할 수 있다.조건 1. 건강을 회복할 희망이 전혀 없어야 한다.2. 그 치료가 환자와 가족에게 크나큰 고통을 주지 말아야 한다.3. 환자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③ 일본의 예(例) : 일본 법의학자들이 최고재판소에서 안락사를 인정할 수 있도록 제시한 요건들을 살펴보면,첫 째, 불치의 병으로 사기(死期)가 시간적으로 절박해 있을 때 둘 째게 죽이게 될 것이다.셋 째, 불신의 가능성 : 환자와 의사간의 전통적 신뢰가 무너지게 될 것이다.넷 째, 강요의 가능성 : 생명주체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주위의 심리적인 압력에 의한 강요에 의하여 안락사를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죽음의 가치그렇다면 우리는 죽음의 문제에도 행복의 가치를 물을 수 있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인간의 생명의 최종성을 의미하며, 우리가 지금까지 알 수 있는 바로는 죽음은 곧 끝―종말이기 때문에 인간이 마지막 숨을 거둘 때,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가'에 대한 물음이 생길 것이고 또 내가 죽을 때에도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만 있다면 그 죽음은 많은 이들이 바라는 죽음일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자신의 인생이 행복하기를 원하듯, 자신의 인생의 종점인 죽음에 이르러서도 그 죽음이 행복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병고(病苦)를 겪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병으로 죽게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내가 만일 죽을병에 걸려 죽음만을 앞둔 상황에서 과연 행복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우리 자신에게 던질 수 있다. 예컨대, 죽음을 앞둔 위암 말기의 환자가 계속되는 항암(抗癌)치료와 가족들의 경제적 고통, 그리고 자신의 비관적 미래를 바라보면서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겠는가, 아니면 불행하다고 느끼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아마도 종교적 신앙심이 매우 강하거나 부자(富者)일 것이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도 우리는 그 환자를 매우 불쌍히 생각할 것이고 자신이나 가족에게 그러한 불행이 다가오지 않도록 희망할 것이다.여기에서 우리는 절망적 상황에서 행복을, 즉 '살만한 삶이다(또는 …이었다).'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그런 비관적 상황에서의 죽음에서 인간의 행복함이 지켜질 수 있는 게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 구체적인 예로 자살과 안락사를 들 수 있겠는데, 자살의 경우, 행복감을 찾기 위해서 라기 보단 자기의 삶에 대그녀의 삶이 비참진다고 판단하고, 보다 스트레스가 덜한 호르몬 치료를 택했다. 할머니의 죽음이 임박해지자, 의사와 가족들은 음식물의 공급을 중지하고 또 항생제나 산소호흡기에 의한 폐렴 치료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진통제 주사를 맞은지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가정에서 조용한 죽음을 맞았으며, 그녀의 마지막 임종 순간은 편안하고도 전혀 고통이 없는 듯이 보였다.데이비스 할머니의 죽음은 소극적 안락사인가 아니면 자연사인가? 만약 소극적 안락사라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소극적 안락사인가 부자연스러운 소극적 안락사인가? 안락사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가 안락사를 소극적인 것과 적극적인 것을 구분하는 데서 시작하고 있음에 반해, 로버트 오르(Robert Orr)는 소극적 안락사라는 말을 사용하기를 거부하고 따라서 그는 안락사를 그렇게 구분하는 것에도 반대한다.우리는 데이비스 할머니의 경우, 자연적으로 사망한 것이지 살해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한 사실인데, 이유인즉 일부 윤리학자들이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런 유의 혼란은 실제적인 의학적 살해 행위의 문제들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만약 데이비스 할머니의 임종시, 그녀를 죽도록 내버려 둔 것이 전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행위이기 때문에 안락사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면, 결국 그 결과는 죄악에 해당하는 안락사가 받아들여질 만한 행위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만약 수동적 안락사와 같은 말이 이 시점에서 받아들여 진다면, 앞으로는 적극적 안락사와 같은 행위가 더 쉽게 받아들여 질 것이다.소극적 안락사는 치료를 중단하거나 보류함으로써 환자가 자연사하도록 방치하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죽어가고 있는 사람의 생명을 유지해주는 인위적 수단을 제거하거나 중단하는 행위는 결코 안락사가 아니며 ― "소극적" 안락사는 더더욱 아니며 ― 수용가능한 행위이고, 인도적일 뿐만 아니라 일상적 의료 행위시 가끔은 있을 수 있는 불가피한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