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구 ? 민족구성 ? 언어1) 인구① 인구 : 125,449,703명 (1996년 6월)② 인구수 : 세계 7위③ 인구분포 : 따뜻하고 교통산업이 발달한 태평양쪽의 해안을 따라 많다.④ 인구밀집지대 : 도쿄중심의 관동평야지대와 오사카 중심의 긴끼 지역과 나고야를 중심으로 하는 중부지역 3곳이다. 모두 태평양 해안이 위치하고 있다.⑤ 인구밀도 : 1Km² / 334명 (1992년)⑥ 인구증가율 : 0.21%⑦ 평균수명 : 세계적인 장수국가로 남녀 평균 70세 이상. 남 75.92세 , 여 81.90세.2) 민족구성① 대부분이 우리 나라와 같은 몽고족(일본인 스스로는 大和族이라 부름)이며 아이누 족으로 불리는 소수 종 족이 살고 있다.② 종족 : 일본인 99.1% , 소집단 에타(이전 노예계급) 247만 명, 류큐만 14만 8천명, 오키나와 80만 2천명, 남아메리카 일본인 귀환자 15만 명, 아이누족 0.2%.③ 외국인 : 외국인 0.7% . 한국 72만 명 , 중국 15만 명 , 미국 7만 명 , 필리핀 3만 6천명, 불법 이주민 30만 명 이상의 파키스탄, 이란, 방글라데시,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기타 등등3) 언어① 상용어 : 일본어② 통용어 : 일본어 (영어는 거의 통하지 않음)③ 문맹률 : 1%미만 (세계 최저)2. 자연환경)동부 아시아의 동쪽 해상에 위치한 일본은 우리나라와 대한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홋카이도, 혼슈,시코쿠, 규슈 등 4개의 큰 섬과 약 4천개의 부속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과거에는 우리 나라를 통하여 대륙 문물을 전수받아 그들의 독특한 문화로 발전시켰으며,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일찍부터 근대화에 성공하였다.1) 열도의 형성① 전체적으로 활모양으로 되어 있음②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일본열도의형성(약 1만 8천년전∼1만 2천년 전 무렵)③ 약 1만 8천∼1만 7천년 전 기후의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대륙남북을 연결하던 육지 일부가 바다에 잠겨 몇 개의 큰 섬이 됨)④ 일본열도의 명칭과 관념의형성(량이 적으나 서부산간지대는 많은 강설 지역이 있다. 오호츠크해 연안은 겨울에 유빙으로 항해가 불가능하여 어업도 불가능하기도 한다.③ 산업-농업 : 도카치 평야는 밭농사위주이며 전업농가가 많다. 곤센대지에는 대규모 낙농업이 성하여 도쿄 및 오 사카등지에 대량으로 공급하고 있다.-공업 : 낙농품, 사탕, 수산물의 가공업이 중심이다. 철강, 펄프, 제지, 맥주, 사탕, 조선, 통조림 공업도 중요 하다.-어업 : 북양어업이 발달하였으나 1977년 협정에 따라 북양어업에 영향을 그 비중이 감소하고 200해리내의 연안어업의 중요성이 높아지게 되었다.④ 주요 도시-삿포로 : 이시카리 평야의 서단부에 위치하여 정치, 경제, 문화, 교통, 관광의 중심도시.-오타루 : 이시카리 탄전의 개발에 따라 그 적출항으로 개발되어 홋카이도의 해상교통의 중심지.3) 중앙일본(긴키, 주부, 간토 지방)중앙일본은 게이한신이 있는 긴키지방, 도카이·중앙고지·호쿠리쿠가 있는 주부지방, 수도 도쿄가 있는 간토지방을 합친 세지방을 말한다. 중앙일본은 일본 전체면적의 약 3분의 1에 지나지 않지만, 인구의 3분의 2가 집중되어 있는 극히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다. 공업과 상업이 발달, 공업생산액, 상업판매액 모두가 전국의 4분의 3DFM 점유하고 있다. 특히 도쿄, 나고야, 오사카 등 3대 도시는 태평양 연안에 면해 있는 태평양 벨트의 중추로서 경제·문화적 측면에서 볼 때 일본에서 가장 두드러진 발전을 이룩한 곳이며, 또한 이 지역은 사람이나 물자·통신등의 교류가 일본에서도 가장 높다.▶ 긴키① 지형 : 북부는 단바고지로 되어있고, 남부는 험한 기이산지가 있으며, 동부에는 이부기산지와 스즈카산 맥이 남북으로 발달되어 있다. 산지사이에는 긴키중앙저지로 세토나이해에 연속된 함몰지대로서 평야와 분지가 많고 저지대로 구성 되어 있다.② 기후 : 북부는 일본해식 기후이고, 남부는 태평양식 기후로서 세토나이연안은 온난하고 교토, 나라 등 내륙 지방은 여름과 같이 겨울의 기온차가 비교적 크다.③ 산업-농업 : 집약 일본국 헌법은, 제2차 세계대전에 패한 일본이, 연합국의 점령 하에 여러 분야에서 민주화가 추진되어 가던 중에 제정된 것이다. 그 특징은 주권재민 ,평화주의(전쟁 방지) ,기본적 인권존중이다.주권재민, 기본적 인권 존중 등은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본국 헌법이 시행되기 전의 대일본제국헌법(1889년 2월 11일 시행)에서는 주권은 천황에게 있기 때문에, 국민의 인권은 일정한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만 인정되었다. 이 때문에 국민에게 있어 신헌법은 구헌법에 비해 획기적인 의의를 가지는 것이다.주권자는 국민이지만, 천황이「일본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되어 있는 것이 일본국 헌법의 특색이고, 천황은 헌법개정의 공포와 국회의 소집 등 국사행위를 내각의 조언과 승인에 의해 행하게 되어 있다.제2차 세계대전후의 신헌법에서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으로 명시되어 있다.헌법은 제1조부터 8조까지, 천황의 지위, 그 세습제, 국사행위, 재산수수 등에 관해서 정해져 있지만, 제1조에서 그 지위는「일본국민의 총의에 기초한다」라고 정해져 있고, 헌법이 정하는 국사에 관한 행위만을 행하고, 국정에 관한 권능을 갖지 않는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이 국사에 관한 행위에는, 내각의 조언과 승인을 필요로 하고, 내각이 그 책임을 진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일본의 현존하는 최고의 사서에 의하면, 기원전 660년에 초대 천황이 즉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천황의 존재를 역사적인 사실에 입각해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4∼5세기 이후이다. 천황은 이 때부터 비로소 야마토 지방의 부족 연맹의 장으로서정치적 권력과 종교적 권위를 갖고 일본 주요부를 지배하게 됐다. 6세기말 아스카 시대의 쇼오토쿠 태자에 이르러서 천황의 권력이 확립됐다. 이때 쇼오토쿠 태자가 중국 수나라에 보낸 국서에 `동천황(東天皇)이 서천제(西天帝)에게'라는 표현을 쓰면서 천황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등장했다. 그 이전에는 오오기미(대왕)라 하였다. 천황이라는 말의 유래를 주요한 정당으로는 자유 민주당, 일본 사회당, 공명당, 민사당, 일본 공산당, 사회 민주연합이라는 6개의 정당이 있다.①「자유민주당」1955년 11월 15일, 그때까지 있던 자유당과 일본 민주당이라고 하는 2개의 보수정당이 합동해서 결성된 정당으로, 결당이래, 약 40년에 걸쳐 항상 과반수를넘는 의석 수를 획득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기존의 사회질서에 대해 현상유지적, 보수적인 입장으로, 기본적으로는 자본주의 경제를 기조로 한 자유주의 사회를 유지·발전시키는 것을 강령으로 하고 있다. 주요 지지기반은 도시보다도 농촌부이다.②「일본사회당」1945년 11월에 결성된 사회주의 정당이다. 일본사회당의 기본적인 입장은 민주적·평화적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하려고 하는 것이다.③「공명당」1964년 11월 17일일련 정종의 신도단체가 결성한 정당이다. 1970년 6월의 신강령에서,「인간성존중의 중도주의를 표방하는 국민정당」이라고 선언하고, 인간 사회주의, 자유 평화외교, 의회제 민주주의의 확립 등의 방침을 들고 있다.④「일본공산당」1922년 7월 15일, 비합법의 혁명 정당으로 결성한 정당이자만, 1945년 12월 합법화된 정당으로서 새롭게 발족한 것이다. 최근의 지지율은 5%정도이다.⑤「민사당」사회당의 우파가 사회당과 결별하여, 1960년 1월에 결성한 정당이다. 그 기반은 중소기업 경영자이고, 방위문제에 관해서는 자민당에 가까운 주장을 하고 있다.⑥「사회민주연합」사회당좌파에 비관적인 그룹이 1978년에 결성한정당이다.이렇게 일본에는 많은 정당이 존재하고 있지만, 자민당은 전후 대부분의 기간 정권을 담당하여 오고 있다.6. 경제① 주업 : 공업국가이며 국민 총 생산량은 3조2천2백억 불로 수출무역국가이다. 농사는 주로 쌀을 재배하며 국민들의 부의 배분이 균등한 나라이다.② 소득원 : 1인당 GNP $37,000('94년) → 미국의 116%, 외채 1인당 $9,464③ 생산물 : 기계류를 비롯해 철강, 화학제품, 자동차, 선박, 가전제품 등이며 천연자원은 빈약한 수준이다이 시작된 55년도 1차에너지공급 구성에서 차지한 비율은 77.6%에 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산 에너지비율은 76%를 차지했으며, 거의 수입에 의존하는 석유의비율은 20.2%에 불과했다.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후의 국제석유자본(메이저스)에 의한 중동유전개발과 그 소비지정제전략에 따라 원유가격이 대폭 떨어진 결과 국산 석탄에서 수입원유 쪽으로의 급격한 전환이 추진되었다.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을 계기로 석유·에너지절약 및 석유대체에너지개발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석유로부터 석탄·천연가스로의 원연료전환, 원자력발전소의 건설로 83년도 1차 에너지 공급구성에서 차지하는 석유의 비율은 60.9%로 내려갔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의 안정성이 문제가 됨에 따라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이용이 추진되고 있다.4) 경제협력과 그 문제점개발도상국들의 경제개발을 목적으로 한 경제협력의 개념에는, 넓은 뜻으로는 민간의 수출신용과 직접투자가 포함되지만, 엄밀하게는 정부개발원조 (ODA)에 한정시켜야 한다. 일본의 경제협력은, 50년대에 일본이 침략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한 배상 형태로 시작되었으나, 본격화한 것은 60년의 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 17개국)에 가입하고 국제수지에서도 여유가 생긴 70년대 이후의 일이다.85년에 새로이 제3차중기목표를 정하고 86년부터는 7개년계획으로 ODA배증 및 무상협력 확충을 내세우고 있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아시아를 향한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할 수 도 있으나 그 비율이 총액의 2/3를 차지하고 있어 가난한 나라가 가장 많은 아프리카를 향한 것은 15% 정도에 불과하다. 또한 교육·문화 등에 중점을 두는 구미 여러 나라들에 비해 산업기반과 광공업 등 경제관련 분야가 과반을 차지하는 것도 문제점이다.9. 금융,제정제도와 그 구조1) 금융의 자유화와 국제화고도성장기의 금융시장은 임시금리조정법에 의한 통제금리에 바탕을 두는 자금의 통제적 배분에 특징이 있으나, 제1차 석유파동 후의 국채증발은 그 소화문제를 통해 금리의 자유다.
{{REPORT목차Ⅰ. 들어가기...Ⅱ. 문학의 기능1. 공리성·실용성1 도덕적·윤리적 기능2 종교적 기능3 심리적 기능4 사회·정치적 기능5 교육적 기능2. 쾌락성·심미성Ⅲ. 마무리Ⅳ. 참고문헌Ⅰ. 들어가기...문학은 어떠한 구실을 하는가? 이 물음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못지않게 아주 중요하고 절실하다. 얼핏 보면 이 두 가지 물음은 서로 다른 것 같으나 실제로는 또래야 뗄 수 없을 만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문학의 기능은 다름아닌 문학의 본질에서 비롯하는 것이고 , 문학의 본질 또한 그 기능이 결정짓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많은 문학 이론가들은 문학의 기능을 주로 두 가지 측면에서 말해 왔다. 하나는 문학이 독자들을 가르치는 기능을 지닌다고 보는 태도요, 다른 하나는 독자들을 즐겁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는 태도이다. 앞의 태도는 문학의 실용적 기능을 높이 여기는 것이고, 뒤의 태도는 문학의 쾌락적 기능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본 글 에서는 흔히 실용설과 쾌락설, 공리설과 심미설이라고 부르는 이 두 태도를 중심으로 문학의 기능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Ⅱ. 문학의 기능1. 공리성·실용성(1) 도덕적·윤리적 기능도덕적·윤리적 기능을 높이 여기는 사람들은 문학을 도덕이나 윤리를 가르치는 수단으로 삼으려고 한다. 그들에 따르면 가장 훌륭한 문학 작품이란 도덕적·윤리적 가치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작품이다. 이때 도덕이나 윤리가 과연 옳은 것이냐 옳지 않는 것이냐 하는 것은 여간 중요하지가 않다. 그러므로 당대의 도덕이나 윤리에 어긋나는 문학 작품은 좋지 않은 작품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신랄하게 비판하게 마련이다. 지금까지 많은 문학 작품들이 비도덕적이거나 비윤리적이라는 까닭으로 판매 금지를 당하거나 심지어 작가가 형사 처벌을 받아 온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서양에서 D.H. 로렌스의「채털리 부인의 연인」이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또는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과 같은 작품들은 이러한 경우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비석의 「자 기능문학의 종교성, 그리스도교적 참회와 헌신과 구원을 주장한 대표적인 문학가로는 단테와 톨스토이가 유명하다. 단테는 문학의 목적이 실천적인 윤리를 가르치는 데 있다고 했으며, L.톨스토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기꺼이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도록 깨우치며 요한복음 17장 21절에 기록된 대로 사람이 각기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하나님과 사람과의 만남, 사람끼리의 만남을 촉구하는 것이 기독교 예술의 내용이라고 했다. 톨스토이는 그것 하나만을 위해서 일생을 바쳐 버리고 다른 것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자기 예술의 애호가를 극히 한정된 계층의 사람에게만 국한시키는 귀족 예술을 비난한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아무리 보아도 훌륭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V. 위고의 「가난한 사람들」과 「레미제라블」, C.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와 「크리스마스 캐롤」, H.E. 스토우 부인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도스도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 등이야말로 훌륭하거나 쓸만한 작품들이라고 했다. 톨스토이는 소외된 민중 편에서 작품을 썼고 실생활에서 그들을 옹호했다.{) 이정숙, 우군, 김봉군,『문학총론』, 개문사, 1994, p.56.(3) 심리적 기능문학은 때로는 심리적 기능을 지니기도 한다. 작가편에서 보면 문학 작품을 써서 긴장이나 갈등을 푼다. 기관지에 막혀 있는 담이나 가래를 뱉아내듯이 작가들은 자신의 마음 속에 쌓여 있던 해묵은 감정을 털어 놓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마음의 평정을 얻는다. 또한 문학가들과 예술가들은 현실에서 얻지 못하는 것들을 대신 문학과 예술을 통하여 보상적으로 얻으려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문학과 예술을 만들어 내는 것은 대리 만족을 얻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이러한 대리 만족은 작가에게만 그치지 않고 독자에게로 이어진다.{) 김욱동, 앞의 책 , p.75.작품을 쓰는 작가에 못지 않게 독자들 또한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것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대리 만족을 찬 열매가 맺히듯이 도덕적으로 건강한 사회에서 훌륭한 문학 작품이 나온다는 말이다.{) 김욱동, 앞의 책 , p.76.볼테르나 루소의 작품은 프랑스 혁명에 있어서 계몽적 역할을 했고,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의 소설은 러시아의 농노 해방운동을 추진시켰으며, 입센의 「인형의 집」은 근대여성운동의 선구가 되었고, 스토우 부인의 「톰 아저씨와 오두막집」은 미국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김대행, 『문학이란 무엇인가』,(주) 문학 사상사, 1992, p.28.K.마르크스는 문학을 사회의 기본 경제 구조의 반영으로 보아 사회 혁명의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고, 하부 구조인 물질이 상부 구조인 정신을 지배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생간 방식은 사회 생활과 정신 생활을 규정한다. 경제적인 요소가 결정적인 요소이다. 문학과 예술은 의식 형태인 상층 구조로서 경제 기초의 변화에 따라 변화한다. 그리고 다른 의식 형태의 상층 구조에 영향을 받아 그가 표현한 사회에 작용하여 사회 변동을 일으킨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 예술론의 기본 가정이 된다. 관념이 군중을 장악하면 그것은 곧 물질적인 힘으로 변하여 역사의 동력이 되는데, 사회 경제적 모순이 성숙하여 폭발점에 이를 때 경제적인 요소는 계급 투쟁을 통해 문학에 표현되므로,{) 이정숙, 우군, 김봉군, 앞의 책 , p.57.예술은 혁명을 부추기는 선동의 무기가 된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 예술론이다.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970년대 후반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란 작품이 있다. 여기서는 난쟁이 가족이 중심이 되어 산업사회에서 빚어지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생활 속에 우리 사회가 지닌 구조적 모순이 드러난다.{) 조태일, 김영석, 김종희, 신덕룡, 유진월 공저, 『문학의 이해』, 1999, p.38.이 작품에서 큰 아들이 가족에겐 그렇게 착한 아들이었고, 직장에선 이해심 낳은 동료였던 그가 인간적인 삶을 이룰 수 없게 하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극단적인 항거를 하게 하는 원인은 무엇이겠더 하면 더 하지 결코 덜하지 는 않아 보인다. 교육 이론가 가운데에는 문학을 교육에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에 따르면 문학이야말로 나이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도구로서 안성맞춤이다.무엇보다도 문학은 경험의 폭을 넓혀 주고 깊이를 더해 준다. 독서를 통한 경험은 몸소 겪는 체험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대리 경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문학 작품을 읽는 사람들은 실제 삶에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먼 나라에도 갈 수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뿐만 아니라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옛날 사람들의 삶을 경험할 수도 있다. 대리 경험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 탓할 것만도 아니다. 굶주림이나 폭력, 전쟁이나 죽음과 같은 어떤 경험은 아마 대리 경험이 아니고서는 결코 얻을 수가 없을 것이다.뿐만 아니라 사회를 결속시키고 유대 의식을 불어넣는 데에도 문학은 더할 바 없이 좋은 구실을 한다. 한 나라의 문화 유산인 문학을 두고 그 민족의 영혼이 살아 숨쉬는 몸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한 나라의 언어를 죽게하지 않고 계속 살아 숨쉬게 하는 방법은 그 언어를 가지고 문학 작품을 쓰는 일이다. 한 나라의 언어를 순화시키는 것을 두고 '말을 갈고 닦는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말을 갈고 닦으면서 사람들은 적을 무찌를 칼을 갈고 닦는다. 19세기 프랑스의 소설가 알퐁스 도데의 그 유명한 마지「마지막 수업」은 한 나라의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주 실감나게 그린 작품이다. 프랑스 땅이었던 알자스와 로렌이 독일에 병합되면서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프랑스말을 쓸 수도 가르칠 수도 없게 된다. 아멜 선생님은 그 마지막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비록 한 민족이 남의 나라의 노예가 되더라도 자기네 국어를 잘 지키고 있는 한, 감옥의 열쇠를 손에 쥐고 있는 것과 같다"라고 말한다.더구나 문학은 공동사회의 가치관을 지키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그 가치관이 화석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린 비판의 칼을 들이대기도 하지만 문학은 공동사회의 구성원이 받아들이는 가치작품에서 얻는 상상력은 일상생활에서도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한다. 나뭇잎처럼 바다를 떠다니는 상상력이 배를 만들어 내었고, 새처럼 하늘을 나는 상상력이 비행기를 만들어 내었다.2. 쾌락성·심미성명백히 문학작품에는 우리를 실용적 기능이 있다. 그렇다고 하지만 문학의 기능이 거기에서 끝나는 것은 안다. 우리가 시나 소설을 읽는 것은 배운다는 것보다는 체험하고자 하는 데 있다. 그것은 즐거움, 재미, 기쁨을 얻기 위한 것이다. 물론 문학이 주는 즐거움은 작품이나 독자에 따라서 정도의 차이가 있다. 소극은 단순한 웃음을 자아내며, 연애소설은 연정의 갈등을 맛보게 하고, 탐정소설은 호기심을 만족시키며, 달콤한 서정시는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 주기도 한다. 이렇게 문학작품을 읽을 때 느끼는 재미와 즐거움을 문제삼는 것이 문학의 쾌락설이다.{) 이영재, 김동균, 간복균, 원명수 공저, 『교양문학원론』, 어문각, 1989, p.30.문학의 쾌락적 기능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주창되어온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모방이 즐거움을 제공한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보다 잘 된 모방은 참된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준다는 것이다. 가령 시체나 추악한 동물일지라도 그것이 여실히 모방되었을 경우 거기서 즐거움과 쾌락을 느낀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장하였다.{) 권명옥, 이건청, 신철하 공저, 『문학이란 무엇인가』, 이회, 1998, p.29.그는『시학』의 '비극론'에서 비극이 주는 모순되는 감정인 공포와 연민을 통하여 독자의 마음이 흥분했다가 안정되는 상태를 카타르시스라 했다. 그에 따르면 작품을 쓰는 과정에서 작가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이상이나 욕구를 상상적으로 실현하며, 독자는 작품을 읽어 나가는 동안에 허구적 진실에 매혹, 동화되어 환상의 위안을 느끼면서 억압된 욕망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다. 비극의 목적이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의 수난에 대한 연민과 그의 목전에 박두해 있는 수난에 대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다는 점에서, 카타르시스는 이열치열의 효과를 거둔다. 비극을 통0.
종교를 알아야 일본을 안다.제 1장지금도 살아있는 종교행사1, 일본의 '가미'와 서양의 '신'이 다른점'가미'를 말하지 않고는,, 일본의 일자도 꺼낼수 없을 것 같다.책을 읽으면서도 '가미'의 개념이 잘 잡히지 않았다.그래서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가미란 고전에 나오는 천지의 제신들을 비롯하여, 그 신들을 모시는 신사의 어령 및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새, 짐승, 나무, 풀, 바다 , 산 등 무엇이든간에 범상치 않으며 덕있고 두려운 존재를 일컫는 말이지만.. 가미도 여러 종류가 잇고 그 마음도 행위도 여러 가지라 어떤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다"결국.. 가미를 뭐라고 딱히 정의가 되어 있지 않아.. 일본인이 아닌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가미'가 무엇인지 규정하기 보다는 ..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가미의 개념을 말하고 있다.제목에서 보듯 '가미'를 서양의 '신'과 비교를 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다. 가미의 특색은1.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2. 비상한 능력이 있다.라고만 나와 있다. 비상한 능력이라고 해봤자 인간과는 상대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말하며..차이는 교수와 학생과의 차이 정도 라고 하니..'가미'는 일본인들에게 신(神)비슷한 존재로.. 도움을 구하는 존재.. 인간보다 나은 능력으로 도와줄수 있는 그런 존재 이며..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다.2. '액막이(오하라이)'를 하는 까닭오하라이 : 해마다 6월과 12월 말일에 신사에서 행하는 액을 막기 위한 행사일본고유의 민속적 신앙인 '신도'에서는 인간의 불행을 본래 깨끗한 인간이 악령 때문에 더렵혀 진다고 생각한다.오하라이는 바로 악령으로 더렵혀진 것을 깨끗하게 하기위해 가미에게 기원하고 원래의 선한 모습으로 되돌아가 행복하게 살기위한 행사이다.그런데. 죄를 씻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잘게 썬 종이를 고헤이나 비쭈기 나뭇가지로 털어버리는 것, 억새풀을 굵게 꼬아 둥근 굴레를 만들어 놓고, 그 굴레를 통해 지나가면 반 년분의 부정이 억새풀의 둥근 굴레로깨끗하게 하는 것, 신사 입구의 손 씻는 곳에서 손과 입을 꺼끗이 하는 것, 히나마츠리, 마츠리 때의 사자춤 같은 것들이 악령을 추방하는 행사이다.3. '신도'에서 마츠리를 지내는 까닭사람이 사는 마을에 '가미'를 받아들여 '가미'를 받들고 인간의 행복을 기원하는 행사4.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가미'도 좋아한다.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직은 개념이 잘 잡히지 않지만..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가미도 좋아한다'는 것을 보면.. 그만큼 '가미'가 일본인들에게 멀리 떨어진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 친근하고 편한 존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5. '신도'에서 죽은 사람을 꺼리는 까닭사람이 꺼리는 곳은 '가미'도 꺼린다. 월경이나 출산은 붉은 부정, 죽음은 검은 부정이라 하여 꺼린다. 일본인들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의 혼은 재앙을 주는 두려운 존재로 생각되었다. '가미'는 죽음을 꺼리므로.. 일시적이긴 해도 자기를 의지하려는 인간을 버리고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죽은 사람으로부터 오는 재앙에 보호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6. 정치를 '마츠리고토'라고 하는 까닭천황이 '가미'와 일체가 된다고 생각하고, 천황의 말을 '가미'로 받아들여 이에 따라 정치가 이루어 져서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7. 마츠리때 승부 판정을 내는 까닭마츠때 때 내기를 해서 그 승부의 결과를 '가미'의 뜻으로 삼는 행사가 있다.씨름, 경마, 줄다리기 같은 것들은 마츠리에서 비롯된 것이다.오늘날 신사의 마츠리 행사에 가보면 경내의 노점에 활쏘기 , 파친코, 금붕어 잡기 등 내기와 관계있는 것들이 많은 것도 신의 뜻을 알기 위한 점복의 잔재일 것이다.8. 소득이 없을 때 다른 가미에게도 기원한다.일본인 들이 '가미'에게 기원하는 것들은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는 것들을 기원한다.즉, 어쩔수 없는 것 외에는 '가미'에게 부탁하지 않는다. 스스로 할 수 없을 때나 자기가 하는 것 이상의 효과나 결과를 원할 때 가미에게 부탁하는 것이다.책을 읽으면서 을..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가미'는 절대자나 지배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미'의 은덕을 얻지 못하고 불행한 결과를 얻을 때도 있기 때문에.. 마치 자신의 집 근처 병원에서 병을 못고치면 멀리까지 라고 고칠수 있는 의사를 찾아가서 자신이 섬기는 '가미'보다 더 센 '가미'를 찾아 간다.내가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예.. 최고로 센 '가미'를 믿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 아닌가!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가미'를 믿다가.. 그 '가미'보다 더 센걸 찾아 간다는 건가?가미를 모신 곳마다 .. 각각 다른 '가미'가 있을 테니.. ~!@#$%^&*$@$#그리고 '불행'한 결과를 줄수 있는 가미를 왜 믿지? 정말 답답하군..9. 무인도에도 '가미'는 있다해상에서 볼 수 있는 한 산의 모양이 방향 착오를 하지 않게 하는 목표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어민들이 궁지에 몰렸을 때 망망한 해상을 표류하기보다는 무인도에 상륙하는 편이 생명을 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무인도도 역시 구명 '가미'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는 사람이 살지 않더라도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는 섬이 많다.10. 신전 결혼식이 시작된 시기1900년에 당시 황태자 였던 다이쇼 천황이 황궁 내의 가시코도코로에서 신전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그 해 12월, 황태자 결혼을 기념해 도쿄 이이다바시에 있는 대신궁이 그 시설을 도민의 결혼식장으로 제공한 것이 시초다. 그 이전에는 신부의 행렬이 신랑의 집에까지 와서 그 곳에서 세 잔씩 세 번의 헌배를 올리는 것이 관례였다.신전에서 결혼을 하는 이유는..이즈모의 '가미' 인연을 맺게 해준다는 민간 신앙 때문같다.8장메이지 이후의 종교양성을 시작했다. 전국에 중교원, 소교원을 지정했지만, 생업에 바쁜 국민 중 교화를 받으려86. 왕정복고에 편승한 히라타 '신도'복고신도라는 신흥종교의 교조인 '아츠타네'는 메이지 유신을 앞두고 죽었는데, 그의 제자들은 그의 양자인 히라타 데츠타네를 중심으로 교단과 같은 형태로 뭉쳐, 오쿠니 류세이, 다마마츠 소,이 이와쿠라 구시를 위시해 메이지 정부의 담당자를 정신적으로 지도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메이지 유신을 왕정복고라 했다.87. 신사로 될 뻔했던 호류지와 다카노 산1868년 정부는 신사를 관리하고 있는 사승을 환속시켜 신관으로 하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은 가미를 받드는 것을 금지했다. 다음 해에는 신·불 판연령이 포고되었다.① 중고 이래 불교 용어로 가미의 칭호를 부르는 신사는 신사의 유래를 상세히 적어 빨리 신고할 것.② 불상을 가지고 '신체'로 삼는 신사는 지금부터 그것을 바꿀 것많은 사찰이 신사로 되거나 없어지는 변화가 나타났으나, 호류지는 불상, 불구를 없애고 쇼토쿠 신사로 될 뻔했으나 실행되지 못했다. 다카노 산도 히로노리 신사로 될 뻔했으나 사찰 측의 반대로 실행되지 못했다.88. 불교 폐지는 어떻게 실행되었는가번적을 봉환했다고는 해도, 각 번은 그대로 번주가 지방행정을 맡아 하고 있었다. 신도가 중에는 번주와 한 패가 되어, 중앙으로부터의 지시가 철저하지 못하고 정보망이 갖추어지지 못한 것을 이용해, 정부가 오랜 폐습을 일소하고 불교를 금지하니, 불교를 믿고 있으면 어떤 화를 입게 될지 모른다면서 현지 사람들을 위협하고 불교를 폐지시키는 번이 적지 않았다.정부 측으로서는 막부의 지배체제를 인계받는 참에 급격한 개혁으로 인한 우너망을 피하고, 백성이 새 정부를 기꺼이 지지해주길 바라던 터라 신·불 판연령에 지나침 없이 하도록 경고를 했으나, 이윽고 번을 폐지하고 현을 두게 되면서, 옛 번주는 화족서열에 끼여 도쿄에 살게 되고 지방정치의 실권을 잃게 되어, 페불 소동은 자연히 가라앉게 되었다.89. '신도'에서는 왜 포교를 안 하는가1872년에 정부는 도쿄에 대교원을 만들어 신관이나 승려에 의한 국민 교화를 위해 교도직 는 사람은 적었다. 결국 정부측은 1875년에 대교원을 해산하고 국민 교화에서 손을 뗐다.신도가의 대부분은 신사의 관리자가 되어 국가의 보호를 받고 포교를 하지 않는 생활에 들어갔다. 1945년 이후에는 신사도 종교가 되었지만, 이전부터의를 안 하는 신관이 많다.90. 기독교의 신과 혼동된 일본의 '가미'메이지 정부 내부의 개화파는 문부성을 거점으로 삼고 학제를 중심으로 이상 실현을 꾀했다."가미는 만물을 창조하고 지배하는 절대자다"라고 하는 등.. '가미'와 기독교의 신을 혼동케 하는 문장이 교과서에 남아 있었을 정도로.. 혼동되었지만.. 결국 후에 일본 학교에 있어서의 종교 교육은 천황을 절대자 및 지배자로 하는 것으로 통일 되었다. 학교에서는 종교 교육은 전면적으로 금지되고, 천황, 황후 두 사람의 사진에 대한 종교적 존경이 의무화 되었다.92. 전전과 전후의 종교정책은 어떻게 바뀌었는가전후 허가된 종교가 많다. 불교 13종, 교파신도13파, 기독교 전후.. 일본의 항복조건으로 포츠담선언을 발표했는데.. 포츠담선언에는 신앙의 자유가 조건으로 들어 있다. 그러나 포츠담선언의 다른 조항에 전쟁을 지도한 군국주의나 극단의 국가주의의 원인이 되는 사상이나 단체를 해산토록 하는 조문이 있다. 그래서 '신도지령'이 내려졌고, 그 결과 신도는 정부의 재정 원조는 못 받게 되었으나 국유지로 되어 있던 경내의 당을 반환받았다. 종교단체법은 폐지되고 종교법인령이 실시되었고, 맥아더 사령부의 해산과 함께 '신도지령'은 현재 무효지만, 신헌법에도 정·교 분리에 대해서는 명시되어 인계되고 있다.93,94. 덴리쿄의 신은 전륜왕 미코토/ 우익 혁명단체로 오해받은 다이혼쿄두 종교의 창시자가 .. 자신에게 신이 들려 그것을 종교로 만들은 것이 비슷해서..95. 전후에는 무를 사먹어도 종교시즈오까 현의 한다 시를 중심으로 융성해진 화도치교는 신자의 집을 모두 지부로 신고해 신자 집의 직업을 종교행위라고 했다. 교단의 채소 장수에게서 무를 사먹으면 몸이 건강하게 된다. 교단의 이발소에서 이발을 하면 머리가 좋아 진다고 가르쳤고, 이것은 종교가 면세인 점을 노린 것으로, 탈세혐으로 체포되어도 신고만 하면 인정받기 때무에 처벌대상이 안 된다... 당황한 정부는 문부성에 종교심의회를 설치하고 거기서 인증한 것을 종교라고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