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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람
    이슬람의 역사 이슬람(Islam)이란 어휘는 평화, 순결, 순종, 복종이라고 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아랍어 "쌀라마"라는 동사 어근에서 파생되었다. 그 의미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종교와 샤리아(이슬람법)의 차원에서 볼 때 창조주, 절대자의 목적과 의지에 순종하고 창조주의 법칙에 내 자신을 온전히 맡긴다는 뜻이다. 쌀라마의 또 다른 의미는 "화합과 평화"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슬람교는 그 본질에 있어서 시종일관 평화를 추구하는 것을 그들 종교의 기본 신조로 하고 있다. "무슬림(Muslim)"이란 뜻은 자기의 모든 것을 알라의 뜻에 맡기기로 작정한 사람을 말하는데 하나님께 항복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며, 오늘날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교도들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2. 이슬람교의 기원(무함마드의 생애)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의 육적 장자인 이스마엘의 직계 후손인 무함마드에 의해 창시된 종교이다. 그는 A. D. 570년 메카에서 꾸라이쉬 부족인 핵심가문에서 출생하였는데, 부친은 태어나기 전에 사망하고, 모친 아미나 역시 무함마드가 여섯 살 되는 해에 사망하자, 무함마드는 처음에 조부에게 맡겨져 양육되다 2년 후인 8세 때에 조부가 사망하자 가난한 삼촌 아부 탈립(Abu Talib)아래서 자랐다
    인문/어학| 2003.05.22| 14페이지| 1,000원| 조회(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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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글라데시 평가C아쉬워요
    1. 국명·자연조건·기후 방글라데시의 공식명칭은 방글라데시 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bangladesh)이다. 서남아시아 인도아대륙의 북동쪽, 북위 20.34’와 북위 26.38’, 동경 88.01’와 92.41’사이에 위치하며, 북서 및 북동쪽은 인도와 남동쪽은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남쪽 남각주 해안의 벵갈만에 임해있다. 방글라데시는 겐지스강과 브라머푸르트강의 홍수로 형성된 삼각주와 평원으로 되어있고 세계에서 가장 넓은 삼각주를 이르고 있다. 강우량이 많고 홍수가 빈번하여 국토는 강과 하천으로 여러갈래 나누어진다. 동쪽 국경선을 따라 삼림지대가 형성되고 남서쪽은 선다르반(sundarban)이라 불리우는 조밀한 열림지역을 이루고 있다. 홍수에 의해 씻겨진 평야지대는 매우 비옥하여 3모작까지 가능하므로 태풍의 피해만 없다면 매우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다. 기후는 아열대 몬순 기후로 고온 다습한 격심한 폭풍우가 주기적으로 불고 강우량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에 속한다. 3-5월에 습도가 많고 낮 평균이 37.8℃이며 6-10월에는 우기로서 습도가 높으며 이때는 전국토의 2/5가 침수되기도 한다. 11월 중순에서 2월까지는 건조하고 청명한 날씨가 계속된다. 이대 회오리바람이 따르는 사이클론이라는 태풍이 내습하기도 한다.
    인문/어학| 2003.05.22| 4페이지| 1,000원| 조회(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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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디모데 전서
    디 모 데 전 서Ⅰ. 서론18세기 이후로 바울서신 디모데후서와 디도서는 목회서신이라고 불린다. {) 룩 존슨 저 [최신 신약개론]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P523본 서신은 바울의 후계자로 에베소 교회를 돌보고 있던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보낸 노사도 바울의 개인적 편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 가운데는 디모데 뿐만 아니라 대부분 목회자에게 적용할수 있는 일반적 교훈들이 많이 내포되어 있으므로 동일한 주제를 갖는 디모데 후서, 디도서 와 더불어 목회서신이라 불리워진다. 즉 본서 가운데는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공중 예배, 성도의 친교, 교회 직분자의 자격,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계, 교회 질서에 대한 교훈, 목회자의 자세에 대한 가르침이 체계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처럼 본서는 일차적으로는 어린나이에 우상숭배가 횡행하던 에베소에서 어렵게 목회하는 디모데에게 목회 실무지침과 용기를 주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더 넓게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시대의 주의 종들에게 목회에 대한 바른 교훈을 주며 격려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다.Ⅱ-1. 저자1) 사도 바울의 저작권에 대한 반대의 논쟁들(1) 말시온 정경은 바울서신 중 오직 열 개만을 포함시켜 목회서신의 바울 저작권을 부인한다.(2) 체스터 베티 파피루스 사본에 목회 서신이 누락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바울 서신은 전체가 완전하기 보존되어 있지 않은데 그 중 목회 서신이 있어야 할 마지막 부분이 파손되어 있다. 그러나 유실된 부분이 파손되지 않고 남아 있다 하더라도 그 길이를 계산할 때 목회서신을 전부는 포함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3) 세권의 목회 서신모두에는 바울과 그의 동료들의 삶에 관한 역사적 언급이 포함되어 있는데(딤후 1:3; 딛 1:5; 딤후 1;8, 16,117; 4;13, 20) 이와 같은 사실은 사도 행전에 나타난 역사의 틀에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두 번째로 로마 투옥설을 거부하는데, 왜냐하면 사도행전에 이에 대한 암시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시대의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 발전되어 있다는 것이다.3 목회 서신에 반영된 상황은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했을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4 디모데와 디도의 지위가 대개 2세기초의 군주적 감독과 비슷하다는 것이다.5 목회 서신에 반영되어 있는 이단들이 바울 시대라기 보다는 영지주의 이단들이 발전했던 시대에 속한 이단들이라는 것이다.6 바울의 교리라는 주장되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서로 섞여 있다는 점이다. 목회 서신 속에 바울 신학의 여러 특징적인 것들이 담겨 있는 것은 사실이나 목회 서신속에 바울의 특징적인 교리들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 즉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 신자와 그리스도와 신비적연합, 성령의 사역 등의 위대한 교리들 등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근본적인 교리들에 대한 논함이 없이 바울이 이 세 서신들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세운다. 또한 목회 서신에는 믿음 , 맡김 , 선한 교훈 , 등의 용어들이 반복해서 나오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기독교 교리의 전승이 이제 확정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이다.7 다른 바울 서신들 속에는 발견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바울 서신을 제외한 다른 신약 성경 속에서는 자주 발견되는 용어들이 목회 서신에 많이 발견된다는 것이다.8 수신자인 디모데나 디도가 아무래도 바울의 제자들 같지 않다는 것이다. 목회 서신에 나타나는 디모데와 디도가 바울의 아들로 불리는 것은 좋으나 나아가서 아직 젊은 사람들로 취급되고 또 교회의 경험도 없는 것으로 표현된 것은 의아스러운 일이다.(딤전 1:2, 18; 4:14; 6:20; 딤후 1;2; 딛 1:4 등) 디모데만 하더라도 루스드라에서 바울의 조수가 된 후 (행 16:3) 십수년간 바울의 동역자였고, 디도도 같은 사정일 것이므로 이런 젊은 사람 취급을 받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초두에 자신의 사도직을 일일히 변명하는 것도(딤전 1:1; 딤후1:1, 딛 1:1) 그의 사도권을 거부한 갈라디아 교회에나(갈 1:1), 아직 미지의 교회인 로마에(롬 1:1) 보낸 경우와는 달는 분명 말에 시온의 그와 같은 입장을 지지하지 않았다.(2) 파피루스가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사본의 나머지 부분이나 끝 부분을 좀더 작은 글씨로 적었던가, 아니면 사본의 앞부분이나 끝 부분에 종이를 이어 붙여서 나머지 서신들을 모두 써 넣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3) 많은 학자들에게 제2차 로마 투옥설이 받아들여지지낭ㅎ았기 때문에 복회서신에 대한 허구설 헉은 단편설 이 나타났다. 이반론의 주된 근거는 사도행전에 구와 같은 바울의 새로운 행적이 전혀암시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바울의 새로운 행적이 전혀 암시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바울의 삶 가운데는 사도행전이 기록되지 않은 많은 자세한 부분들이 있다. (고후11장)(4)1 목회 서신들은 장로, 감독, 짐사, 과부들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고 있으며, 직분자에게 요구되는 자격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사도행전 14:12로 보아 바울 자신이 장로들을 임명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이 첫 번째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모든 교회에서 장로를 임명했을 가능성이 있다. 바울이 그의 전도 사역의 초기 단계에서 임명하였다는 사실은 그가 질서 있는 교회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데에 강한 증거가 된다.2 바울이 그의 생의 종국에 이르기까지 전수해 주어야 할 교리 체계에 대하여 전혀 개념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고 말하나, 바울 자신이 초기의 사도적 전승을 인수받았다는데, 그러한 창조적 정신을 갖추고 있던 바울이 어떤 교리적 틀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볼수 없었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추측에 불과한 것이다.3 바울이 디모데에서 편지를 보낸 것은 에베소 교회가 세워진 후 약 9, 10년 후이다. 이미 그 상황에서도 초신자들을 직분자로 임명하지 말라는 바울의 충고는 의미없는 것이 아니었다. 바울 자신이 3년간이나 사역했던 에베소 교회 정도의 규모가 있는 교회에서 초신자들을 직분에 임명하지 말라는 바울의 권고는 실제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4 디모데가 에베소 지역신화와 끝없는 족보,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것, 망령되고 허탄한 말과 변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딤전1:7,딛1:10,14,3:9등으로 비추어 볼때에 그들의 가르침은 유대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경향들은 혼인과 음식을 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모데 전서 본문에서 미래 시제를 사용했기 때문에 아직 이 교회들 내에서는 그런 경 향이 나타나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음식을 금하는 것은 분명 이미 골로새 지역에 나타나 있었덕 것 같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다른 사람들의 죄에 참여치 말고 자신을 깨끗이 보존하라고 권면한 것을 보아 방종의 경향 역시 교회를 위협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자료들이 다 놀리 정연하고 강력한 이단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를 시사해 준다. 언쟁과 헉된 말은 논리 정연한 이론이 보여주는 일반적인 특징이아니다. 교리적인 중요성에 대해서는 단지 한가지만 거론했을 뿐이고 그리고 그 경우에도 단지 불경스러운 헛된 말을 설명해 주는 방식을 취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사도가 그 교사들을 매우 진지하게 다루었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바울의 주된 관심은 디도데와 디도가 그들로 하여금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것은 바울이 골로새 지방의 거짓 교훈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박했던 것과는 달리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왜 이를 논박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겼는가를 알게 해 준다.6 비록 아버지 라는 용어는 첫머리 인사에만 등장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아버지로서의 선하심과 그가 직접 인간에게 찾아 오셨다는 개념은 서신 전체에 걸쳐서 여러 번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다.7 목회 서신에 수많은 하팍스들이 나오는데, 단지 수리적 계산으로 바울 서신은 여부를 다르는 것은 잘못인데, 주제의 차이나, 환경, 수신자의 차이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8 목회 서신이 바울의 저작이 아니라면 수신자인 디모데와 디도는 상징적 이름이란 결론이 된다. 그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인 추측일 것이다.{) 김철저 [신약개론 주후 59-61년 사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바울이 로마에서 약 2년동안 연금 상태에 있었다면(행28:30),62년경에 석방된 것이 된다. 로마서에 그가 스페인에 가기를 갈망한다는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석방된 후 바로 스페인에 갔다가 후에 다시 마게도냐에 갔거나, 아니면 스페인 여행은 보류하고 바로 동쪽으로 갔을 수도 있다. 많은 현대 학자들은 바울의 죽음을 네로의 핍박의 절정 시기, 즉 64년에 둔다. 그렇다면 디모데전서는 약 1-2년 전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한편 유세비우스는 바울이 67년에 죽었다고 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서신의 기록 연대를 65년이나 66년으로 볼 수도 있다.또 다른 제안은 바울이 마게도냐로 간것에 대한 언급을 사도행전 20장1절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20장 4절에 보면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있었고, 사도행전 20장 2절은 상당한 시간을 요하기 때문에 사도행전 20장 1절과 사도행전 20장 4절 사이에 이서신이 기록되었을 수도 있다. 로빈슨은 디모데전서는 바울이 제자들을 모아놓고 권면했던 내용의 요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 서신이 기록된 연대를 디모데가 젊었기 때문에 바울이 이 서신에서 주는 교훈들이 필요했던 주후 55년 가을로 보았다. 이 놀리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으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이 서신을 위서로 보는 사람들은 기록 연대를 2세기경으로 본다. 큄멜은 2세기초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2세기 후반이라고 보는 것은 강력한 바울의 교훈과 반대되고 강력하게 거부된 영지주의의 기초적인 성격이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크센은 후기로 보았다. 그는 이 세 목회 서신의 기록연대를 2세기 중반이나 후반 으로 보았다. 만일 이 서신을 바울의 생애에서 분리시켜 생각한다면, 정확한 연대를 측정할 만큼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이 서신에 가정된 상황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여러 다양한 2세기의 연대들이 제시되고 있는23
    인문/어학| 2001.12.11| 7페이지| 2,000원| 조회(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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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성성 시대 사람들
    들어가는 문그들은 우리 가운데 살아 있다. 시공을 뛰어넘어 온갖 사건과 전쟁의 소용돌이를 돌아보노라면 하느님께 사로잡힌 자들인 예언자들의 목소리가 현실적으로 높아만 간다. 정의와 우애와 일치와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아브라함의 얼굴은 모르지만 우리는 그의 인생이 여러 가지 중요한 이야기에 대해 알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잘 알고 있다. 성서를 읽다보면 왕들·왕자들·귀족들·예언자들·노동자들·농민들의 일상 생활 하나하나가 영화 장면처럼 우리 눈앞을 지나간다. 그러나 성서 시대 사람들은 그들을 알고자 하는 우리의 갈증에 대답하기 위해 그들의 지하 창고 깊은 곳에서 스스로 걸어 나온다. 우리가 대단히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의심할 수 없는 역사의 흔적들이 여럿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종말론을 위해 삽입된 족보는 성서 주석가들에게 영영 풀리지 않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주석가들이 어떻게 교묘하게 처리한다 해도 성서 본문들과 그 본문들이 내포한 신비의 저항과 맞닥뜨리지 않을 방법은 없을 테니까. 아마도 성서 본문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성서에 나오는 인물들보다 더 오랜 삶을 살았던 바빌론 전승의 인물들에서 볼수 있는 신화적 차원의 우리다 미처 파악하지 못한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이스라엘 민족이 적당하다고 생가하는 평균 나이는 시편 작가의 70세이다. 예언자들은 인간의 장수에 대해 생각이 좀 다른 편이다. 이사야 같은 경우 100살을 넘기지 못한 인간은 저주를 받아 요절한 자로 슬퍼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신과 인간과 땅에 대한 이러한 일반적인 통찰로부터 우리는 구체적인 역사라는 상황에 위치하게 되고, 아마도 "이스라엘의 역사는 역사 전체를 통해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두브노프의 명제에서 일말의 진실성을 발견하게 되지 않겠는가. 사실상 성서 시대 사람들의 일상 생활은 전 인류의 미래를 끊임없이 밝혀주는 것으로, 우리에게는 늘 현실적 흥미를 유발한다첫 번째 문: 사람과 땅 (첫 번째 계단: 사회)유목민족: 성서 시대 사람들은 우선 땅의 사람들이다. '왕의 종'으로 왕가를 책임지고 있었다. 왕의 재산은 왕국의 국고 재산과 구분되지 않았다. 또 왕과 왕국의 재산은 성전의 재물과도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왕국의 행정: 성서 시대의 히브리인은 조직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일상의 제반 문제와 관련해서는 자신이 속한 왕국을 관리하는 행정에 도움을 청한다. 전 왕정기에 걸쳐 고대 족장들의 전통은 아직 살아 있어서 왕권의 중앙 집중적 의지와 부딪친다. 사울 통치하에서는 권력의 실재가 가족의 아버지, 씨족의 족장, 지파의 지도자에게 속해 있다. 사울 역시 자기가 속한 지파 위에만 군림한다. 그는 통치를 위해 가까운 친척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사위가 된 다윗에게도 도움을 청한다. 그러면서 점차적으로 통치의 토대가 왕가의 수입 범위를 넓혀간다. 다윗과 솔로몬은 그 활동을 확대하고 심화한다.세금과 부역: 성서는 왕국의 통치 기구들을 묘사하는 데는 많은 말을 하고 있지만, 징세 방법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그러나 성서 시대 사람 요엘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거, 우리는 출처가 다양한 여러 문헌을 통해서 어떻게 세금을 냈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정의: 왕은 개인적으로 자신의 직무에 책임을 지는 한편 야훼의 이름으로, 시나이산에서 계시된 토라의 이름으로 통치한다. 왕에게 정의가 넘치게 하는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미슈파트'와 '딘'은 정의를 지칭한다. 이 두 단어는 재판관. 율법. 소송. 변론. 판결 그리고 집행과 같은 사법적 도구를 의미한다. 이스라엘에서 정의 및 정의의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율법은 야훼 하나님 안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두 번째 계단: 장소와 행적도시: 성서의 사람들이 세운 문화의 중심지는 도시 안에 있다. 성서에서 도시에 관한 최초의 언급은 특별한 관점에 입각해 있는데, 그 이유는 도시의 설립자가 아담의 아들로 역사상 최초의 범죄자인 카인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땅에서 그 흔적들이 발견된 최초의 도시들은 3,000년전의 시대에 속한다. 그 도시들은 6,000년 전부터 도시화 현상이 존대지는 비옥한 반월지대에서 이집트, 아시아, 아프리카로 이어지는 길들이 지나고 교차하는 고원 지대로 되어 있다. 연안이나 평야에 난 길, 혹은 산악 지대의 왕도는 산간의 협로나 솔로몬 왕이 수비대를 주둔시켰던 므기토에 이르는 길목과 같은 곳을 통해서 쉽게 통제되었다. 어제나 오늘이나 같은 길을 따라 인간의 돈과 희망과 피와 기도가 흐르고 있다.상업: 이스라엘 땅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이어주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문명의 초창기부터 이 지역 사람들은 금속. 향신료. 사치품. 향수. 고무. 약품. 노예 등의 국제 거래에 기여했다. 그 상품들은 해안을 따라 나 있는 해로와, 유대 및 예루살렘의 산맥을 통과해 사마리아와 시리아로 향하는 왕도, 이 두 곳의 주도로를 통해 운반되었다. 이 두 도로는 아라비아를 지중해와 연결해주는 길로도 이어진다. 마리아나 텔 아마르나의 문서는 이 지역에서 상업의 중요성을 증언하는 성서 상의 자료를 뒷받침해 준다.도량형: 율법가와 예언자들은 중량을 속이거나 측정을 틀리게 하는 잘못된 습관을 끊임없이 비난했는데, 성서 시대에는 매소포타미아의 도량 단위와 이집트의 도량형, 가나안의 도량형, 그리고 아라라크나 케리케미슈칼은 도시에서 또 다른 도량형들이 동시에 뒤섞여서 사용되었다. 이들 도량형의 가치는 장소와 시대에 따라 바뀌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고고학적 발굴을 기초로 해서만 그 가치를 정하는 것이 가능하다.의복: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기술과 요소를 결합시킨 건축 양식이 주류인 거리에는 마치 빛으로 빚은 조각처럼 멋진 옷을 입은 사람들로 붐빈다. 옷에 대해 성서는 어쩌다 우연히 언갑할 뿐이다. 성서는 남자나 여자나 본래 벌거벗고 살았다고 가르친다. 낙원에서 쫓겨난 이래 그들은 몸을 무화가 나뭇잎으로 그기고 그 후에는 짐승 가죽으로 가린다. 성서는 야곱이 빼앗은 에사우의 화려한 옷, 아가서의 술라마와 요셉의 줄무늬 장백의에 대해서는 스쳐가듯 언급하지만, 사제의 옷에 대해서는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므기토에서 발견되 상아 조각이 살아가는 일상 생활의 가장 변함 없는 실제이다. 그의 책력은 달의 운동에 근거를 둔다. 요엘에게 한달은 '에라' 또는 ' 호데쉬' 즉 삭망월이라고 불렸는데, 호데쉬란 단어는 달의 거듭남을 가르킨다. 한 달은 두 개의 새로운 달을 나누는 날들을 포함한다. 그러나 양력에 비해 음력이 늦은 관계로 정기적으로 열세번째의 달을 끼워넣어 수정함으로써 일월년이 계절의 순환과 함께 조화를 이루게 한다. 그래서 과월절은 항상 붐이고, 오순절은 추수 때이며, 장막절은 초가을이 되는 것이다.책력: 여러 문명의 교차로에 자리잡은 민족에게서 책력의 역사를 분명히 빌혀 말하기란 어렵다. 히브리인들은 다양하고 변하기 쉬운 시간 계산 방법을 택한다. 히브리인들의 책력은 지식의 점짐적인 통합이라는 방향으로 변화했는데 이집트인들이 마침내 일월 책력을 만들어냈던 것과 같이 저녁에서 저녁까지 계산하게 되는데 이렇게 바뀐 것은 첫 번째 유배시기로 이후 이스라엘 관습에서 그대로 지속된다. 히브리 책력은 역사적인 동시에 농업적인 이중적 성격을 나타내면서, 전적으로 종교적이고 국가적인 그리고 절기에 따른 축제리 순환을 맞춘 것이었다.안식일과 축제: 히브리 연도의 주된 순환은 한 주의 일곱 번째 날인 안식일에 의해 구성된다. 고대에서 유례없는 이 같은 독창적인 설정은 민족의 머나면 과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창조의 완료에 이은 창조자의 휴식과 하느님의 민족이 6일 간의 사제들과 레위인들의 전도의 대상이 되었다는데 그들은 이 점을 야훼께서 그의 백성을 위해 수립한 초 자연적 질서에 대해 충실하드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보았다. 안식일에 대한 중요성은 유배 이후 더욱 강조 됐고 안식일에 관한 규칙은 한층 강화되고 심화되어 갔다.할례: 아브라함에 의 해 시행되었듯이 야훼와의 계약의 신호이다.이름: 성서 상의 이름들의 절반은 하나님의 이름인 엘, 야, 아돈에서 따왔다. 간혹 부모들은 성격을 고려해서 또는 아이에게 보호가 있기를 바라며 이름을 골랐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아들의 이름에는 항상 아버지의 이름이인으로 처신하는 것이다.마법사: 마법사는 점쟁이처럼 단지 미래를 예언하는 것만이 아니고 행위나 말을 함으로써 미래의 흐름을 돌리기 위해 행위나 말을 함으로써 미래의 흐름을 돌리기 위해 행동할 수 있는데, 이 행위나 말은 병을 낫게 하거나 혹은 병을 들게 하고, 뛰어내리게 하거나 죽일 수도 있다. 이스라엘에서 예언자는 이방인의 마술행위를 끊임없이 고발한다. 그 마술 행위는 우상과 마술 의식이 호소하는 힘을 급속도로 번지게 하는 모든 마술적 효력을 부정하는 근본적인 믿음과 상치된다.의학: 성서 시대 의학에 대한 조직적 연구는 7세기가 되어서야 시작됐다. 그후로 당시의 이스라엘. 이집트. 메소포타미나에서 알려지고 시행되된 의학 기술에 대한 많은 발견이 있었다.전쟁-부족과 군대: 히브리인들은 "싸움이 일어날 때가 있으면, 평화를 누릴 때가 있다."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왕정기 시대 이전 군대는 민족과 구별되지 않았다. 부족은 항상 움직이고, 약탈에 맞서 항상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출정 중인 군대처럼 조직되었다. 남자들은 자신들의 가족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가문. 씨족. 부족. 등의 단위로 동원되었는데, 군대 단위는'천' 이란 뜻의 '알레프' 또는 '만' 이란 뜻의 '레바바'라고 불리였다.왕정군: 군대는 더 이상 부족 군대가 아니고 국가 군대가 되며, 병역은 지원하는 대신에 의무로 한다. 조사 등록은 세금의 토대를 정하는 데 쓰일 뿐만 아니라 신병을 동원하는 데도 쓰인다. 왕은 휘하 군인들의 장비와 부양의 책임을 진다. 부족의 전통적인 권위와 긴밀한 협력 하에 영토와 부족의 기준에 따라 계속해서 동원이 이루어진다.무기: 성서에 나오는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던 현장에서 발견된 온갖 종류의 무기로 인해 히브리 전문 용어가 최근 20년 동안 세분화되었다. 히브리병기고에는 공격용 장거리 무기, 백병전용 무기 그리고 글자 그대로 방어용 무기 등이 있었다.전차: 요엘은 전차 다루는 힘든 기술을 배운다. 평화로울 때는 이 정차로 사냥을 하고 경주를 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전차는 다.
    인문/어학| 2001.12.08| 19페이지| 1,000원| 조회(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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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동 서방 교회의 분열 평가A좋아요
    동 서방 교회의 분열동 서방교회들의 분리는 기독교의 주요 분열이었으며, 이후 이들 기독교 "교단들"(wings)은 결코 통합되지 않았다. 로마카톨릭교회는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바티칸에 권좌를 두고 계속 지배하였고, 동방정교회는 중앙본부들을 갖지 아니한 개별 교단으로 남아있었다. 오히려 그리스정교회, 시리아정교회, 러시아정교회, 기타 많은 정교회들이 국가단위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간의 교리적 신념들은 동일하다. 다만 언어와 문화에서 다를 뿐이었다. 첫째, 서로 다른 경로에 따라 너무 오랫동안 흘러오던 기독교권의 양진영은 서로 공개적으로 서로의 상이점들을 인정하였다. 둘째, 교제의 단절은 다시는 영속적 교제의 수복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셋째, 교리의 의식적 표현은 상의하였다.1. 시대적 배경동서 교회는 모든 면들에 있어서 분리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특히 그 분열의 조짐이 제2차투툴리안 총회때부터 이미 그 분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을 했다.또한 성화 논쟁으로 반감이 고조되었고 콘스탄티 노플의 대주교의 권위만을 강조한 102권징 조문 통과로 더욱 노골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두 동,서의 교회간의 예재 예식에 관한 부분의 풍습이 점점 크게 차이가 나기 시작을 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콘스탄틴의 대주교인 포티우스의 분리운동으로 말미암아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번지기 시작했다. 그가 추진한 것은 서방 교회에 향하여 콘스탄틴의 대주교의 권위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북 서방의 슬라브족에게 헬라 선교사를 파송함으로써 동방교회의 영향권을 점점 넓혀간 것이였다. 이 교세의 확장으로 인해 동,서 교회의 충돌은 더욱 심화되었다.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동방의 대 주교와 서방의 교황 니콜라스는 마침내 서로에게 파문을 선언하였다. 동방교회는 정통교회라고 부르고 서방교회는 비 정통교회라고 지칭을 하였다. 그리고 교리적인 연관관계의 배경으로 살펴보면 서방교회는 동방교회와 의논도 하지 않고 니케아 신조에 "아들로 부터"라는 것을 삽입함으로 교리적인 탈선을 유도하였다는 것이다. 서방교회는 날로날로 쇄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동방교회는 교세가 확장이 되었고 그로인해 대주교는 라틴교회의 수도원을 폐기하고 이탈리아의 남부지방의 감독들에게 라틴교회의 부정을 폭로하였다. 이 사건으로 동,서의 관계의 틈은 더욱 벌어졌다. 그래서 이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황제가 사절단을 보냈는데 그러나 이 사절단의 노력도 실패에 이르게 되어서 결국 1054년 7월 16일에 동방교회의 대표적인 교회인 소피아 교회의 상제단에 교황의 이름으로 파문장을 던지고 도 동방의 세루라리우스는 로마 교황에 파문장을 던짐으로 동,서 교회 공동체의 분열이 이루어졌다.2. 동,서방 교회의 분열 원인1)교리적인 문제에 대하여①성상논쟁에 대하여황제 레오 3세는 신학적이며 종교적인 이유로 성상은 우상이기에 파괴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그로 인해 항거하다가 정죄된자가 생겨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로마의 그레고리 3세는 반성상파괴론을 주장하였다. 그래서 동방 교회에서는 예배시에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동상을 제외한 모든 성상은 사용할 수가 없다고 배격을 한 반면에 서방교회에서는 동상의 허용까지 포함하여 동방교회와는 반대 입장을 세우며 성상숭배를 제도화까지 시켜버렸다. 숭배 문제에 있어서의 차이는 엄청난 결과를 몰고 오는 것은 당연한 문제였다.② 단성론에 대하여이 부분에 있어서는 단성론이라는 이단에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해 두고 접근을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전제로 들어가야 한다.451년에 칼케돈회의에서 이 단성론 교리는 해결을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해결에도 불구하고 불만은 싹뜨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의 인성만을 주장하는 단일 인성론과 그리스도의 신성만을 주장하는 단일 신성론은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동방의 정교회의 양대 해석이였다.이러한 불일치적인 견해는 동방 정교회의 권위에 심각한 도전을 안겨다 주었다. 동방의 분리주의자들은 아버지와 아들이 완전히 동등되며 동일한 본체와 존재라는 사실을 부인하였다.이 단일 기독론은 동방신학에서 탁월한 위치를 차지해 있었다는 사실도 그 동,서 교회의 분열의 원인의 한 면이 될 수가 있다.③ "아들로 부터"문제로마의 서방 교회는 신경에 있는 그대로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온다고 하는 필리오 큐를 주장을 하였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종속되어 있다고 주장해온 동방의 교회는 성령이 이 양자로부터 나온다는 주장을 거부하였다. 헬라인들은 원래 성령께서 성자를 통해 나오신다고 믿고 있는 데 라틴교회는 니케아의 신경을 수정하여 성령께서 아버지와 아들을 통하여 아신다고 하는 것을 집어넣어 버렸다. 또한 라틴교회는 사제들이 결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동방교회는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것으로 성직자들을 인간이하의 차원으로 전락시킨다는 내용으로 비판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교리적인 문제상의 모습은 치명적인 것이 아닐 수가 없었던 것이다.④ 정치적인 문제로 인하여동방교회는 제국의 보호하에 있었기 때문에 서방교회의 침체로 가는 모습과는 반대의 입장에 있었다고 볼 수가 있다. 이 동방 교회는 형이상학적인 교리를 중심으로 삼은 반면에 서방의 교회는 샤를마뉴대제에게 왕관을 수여함으로 인하여 프랑크 의지를 선언을 하였고 제도적인 중심을 삼았다. 그리고 동로마의 황제가 콘스탄틴 대주교 이그나티우스를 파면하고 감금을 하였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황제가 총대주교를 파문할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가 사제의 기능에 간섭함과 아울려 교회권이 세속권에 종속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으로 인해 제국의 보호아래에는 동방교회가 있었다는 것이 되고 서방교회는 교회가 국가와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와 국가의 대립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으며 서방교회는 제국의 보호아래 있지 않았기에 교세가 점점 약해져 갈 수밖에 없었다. 동방은 계속해서 교세가 확장이 되어 나감으로 교세 확장이라는 측면에서도 분열의 조짐이 미리 예견되고 있었다는 것이다.⑤ 인종, 문화적인 차이점으로 인하여서방 교회는 대부분 게르만족의 세계가 되었다. 이 게르만 민족들은 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은 야만족이였다. 교회를 통하여 로마는 비문명적인 게르만인들에게 라틴의 언어와 문학을 전달을 하였다. 서방의 교회는 라틴의 언어와 문학을 가졌으나 교회의 구성원의 대부분은 게르만 종족에 속하여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서방교회를 라틴교회라고 지칭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그러나 동방 교회의 인종은 슬라브인과 서아시아인으로서 동양적인 인종이 들어가 있으므로 동양적인 요소가 있었다. 그리고 동방교회의 언어는 헬라어였던 것이다. 언어가 서로 다르고 인종이 다르다는 것은 문화동질성이 그만큼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경계가 없지만 그 정도의 문화동질성이라면 분열의 모습은 상상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한 민족이 통일한다면 가장 먼저 문화동질성을 회복해야만 한다는 이론도 생각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⑥ 교권 다툼으로 인해로마의 교황과 동방의 콘스탄틴노플의 대주교간의 개인적인 다툼이 직접적인 결과를 가져 왔다고 볼 수가 있다. 이 동,서 교회의 분열을 낳은 장본인들은 로마 교황 레오9세와 콘스탄틴노플의 대주교인 마이클 세룰라리우스이였는데 이 둘 모두 고집이 센 개인주의자들로서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사력을 기울린 사람이었다. 개인적인 것으로 보면 이 두 사람 다 아주 좋은 평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먼저 로마 교황 레오9세는 그는 20년동안 타울의 주교직을 역임하였고 빵과 포도주가 성만찬에서 몸과 피로 화체한다는 생각을 한 투르의 베렌가리우스의 교리적인 의견을 성공적으로 처리를 하였고 그는 친히 병사들을 이끌고 전투를 하였으나 폐배를 하였다. 그러나 전투의 힘으로가 아닌 순수 자신의 권위에 의하여 노르만인들을 사로잡았다. 대중의 인기를 독점한 지도자였던 것이다. 또한 동방의 콘스탄틴노플의 대주교인 마이클 세룰라리우스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는 야망이 있었던 사람으로서 황제의 직위까지 바라보았으나 적발이 되어 유배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콘스탄틴의 대주교자리를 교황과 맞먹을 위치에 올려놓으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다. 또한 그는 동방의 교회를 정부로부터 독립을 시킬려고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모습은 그들의 한 모습면으로 보았을 떼는 인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나 동,서 교회의 전체적인 모습을 비교해 볼때는 이 두 사람의 개인적인 교권의 다툼에 의하여 확실히 동,서가 나누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분열의 조짐이 있었다는 사항을 부인하지는 않겠으나 결국은 이 개인적으로 두 사람의 힘 대결에 의하여 두 교회는 영원한 분열로 이어졌던 것이다. 최초의 분열이 이 두 사람의 힘 대결로 인하여 만들어 진 것이다.
    인문/어학| 2001.11.18| 4페이지| 2,500원| 조회(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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