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화 속에서의 미디어의 역할급변하는 시대! 세계화! 지구촌! 정보화 사회! 모두 90년대를 풍미했으며 경제 공항의 어려움 속에 침체되어있던 우리를 열광케 했던, 우리에겐 매우 친숙한 단어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단어들을 앞세워 경제적 파산으로 쓰러지고 절망했던 80, 90년 경제 성장의 주역들에게 위기극복의 해법과 벤처경영이라는 답안지를 제시해준 것은 다름 아닌, 우리 곁에 늘 있어왔던 ‘미디어’다.하지만, 이런 상황은 또 어떨까?나라는 좁고 사람은 많고...... 그래서인지 뭐든 ‘빨리 빨리’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양은냄비 민족은 텔레비전과 신문 즉, 매스컴의 ‘눈 가리고 아웅’식 보도에 쉽게 격분하며 때로는 피눈물을, 때로는 불같은 분노를, 그리고 나라를 위한 희생을 수없이 쏟아내었다. 나라를 살린답시고 팔순의 할머니에게서 몇 십 년 된 결혼 금반지를 넙죽 받아먹는 짓(!)은 정말 이곳이 대.한.민.국이기에 가능했던 일 아니겠는가?그리고 그러한 어처구니없는 일을 마치 당연한 처사인양 포장 전송한 미디어와 그네들의 놀라운 일치단결력으로 우리 힘없는 국민은 두 번 속아야 했다.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노인이 품속 깊이에서 금가락지를 꺼내놓는 것, 외딴 섬에 사는 장애우가 휠체어에 몸을 기댄 채 힘겹게 배를 타고 건너와 금목걸이를 기증하는 것 등의 일들을 일제히 신문지 제 1면에 싣고, 9시 뉴스의 TOP NEWS에 선정하는 것이 바로 수백만, 수천만 시민들에게 선사하는 ‘감동으로 치장된 협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대다수 일반인들은 단지 외제 펜 몇 개를 가졌고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즐겨 먹었다는 이유로 졸지에 매국노가 되어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했다.(‘3S정책’도 마찬가지))이렇듯 현대사회는 ‘미디어’를 빼놓고 논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이다.프랑스 가정의 약 95%가 텔레비전을 적어도 1대는 가지고 있으며 신문, 잡지의 수많은 구독자들, 그리고 컴퓨터를 이용한 멀티미디어의 급속한 보급...... 또한 길에 널린 것이 livres요, 들리는 것이 musique이며 자극과 도전, 주류질서 파괴의 중심이 cinema이다.‘미디어’는 한 나라를 들었다 놓을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권력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무한한 힘의 동력원은 ‘국민’이다. 또한 미디어에 의해 인간의 사고는 조종?재구성 될 소지가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현재 프랑스의 상황, 미디어가 자리 잡은 위치는 어떠할까?나는 그 답을 교수님께서 내주신 리포트 주제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프랑스 문화 속에서의 미디어의 역할”이지 ‘프랑스 문화에 미디어가 미친 영향’이 아니었던 것이다. ‘역할’과 ‘영향’... 두 단어의 엄청난 차이... 그렇다. 프랑스는 우리의 경우처럼 미디어에 의해 쉽게 선동되지 않을뿐더러 그러한 어처구니없는 선동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그것이 바로 미디어의 주인이,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극과 극으로 대립된 결말이다.수많은 프랑스인들이 악기 연주나 연극, 미술, 글쓰기 등의 예술 활동을 통해 여가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아마추어로서의 예술 활동은 그네들에게 미디어와의 접촉에서 수동적인 수용을 거부하게 한다. 아마추어로서 자신의 작품들을 미디어를 통해 선보이면서 직접 미디어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또한 그들은 비록 아마추어이지만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미디어가 제공하는 전문 데이터를 요목조목 분석하게 된다. 게다가 워낙에 토론하기를 좋아하는 민족이다 보니 만약 그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면, 대중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은 일순간일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분야이든 프랑스의 미디어는 경솔할 수 가 없는 것이다.
현대는 누가 뭐라 해도 미디어의 시대다.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는 이유가 단지 미디어 라는 단어가 가지는 범위의 광대함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오늘날 굳이 고립된 생활을 고집하는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단 하루, 아니 한나절이라도 미디어에 접촉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의미하는 미디어란 기존의 대표적 미디어인 신문과 방송 외에 광고, 영화, 음반까지도 포함한다. 현대인의 대다수가 조간 신문으로 하루를 시작해 출퇴근시 라디오와 음악을 듣고 저녁에는 텔레비전으로 뉴스나 오락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여가 시간에는 책이나 영화를 본다. 이처럼 우리생활에서 미디어는 새삼스레 들먹이며 의식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일상의 구석구석에 스며있다. 때문에 이러한 갖가지 미디어 산물은 모두 그 나름의 존재이유와 필연적 가치를 반드시 가진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프랑스 또한 예외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문화 선진국인 프랑스에서 미디어의 역할은 더욱 심대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프랑스 문화 속에서의 미디어의 역할 에 대해 한번쯤 고찰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이다.신문신문은 가장 전형적이고 중요하며 오래 된 매스 커뮤니케이션 가운데 한 형태이자 현상이다. 하지만 전자 기술의 발달 때문에 도래하는, 방송을 비롯한 각종 새로운 매체의 출현 및 대중화는 신문의 개념을 좁은 의미의 신문으로 제한시키고 있다. 신문이 대중 매체를 대표하던 그런 시대와는 달리, 그 기능과 양태가 다양해진 여러 대중 매체 때문에 역할과 영향력이 한정되어 버렸기 때문이다.이러한 신문은 시사성, 공공성, 주기성 등의 속성을 갖는다. 새로운 소식을 제때 빨리 전해 주는 것이 시사적 특성이고, 대중들을 위한 공공의 일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일반 독자에게 보도하는 것이 공공적 특성이며,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발간되는 것이 주기적 특성이다.그리고 인쇄 매체로서 신문이 갖는 기록성, 높은 재독성 및 선별적 접근성 등은 전파 매체에 행사한다.하지만 이러한 기능들은 다양해진 독자의 요구를 신문이 채워주고자 하는 과정에서 더러는 단일 기사에서 중복되기도 하고 또 일부 기능이 약화되기도 한다. 경제 기사가 보도·계도·광고 기능을 겸하거나, 만화가 보도, 오락 및 정보 전달 기능까지 행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라든지 오락 기능을 텔레비전에 뺏긴 신문이 약화된 오락 기능 대신 정보 전달 기능을 강화하는 측면을 보이는 것 등이 그것이다.게다가 신문이 특정 사상을 강화하거나 주입시키는 이데올로기적 기능, 잉여 가치를 생산하는 영리적 기능, 그리고 권력을 창출하는 정치적 기능 등도 수행한다고 하여, 그 역기능적 차원에서 여론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한다. 물론 이상과 같은 신문의 여러 가지 기능들은 독자의 구독 동기나 메시지 수용 행태에 따라 각기 다르게 행사될 수 있다.프랑스의 국민들은 높은 TV 시청률에 반해 신문 구독률은 낮다. 그것은 프랑스의 신문 구독 비용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는 현실에서 기인되었을 뿐 아니라 신문이 이미 독자의 기대치에서 멀어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신속·정확하게 보도해야 한다. 정부 정책을 비판 및 견제해야 한다.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해야 한다. 국민 교양을 증진해야 한다. 휴식 및 오락 수단을 제공해야한다.프랑스의 독자들은 신문에 대해 주로 신속·정확한 보도, 정부 정책의 비판 및 견제, 올바른 가치관의 확립, 대중의 심리 대변, 대중적 호감에의 부응 등과 같은 기능에 기대가 크다고 한다.하지만 프랑스의 신문은 자존심이 매우 셌다. 대중을 좇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란 자각아래 그들은 독자층을 선별하면서까지 신문의 질을 고수하였다. 그리고 결과는 뻔할 뻔 자이다. 그들의 기대대로 선별된 소수만이 구독하였고 이는 신문사들에게 심각한 재정난을 겪도록 했다. 게다가 발빠르게 대중의 생각을 따라간 잡지의 선전(善戰)은 신문의 하향세에 불을 붙였다.어찌보면 지나친 결과론이겠으나 그렇게 비논리적이지도 않은 주장이다. 만약 그렇다면-그것이 옳다면- 프랑스의 신문은 걸어둔 빗장을 이 사실이지만, 이 영상 매체들만 가지고 우리의 생활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수는 없다.현대는 바야흐로 전문화의 시대이다. 전문화의 시대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정보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출판 매체는 바로 이렇듯 고도로 전문화되어 가는 시대에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발 빠르게 적응해 갈 수 있는 매체이다. 글자 그대로 대중 들을 상대로 하는 신문이나 TV같은 매체에서는 이러한 전문적 정보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전문화의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출판 매체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독서를 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것이다. 심지어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독서의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하지만 프랑스인 뿐만이 아닌 대개의 현대인은 zapping에 빠져 독서를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을 첫째 이유로 들 것이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느냐 ... 물론 이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늘 수면 부족에 허덕이면서 지친 몸을 이끌고 꽉 짜인 일정 속에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것이 현대인들의 삶의 전형적 모습일 것이다. 그 속에서 한가로이 책 읽을 짬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님에는 틀림없다. 틈만 나면 모자란 잠을 보충하거나 그저 TV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그러나 시간이란 활용하기 나름 아닌가! 수험 공부에 전념하는 학생처럼 책상 앞에 앉아서 모든 것 제쳐 두고 책 속에 빠져드는 것만이 결코 독서의 전부가 아니다. 바쁜 시간을 틈틈이 쪼개 자신에게 필요한 내용을 가볍게 읽어 가는 것이야말로 현대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독서법일 것이다.바로 이러한 기대에 부응한 것이 poche판 책자이다. 이 poche판은 가지고 다니기도 용이할뿐더러 너무 양이 많아 읽기 부담스러웠던 위대한 문학서적에의 접근을 쉽게 하였다. poche판은 점점 줄어들어 가는 도서 판매량에 대한 출판사들의 자구책이었다.줄 수는 있어도 충분한 정보를 전해 주는 데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인터넷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것만으로는 절대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가 없다.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책을 읽는 행위의 가치를 과소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운동을 한다거나 여행, 음악 감상, 등산, 낚시 등 다른 취미 생활도 얼마든지 많은데, 왜 고리타분하게 책을 읽고 있어야 하느냐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독서만이 가치 있는 취미 생활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른 취미 생활도 보다 효과적이고 유용하게 즐기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 한다면 여러 종류의 정보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러한 정보들을 충분하게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잡지와 책뿐이다.잡지프랑스는 잡지가 매우 발달해 있다. 그리고 당연히 구독률도 매우 높다.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매스 커뮤니케이션의 입장에서는 그 많은 사회 단체들과 기업의 입장을 모두 반영할 수 있는 형편이 결코 못 된다. 제한된 지면과 제한된 시간 때문에, 그리고 다른 사회적, 정치적 입장 때문에 언론이 특정 집단의 입장을 반영하고 대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매스 커뮤니케이션은 그야말로 대중적 인 매체이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다루는 내용이 전문적인 것까지 포괄하기는 어렵다. 전문적인 내용은 대다수 독자들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내용이 될 수밖에 없다.이와 같이 사회 각계 각층의 요구와 신문, 방송 등의 입장에는 메워지기 힘든 간격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간격은 기존의 매스 커뮤니케이션을 이용하기가 용이하지 않은 것을 알고는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 줄 매체를 스스로 발행하기 시작했다.또한 조직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공통된 관심이나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는 집단들이 존재하면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업적인 잡지가 나오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전국의 바둑 애호가나 낚시 애호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취미, 오락전문지나 PC사용자들을 대상으로 PC에 관한 최신 정보들을 전달해 주는 잡지들이 각종 전문적인 정보를 공급해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매체가 잡지인 것이다.예를 들면, 신문 기사나 TV 뉴스, 드라마 등은 전문적인 과학자나 육체 노동자에게 똑같은 내용을 전달해 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잡지는 결코 그렇지 않다. 과학자가 보는 잡지와 기업가가 보는 잡지가 같을 리 없다. 또 같은 컴퓨터 잡지라고 해도 초보자용과 전문가용이 따로 있는 것이 바로 잡지 매체의 강점이자 특징인 것이다.때문에 프랑스인들은 신문보다는 잡지를 더 선호하며 구독한다. 무엇이든 전문적인 것을 좋아하는 그네들의 특성이 그대로 베어있기 때문에.T V텔레비전 이라고 할 때 보통 무엇을 뜻할까? 대다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집 안 어느 모서리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텔레비전 수상기일 것이다. 마치 가구처럼 혹은 집의 일부처럼 되어 버린 텔레비전을 떠올린다는 것은 그 수용 상황이 그만큼 특징적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즉, 일상 생활에서 어느 때고 마음만 먹으면 접촉할 수 있는 대중 매체가 바로 텔레비전이기 때문이다.그 다음으로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이러저러한 기술적 특성을 가진 수신기가 될 것이다. 소리와 영상을 함께 전달해 주는 기계 설비로서, 특히 영화와 달리 생산과 수용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점이 큰 특징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영화 속의 사건이 과거형으로 인식되는 반면, 텔레비전은 직접성과 현재성의 인상을 강하게 전달할 수 있다.텔레비전 문화의 출발점의 하나는 바로 이와 같은 텔레비전 매체의 두 가지 특성, 즉 영상과 음향의 즉각성과 수상기의 가내 항존성(항시 접근할 수 있는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TV 시청률은 매우 높다. 그리고 이 괴물 같은 미디어는 서비스의 고품질화와 다양화, 매체 융합 등으로 더욱 더 프랑스 문화 속에서 그 자리를 확고히 해나가고 있다.라디오라디오는 상당히 독특한 특성들이 많이 있다. 그 특성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먼저, 묘사성이다. 라디오는 소리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무한한 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