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을 위한 치료레크리에이션 집단 프로그램에 관한 연구{I. 서 론II. 이론적 배경1. 치료레크리에이션의 개념2. 치료레크리에이션 서비스모델3. 정신장애인의 특성III. 연구방법IV. 결론 및 제언Ⅰ. 서 론오늘날 우리사회는 인구의 증가와 복잡한 사회구조, 그리고 기계 문명의 발달에 따른 자동화와 획일화 등으로 인간성 상실과 인간소외 현상이 증대되고 있다. 이로 인해 현대인들은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사회 심리적 적응에 장애를 초래하며 정신질환으로 발전케 하는 경향이 증대되고 있다.1988년 보건사회부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정신장애 유병율이 인구 100명당 2.16명이었으나 1994년 조사에서는 3.01명으로 나타나 유병율이 점차 증가되고 있는 경향을 보여준다.(남정자,1994) 대부분의 정신 장애인들은 경증에서 중증까지의 불안과 우울을 비롯한 다양한 정서를 경험하면서 여러 부적응 행동을 보이며 이와 함께 타인과 함께 어울리는 사회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정신장애인들은 사회기술의 결여와 의사소통의 결핍 등으로 인하여 타인과의 효과적인 상호작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그들은 외로움과 좌절감을 느끼며 우울과 고립감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한다.(Lehman, Ward, Linn, 1982)정신장애인에 대한 전통적인 치료 방법은 정신요법, 약물요법과 활동요법으로 이루어진다. 이중 활동요법은 독서, 그림, 음악, 댄스, 스포츠 등 여가활동을 통한 치료적인 환경 조성의 집단 활동 요법으로서 개인의 행동 문제를 공동 사회를 통하여 치료적 분위기가 되도록 관리하는 개념으로 현재에 오면서 점차 중요한 치료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이소우,김태경,1984)또한 집단 활동요법은 정신장애인들의 사회적 기능회복에 목적을 둔 다양한 전문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대인관계 및 의사소통 기술의 증진, 독립심과 사회성발달, 긍정적 자아개념의 촉진 등 사회적 재활능력 향상에 효과를 거두고 있다. 여기에는 치료레크리에이션, 놀이요법, 음악요법, 무용요법, 예술요법 등이 포하나의 구성요소이다.그런 세팅의 전통적인 예로는 지역사회 정신건강 센터, 국립·사립 정신의료시설, 특수교육 센터, 소아정신건강 센터, 국립·사립 정신지체 시설, 재활 센터, 일반병원, 요양시설, 장기건강 보호시설, 시각장애. 청각장애. 정서적 행동질병. 중증 복합장애와 같은 집단에게 서비스하는 특수기숙학교나 센터, 정서장애인을 위한 장기캠핑시설 등이 있다.치료레크리에이션 서비스는 임상에 초점을 두지 않는 많은 지역사회 복지시설 안에서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이러한 세팅에는 국립 공원과 자원봉사 기관, YMCA, YWCA, 보이스카웃, 걸 스카웃 등이다. 이러한 세팅에는 치료레크리에이션이 폭넓은 서비스의 한 측면일 뿐이다.치료레크리에이션만 서비스로 제공하는 몇 세팅도 있다.이러한 기관의 예(미국)는 장애인을 위한 cheff center, 장애인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센터, stepping stones, 장애인 올림픽, BOLD(blind outdoor leisure development) 등이다.이 기관들은 일반적인 자원봉사 비영리 단체들이다. 이 기관들의 프로그램의 방향은 여가교육이나 레크리에이션 참여 서비스 영역들에 지향되어 있다.2. 치료 레크리에이션 서비스 모델피터슨과 건(Peterson & Gunn, 1972)은 여가능력접근법에 입각해서 다음의 그림 4-4와 같은 모델을 제시했다.피터슨과 건이 발전시킨 접근법이란 치료 레크리에이션 서비스 연속체 모델이라고도 불려지는 것으로서 미국 치료 레크리에이션 협회에서는 이 접근법을 1981년 가을에 치료 레크리에이션의 공식적 철학과 모델로 채택했다. 치료 레크리에이션 서비스 모델전문가에 의한최소 통제0+- △ 여가 생활양식| || 전문가는 +-------------------------------------------|전 || 클라이언트에게 지도자 | 레크리에이션 참여| || 참여기회를 ◁ 수퍼바이저 ||문 || 제공 조력자 || |+-------------------------------+--------------문가는 상담자와 교육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치료 레크리에이션 전문가가 여가교육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레크리에이션 범주를 알고 있어야 한다.레크리에이션 범주는 크게 둘로 나뉘는데 그들은 전통형 레크리에이션과 비전통형 레크리에이션이다. 전통형 레크리에이션은 구조화된 틀 안에서 즐기게 되어 있는 형태로서,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레크리에이션이다. 즉 스포츠, 음악감상, 영화관람, 소풍 등을 들 수 있다. 비전통형 레크리에이션은 구조화된 틀 안에서 즐기는 것 이외의 레크리에이션 형태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기쁜 추억 회상하기, 장보기, 간식먹기, 담배피우기, 식물키우기, 애완용 동물기르기 등이다.4 여가자원치료 레크리에이션 전문가가 클라이언트에게 가장 적합한 여가를 처방해 주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5가지 준거들을 근거로 정보를 습득하고 이용해야 한다. a) 활동기회 여부, b) 개인자원, c) 가족자원, d) 지역자원, e) 국가자원 등이 있다.(3) 레크리에이션 참여 서비스이 서비스는 앞의 두 가지 범주(치료. 여가교육)와는 다른 개념으로서 클라이언트에게 처방된 여가생활스타일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 서비스에서는 치료 레크리에이션 전문가가 지도자와 슈퍼바이저의 역할을 수행한다. 지도자의 역할은 클라이언트가 그에게 맞는 적합한 방법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도력을 제공하는 것이고, 슈퍼바이저는 클라이언트가 정해진 방법 안에서 프로그램을 조직하고, 계획하고, 향상시키도록 지지해주는 것이다 레크리에이션 참여 서비스전문가에 의한최소 통제0+- △ 여가생활스타일| || 전문가는 +-------------------------------------------|전 || 클라이언트에게 지도자 | 레크리에이션 참여| || 참여기회를 ◁ 수퍼바이저 ||문 || 제공 조력자 || |+-------------------------------+------------------------------|가 || | 여가교육| || ||의 || || |+----의 강도는 어느 정도이며, 얼마동안 지속되는가?2 신체적인 증후군이 우울의 변화를 수반하는가?3 우울이 정상적인 일상적 행위들을 중단시키는가?4 현실을 보는 능력에 장애가 되는가?5 우울이 자신이나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는가?어떤 경우에 있어서 사람들은 조증과 우울증을 둘다 경험하게 되는데 동시적이지는 않지만 극단적인 조증에서 극단적인 우울증에 이르기까지 행동과 감정의 범위에 커다란 동요가 있게 된다. 이를 양극성장애(bipolar disorder), 좀더 보편적으로는 조울장애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감정표현이 변화가 적고 훨씬 덜 극단적인 방법으로 체계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감정의 동요는 며칠 동안 혹은 몇 달 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 양극성장애는 약물치료에 아주 잘 반등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회복되기 시작하면 더이상 약물치료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흔히 순환적인 과정이 시작된다.(3) 불안장애와 공포신경증 (anxiety disorders and phobic neurosis)불안은 보통 「신경성」이라는 용어로 사용되며 어느 누구나 다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이다. 그러나 치료적인 면에서 불안은 훨씬 더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불안은 심한 두려움이나 혹은 공황(panic)으로 간주되는 편이며 치료적인 면에서 두려움이나 공황의 증상은 호흡곤란, 현기증, 가슴이 두근거림, 질식감, 실신, 몸의 떨림, 땀흘리기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구토 증세를 초래할 수도 있다. 또는 비인간화(자신이나 환경에 대한 비현실감)나 심장의 통증, 죽음에 대한 두려움, 미치고 있다」는 두려움, 통제력 상실 등의 감정이 나타날 수 있다. 정신과적인 진단에 있어서 공황은 흔히 공포증(phobia)과 결합된다. 공포증은 대상이나 환경, 심지어 그 사람의 사고를 지배하게 되는 사건 등에 대한 지속적이고 비현실적 두려움이다. 사람들은 그 대상, 상황, 혹은 사건에 대한 회피에 사로잡히게 된다. 우리들 대부분도 날아다니는 것이나 뱀에 대한 두려움 등의 비현실적인 두려움을 경험하지만 어 팀원끼리 손을 잡은 채 하는 위·아래 Game으로 연결한다.⊙ 물 휴지 다트: 2팀으로 나누어 한사람이 다트판에 물 휴지를 3번 던져 물 휴지가 붙은 칸의 점수를 합산 함.⊙ 시간감각Ⅰ: 자리에 앉아 눈을 감은 후 마음속으로 30초가 되었다고 생각될 때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한다. 이때, 가장 근접해서 일어난 사람이 승자가 된다.⊙ 시간감각Ⅱ: 지도자가 손수건을 던져서 땅에 떨어질 때까지 시간을 초시계로 잰 후, 가장 근사치에 숫자를 적은 사람이 승자가 된다. .⊙ 종이칼국수 만들기: 갱지를 각 개인에게 한 장씩 나눠준 후, 제한 시간 3분내에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가장 길게 종이를 자르는 사람에게 보상을 해준다.나. RELATED TO OTHERS{프로그램명풍선배구Ⅰ목 적풍선을 이용한 팀별 경쟁활동을 통해 집단의식을 고취한다.도 달 점3번의 토스를 정확히 지켜 상대편 진영으로 풍선을 넘긴다.준 비 물풍선, 네트(높이: 1,6m, 길이: 2.5m), 호루라기과 제 분 석1 팀을 두팀으로 나누어 수비와 공격을 정한다.2 공격팀이 먼저 서브한다.3 상대팀은 날아온 풍선을 3번 토스하여 다시 상대팀으로 패스한다.(단, 3번의 토스를 각각 다른 사람이 하도록 한다.)4 이때, 3번의 토스를 지키지 못했거나, 풍선이 땅에 먼저 떨어졌을 경우 상대팀에게1점을 내준다.5 10점을 먼저 만든 팀이 승리한다.⊙ 풍선배구Ⅱ: 2팀으로 나눈 후 풍선을 이용하여 배구를 한다. 단, 풍선은 3번의 기회를 다 이용하여 넘기게 하고 1∼2번은 머리와 어깨를 이용하고 마지막 스파이크때만 손을 이용하게 한다.⊙ 풍선배구Ⅲ: 3번의 기회중 1∼2번은 입으로 바람을 불어 토스를 한 후 마지막 스파이크때만손을 이용하도록 한다. 끝난 후 풍선 터트리기를 하면 더욱 좋다..{프로그램명원 바운드 농구목 적공을 이용한 파트너 게임을 통해 상호 협동심을 향상시킨다.도 달 점공을 바운드하여 넘긴 공을 바구니로 받는데 성공한다.준 비 물탱탱볼, 네트(높이: 1.5m, 길이: 2.5m), 바구니, 호루라.
한국전통사상의 의의와 이해Ⅰ. 과거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매우 생소하게 들릴 수 있겠으나, 조선조의 유자들도 과거의 객관적 사실만을 들추는 역사학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전통을 중시하고 尙古의 정신이 충만한 유자들이 사실과 기록 그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였다는 주장은 하나의 역설로 들린다. 왕조실록이라는 방대한 관찬사료를 편찬한 조선조 문화에서 기록문화가 차지 했던 비중은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기록과 역사속에서 읽고자 하였던 것은 객관적 사실과 형식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 속에 담긴 속에 도덕적 가치와 의미에 있었다. 이것이 그들의 '先經後史'의 정신이다.) 錢穆, . 『朱子新學案』, 제 5冊,三民書局, 115면. "朱子平日主張 先經後史之意"역사를 읽되, 철저히 역사와 시간 속에 담긴 형이상학적 가치와 도덕을 本으로, 그것을 담고 있는 구체적 역사적 사건과 형식은 末로 취급하였다. 인간에게 도덕적 성찰을 제공해 주지 않는 역사 연구란 무의미한 것이고 부질없는 놀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보았다. 주자는 그 자신이 사학에 정통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史學은 바깥(外)과 말단(末)에 속하며 인생사의 거친 것(粗)과 작용(用)을 다루는 학문으로 취급하였다.) 錢穆,,『朱子新學案』 권1,196면유자들은 역사를 저술하는 근본 목적을 '垂世入敎'에 두었다.) 錢穆.上揭書, 119면.그들은 역사에 대한 해석 행위가, 역사를 인간의 현실적인 삶과 유리되어 객체로서 따로 흘러 가는 그 무엇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계속 그 의미를 부여하고 개입하여 道를 드러낼 일종의 텍스트 읽기의 방식으로로 이해하였다.) 자세한 논의는 졸고, " 퇴계사상에 있어서의 '日常'의 의미와 그 교육학적 해석,『퇴계의 사상과 그 현대적 의미』, 한국 정신문화연구원,1997, 239면 -248면 참조요망.이러한 의식에서는 시간 자체의 본질이나 실재에 관한 논의등은 애초에 결여되어 있다. 역사란 오늘의 우리의 모습을 비쳐 볼 수 있는 鑑戒의98년이는 지나간 과거와 전통은 좋다 나쁘다의 단선적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해석의 다양성을 허락하는 포괄적인 체계임을 알려 주는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지식의 체계 혹은 지적인 패러다임이 변하면 전 시대가 향유했던 모든 가치체계는 생소하고 낯설게 된다. 19세기 촌락사회에서 통용되었던 교육문화는 오늘날 도시의 삶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오늘의 삶이 공동체적 문화를 허락하지 않을 정도의 다층위적 문화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도시를 배회하는 농악대의 삭막한 이미지를 상상해 보라. 러브 조이가 "시간과 장소가 바뀌면 무대 장치는 바뀌고, 배우들은 그들의 옷과 분장을 변화시킨다."라고 독백하는 것은 매우 의미 심장하다.) A.O.Lovejoy. Essays in the History of Ideas,New York,1960, p.170무대가 바뀌었는데 낡은 옛 의상을 걸치고 나오는 것은 유능한 배우가 할 일이 아니다. 간혹 급격히 바뀐 무대 세트에서 배우들이 그들의 역할과 의상과 해석 방식을 두고 서로 논란을 벌일 때가 있다. 우리는 그 한 예를 조선 후기의 실학자 홍대용과 그의 대선배 김종후와의 이른바 을 통하여 볼 수 있다. 청의 문물에 찬탄하던 홍대용에 대하여 아직 북벌론과 중화중심주의 사상에 골몰한 김종후는, "비린내 나는 더러운 나라"에 연행한 일 부터가 가소로운 일이라 공박하고, 담헌이 "머리 깍은 청나라 擧子들과 형제처럼 사귀고 못 할 말이 없었다"고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성급하게 무대를 바꾸고 새로운 역할을 하려는 홍대용과, 무대가 바뀐 것을 인정하지 않고 옛 문화에 탐닉하던 김종후와의 논쟁은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는 역할극이 될 것이다.이에 본고에서는 우선 전통적인 교육의 패러다임이 과연 오늘날의 교육모델과는 어떻게 질적인 차이가 있었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전통시대의 교육은학교의 전유물이 아니라 문화라는 넓은 문맥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으리라 본다. 전통교육을 문화라는 커다란 콘택스트 속에서 평가할 때, 바램은 물론 인간적 질서와 자연적 질서의 완벽한 합일에 있었다. 이것은 공자 이래 그들 유자들의 염원이었다. 그들은 교육의 힘을 빌려 이러한 완벽한 합일에 도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유자들은 욕망의 덩어리인 인간이 純一한 자연적 질서에 가까이 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의 문화적 세례가 있어야 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을 자연적 질서에 그대로 방치하여 두면 거칠고 조야하게 된다는 사실을 경험속에서 잘 알고 있었다. 유가들은 人爲와 作爲의 노력을 거쳐 , 그것이 쌓이고 쌓여 질적인 변환을 이루면 그 때 비로소 自然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禮로 다듬고, 樂으로 부드럽게 하며, 刑으로서 권위와 위엄을 보이고, 政으로서 균질하게 하는 문화적 세례 속에서 비로소 인간은 그 끈끈한 욕망의 올가미를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유가에서의 군자란 곧 이러한 인문적 교양을 충분히 받은 인물을 의미하였다.반면 老莊의 도가적 사유는 문화는 곧 속박이라고 생각한다. 문화는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고립시키는 장벽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그 삶의 원형을 자연으로부터 받아 들일 것을 제안한다. 노자가 "배우기를 포기하면 걱정이 없다"(絶學無憂)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聖을 끊고 智를 버리면 백성들의 이익이 백배나 된다"(絶聖棄智 民利百倍)라는 반문명적 주장을 피력하는 것도 인간중심의 왜곡된 시각이 사물에 대한 참다운 앎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는 인간중심의 논리와 덕목의 그물망으로 짜여진 교육에 대하여 회의한다. 그의 " 큰 지혜가 나타나니 큰 거짓도 있게되었다"(慧智出 有大僞)라는 언명은 인문적 질서에 익숙한 유자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역설이었다. 王弼의 老子註에서는 자연적 질서와 인간적 질서의 충돌이 왜 일어 나며, 도가에서 유가의 교육방식을 왜 부정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천지는 스스로 그러함에 맡기니(任自然) 억지로 하고자 함도 없고 인위적으로 만듬도 없고, 만물은 서로 서로가 어울려 다듬어 지고 질서 세워진다에 맞게 世間과 出世間의 사이를 유연하게 넘나들었다. 예로 그들 선비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그의 이름과 몸을 드러내는 유가적 삶의 방식에 충실하였다. 孝와 忠으로 무장한 근엄한 군자로서 일상의 일거수 일투족에 굉장한 삶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들은 언제나 삶의 무게를 충실히 견디어 내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삶의 처처에서 逍遙遊하는 탈속의 시간을 충일하게 보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번쩍거리는 광휘를 부드럽게 하고 더러움과 함께하는(和其光 同其塵)" 물러남의 자세를 사랑하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노장과 같은 해체적 사유가 빼기의 철학이라고 한다면, 유학은 더하기의 철학이라고 한 김형효의 주장은 탁견이다.) 김형효, 『데리다의 해체철학』, 민음사,1993전통시대의 선비들이 이 세간과 출세간의 경계에서 삶의 안정을 구하였던 예는 쉽게 찾아 진다. 역사에 개입하고 현실의 구체적 삶에 충실하고자 원할 때에는 전통에 충실한 유자의 본분으로 돌아 오고, 역사와 현실의 무게가 너무 버거울 때에는 그들의 의식을 출세간의 경계속에 담아 두었다. 老佛을 극도로 배척하였던 퇴계의 경우에도 도가의 자연주의적 경향이 그 이면에 도도히 흐르고 있음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 기인한다.) 자세한 논의는 최진덕," 퇴계성리학의 자연도덕주의적 해석", 『퇴계의 사상과 그 현대적 의미』, 정문연,1988년 및 상게서에 함께 실려 있는 졸고, "퇴계사상에 있어서의 '日常'의 의미와 그 교육학적 해석" 참조 요망율곡이 한 때 불가에 깊이 침잠했던 것이나 만년의 남명에게서 도가적 분위기가 짙게 베어나오는 것은 바로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예는 심지어 혁명의 피가 흐르던 정도전의 의식 속에서도 발견된다. 그의 유명한 라는 글에서는, 등에는 진흙이 묻은 채 손에는 호미를 든 농부에게 朝士요 儒者인 주인공이 그의 삶의 정당성을 밝히지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을 간결하게 그리고 있다. 소탈한 삶을 사는 長沮 桀溺의 무리에게 그가 말 그대로 한 수 배우는 궁색함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나아감'의 철학이 주조를 이룬다. 이 '나아감'의 교육은 입신양명을 지향하고 세속적인 성취를 중시한다. 이 '나아감'의 철학은 생을 들뜨게 하고, 교육을 경쟁에 이기기 위한 수단적 가치로 이용한다. 물론 유가의 세계에도 '나아감'의 철학과 함께 '물러남'의 요소도 함께 하고 있다. 위기지학을 강조하고, 존재의 내성적인 성찰을 중시하는 성리철학은 오히려 '물러남'의 미학을 귀하게 여긴다. 참된 선비는 '나아감'과 '물러남'을 時中에 맞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물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가 유자인 이상, 유하혜의 삶을 따르던, 백이숙재의 삶을 따르던 , 혹은 이윤의 방식을 고집하던 모두 인륜적 질서의 큰 틀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유가의 "물러남'이란 그의 몸을 放下하여 철저히 無爲와 無常의 세계에 침잠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나아감'을 위한 '물러남'이다.老佛의 '물러남'이 담고 있는 탈인륜성과 과격성은 유자들에게 이 세계의 인간적 질서를 붕괴시킬 수 있는 불온한 징표로 인식되었다. 아이들에 대한 교육에서 이 부분은 철저히 禁制하고 억제하여야 할 대상이었다. 뒷 세대가 이러한 유혹에 빠지게 되면 그들의 말년이 불행해질 위험이 있었다. 따라서 현실속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는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이단이었다. 그러나 노불의 "물러남"이 지향하는 무욕과 청정의 세계는 이욕과 사욕이 배제된 純一한 세계를 지향하는 유가로서도 어떤 형태로든 극복하고 수용하지 않으면 않되는 논리적 과제였다.조선조에도 교육의 중심은 역시 이 '나아감'의 논리가 지배하였다. 과거제로 상징되던 조선조의 교육열은 이 '나아감'의 철학이 顯在化된 모습이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조 교육의 성격은 외재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오늘날 교육의 양태와 맞 닿아 있다. 조선조 사회가 나름데로의 사회적 긴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세속적 입신양명의 욕망을 긍정하고 그것을 체제내부로 수용할 수 있는 메카니즘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조선조 교육이 어떠한 사회적 메카니즘 속에난다.
언론개혁의 바람직한방향과 과제< 미래의 정책방향의 관점에서 >I. 서론역대 대통령 중 가장 언론의 도움 없이 권좌에 오른 김대중 대통령은 마음만 먹었다면 집권초기 언론개혁을 위한 청사진을 하나씩 실행할 수 있는 여건에 있었다. 야당시절 언론의 도움을 톡톡히 봐온 그였지만 대통령 선거에 임박해서는 중앙일보의 노골적인 이회창 편들기 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중앙일보의 빗나간 승부수는 훗날 보광그룹 탈세사건 이란 이름 하에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구속되는 결과로 이어졌다.그러나 대통령 당선 직후 각 언론사마다 터져나오는 인동초 , 행동하는 양심 등의 대대적인 용비어천가 의 황홀함에 묻힌 김 대통령은 굳이 언론개혁이란 이름으로 언론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 이유가 없었다. IMF구제금융체제의 극복이라는 국가적 난제를 안고 출범한 김 대통령에게 언론의 도움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역사가 메테르니히가 나폴레옹에게 언론은 30만 대군이나 마찬가지 라는 말로 나폴레옹의 수족이 된 언론의 위력을 갈파했듯이 경제위기체제하의 김 대통령에게 언론은 어떤 조직보다 믿음직했고 유용했다. 언론과의 밀월은 권력과 언론 모두에게 달콤한 법이다.신문 그 이상의 신문 을 꿈꾸는 과대망상의 언론에 대해 사회적 개혁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그렇게 권력은 이용했다. 1998년 규제개혁차원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신문고시(告示) 를 철폐했다. 김 대통령은 신문판매와 광고시장의 질서를 담보하는 최소한의 규정을 담고있는 신문고시마저 없애주는 친절함을 보였다. 사실상 껍데기에 불과한 신문고시가 없어졌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언론사에 대해서는 공정 이라는 말도 못해보는 상황이 됐다. 권력과 언론의 밀월은 영원할 수 없는 법이다. 준비된 대통령의 준비되지 않은 국정운영의 미숙은 곳곳에서 터졌고 언론도 본연의 권력감시기구로 돌아섰다. 의약분업사태, 국회날치기사태, 옷 로비사건, 린다 김 사건, 공적자금문제, 의원꿔주기행태 등 반개혁적, 반민주적, 반사회적 사건의 반복과 언론의 비판은 김대중 정권에 기대를 걸었이상 성역으로 남아있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던졌다.보광그룹 탈루 소득 348억 원, 홍석현 일가 탈루 소득 337억 원. 그 내용은 증여세 포탈, 양도소득세 포탈, 배임행위 등. 천 여 개의 차명 계좌를 만들어 거액의 탈세와 탈법을 조직적으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중앙언론사 사주로 대법원의 유죄확정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은 범죄혐의에 관한 한 재론의 여지를 없애버렸다. 이 사건을 두고 일부에서는 중앙일보가 97년 대통령선거 당시 노골적으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지면으로 지지한 그 댓가를 치른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인과관계는 차치하더라도 한 중앙언론사 사주의 명백한 불법행위에서 드러난 그 범죄 규모와 방식은 파렴치한 내용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정치권력은 다시 한번 언론사 사주의 권력에 힘을 보태줬다.2000년 홍 사장은 대법원의 판결이 난지 3개월도 채 안돼 바로 사면, 복권됐다. 권력은 법의 특혜를 언론사 사장에게 하사한 것이다. 그는 보란 듯이 중앙일보사 회장으로 되돌아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이 사건이 현정부의 미래 언론정책을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우선 언론사 사주에 대한 비리와 불법행위에 대해 그 동안 권력은 눈감아주며 권력과 결탁 내지 협조의 끈으로 삼아왔으며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행태를 보일 것이라는 점이다.두 번째 언론사도 하나의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만큼 탈세, 탈루 등 불법적 방법도 동원하지만 검찰이나 국세청의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권력의 눈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권력의 보호아래 특혜를 누릴 수 있음을 암시한다.세 번째 대통령을 만든 신문이라는 신문 그 이상의 신문 역할을 꿈꿀 때 성공하면 갖은 특혜와 발전이 보장되지만 실패하면 사주구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마지막으로 조세정의도 법치주의도 언론사에 관한 한 여전히 성역으로 남아있음을 입증했다. 그 결과 국세청의 당연한 세무조사조차 언론사 탄압으로 반발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것은 국세청이 직무를 태만 내지이나 하고 다니다가 외환관리법 위반혐의로 고발됐다는 사실자체가 언론사 사주의 부도덕성과 무책임함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데 검찰은 꼼짝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지면 그때 검찰은 움직일 것이다.세 번째 1인 지배 족벌체제하에서는 이런 사건이 벌어져도 책임지고 나서서 사건을 해결할 사람이나 조직이 없다는 것이다. 한때 4대 언론으로 불리며 한국언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한국일보가 이렇게 몰락하는 이면에는 바로 이런 사주들의 비행과 무책임함, 무능이 있음을 웅변하는 사건이다.이밖에도 이상회 전세계일보 사장의 노동법 유린과 역시 구속됐다 사면 조치된 홍두표 전 중앙일보사/KBS사장의 배임행위 등은 언론사 사주들의 도덕적 타락과 불법행위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한국사회에서 언론사 사주에 대한 비리는 여전히 성역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역으로 이런 사건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견제와 감시가 없는 곳은 부패할 수 없다는 것은 역사의 진리다.3. 신문고시 폐지와 부활의 논리공정거래위원회가 1998년 폐지한 신문고시제를 2001년 4월에 부활시킬 것으로 예고했다. 신문고시제의 주요내용은 정부가 신문의 판매 및 광고시장의 불공정거래실태를 조사해서 신문시장을 정상화하고 신문사에 대한 특혜성 대출 등을 시정하는 것 이다. 여기에는 신문 값을 깎아 주는 정가할인을 규제하고 광고료산정기준을 정한다 는 것이다. 신문시장의 불공정한 판매와 무분별한 광고시장의 질서를 정부가 나서서 바로 잡는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공정위 초안신문협회광고주협회언론개혁시민연대▶대형 신문사에 대한 광고료 등 가격 규제▶광고시장에 불필요한 정부 개입 자제▶광고료 등 가격 규제는 자제해야▶발행부수공사 조기 정착/유가부수공개 의무화/광고요금표 공개▶지국의 경쟁사 신문판매에 대한 구속 금지▶자국운용 규모와 경제성에 따라 공동판매 자율적으로 운용▶신문.잡지 발행부수공사기구(ABC)를 통해 해결해야▶신문 구독시 문서로 계약▶경품제공은 대금의 10%미만/무가지 10% 이내로 제한▶경품고시에서 이미 )와 대한매일(과거 서울신문사) 등은 자신이 집권하게 되면 민영화를 하겠다고 공언했다.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부가 사실상 소유하고 있는 언론사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율배반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소유 언론사가 정권의 교체기나 혼란기에 정통성 없는 정부, 부도덕한 정부의 이데올로기 전파의 첨병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렸기 때문이다. 이런 폐해가 바로 정부소유형태에서 파생된 문제라는 사실을 김 대통령은 깊이 인식하고 있었고 또한 스스로 피해자이기도 했다.그러나 김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을 집권후반기에 들어서도 지키지 않고 있고 자신의 심복이나 친 여권인사들을 낙하산 식으로 해당언론사 사장으로 임명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연합뉴스나 대한매일의 언론인들이 권력과의 독립을 선언하고 참된 언론을 외치고 있지만 현재와 같은 소유구조하에서는 구조적으로 독립은 한계가 있다.야당총재시절의 생각이 대통령이 되면 바뀔 수 있겠지만 자신의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언론정책 때문에 현정부의 언론개혁 청사진이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일의 순서 상 정부소유 언론형태를 민영화로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선에서 현재와 같은 세무조사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등이 이루어졌다면 언론장악음모 라는 논리가 약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소유언론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각종 언론규제정책 시행은 비록 그것이 시대적 요구라 하더라도 반발을 가져올 것임은 분명하다.지금이라도 단계적인 민영화의 청사진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더 이상 이 땅에 정부가 소유한 언론사가 존재하며 이 언론이 정권의 나팔수가 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현재의 개혁적 언론정책이 지지를 받게될 것이다.III. 미래의 언론정책1. 자율과 타율/규제와 반 규제언론사를 통해 나타난 이 땅의 언론사들은 권력의 비호 아래 특혜집단으로 성장, 온존해 왔다. 해방이후 혼란기를 거쳐 제3,4공화국 박정희 정권 하에서 언론사들은 본격적으로 불법카르텔을 형성했지만 정부는 규제에 나서지 않았다. 국세청은 단 한번도 세무조사나 그 유사한 조사를 벌이지도 않았다. 제5공화국 임행위를 한 셈이다.민주주의 사회 각 조직은 상호 견제, 감시하는 형태지만 한국 언론사만큼은 권력의 편에서 각종 특혜를 독점했다. 사주에게로 넘어간 편집권은 1인 지배체제를 더욱 공고히 했다. 따라서 언론사에서 사주는 황제로 군림했고 IMF이후 노조의 조직마저 와해된 상태에서 사주들의 횡포와 탈법행위는 거칠 것이 없었다. 시시비비를 가리고 권력을 감시하는 기능을 그 존재목적으로 하는 언론사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종종 실망으로 변했다. 시민단체, 기자들마저 언론개혁과 사주의 재산공개를 요구하는 상황으로 언론에 대한 견제와 개혁요구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그러나 세무조사,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등 이러한 기본적 조사조차 받지 않아 온 언론사 사주들은 언론 길들이기 라고 반발하고 있다. 타 기업에 대해서는 투명경영을 요구하면서 스스로는 발행 부수조차 공개하지 못하겠다고 거부하고 있다. 사회에 대해서는 공정한 경쟁을 주장하면서 스스로는 불공정한 경쟁과 불법판매경쟁으로 살인극까지 빚었다. 언론사들은 소송으로 문제가 비화되더라도 막강한 로비력을 동원하여 법을 무력화시켰다. 이처럼 한국 언론사들은 어떤 세력과 조직으로부터도 견제와 감시를 받지 않는 개혁의 무풍지대에서 군림해왔다.따라서 미래의 언론정책은 당분간 자율이 가능하도록 타율정책을 취하게 될 것이다. 그 타율의 내용은 행정규제와 법적 책임의 의무강요가 주 내용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언론규제정책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는 만큼 세계 민주주의 선진국가들은 탈 규제정책을 취하고 있다. 다만 정부의 당연한 직무조차 언론사에 대해 이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언론자율을 최우선시하면서 그 자율이 잘 이행되도록 타율적 장치를 보완하는 형태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본다.2. 경영의 투명성과 세무조사현행 정간법에 의하면 한국 언론사의 경영상태를 알 수 있는 규정조항이 없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선진유럽국가들이 언론사의 경영투명성을 강제하는 법적 장치를 두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현재와 같이 등록제 하에
한국의 여성정치와 여성정책목 차1.서론: 여성정치란 무엇인가?2. 여성정치의 형성과 민주화3. 문민정부와 여성정책4. 15대 대통령 선거와 여성정책5.. 한국 여성정치의 발전 방향과 과제1.서론: 여성정치란 무엇인가?1999년 유네스코 교육통계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인간개발지수가 세계 32위인 반면 성별평등지수는 34위이고 성별권한척도는 73위였다. 인간개발지수는 국민의 기대수명,교육수준,국민소득을 기준으로 하며 성별평등지수는 남녀간 성취수준의 평등정도이고 성별권한척도는 전문직,관리적의 여성비율 및 의회의석의 여성점유율이다.유네스코의 이 통계는 우리나라가 전체적인 교육수준이나 국민소득이 높은 정도에 비해 남녀평등이 현저히 낮아 불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말해준다. 여성이 전문직,관리직에 진출하거나 의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막혀있기 때문에 남녀 성별간 힘의 균형이 깨져 민주사회나 삶의 질이 높은 사회로 발전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한국에서 여성의 의회참여율은 15대 국회에서 3%(299명의 국회의원중 여성은 9명)이며 역대 평균은 2.3%이다. 1997년 IPU 조사에 의하면 세계를 107등까지 등급화했을 때 한국은 94위로 여성의 의회진출정도가 최저그룹에 속한다.지방의회는 1995년 6.27 선거에서 여성후보자는 206명으로 전체의 1.72%, 이중 당선자는 72명으로 전체의 1.58%였다. 광역의회에 출마한 여성은 40명으로 전체의 1.63%이며 이중 13명이 당선되었다. 그러나 여성 광역의원 총수는 6.27 선거에서 처음 채택된 비례대표제로 인하여 민자당 27명, 민주당 13명, 자민련 2명으로 모두 42명이 선출되어 전체는 55명이 되었으며 이로서 여성은 전체 광역의회 의원의 5.6%가 되었다. 이는 1991년과 비교할 때 7배 정도 증가한 것이다.현재 여성의 의사결정직 참여 현황은 이상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매우 낮지만 역대 독재정권과 비교하면 그 어느 시기 보다도 높다. 1980대 민주화 이후 여성정치의 형성으로 여성의 의사결정직 진출의 중요성이 인식여성운동은 성차별과 억압에 대한 저항과 문제제기로 시작하여성평등을 위한 대안의 제시와 그 정책대안을 현실화하기 위한 여성정치권력의 획득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한국의 여성정치는 1980년대를 거치는 민주화 과정에서 그 싹이 틔여졌다. 해방후 제1공화국의 수립에서 1970년대까지 일반여성은 정치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있었으며 여성의 정치참여는 군사정권과 몇몇 여성엘리뜨의 유착관계로 끝났다. 여성은 정치에 수동적, 소극적, 무관심하거나 독재정권 유지를 위한 가장 말단의 하부조직으로 기능하였다.그러나 1970년대 근대화의 역군이었던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의 민주노조운동은 여성과 정치가 대결한 최초의 시도였다.여성노동자들은 노조라는 단체활동을 통해 조직되고 정치화되었으며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대한 여성들의 저항은 정권의 기반을 동요시키는 것이었다. 여성정치라는 분명한 정향성이 형성되지는 않았지만 여성민주노동운동에서 기득권 정치에 대한 여성들의 힘과 영향력이 실험되었고 여성정치의 싹이 형성되었다. 이 싹은 이후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과정속에서 하나의 나무로 성장하였다.우리나라는 1960-70년대 근대화 과정에서 자본주의적 성별분업이 이루어졌다. 여성의 생활과 행동이 가정이라는 사적영역에 한정되고 사회와 정치는 남성영역화하면서 여성은 정치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었으며 성차별과 억압의 현실은 정치적 쟁점화하지 못했다. 여성들은 정치적 대상이었을 뿐 정치세력화하지 못한 상태였다.이러한 정치에서의 절대적인 여성배제가 변화하기 시작하는 것은 1980년대 였다.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진 군사독재는 군사적 권위주의가 최고의 가부장제라는 라틴아메리카에서의 명제를 한국에서도 확인시켰다. 군사적 권위주의 정권에서 여성운동은 성차별과 억압의 뿌리가 가부장제와 군부독재정권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획득하였다.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가부장제와 그것에 기반하고 있는 자본주의 그리고 군대라는 물리적 폭력에 기반한 독재정권에 대한 여성들의 도전이 정치운동화 하였고 여성들은 여성운동의 틀을 갖고 정치주체은 1997년 7월 부터 발효되는 여성발전기본법이 1996년 제정되면서 처음으로 수립되었다. 그 결과 기본법의 제시에 따라 여성정책의 목표가 남녀평등의 추진,여성의 사회참여확대, 여성의 복지증진으로 집약되었다. 그러나 여성발전기본법의 제정에도 불구하고 여성정책 추진의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주무부서인 정무제2장관실이 집행력과 예산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정책의 주류화라는 세계적 경향과는 달리 한국의 여성정책은 주변화되고 왜소화되어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정책은 한걸음씩 진전하고 있으며 그것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여성정치의 영향력 증대와 세계여성정치의 발전 때문이다. 다음에서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정에서 성장한 여성의 정치세력화가 여성정책분야에서 이룬 성과를 살펴보기로 한다.3. 문민정부와 여성정책김영삼 정부가 선거공약으로 내건 여성정책에 대한 이행정도에 대해 한국여성단체연합은 1997년 5월 [김영삼정부 여성정책평가 및 여성정책발전방향 토론회]에서 D(부족)로 평가하였다. A(아주 잘함), B(잘함), C(보통), D(부족), F(매우부족)로 등급을 나누어볼 때 김영삼 정부의 여성관련 정책공약과 그 실행은 부족 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김영삼정부 여성정책 평가 및 여성정책 발전방향 토론회 자료집],1997년 5월 19일.비매품.김영삼 대통령 공약사항 이행평가여성정책 평가1.대통령직속기구로 여성정책특별위원회를 한시적으로 설치운영하고 D정부부처내 여성관련 행정조직의 기능을 강화하여 여성관련 정책이강력히 추진될 수 있도록 한다2.남녀고용평등법과 영유아보육법을 보완강화하고 가족법을 개정한다 D3.시간제,가내근로자보호를 위한 특별조치를 강구한다 F4.주부의 가사노동의 가치를 합리적으로 산출하여 공적기준으로 반영한다 D5.여학생 진로교육을 강화하고 미래사회에 필요한 고급인력양성을 위해 C전략적으로 투자한다6.3군사관학교등 군사전문인력양성기관과 특수교육기관의 문호를 개방해 C여성전문가를 양성한다7.시,군,구 단위의 여성취업정보센었다.먼저 김영삼 정부가 내놓은 여성정책중에서 최고의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잠정적 우대조치의 성과와 한계를 살펴보고 그 다음 여성관련법 제정과 개정의 결과를 살펴본 다음 15대 대선에서 제시된 여성정책공약을 검토하기로 한다.1) 여성에 대한 잠정적 우대 조치의 성과와 한계김영삼 정부는 대통령 선거공약(1993-1997)과 15대 총선공약(1994-1998)으로 여성정책의 확대와 강화를 제시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임기 막바지인 1995년 12월 30일이 되어서야 여성발전기본법을 제정하고 ,[여성의 사회참여확대를 위한 세계화 추진 10대 과제]를 제시하는데 그쳤다.{ 1995년 10월 11일 세계화추진위원회에서 [여성의 사회참여확대방안]의 10대 과제로 가칭 여성발전기본법안을 제정하기로 하였다.10대 과제와 기본법은 여성에 대한 잠정적 우대 조치(Afformative Action)에 기반하고 있다. 이는 여성에 대한 성차별과 억압을 인정하여 여성에 대한 차별철폐를 위해 특별 조치를 강구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이 특별조치가 경우에 따라 차별적, 우대적이어도 사실상의 평등이 달성될 때 까지 한시적으로 취하는 조치이기 때문에 차별이 아니라는 개념이다.잠정적 우대조치에 해당되는 정책은 공무원여성채용목표제와 공기업여성고용인센티브제, 정부 각종위원회의 여성위원 참여확대이다.공무원여성채용목표제는 정책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5급이상 여성관리직 공무원의 비율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적용대상은 선발예정인원이 10명이상인 행정외무 고시와 7급행정, 공안직군 및 외무행정직의 공개경쟁채용시험이고 채용목표는 96년 10%에서 매년 2-3%씩 증가시켜 2000년에는 20%로 설정되었다.(%){969798992000년1013151820자료출처:정무장관(제2)실 소식,여성정책 제 28호,1997년 6월,9쪽.방법은 남녀구분 없이 시험실시후 성적순에 의해 선발예정인원만큼 합력자를 결정하는 것이다.여성합격자가 목표비율이상인 경우 현행제도에 따라 합격처리하고 여성합격자가 목표비율미만인 경우에는 보호처분을 내려야 하고 국가와 지자체는 패해자의 구조와 치료,피난처 등을 제공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도한 18세 이하의 청소년이나 60세 이상의 노인에 대해서는 학교나 병원에서 폭력피해사실을 인지하게 될 경우 사업기관에 신고를 의무화하고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 부과조항을 두었다.이 여야 정당과 여성단체에 의해 각각 제출되어 통과되었다.여성발전기본법 제정의 의미는 첫째, 여성정책의 기본시책이 세워졌다는 것 둘째, 남녀평등 촉진, 모성보호, 성차별적 의식의 해소 및 여성의 능력개발을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며 재원을 조달할 책임이 있다는 것 셋째,여성의 참여가 부진한 부분에서는 합리적 범위안에서 잠정적인 우대조치를 할 수 있다는 것. 넷째, 정부는 여성정책에 대한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며 중앙행정기관의 장, 시장(특별시,광역시) 도지사는 연도별 시행계획을 시행해야 하고 다섯째, 정부가 재원확보를 위한 여성발전기금을 관리, 운영하며 여섯째,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여성단체 활동에 필요한 경비를 보조해야 한다는 것이 명시되었다는 것이다.여성발전기본법은 1996년 7월 부터 발효되었으나 문제는 실효성이다. 여성발전기본법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를 집행할 전담부서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무제2장관실은 정책입안과 집행을 위한 권한과 책임,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성발전기본법이 제대로 집행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적다.가정폭력방지법은 1997년 11월 국회본회의에서 통과되어 내년 7월 1일 부터 시행되게 되었다.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은 가정폭력이 명백한 범죄행위임을 규정하고(1조,2조) 가정폭력을 발견한 사람은 누구나 신고할 수 있고 피해자는 고소고발할 수 있으며(4조,6조) 가정폭력현장에 경찰관이 즉각 출동해서 폭력행위를 제지하고 범죄를 수사해야 한다. 또한 경찰은 피해자에게 폭력행위가 재발할 경우 피해자의 주거지로 부터 행위자를 격리하거나 피해자의 주거,직장으로 부터 100미터 이내의 접-5쪽.
에 관한 연구목 차Ⅰ서론Ⅱ實學의 發生과 특성1.實學의 發生2.實學의 특성Ⅲ實學派의 敎育思想1.經世致用學派의 敎育思想2.利用厚生學派의 敎育思想3.實事求是學派의 敎育思想Ⅳ 결론Ⅰ서론朝鮮後期의 非正常的인 時代的 상황 속에서 그 時代의 요청에 부응하여 磻溪 柳馨院을 시조로 대두된 이른바 實學者들은 먼저 지치고 피폐된 朝鮮의 社會, 經濟, 政治 등 실제적인 문제에 관심을 돌리고 이에 비판을 가하였으며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實際的이고 實用的인 方法의 탐구와 왕성한 개혁 정신을 바탕으로 진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장래의 문제들을 진지하게 내다보았다.實學者들은 政治, 經濟, 社會, 科學, 文化뿐만 아니라 敎育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며 그 당시 우리 나라 敎育의 弊端과 결함을 예리하게 分析하고 비판하였으며 올바른 敎育방향을 제시하려고 하였다. 특히 그들은 敎育 目的을 재 설정하고 敎育 내용 및 敎育 方法에 대해 전반적인 비판을 가하였으며 敎育制度와 敎育機關 등 제도 교육 전반에 관해서도 뚜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종래의 관념론적 논쟁이 아닌 現實에 입각한 改革을 시도하였다는 것은 韓國敎育學思想 획기적인 논의였다고 할 수 있다.따라서 그러한 時代的인 상황 속에서 敎育이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그 당시 敎育에 대해 實學者들이 어떤 견해를 가졌는가를 살펴보는 일은 오늘의 敎育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도 의미 있는 일이며 그러한 정리를 통해서 현재의 한국교육에도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으리라 본다.이러한 필요성에 입각한 實學思想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면 특정 實學者 개인에 관한 硏究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여러 實學자들의 實學思想을 토대로 實學의 敎育的 측면, 政治 經濟的 측면, 개념·사적 측면에 관한 硏究가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다. 특정 實學者들의 敎育改革論을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朝鮮 후기 實學 思想들 속에 나타나 있는 敎育 論議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그런 의미에서 본 硏究에서는 實學思想에 나타나민층의 이익을 보장하는 문제에 주목하게 되었다. 實學者들은 이 社會見해에 대한 政治的 진단과 대책을 理論的으로 추구하였고 그렇게 하여 그들 자신의 獨自的인 思想을 형성해 나갔던 것이다.實學 發生의 다섯 번째 요인으로는 朝鮮王朝가 축적해 온 學問的 傳統을 들 수 있다. 朝鮮王朝의 성립 직후에 發展했던 궁정문화적 업적들은 實學자들에 의하여 일부 繼承되고 다시 發展되어 獨自的인 學文 영역으로 成立하게 되었다. 특히 朝鮮 전기의 科學的 업적이나 實學的인 學文들은 朝鮮後期의 實學자들에게 참고 된 바가 적지 않았다. 實學 發生의 歷史的 조건이 되고 있는 이상의 다섯 가지 측면들은 모두 朝鮮後期 社會가 가지고 있던 內在的 요인으로 파악할 수 있다.한편 實學思想의 發生에는 이러한 內在的 요인과 함께 外來的 요인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實學思想의 형성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던 外來的 요인으로는 첫째 西洋 문물과 思想의 유입, 둘째 考證學의 전래 등에 의한 시대, 歷史的 요청에 의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손인수, 「韓國敎育思想社Ⅳ」, 서울: 문음사, 1989, p2∼3그러므로 朝鮮後期의 實學은 한 社會가 가지고 있는 기존 秩序가 동요되는 상황 속에서 現實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의 사조라고 볼 수 있다.2.實學의 특성實學 思想의 선구자들은 16세기말과 17세기초의 이수광·柳馨院 등이다. 그들이 주장한 이 學風은 점차 체계화되어 18∼19세기 초엽 朴지원과 鄭약용에 이르러 더욱 發展되었다.實學의 特性은 무엇보다도 그 實이라는 용어로부터 암시 받을 수 있듯이 사실에 입각한 실제성을 추구한 學文이다. 그러기에 實學이란 일반적으로 實利와 實用을 위한 學文이란 뜻으로 실제적인 사실에서 그 옳은 것을 探究해야 한다는 實事求是를 표방한 學文이다.) 손인수, 「韓國敎育社」, 서울: 문음사, 1989, p410英·正시대 이래의 이러한 신학풍은 그 당시의 非現實的인 학문을 바로잡아 現實성을 다시 찾고, 우리 나라의 實地·實情에 입각한 實際的인 思考를 세워 놓은 학문이었기에 이탈과 우리 나라의 지리, 歷史, 어문, 의학에 이르기까지 實學의 폭을 다양하게 넓혔다. 이들은 한결같이 새로운 學風의 진작과 국정 쇄신의 기틀을 마련하려고 하였다.Ⅲ實學派의 敎育思想1.經世致用學派의 敎育思想經世致用이란 말은 政治, 經濟, 社會, 文化 등 국가사회의 現實的 문제를 다루는 制度와 方法에 대한 具體的 지식이나 實踐的 구현을 포함하는 용어이다.이 용어는 본래 '經世'와 '致用'의 두 개념으로 나누어지는데 '經世論'은 政治, 經濟, 社會 등 모든 現實的 문제를 잘 다루어 국가사회를 훌륭히 경륜해보자는 것이고 '致用論'은 이러한 경세론이 관념적으로 흘러 공론화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유용하게 現實化 되도록 추구하는 것이다.먼저 磻溪 柳馨遠의 경우 그의 思想的 기저도 그 시대 學者들이 대개 그렇듯이 유학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감이 있다. 磻溪의 思想體系는 儒敎的 세계 즉, 주자 思想의 거부나 극복이기보다는 理를 충실하고 强化하는데 있었다. 따라서 그의 학문이나 思想이 유학이 테두리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교학관의 토대도 그러한 배경에서 형성되고 있다.) 이원호,「潘溪 유형원의 敎育論 硏究」,『부산대학교 사범대학 논문집』, 부산대학교 ,제18집, 1984, p.6磻溪 柳馨遠은 學校의 成立과 儒敎文化권의 敎育의 窮極的 目的이 예로부터 모든 人間에게 골고루 人倫을 밝히고 上下基本秩序를 존중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學校는 모든 理를 밝히는 곳으로 못박고 있으며, 나아가 聖賢이 가르치는 學의 모두가 經典에 갖추어져 지극한 말이 아님이 없으니 배움에 임해서 聖賢의 經典을 절대시하고 있으며) 유형원, 『潘溪隨錄 卷9』, 「敎選之制 上」, 명문당, 1982修學에 있어서의 "聖賢이 學文을 논할 때는 반드시 經을 존중하였으니 經이란 것은 聖人이 하는 學文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루게 하는 것이다. 孝悌는 곧 온갖 行實의 根本이니 사람이 학문을 하는 것은 이를 철저히 행하기를 요구함이다" 라고 하여 聖賢들의 가르침을 배워 참다운 德行人이 될 것을 强調하고서는 卓見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기언,『성호 李瀷에 있어서의 人間平等論과 敎育方法論』,「敎育學硏究 14권 2호」, 한국교육학회, 1976, p.31성호는 또한 '知行合一說'을 强調하여 실천을 중시하였다. 致知는 '知'자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실천으로 옮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人間平等론에 입각하여 敎育의 機會均等과 能力에 의한 敎育을 主張하였으며 實際的인 자기 生活과 자기 향상, 主體性 있는 歷史 인식을 가진 主體的인 韓國人 육성 등 實用的·近代的·民族的 의식을 함양하는데 敎育의 目的을 두고 있다.茶山의 敎育內容 역시 유가의 경전은 물론 實生活에 관한 학문, 즉 道德的인 經學書를 비롯해서 農業, 군사, 방직, 의학, 기술, 지리, 建築 등은 물론 西學書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茶山은 敎育內容에 있어서 經學에 한정된 敎育이 아니라 實用的인 다방면에 걸친 폭넓은 敎育의 실시를 主張하였다.) 이문원, 『實學思想의 現代敎育的 의미』,「鄭茶山의 인간관을 중심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p.84∼95經世致用학파중 가장 실천성을 강조한 학자라 할 수 있는데 그는 敎育의 주된 초점을 修身과 牧民에 두고 이러한 修己治人의 실천성을 양성하는데 敎育目的을 두고 있다.이상에서 볼 때 經世致用학파 實學자들은 六德·六行·六藝, 孝, 悌. 慈, 十經 등 傳統的 敎育 內容을 기본 틀로 하면서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形式的이고 訶章 위주의 敎育에서 벗어나 現實的·實用的 敎育을 중시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民族主體性을 기를 수 있는 國史 敎育을 특히 强調하고 있다.經世致用학파의 實學자들은 한결같이 科擧制의 弊端을 지적하고 그들의 主氣論的 思考에 의해 개체성을 중시하고 平等敎育思想에 입각하여 敎育의 機會均等과 能力에 의한 敎育을 主張했다. 이러한 그들의 人間觀과 平等敎育思想은 敎育의 機會均等과 能力본위교육을 바탕으로 학제 改革을 제시하고 있다.특히 당시 敎育制度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 科擧制가 여러 가지 弊端을 보이자 이에 대한 개선책으로 貢擧制, 科慮汶軒書」, 乙西出版事, 1971그러나 독서의 方法도 결국 實用性을 그 目的으로 하고 있다.燕巖은 敎育 方法적 측면에서 主氣論的 思考에 입각하여 개체성을 중시하였으며 그 개체성 중시사상은 기체의 단위를 확대하여 개인에게서 국가나 民族에 두고 있다.楚亭 박제가는 "우리 나라는 도구가 發展하지 못하여 남들이 하루에 하는 일을 우리는 한두 달에 걸려서 하니 시시를 잃은 것이다.) 박제가,『北學議』,「財賦論」,乙西出版事, 1971하고 하며 기술을 중시하는 利用厚生사상에 입각하여 각종 기술 敎育의 必要性을 强調하고 있다. 또한 당시 執權層과 외교의 최전선에서 활동해야 할 사신들의 外國語 지식이 없음을 지적하여 外國語 敎育 특히 한어 敎育의 必要性과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 외에도 軍事敎育의 必要性, 保健衛生敎育 등 實用的인 敎育과 함께 올바른 취미 生活과 情緖敎育을 强調하고 있다. 楚亭의 敎育方法은 뚜렷이 제시된 바는 없지만, 敎育의 출발을 “학는 길에는 방법이 따로 없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가는 사람이라고 잡고 묻는 것이 옳다.”고 한 데서 그의 敎育方法을 유추해 낼 수 있다. 즉 探究정신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利用厚生학파의 敎育制度 改革論을 살펴보면 담헌 홍대용은 인재등용에 있어 世習制가 아니라 才能과 학식을 기준으로 하는 能力 본위 人才등용을 主張하고 그의 平等思想을 敎育制度 구상에서 드러내고 있다. 담헌의 敎育制度 구상에서 특이한 점은 平等思想에 입각하여 國民은 누구나 敎育을 받을 수 있고 8세이상의 자녀들은 臣分에 관계없이 初等敎育을 의무로 하는 義務敎育制度를 제안한 점과, 각급 學校 지학에 있어서 段階別로 能力에 따라 進學하게 하고 최종적으로 평가하여 관직을 줌으로써 과거에 官僚들을 선발하기 위한 科擧制度는 大學 敎育을 통한 추천 制度로 대체되어 敎育制度와 官吏 등용 制度를 관련시킨 貢擧制 구상으로 당시 科擧制의 弊端을 줄이고 敎育을 정상화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담헌은 磻溪에 상당한 영향을 받아 制度적인 측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