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7
검색어 입력폼
  • [어학] 작문(취미, 학교생활, 어린시절)
    간단한 취미생활, 학교생활, 어린시절이 짧게 영어로 작문한 것이다.
    인문/어학| 2002.09.24| 3페이지| 1,000원| 조회(1,310)
    미리보기
  • [작문] 영작(제주도 ) 평가B괜찮아요
    My hometown is Je-ju. When I meet sombody, they asked me "How are you from?"" I from Je-ju." I said, They told all same saying me. "How nice~!!"Also I proud of my hometown. Let's start introduce of my hometown.The amount of annual rainfall in Jeju is the highest in korea.Jeju Island is also well known for a lava cave zone throughout the world.There are more than 100 lava caves in Jeju,But only 60 caves have been discovered in public, Not only polar ani- mals but also tropcal animals inhabit here. Out of land animals, 3,315 species of insects, a species of amphimians,11 sorts of reptiles 281 kinds of birds,and 16 mammal species live in on Jeju Island.There are also 2001 species of various plants,I,e, 9 endangered plant species, 12 species on the decrease.10 endemic species, 32 species of rare plants.
    인문/어학| 2002.09.24| 2페이지| 1,000원| 조회(779)
    미리보기
  • 실업문제 평가A좋아요
    Ⅰ. 서 론우리나라는 그동안 지속적인 고도경제성장으로 많은 고용을 창출하였으며 실업률은 '63년에는 8.2%에서 '95년에는 1.8%의 수준으로 완전고용시대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97년 하반기 거품경제가 끝나면서 시작된 불경기로 말미암아 실업률이 '97년 12월에 3.1%, '98년 2월에 5.9%로 나타나면서 본격적인 대량실업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IMF이후 본격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한 재벌의 도산과 이로 인한 이자율상승과 금융위기, 이에 연이은 외환위기와 고금리의 결과 많은 중소기업이 도산하게 되었으며 '98년 연간 실업률이 6.8%, 연간 실업자수가 1,463천명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99년 2월 실업률은 8.7%, 실업자는 1,785천명으로 66년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통계청, 1998). 경제성장률 역시 '95년 8.9%, '96년 7.1%, '97년 5.5%였던 것이 '98년에는 -5.8%로 하락하였으며, 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에서 6,823달러로 7년전수준으로 하락하였다. 이처럼 IMF 관리체제는 한순간에 근 30여년간 지속되어온 '고성장?저실업구조'를 붕괴시켰다. IMF체제하에서 단기적으로 예상되는 '마이너스성장, 대량실업' 혹은 중장기적으로 예상되는 '저성장?고실업구조'의 만성화로 말미암아 국가 사회보장제도의 확대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그러나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갑작스레 준비 안된 대량실업사태'를 맞은 정부는 지난 한해동안 주로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의 시행으로 대처하였다. 그 결과 실업문제를 전반적인 사회보장제도의 틀에서 접근하지 못하여 한시적이고 미봉적인 수준에 그쳤다는 일부 비난을 받고 있다. 경기침체와 광범위한 실업에 직면하여 공공부조적 성격의 제도확충으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려는 흐름에 대해 노동부는 공공근로사업이나 취업알선 등 일시적인 고용정책에 예산을 집중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으나 고용정책이 한계계층에 대해 적절한 지원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이상의 설득력 실업자라 한다. 실업자를 포함한 15세 이상의 생산가능한 인구는 경제활동인구(취업자, 실업자) 와 비경제활동인구(가사, 통학, 연로, 심신장애 등) 으로 구분한다.일반적으로 한 경제의 인구는 크게 생산활동이 가능한 인구와 그렇지 않은 인구러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15세 이상으로 정의되는 생산가능인구는 대시 취업할 의사가 있는 경제활동인구와 취업의사가 아예 없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취업할 의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갖지 못한 상태에 놓인 사람을 가리켜 실업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크게 보면 실업은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실업과 그 외의 다른 요인에 의해 생기는 실업으로 나눌 수 있다.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실업은 경제전체의 총수요가 부족해져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어 발생하는 실업이며 가장 전형적인 것이 경기실업이다. 그 외의 다른 요인에 의해 생기는 실업에는 마찰실업, 구조 실업, 기술 실업 등이 있다.먼저 경기 실업을 보자. 자본주의 경제는 성립 이래로 주기적인 경기변동 - 호황, 공황, 불황, 회복의 네 국면-을 겪어 왔다. 그리고 경기변동의 각 국면에서 생산량이 달라지고 이에 따라 노동에 대한 수요도 달라지게 된다.특히 호황기에는 기업의 수익이 증대하고 생산물에 대한 수요도 많기 때문에 개별기업들이 설비투자를 늘리고 생산을 늘리게 된다. 따라서 노동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 취업자도 많아진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의 특징인 생산의 무정부성 때문에 경쟁력인 기업의 설비투자와 생산량은 총수요 이상으로 확대되어 판매가 제대로 이르어지지 않게 된다. 이 시점에는 호황은 끝나고 공황이 발생하며 경기는 후퇴하기 시작한다. 호황기에 고용을 늘리던 기업들은 처음에는 재고를 늘리고 생산을 줄임으로써 대응한다. 하지만 불경기가 더욱 진행되면 신규채용을 줄이고 이미 고용하고 있던 인력을 해고함으로써 대처하기 때문에 고용은 줄어든다. 이런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업이 경기실업이다. 따라서 최근에 대량실업은 주로 경제 위기 속에서 실업이다.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지역마다 또는 산업마다 발전수준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어떤 지역에서는 노동공급이 부족한가 하면, 다른 지역에서는 노동공금이 과잉인 경우가 나타나게 된다. 또 같은 지역에서도 성장산업에서는 노동의 공급이 부족한가 하면 반면, 사양산업에서는 노동의 공급과잉현상이 생긴다. 경기 전체적으로는 빈자리와 실업이 공존하더라도 지역간, 산업간에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 불균등 현상이 있을 때에는 그에 관한 정보가 완전하더라도 실업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이 지역간 이동을 하려면 이사등으로 인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며 기술과 기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산업간 이동에도 오랜 훈련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유나 신발 산업과 같은 사양산업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실업상태에 놓여 있다고 해도 일손을 필요로 하는 반도체산업에 바로 취업할 수 없는 경우를 예로 들수 있다. 구조실업의 경우에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거나, 실직자들이나 사양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일손이 필요한 산업에서 요구하는 기술을 재훈련 받도록 지원하는 정책 등이 실업대책이 된다.넷째 기술 실업이란 종래의 제품 또는 신제품의 생산에 노동절약적인 기계나 설비 등의 생산방식이 도입되어 감원이 이루어짐으로써 발생하는 실업이다.그러나 시술 실업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기술 실업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보는 입장으로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이 한편으로는 실업을 야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제조원가 및 제품의 가격을 하락시켜 수요를 자극함으로써 생산량을 확대시키고 나아가 고용량을 중가시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신기술의 도입이 그 업종의 생산을 증대시킬 뿐아니라 다른 관련 업종의 출현 또는 생산증가를 자극함으로써 실업을 야기하는 것 이상으로 고용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새로운 생산방법의 도입으로 말미암아 전부화된 기술이나 숙련을 가진 근로자가 실직한 경우, 직 실업문제를 실제보다 낮게 평가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이 높았더라면 노동시장에 참가하여 구직활동을 했을 사람이 그와 같은 전망이 없거나 낮다고 판단하여 비경제활동인구가 되어 있는 경우를 추계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잠재실업이라고 한다.잠재실업은 노동력이 어느 정도 과소이용되고 있는가, 실업대책의 대상이 어느정도인가를 알아보는 적절한 지표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도 규모를 추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또한 실업급여 지급이 이루어질 때 이들이 다시 노동시장에 등장할 가능성이 크며 사실상의 실업자이기 때문에 이들까지를 포함한 실업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2) 연간 실업률의 현황---------실제 실업자와 실업률은 정부 발표를 크게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주요한 요인으로 정부 통계는 실망실업자를 비경제활동인구로 집계하여 실업자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다. 2월 고용동향이 특히 주목되는 부분도 비경제활동인구의 증가이다. 97년부터 2000년까지의 비경제활동 인구평균비율은 38.975% 인데 반해 2001년 1,2월은 41.5%로 2.5% 증가하였다. 경기침체로 상당수가 비경제활동인구로 집계되는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며, 이들은 여전히 취업의사는 있으나 일자리가 없어서 취업을 포기하거나(실망실업자)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구직자로 실제 실업자로 보아야 한다. (15세이상 인구의 2.5% 36,358천명 * 0.025 = 909천명) 여기에 기존 비경제활동인구 중 적극적 취업희망자를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비경제활동인구의 5.1% 14183천명 * 0.051 = 723천명) 또한 실제 실업자로 추정해야 하는 1-17시간 취업자(784천명)를 포함하면 실업자수는 348만 5천명, 실업률 15.2%에 이른다.1 15세이상 인구의 2.5% 36,358천명 * 0.025 = 909천명2 비경제활동인구의 5.1% 14183천명 * 0.051 = 723천명3 1-18미만 단시간 노동자 784천명1+2+3+ 통계지하겠다는 내용의 종합실업대책을 발표했다.정부 관계자는 “1분기에 모두 18만1000명을 대상으로 공공근로사업을 실시키로 했으나 현재 16만여명만 참여하는 등 일부 분야에서 미흡한 점이 드러나고 있다”면서 “필요할 경우 기존 대책을 보완, 실업자 확산 방지에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노동부 관계자는 "관계부처가 모두 실업대책 추진상황을 챙기는 등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정부는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장담하듯이 내달 실업률은 성과적으로 낮추어질런지도 모른다. 실업예산을 조기집행하고, 하반기에는 추경을 둘러싸고 여야간의 공방을 거쳐 쥐꼬리만한 예산이 추경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는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실업대책, 실업률에 따라가는 실업대책만을 초지일관 되풀이해 왔기 때문이다. 언론 또한 호들갑을 떨며 실업자 개개인의 삶의 처참함을 일회적으로 보여줄 뿐이다.그러나 이미 실업의 문제는 실업률의 문제를 넘어섰다. 국민의 대다수가 실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 '고용구조'가 변화하고 고용의 질의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이미 실업률은 저들만의 야단스러운 경제기준이 되었을뿐, 348만명에서 600만명에 이르는 실업노동자의 생존권은, '안정적이고 떳떳한 일자리'의 꿈은 실업대책 그 어디에도 없다. 실업자의 고통이 통계에 있지 않듯이 실업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실업률'의 낮음에 있지 않다.구조조정이 중단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일자리창출대책이 세워지지 않는 한,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일상적인 실업을 경험해야 하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실업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고 늘 우리곁에 바싹 다가와 있을 것이다.{★ {연간 실업자수 및 실업률:1963-1998: 그래프{연도 실업률 실업자수 경제활동인구1966 7.055933906 632 89571967 6.05664488 556 91801968 5.030919191 480 95411969 4.739919975 462 9747197 실업
    사회과학| 2001.12.03| 12페이지| 1,000원| 조회(781)
    미리보기
  • 독후감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평가A좋아요
    수레바퀴 아래서....구석진 작은 마을의 좀처럼 보기 드문 천재소년 한스 기벤라트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그의 아버지 요세프 기벤라트는 장사꾼으로 다른 사람과 별다른 바없이 장사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이런 사람들의 최고의 야심은 아들을 관리로 만드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이건 그들의 야무진 꿈일 뿐이다. 왜냐하면 하급 라틴어 학교에서도 몇 번이고 낙제를 한 뒤 진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스를 의심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매년 마을에서는 신학교의 입학을 위해 4,50명 정도의 학생들이 마을을 떠나 시험이 열리는 곳으로 간다. 이 시험준비로 인해 한스는 몹시 지쳐 있고 주의 사람들 때문에 부담은 더 무겁기만 해졌고 주위의 친구들은 한스의 시험결과로 내기를 하기까지 한다.시험은 라틴어를 시작으로 몇칠동안 보게되었다. 라틴어는 한스에게 너무 쉬웠기 때문에 시험이 끝난 후 동료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 괴팅겐의 소년이 나에게 '쉬운 게 함정이라고' 이 말을 들은 순간 한스는 시험으로 인해 복잡해진 머리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 후 시험이 끝나 집으로 왔다. 시험이 어떻냐고 물어보는 사람에게는 시험에 실패했다고 말끝을 흐렸다. 누구보다 한스에게 희망을 건 아버지는 한스의 이런 말에 화가 나고, 드디어 한스는 아버지에게 중학교를 가면 안되냐고 물어보기까지 하고, 화가난 아버지는 가라고 한다.오늘은 시험결과가 통보되는 날 하루는 너무 무섭고 길게만 느껴진다. 소식이 왔다. 선생님들의 얼굴에서는 환한 미소가 한스의 시험결과를 말해주고 있었다. 한스는 예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한스 그는 주시험에 2등으로 합격 한스는 무의식적으로 더 잘했으면 1등으로 합격했을텐데라고 하기 까지 한다. 이렇게 신학교에 입학을 하게된다.신학교 생활은 그리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스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하일러라는 친구를 만나 그의 성격을 동경하며 단짝친구가 되고, 우정으로 둘의 사이를 확인한다. 하지만 하일너와의 교제로 낭비한 시간은 한스의 성적을 떨어뜨려 억압하는 사회와 학교의 교육제도와 어른들의 명예욕, 인간성을 중요시하지 않는 지식위주의 학교교육을 총괄하는 철학적인 뜻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난 이것을 깨달으며 내가 부끄러워졌다. 나도 어느새 우정보다는 공부의 명예를, 인간의 자유보다는 억압당하는 인간성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항상 목 말라하는 우리들의 가치관을 찾기 위해 우리는 많은 노력을 한 듯 하지만 내 가치관은 나도 모르게 어른들이 은연중에 강요하는 교육제도에 의한 가치관으로 성립되고 있던 것이다. 자유 를 이유로 나를 찾기 위해 우리는 학창시절 반항을 해 보았지만, 그것은 내 자신을 찾는 것이 아닌 억압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도피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 수업을 들으며 가치관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내가 진정 나를 찾았는가! 를 묻는다면 확실히 대답할 자신은 없다. 왜냐하면 내가 배운 것은 나를 찾기 위해서는 나만이 존재하는 이기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즉, 나의 틀 안에서 벗어나 타인과의 조화가 이루어 질 때 진정 나를 볼 수가 있다고 배웠고, 또한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타인과의 관계를 볼 때 아직까지는 우선 내가 먼저인 생각이 크기에 확실히 대답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수레바퀴 밑에 깔리지 않기 위해서는 지식적인 향상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내 안의 틀에 갇혀 옹졸한 생각을 하는 것보다 나를 찾고, 진정한 자유를 찾기 위해 어른들의 강요와 억압에서의 타당성과의 조화와 함께 나 스스로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배워나갈 것이다.작가 연보* 1877년 - 독일 남부의 뷔르템베르크 주의 작은 도시 칼브에서개신교 선교사인요하네스 헤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요사헤스 헤세는 선교사 임무를 마치고출판 사업을 했으며, 저명한 인도어 문화학자인헤르만 군데르크의 딸인마리아 군데르테아 결혼하고 헤르만을 첫아들로 두었다.* 1881년 - 집안이 스위스 바젤로 이주. 그곳에서 부친은 바젤 선교학원에서교사로 근무하였다.* 1883년 - 부친이 스위스 시민권을 취득하였다.* 1886년-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여행. 플로렌스, 제노아, 피사, 베니스 등지를 돌아봄.[하르만 라우져(Hermann Lauscher)]출간. 지방지신문에 기사와 평론을 기고하는 기작했다. 이 일로 그는 사회적 지위를 격상시켜주는 평판을 얻게 되었다.* 1902년 - 시집 [시모음(Gedichte)]출간. 이 시집은 출간직전에 죽은 그의 어머니에게헌정되었다.* 1903년 - 서적 관계 일로 다시 이탈리아를 여행. 서점 점원생활을 청산하고 진집 필에만 몰두하였다. 그 후 베를린 피셔 출판사로부터 작품 집필을 의뢰 받고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탈고했다.* 1904년 - 소설[페터 카멘친트]를 피셔 서점에서 출판. 일약 신진 작가의 지위를확보하였다. 8월에 아홉 살이나 연상인 마리아 베르 누이와 결혼9월에콘스탄체 호반의 가이엔호펜 마을에 있는 빈농가로 이사하고 작가생활을시작하였다. 소설[보카치오(Boccaccio)] . [아씨시의 성자(Franz von Assisi)]출간되었다.* 1905년 - 소설 [수레바퀴 밑에서(Unterm Rad)]를 피셔출판사에서 출간. 빌헬름 2세의권위에 노골적으로 도전하는 진보적인 주간지 창간에 참여하여공동 편집자로 활동(1912년까지)* 1907년 - 중편소설[아 세상에서]출간하였다. 가이엔호펜에 자신의 집을 새로 짓고이주하였다.* 1908년 - 단편집[이웃 사람들] 출간하였다.* 1909년 - 차남 하이너 출생하였다.* 1910년 - 소설[게르투르트]출간되었다.* 1911년 - 시집 [길에서]출간. 3남 마르틴 출생하였고, 친구인 화가 한스 쉬틀제네거와 함께 인도 여행. 가정 생활의 파탄을 타개하기 위해 연말에 귀국하였다.* 1912년 - 단편소설집[우회로]를 출간. 가족들과 함께 스위스의 베른 교외로 이사.베른에서 그의 친구인 화가 알베르트 벨티가 살던 집에 거주하였다.* 1914년 - 결혼 문제를 주제로한 소설 [로스할데]를 출간. 7월에 제1차 대전이 일어나 베른의 을 위하여 일하였다. 전쟁 중에 전쟁을비판하는 글을 신문에 발표하여 독 - 여류작가 리자 벵커의 딸인 루트 벵거와 결혼하였다.* 1925년 - 소설 [별장 손님], [빅트르의 변신]을 출간. 가을 남독일로 강연 여행.뮌헨에서 토마스만을 방문하였다.* 1926년 - 독일 '프러시아 저술학회' 회원으로 피선, 감상과 기행문집[그림책]을출간하였다.* 1927년 - 소설 [황야의 이리], 산문집[뉘른베르그의 기행]출간. '후고 발 출판사' 의 의해 헤세의 50회 생일 기념으로 그의 자서전이 출간됨. 결혼생활의 실패로 두 번째 부인 루트 벵거의 요청으로 합의 이혼하였다.* 1928년 - 산문집 [회상록], [일기초록], 시집 [위기]를 한정본으로 출간하였다.* 1930년 - 소설 [나르치스와 골트문트(지와 사랑)]출간하였다.* 1931년 - 프랑스 귀화인이며 역사학자인 니논 돌빈과 결혼하여, 처음으로 행복한 가정을 가짐. 산문집 [내면의 길]출간 하였다.* 1932년 - 산문집 [동방순례]간행. 소설[유리알 유희]집필하였다.* 1933년 - 소설9작은 세계]를 출간하였다.* 1934년 - 시선집 [생명의 나무에서] 출간. 스위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고트프리트 켈러 문학상'을 수상, 동생 한스 자살. 독일의 가장 권위 있는문학 계간지 에 소설 [유리알 유희]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1935년 - [우회집] 간행하였다.* 1936년 - 시집 [정원에서의 몇 시간] 출간. 1914년부터 쓰기 시작한 미완성 작품[꿈의 집]간행, [한스의 추억]을 썼다.* 1937년 - 산문집 [단상록], 시집[신시집]간행하였다.* 1939년 -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나치스의 탄압으로 헤세의 작품들은 몰수되고출판 금지가 되었다.* 1942년 - 헤세의 시를 수록한[시선집]이 스위스에서 출간되었다.* 1943년 - 소설 [유리알 유희]가 출간되었다.* 1946년 - 프랑크푸르트의 괴테상롸 노벨 문학상을 받음. 정치적 평론집[전쟁과 평화] . [괴테의 감사], 시집[만년의 시]가 간행되었다.* 1947년 - 베른 대학으로부터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이 생명력을 억압하고 위축시킴으로써 그릇된 길로 빠지게 하고 자아의 붕괴를 가져오는 그런 명령과 규범, 의무와 학습 내용에 질식해 버리고 만다. 헤세의 후기 작품을 보면 물론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 내내 따라다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헤세는 그의 후기 작품에서 영혼의 평형을 위협하는 힘들을 지적해 보이고, 거의 병적이고 사람이 해체될 위기에 놓인 상황까지도 문제삼으며, 인간의 자기 소외로 번질 우려마저 있는 의식의 온갖 긴장들을 경고한다. 언뜻 읽기에는 별이야기가 없는 것 같고 완전히 자서전에 가까운 기록인 『요양객, 1925』에서는 유머로 가득 차고 자신에 대한 아이러니가 섞인 문체로 초로에 접어든 한 남자의 고충이 서술되고 있다. 때때로 우울증 비슷하 증세로 고통을 받는 이 남자는 주변 환경을 짐스러워하고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에 부대끼다가 요양 도중에 점차 깊숙이 무기력 상태에 빠져든다. 이 환자의 이야기는 금방 상징적 의미를 얻으면서 삶의 모순을 의식시켜 준다. 온천 요양은 원래 신경통을 치료하기 위한 요법이지만, 인간의 나약함, 누구도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제 문제는 평온의 파괴가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삶의 피제약성' 가운데서 바로 설 수 있는가 하는 문제, 그리고 인간이 아직도 어떤 치료제를 써서 모든 근심에서 벗어나가기를 기대할 수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고통에 길들여져서 스스로가 죽어야 할 존재이고 죽음에 속하는 존재임을 자각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문제이다. "우리 모두가 이상적 치유제를 써서 완전무결하게 치유되고 영원히 살기를 기대한다는 것이 과연 정당하고 기대할 만한 것인가? 우리가 이 까다로운 문제에 양심적으로 대답한다면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우리는 완전히 치유되기를 바라지 않으며, 또 영원히 살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온천 요법의 효능에 대한 소박한 믿음은 마침내 "원시적 미신" 일지도 모른다고 의심을 받는다. 병세가 호전될 수는 있을지언정 치유될 수는 없는 것이다다.
    독후감/창작| 2001.11.28| 7페이지| 1,000원| 조회(618)
    미리보기
  • 아베의 가족...독후감
    < 아베의 가족 >전상국의 소설에서 가장 빈번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이야기는 대부분 6·25전쟁과 연관되어 있다. 분단 현실이 안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성에 접근하고 있는 작품으로는 〈아베의 가족〉(1979)이 주목된다. 소설 〈아베의 가족〉은 전쟁의 현장과 전후의 현실을 함께 살아온 한 여인의 삶의 과정을 통해 아물지 않는 전쟁의 상처를 제시하고 있다. 작중의 등장인물 아베는 전쟁의 비극과 아직도 남아있는 아픔의 상징이다. 그리고 아베의 가족은 그 아픔을 견뎌야 하는 피해자들이다. 이 같은 논리에 따른다면, 한국인 모두가 아베의 가족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아베의 가족』은 중편소설로 1979년 월간 문예지 에 발표된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1979년 과 1980년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이 작품은 3부로 나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Ⅰ·Ⅲ부는 4년 전 미국으로 이민간 아베>의 가족 중의 한 사람인 김진호가 미국군인(G. I.)이 되어 고국 땅을 밟은 뒤 이복형 아베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Ⅱ부는 김진호 어머니의 수기 형식으로 전개된다.온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가 4년 만에 한국파견지원병이 되어 돌아온 진호(나)는 들뜬 마음으로 첫 외출을 한다.이민을 간 후 가족들은 황량한 벌판에 뿌리 없이 버려져 시든 나무처럼 변해버렸다. 어머니의 경우는 더욱 심했다. 심한 우울증환자가 되어 멍청한 얼굴의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머니의 그러한 변화는 이민을 가면서 한국에 버리고 간 아베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가족들은 그 누구도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를 꺼려했다. 나는 어느 날 어머니의 트렁크에서 그녀가 쓴 수기를 발견해 내고 여동생 정희와 함께 그것을 읽었다.나(주경희)는 춘천에서 강하나를 건너 심사십리를 들어간 샘골 마을의 최부면장네로 시집을 갔다. 서울에 유학하는 남편과의 사이에 아이도 잉태하고 시부모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1950년 6월 6·25전쟁이 터져 그 남편은 인민군(북쪽군인)으로 강제 입대해 끌려가게 되고 시아버지마저 인민군에게 죽게 된다.인민군들이 퇴각하고 진주한 흑인 병사들에게 시어머니와 아이를 잉태한 나는 함께 난행을 당한다. 노린내가 나는 짐승들에게 욕을 당한 나는 결국 8개월만에 아이를 낳았지만 그 아이는 정상이 아니었다. 4살이 넘어서 겨우 걷기 시작했지만 입을 열어 낼 수 있는 소리는 오직 '아 아 아베'뿐이었다.전쟁은 끝났지만 남편은 소식이 없고 병신 자식을 바라보며 나는 그 시커먼 짐승들(흑인병사)을 칼로 퍽퍽 찔러 쏟아지는 피를 받아 이웃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분노의 충동에 휩싸이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내가 대문 밖에서 놀고 있는 아베를 안고 집으로 들어온 것이 계기가 되어 그 사내는 몇 달 동안 집에 머물게 된다. 그 사내는 다른 사람들이 병신이라고 꺼리는 아베를 무척 사랑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그 사내와 나와의 관계를 의심하며 함께 집에서 내쫓는다. 집을 쫓겨난 나는 서울에서 그 사내(진호 아버지 김상만)와 결혼을 했다.아버지는 아베를 자기 친자식처럼 사랑했다. 아베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전쟁 중에 무고한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한 일종의 속죄심리였고 구원의식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는 우리 4남매가 태어났으나 집안은 아베로 인해 항상 음습하였고 나는 그러한 환경을 핑계로 친구들과 함께 처녀를 윤간하는 등 점점 비뚤어져갔다.그러던 중 6·25전쟁 때 아버지와 헤어졌다는 고모와 만나게 된다. 양공주 생활을 하던 고모는 미군병사와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간 뒤 우리 식구를 미국으로 데려가기 위한 초청장을 보내온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아베로부터 멀어지고 어머니는 아베를 미국에 데리고 갈 수 없는 현실 앞에 절망한다.어머니의 수기에는 아베의 행방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나는 한국의 옛친구와 어울려 밤늦도록 술을 마시며 뿌리가 없이 사는 미국 생활과 아베의 탄생에 대한 비밀을 새삼 더듬는다. 그리고 아베를 찾아야 하겠다는 절박한 생각을 한다. 이민을 떠나기 전 날, 어머니는 아베를 데리고 나갔다가 비행기 시간이 임박해서야 혼자 돌아왔다. 아베는 어떻게 되었을까.다음 번 외출하는 날 나는 미국인 친구 토미와 함께 어머니가 시집가 살던 샘골을 찾았다. 그러나 그 마을은 이미 댐 공사로 수몰지구가 돼 있었다. 다행이 언덕에 몇 채 남은 집 가운데 구멍가게에 앉아 그 가게 노파에게서 최부면장네 사정 이야기를 듣는다. 최씨네 그 할머니는 이미 4년 전 돌아가셨다는 것과 며느리를 내쫓은 것은 그 젊은이들의 앞날을 생각해 일부러 그러했다는 것, 그리고 손자까지 내보낸 것을 무척 후회하다가 죽었다는 얘기를 듣는다.또한 최씨네 할머니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날 그 며느리가 병신자식을 데리고 나타나 시어머니의 무덤에서 애통해 하고 갔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나는 아베의 행방을 찾는 일은 그 할머니의 무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을 읽고...한국전쟁의 가장 큰 희생량은 아마도 아베 일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한 가정이 폐쇄되었고 그로 인해 고아가 생겨났으며 분단의 아픔을 겪게 되었다.지금 우리는 풍족한 생활에 전쟁의 아픔 따위는 알지 못 한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현실에서 북한의 궁핍한 삶을 동정하고 그들에게 물질적으로 힘이 되주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 만으로 전쟁의 피해자인 그들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을까.현재의 남북문제에 관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인 면에서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고있는 것이 사실이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하지만 이렇게 우호적인 태도로 그들과 다시 하나가 되려하는 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전쟁으로 인해 우리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고초를 겪었을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1.11.28| 3페이지| 1,000원| 조회(1,251)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8
8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0
  • A좋아요
    3
  • B괜찮아요
    3
  • C아쉬워요
    2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02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6:48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