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복지론]? 주제 : 지역사회복지 사례를 들고, Rothman의 지역사회 조직 모형 중한 가지 모형에 맞게 분석하시오.Ⅰ. 서론지역사회복지는 지역사회의 복지향상을 위한 포괄적인 제도적 개념으로서 전문 또는 비전문 인력이 지역사회 수준에 개입하여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각종 제도에 영향을 주고 지역사회의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일체의 사회적 노력이다. 지역사회복지는 지역의주민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목표를 가지며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주민의 복지욕구를 충족하는 기능을 가진다. 또한 정부와 민간기관이 공동 주체가 되어 공공과 민간의 협력이 강화하는 추세로 발전하고 있으며 조직적인 활동을 강조하는 전문적인 서비스와 방법을 사용한다.이러한 지역사회복지활동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지역사회복지실천모델로 제시한 대표적인 학자로는 로스만을 들 수 있다. 로스만은 지역사회조직을 한 가지 형태로 보지 않고 적어도 세 가지 다소 독특한 모델, 즉 지역사회개발, 사회계획 및 정책, 사회행동으로 구분하였다. 또한 이들 유형이 분석적으로는 상호구분이 되지만, 실제에서는 혼용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강조한다.따라서 본고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사회행동’모델 사례를 먼저 제시하고, 로스만의 지역사회 복지 모형 중 ‘사회행동’모델의 개념을 정리하고 앞서 제시한 사례를 ‘사회행동’모델에 맞게 분석하도록 하겠다.Ⅱ. 본론1. 지역사회복지 사례울산시가 장애인 학대에 대한 선제적 대응과 개인별 맞춤형 권리구제를 위해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을 운영한다.울산시는 23일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 장애인 학대 대응 전문기관인 ‘울산광역시 장애인권익옹호기관’ 개관식을 갖고 본격 운영에 들어간다고 밝혔다이날 개관식에는 김기현 울산시장, 윤시철 시의회 의장, 울산시 장애인단체 대표자와 회원 등 100여명이 참석한다.울산광역시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사회복지법인 밝은미래복지재단에서 위탁을 받아 운영되며 관장을 포함해 5명의 전문가로 구성된다.기관의 주요 역할은 ▲장애인 학대 신고접수, 현장조사 및 피해장애인과 가족에 대한 상담 ▲지역 내 관계 기관 간 협력을 통한 원스톱 서비스 ▲장애인 학대 예방 관련 교육 및 홍보 등이다특히, 이 기관은 신고접수 및 피해 장애인 사후 지원에 그치지 않고 학대 예방 및 학대 의심사례 선제 발굴을 위한 체계를 구축한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으며, 장애인 학대 신고전화를 적극적으로 홍보해 지역사회의 학대 의심사례에 대한 신고를 활성화할 계획이다.-메디컬투데이 기사 2018.01.232. 로스만의 모델: 사회행동 모델사회행동모델은 지역사회의 억압받고 소외된 주민이 사회정의와 정치적 공평성의 입장에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더 나은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해 주는 활동이다. 이 모델에서는 지역사회에서 권력과 자원의 재분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의사결정의 접근성을 강화함으로써 지역사회의 변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지역사회의 기존 제도나 상태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한다. 항의나 시위, 현상 등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사회행동모델에서 사회복지사는 조직가로서 역할을 담당하며, 직접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조직화하고 사회적 약자를 지지하며 옹호하는 활동을 수행한다. 한편 사회행동모델은 기본적으로 과업달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적절한 의사결정구조의 활용 또는 관계 형성 등과 같은 과정목표는 무시되기도 한다.그러나 사회행동모델은 일부 조직가와 지역사회구성원이 대항전략에 주저할 수 있다는 것, 윤리적 이슈와 관련된 것으로 대항 형태의 불법성이 있을 수 있고 긴급 상황에서 사용될 수 있어 조직구성원이 위험에 놓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한계점을 가진다. 또 다른 한계점으로는 일부실천가는 지역사회 상황에서 실천 활동을 대항활동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향은 지역사회 관련 집단을 양극화 하거나 바람직한 결과를 달성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한다.3, 지역복지사례 분석울산시에서 운영하는 지역복지실천활동인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다는 면에서 로스만의 사회행동모델의 목적인 지역사회 권력관계 및 자연동원구조의 변화와 일치한다.또한 사회행동 모델의 지역사회구조와 문제 상황에 관한 전제는 사회정의의 부재, 구조적 억압, 불평등인데 울산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전제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구조적 불평등이라는 면에서 또한 사회행동 모델과 연관성을 갖는다. 변화전략으로는 이슈의 구체화와 표적대상인 장애인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지역 주민을 동원하여 5명의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또한 변화 전술과 기법으로는 장애인 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신고 접수, 현장조사 및 피해가족에 대한 상담, 지역 내 관계 기관 간 협력을 통한 원스톱 서비스 등을 통해 직접 행동하고 협상을 한다. 또한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의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행동주의적 옹호자의 역할이다. 지역사회복지실천이 주는 혜택과 관련하여 장애인권옹호기관은 지역사회의 억압적 구조에 의한 피해자인 장애인을 수혜대상으로 본다.
부제 숲속에서 삼년간 갇혀 지낸 자의 이야기내가 P를 만난 것은 독일이 한국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하여 전세를 역전하고 평양에서 국토 통일 눈앞에 두고 있을 때 중공군에 의해 흥남으로 후퇴를 하고 서울을 함락 당하고 다시 뺏기를 반복하다가 지금의 3?8선 부근에서 일진일퇴를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아직 한반도에 분쟁은 끝나지 않았으나 이미 서울을 기점으로 남쪽 아래로는 기정상 전쟁은 이미 지나간 재해가 되어 있었다. 아직 전쟁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들의 절규나 전쟁을 끝내고 재건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 사이의 크고 작은 다툼을 제외 한다면 적어도 각 마을에는 나름대로의 평화가 정착되고 있었다. 당시 나는 흥남부두에서 철수하는 과정에서 운 좋게 서울 본토의 연합군들과 교체가 되면서 비로소 고향인 광주로 향하고 있던 참이었다. 꼬박 9일을 부지런히 걸어서 나는 지금의 정읍시에 있는 영광군의 한 마을에 들르게 되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 올 수록 전쟁의 피해는 적어보였으나 잔해들은 더욱 짙게 나타나고 있었다. 나는 그곳 마을 사람들 중 가장 나이가 많다는 박 영감을 만나 내 사정을 이야기하고 광주로 가기 전 이곳에서 며칠 묵을 것을 부탁했다. 박 영감 이란 사람은 원래 이 마을에서 권력있는 가문의 자제로 어려서부터 촉망을 받으며 커왔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가문이 후에 과거 조정에 반하여 역적으로 처형된 바가 알려짐에 박 영감의 가문은 마을에서 도태되다시피 멸시를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어린 박 영감은 자신의 출신 가문에 대한 자부심을 절대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박 영감을 사람들은 무시하였지만, 그가 나름대로 학문에 소질이 있었고 나아가 서울에서 그 어렵다는 선생질도 한번 해왔던 터라 마을에 어떠한 일이 있으면 곧잘 박 영감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박영감은 작지만 예리한 두 눈으로 나를 쏘아보며 다소 못마땅한 얼굴로 자신의 허락으로 이곳에 머 물수 있게 된 걸 고맙게 여겨야 한다는 식으로 긴 턱수염을 거만하게 만지면서 내가 며칠동안 . 오랜 여정으로 지쳐있던 내가 이곳에 머무는 것 자체도 나에겐 감지덕지 였기 때문에 나는 겉으로 아쉬운 내색 한번 내지 않았다. 박영감이 마을로 떠난 뒤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뒷산으로 숨어가고 있었다. 나는 여정을 풀고 오랜만에 달콤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10리나 떨어지는 마을에 가서 넉살좋게 문안인사를 드리면서 감자 몇 개를 얻어 올 수 있었다. 나는 의외의 수확에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내가 머무는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마을에 왔던 첫날에는 몰랐던 것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집 한 채 뒤로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은 거대한 덤불이 우거져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그곳에서 사람 비슷한 두발로 걷는 긴머리의 짐승 이 나와 내가 머무는 집으로 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집안에 두고 온 내 짐이 생각나 아차 하면서 들고 있던 감자를 땅에 던져 놓고는 잽싸게 집으로 달려 갔다. 집에 들어오니 멀리서 봤던 긴 머리 짐승은 한 사람 이었다. 머리카락과 수염은 몇 달 째 깍지 않은 듯 덥수룩 했고, 시커먼 얼굴에 하얗게 일어난 주름들은 그의 나이가 50세를 겉돌고 있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주위의 나무 막대기를 주워들어 그를 위협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겁나하거나 경계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더니 방의 한 구석에 있는 다 낡은 장롱을 열어서 주섬주섬 무엇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전혀 알 수 없는 문서종이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숲에서 캐어 온 듯한 한 더미의 칡과 감자 몇 개가 널부러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어느새 들고 있던 막대기를 내려 놓고 경계를 풀고 있었다. 막대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자 그는 거칠게 쉬던 숨을 어느 정도 가라 앉히고 나에게 말했다.“당신은 누구슈?”마치 갓 태어난 아이가 말을 하듯 굵고 연륜 있는 목소리에 비해 억양이나 말투가 처음 말해보는 사람처럼 어색했다. 나는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하다가 이내 말했다.“저는 원래 광주 사람인데, 가는길에 에 박영감이라는 분의 소개로 왔습니다.”내 대답에 그는 급격히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그 밥이나 축내는 망할 노인네! 누가 지 유학비를 대 주었는데 말이야. 은혜도 모르는 영 감 같으니라구!”나는 우선 그를 진정 시키는게 우선이라 생각하고 좀 앉기를 권유했다. 그러자 그는 대뜸 나를 밖으로 나오라 하더니 어제는 보이지 않던 덤불 숲으로 나를 이끌고 갔다. 더불숲은 겉으로 보기에는 빽빽해 보였지만 이내 한 덤불층만 지나가면 폭격의 피해를 무색하게 하듯 나무나 풀이 울창했다. 그는 나를 계속 따라오라 손짓했다. 덤불을 통해 들어간 숲은 이내 점점 한길로 좁아지기 시작했고 그 길을 따라 60십보 채 가지 않아 또다시 커다란 숲이 나왔는데 그곳은 마치 멧돼지가 전날 자고 가면 터가 남 듯, 풀과 나무로 이어 만든 사람하나 크기에 터와 모닥불 그리고 놋대야에 받아온 물 한 동이와 아까 장롱에서 보다 훨씬 많은 양의 칡과 감자가 있었다. 그는 불러온 나는 신경 쓰지도 않고 터에 가장자리로 가면서 나에게 대뜸 소리치면서 말했다.“이 보라고! 모두들 여기에 탐이 나있단 말이지! 이보게 군인양반 이러한 땅을 가지고 있는 나를 마을 사람들은 가만두질 않아. 좀처럼 말이지!”나는 뜬금없는 대답에 영문을 몰라 이 숲이 당신 것이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는 대뜸 또다시 엉뚱하게 대답했다.“저기 있는 집도 내 것이지만 저거야 뭐 가져간들 상관 않겠단 말이지. 병신들 내가 맨날 장롱에 종이 때가리랑 먹을 것 좀 넣어 주니까 가져가는 꼴이라니. 아 이를보게!여기 진짜가 있다고...헤헤!”그는 이윽고 자신이 풀과 나무로 만들어 놓은 터를 헤치더니 다시 그 밑으로 붉게 나온 흙은 손으로 정신 없이 파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까 장롱을 10개정도로 나눈 것 만한 크기의 상자가 나왔는데 그곳에는 아주 빼곡히 문서 종이 조각들이 차 있었다. 그는 그것들 중 몇장을 나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자 보라고 이게 바로 지금 자네가 있는 땅의 주인장이 나임을 증명하는 것이야. 자 봐 ...이봐”그러 갈수도 없는 노릇아니겠어? 그래서 내가 아랴을 베풀었지. 근데 이것들이 이젠 이 숲까지 넘보고 있네...내가 이곳에 사는 한 이 땅은 내거야!다 줘도 이건 못 주거든!헤헤!”나는 P의 혼잣말 아닌 혼잣말에 영문을 잃었지만, 적어도 그의 말에서 그가 마을을 포함한 이곳의 땅 주인이고 지금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러한 누추한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박영감이라는 인물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확신에 나는 어찌됐건 P의 이야기를 듣고자 P에게 양해를 구하고 덤불 숲을 나와 내 집들과 아까 땅에 내던졌던 감자를 챙겨가지고는 오겠다고 했다.“그렇게 하도록 하게. 덤불로 나갈 땐 최대한 숙여서 옷을 싸메고 가는게 좋을 거야. 가시가 나 있으니깐 말이지”나는 좁은 길을 지나 넓은 터로 나와 아까 왔던 덤불 숲을 빠져나와 짐과 아침에 얻어온 감자들을 챙겨가지고 왔다. 나는 P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자 공손하게 말했다.“저 어르신 이 감자 좀 잡숴 보시죠”나는 P에게 가장 못생긴 감자를 까서 쥐어주었다.“어르신 그렇다면 이 마을 전체가 어르신의 땅이란 말씀이십니까!?”P는 감자를 한입 베어 물며 오물거리며 말했다.“그게 말이지 우리 아부지 때부터 이 마을은 우리 것이다시피 였어. 박영감 그 병신 영감탱이가 젋었을 때만해도 말야.”“박영감님하고는 무슨 사연이 있으신가 보죠!?”“사연이 아니라 은혜야...그건 사람의 도리로서 가아야 하는 은혜야. 영감네 집이 안 좋은 소문으로 떠들 석 하고 망해자빠져 있을 때 우리 아부지가 그 놈을 거두신 거야. 그래서 그놈을 서울가지 유학시키며 공부시키셨지. 나는 솔직히 그게 못 마땅했어. 하지만 당시 어린 내가 무얼 하겠냐만은....그런데 말이지 세월은 금세더라구. 내가 25살이 되어서 아부지가 황달로 돌아가시더니 집의 재산이란 재산은 모조리 내 앞으로 되 있더라니까!헤헤!”“그런데 왜 지금은 이곳에서 살고계신지요. 어르신...”“그것도 다 저 영감 때문이야!! 서울에서 좀 배워 쳐먹었었다고 건들대기는...사실 2년 전 부게 진짜는 여기에 두었으니 망정이지....”P는 자신의 종이가 든 상자를 쓰다듬으면서 뿌듯하게 말했다.“그리고 서울이고 뭐고 총칼드는 놈들이 어느 날 내려와서 협박하고 위협해서 나 같은 부자들의 땅을 빼앗아 간다는 걸 알았지...박영감도 그 중 하나였던 거야!”나는 그 뒤 박영감으로 부터 그가 땅을 빼앗긴 후 약 반년동안을 이곳에서 자신의 마지막 땅을 지키기위해 살고 있었다는 것과 과거에는 마을사람들의 눈총을 한몸에 받았던 인물이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덧 하루해가 또 다시 뉘엿 뉘엿 넘어갔고 나는 더 어두워지기 전에 P에게 덤불앞에 있는 말하자면 그의 집에가서 묵을 것을 권하였다. 하지만 그는 언제 또 박영감탱이 와서 이곳을 뺏어 갈지 모른다고 하면서 한사코 이곳에서 머문다고 우기는 바람에 나는 그를 이기지 못하고 혼자 덤불 숲을 나와 집에 묵었다. 그후 나는 그마을 그집에서 2틀정도를 더 묵었고, P의 예전얘기와 박영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삼일 째 되던날 나는 P에게 앞으로 무사를 빌며 그 숲과 집을 떠나 10리 떨어져 있는 마을로 다시 돌아갔다. 나는 그곳에서 박영감을 만났다. 박영감은 찢어진 눈초리로 여전히 나를 의심가는 이방인의 눈 빛으로 한시라도 빨리 나가라는 태세로 쏘아 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허영과 욕심이 가득해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가 빨갱이 라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전쟁은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에....나는 그 후 광주로 무사히 돌아갔고, 일년이 채 되지 않아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휴전이 되었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마을 재건에 힘 쏟으며 몇 해를 바쁘게 보냈다. 그리고 전쟁이라는 단어도 사라들 사이에서는 역사의 한페이지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낄 무렵 나는 바로 밑에 남동생과 작은 술집을 열었다. 그리고 어느날 나는 전쟁 당시 전우 중 한 친구를 만나기위해 서울로 상경했다가 내려오는 중 우연히 또 다시 P가 살던 마을에 들리게 되었다. 마을은 그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집들도 재.
? '2007 이상문학상 작품집? - 전경린§.작가 소개1962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했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소설집으로 《염소를 모는 여자》 《환과 멸》 《물의 정거장》 등이 있으며, 《내 생애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 《열정의 습관》 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한국일보문학상, 문학동네소설상, 21세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줄거리사람들의 멸시와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결혼을 선택한 37살의 여자 인희는 남편 모경과 이혼한 사이다. 이유는 그가 그녀를 의처증에 가까울 정도로 의심하는 가하면 육체적 관계만을 원했고, 나아가 폭력까지 서슴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인희는 그 후 세 번에 걸쳐 모경을 보게 되고 알 수 없는 자궁에 통증을 느끼게 된다. 독일에서는 그녀를 장례식 테이프를 보고 그녀에게 빠진 하인리히 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 되고, 결국 독일로 향한다. 그 곳에서 인희는 하인리히의 청혼을 받아 들이기로 하고 그와의 만남을 갖기로한다. 그리고 그를 만나기로 한 전날밤 인희는 자신의 찢어진 블라우스를 기우려다가 그만 손에 바늘을 찔리고 어두워진 방안으로 알 수 없는 빛 방울이 흐르는 것을 느끼고 어둠을 더듬어 침대로 가서 누워 이 불을 턱까지 끌어올렸다.§. 서부의 작은 S마을....그리고 서울소설은 공간적으로 크게 독일의 작은 S마을과 한국의 서울을 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두 배경들은 공간적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면서 서로 대립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먼저 인희와 언니의 대화에서 두 곳의 기후의 차이가 드러난다.6월인데도 폭염이었다. 전화기를 들고 무심코 창밖으로 몸을 내밀었다가 창 아래서 올라오는 날카로운 반사 빛에 찔려 눈을 감았다......빛줄기가 손바닥을 뚫는 듯 날카롭고 공기는 불붙은 털 담요처럼 숨 막히게 무더웠다....(중략) “요 며칠 이상 고온이야” “여긴 서늘해. 게다가 매일 오후 두세 시쯤엔 꼭 비가 샤워시키듯 뿌리고 지나가. 비가 지나가면 꽃들이 더욱 탐스러워지고 무성한 나뭇잎들은 더 푸르게 반짝거리지”위의 본문에서도 나와 있듯이 인희가 사는 서울은 폭염으로 더운6월인 반면 S마을은 서늘하고 비가 내리는 습한 날씨이다. 이러한 차이는 후에 인희라는 인물이 모경과 하인리히 사이에서 겪게 되는 갈등에 뒤따르고 있는 두 가지 양상을 표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 인희가 살고 있는 서울의 밤을 ‘붉고 파란, 노랗고 희고 주황인 불빛들은 거대한 괴물이 낮 동안 약탈해 비밀 동굴 속에 쌓아 올린 휘황한 보석들 같다’고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전 남편 모경이 갖고 있던 자신에 대한 지나친 흥분과 열정을 서울의 야경에 빗대어 나타내고 있다. 반면 독일의S마을에서는 장례식 때 흰색 무명천을 두르고 있던 자신을 보고 반해 버렸다고 말했다는 부분과 마침내 언니가 하인리히와의 소위 말하는 백색결혼에 대해 제안 하는 모습은 전 남편 모경의 열과 흥분을 붉고 파란 불빛에 빗대어 표현한 부분과 대립되어 유색과 무색이라는 차이를 두고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시각적인 색감의 차이에만 그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서울과 독일의 작은S마을의 대립양상을 한층 더 좁게 생각한다면 이것은 곧 모경과 하인리히의 대립으로 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모경이 보여준 사랑은 우리나라에서 전통적 가치관의 따른 모습을 보여준다. 유교정신이 강하게 스며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정이 있는 남자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매우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다. 이와 맞물려 소설에서 모경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전처와 이혼 한 후에 인희와 결혼하게 되지만 결국 그 결혼생활은 폭력으로 얼룩지게 된다. 결혼생활 내내 그는 인희와의 육체적 관계에 기대어 갔고, 그녀를 구속 하고 압박하면서 끊임없이 의심해 갔으며 나중에는 폭력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었다. 그 후 더욱 그는 둘의 가치관과 윤리관에 갈등이 생길 때마다 더욱더 육체적 관에만 기대어 갔다. 이는 모경이 인희에게 보여준 사랑은 매우 집착적이고, 육체적 관계를 중시하며 감각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하인리히는 그녀에게 모경과는 반대로 말하자면(모경과 헤어진후 인희에게 있어서)이상적 사랑 관을 제시하였다. 하인리히는 그녀에게 육체적 관계가 없는 백색 결혼을 제안한다. 이는 전통적 사랑 관과는 다르게 가정에만 문제가 없다면 또 다른 애인이 있어도 별 무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또 섹스 없는 결혼이라 하면서 육체적 관계에 대한 권리를 인희에게 모두 맡기고 있는데 이러한 백색 결혼은 마치 직장생활처럼 전처럼 구속 받지 않고 마치 직장생활처럼 결혼 생활 또한 성실하게 해 나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다시 말해서, 각자의 프라이버시를 전적으로 존중해 주면서 서로는 직접적으로 터치를 하지 않고 이성적인 생각아래 관조적인 입장에서 결혼 생활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하인리히의 제안은 전 남편 모경으로부터 육체적 관계를 강요당하고, 억압과 의심을 받으며 폭력 까지 겪어야 했던 인희에게는 소설에서 나오는 말 그대로 희망의 불빛이었다. 다시 독일의 S마을과 서울로 돌아와서 보면 인희가 살고 있는 서울의 집에는 전 남편 모경과의 잊고 싶은 과거가 존재 하여 있고, 그 과거를 떨쳐내려 자신의 물건을 집 아래로 던져버린 흔적이 남아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인히에게는 가정이 있는 남자와 결혼했다는 사회적 경멸의 눈초리의 상처가 남아 있다. 그러나 작가는 독일의 S 마을을 통해 주인공 인희의 한국에서의 상황을 극복이라도 시키려는 듯, 서울과는 완전 정반대의 S마을을 보여준다. 요컨대 자신이 살던 서울이 자신의 상처가 남겨진 곳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작가는 인희를 앞 세워 남성보다 열등한 위치에 있는 상대적인 약자로써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이러한 사실은 모경 또한 전처가 있는 남편의 입장이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남자를 후려 가정을 박살 낸 여자라는 구설에 휘말려 직장을 그만 둔 인희의 모습만 서술 하였다는 것이 더욱 그 사실을 뒷받침 하고 있다. 이와 달리 독일의 S마을은 서울과는 정 반대로 과거 인희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낯선 곳 이었다. 자신이 낯선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느낄 정도로 S마을에서 그녀에게 얽매이고 있는 과거 따윈 존재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인리히라는 인물과의 새 출발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S마을은 인희에게 있어서 더 없이 좋은 이상적 공간이었다. 또한 S마을은 여성이 인희를 통해 약자로써 위치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던 서울이라는 공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즉 강인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나는 여기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여성의 사회적 위치나 힘, 자부심등에 대해서 마을S의 몇 가지 광경을 통해 서술해 놓은 것을 알 수 있었다.엄밀히 말하면 이곳은 사회주의 사회야. 여자들도 한 사람 몫의 독립적인 개인으로 자라도록 교육받아. 부끄러워해서도 안 되고 약한 척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여기 여자들은 아무리 무거워도 제 짐은 제가 들도록 어릴 때부터 교육받아. 제 짐을 남에게 맡기거나 의지하는 건 모욕이 돼.그러고 보니 거리엔 늙은 남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과 슬로베니아 난민들과 흑인 여자만 보인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어딘가 냉소적으로 보이고 흑인 여자들은 웃고 있어서 행복해 보이고 난민들은 고독해 보였다.....이곳의 젊은 여자들은 대개 자동차로 이동한다....이제 막 도착한 자동차 안에서 뚱뚱하고 늙은 여자가 운전석의 남자와 입맞춤을 나누었다. 관습저인 인사가 아니라 섬세하고 열정적인 접촉이었다. 추스. 여자는 등나무로 엮은 흰 장바구니를 들고 차에서 내려 마트로 들어갔다. 가슴과 엉덩이가 마구 늘어진 뚱뚱하고 늙은 농부 같은 여자다. 부인인지 연인인지 혹은 계약동거 커플인지 짐작할 수는 없지만 그 여자가 향유하는 애정적 권리에 경외심이 일었다.위의 세 본문은 여자가 남자와 평등한 교육을 받았고, 인종적으로도 차별을 받는 흑인이면서 여자이기 까지 한 흑인여자들이 다른 남자 난민들이나 노동자들과는 달리 행복하게 보인다고 서술하면서 여성으로써의 자부심을 나타내고 있으며, 젊은 여자 대개가 남자와 똑 같이 모두가 자동차로 다닌다는 것은 남성과 똑같은 권리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끝에 한 늙고 뚱뚱한 여인이 운전석의 남자와 입맞춤을 나누었다는 부분은 작가가 여자이면서 외모 지상주의에 억압되어 있는 여성들을 한방에 해소 시키면서 여성의 애정적 권리에 대해 경외심을 표현하고 있다.§.벗어 날수 없는 속박. 뺄 수 없는 반지인희에게 있어서 모경은 지우고 싶은 과거이자 폭력으로 얼룩진 어두운 나날의 그림자 였다. 인희는 그러한 모경을 헤어진지 4년 만에 보고는 인희는 자궁에 알 수 없는 통증을 느낀다. 이것은 결혼시절 모경이 인 희에게 강요하다 싶은 육체적 관계의 아픔인 동시에 두려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경을 인희는 내치려 자신의 물건을 마구 던지기 까지하지만 끝내 물건을 땅에 묻고 태우는 과정에서 묻었던 반지만을 다시 빼내어 흙을 털어낸다. 왜 인희는 모경의 반지를 버릴 수 없었던 것일까!? 아래의 본문에 인희의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뉘엿뉘엿 노랗게 익어가는 오후 5시책 한 다발을 물은 가방을 메고,어김없이 난 샘밭 행 버스를 기다린다.할매가 펴 놓은 옥수수를 행여 밟을까사뿐히 발을 놓고, 560원으로 표를 사고200원짜리 막대사탕을 사서 들고, 목을빼꼼히 빼고 아직 오지 않은 버스를 바라본다.버스는 저 멀리 아지랑이 속에서 이글거리다이내 쿠왕 외치며 내 앞에 선다.내 부름에 답 한 것은 아니다.좀 처럼 기다려 주는 법도 없다.찰나에 올라타면 앞 칸 뒤 칸에선 저마다의이야기가 펼쳐진다. 한 번 멈추노라면 오르는이와 내리는 이들이 엇갈려 등장한다.육중하게 달리는 이 고철 소극장 안에서난 560원짜리 표를 산 관객이었다.이들이 어디서 내리는지도 알았지만반년 째 오고 간 대화는 없었다.내리는 문 옆으로 두통약 광고물이 붙어 있었다.천장에 휘갈긴 낙서를 보고,달그락 거리는 창문을 열고.바람을 맞았다.버스가 뱉어내는 검은 연기가 밤 하늘을 채우고,도시의 무리들이 하나 둘 씩 요염한 불빛의 자태로갈아입기 시작 할 무렵, 달리는 고철 소극장 관객들은 하나 둘 빠져 나갔다.
세종대왕은 우리 한국민들에게는 왕으로써 그 의미를 뛰어넘어 한국의 반만년 역사 중에서 가장 존경받고 우상시되고 있는 절대 영웅이자 위인으로써 각인되어 지고 있는 인물이다. 이처럼 세종대왕이라는 인물이 그토록 우리에게 위대한 인물로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가장 우수한 우리 민족의 언어 한글을 창제했다는 역사상의 업적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한글 창제 이 외에도 세종대왕은 정치를 포함한 여러 면에서도 탁월한 능력으로 당시 왕으로써의 최고의 찬사와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한 인물이다. 이러한 세종의 업적들로 인하여 세종은 한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하지만 만약 세종의 커다란 업적들을 제외하고 하나의 인간으로써 세종을 바라본다면 과연 세종이라는 인물은 과연 어떠한 사람으로 바라 볼수 있을까? 이도 역시 과거의 세종이라는 인물을 현시점에서 바라 볼 수 없으므로 고문헌에 있는 기록을 따라 더듬어 보는데 그치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평가라 할 수 는 없겠으나 적어도 세종이라는 인물을 그가 빚어낸 커다랗고 화려한 업적의 조명을 배제하고 순수히 하나의 인간적인 면에서 바라본다는데 그 의의를 두려한다. 요컨대, 왕으로써도 시대의 영웅으로써도 아닌 단지 휴먼적인 면에서의 세종을 알아보자.본래 세종의 인간상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고문헌의 기록을 기반으로 하여 책자를 통해 대표적으로 기록되어있는 것들이 있다. 요컨대 이에 따르면 세종은 지극히 효심이 강한 인물이었고, 의지가 강하며 인정과 정의감이 뛰어나며 학문을 즐겨 하던 분이라 알려져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물론 세종의 진정한 인품에 대하여 기록 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지극히 휴머니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간상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본다. 그래서 필자는 최대한 개인적인 관점이자 인간적인 측면에서 세종을 바라보고자 한다. 이것은 기존의 관점을 재해석 한 것도 있고 새롭게 바라본 점도 있다.세종의 인간성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알려진 것 중 세종은 강한의지를 지닌 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무엇보다 세종이 자신의 신념인 훈민정음을 여러 신하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오랜 세월에 걸쳐 창제했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종이 부왕 태종의 뜻을 받든다 하여 태종이 승하한 뒤에도 외가와 처가의 신원(풀음)을 허락지 아니 한 것 은 비록 부왕의 뜻을 따른다 함일지라도 세종의 자신의 왕의 역략으로써 충분히 융통성을 발휘하여 풀 수 있었음에 그러지 아니 한 것은 자칫 세종이 왕으로써의 고지식한 면이 있지 않았나 싶다. 물론 후에도 이를 소헌왕후에게 자신의 입장을 헤아려 달라 하였지만, 세종이 두 일가의 신원을 허락지 아니 한 것은 부왕의 뜻을 지키려는 강한의지 보다는 원칙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고지식한 면과 세종 자신이 아직 선조의 영향 그늘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써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궁궐 안에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면서 까지 내불당을 자신의 의지보다는 주위 신하들의 정세를 살피지 못한 행동이라 생각한다. 세종 자신의 의지가 굳건 했다면 오히려 훈민정음 창제당시에 반대 상소문을 올린 최만리와 후에 훈민정음 보급을 위해서 강경책을 썼어야 했음에 그러지 않은 것을 보면 내불당 사건만 보더라도 그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 할 수 있다. 하지만 물론 세종이 학문에 대한 열의 등을 살펴 본다면 분명 의지가 강한 소유의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겠으나, 적어도 내불당 일화만 본다면 세종의 주위의 정세를 잘 파악하지 못했거나 간과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점으로 써 세종은 오늘날 대기업의 CEO가 지녀야 할 부하에 대한 애정을 가진 분이었다. 당시 관비가 출산을 하게 되면 출산 휴가를 1주일 남짓 주었었는데 세종은 이를 딱하게 여겨 무려 일백일로써 늘렸다. 이는 상관의 입장에서 아랫 사람의 노고와 심정을 잘 헤아릴 줄 아는 품성을 지녔던 세종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세종이 만들어 놓은 삼신제도나 각 나이 마다 처벌을 다르게 규정한 점을 본다면 세종이 민초들을 위해 훈민정음을 만들었듯이 백성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매우 많이 가지셨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