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디자이너 소개세계에서 가장 바쁜 디자이너라는 수식어가 붙는 마크 제이콥스.마크 제이콥스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계기중의 하나는 네이버 광고였다.지난 여름 전지현의 ‘네이버 카페 cf’에서 마크제이콥스의 옷의 협찬 되었을때 처음으로 마크제이콥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살랑살랑 거리는 연한 초록색 옷이 너무 이뻐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더니 마크 제이콥스의 옷이었다. 그렇게 인식된 마크 제이콥스는 ‘풀하우스’와 ‘햇빛 쏟아지다’에서의 송혜교를 통해 더욱 친숙해 졌다.뉴욕과 파리와의 결합을 완성시킨 천재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는 1963년 4월 9일 뉴욕에서 태어났다. 1981년 High School of Art and Design을 졸업한 후, 그는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입학하였다. 마크 제이콥스의 디자인 재능은 원래 타고 났다고들 말한다.파슨스 스쿨 학생일 당시 디자인으로서, 마크는 최고의 학생으로 손꼽혔다. 그는 1984년에 페리 엘리스 골드 팀블 상=황금골무상/ the Chester Weinberg Gold Thimble Award, 그해의 학생 디자인상을 모두 휩쓸었다. 파슨스 스쿨은 제이콥스에게 또한 그의 첫컬렉션인 핸드니트 스웨터를 선보이게 해주었다. 그 컬렉션은 "스케치북"이란 라벨로 Ruben Thomas사에서 디자인되었다. 그리고 1984년에 그의 파트너인 로버트 더피와 함께 "제이콥스 더피 디지인"으로 불려지는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1986년, Kashiyama USA사에 힘입은 제이콥스는 "마크 제이콥스"라는 이름을 건 첫번째 컬렉션을 디자인하게 된다. 그 결과 1987년에는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CFDA)에서 페리 엘리스 `뉴 패션 탤런트 상`을 수상함으로써 패션산업계에 가장 높은 공헌을 한 디자이너에게 주는 상을 수상한 가장 젊은 디자이너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그는 미국 디자이너 협회(CFDA) 의장인 페리 엘리스로부터 그의 패션인으로서의 재능을 인정받게 된다.1993년 가을 Vuitton성별-남?활동무대-프랑스?직업-액세서리디자이너??출생연도-1921 ~ ??경력사항-1854년 Neuve des Capucines가에 처음으로 상점을 염1987년 Moet Hennssy사와 합병하여 LVMH(Louis Vuitton Moet Hennessy)그룹 설립1997년 뉴욕출신의 디자이너 마크제이콥스를 영입하여 기성복 라인 전개??작품세계-연한 참나무 빛깔의 가구와 베이지의 카펫,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조명은 한눈에 150년 전통으로 귀족풍을 대표하는 'Luis Vuitton' 매장임을 알게 해준다.멋을 아는 이들 가운데 진한 고동색 배경에 반복되는 꽃과 별무늬, 그리고 `LV자'가 겹쳐진 'Luis Vuitton' 모노캔버스 가방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가장 프랑스적이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명품으로 통하는 'Luis Vuitton', 150여년 역사가 만들어낸 철저한 귀족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1854년 오페라하우스가 있는 파리중심가 루데브데 "까푸 신느"에 첫 매장을 열고 혁신적인 디자인의 여행용 트렁크를 내놓았다. 당시의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이후로 모조품이 판을 치기 시작해 이를 막기위해 처음 고안한 것이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빨간줄과 격자무늬 문양이었다.1854년 파리에 여행가방 전문점으로 오픈하여, '다미에', '모노그램', '에피', '타이거' 등 차례로 인기상품을 내놓았으며, 이런 노력은 2세인 조르쥬 비통이 1896년 부친의 이름 첫 글자인 'LV'와 당시 유행하던 아르누보 경향의 꽃과 별무늬를 결합해 모노그램 캔버스를 선보이면서 절정에 달한다.1987년에는 모헤 헤네시사와 합병, 산하 브랜드로 크리스챤 디올, 지방시 등을 거느린 최고의 브랜드 제국이 되었다. 1997년에는 마크 제이콥스를 디자이너로 영입해 기성복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프레타 포르테에 진출하여 '모노그램 베르니'를 시작으로, 엘레강스한 컨셉에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으로 현재 가장 주목 받고 있는 브랜드 중 하나이다.루로 승화시켰다. 이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마크 제이콥스는 2005년 새로운 룩으로 또 한 번의 센세이션을 일으키고자 한다. 루이비통의 상징이라 할 모노그램을 재창작한 ‘2005년 S/S 모노그램 컬렉션’이 바로 그것이다. 루이비통 1백50년의 역사 중 1백 년 이상을 함께 한 모노그램 디자인. 단순화한 꽃과 별, 그리고 창시자인 루이비통의 이니셜을 조합한 모노그램이 마크 제이콥스의 상상력에 의해 새로운 텍스처와 컬러로 변형됐다. 여성스러움을 중요시하는 마크 제이콥스는 모노그램 로고를 사랑스러운 컬러로 또는 실버 컬러 레터링으로, 정감이 느껴지는 손뜨개 등 로맨틱한 스타일로 만들었다. 컬렉션은 각각의 포인트 컬러와 소재, 디테일의 특징에 따라서 모노그램 데님, 모노그램 파스텔 글리터 등 여섯 개의 라인으로 구분된다. 특히 이번 컬렉션은 최고급 악어 가죽과 소가죽 트리밍만을 사용했으며 수공예 디테일이 고급스러워, 소장 가치가 있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 할 만하다. 한정된 수량의 제품을 VIP에게만 주문받아 판매할 예정이다.2003년 마크제이콥스가 무라카미 다카시와 만들어낸 아이 러브 모노그램 백 시리즈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다른 영역의 디자인너나 예술가와 콜레보레이션(협력)으로 기존의 제품에 캐릭터를 입힌 신상품을 출시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는데, 2005년 S/S루이비통은 무라카미 다카시가 디자인한 체리 블로썸 시리즈의 모노그램백을 출시해 또다시 높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3. 퍼스널리티- 클래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마크 제이콥스의 군더더기 없는 세련미는 전세계 여성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마크 제이콥스는 패션 감각이 뛰어나셨던 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시시한 옷을 한 무더기 사느니 고급스런 옷 하나를 사는 게 훨씬 좋다는 걸 일찌감치 가르쳐주셨다고 하네요.한편 제이콥스는 일찍이 자신이 게이임을 밝힘으로서, 매력적인 그를 흠모했던 많은 여성들을 슬프게 하기도 했다.2003년 영국의 권위있는 패션잡지(페이스)지가 선정하는 패션계에서 가장영향력있는 1매임 없이 순수하게 영감을 표현해내고 싶다는 마크 제이콥스. 자유로운 사고와 감각이 바로 지금의 마크 제이콥스를 이끄는 힘인 듯하다. 마크 제이콥스는 그의 디자인을 사랑하지만 가격 때문에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여성 고객을 위해 2001년 세컨드 라인인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Marc by Marc Jacobs)’를 런칭하여 다양한 고객층을 아우르고 있다.국내에 처음 들어온 마크 제이콥스의 2003 S/S 컬렉션은 미국적 실용주의에 유럽의 감성이 가미된 달콤한 빈티지 스타일로, 어릴 적 보았던 어머니나 누나의 옷을 생각나게 하는 1950년대 복고 스타일을 그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것이 특징이다. 핀 스트라이프와 큰 단추가 달린 더블 재킷, 샤넬식 트위드 정장, 스키니한 실루엣 등 단아하면서도 도회적인 분위기가 주조를 이룬다. 또한 많은 여성팬의 최고 관심사인 드레스 라인에서는 허리선을 가슴 아래까지 바짝 끌어올려 귀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셔츠 드레스, 뒷자락이 바닥에 끌리는 엠파이어 슬립 드레스 등 빈티지 룩을 여성스럽고 화려하게 연출하였다.최근 내한한 마크 제이콥스의 프레드릭 그랑지에 부사장은 “40~50년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유럽식 명품에 식상한 소비자들에게 젊고 실용적인 미국식 ‘신명품’을 제시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고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굳이 유럽과 미국이라는 경계를 가르지 않더라도 ‘마크 제이콥스’는 그만의 달콤한 메시지로 국내 고객들을 매료시킬 것만 같다.-제이콥스 친구의 글-마크의 캐릭터 - 굉장이 눈에 띄고 분명한 편이다. 언제나 주위의 호감을 끌 정도로 재미있고 잘생겼으며, 유머 감각도 뛰어나고 아주 똑똑한 사람이다. 언제나 착하고 다정하다. 결코 이기적이거나 거만한 태도를 보인 적이 없다.마크의 친구 - 영국 출신의 사람들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말콤 맥래런, 비비안 웨스트우드, 아티스트 닉 이건과 그의 여자친구인 스타일리스트 엘렌 캐널리가 여기에 속한다. 그는 이런 재능 있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는 , 그에게 더 많은 것들을 기대하게 되었다. 심플하고 우아한 그의 스타일은 긴 공백을 깨고 나온 그를 너무나 유명하게 만들었다. 마크는 제자리로 돌아왔고 정상에 우뚝 섰다.마크의 루이비통에서의 첫 컬렉션인 98/99 F/W 컬렉션은 "누구의 것인지 모를 디자인"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자유로운 뉴욕에서 페리 엘리스 여성복을 디자인하며, 그런지 스타일과 로큰롤 스타일 등 실험적인 컬렉션을 창출하고, 또한 자신의 브랜드 "마크 제이콥스"를 전개해왔던 그에게 파리 패션계 특유의 엄격함과 전통은 아주 큰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내성적이고 비사교적인 성격은 그곳에서의 적응과 변화를 더욱 힘들게 했다. 하지만 루이비통의 영원히 사랑 받길 원하는 디자인 세계를 잘 이해하고, 자신의 색깔을 잘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었다.마크는 루이비통에서 아주 미세한 조율과 그의 스타일리스트 맥케니와 브라나의 도움에 힘입어 그는 쉽게 자신의 입지를 굳혔고, 컬렉션은 평론가들과 고객들 모두에게서 박수를 받게 된다. 그를 영입한 후 이 브랜드의 매출액은 1997년 12억달러에서 2001년 24억달러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최근 가장 성공적인 패션 스토리로 꼽힐 만큼 대단한 센세이션을 몰고 온 마크와 루이비통의 결합은 이제 액세서리 브랜드로서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거대한 토털 패션 브랜드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루이비통 쇼는 파리에서 가장 표를 구하기 힘든 쇼로, 마크는 자신과 함께 협력한 그래피티 아티스트 스티븐 스프라우스 역시 스타덤에 올려주었다. 그들이 함께 만든 가방은 패션 업계 최고의 인기를 누린 성공작으로 세계 전역에 카피 물결을 일으킨 화제의 아이템이 되었다.그는 어린 모델들에게서 영감을 얻었고, 그녀들은 항상 그의 컬렉션에 나타나 특유의 옷차림으로 마크에게 좀더 젊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스타일이 보강된 라인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렇게 탄생된 브랜드가 바로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다. 페리 엘리스와 달리 이것은 즉각적인 성공을 보게 된다..
너그러움과 해학제 1장 - 우리미술의 이해고려중기 이후, 귀족문인화가의 아마추어 화단은 사실적 객관주의에서 이상주의적 주관주의로 변천하고 있었고, 조선 전기에는 이런 회화관이 더 광범위하고 구체적으로 되었다.묵으로 그린 죽.매화가 성행하고 산수화가 발전했다. 그러나 조선 전기의 화적은 거의 찾아볼수가 없다. 과거를 알아볼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이 제대로 보전되지 않고 있는것이 우리의 실정이다.조선전기 가장 뛰어났던 화가로 안견을 꼽을수 있다. 나 는 모두 익히 알고 있을만큼 유명한 작품이며 는 현재 일본에 소장되고 있다.중기에는 사대부 화가들이 많이 나왔다. 시화가 성행하고 전기의 화풍, 회화관을 이어가는 시기였다.사대부의 그림은 의중을 표현하고 심의를 그리는 것이었다. 조선전기 그림에 대한 사대부간의 논쟁이 그림의 용도, 화제, 화원의 마음자세에 대한 논쟁으로 바뀌었다.이런 조선 중기의 회화관은 대표적으로 김지의 와 이경윤의 에서 찾아볼수 있다.후기에는 좀더 일반화되어 날카로운 비평, 정연하고 당당한 이론이 전개된다. 남화가 본격화되고, 정선과 김홍도등 같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절경과 시대상을 담은 거장이 배출된다.조선도자는 고려청자가 타락한 상태에서 제작되기 시작. 고려백자의 명맥을 이으면서 중국의 영향을 받은 두가지의 대종을 이뤘다.백자는 더 곱고 아름다운 흰색을 내는것에 노력한다. 백의민족의 전통을 더욱 더 세련되게 발전시키는 것이다.백자와 함께 분청사기 또한 커다란 줄기로써 조선전기 도자기의 한 역할을 한다. 분청사기는 단조롭지만 깊은 효과를 낸다. 다양한 색채의 무언의 대결로 이루어지는 효과라 하겠다.조선의 도자기는 정치하고 건강하다. 단순한 색조, 형체, 대범한 선의 변화가 그 아름다움이다.제 2장 - 우리 그림 이야기우리 한국 미술의 내구성은 18세기에 가장 잘 표현된다.삼국시대 과도기를 거쳐, 삼구그이 문화를 함께 받아들이고, 고려 생활공예를 거쳐 민족미술로 자리잡았다.조선에 이르러 유교문화, 왜란, 예술인의 일본으로의 배출등을 거쳐 근근이 이어지면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한다.18세기의 특징은 실학을 들수 있다. 한국 미술은 그 시대의 정신과 분위기에 영향받아, 자아성찰, 각성을 통해 새로이 경지를 개척하여 참심한 독창성을 발휘하였다. 중국의 소재를 벗어나 우리의 자연, 생활을 소재로 삼고 자유분방한 19세기 미술의 모태를 마련한다.18세기 회화의 특징은 진경산수화와 풍수화이다. 우리의 산화와 생활이 화제였다. 18세기는 다양한 사상과 예술이 함께 했다. 신구의 공존이 이루어졌다고 할수 있다.18세기는 또한 도자사에도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백자의 기형이 안정되고, 유약의 철분 함량이 느는 등 치밀하여진다. 중국적, 고려적 요소가 배제되고 순순 한국적 조형이 형성된 시기이며 단순간결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 시기이다. 또한 18세기 후반은 과감한 변모의 시기이다. 이것을 걸쳐 현대로 직결되는 중요한 시기라고 할수 있다. 다시 말해 18세기는 한국 도자기의 가장 간결, 단술하고 준수한 모습의 고전이고, 현대를 지향한 과감한 실험이 시도되는 시기이다. 한국미술을 근대미술로, 다시 현대로 이어주는 가교역할의 시기이기도 하고, 시야를 넓혀 내 나라와 다른 나라를 알고, 자신을 정확하게 알고가 하는 시기였으며, 과거를 보존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노력의 시대였다.제 3장 - 흙과 나무와 불과 바람의 조화우리 문화에서 빼놓을수 없는 청자문화는 신라후기 9세기부터 발전한다. 중국의 청자는 아름답긴 하지만 우리가 보기엔 너무 무겁고 진하다.우리의 청자는 맑고 은은하며, 자연스럽고 친근하다. 색을 남용하지 않고, 화룡점점과 같이 절제하여 사용한다. 고려청자는 은은하고 맑은 비색과 유려한 변화를 가진 형태, 시적인 문양등 아름다움이 어우러져 자연의 향기와 생명력을 발산한다.우리의 다완은 일본에서 다완(찻잔)으로써 높이 평가받았다. 일본이 요구하는 다완은 전체가 잘생기고, 부분부분이 모두 특징적인 생김새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섬세하고 작은 디테일에 있어서도 운치를 느낄수 있어야 한다. 또한 차의 온도에 의한 유약의 변화까지 까다롭게 따져 모든 것이 다인의 맘에 들어야 명완이다.다이도쿠지 소장의 일본국보인 우리 고려 다완은 임진왜란 (일- 다완전쟁) 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임진왜란후 일본은 강제로 잡아간 우리 도공들을 기반으로 도자를 발전시켰다. 우리의 명완은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속속 일본으로 빼앗기고 있다. 일본은 자신들이 만든 다완보다도 전통과 역사를 지닌 본국, 즉 한국에서 만든 다기를 더 뜻있다고 여긴다. 우리의 역사와 전통이 다완에 더 깊은 의미를 준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들이 빼앗아간 수많은 도자기들은 일본인들이 고르고 골라 높은 안목으로 엄선하여 가져간 것이다. 우리의 자연 바탕적인 미술이 그들에게 어떤것은 깨닫게 해준 듯 하다.우리는 구석구석을 살피지 않고, 그 생김새대로 쓰임새에 맞게 사용한다. 그들이 우리의 고려다완을 높이 사는것은 그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정한 높이, 날렵한 형태,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개개의 생김새를 인정하지 않았다. 손자국이나 유약이 고르지 못한것은 말할것도 없이 실패작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것을 각각의 특징으로 여기는 우리의 자유분방함이 그들에게 어떤 새로움을 준것이다. 이런 우리의 오늘날 현실은 어떠한지 우리는 한번 되돌아봐야할 일이다.분청사기의 모체는 고려말 청자이다. 최초의 분청사기는 고려말 조질청자에 백토로 문양을 나타낸 것이다. 백토로 분장한 회청색 사기 라는 의미의 분청사기라는 용어만 봐도 그 유래를 알수 있다.분청사기는 대부분 투명하고 담담한 청색이며, 분청사기는 백토의 문양기법에 따라 분류된다. 백색과 회색의 대조로 나타나는 문양효과는 그 시기에 따라 15-16세기 전성기에는 단정하고 단아하게, 대담하고 소박하게 나타난다. 16세기 임진왜란 이루 백자가 점차 부흥하면서 분청사기는 모습을 감추었다. 백자가 더 견고하고 실용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분청사기는 고려의 유려하고 유연한 형태에서 생동감 넘치는 형태를 가졌으며, 곱고 아름다운 문양에서 대담하고 활달하며 해학이 넘치는 추상적인 문양을 얻었다. 백자의 단정하고 의연한 기품과는 다른 그 무엇이다. 분청사기의 모양은 우리나라 공예의장의 정수이다. 분청사기 역시 결코 완벽을 추구하지 아니한다. 대범하고 탈속한 대담한 조형이다. 분청사기를 만든 예술가들은 자유분방함과 활달한 해학과 일삭의 소식을 분청사기에 그대로 담았다.조선의 도자는 과장된 선과 직선이 없다. 모두 진실하고 힘이 있다. 약간의 일그러짐은 대범하게 탓하지 아니했다.자연과 같은 순박함을 가진 대표적인 것으로 오지그릇과 질그릇을 얘기할 수 있다. 이는 일정한 치수나 생김새 없이 지방, 쓰임새에 따라 다 달랐다. 색깔로 가지가지이다. 이것들이 집에서 드나드면서 엮어낸 수더분한 분위가가 마음의 여유를 준다. 이런 마음을 살려 자연과 같은 여유, 운치와 풍요로움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잡았던 도자로써 또 하나 장독이 있다. 자연속에 자리한 장독대는 그 집의 살림을 맡은 주부의 됨됨이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장독대는 고사를 지낼만큼 정성이 지극했다. 궁중에서도 장독은 중요하게 관리했고 그 관리자의 지위도 꽤 높았다는 것을 보면 우리가 장독을 얼마나 중요시 했는지 알 수 있다. 장독은 우리 조사의 지혜이며 대자연의 오묘한 조화이다.제 5장 -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뮐세우리의 도자기의 풍만하고 유연한 선의 흐름과 몸체의 팽배함, 그리고 조금씩 변화한 백색의 아름다움은 한국사람만이 나타낼 수 있고, 우리가 더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일본인들이 아무리 최고로 치면서 좋다고 말해도 그들의 안목으로 느끼는 즐거움은 우리가 보는것과 다를 수 밖에 없다.하나하나 조금씩 다르게 생긱 항아리를 보고 누군가는 한국인은 일그러진 것을 좋아한다 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엄정히 일그러진 것은 가마에서 나오자 마자 깨지기도 했다. 그것은 어디에 쓰이느냐에 따라 다르다. 고작 집에서 쓰는 밥그릇이 하나하나 똑같은 형태를 가질 필요는 없다. 그런 대담함을 가진것이 우리네 정서이다.우리 미술은 흥취와 익살이 있다. 오래 축적되고 세련된 바탕위에 이루어진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틈나는데로 도자기를 보고 익히면 애정이 솟아나고 그 익살을 배울 수 있을것이다. 그것이 전통을 잇는 일이다.우리는 예부터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과 한 몸이 되고, 자연 그대로를 사랑하며, 인공적인 것도 자연의 것으로 믿고 아름답고 신성하게 여겨 자연의 섭리를 쫓는다. 억지가 없다. 우리는 본질을 존중하고, 무리한 과장이나 섬세한 장식보다 기본형태, 균형, 단순하고 간결한 것을 사랑한다. 우리의 목공예품이 아름다운 것은 나무결 그대로를 살려 그 자체에서 자연을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의 도자기는 우리 조형미술의 근간으로 세계문화속에서 가장 돋보이는 우리의 문화이다. 우리 자기는 본질과 순수성 그대로이다. 우리 미술은 실용과 기능에 충실하며 건강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넉넉하고 대범하며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중시한다. 중국과 일본의 완벽하고 정리된 아름다움과는 결코 다르다. 우리의 그것은 단점이라기 보단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전세계가 2차 대전에 휘말렸던 1944년 파리의 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Christian Boltanski)는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한 프랑스 의 대표적인 사진설치작가이다.감성적이고 애수마저 느끼게 하는 그의 작품은 작가가 전쟁 중에 출생하였다는 사실과 깊은 관련이 있는 듯이 보인다.볼탕스키는 당시 너무 어려서 전쟁 을 직접 겪지는 알았지만 위험이나 외부에 대한 두려움 혹은 죽음에 대한 생각 이 작가의 유년시절을 지배하였다고 회고한 바 있는데. 전쟁의 참화 속예서 더 구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가 죽음이라든가 인간이라든가 하는 주제에 관 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것처럼 보인다.낡은 사진이나 헌 옷가지, 양철 통 등의 일상적인 오브제를 사용하는 볼탕스키는 초기의 우편미술(mail-art) 사진 작업. 소회극. 구성. 사진과 조명을 이용한 「어둠의 교훈(Lecons de Tenebres)」,「문서보관소(Ahive)」를 거쳐. 옷가지를 이용한 근래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삶과 예술을 밀착시키면서 관람자에게 추억과 사색을 볼러 일으키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볼탕스키는 자신의 초기의 작업인 오자투성이의 편지를 발송하는 등의 우편미술에 있어서 수신자에게 의도적으로 이것이 예술인지 흑은 실제생활 속의 일부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렵게 만들었다.게다가 그는 일단 그것이 예술로 밝혀지거나. 혹은 작가 자신이 밝혀지면 우편으로 보내는 작업을 중단하였다.이처럼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 그의 작업은 개인의 일상적인 사진을 이용한 작업에서는 삶과 예술뿐만 아니라 실제와 허구의 경계를 허무는 데까지 이른다.「추억이야기 (Recit-Souvenir)」에서 등장하는 그의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 는 사실과는 다르지만 볼탕스키의 사진과 나란히 놓인 그 글을 관람자들은 실 제로 받아들이고 흥미를 느낀다.여러 가족의 1駱장의 혹백사진을 이용하여 제작한 「D. 가족의 사진첩, 1939-1954(L'Album de photogr해진 코드 안에서 그 추억을 찾을지도 모른다.더 나아가 작가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유년기를 상투화된 이미지로 보여주려고 한다. "숨어서 하는 키스"라는 작품에도 이런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작가는 그의 유년기, 그의 가족, 그가 강도 높게 기억하는 순간들을 사진을 통해 재현한다. 그는 어릴 때 상황을 연출하고, 연기하고, 새로운 자아도 발명해서 자신의 실상과 허상을 섞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대로 묘사하는 실상을 대변하는 작가는 아니다. 자신을 바라보고 만들어내고 재현하면서 작가는 실상과 허상의 틈새에서 자서전적 이미지를 만든다. 또한, 이미 지나간 사건을 재현하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방법은 사진이 주는 사실성과 신빙성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이미 성인이 된 작가가 어린 자신을 재현한다든지, 자신의 엄마역을 한다는 것은 사진이 갖는 사실성과는 거리가 멀다.또한, 사진이 발명된 이후로 이미지의 복제화가 시작되었고, 많은 이미지들은 명명되어질 시간조차 갖지 못하고 쌓여간다. 우리들은 이 익명의 이미지 속에서 나의 이미지보다는 대중 매체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를 마치 나의 것으로 착각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상투적인 이미지들은 곧 우리의 세계를 점령하고 우리들에게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볼탕스키가 말하고자 하는 초점도 바로 이 점이다. 각 개인의 이미지가 모여 대중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역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소위 개인 기억 속의 많은 부분은 이미 대중화된 상투적인 이미지가 차지하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그 자신의 이야기는 진정한 자서전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이미지와 코드화된 대중 이미지와 혼합된 것이고, 이제는 너무나 섞어 나서 어느 것이 나의 것인지 분간하기조차 어렵다고 한다. 이점이 볼탕스키 작품의 매력이자 그의 유머 감각이다. 그는 사진을 하나의 매체로 쓸 뿐 아니라 그의 고유 성질을 하나의 주제로 잡는다. 사진의 복제성과 재현성, 사진 대중화에 의한 이미지의 상투화, 개인적 이미지와 대중 이미전시장 바닥에 펼쳐놓고, 관객이 이 옷더미를 밟고 지나가면서 감상하도록 유도한다. 관객은 이 옷을 밟으면서 이상한 물컹함을 느끼고, 아직 남아있는 중고 옷의 체취를 물씬 들이킨다. 충격적인 경험이다. 널 부러진 옷은 단순한 옷감 덩어리가 아닌 임자 잃은 인간의 껍데기 같고, 그 중고옷 특유의 냄새는 죽은 자의 체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영안실을 상기시킨다. 곧 이 전시를 보는 것은 전장의 시체를 밟고 지나갈 때의 잔인함과 목욕탕에서 죽었다는 유태인들을 쳐다보는 망연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실상의 부재를 확연하게 하고, 또한 부재는 실상을 늘 상기시키는 이중 구조를 갖고있다.작가는 사진과 중고옷의 유비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 "나는 자주 옷으로 작업한다. 중고옷은 사진과 같으며, 실상의 기억을 동반하고, 그 존재의 냄새, 그 몸의 주름까지도 간직 하지만 그 몸은 이미 떠났다. 사진은 부재다 - 누군가 분명히 이곳에 이 모습으로 있었지만, 그 사람은 없다.- 중고옷 또한 마찬가지다."볼탕스키는 가장 '사진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사진을 쓰지 않고도 사진의 기본 속성을 누구보다도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진은 부재의 표현이기도 죽음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사진은 지나간 실상을 상기시키고, 현존 화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기억하고 재현하고, 잃어가고 있는 시간을 잡고 기록하는 작가, 볼탕스키는 사진을 주요 매체로 쓸 뿐아니라 동시에 사진의 속성을 주제로 작업한다. 이런 면에서, 그는 가장 사진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다.볼탕스키의 겨울여행전 사진-`저장고-죽은 스위스 사람들')홀로코스트 기억 되새긴 산 자의 고통4월6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볼탕스키-겨울여행 전은 바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 에 관한 전시다. 비록 브레히트만큼 슬 픔에 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볼탕스키는 삶과 죽음에 대한 중립적 태도를 견지하며 동료 인간들에게 스스로에 대한 동정심을 회복함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을 ess, n 28, 1988, P. 6)여기서 우리는 왜 볼탕스키가 자신의 허구적인 요소를 끊임없이 가미하면서 유년기를 재구성하기를 그치지 않는가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다. 유년기의 창작은 자신의 유년기를 화려하게 꾸미기 위해서가 아니며 거짓 기억을 전하기 위해서는 더 더욱 아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자신의 유년기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자 타자의 유년기를 찾아주기 위한 것이다. 집단적 기억을 재구성하기 위해 볼탕스키가 사용한 코드는 동시대의 한 집단에서 쉽게 이해되고 식별될 수 있는 상투적인 것이다. 재구성의 주 요소는 상투적인 이미지이고, 사진은 실상을 그대로 드러내는 요소로 쓰인 것이 아니라 상투적인 위장 요소로 사용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에 입력된 상투적인 이미지의 형성에 일익을 담당한 사진은 실상과의 특별한 관계(롤랑 바르트의 '존재했다')를 유지하면서 그 실상의 맥락을 자유 자재로 왜곡하고 재편성하면서 동시에 실상의 위력을 간직한다. 일상 생활에 깊숙이 침투한 상투적인 이미지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는 사진은 볼탕스키가 말하고자하는 우리 각자의 유년기의 진짜 얼굴을 찾는데 가장 적절한 매체일 것이다.이런 스테레오타이프한 이미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작가는 신문이나 잡지에서 볼 수 있는 질 나쁜 이미지(해상도가 떨어지는 인쇄물)를 이용한다. '진짜'라는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작가는 역으로(허위적으로) 이용한다."베네치아를 여행하는 방문객은 베네치아의 실상을 갖고 있지 않다. 베네치아에 대한 상투적인 이미지를 너무 많이 본 방문객들은 기존에 있던 이미지와 비슷한 실상을 체험하려고만 하면서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베네치아 이미지를 찾아서 집으로 가져간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카탈로그, 파리, 퐁피두센터, 1984, P. 76)위에서 언급한대로 유년기의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우리 식의 설날, 추석)에 대한 기억은 거의 코드화되어 상투적인 이미지를 이루고 있다. 작가는 우리시대의 상투적인 이미지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이런 판 위한 방법일 것이다. 볼탕스키 자신은 이런 모험이 만족을 주지 못할 것임을 자명하게 알면서도 이 행위를 시작했고 이런 불만족이 이런 행동의 원동력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볼탕스키는 몇천 개의 작은 흙공을 만들면서 무한이란 것에 대면했고 이런 '만드는' 행위의 순간 순간을 흙을 만지면서 잡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사소하고 유치할지도 모르지만 매 순간을 느끼고 소유하려는 존재론적인 욕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강렬한 순간은 물리적인 행위 곧 '만든다'에서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작업이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가 극복할 수 없는 절망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살고 시간은 우리를 과거 속에 설정하기를 그치지 않으면서 우리의 존재는 구체적인 증거물 없이 우리로부터 멀어져간다.현대 사회의 예술가들이 이런 조롱조의 작업을 시도하거나 기계문명의 소비 사회에 대한 반항을 주제로 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볼탕스키가 그의 방식대로 드러내려는 것은 현대 사회의 결점을 직접적으로 반격하는 것이 아니나 '근본적인 필요'를 표현하고자 한다. 이런 종류의 신념을 '본질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볼탕스키가 행하는 이런 류의 '만들기'는 '생존'을 위한 간단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만드는' 행위 안에는 흙과의 물리적인 접촉, 도피할 수 있는 반복적인 행동, 스쳐 가는 흩어진 생각과의 만남은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삶과 대문자 A로 시작되는 예술로부터의 탈피이다. 이런 '실존적인' 순간은 '만들기'의 순간처럼 사진을 찍는 행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우선 놓칠 수 없는 그 순간을 찾아서, '실존적인' 순간을 느끼면서 셔터를 누른다. 적어도 찍는 그 순간은 존재하고, 그 증거물이 물리적으로 제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행위는 매 순간을 담으려는 제어할 수 없는 셔터 누르기 욕구 (존재하고자 하는 욕구)와 연결된다."반복적인 충동은 사진 행위에서 본질적인 것이다. 사진은 한 장 찍는 것이 아니라 찍고 다.
{한국 의류 산업의 문제점과그 해결..-패션 비즈니스 개론 1학기 중간 보고서-의상디자인학과 3학년20032273 오영미우리나라 패션 산업구조의 문제점들..-무점포 형태의 유통업 등장( TV 홈쇼핑, 인터넷 쇼핑몰등)-구조적으로 취약한 생계의존형 중소유통업-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유통전문인력이 부족 등등.....-백화점 중심의 유통구조 지속 주제백화점 중심의 유통구조가 가지는 문제점우리나라 패션의 유통은 백화점이라는 종합 쇼핑공간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 지고있다그러나 패션에 있어서 이런 백화점 중심의 유통은 최근 대형 할인점이나 온라인 쇼핑몰 등의 강세로 백화점은 계속해서 위축되고 침체되고 있는 실정에서 적합하지 않으며, 생산단가에 있어서도 유통 단계를 늘리는 결과를 주어 적절한 가격에 소비자에게 상품을 공급하는데 있어서도 불리하다.{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보았을 때에도 백화점이라는 소비 공간은 고급스럽고 고가의 상품을 파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비시장이 위축되거나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경우 기피하게 된다.백화점 중심의 유통구조 발생백화점이라는 쇼핑 공간은 다양한 제품을 한 자리에서 만나고자 하는 소비자의 욕구에 의해 발생되었으나 그것은 우통구조의 단계를 한 단계 더 늘림으로써 생산단가를 더 높이는 요인이 되었다.또한 백화점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종합 쇼핑몰이라는 의미보다는 고가의 물건들을 모아놓은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해짐으로써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여유롭지 못한 소비자, 시민들을 위축시키는 역할까지 한 몫하고 있다.소비는 소비행위 자체에 대한 위축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데 이런 백화점 중심의 쇼핑 구조는 쇼핑공간에서 조차 소비자의 경제력을 구분시켜 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이런 다양한 요인들은 백화점중심의 유통 구조가 바람직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10 = per)ProductPricePlacePromotionyesterday4321today3322tomorrow2.52.52.52.5-소비의 중요 요인-유통 구조의 해결첫 번째로 백화점을 대신해 줄 유통구조는 바로 온라인이다.초고속 인터넷의 확산으로 인터넷 쇼핑몰이나 브랜드 홈페이지가 일상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지금, 수층에 달하는 백화점을 발아프게 걸어다니면서 쇼핑을 할 사람은 점점 적어지게 될수밖에 없다. 앞으로 기술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온라인 쇼핑은 더더욱 오프라인 쇼핑에 버금갈 정보와 이미지를 제공할 것이고 마치 내 몸에 입어 본 것처럼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소비자들은 상품을 구매하게 된다.{두 번째로 백화점 중심의 유통구조를 대신할 것은 SPA형 브랜드나. 대형 SPA를 표방한 Total Brand 매장의 복종별 확산, 다양하게 진화하는 신 감성 캐주얼 군의 가두점 전략 강화등이다.소비자의 다양한 Taste를 충족시킬 수 있는 멀티셀렉트샵의 성장이나의류제품 외에도 고객에게 흥미와 재미를 줄 수 있는 복합 문화시설과의 Collaboration전개 등도 주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생산자가 가두 매장을 통해 유통단계를 줄임으로써 소비자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물품을 공급하고, 매장의 인테리어나 디스플레이등을 통해 브랜드의 특성을 더 잘 보여주거나 더 큰 홍보효과를 얻을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SPA형 브랜드들이 그렇듯 대규모의 단독 매장을 100% 활용하여 다양한 상품을 동시에 소비자에게 선보이는 장점을 가질수 있다.소비자들은 더 저렴한 가격에 더 다양한 상품을 다양한 품목이 모인자리에서 쇼핑을 즐길수 있게 되는 것이다.게다가 단순 의류뿐만 아니라 Total Fashion이 갖추어진 매장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하나의 축소된 백화점이다. 물론 그곳은 하나의 브랜드로 이루어져 소비자가 선택한 브랜드의 특성을 가득 담고 있음은 물론이고 가격 또한 백화점보다 저렴하다.소비자는 자신의 기호에 맞는 어느 하나의 브랜드, 혹은 여러 브랜드의 갖가지 상품(의류에 국한되지 않고 토탈 패션의 개념으로서 의류+소품+생활용품+인테리어 제품 등등)을 대형매장이나 스트리트형 매장에서 만나볼수 있다. 이런 가두형 매장이 하나의 지역에 다양하게 모이게 되면 그것은 백화점에 못지않은 밀집된 쇼핑 공간으로써 역할을 하게 된다.믈론 이것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초기에 브랜드를 생성하는데 있어 더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한다.그래서 최근 백화점에서 이런 토탈 패션의 내용을 접목시킨 멀티숍 방식을 통해 브랜드를 새로 런칭하고 입점하는 방식도 생겨나고 있다.아직은 시도되고 있는 시점이지만 백화점이라는 공간의 한계에 다다를수록 새로운 방식의 유통방식은 계속해서 도입되게 될것이다.관련 보도 자료====================================================================현재국내 로드샵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지만 매장의 형태나 상품의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해 아직 미성숙한 상태로 여전히 백화점 중심의 유통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대형 로드샵을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과 유통 비용 절감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해외 유명 SPA 업체들의 면면을 보면 대형 직영점을 운영한다는 점 외에 100여명에 이르는 본사 디자이너와 정보를 수집하는 바이어, 자체 운영하는 대규모의 생산 공장, 본사, 공장, 매장 간의 전산 네트웍 등을 그 요소로 들 수 있다. 따라서 이들 외국계 SPA 브랜드들이 국내에 도입될 경우 그 특성을 살리는 데 한계가 있으며 기존 일반 브랜드들과 비교했을 때 매장 규모가 대형화됐다는 점 외에는 큰 특이점을 찾을 수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편 이른바 ■■한국형 SPA■■를 표방한 ■■쿠아■■ ■■캐쉬■■ 미아오■■ 등 SPA형 내셔널 브랜드의 수도 늘어가고 있다.그러나 현재 국내에서 런칭된 SPA형 브랜드들의 경우 매장 형태나 규모를 흉내내는데 그치는 수준이다. 문제는 SPA의 태생 자체가 초기에 막대한 투자를 필요로 한다는데 있다. 생산 설비와 내부 인력 인프라, 초기 대형 매장에 대한 투자 등 기존 일반 브랜드보다 몇 배에 이르는 자금이 필요한데 그것 자체가 과연 실현 가능하며 가능하다 하더라도 국내 소비 시장에서 그러한 투자를 다시 환원할 정도의 규모의 경제가 이루어질 것이냐가 다시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업계 전문가들은 이에 앞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인드의 전환이라고 지적한다. 패션컨설턴트 이경옥씨는 ■■한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라 여러 조직이 일관된 시스템 하에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일사 분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것이 SPA의 가장 큰 요소■■라고 설명한다.출처 : 어패럴뉴스, 2004========================================================================================================================================================================백화점들이 브랜드와 제품군을 섞어 파는 "코파트먼트 스토어"로 변신하고 있다. 봄 새단장에 맞춰 백화점마다 브랜드 별로 운영되던 매장을 묶는 작업이 한창이다. 사진은 모델하우스처럼 꾸며 인테리어 소품.가구.조명기구를 한꺼번에 팔고 있는 한 매장. 주부 김정숙(55)씨는 이불을 사기 위해 17일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에 갔다가 어리둥절했다. 기존의 이불 매장 자리에 100여평 규모의 모델하우스가 꾸며져 있었다. 여러 개의 침실로 구성된 이 곳은 침구뿐만 아니라 침대.조명.탁자.커튼 등을 한꺼번에 판다. 김씨는 "방을 꾸미는 데 필요한 상품이 한자리에 모여 있어 어울리는 제품을 고르기가 수월했다"고 말했다.이처럼 한 매장에서 여러 종류의 제품을 함께 파는것을 '코파트먼트(co-partment.co는 '공통'의 뜻)스토어'라고 한다.브랜드별로 매장을 나누어 파는 디파트먼트(departmet)와는 반대 개념이다.롯데.현대.신세계.갤러리아 백화점이 올 봄 새 단장을 하면서 이런 코파트먼트형 매장을 대폭 확대한다. 명품 판매를 늘리고 의류 매장을 강화하는 등 백화점 영역을 넘보고 있는 할인점을 따돌리려는 전략이다. 김인호 현대백화점 유통연구소장은 "백화점도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마케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현대백화점은 다음달까지 본점 지하에 주방용품.인테리어.가구 등을 한자리에서 파는 500여평 규모의 매장을 조성한다.'아르 드 메종' 란 이름의 이 매장은 상품.브랜드 간의 벽을 허물었다.신세계 백화점은 브랜드 10여개를 묶어 파는 의류 매장을 만든다. 18일과 21일 강남점에서 각각 문을 여는 '블루핏 에시드'와 '스튜디오 블루'이다. 이 곳은 청바지와 티셔츠.액세서리 등을 함께 판다. 갤러리아백화점은 지난해 9월부터 본점 웨스트 5층에 270여평 규모의 '토탈 리빙숍'을 운영 중이다. 가구.식기.침구 등 70여개 브랜드를 한 매장에 배치했다. 이 백화점 관계자는 "이 매장의 매출은 문을 열었을 때보다 15%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 지난해부터 운영하는 청바지 종합매장 '블루핏'도 잘 나가고 있다.이 백화점 여성캐주얼팀 김웅일 부장은 "브랜드를 따지지 않고 의류 및 액세서리를 고르려는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윈드서핑의 역사와 장비20032273 의상디자인 오 영 미목차윈드서핑의 역사 한국에서의 역사 장비설명윈드서핑의 역사윈드서핑은 서프 보드에 마스트를 달고 바람의 풍압을 이용하여 물위를 활주하는 스포츠이다. 윈드서핑은 1970년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 해안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회사의 부사장으로 근무하는 호일 슈바이쳐(Hoyle Schwectzer)와 초음속기 설계가 짐 드레이크 (Jim Drake) 가 해양스포츠 동호인 이었는데, 요트맨인 호일 슈바이쳐는 보드위에서 사람이 서서 세일을 조종하는 것을 생각해 냈고, 서핑맨인 짐드레이크는 마스트가 요트에 수직으로 고정되어 서있는 것이란 개념을 버리고 360도 회전이 가능한 유니버상 쪼인트를 만들었다.이후 이들은 미특허상표청으로부터 특허권을 취득권을 취득하였다.하지만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법률상의 문제로 특허를 못한 나라도 있었으나 아이러니컬하게도 특허를 획득하지 못한 유럽(독일, 영국, 블란서, 이스라엘, 스위스)에서는 폭발적인 붐을 이루었고 이로인해 장비제작 및 판매산업이 엄청나게 발전 하였다. 그 후 1976년 바하마 세계 윈드서핑 선수권대회에서 '로비 내슈'라는 슈퍼스타가 등장한 것을 계기로 현란한 기교를 부릴 수 있는 레저스포츠로 확실하게 자리를 굳히고 급속히 확산되어 이제는 대표적인 수상레포츠로 널리 알려져 있다.한국의 역사우리나라엔 1979년 들어왔는데, 윈드서핑이 우리 나라에서 맨 처음 일반인에게 대대적으로 홍보되었던 계기는 대한 요트협회 권희범씨의 현해탄(부산 - 대마도)과 대한요트협회횡단이 효시가 되었으며 그후 해양소년단의 엄용대씨의 한일해협(부산 - 일본)횡단으로 일반인에게 알려지게 되었다.그리고 보드세일링협회가 서울 올림픽 윈드서핑 퍼레이드(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행사중 유일하게 동호인으로서만 진행됨)행사에 참가하여 이를 계기로 당시 올림픽 조직위원회 박세직 위원장으로부터 감사패를 수여받았으며, 당시 고건 서울시장으로부터현재의 뚝섬지구 훈련장을 사용할 수 있는 허가를 얻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윈드서핑이 처음으로 시작된 곳은 경기도 대성리의 남한강. 그러나 지금은 단연 한강이 윈드서핑의 요람이다.86년 개장한 한강시민공원에는 20개종목 1백74곳의 각종 체육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특히 잠실대교를 중심으로 한 뚝섬부근과 광나루 일대에는 수영, 보트, 윈드서핑 등 수상 레포츠시설이 많아 클럽의 90%가 몰려 있다. 윈드서핑은 요트장 뚝섬지구, 잠원지구, 성산대교, 팔당 유원지, 샛터 등에서 행해지는데, 특히 한강은 3∼5월, 10∼11월 동안 윈드서핑에 알맞은 서풍이 불며,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은 1m정도의 파도까지 일어 점프를 할 수 있으므로 초보자에서 중급자까지 부담없이 할 수 있는 장소이다. 서핑과 달리 바람을 이용해 힘을 얻고, 요트와 달리 단순하면서도 돛을자유로이 움직이며, 자신의 몸이 일부가 되어 다양한 기술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급속도로 발전되어 왔다.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이후로 올림픽에도 공식종목으로 채택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올림픽이후 확고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윈드서핑 장비보드(Board) 보드는 별명 하루라고도 하며 성인이 3명정도 탄 정도로서는 가라앉지 않을정도의 부력을 가지고 있다. 그 구조는 크로스링폴리에틸렌, ABS, 에폭시수지, 글라스피버등의 재료로써 겉껍질을 만들고, 포말성우레탄, 에더폼등을 주입한 것이 보통이다. 개중에는 속이 빈 보드도 있지만, 이 속이 빈 보드는 파손되기쉽고, 위험성이 많다.보드에는 앞 뒤의 구별이 있으며, 대체로 3등분하여 위 그림과 같이 앞부를 바우,중앙부를 미집, 뒷부를 스턴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 바우에서 시작해서 스턴쪽으로보드중앙부에 선을 그어서 2등분하여 좌측을 포트사이드, 우측을 스턴보드사이드라고한다.보드를 옆에서 보아 윗부분을 덱, 아랫부분을 버텀이라고 부른다. 대거보드(Dagger Board) 이것은 센타보드라고도 부르는 것으로써 보드가 옆으로 흘러가는 현상을 막아준다.즉, 세일링보드가 바람에 대하여 어떤 각도로써 세일링할 때 그 각도를 흐뜨러지게하지 않기 위하여 유용된다.대거보드는 보드에 삽입식으로 되어 있으며, 그 중에는 삽입한 그대로 보드 아래에넣을 수 있는 스윙백식인 것도 있다. 이 스윙백식인 대거보드는 발로 조작하며보드에 대하여 어떠한 각도로도 조절할 수 있다. 스케그(Skeg) 이것은 핀이라고도 부르며 보드의 직진성을 안정시킨다. 또 보드가 옆으로 흐르는것을 방지하기 위하여도 유용된다. 보드의 버텀스턴에 나사못 종류로 부착하기도하고 끼워 맞춤식이 되어 있는 형인 것도 있다올라운드커 스 텀슬 라 롬보드부분 - 보드,데거보드, 스케그 3부분으로 나뉨 세일부분 - 세일(돛), 마스트(돛대), 붐(조종간) 마스트 풋 - 보드와 세일부분을 연결시켜 주는 장치 생명줄 - 마스트 풋이 고장 났을 때 보드와 리그 부분이 완전히 분리되는 것을 막기 위한 줄 라이프 자켓(구명조끼) - 반드시 착용하는 필수 장비 이외에도 보온을 위한 슈트, 보완을 위한 하네스 등이 있다. 기본장비는 대여하는 것이 경제적이며 대여료는 3만원선. 동호인 클럽에 가입하면 연회비만으로 장비까지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어서 경제적이다.연결부품(조인트) 마스트베이스(Mast base) 이것은 세일부와 유니버설조인트부를 연결해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재질로써는 경질 플라스틱제품과 알루미늄제품이 사용된다. 유니버설 조인트(Universal joint) 이것은 세일링보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심장부라고도 하는 곳이다. 이 유니버설조인트에 의해서 보드부와 세일부가 연결되고 있고 세일이 바람부는 방향에따라 360도 회전이 가능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유니버설조인트인(Universal joint in) 유니버설조인트를 보드에 연결시키는 팩으로 고정식과 이동식이 있다.참고http://www.sekcb.co.kr/ http://www.windsurfingkorea.co.kr/ http://www.letto.biz/index.php http://www.snowmania.co.kr/{nameOfApplication=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