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영의 신 마쓰시타 고노스케마스시타 고노스케 그는 누구인가?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 중의 한사람, 기업경영의 신이라고까지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 단 3명으로 출발한 헛간 가내공업에서 군국주의 일본의 열악한 기업환경을 기업인으로서의 사명과 불굴의 용기, 독특한 경영 철학으로 극복하여 오늘날 14만여 명의 종업원과 연 매출액 6조여 원의 규모로 성장시킨 대기업 마쓰시다 가전왕국의 설립자이다.내셔널' '파나소닉' '마쓰시다' 상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보다도 이 그룹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기업경영의 신'으로 전 세계에 더욱 잘 알려져 있다.국민학교 4학년 중퇴하고, 남의 가게 점원 생활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그가 23세 때 전사원 3명으로 사업을 일으켜 관계 회사 71개사, 종업원 13만 5천명, 연간 매출액 5조 6백억 엔의 거대 기업 군을 거느려 오늘의 '마쓰시다 가전왕국'을 이룩한 신화의 주인공.그러나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남들이 자신을 특별한 영웅으로 취급하는 것을 싫어한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내재해 있는 '정직과 성실'이야말로 오늘의 자기를 있게 한 두 기둥이라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정직과 성실로 누구나 노력하면 자기와 같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누군가가 그에게 성공의 비결을 물었을 때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라고 대답하며 미소지었다고 한다. 물론 그에겐 운도 많이 따랐다. 그러나 오늘의 그를 있게 한 것은 역시 '성실과 정직'으로 인간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한 그의 경영 철학이다. 즉 '기업은 인간이다'라는 경영 명제에 철저한 사람이 그였던 것이다.흔히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기업 경영요체로첫째 날마다 새로워지는 상품과 기술을 개발하는 시대 감각과, 앞을 내다보는 형안둘째 불경기와 역경을 오히려 획기적인 진보와 혁신의 계기로 활용하는 낙천주의셋째 침식을 잊고 열중하는 기술 개발과 상품 판매에 대한 열성, 과당 경쟁을 죄악으로 보고 기업을 사회의 공기(公器)로 보는 상도덕과 기업관넷째 경영을 종합 예술로 보는 조직 관리 등을 열거한다.그러나 그를 아는 이들은 어느 무엇보다도 사람을 중심으로 한 기업 경영, 종업원들을 활력있게 만드는 인간관리가 그의 비법이라고 지적한다.회사 내 파벌을 없애려 하지말고 오히려 활용하여, 대립하면서도 조화하는 노사관계를 유지하라는 것이다.일본은 왜 마쓰시타를 찾는가가난을 없애겠다는 신념 하나로 일본 최고 갑부자리에 오른 뒤 사재를 털어 가며 정치개혁을 추진했던 마쓰시타의 경영이념이 요즘 다시 일본에서 각광받고 있다.일본 교토(京都) 남쪽에 있는 마쓰시타 자료관은 개관 6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그의 경영정신을 배우려는 각 업체의 사원 연수단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젊은 창업자나 공인회계사들도 적지 않다. 지금까지 방문객은 3만3000여명. 일본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오히려 관람객이 부쩍 늘었다.이곳을 찾는 이들은 몇 시간 동안 마쓰시타의 강연록이나 영상테이프를 관람한 뒤 하나같이 바로 지금의 일본이 마쓰시타 같은 경영자가 필요한 시기라며 고개를 끄덕인다.마쓰시타는 최근 일본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밀레니엄특집 설문조사에서 지난 1000년 간의 가장 위대한 경제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득표율은 전체 응답자(8559명) 중 31.2%. 2위인 혼다 소이치로 혼다기연공업 창업자(12.0%)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지주집안의 8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마쓰시타는 부친이 쌀장사에서 실패하는 바람에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했다. 찢어지는 가난을 경험한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오사카에 나갔다가 지나가는 전차를 보고 앞으로는 전기의 시대라는 데 착안했다. 그리고 곧바로 전기회사에 입사해 전기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15세 때의 일이다.22세에 독립해 전기제품을 만들어 팔았다. 전구를 한꺼번에 두 개씩 끼울 수 있는 쌍 소케트와 자전거의 전지라이트가 크게 히트하자 20대 후반에 청년실업가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미 부모형제는 가난을 이기지 못한 채 모두 병으로 사망하고 그 자신도 폐 질환을 앓고 있었다.1920년대 세계공황의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했으나 그는 섣부르게 인력을 감축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사업부제를 도입하고 주 2일 휴무제를 실시했다. 경기가 조금 어려워졌다고 사람부터 자르고 보는 현대 기업들보다 훨씬 앞선 경영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또 종업원들에게 경영실태를 투명하게 공개해 유리창 경영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가난했던 경험 때문에 부동산 등의 투기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았다. 1980년대 말 부동산투기에서 시작된 거품경제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에서 새삼 마쓰시타의 경영이념을 되새기고 있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마쓰시타전기의 사명은 물자를 끊임없이 만들어내 굶주림 없는 이상향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오늘부터 250년 간을 사명달성 기간으로 정한다. 그는 1932년 5월5일 사원들에게 이같이 선언한다. 그는 일본종교인 천리교를 견학한 뒤 경영이란 세상에서 가난을 없애는 성스러운 사업이라고 생각하게 됐던 것이다.마쓰시타전기는 아직도 이 같은 정신을 이어받아 매일 아침 각 사업장에서 ‘산업보국 정신’ 등 ‘일곱 가지 정신’을 경전처럼 외우며 하루 일과를 시작해 ‘마쓰시타교’라고 부를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