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회와 동떨어진 섬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사회와 함께 전개된 활동이다. 오늘날 서양 과학의 역사는 세계과학사와 일맥상통한다. 과학과 관련 학문의 대표자들은 점성술, 대체의학, 손금보기 그리고 신비주의적인 사이비과학이 러시아 및 세계의 다른 여러 나라에서 번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우려한다. 천체에 의해서 인간의 운명이 결정된다거나, 마술적인 도구, 혹은 마법을 믿는 사람은 과학적으로는 이러한 믿음이 더 이상 지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성이 있다.지나간 시절에는 사람들이 점성술, 연금술, 신비주의 그리고 대체의학적인 민간요법 등을 믿고 사용했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은 과학이 첫발을 내딛고 있을 때, 세계를 바라보는 신화적이고 마법적인 관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전과학적인 세계관과 인식적인 목적을 제공했다. 사람들은 천체가 신들의 힘의 나타내는 것이며 마법적으로 이 땅의 물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었었다. 화학적인 원소는 마법의 산물로 보였다. 사람들은 화학의 본질과 물체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현재의 많은 사람들도 심리적인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투시, 점성술, 그리고 다른 미신 등을 믿는다. 다른 사람들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데 있어서 외부의 권위자에게 조언을 구한다. 감당하기 힘든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문제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녀, 샤먼, 그리고 돌팔이 치료사들을 찾게 한다. 점성술적인 힘을 믿는 것은 사람들에게 선택에 대한 책임감을 회피하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그들의 실수를 용서하게 한다. 따라서 과학교육이 널리 퍼지고, 과학이 진보한 시대의, 우리는 미신이 자발적으로 사라질 것으로 더 이상 간주할 수 없게 되었다.역사적인 입장에서 살펴볼 때 흔히 과학의 시작은 고대 그리스 과학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것이 엄밀한 의미에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고대과학은 오늘날의 과학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자연 그 자체의 이해에 목표를 두었다기보다는 종교적인 또관측에 주력한 결과 천문학에도 많은 진전을 이룩했다. 달력을 농업행사와 일치시키기 위해 때때로 여분의 달을 끼워 넣었는데 이는 오늘날 태음력에서 윤달을 삽입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이러한 천문학적 지식 역시 농경에 관한 계절 지식의 필요성에 의한 것이었고 기하학적인 아닌 주기성의 계산 등 수학적인 면에 특징이 있었으며 점성술에 관련되어 있었다. 또한 당시에는 병의 근본 원인은 신에게 있다고 생각하여 병의 치료는 신의 노여움을 달래야 한다고 생각했고 약은 단지 고통을 덜어줄 뿐이라고 생각했다.이집트인들은 실용적인 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수학과 천문학과 같은 추상적인 분야에서는 메소포타미아보다 늦게 발달하기 시작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의학분야에 있어서는 이집트가 메소포타미아보다 더 큰 발전을 이룩했다. 이 시대에는 질병을 인간이 악령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판단해서 인간에게서 악령을 몰아내는 여러 가지 처방이 질병의 치료에 사용되었다. 환자의 증상과 더불어 처방을 제시하고, 미이라를 만들기 위해 해부학이나 생리학 등 외과적인 지식도 발달했는데 다른 의학 분야와는 독립적인 기술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도 다분히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그리스)그리스인들은 일찍부터 마법이나 미신에 의하지 않고 자연현상인 우주체계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전통이 유럽의 문화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특히 근대 과학탄생의 산실이 되었다. 당시 이오니아 사람들은 메소포타미아나 인도 중국과 같이 멀리 떨어진 외부로부터 오는 여러 가지 자극에 노출되어 있었다. 특히 밀레투스에는 탈레스를 중심으로 한 자연철학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자연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신의 뜻으로 파악하지 않고 자연법칙에 의해 나타나는 자연현상으로 이해하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인간과 자연에 대한 관계설정은 자연과학의 발전과 내용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자들이 자연을 신에게서 분리하여 자연 자체로 파악하려 한 원자론자들의 우주관은 기계론적 우주관이었다. 그들은 원자의 형태, 위치, 질서와 운동, 결합, 분리를 모든 물질적 현상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고 자연을 탐구하는 것은 이런 근원에 대한 탐구라고 생각했다. 원자론자들은 신을 자연에서 배제하려 했을 뿐 아니라 신의 존재마저도 의심을 하고 물질의 존재와 변화에 신의 의도에 의한 목적이 내재되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원자론은 유물론의 출발점이며, 후세 과학사상에 영향을 끼쳤다.또한 의학에 있어서 히포크라테스는 4가지 체액설을 주장하며 의사의 임무는 자연의 치유능력을 이용하여 질병이 빨리 치료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들은 과학적인 방법을 질병의 치료에 도입했다. 마술과 신비주의가 지배하던 당시에 히포크라테스는 이들을 배격하고 과학적 방법으로 치료할 것을 권했으며 특히 그가 진료하고 치료했던 사항을 기록으로 남겨 진료기록을 시작했던 것은 특이할 만하다.(로마)로마는 그리스가 다른 여러 나라의 문화를 흡수하여 변형하고 발선시켜 독창적이고 뛰어난 문화유산을 남긴데 비해 대조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인들과는 달리 상업적인 여행자의 계량적이고 공간적인 사고가 결여되어 있었으며, 정치적인 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기하학이나 수학엔 관심이 없었으므로 자연과학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로마인들이 과학적인 사색이나 실험을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그리스 문화에 대한 깊은 존경은 가지고 있었다. 로마가 분열되고 서로마 제국도 멸망하기 시작하면서 이시기 동안에는 각종 신비주의적 종교와 철학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심지어는 신 플라톤주의자들이나 신 피타고라스주의자들도 사람들을 신과의 결합으로 인도하려는데 관심을 보였으며 그런 목적을 위해 마술을 사용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그들은 자연을 직관, 마술, 신비주의에 의해 이해하려고 했다.(중세)로마시대 말기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여러 가지 종교와 철학 중에서 기독교의 영향이 제일 컸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그리스의 과학과 철학을 이교 체계를 형성하였다. 또 그리스의 과학에 주석을 달고 그 가치를 분석하였다. 이러한 아랍세계의 과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연금술이다. 연금술은 알렉산드리아 시대와 로마에서도 성했으며 중국에서도 불로장생약을 만드는데 이용됐지만 아랍세계의 연금술은 좀더 신비적이며 화학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의 4원소설을 바탕으로 금속의 변화를 정량적으로 다루려고 시도했다. 이처럼 서유럽이 약 5세기동안 신비주의와 마술이 횡행하는 암흑의 늪에 빠져있는 동안 그리스 과학의 전통을 계승하여 보존하고 발전시켰다가 11세기 이후 서유럽에 새로운 지적 부흥의 기운이 들 때 이를 서유럽에 전한 민족이 바로 아랍민족이었다. 이로써 이슬람 과학은 근대 과학으로 가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근대)중세를 지배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체계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과학체계를 확립시키기까지의 16세기와 17세기의 2세기를 과학혁명기라고 부른다. 과학혁명은 고대와 중세까지 오랫동안 함께 해온 철학과 과학이 결별하고 과학이 기술과 결합한 사건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과학혁명은 중세의 자연관과 과학체계를 완전하게 부정하고 이에 대처할 새로운 체계를 확립시켰다는 점에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불완전한 개혁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이비과학이라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은 것을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 이론들에 기초를 둔 여러 가지 아이디어의 모음이다. 이론은 경험적인 현상의 범위에서 설명이 되고 의미있는 방법으로 검증되어야만 과학적이라고 한다. 과학적인 검증은 주로 이론으로부터 실험적인 예상을 추론하여 실시한다. 의미있는 방법이라는 것은 최소한 이론상으로라도 이론이 부정될 방법이 있어야 한다.즉, 과학이란 단편적인 지식이나 손재주가 아닌 체계적인 것이어야 하며 때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지 않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현상이어야 한다. 그리고 자연현상의 원인을 신이나 다른 어떤 것에서 찾지 않고 검증가능한 방법을 통해 자연적인 것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한다.우리는 이제 사이비과학은 틀린 과학이 아닌 나쁜 과학이다.과학은 오류를 토대로 번성한다. 과학은 오류를 하나씩 제거해나가는 방식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언제나 틀린 결론이 있었지만, 그것은 잠정적이다. 가설이 세워지지만 가설은 언제나 반박될 수 있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대안적 가설들은 실험과 관찰을 피할 수 없고 과학은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해 여기저기를 헤맨다. 물론 과학적인 가설이 반박되는 경우 독특한 감정이 일어 마음이 상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반증은 과학적 기획에 있어서 핵심적 것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사이비 과학은 이와 정반대이다. 사이비 과학의 가설들은 흔히 반증할 가망이 있는 어떠한 실험으로도 공격할 수 없도록 정밀하게 틀이 짜여진다. 그래서 심지어는 가설을 무효화하는 것조차도 원리상 불가능하다. 사이비 과학 종사자들은 방어적이며 만반의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다. 회의적인 태도로 엄밀히 검토하는 것을 거부한다. 사이비 과학의 전제가 과학자들을 흥분시키는데 실패할 경우, 그것을 과학자들의 억압 음모라고 주장한다.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분하는 또 한 가지 날카로운 기준은 인간의 불완전성과 오류 가능성에 대한 인정여부일 것이다. 이것을 신랄하게 인정하는 곳에서 과학은 시작된다. 하지만 사이비 과학은 자신의 불완전성과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길 결단코 거부한다. 따라서 사이비 과학은 심각한 것일지도 모르는 우리의 오류가 우리의 영원한 동반자가 되게 만든다. 만일 우리가 조금만 용기를 내어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평가할 수 있다면, 비록 그것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무리 슬픈 반성일지라도 우리의 기회는 엄청나게 증가할 테지만, 사이비 과학은 이 길을 차단함으로써 우리의 길을 박탈한다.그리고 사이비 과학은 과학에 비해 대중에 더 쉽게 퍼질 수 있다. 과학은 그 특성상 모든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반해서 사이비 과학은 인간의 감정적 욕구에 호소하고 개인적 갈망에 대한 환상을 제공함으로서 대중에게 더 쉽게 다가간다. 또한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그 사람이 죽는 날까지 같다.
목 차Ⅰ. 서 론Ⅱ. 본 론1. 알콜중독의 정의2. 알콜중독의 원인3. 알콜중독의 발전단계4. 알콜중독증의 치료Ⅲ. 결 론Ⅰ. 서 론옛날 어느 산골에 노모를 모시는 효자가 살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피질에 걸려 돌아가시게 되었다. 효자는 백방으로 약을 써 보았으나 아무효험이 없었다. 그러던 중 다행이도 용한 의원을 만나 처방을 얻게 되었는데 사람의 간 3개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이 어처구니없는 처방을 며칠을 고민하던 효자는 일단 모친의 병환을 고치기로 결심하고 깊은 산속에 숨어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점잖은 유학자가 지나가고 있었다. 못할 짓이었지만 그 사람을 죽이고 간을 꺼내어 어머님께 드렸다. 다음날 같은 장소에서 기다리던 효자는 그 곳을 지나가던 스님을 죽이고 간을 어머님께 드렸다. 그 다음날 효자는 미치광이를 죽이게 된다.며칠 후 거짓말같이 모친의 병이 고쳐지자 효자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러나 사람을 죽인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던 효자는 결국 죽은 사람의 시신을 고이 거두어 양지바른 곳에 장사를 지내 주었다. 이듬해 봄이 되자 이들의 무덤에서 이상한 싹이 돋아나고 가을이 되자 아름다운 열매가 열렸다. 효자는 이를 귀히여겨 작은 단지에 보관해 두었다.수개월이 지난 후 우연히 작은 단지를 열어본 그는 향기로운 냄새와 함께 이상한 즙이 고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향긋한 내음에 끌려 즙을 마신 효자는 이윽고 취하게 된다. 처음에는 유학자와 같이 점잖게 즙을 마시던 효자는 조금 취하게 되자, 스님이 염불을 외듯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하더니 계속 마셔 더욱 취하게 되자 이 착한 효자도 마치 미치광이가 발작하듯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마구 행패를 부리게 되었다.급속한 경제성장속에서 우리의 음주문화는 여러면에서 많은 변화를 해오고 있다. 예전에는 대가족 제도하에서 제삿날이나 명절에 음복으로부터 시작되는 절제된 음주문화를 집안의 어른으로부터 배웠으나, 지금은 핵가족화된 가족제도하에다가 가족 구성원들 각각의 바쁜 일정으로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 한다는 개념이 사라 공공연한 거부와 죄의식을 주입시키거나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도덕주의를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또 알코올중독이 특정한 국민이라든가 문화적 집단에 많이 발생하는 이유에는 음주의 습관과 가치, 그리고 술에 대한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받고 있는 스트레스로 인하여 압박을 피하고 평안이나 도취감을 즐기기 위해 처음에는 한정된 양으로 시작하여 마시다가 약물이나 알코올은 없어서는 안될 버팀대가 되고 사람들은 그것들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삶의 고통을 완화시킨다.동료압력과 집단 가입 - 동료집단의 압력은 행동에 명백한 영향을 미치고 사회적 행동을 배우고 수용을 얻는 한 방법으로 개인은 집단에 참가하고 동료들의 행동에 대처한다. 즉 집단은 개인의 자기 개념과 방향 그리고 여성인 경우 어떤 관점을 가지고 세계에 반응하는가에 대한 개념을 세우고 유지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약물의 소비는 집단에 참가하기 위한 요구사항이 된다. 즉 집단의 영향력이 심리 행동적 물질의 사용을 포함할 수 있다. 가족은 또한 약물사용에 대한 태도에 양향을 준다. 부모의 모습은 영향력 있는 모델이 되며 어린이들은 그들의 행동모형을 부모들과 동일한 형태 안에서 구한다.이 이론의 근거는 도시 특수 집단에서 발견될 수 있다. 그들은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굉장히 더러운 곳에 살고 있다. 그 지역은 가난하고 합법적인 고용인이 별로 없고, 배움은 거리에서 행해지고 있다. 이런 환경에 처한 사람들은 의기소침해지며 좌절감을 느낀다. 이런 좌절의 연속은 쉽게 특수 집단으로 유도될 수 있고 약물을 사용하게 된다.③ 생물학적 측면에서의 원인얼마 전까지 알콜중독자와 같은 약물의존자를 단순히 약한 의지를 가진 자로 오해를 해왔다. 그러나 1956년 미국의 약물의존이 당뇨나 암처럼 하나의 병이라고 밝혀짐으르써, 약물의존은 병이라는 개념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약물의존은 어떤 신체적 증후군을 통해서 알아낼 수 있다. 강박행동은 중독된 사람이 부적절하고 과도하며 지속적인 약물의는 술을 이용하여 기분 변화를 일으키는 단계로서 유쾌함이나 기분 전환을 시키기 위해서는 술을 이용하면 틀림없다고 터득한 후에 시작된다. 알코올에 대한 의존심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므로 모든 것은 술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몰래 술을 마시는 경우가 잦아지고 음주가 일상적인 일과로 변한다. 또는 힘든 일을 마친 후에, 승진 혹은 월급날 축하하고 싶을 때, 기분이 울적할 때, 기분을 좋게 만들고 싶을 때 술을 마신다. 스스로 "진정"으로 술을 끊으려고만 하면 언제든지 끊을 수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술은 더 이상 즐기는 대상이 아니라 경계의 대상으로 변화된 상태로써 자신의 의지로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술에 대한 통제력(자제력)을 상실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술을 입에 대면 취할 때가지 마시게 된다.더욱이 음주가 지나쳐 술을 마시던 동안이나 당시의 일, 그리고 음주 후의 일을 술이 깬 후에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필름이 끊긴다'는 '단기 기억상실(blackout 또는 grayout:건망증)'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몰래 술을 마시고 술병을 감추는 등 방어적이 되면서 술로 인한 문제들을 부정한다. 음주의 필요성에 대한 타당성을 강조하고 알코올에 몰두하게 되며 행동에 일관성이 없는 때이다. 이제는 알코올이 음료로써가 이나라 약물로써 작용되기 시작된다.그리고 가정 불화, 사회적응 장애와 심리적으로 불안, 우울증상이 나타난다. 성격이 급해지고 짜증을 자주 내며 의심히 많아진다. 부분적으로는 신체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수년이 지나면 3단계로 이행하게 된다. 술이 조건화된 상태이다.초기 알코올 중독 단계의 증상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① 필름 정지 (Blackout)알코올중독에 관한 한 필름 정지(일시적 기억상실)는 첫번째의 "위험신호(danger signal)"이다. 이것은 술 취한 다음날 아침에 깨어났을 때, 이들은 지난 저녁 한 시점을 기점으로 그 다음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거나(blackout), 다음 몇 시간만 어슴프레 떠오를 뿐이다(grayo이들은 술집 영업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함께 한다. 이들이 어떤 모임에 초대될 때면, 얼마만큼 술을 마셔야겠다는 계획도 없다. 이들에게서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사실은 술에 관하여는 그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알코올중독증적인 징후들이 진행되면서, 술을 마시면서 어떤 계획이나 다음에 해야 할 스케줄을 생각할 수 없다. 다만 술, 그 하나만으로 만족해 한다. 이쯤되면 문자 그대로 술에 관해는 통제불능의 사람이 분명하다.이렇게 되기까지는 사람에 따라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무나 쉽게, 아예 처음부터 이 통제 불능의 상태를 경험하기도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수년 동안을 많은 양의 술을 습관적으로 마셔 오지만, 이러한 현상까지는 나타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② 합리화와 변명(Rationalizing and alibis)이성을 잃고 만취되는 자신의 모습에 죄의식과 함께 방어적인 행동을 취하게 된다.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종종 변명의 구실을 만드는 것처럼, 알코올중독자 역시 합리화를 시작한다. 자신들의 술버릇에 관하여, 가족들이나 직장 동료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이성(reasons)의 교묘한 방법으로 자신의 목을 세운다. 그러나 이러한 변명은 결국 자신을 더욱더 어리석은 사람으로 몰아갈 뿐이다. 그리고 변명을 생각해 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들의 노력은 그들을 비참하게 만든다. 정신을 잃고 취해 버리는 자신들의 실체적 모습과 다른 적당한 변명을 함에 처음엔 조금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 주정뱅이란 말을 듣기 원치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실제적 소문이 돌고 있음에 당황하게 된다.그들은 술을 마실 때마다 어김없이 만취의 상태까지 빠져들게 하는 이유들을 자신들 역시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기 원치 않는다. "언젠가,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자신들의 술버릇은 통제되어 적당히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모든 비정상적인 음주가들의 가장 보편적인 강박 관념(obsess한 자신의 모습을 본다.⑮ 성적 욕구의 감퇴(Decrease in sexual desire)이것은 자기 해석적일 수 있다. 그리고 가끔 보조화가 발생하면서 배우자는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서로 알아야 할 사실은, 이것은 단순한 알코올 중독의 진행 과정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것을 알고 치료하면 회복될 수 있다.4) 만성적 중독의 단계(chronic stage)이 단계에서는 누가 봐도 알코올중독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단계이며 중독자 자신도 부정하지 않는다. 음주가 연속적이어서 며칠 간 계속 마시거나 하루 종일 취해 있는 경우가 빈번하다. 음주자는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고 술을 마시기 위해서 살고 있다. 중독자는 일시적으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술을 마신다. 그의 신체 조직은 알코올에 적응이 너무나 잘 되어 있어서, 알코올이 공급되어야만 하며 술을 1∼2일 끊으면 금단증상으로 금주가 불가능하다.이 단계에 이르면 음주에 대한 이들의 열망은 대단히 강력해서 알코올 성분이 함유된 것은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어떤 것이든 지 마신다. 예를 들면 면도용 로션, 헤어 토닉, 다양한 의학용 조합제(medicinal preparations)까지도 마신다.아무때나 마구 술을 마시게 되며 공원, 길에서도 태연히 마실 수 있게 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감, 수치심, 죄책감 등 양심의 가책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마침내 그는 가족이나 가정, 친구, 직장, 사회적 지위를 돌보지 않게 되고, 모든 인간관계가 파괴된다. 더욱이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과 함께 술을 마시고 사회에서 이탈한다.이 단계에 오면 알코올로 인한 심각한 신체 합병증(간경화, 당뇨병, 말초 신경염, 뇌손상에 의한 사고 기능 장애), 진행성 마비 증상, 알코올성 정신병(환각, 피해 망상) 등의 신체적, 정신적 이상이 틀림없이 생긴다. 이 때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손이 떨려서 간단한 일도 할 수 없게 된다.만성적 중독 단계의 증상을 .
목 차Ⅰ. 서 론Ⅱ. 본 론1. 성차별이란2. 현실에서의 성차별 (고용 성차별)3. 잠재적 현실에서의 성차별 (대중매체속의 성차별)4. 해결 방안Ⅲ. 결 론Ⅰ. 서론우리사회는 급속히 발전하여 첨단산업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첨단사회에서 해결하지 못한 것이 한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옛날부터 내려온 성차별의 문제이다.옛말에「남녀 7세 부동석」이란 말이 있다. 옛 어른들이 만든 이 불문율이야 남녀가 유별하다는 엄격한 유교적 산물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아녀자는 감히 남정네와 자리를 같이하고 참견을 해서는 안 된다는 성차별의 계율이 숨어 있다. 성차별의 역사를 아담과 이브의 시대로부터 비롯됐다고 보면 당했던 쪽의 원념의 크기와 깊이는 짐작할 만하다. 이는 자유·평등·평화의 이데올로기 이전의 원초적 문제일 듯도 싶다.예로부터 우리나라 전통사회의 유교적 가치관은 성 역할 분담론에 입각해서 여성은 가정을 중심으로 임신과 출산, 자녀양육 등 가사 종사자로 한정하고, 외부일은 남자가 담당하는 것으로 인식해왔다. 이같은 전통은 남존여비 풍토를 조성하고 교육, 취업 등 각종 분야에서 성차별을 가져왔다.그러나, 1960년대 이후 교육수준의 향상과 직업의식의 발달로 여성들의 사회진출 욕구 분출, 가사산업의 발달과 자아실현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 혼자 벌어서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어려운 현실 때문에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가 꾸준히 증가해 '97년 2/4분기에 50.6%로서 최초로 50%대를 넘어섰다.이와 같이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는 외형상으로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취업여성 중 관리직이나 전문직에의 고용율은 5%정도에 불과해 대부분이 단순 서비스직이나 생산직에 몰려 있다. 즉, 고용수준이 후진국을 면치 못하고 있어 우리 노동현장에서 여성의 지위는 여전히 차별 받는 위치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보고서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여성차별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게 느껴지는 여성의 고용차별과 대중매체 속의 성차별에 대해맡게 되었거나 비하하는 발언을 듣는 등의 일등의 일들을 성차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말할 것도 그러한 기준에 근거를 둔 것이므로 '이런 건 그런 의도에서 그런게 아닐 수도 있지 않나?' 내지는 '이게 왜 가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지?' 하는 식의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하여도 그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물론 그러한 의견을 가진 사람이 많다면야 그 부분에 관해서도 충분히 고려되고 반론을 제시해야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 있어서 이러한 의견의 제시는 사회적 관점에서 생각한 것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그러한 점들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넘어가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2. 현실에서의 성차별 (고용 성차별)고용차별은 노동시장의 진입 시점에서부터 퇴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즉, 고용기회에서의 차별로부터 임금, 승진, 조직내 권위(결정권·감독권)의 부여, 직장내 성희롱, 직업훈련, 정년, 해고 등 고용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직·간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여성의 고용촉진과 평등대우의 확보는 결코 이념적 평등의 구현에만 의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 발전에 있어서 한 쪽의 성에만 편향된 인력활용구조는 분명 경쟁력 확보에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세계 각국은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을 효과적으로 개선하여 남녀 모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확보하고, 평등하게 일할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에 국가 전략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통적·가부장적 성별 역할 분업관에 기초한 여성고용정책으로 일관해 왔던 일본조차 21세기 지식정보화·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국가인력의 효율적 활용 차원에서 정책의 기조를 바꾸고 있다.남녀고용평등의 기본원리는 고용기회나 대우에 있어서 남성 또는 여성을 그 성이나 성 역할을 이유로 집단적, 일반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개개인의 적성이나 능력, 기타 노동력에 기초하여 정당하게 평가하여 취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고용평등 관련 법·제도와 정책은 기회 및 대우의 차별 금녀를 일률 배치(종합직/ 일반직)- 우위코스 배치 희망여성에게만 전환고시 부여⑤ 승진에서의 차별- 승진기회에서의 차별: 조건이 됨에도 불구하고 승진임용대상에서 배제,시험기회 배제,- 여성에게만 승진조건, 절차 적용 (근속년수, 남성에 비해 인사고과 엄격하게적용, 여성에게만 별도의 시험 부여)- 승진 한계 차등 적용(여성에게만 일정직급, 직위 이상으로 승진할 수 없도록차별, 여성직급 내에서만 승진)- 일반적으로 여성이 대다수인 직종, 직급의 승진 요건 불리.- 여성 직급의 세분화를 통한 차별(남성: 사원-대리- 과장- 차장/ 여성: 사원-반장-주임-대리-과장-차장)- 세분화하여 남성보다 승진기간이 장기간- 인사고과에서의 차별⑥ 정년, 퇴직, 해고 차별- 남녀 정년 차별 적용- 여성직종/남성직종에서의 정년차별- 결혼, 임신, 출산으로 인한 퇴직강요 또는 권유- 결혼, 출산을 이유로 한 인사상 불이익 경험- 정리해고대상 선정기준에서의 차별- 사규와 상관없이 관례상 결혼퇴직⑦ 직장내 성폭력(성희롱)- 음란한 농담, 가벼운 신체접촉 성적 모욕, 데이트강요, 음란행위, 구체적인 성적요구, 추행, 강간에까지...그러나 우리 사회의 직장 여성의 대다수가 회사에서 이러한 성차별을 받았는데에도 불구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다. 회사 안팎에 구제기관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신고해 봐야 소용없을 것 같다며 얘기조차 꺼리는 것이다.예로 전국주부교실중앙회 서울시지부는 지난해 9, 10월 서울과 수도권 일원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50곳에 근무하는 여성 근로자 9백7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고용현장에서의 남녀평등 의식조사 결과 성차별 불만을 사내 고통처리 부서에 제기해 본 적이 있는가 라는 물음에 87.9퍼센트인 8백61명이 없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는 소용없을 것 같아서가 58.4퍼센트,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가 10.6퍼센트였으며 모르겠다라는 대답도 20.5퍼센트를 차지했다.고충처리 부서를 이용했다는 1백2명 가운데서도 처리 결과에 만족하는 경우는 41퍼센트에 불과했고 58.매체속의 성차별)1) 뉴스속에서의 성차별정보화 시대에서 정보는 얼만큼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받느냐가 관건이다. 이런 정보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제공하는 뉴스는 그만큼 우리 생활에서 중요함을 차지한다. 뉴스는 무엇보다도 정보를 전달하는 진행자의 비중이 매우 크다. 진행자가 어떠한 시각에서 어떠한 흐름과 구도로 사건을 보도하는가는 대중들의 의식흐름과 판단능력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여성이 메인 앵커를 담당하는 경우는 모두 여성 혼자 진행하는 뉴스이며 남녀가 공동으로 진행할 때 여성이 메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경우는 하나도 없었다. 이는 여성앵커의 비중이 남성앵커에 비해 현저히 낮음을 보여준다. 시청률이 집중되는 시간이 밤 9시 뉴스(SBS는 8시 뉴스)를 보면 여성앵커의 역할이 남성에 비해 매우 낮다.앵커역할의 남녀 차별은 담당하는 보도내용에 있어서도 나타난다. 국제, 사회, 정치 등 그 중요도가 높고 분석과 예측을 요하는 뉴스는 남성이 담당하고 있는 반면, 문화나 단신, 생활, 육아 등은 여성들의 몫이었다. 이렇듯 뉴스사안에 담당에 나타나는 성차별은 다름아닌 정치나 외교적인 일은 남성의 몫, 가정이나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성별분업 이데올로기가 극명하게 드러나 있음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뉴스에 나타나는 성차별적 요소는 근본적으로 여성의 가치와 창조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서 비롯된다. 실제로 여성앵커들에게는 많은 경험과 역량을 닦을 기회와 여건이 충분히 보장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남성앵커들은 대부분 `기자`로 방송사에 입사하여 현장경험 및 외국 특파원으로 탄탄한 경력을 갖추고 앵커로 입문한다. 하지만 여성은 아나운서 공채를 통해 입문하는 것이 다반사다. 앵커자격에 있어서 남성에게는 기자로서 닦은 경력이라든가 그가 가진 세계관과 가치관이 보다 중요한 기준이 되지만 여성은 능력뿐만 아니라 외모와 이미지, `말`을 전달하는 능력에 초점이 맞춰져 실상 내용적인 기준보다는 외적 기준에 치중되어 있는 것이다.2) 광고 속에서의 성차별 현사진들과, 카메라를 아래에서 잡은 치어 리더들의 응원 모습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TV 드라마와 같은 경우 드라마는 인간 삶의 압축장이자 특성상 이미지를 강하게 부각시키는데 이 드라마 속의 여성은 주로 수동적이고 2차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예전의 MBC 드라마 은 “콩쥐팥쥐를 연상시키는 듯 두 번째 부인은 전처의 딸을 하인 부리듯 하고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친딸은 전처의 딸을 비상식적 방법으로 괴롭히고 소외시키려고 애쓰는 등 진부한 신데렐라 컴플레스를 부추긴다고 말할 수 있다. 는 동생 은주가 언니 금주에게 ‘형님’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남자의 할머니와 그에 부응하는 은주의 태도가 불평등한 호주제를 옹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대중소설은 현실을 투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차별을 살펴 볼 수 있는 잠재적 현실이라 하겠다. 소설같은 대중매체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여성에 대해 편견에 차고 왜곡된 표현을 서슴치 않음으로써 독자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예로 최인호의 "가족"에서 여성 일반에 대한 사고방식 담고 있다. 그리고 한국동화와 외국동화에 있는 내용들도 커오면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사고에 뿌리깊게 박혀 있어서 성차별을 초래한다. 흔한 예로 콩쥐팥쥐나 나무꾼과 선녀, 심청전, 신데렐라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4. 해결방안1) 노동조합① 노동조합이 평등실현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여성노동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당장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어 신경을 쓰지못하고 있다"는 노조간부의 말처럼 그동안 노동조합에서는 여성노동의 문제는 다른 사안이 해결된 다음에 해결할 문제로 인식되어 왔다. 평등실현의 한 주체인 노동조합은 여성들의 모집 및 채용에서부터 퇴직에 이르기까지 고용의 전과정에 대한 감시, 감독 기능을 강화하여야 한다.고용평등법 준수 여부, 비정규직원의 입직, 이직현황 , 승진상의 불이익여부, 노동시간의 연장과 노동강도의 강화, 직업병의 발생 등 상황을 면밀히 체크하여 기업측의 성차별적 고용관행을 개선.
어떤 기체(혹은 액체)물질이 다른 액체 또는 고체 물질과 접하고 있을 때기체의 농도가 상계면 근방과 상내부에서 차이가 있을 경우, 즉 경계면에어느 물질의 농도가 증가하는 현상을 흡착(adsorption)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흡착은 양의 흡착을 나타낸다. 흡착량은 흡착제의 단위면적 또는 단위질량당 흡착분자의 몰질량, 질량, 중량 또는 표준상태에서 접하는 부피, 그렇지 않으면 흡착분자수로 나타낸다. 흡착이 일어나는 정도는 고체 및, 흡착하는 분자의 특성에 따라 다르며 또한 농도, 압력 및 온도에 따라서 변화한다. 이번 실험에서는 일정한 온도하에서 CH3COOH 용액의 농도를 변화시켜 활성탄의 고체 표면 흡착 성질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측정 결과 Langmuir 등온 흡착식에 적용해보니 비례하는 그래프가 나왔다. 그러나 어느 점에 이르면 평형에 도달하여 일정한 값을 나타내었다. 계산치를 구해보니 Y=aX+b (여기서 Y는 C/x/w이고 X는 c이다.) a = 0.55398 , b = 0.67515 이 나왔다. 따라서 a, b를 통해 = 1.80512, K = 0.820528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값은 생각했던 것과 오차가 있었는데 오차의 원인으로는 여과시 두 번 여과하는 과정에서 발생되었을 산의 손실과 적정시 연한 핑크색의 종말점을 찾아야하는데 진한색에서 적정된 것, 그리고 미미하지만 항온조에 넣지않고 실온에 방치해 일정한 온도유지를 하지 못한 점등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정확한 data를 얻기 위해서는 정확한 용액 제조와 주의깊은 적정, 항온조에서의 실험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소설가 장정일의 작품세계를 살펴보고 나름대로 그를 평가하는건 색다르면서도 참 흥미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대체 장정일이 누구이길래 이토록 세인들의 관심을 끄는 걸까!"장정일"이라는 이름은, 내 귀에 오르기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꽤나 친근해진 이름이다. 작가에게 있어 뿌리가 어디있겠냐만은, 시인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그는 근래에 파격적인 "성 묘사"로 세인의 관심이 대상인 작가이며, 한때 이인화(영원한 제국)와 함께 신세대 작가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이인화와 더불어 일컫기엔 장정일에겐 컴플렉스가 있다. 이인화는 서울대 국문과 출신인 반면 그는 가방끈이 짧기 때문이다. 그런 컴플렉스땜에 그의 표현대로 "윗대가리 놈들", "위선주의자들"을 그렇게 비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소설을 보면 정말 직설적이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작품에서 보통 작가들이 가지는 시적표현이나 언어유희 등은 찾아보기 힘들정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충격을 받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또 그의 책을 살펴보다가 몇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첫째는, 이곳에서 다루는 주제인 "性에 대한 자유로움"이다. 둘째는 "지도층, 지식인의 역겨운 위선과 이기주의"이다.셋째는 "경북 대구시와 경산시"가 항상 등장한다는 점이다.궁금해진다. 도대체 "장정일"이 누구이길래, "거짓말"이라는 영화가 어떻길래, 또 그 원작인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어떤 내용이길래 다들 이렇게 난리인지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어떤 종류의 문학작품이든 책이 되어 시중에 나오면 누구나 읽을 수 있다. 작가가 문학적 가치추구 이전에 사회통념과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을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가뜩이나 윤리와 도덕이 무너져 가고 청소년들의 탈선과 비행이 속출하는 마당이라 특히 음란물에 대해서는 사회 전체가 예민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초판 발행량 1만부 중에서 8천5백부 정도가 팔렸고 1천4백부 정도가 회수되었기 때문에 시중에서는 매우 구하기 힘든 책이 되어버렸다.왜 이 책이 이처럼 구하기 힘들어졌고, 거짓말이라는 영화가 연일 매진사태가 벌어졌는가!그건 외도와 예술과의 사이에서 방황하며 갈등하는 관객과 독자의 이기심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외도는 무엇이며 예술은 무엇인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거짓말"의 줄거리는 생략하고 접하기 힘든 장정일 저서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는 책의 줄거리를 옮겨 보고자한다.소설의 등장인물은 조각가 출신인 J와 고 3의 여학생 Y, Y의 학급동료이자 동성연애자인 우리가 전부이다. Y는 강간당해 우울증에 시달린 나머지 자살해버린 큰언니와 역시 강간당한 뒤 브라질로 이민 가서 살고 있는 작은 언니의 대한 가슴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소녀다. 그는 가족적 비애에 반발, 학급 동료인 우리와 동성애에 빠지기도 하고 강간당하기 전에 먼저 남자를 선택하겠다는 의식을 사로잡혀 살아간다. 반면 박정희 파벌에 들지 못해 옷을 벗게 된 영관급 육군장교를 아버지로 둔 J는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방법에 반발, 수도승이 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숨을 거두자 J는 수도승처럼 살겠다는 희망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무의식 속에 잠재된 아버지의 명령이라는 것을 깨닫고 아버지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조각가의 길을 걷는다.이후 그는 차츰 그간의 금기로부터 벗어나 정신적·육체적 쾌락에 탐닉하면서 조각마저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루 하루를 지낸다.전화를 통해 한달간의 성행위를 겪은 두 사람은 어느날 지방 도시에서 만나 성행위에 탐닉한다. 이후 이들은 2년여간 서울과 여러 도시를 돌며 성교 행각을 계속한다.18세의 여자아이와 38세의 남자라는 20살의 나이차이도 그렇지만 소설 지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골적인 성묘사가 충격적이다. 오럴섹스에서 마조히즘, 새디즘 등 다양한 성행위는 포르노를 연상시킬 정도로 상세하다. 한없이 자유로운 사랑만을 찾아나선 J와 Y. 오랜 사랑을 끝에 J는 자신의 예술활동이 가부장적 권위의 산물임을 깨닫고 조각품을 불태우고, Y는 가족을 떠나 홀연히 브라질로 떠난다.아마도 장정일 소설을 읽어보지 못한 사람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나 역시 그 소설을 읽어보지 못했기에 이처럼 줄거리라도 건져서 영화후기와 접붙여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지만 영화에서의 마조히즘과 새디즘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인지 소설속의 Y와 영화속의 Y를 연관짓기가 많이 힘들었다.이 영화의 주제는 "자기혐오"이지 않을까 싶다. 장정일 자신의 혐오일수도 있고, 인간에 대한 혐오일수도 있다. 또는 그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느끼는 스스로의 혐오일수도 있다.소설에서의 Y는 강간당해 이민을 간 그녀의 작은언니처럼 결국은 브라질로 향하면서 끝나는 걸로 되어있다. 그녀의 언니처럼은 살지 않겠다는 강박관념에 살던 그녀가 남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그 길을 찾아간 것이다. 자신이 혐오스러웠던 탓일까?우린 거짓말이라는 영화를 보며 당혹스러워 한다. 그리고 그 영화의 필요성에 대해서 모두 똑같은 심정으로 부인한다. 그것이 바로 작가가, 또는 감독이 원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예술과 외설의 차이도 느끼지 못하는 우리들을 경멸하고 있는 장정일이라는 작가가 미워지기까지 한다. 그럼 장정일 본인은 그 차이점을 알 수 있는가?장정일에게 예술과 외설의 기준점을 그을만한 능력이 있는가!물론 장정일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있을 리 없다. 왜냐하면 내 생각으론 외설과 예술의 기준은 항상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준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마치 초가을 패션잡지에서 "올 겨울에 유행할 패션"에 관해 소개하는 것과 마찬가지 인 것이다. 유행이라는 것은 그 시대의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자연스레 공유하는 것일 뿐이지 누구 한사람에 의해서 미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린 소수의 각종 디자이너들이 만들어주는 걸 입고, 먹고, 마시고, 사고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이렇기 때문에 우리의 사고력이 마비되어 있고 항상 닫혀있는 것은 아닐까!장정일은 그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또는 그 기준을 우리에게 물어보기 위해 그 책을 저술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린 답변조차 거부했고 그걸 물어보는 장정일을 프랑스에 쫓아낸 훌륭한 전력도 가지게 되었다.우리는 그들의 예술성에 의문을 품기보다는 감정에 치우쳐 우리 시대의 감정에만 그의 외설성을 고발하고 있다. 예술은 한 시대를 앞서 갈 수도 있는데 말이다.물론 이것은 외국에서 호평을 받았다는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 이런 경우는 우리의 문학의 경우에도 많이 들어나있다. 가깝게는 이상의 '날개'부터 멀게는 '춘향전'까지 예를 들수 있다. 그들 작품은 당시에는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작품들이지만 '춘향전'이 우리들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21세기를 살면서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옛 애인을 기다리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공포스러운 나날의 보내라는 것인가? 그러나 그냥 단지 고전이기 때문이 무언가 아름답게 꾸며서 독자들에게, 혹은 여성들에게 그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이상의 '날개' 또한 그렇다. 옆방에서 자기부인이 낯선 남자와 관계를 갖고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생명을 이어 나간다는 줄거리다. 이건 어떻게 받아들이면 될 것인가! 그렇다. 이들 예술속에는 시대와 사상이 필요치 않을때도 있는 것이다. 위에서 예를 든 작품들은 전혀 당대에는 빛을 보지 못하던 작품들이다.당대의 시대상과 사상은 작품의 평가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술작품의 평가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식'이라는 것입니다.사회적, 시대적 편견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용감함이 우리 독자들에게는 또 관객들에게는 필요한 것이다. 그것만이 우리가 예술 작품을 옳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아름다운 눈'이 될것임에 틀림없다.이번엔 행위에서의 외설여부를 짚어보자.결론부터 말하자면, J와 Y에게는 서로 때리고 맞는 그런 행위조차도 사랑의 표현일수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형태로 보면 될 뿐이고 그들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는 것이다. 흡사 요즘 말많은 백지영 비디오 사건을 다루는 기분이 든다. 백지영이 몰래카메라에 당했든, 아니면 원해서 찍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서로 때리는 행위가 사랑의 방법일수 있듯이, 백지영이라는 가수가 성행위를 하는건 그건 개인의 자유이며, 그걸 촬영하는 것조차 그녀의 자유라는 것이다. 그녀가 공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법조차도 우리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가!거짓말이라는 영화를 보면 "아! 이런게 포르노인가보다"라는 생각이 들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성은 감추어지면 더욱 타락한다. 타락하기 전에 차라리 자연스럽게 꺼내야 올바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 마광수나 장정일의 주장이다. 우리들 스스로가 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노골적인 면을 우리 스스로가 판단하려면 외설과 예술의 한계를 우리가 알아야 하며 그걸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야 알아서 거부할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