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단원명대단원명 : 4. 메모하며 읽기소단원명 : (2) 하회마을Ⅱ. 대단원 개관1. 단원 설정의 이유글을 읽을 때에 글의 모든 내용을 이해하고 기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내용 을 좀더 많이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는 읽기 전략이 필요하다. 이 대단원은 내용의 이해 와 기억을 효과적으로 돕는 읽기 전략이 필요하다. 이 대단원은 내용의 이해와 기억을 효과적으로 돕는 읽기 전략의 하나로 ‘메모하며 읽기’를 소개하고 있다. 일상 생활에서 기억의 보조 수단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는 메모하기를 읽기에 활용하면 많은 장점이 있 다.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글을 읽는 것보다, 메모를 활용하여 정리하며 읽으면 글에 집중할 수 있고, 글 내용을 더욱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으며, 기억에도 도움이 된다. 또 한, 메모하며 읽기는 글의 이해를 요구하는 다른 과목의 학습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2. 단원 구성의 방향이 대단원은 세 개의 소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단원 (1), (2), (3)은 교사 설명 중 심의 수업에서 학생 활동 중심의 수업으로 옮겨 갈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소단원 (1) ‘내나무’에서는 메모의 실례를 제시해 줌으로써 글을 읽으며 무엇을 어떻게 메모해야 하 는지를 알 수 있게 하였다. 소단원 (2) ‘하회 마을’에서는 교사의 안내에 따라 메모하는 활동을 해 볼 수 있게 하였고, 소단원 (3) ‘가정 교육의 어제와 오늘’에서는 학생 스스로 메모하며 읽는 활동을 해 볼 수 있게 하였다.메모하기 활동은 글의 종류에 관계없이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으므로 이 대단원 제재 를 수필, 설명문, 논설문, 옛날 이야기, 전기문 등에서 골고루 취하였다. 물론, 글의 종류 에 따라 중점적으로 메모해야 할 사항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다. 하지만, 결국 중심 내용 을 쉽게 파악하여 글의 이해를 돕는 것이 메모하기 활동의 본령이므로 글의 종류는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다만, 논설문이나 전기문의 경우 중심 내용의 파악 못 지 않게 내용에 대한 종합적, 비판적 이방법을 안다.(읽기, 5학년)2) 중요한 내용을 메모하며 듣고, 그 전체의 내용을 요약하여 말한다. (듣기, 5?6학년)Ⅲ. 대단원 교수 ? 학습 운영 방안1. 교수?학습 계획 (6차시)구분교수?학습 내용단원의 길잡이?대단원 표지와 연계하여 학습 목표 알기?단원의 길잡이 바탕글 일기?다양한 메모의 종류와 방법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기?메모의 유용함에 대한 예를 들고, 이 대단원 학습의 필요성 인식하기?대단원 학습 방법 이해하기소단원(1)읽기 전 활동- 읽기 전에?나의 메모 습관 되돌아보기?‘내나무’에 대해 미리 생각 떠올려 보기읽기 중 활동? 제시된 메모 내용을 보며 글 읽기? ‘내나무’의 주요 내용 파악하기읽기 후 활동- 학습 활동【내용 학습】?‘내나무’의 의미 알기?‘내나무 풍속’의 의미 이해하기【목표 학습】?‘내나무’의 메모를 보고, 메모하며 읽기의 방법과 의의 이해하기소단원(2)읽기 전 활동- 읽기 전에?여행 경험을 메모하여 이야기해 보기?하회 마을 여행 준비 사항 메모하기읽기 중 활동?‘하회 마을’을 읽으며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메모해 보기읽기 후 활동- 학습 활동【내용 학습】?‘하회 마을’의 글 쓴 목적 파악하기?‘하회 마을’의 중심 내용 파악하기【목표 학습】?글을 읽으며 메모한 내용 정리하기소단원(3)읽기 전 활동- 읽기 전에?내가 주로 하는 메모 내용 생각해 보기?나의 실수 경험 이야기하기읽기 중 활동?‘가정 교육의 어제와 오늘’을 읽으며 학생 스스로 글의 내용을 정리해 보고,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메모하기읽기 후 활동- 학습 활동【내용 학습】?과거와 요즈음의 가정 교육 비교하기?가정 교육에 관한 글쓴이의 입장 이야기하기【목표 학습】?나의 메모 내용 살펴보기?메모 내용을 바탕으로 글쓴이 의견에 대한 내 생각 발표하기【적용 학습】?부모님의 입장이 되어 가정 교육 방침에 대한 내 생각 정리하기생각 넓히기?가정이나 학교에서의 체벌에 대해 토론하기보충?심화자기 점검?학습 내용 점검하기활동①?‘유비 이야기’를 읽고 메모하기?친구들의 메모와 나의 메모를 대한 소감 쓰기단원을 마치며?대단원 학습 내용과 활동 정리하기2. 지도상의 유의점1) 일상적 메모와 능동적 읽기 전략으로서 메모하기를 구분하여 지도한다.일상적 메모의 목적은 단순한 기억의 보조 장치이다. 그러나 읽기 전략으로서 메모하 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읽기에서 메모하기의 목적은 능동적 독서를 통해 글의 내 용을 잘 이해하게 하는 것, 즉 독해력의 신장이다. 따라서, 일상 생활에서의 메모와 읽 기 전략으로서의 메모는 성격상 구분된다. 여기서 교사는 이러한 차이점을 학생들에게 분명히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2) 소단원 (1), (2), (3)의 역할을 분명히 이해시킨다.각각의 소단원들은 다음과 같이 연계되어 있으므로 교사는 그 역할을 이해하여, 학생 들에게 메모하여 읽는 활동을 연습시킨다.소단원 (1)소단원 (2)소단원 (3)제재 전체에 메모의 예 제시→ 메모의 방법과 효과를 알 게함.(교사의 설명 중심)제재의 앞부분에만 메모의 예제시→ 메모의 방법을 상기하고메모하기를 연습함.(교사의 안내 + 학생 활동)메모의 예를 제시하지 않음.→ 앞 단원에서 익힌 내용을 바탕으로 교사의 도움 없이 제재 전체를 메모함.(학생 활동 중심)3) 교과서에 제시된 메모의 예를 최상의 모범 답안으로 여기지 않도록 지도한다.소단원 (1) ‘내나무’ 전체와 소단원 (2) ‘하회 마을’ 일부에는 메모의 일례(一例)가 제 시되어 있어 메모하기의 방법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런데 메모 내용은 읽는 사람의 생각을 시각화한 것으로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소단원 (1)의 가장 핵심적 인 내용은 내나무 풍속이 자연과 인생의 밀접한 동반 관계를 말해 주는 것이라는 데 있 는데, 교과서에 제시된 메모에는 그 내용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다. 따라서, 제시된 메모 는 메모하기의 방법을 알게 하는 수단 정도이지 절대적인 모범 사례는 아니라는 점을 학생들에게 이해시킨다.Ⅳ. 대단원 지도의 절차1. 대단원 표지이 대단원의 표지는 여러 글에서 사용된 다양한 방법의 메모들의 예를 보여 주고 있 한, 표지의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교과의 글들도 메모하기의 대상이 되고 있음 을 알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메모하기 활동이 글의 이해를 요하는 모든 교과의 학습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2. 단원의 길잡이우선, 생활하다가 메모의 도움을 받은 일을 상기시킨다. 예를 들어, 초등 학교 때 알림 장에 메모를 하지 않아서 생긴 일, 혹은 전화를 받을 때에 메모를 하지 않아 낭패를 겪었 던 경험 등의 개인적 경험을 말해 보게 한다.그 다음, 읽기에 초점을 맞추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메모하기 활동의 유용성에 대 한 대답을 이끌어 낸다? 긴 글을 읽다가 앞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아 내용 연결이 잘 되지 않을 때에는 어떻 게 하는 것이 좋을까?? 글의 내용에 대한 의문이 떠올랐을 때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글쓴이의 견해와 다른 생각이 떠올랐을 때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꼭 기억하고 싶은 중요한 내용이나 생각이 있을 때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또한, 메모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이하윤의 수필 ‘메모광’의 내용 일부를 소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3. 소단원 개관(1) 내나무이 글은 글쓴이가 어린 시절에 즐겨 불렀던 동요 ‘나무타령’을 소개하고, 노래에 나 오는 ‘내나무’를 심던 옛 풍습을 회고하며 그 의미를 새겨 보는 글이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자연과 더불어 밀접한 동반 관계를 맺으며 살아온 우리 민족의 소박한 삶의 모 습을 엿볼 수 있다. 이 글의 내용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나무’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성별에 따라 ‘내나무’의 종류와 용도가 어떻게 달라지 는지 살피면서 읽어 보도록 한다.소단원 (1)에는 이미 메모가 되어 있는데, 학생들은 그 메모를 보면서 메모한 사람 의 생각을 알 수 있게 되고, 더불어 메모하며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메모하며 읽기에는 글의 주제와 중심 내용을 짚어 가면서 글의 이해를 돕는 ‘내용 메 모’와 글의 여행지로 하회 마을 을 추천하고, 하회 마을의 주요 관광지와 행사를 소개하는 설명문(안내문)이다. 글쓴이 는 하회 마을이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산을 함께 맛볼 수 있는 문화 관광지이므로, 하회 마을로 주말 가족 여행을 다녀 올 것을 권하고 있다. 이 글은 정보 전달을 목적으 로 하는 설명문(안내문)이므로, 글의 주요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읽어야 한다. 특히 이 단원의 내용과 관련하여, 자신이 직접 여행을 한다고 가정하고, 여행 계획을 세울 때 필요한 항목을 미리 설정해 놓고, 그에 맞추어 메모하며 글을 읽 어 본다면, 글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소단원 (2)에서는 글의 앞부분에만 메모를 예시해 놓고 뒷부분에는 학생들이 직접 메 모 연습을 할 수 있게 하였다. 소단원 (2)의 제재인 ‘하회 마을’이 정보 전달을 목적으 로 하는 설명문이므로 주로 내용 메모에 치중하게 될 수 있다. 하지만, 필요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찾는 자세를 가지고 생각이나 느낌 메모도 많이 해 보게 한다.(3) 가정교육의 어제와 오늘이 글은 옛날과 오늘날의 가정교육의 변모된 모습에 대한 글이다. 글쓴이는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예로 들어가며, 딱딱하지 않고 친근한 말투로 옛날과 오늘날의 가정 교육의 장점과 단점을 비교하여 분석하고 있다. 과거에는 회초리와 훈계 등으로 매우 엄하게 가정교육을 했지만, 오늘날은 자유롭게 교육을 시켜서 가정교육의 부재에 가 까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옛날과 오늘날의 가정교육의 장점을 살려 자녀 교육을 지혜롭게 하도록 권유하고 있다.학생들은 소단원 (1)과 (2)의 학습 과정을 거치면서 교사의 지도에 따라 메모하며 읽 기에 대하여 학습하였다. 소단원 (3)에서는 배운 것을 바탕으로 학생 스스로 메모하며 읽는 연습을 해 본다. 소단원 (3)의 제재인 ‘가정교육의 어제와 오늘’은 글쓴이의 의견 이 분명하게 드러난 글이므로, 이 글을 읽고 메모할 때에는 중심 내용과 더불어 글쓴이 의 입장에 대한 읽는 이의 생각과 견해
형태소와 단어Ⅰ. 서 론문법론에서 다루는 언어단위인 문법단위는 음운론의 언어단위와는 달리 모든 언어단위 들이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런 문법단위에는 형태소, 단어, 구, 절, 문장 등이 있는데 여기 서는 형태소와 단어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다.Ⅱ. 본 론1. 형태소(1) 정의 :형태소는 문법 단위 중 최소 단위로 의미를 가지는 가장 작은 언어 단위이다. 의 미를 가진 가장 작은 단위이기 때문에 더 이상 쪼개면 그 의미가 없어진다. 예를 들 어 ‘흙’을 ‘흐’와 ‘ㄺ’, 또는 ‘흘’과 ‘ㄱ’이나 ‘흐’과 ‘읅’으로 쪼갠다면 그 각각은 전혀 의 미가 없는 단순한 소리 내지 소리군이 되거나, 적어도 ‘흙’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의 미를 가지는 조각들이 된다. 그러면 ‘흙’은 의미를 가지는 단위로서는 최소의 단위요, 따라서 ‘흙’은 하나의 형태소라고 판정하는 것이다.형태소가 유의적 단위, 즉 의미를 가지는 단위라고 할 때의 의미란 보통 국어사전 에서 정의하는 의미와 같다. 국어사전에서는 ‘흙, 얼굴, 나무’ 등의 어휘로서의 의미 를 비롯하여 ‘책을, 밥을, 사람을’의 ‘을’이 목적어를 만들어 주는 의미를 가지고 있 고, ‘뛰어라, 먹어라, 읽어라’의 ‘-어라’가 명령을 나타내 주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규정해 주고 있다. 즉 여기에서의 의미는 어떤 문법적 일을 하느냐 하는 문법적 의 미까지 포함한다.(2) 이형태형태소는 그 놓이는 환경에 따라 음상을 달리하는 일이 많다.- 하늘이 푸르다- 철수가 동화를 읽었다위의 문장에서 ‘하늘이’와 ‘철수가’의 ‘이’와 ‘가’는 주격이라는 똑같은 문법적 기능 을 표시하는 형태소인데도 불구하고 앞의 형태소의 음운론적 환경에 따라 그 모습이 다르다. ‘이’는 자음으로 끝난 형태소 뒤에, ‘가’는 모음으로 끝난 형태소 뒤에 각각 실현된다. 그리고 ‘동화를’의 ‘를’도 앞의 말이 자음으로 되어 있으면 ‘신문을’과 같이 ‘을’로 실현된다. 이와 같은 하나의 형태소가 환경에 따라 모습을 달리할 때 그것을 각각 형태라 하고 한 형태소의 교체형들을 그 형태소의 이형태라 한다.1) 음운론적으로 제약된 이형태: 위에서 언급한 ‘이/가’, ‘을/를’의 각 형태들은 음운론적 환경의 제약을 받아 나타 나므로 음운론적으로 제약된 이형태라고 한다.2) 형태론적으로 제약된 이형태: 이형태 가운데는 바뀌는 이유를 음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나는 학교에 갔다.’ ‘나는 공부를 하였다.’에서 ‘갔다’는 ‘ㅏ’의 영향으로 ‘가았다’로 ‘았’이 붙으나 ‘하다’에서는 ‘였’으로 실현되었다. 이렇게 음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 형태를 형태론적으로 제약된 이형태라 한다.(3) 형태소의 분류형태소는 자립성의 여부와 의미의 허실에 따라 자립형태소와 의존형태소, 실질형 태소와 문법형태소로 나누어진다.1) 자립형태소와 의존형태소형태소는 혼자서 독립해서 단어가 될 수 있는 것도 있고, 반드시 어떤 다른 형태 소와 결합하여야만 단어가 되는 형태소도 있다. 앞의 ‘흙, 코, 얼굴, 나무’ 등은 그 혼자서 단어가 되는 형태소들이다. ‘어느, 무슨, 벌써, 무척, 도’ 등도 마찬가지다. 이 처럼 단독으로 단어가 될 수 있는 형태소들을 자립형태소라 한다.반면 ‘읽어라’의 ‘읽-’은 ‘읽으니, 읽고, 읽는다, 읽었다, 읽게’처럼 반드시 어떤 다 른 형태소와 결합하여야만 문장에 쓰일 수 있고 단어 행세도 할 수 있다. 이와 같 은 형태소들은 의존형태소라 한다.자립형태소는 별다른 표시를 하지 않지만 의존형태소는 ‘-어라, -으니, -고’나 ‘읽-, 춥-, 깨끗-’처럼 하이픈을 써서 표시한다.ex) 하늘이 푸르다철수가 동화를 읽었다.* 자립형태소 : 하늘, 철수* 의존형태소 : 푸르, 다, 이, 가, 동, 화, 를, 읽, 었, 다2) 실질형태소와 문법형태소실질적 개념을 지닌 형태소인가 아니면 문법적 관계만을 나타내 주는 형태소인가 에 따라 실질형태소와 문법형태소로 나눈다.‘많다, 많으니, 많고’를 예로 보면 어간 ‘많-’은 ‘多’라고 하는 실질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다, -으니, -고’는 그러한 의미는 없고 다만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 주는 의미밖에 없다. 이 때 ‘많-’을 실질형태소, ‘-다, -으니, -고’를 문법형태소라 하는 것이다. 국어의 조사, 어미, 접미사들은 대표적 문법형태소들고 명사, 관형사, 부사를 비롯하여 동사, 형용사의 어간들은 어휘형태소들이다.ex) 하늘이 푸르다.철수가 동화를 읽었다.* 어휘형태소 : 하늘, 철수, 푸르, 동, 화, 읽* 문법형태소 : 이, 가, 를, 다, 었2. 단 어단어는 형태소보다 일반적으로 더 널리 알려진 언어 단위로서 문법론에서 큰 비중 을 차지하는 단위다.(1) 정의: 단어에 대한 정의는 형태소의 정의처럼 분명하지 않고 몇가지의 의견으로 나누어 지고 있으며, 다만 몇 개의 형식에 의해 제약된다.위에서 ‘흙, 나무, 코, 얼굴, 저고리, 코스모스’ 등을 형태소라고 하였다. 이들은 그대 로 단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형태소가 그대로 단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단어도 형태소와 같이 의미를 지닌 단위이지만 ‘최소’이어야 한다는 제약을 받지 않는다.단어는 대체로 자립형식이어야 한다는 제약을 받는다. 자립형식이란 다른 요소와 의 결합 없이 문장에 나타날 수 있는 언어 형식을 가리킨다. 자립형식은 적어도 형 태소 이상의 단위로서, 하나 또는 둘 이상의 형태소로 구성되며 문장 안에 자유롭게 나타날 수 있다. 단어는 원칙적으로는 자립형식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갖추어야 하므 로 ‘흙, 얼굴’처럼 자립형태소는 그대로 단어가 될 수 있지만 ‘읽-’이나 ‘푸르-’, 또는 ‘-어라’나 ‘-고’와 같은 의존형태소는 훌륭한 형태소이기는 하지만 단어는 될 수 없 다. 이처럼 형태소와 단어는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다. 형태 소가 동시에 단어인 경우가 있어 둘의 크기가 같을 때도 있지만 단어가 형태소보다 더 작은 경우란 없기 때문에 대체로 단어가 형태소보다는 큰 단위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최소의 자립형식이 단어라는 정의는 그 객관성 때문에 이처럼 단어를 가려 주는 데 퍽 유익한 구실을 하면서도 문제점이 드러난다. 가령 ‘손목’은 ‘손’과 ‘목’의 두 자립형식으로 분리되므로 최소의 자립형식은 아니지만, 한 단어가 아니라고 할 수 는 없지 않느냐는 문제가 당장 대두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휴지(休止)와 분리성(分離性)이 단어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유용하게 쓰인다. 한 단어는 그 내부에 휴지를 둘 수도 없고, 다른 단어를 개입시켜 한 단어 내부를 분리시킬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단어와의 사이에는 휴지도 둘 수 있고 다른 제3의 단어를 개입시 킬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이 기준은, 가령 아버지의 뜻의 ‘작은아버지’는 한 단어요, ‘키가 작은 아버지’의 ‘작은 아버지’는 한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 주는 데서 그 효용성을 볼 수 있다. 앞의 ‘손목’도 이 기준으로 단어라는 것이 명백해진다. 이 기준은 그 만큼 객관적인 방법으로 단어를 분간시켜 준다는 장점이 있다.(2). 단어의 종류단어에는 단일어와 복합어가 있으며, 다시 복합어는 합성어와 파생어로 나누어 진 다.즉, 단어는 그 짜임새가 단일할 수도 있고 복합적일 수도 있다. ‘집, 신, 높다’ 등은 짜 임새가 단일한 단어들이다. ‘높다’는 두 형태소로 구성된 말이지만 어간 ‘높-’을 기준 으로 하면 역시 단일한 구성이다. ‘-다’는 순수한 문법적 관계를 표시하는 형식형태소 이므로 단어형성과는 직접적 관계가 없다. 반면 ‘지붕, 덧신, 드높다, 집안, 짚신’ 등은 그 짜임새가 복합적이기 때문에 복합어라고 한다. ‘지붕, 덧신, 드높다’는 실질형태소 ‘집, 신, 높-’에 형식형태소 ‘-웅, 덧-, 드-’가 붙은 것이고, ‘집안, 짚신, 높푸르다’는 ‘집, 신, 높-’이라는 실질형태소에 또 다른 실질형태소 ‘안, 짚, 푸르-’가 어울려 있는 복합어이다.복합어는 다시 합성어와 파생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형태소의 어근과 어근이 만나 단어를 만드는 합성어와 어근과 접사가 붙는 파생어가 있다.1) 합성어합성어는 어근과 어근이 만나 단어를 만드는 것으로 명사합성, 동사합성, 형용사합 성, 관형사합성, 부사합성, 반복합성이 있다.명사합성은 ‘논밭, 마소, 새해, 이것, 갈림길, 늦더위, 부슬비’ 와 같은 것으로 명사 합성법에 기대어 형성된 합성명사이다.동사합성에는 ‘힘들다, 겁나다’ 와 같이 주어와 서술어의 구성으로 된 동사합성법 과 ‘본받다, 자리잡다’ 와 같이 목적어와 서술어의 구성인 동사합성이 있다. 그리고 ‘앞서다, 거울삼다’처럼 부사어와 서술어의 합성형태인데 부사격조사의 소거를 거쳐 형성된 동사합성도 있고, ‘들어가다, 파고들다, 내려다보다, 돌아가다, 돌아다보다’ 와 같이 두 개의 동사가 연결어미를 가운데 두고 결합된 합성동사도 있으며, 그 외에도 ‘부사+서술어’ 형태, 불규칙적 어근에 동사가 붙은 형태의 동사합성이 있다.형용사합성법은 ‘손쉽다, 배부르다’와 같이 ‘주어+서술어’의 구조로 된 절에서 주격 조사의 소거를 거쳐 형성된 합성형용사도 있고, ‘눈설다, 남다르다’와 같이 ‘부사어+ 서술어’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합성형용사가 있다. 그리고 ‘깍아지르다, 게을러빠지다’ 와 같이 용언이 연결어미 ‘-어’를 매개로 하여 합성형용사가 된것도 있다.관형사합성법으로는 ‘한두, 서너, 여남은’같은 것이 있으며, 부사합성법에는 ‘밤낮, 한바탕, 이른바, 곧잘, 잘못’과 같은 것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명사, 동사에 비해 숫 자도 많지 않고 생산성을 띠고 있지도 않다.마지막으로 반복합성법에는 ‘구석구석, 하나하나, 오래오래, 어서어서’와 같이 완전 반복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과, ‘더더구나, 아리아리랑’과 같은 부분반복에 의해서 이 루어진것도 있고, ‘얼씨구절씨구, 울긋불긋, 오순도순, 오락가락’과 같이 유사반복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있다.2) 파생어파생어는 어근에 접사가 붙는 형식으로 접사가 어근의 앞에 붙나 뒤에 붙나에 따 라 접두파생과 접미파생으로 나누어진다.① 접두파생은 접사가 어근의 앞에 붙는 것으로 어근과 결합하여 어근의 의미만 한 정할 뿐 품사를 바꾸지는 않는다. 즉, 접두사는 의미만을 한정하는 한정접사이다. 접두파생에 의해 형성되는 품사에는 명사, 동사, 형용사가 있다.
Ⅰ. 서론『三國史記』 卷第二에 景德王 忠談師 表訓大德 題下에 신라 제 35대 景德王(742-765)에 관한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歌僧 충담사의 두 편의 향가가 소개되었는데, 「安民歌」와 「讚耆婆郞歌」다. 본고는 향가 「안민가」를 대상으로 하여 논의를 전개하되, 경덕왕 치세의 여러 문제가 본가 이해에 주요한 단서가 된다고 보아, 가요 주변의 시대적, 사회적 상황과 가요 제작의 직접적 동기가 된 사건을 비교적 폭넓게 살펴보려고 한다.「안민가」의 작가 충담사에 대하여 학계의 일부에서는 스님의 행적 시말이 실존인물과 여러 모로 다르기 때문에 설화상에서 형성된 작의적인 가공 인물로 보자는 견해와 왕에게 직접 충간하였던 이순으로 보자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전자의 견해는 최철이, 후자의 견해는 김선기가 제기하였다. 최철은 「안민가」를 고래로 전승되어 내려왔던 치리의 노래로 규정하고{) 김열규·신동욱 편, 『삼국유사와 문예적 가치해명』, 새문사, 1982, p.35.이어 가요 작품의 내용과 서사기술문이 작자의 이름과 서로 연관성을 띠고 있는 점을 보아 충담사는 일종의 설화상에서 형성된 작의적인 가공 인물일 것{) 김학성·권두환 편, 『고전시가론』, 새문사, 1984, p.144, p.148.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박노준은 『사기』에 등장하는 충신 이순이 실존했던 인물인 이상, 또 경덕왕이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정국을 정상궤도 위에 올려놓으려고 몸부림친 것이 사실인 이상, 안민가의 작자인 충담도 실존했던 인물로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본고 역시 충담사를 실존했던 인물로 보고자 한다. 그 이유는 첫째, 충담의 이름이 『삼국유사』의 편목 이름에 표훈대덕과 나란히 기재되어 있고, 둘째, 『삼국유사』의 「生義寺 石彌勒(생의사 석미륵)」조에도 後名生義寺 의 주에 지금 잘못 전해져 성의사라 한다. 충담사가 매년 3월 3일과 9월9일에 차를 달여 공양한 것은 곧 이 부처다. 라 하여 충담의 이름이 등장되고 있기 때문이다.「안민가」의 제작시기는 경덕왕 치면 어느 왕 때에 태어났는지를 대충 헤아려 볼 수 있다. 沒(몰)한 연대는 아주 늦춰 잡아도 37대 선덕왕대 초쯤이었을 것이다. 이 이상의 추정은 삼가기로 한다.충담사는 어떤 인물인가?첫째, 뜻이 높은 화랑승이었다. 경덕왕 어전에서 臣僧但屬於國仙之徒(신승단속어국선지도) 운운한 월명사처럼 그가 자신의 신분을 직접 밝힌 대목은 찾을 수 없으나 여러 정황을 참고하면 이런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조지훈이 일찍이 지적한 바와 같이 僧 忠談 으로 표기되지 않고 忠談師 로 불려지고 기록된 점,{) 趙芝薰, 「民族文化硏究」 1집, 高大民族文化硏究所, 1964(『조지훈전집』8권 재수록, 나남, 1996).화랑을 찬모한 「찬기파랑가」를 지어낸 사실{) 낭도나 낭도승이 아닌 사람, 곧 화랑단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도 화랑을 찬모하는 시를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화랑단이 특수한 청년집단임을 감안할 때, 화랑과 일반인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었을 터이고, 반면에 낭도나 낭도승과는 혈육처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을 것이다. 화랑을 찬모한 노래를 낭도나 낭도승에 의해서 창작된 것으로 간주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현전하는 「慕竹旨郞歌」는 낭도인 得烏(득오)가, 「彗星歌」는 낭도승이 확실시되는 融天師(융천사)가 지은 작품들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을 보아 사뇌가 창작의 대가인 동시에 절의있는 화랑(기파랑)을 모셨으며, 화랑을 대칭하는 미륵세존을 신앙의 주 대상으로 삼았던 점 등을 감안하면 낭도승임이 거의 확실하다.둘째, 납의를 입고 앵통을 짊어진 것 을 보아 원효나 혜공처럼 검소한 불자생활을 신조로 한 승려였다.셋째,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에 차를 달여 남산의 삼화령에 있는 미륵세존에게 공양하는 것 으로 보아 미륵세존을 숭앙한 승려였다.넷째, 왕이 그를 왕사(신라시대에는 국사라 칭하였음)로 봉하려 하자 굳이 사양하면서 받지 아니한 것으로 보아 권위나 권좌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고매한 인격자인 동시에 왕사(국사)라는 직분이 불교계나 통치권에 직접 참여하지는 아니하단행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왕의 이러한 희망과 의도도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는데 그것은 경덕왕의 아들인 36대 혜공왕 때에 접어들자 신라 하대{) 신라하대는 37대 선덕왕 때부터 시작되는데, 선덕왕은 내물왕의 원대자손이다.적인 요소와 세력이 실권을 장악함은 물론 중대적인 세력의 계승자로 표면에 나타난 혜공왕 역시 그 역사적 소임을 계승 완수치 못하고 모반한 반대파의 무리에 의하여 피살당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에 보면 상대등 金良相등이 모반하여 무리를 모아 거느리고 궁궐을 침범하여 포위하였는데 4월에 상대등 김양상은 군사를 일으켜 지정 등을 모살하였다 이때 왕은 왕비와 함께 해를 당한바 되었다. 라는 부분이 있다.이러한 역사적 양상을 볼 때 경덕왕은 미리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을 예측하고 전제주의적인 정치적 요세를 확고히 구축하여 했을 것임은 예측하기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왕이 반대파의 강력한 항거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전제주의적인 성곽을 공고하게 구축하려 한 동기는 아무래도 후사에 관한 문제와 연관을 맺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지방군현의 명칭을 고친 왕 16년은 아직 혜공이 태어나지 않았으나 조만간 후사가 있을 것을 알고 있던 때였고, 중앙관부의 명칭을 고친 왕18년은 혜공이 태어난지 두 해가 되던 때였다.왕은 아들 낳기를 학수고대하였는데 이는 후사가 없으므로 해서 왕통이 단절될 것을 두려워한 때문임은 재언을 요하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후사가 있을 조짐이 보이자 왕은 전제주의적 체제를 갖출 것을 서둘러서 급작스레 지방군현의 명칭부터 고치기 시작하였고, 이어서 중앙관부의 명칭도 바꾸고야 말았다. 이는 경덕왕 자신이 왕의 자리에 있는 동안은 물론 그 다음 대를 계승할 아들 대에도 귀족들의 녹녹치 않은 세력 때문에 왕위가 흔들리는 불행한 사태를 미리 예방하기 위해 취한 조치로 해석될 수 있다.왕의 전제주의적 성격과 행동은 후사를 보고 난 후에 더욱 심해졌다고 관측된다. 문헌상의 기록 이면에 숨어 있는 역사의 내막을 보면, 전일 후사가 없어서 걱정하 기록은 이러한 혼란양상의 상징적 표현이었으며, 오악삼산신의 빈번한 출현 역시 이러한 혼란의 상징적 표출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삼국통일을 이룬 직후부터 가속화되기 시작한 신라 中代의 왕실중심적·전제주의적 통치체제는 金庾信系(김유신계) 뿐만 아니라 다른 귀족 일반을 배척할 수밖에 없었고, 이들에 의해 끊임없는 반발과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수많은 귀족들이 망명길에 올랐으며, 이들이 신라를 떠나며 가지고 간 것은 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三山信仰(삼산신앙)이었다. 삼산신앙 숭앙 계층의 이주는 곧 신라 호국신의 이주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오악삼산신, 특히 大祀로 모셔졌던 삼산의 신들이 빈번히 출현하였다는 것은 그에 대한 신앙의 약화에 대한 반발 내지 이러한 호국신에 대한 신앙의 약화로 인해 야기될 국가의 존망에 대한 경계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경덕왕은 이러한 위기 상황을 인식하고 이의 해결을 위해 남쪽 길을 따라 걷던 충담사를 지목하였다. 경덕왕이 문제해결을 위해 지목한 緣僧(연승) 내지 영복승의 행로의 방향이 한결같이 남쪽이었다는 것은 남쪽에 중대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 할 것이다. 남쪽은 남산을 지칭한다. 남산은 신라의 존망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靈地(영지)일 뿐만 아니라, 화랑들의 遊娛處(유오처)이기도 하다. 화랑은 삼산신앙의 숭앙계층이며, 남산은 이들의 유오처로서 삼산신앙과 긴밀한 관련을 지니고 있는 장소였다. 후에 이러한 남산의 성격은 불교와 습합하면서 大德(대덕)들이 수행하는 장소로, 眞身(진신)이 거처하며 異蹟(이적)을 행하는 장소로 전환되었다. 경덕왕은 바로 이러한 남산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삼산신앙과 불교 양쪽의 생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호국사상을 지니고 왕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어왔던 郞徒승려인 충담사를 영복승으로 지목하였던 것이다.3) 안민가 출현의 경제적 배경안민가 내면에 잠재해 있는 불안정과 혼돈의 요소는 서민의 빈곤한 생활 실태라든가 재변의 각도를 통해서도 이라 전대를 통틀어서 어느 왕 때고 재해가 전무한 경우는 없다해도 경덕왕 때처럼 그렇게 심각한 때도 드물었을 뿐만 아니라, 그로 해서 상대등 자리에 올라 있는 신하가 왕에게 긴급히 상소하였다는 예는 더욱 찾아보기 힘든 터이다. 문무왕의 태평성대로부터 불과 80년밖에 지나지 않은 경덕왕대에는 모든 사회적 현상이 불안정하고, 경제적 면에서도 비안민적 요소들이 가득 차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바탕에서 나타난 노래가 안민가라면 이 시가의 특징적인 성격은 스스로 명백해질 것이다.결국 「안민가」는 경덕왕대의 정치적·종교적·경제적 문제가 왕과 신하들의 불협화음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왕과 신하가 그 본분을 다하여 합심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노래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안민가」는 정치적·종교적·경제적 문제가 상징적으로 표출된 오악삼산신의 출현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리워진 유교적 통치이념의 노래라 규정할 수 있다.3. 안민가의 내용과 사상적 기반 분석1) 안민가의 내용君隱父也 임금은 아버지요.臣隱愛賜尸母史也 신하는 사랑하시는 어머니요.民焉狂尸恨阿孩古爲賜尸知 백성은 어리석은 아이라 한다면民是愛尸知古如 백성에 대한 애정을 알리로다.窟理叱大 生以支所音物生 꾸물거리며 사는 인생此 惡支治良羅 이것을 배불리 먹여서나 다스려此地 捨遣只於冬是去於丁爲尸知 이땅을 버리고 어디에 갈것인가 할 때國惡支持以支知古如 나라를 지닌 혜택을 알리로다.後句君如臣多支民隱如爲內尸等焉 아아, 왕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할 것이면國惡太平恨音叱如 나라가 태평합니다.{향찰 해석현대어역{君은 아비야臣은 딪싶샬 어사야民은 얼힝 아힝고 힝샬디民이 딪싶샬 알고다구믐대흘 살손 物生이 홀머기 다싶려라이 힝흘 빛리곡 어딪 갈뎌홀디나라악 디니지 알고다아으 君 다이 臣 다이 民 다이 힝다딪나라악 太平 힝니닛다.임금은 아버지요신하는 사랑하실 어머니요백성은 어리석은 아이라 하실지면백성이 그 사랑을 알리라꾸불거리며 사는 물생에게이를 먹여 다스린다이 땅을 버리고 어디가려! 할지면나라안이 유지됨을-95.
1. 崔生遇眞記의 서사 유형최생우진기는 불우한 최생이 두타동굴에서 떨어져 내려 수부에 들어가 용왕의 초대잔치에 신선,도사,산선 등과 시회를 열고자신의 시력을 인정받아 수명을 연장하는 단약을 선물로 받고 돌아와 신선이 된다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최생우진기를 모티브로 요약해보면,1. 주인공 최생은 證空禪師와 함께 두타산 무주암에 은거한다.2. 최생이 증공을 따라 두타 동굴의 용추을 찾아 갔다가 실족해 추락한다.3. 증공은 혼자 돌아와 최생이 기녀에게 현혹돼 갔다고 거짓으로 알린다.4. 그후 어느날 최생은 玄鶴을 타고 돌아와 자신이 겪은 용궁 체험을 설화한다.5. 최생이 용궁의 萬化門을 들어가 淸冷閣 연회에 참석중인 용왕의 면회를 요청한다.6. 최생은 알자의 인도로 조종전 청령각으로 인도된다.7. 신선,도사,산선(승)이 초대된 자리에 최생도 함께 자리해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8. 玄夫 사람의 문명가와 介士들의 武成舞에 어울려 유.불.선이 화합하는 잔치를 벌인다.9. 최생은 龍宮會眞詩에 이어 신선이 율시를 짓고 도사의 선창과 산신이 수창에 이어 용왕도 시로서 이들과 기연을 기리게 된다.10. 최생은 신선이 주는 연명의 환약을 받고 10년후 봉도에서의 재회를 기약하고 이별한다.11. 초대객들이 용문을 나오자, 최생은 현학을 타고 인세로 다시 돌아온다.12. 최생은 이야기를 마친후 증공과 함께 구경하지 못했음을 아쉬워 한다.13. 최생은 입산해 어찌되었는지 알 수 없고, 증공은 무주암에서 오래도록 살며 최생의 신선 체험을 자주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이야기 전개 방식은 중층 구조속에 시간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역전되면서 극의흥미를 유발하고 있으며, 시점에 따라 화자가 달라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서술자는 진주부 서쪽에 두타산이라는 산이 있다는 현재 시제로 출발해, 용추동에 실족한 후에는 증공의시점(과거시제)으로 바뀐다. 최생의 행방에 대한 극적 긴장감이 형성시키는 극 전개는 어느날 최생의 출현으로 전환되며 신선계의 체험담을 들려주는 대과거 시제로 돌아간다. 흥미유발 단계이면서 작품의 주요 모티브가 되는 대목. 이후 최생은 다시 신선세계로 돌아가고 마지막은 증공의 말을 통해 최생의 신선 체험이 현실로 전파되는 형식을 띈다.여기서 두타산의 용추동 형세를 묘사하고, 마지막 부분에 최생이 산에 들어가 끝마친 바를 알수 없고,중공만이 늙도록 무주암에 살명서 이 일을 자주 말했다는 부분은 외부액자에해당하며, 최생이 무주암에서 떨어져 용궁으로 들어가고, 용궁에서 환대를 받으며 회포를 푸는 장면은 내부 액자가 된다. 내부 액자 가운데에서 용국의 조종전에서 용왕과 제신들과 시를 읊다가 십년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돌아보는 부분은 이 작품이 이야기 하고자 했던 주요 대목에 해당한다.작가는 이것을 이야기 하기 위해 몇겹의 여과 장치를 사용하며, 전달되기 어려운 특수한경험적 내용의 이야기를 객관화 하고 있다. 또 신선에게서 연명의 단약을 받아 봉래 재회가약속되고 있다는 점등은 종전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던 독창적 서술로 평가받고 있다.2.. 비현실적 경험 빌은 현실 풍자최생우진기는 직접 체험한 최생과 최생의 이야기를 증거해주는 증공의 역할로 분리시키며 서사구조상 효과를 꾀하고 있고, 최생의 경험을 통해 작가가 하고자하는 이야기가 전달되고 있다. 주인공 최생은 "기개 있고 영화와 이익을 도외시하며 산수를 유랍하기 좋아하며 사람들이 세상 물정에 어둡다고 비웃음"을 받는 인물이지만 용궁회진시(龍宮會眞詩) 삼십운(韻)을 읊으면서 역대 덕망 높은 황제의 덕을 칭송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한탄 한다. 이에 왕은 최생을 칭찬하며 '세상의 교화가 쇠퇴하고 도덕이 은미함으로부터, 하도와 낙서의 비밀은 오래 되었소. 음양과 오행의 감응함을 어찌 따를 수 있겠소? 그러하니 백성의 삶은 괴로운 것이오'라고 말한다. 동선 또한 `진시황이나 한무제가 가히 요순이 될 수 있음에도 배우지 않고, 구하고자 하나 구하기 어려운 신선이 되고자 하여 천하를 어지럽히고 만세에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하며 다분히 현세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유교적 사상에 따라 왕으로서 해야할 도리를 설파하며, 현 정치를 비판하는 현실 비판적 면모를 살필 수 있는 대목들이다.이로인해 전체적으로 저자는 유교적 합리주의라는 의식적 사고를 통해 무의식적 욕망이 자신과는 무관한 것처럼 증층 구조를 이룬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에 최생을 비롯해 洞仙(신선),島仙(도사),山仙(승)이 등장하며, 유.불.선이 혼재된 작품으로 비춰진다. 서술자로 승려인 증공이 등장시킨 것은 佛교적 색채를 띄며, 최생의 경험지가 용궁이이고 신선의 등장은 도선적 세계관이 내포돼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가하면,서술자는 용궁에서 최생과 동선이 주고받는 대화에서 유교적 치세 이념을 설파하며, 주요 사상을 전달한다.`자기 임금에게 아첨이나 이들은 홍수나 가뭄을 하늘의 운수 탓으로 돌린다....당시의 임금들이 하늘의 뜻을 끊어 버렸으니 참으로 애처로룬 일들이 아니겠는가`.신선세계를 차용해 임금과 위정자들의 잘못된 정치를 훈계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불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선을 놓지 않는다. 서술자는 승 `증공`이라는 이름의 뜻은 `허무를 증명하다`는 의미. 작품 중 거짓말을 하게되고 의심을 받는 인물로 묘사된다. 결국 기이한 체험담이 증공에의해 알려지게 되지만 신선세계에 대한 신빙성을 뒷받침 해주지는 못하고 있다.반면, 동굴속으로 추락해 수부에 들고, 현학을 타고 돌아오는 액자 속의 출입이 전체적으로 신선 사상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결말 부문, 최생이 신선세계로 돌아간다는 대목등은 도가적인 사상을 수용하면서 은일 취락과 세속을 초월해 신선세계를 동경하며 이상 세계를 추구한 작가의 사상을 살필 수 있게 한다.3. 구조적 의미은 조선조 초기소설에 속하는 를 이어 傳奇體의 성격을 갖추고 있으며, 그 주제의 표출에 있어 일관된 통일성과 각 모티프들간에 일정한 질서를 가지고 구성되었다. 주제면에서 볼 때, 신선사상의 추구와 동경이 깊이 있게 반영되어 이를 중심으로 재구성하였다. 에서 중요한 점은 神仙思想을 배경으로 재구성된 점이며, 사건전개를 유기적으로 연결시켜주는 매개체로서 주요 등장인물이 道仙的 인물로 나타난 점이다. 즉 사상적 배경인 신선사상과 주인공이 추구하는 행위 및 洞仙 島仙 山仙이 세분되고 이들이 화답한 詩文의 내용등은 도선사상적 맥락에서 해석이 필요하다.(1) 神仙思想과 仙界憧憬은 과 달리 신선사상과 선계동경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두타산은 예로부터 강원도 삼도부에 있는 명승고적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발단부의 묘사를 보면, 지상仙界인 眞境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崔生은 본래 속세를 벗어나 산수를 유람하며 이상향에서 노닐고자 한 隱逸子(은일자)의 유형으로 현실세계와는 조화하지 못하는 인물이다.崔生이 처음 동굴에 떨어져 靈草를 먹고 음식을 먹지 않아도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신선사상에 바탕을 둔 일종의 壁穀(벽곡)을 의미한다. 또한 깊은 동굴에 묘사된 선계의 형상은 동양적인 낙원관의 원형으로 인식되는 桃花源記(도화원기)의 이미지를 수용한 것으로 역시 신선사상의 추구를 보여주고 있다. 지척지간을 분별할 수 없는 위치에서 좁은 구멍을 통해 필사적으로 찾게 되는 작은 시내가 別有天地(별유천지)로 묘사된 것도 이를 잘 입증해 준다. 이러한 동양적 낙원의 형상화는 신선사상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한 특성으로 상기 별유천지는 곧 도화원기와 같은 神仙境으로 볼 수 있으묘, 나아가 용궁세께는 이를 동경하는 자향의식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였다고 본다.) 동양적 낙원추구의 이상향인 地下別境이나 선경 도화원기에 관해서는 金 夏 교수의 논저를 참고할 수 있다. 의 경우 동양적 이상향의 전범이라 할 수 있는 桃花源記의 모티프가 수용되어 있다. 金 夏, 『韓國文學의 樂園思想硏究』 (일신사, 1973). 참고그 결과 용궁세계에 들어가 신선과 交遊하는 모습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으며, 이에 도달하여 보게 된 道仙的 인물의 모습이나 용궁세계의 묘사 역시 신선경임을 알 수 있다.그러므로 이러한 용궁선계는 주인공이 잠재의식 속에서 추구하는 이상적 願望空間이며, 결국 이를 동경하고 있음은 곧 이 작품의 주제의식과 밀접한 관계를 말해준다. 작품에 나오는 용궁세계뿐만 아니라 동굴, 두타산의 龍湫洞(용추동)등도 각각 신선경의 모습을 묘사해 놓았으며, 일종의 이상적인 낙원 형상을 상징하고 있다고 보아진다. 이러한 세계는 시공간이 분화된 현실세계와는 달리 시공간적 제약이 없이 영생불사의 신선이 은거한다. 또한 세속을 초월한 願望充足(원망충족)적인 시공간 속에서 무위의 삶을 영위하며 사는 세계로, 현실과 같은 상대적 사회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절대자유의 공간으로 형상화된다.의 용궁세계에는 세 신선이 인간세계를 떠나와 살고 있는데, 이들이 서로 주고받는 詩文의 화답을 통해 도선가적 이상세계의 추구를 더욱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최생의 용궁회진시 30운을 보면 삼선이 같이 하여 주고받는 作詩, 옥소리와 帝王의 진미와 瑤池 술잔 등 도선적인 소재를 잘 활용하여 신선사상의 추구와 선계를 동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특히 이 시의 마지막 부분에 白日昇天하여 옥황상제를 뵙고자 하는 내용은, 본 작품이 신선사상을 추구하고 동경하는 주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말해준다.이밖에 용궁에서의 하루동안의 일이 지상에서이 70여 일에 해당되는 시간관념도 도선적 사고를 말해준다. 고소설에 흔히 나타나는 이러한 시간관념도 도선적 사고를 말해준다. 고소설에 흔히 나타나는 이러한 시간관념은 개인적 가치기준에 의한 시간 평가를 말한다. 결국 내면의 의식세계에서 현실을 초월하여 조현실적 이상세계의 경지를 체험하게 되는 시간은 현세와는 다른 영속적인 시간이며, 단순한 허구적 개념이 아닌 이상적 가치를 지닌 의미로 인식되는 것이다.이 작품은 고소설에 흔히 나타나는 신선사상을 단순한 설화적인 삽화로 수용하지 않고, 작품 전편에 이들 요소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이를 추구하는 주제의식을 표출한 점이 특색이다.
제국주의란 단어는 처음에 국내의 권력을 표시하기 위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용어는 점차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지배하는 제국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하였다.제국주의(帝國主義)라는 단어만 보아도 그것에 담긴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임금의 나라가 주인됨이 옳다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제국주의는 자신의 나라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그것으로 인해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사상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제국주의에 대한 사상은 서양의 문학, 영화 등등에 내재되어 있다. 이번에 본 포카혼타스도 이런 예이다.포카혼타스는 월트 디즈니의 에니메이션으로 영화가 개봉될 즈음 배급사에서 포카혼타스는 엄격한 역사물이라고 광고하면서 더욱 주목 받았었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있게 보면 이 안에는 제국주의 사상이 여러 면에 나타나고 있다.영화상에도 잠깐 언급된 제임스타운은 북아메리카에 자리잡게 되는 최초의 영국 식민지의 하나로 제임스 1세가 런던회사에서 부여한 특허를 토대로 해서 1607년에 약 100명이 이민하여 제임스강 하구로부터 약 60킬로미터 상류에 정착촌의 터를 잡아 이루어진 것이다. 도회지 사람들과 농업보다는 황금을 찾는데 더 관심이 많은 모험가들의 대부분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듯 존 스미스는 영국 이주민들과 17세기 초반 북아메리카에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도착한 지역에 포카혼타스와 포완탄이 살고 있었다. 북아메리카 동부 지역에서 영국인 정착촌을 세우는데 간여했던 존 스미스는 1609년에 영국으로 돌아간다.즉, 여기까지의 내용은 실제와 영화와 같은 내용이다. 그러나 영화상에는 사실과는 전혀 달리 제국주의 사상에 의해 만들어진 부분들이 있다.우선 처음장면을 보면 배를 타고 신대륙을 찾아 가면서 희망에 들떠 있는, 인디언을 물리치고 황금을 차지하여 부자가 된다는 그들의 꿈이 몇 번이나 강조된다. 인디언의 사회와 문화가 있는 땅을 자신들이 차지할거라는 것은 분명 침략이다. 그러나 이렇게 기대감과 호기심을 더함으로 이런 침략도 긍정적인 것으로 바라보게 하고 있다.그리고 다음은 황금을 찾을것에만 잔뜩 기대한 총독이 배에서 내리면서 영국국기를 꽂으며 이제부터 이땅의 것을 모두 자신의 권한으로 한다고 선포하고 황금캐기에 광분한다. 분명 이것은 자신들이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땅을 침입한것임에도 이렇게 그린 것은 이 모든 것들이 야만인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으로 합리화하며 자신들의 침입조차 당연한 것으로 보는 제국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또 너구리(?)가 존 스미스와 만나는 장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존 스미스가 처음보는 쥐라고 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온 과자를 꺼내주면서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을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냥 흘려버리기 쉬운 말이지만 여기에는 유럽인들이 우월의식이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존 스미스와 포카혼타스가 만나서 나눈 얘기중에 존 스미스가 포카혼타스에게 자신들이 이땅을 발전시키고 야만인들을 교화할 것이라고 설득하고자 한다. 자신들의 문명이 좋다고 하며 편하고 좋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유럽인들의 시각만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살기좋은 삶이란 자신들이 느끼기에 따라 다른 것이다.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문명을 전해준다는 이유로 원래 주인이던 인디언들은 백인들에게 땅과 먹을거리를 빼앗겼으며 백인들의 요구를 듣지 않는다고 죽어가야 했다. 조상들이 살던 곳, 삶의 터전이었던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이런것에서 과연 유럽인들의 문명이 그렇게 편하고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다. 이것 또한 그렇기 때문에 유럽인들의 제국주의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마지막으로 존 스미스와 포카혼타스와의 사랑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포카혼타스는 자신의 아버지인 추장에게 청혼해온 남자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러다 처음 본 백인인 존 스미스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여기에는 몇가지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포카혼타스는 태어나서부터 그때까지 자신의 부족 사람들만 보았으며 더 해야 자신과 비슷한 인디언들만 보고 살아왔다. 그런 포카혼타스가 과연 처음본 백인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의문이다. 우리나라의 예로 보면 과거에 백인들이 우리나라에 처음 선교의 차원에서 왔을때 다들 귀신으로 보고 그럴 정도로 처음 본 백인들은 놀랍고 당황스런 존재로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인디언들도 아마 그랬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포카혼타스는 자신들의 부족의 기준으로 가장 멋있다고 하는 남자의 청혼은 거부하고, 사랑때문에 스미스를 따라 미지의 세계로 간다는 설정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극하여 유럽의 침략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또하나 더 찾아 볼 수 있다. 스미스의 부하가 포카혼타스에게 청혼했던 인디언을 총으로 쏴서 죽이고, 이것을 알고 온 다른 인디언들이 스미스를 자신의 부족으로 데려간다. 스미스는 체포되어 처형 명령을 받고 아침을 맞이 한다. 처형당하기 직전 그의 몸 위에 포카혼타스가 자신의 몸을 던지며 목숨을 살려달라고 한다. 자신이 스미스를 사랑한다고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