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에 대하여- 명대의 사회와 문화를 중심으로 -동양사교육입문Ⅰ. 명나라의 성립1. 원 말의 혼란했던 상황과 민중봉기의 심화몽골왕조 초기에 시작된 민중봉기는 냉한기 때문일 수도 있고 몽골의 농민 착취 때문일 수도 있으며 이 두 가지 요인 모두에 기인한 것일수도 있다. 최초의 민중봉기는 1325년에 일어났다. 1329년의 통계에 의하면 당시 제국내의 기아민은 약 760만 명에 달했는데 이것은 공식적인 집계에 불과했고 그 수는 더 높이 추정될 수 있다. 이 숫자는 전 인구에 상당한 비율이었다. 이제 끊이지 않고 발생하게 된 반란을 이끈 자들은 포목상인, 어부, 농민, 소금밀매자, 복역중인 병사의 아들, 사무소 전령 등의 하층계급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결코 몽골인이 외국인이기 때문에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인과 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대개 언제나 부자를 공격하였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부자를 모두 살해하고 그 돈과 소유물을 분배하였다.몽골의 수비대는 이 반란을 대처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몽골 제국의 지배가 어떻게 그 후 40년이나 버틸 수 있었을까? 몽골은 부자에게서 돈을 빌려서 그것으로 반도와 싸울 지원병을 모집하여 그럭저럭 반란에 대처했다. 국가세입으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을테고 국사예산에 포함시킬 수 있는 항목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진신 스스로 지원병을 모집하여 당국이나 정부의 지원 없이 자력으로 반도와 싸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몽골지배를 지탱시켜준 자들은 자신이 습격으로 살해될까봐 두려워서 반도와 싸운 다름 아닌 중국인 진신(향신층; 신사층)이었다.볼프강 에베하르트, 《중국의역사》(서울, 문예출판사, 1997) p3221315년 황하의 제방이 터졌다. 제방을 재건하고 그 보전책을 더욱 강구해야 할 필요에서 정부는 17만 명을 징발했다. 이러한 동원에 잇따라 새로운 대폭동이 발발했다. 하남, 강소, 산동 등 노동자들이 징발된 어느 지역에서고 혁명집단이 형성되었는데 그 수가 10만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종교적 색채를 렇지만 그 관위(官位)는 낮았으며, 그들은 황제에게 주청(奏請)된 문서에 대해 황제가 결제해야 할 내용을 미리 준비하는 것을 임무로 할 뿐이었다. 이를 당시의 용어로 라고 한다. 그런데 선종시대에 이르러서 양사기(楊士奇)·양영(楊榮)·양부(楊溥) 등 소위 삼양(三楊)이 대신인 상서(尙書)의 직을 겸하면서 내각대학사에 임명되었기 때문에 그 지위는 실질적인 재상으로 보이기에 이르렀다.선덕 19년 영종이 9세로 즉위하자 삼양은 보필의 책임을 맡아 각신(閣臣)의 지위는 육부를 압도하게 되어 결국 영락시대부터 정통시기까지 이들 삼양에 의해 내각제도는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시기는 태조나 성조와 같은 황제의 개인적 전권행사는 약화되고, 내각을 위시하여 신료(臣僚)의 비중이 높아져 중요정책은 정의(廷議)에서 결정되었고 관료의 집단적인 행동에 의한 봉박(封駁)이 가능했던 시기였다.결국 태조나 성조 영락제가 그토록 원하고 추진하였던 황제중심의 극단적인 중앙집권체제는 현실상의 문제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종래의 방식으로 돌아서게 되었다.4) 환관의 사례감(司禮監)환관은 내정의 생활에 꼭 필요한 존재였지만 동시에 역대 왕조에 큰 화도 미쳤기 때문에 태조는 이들에 대해 정치 개입을 엄금하여 문자를 가르치지 않도록 하였다. 그러나 성조는 환관을 중용함으로써 이들이 정치무대에 등장하는 실마리를 마련하였다. 성조시대에 환관의 숫자는 급증하였으며 환관으로 구성되는 12감(監)·4시(時)·8국(局)의 소위 24아문(衙門)이 설치되었다. 이들 환관기관은 원래 이부에서 관할하였으나 성조 초부터 사례감이 관할하도록 되어 환관세력의 대표인 사례감(司禮監)은 황제권의 비호하에 그 권력을 강화해 나갔다.이로 인해 환관이 서기관으로서 등용될 뿐 아니라 황제의 측근에서 국정에 참여하는 기회를 부여받게 되었다. 즉, 내각에서 를 붙여 황제에게 보내온 모든 문서는 사례감에서 처리되었기 때문에 사례감에 근무하는 환관은 내각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관료들 중에서도 자기타개하려 했고, 동림·복사는 향촌의 공론과 이익이 보장되는 분권공치의 정치주장으로 상황을 해결하려고 했다. 이 두 방향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한 점에서는 모두 '신(新)'이라고 할 수 있으나, 차이는 장은 위로부터, 동림은 아래로부터 그것을 주도했다는 점이고 이는 양자가 근거한 사회적 기반과도 관계가 있다. 명대 사회의 변화는 신사의 향촌지배를 불가결한 것으로 하고 후자의 방향으로 나아갔다.명조 태조의 중앙집권체제 수립에서 주된 장애대상으로 여겨져 탄압을 받았던 강남지역의 지주 관료들은 명말 향촌을 지배하는 신사로서 또 다시 분권경향을 나타내었고, 이어 이민족 청조통치하에서도 반청 흐름의 중심이 됨과 함께 역사적인 지역특성이라 할 수 있는 중앙정부에 대한 원심력을 나타내 청초 강남신사는 또 한번 대규모 탄압을 받아야 했다.III. 明나라의 經濟와 文化1. 향촌의 지배 조직명조는 향촌지배를 위한 기본조직으로서 1381년 전국적으로 이갑제(里甲制)라는 향촌의 행정적 편성을 착수하였다.이것은 종전부터 형성되어 있던 촌락의 공동체질서를 그대로 존속시키면서 원칙적으로 자급자족이 가능한 110호를 1리(里)로 편성하고, 인정(人丁)과 자산의 다과에 따라 호등(戶等)을 구분하는 제도였다.서울대학교동양사연구실 편, 《강좌 중국사》(서울, 지식산업사, 1989),p.92 ; 그러므로 1里는 자급자족이 가능한 110호와 不定數의 貧窮戶로 편성되었다.이갑제의 예시 그림이갑제는 110호의 호수를 기준으로 짜여졌는데 그 중 성정(城丁)의 수와 토지 및 기타 자산액이 많은 10호가 이장호(里長戶), 나머지 100호가 갑수호(甲首戶)가 되었다. 각 리에는 1이장호에게 통솔되는 10갑수호 즉, 총11호로 1갑이 조직되었고 이 각 갑이 이갑정역(里甲丁役)을 매년 10년을 주기로 번갈아 가며 부담하였다. 그리고 10년마다 그 사이 각 호의 가족과 자산의 이동을 조사하여 호적과 조세와 요역 부과의 기초대장을 겸한 부역황책(賦役黃冊)을 만들었다.또 1필마다의 토지에 대한 소유자와 조세의 부담액을 기능별로 수십 명씩 성군(成群)하여, 단공(緞工: 무늬 넣는 일을 하는 사람)은 화교(花橋)에, 사공(紗工: 글자 넣는 일을 하는 사람)은 광화사교 (廣化寺橋)에, 차공(車工)과 경공(經工)은 염계방( 溪坊)에서 서성거리면서 기호가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일종의 일용 노동시장이 존재하였다. 따라서 이들 일용 용공들은 만일 기호의 작업이 감소하면 곧바로 생활에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뿐 아니라 이들은 행두(行頭)라고 하는 청부 중개인의 주선에 따라 기호에게 분견(分遣)되었으므로, 용공은 행두에게도 예속될 수밖에 없는, 극히 불안정한 위치였다.서울대학교동양사연구실 편, 동상서, p.120 ; 이러한 형태의 경영을 包工制 혹은 把頭制라 한다.이상과 같은 도시 견직업의 발달에 영향을 받아 15세기 중엽부터는 도시 부근의 농촌지역에서도 견직물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15세기 중엽 무렵부터 소주부에서는 현성(縣城)에 사는 기호가 소주부성의 용공을 고용해서 견직업을 경영하기 시작하였고, 15세기 후반에 이르면 현민(縣民)들도 점차 기능을 습득하게 되었다.한편, 이와 같이 주변 농촌에서 직물업을 배경으로 중소도시가 무수하게 발흥하게 되자 소주는 이를 기반으로 하여 전국적인 직물업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방직 기술면에서 보면 도시와 농촌은 여전히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소주는 고급품을 생산하는 외에도 도시와 농촌의 생산품의 집산 및 이의 가공·제조 등을 담당하였다.강남의 농민들이 견직업에 참여한 것은 면직업에서도 본 바와 같이 가계를 보충하기 위해 부업으로서 참여한 것이었다. 농민은 대개 고리(高利)로 돈을 빌어 잠종행(蠶種行)으로부터 종지(種紙)를 사서 누에를 길렀다. 상엽(桑葉)도 상인이 공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자금의 단기 회전이 필요한 농민들은, 조사(繰絲)작업이 끝나자마나 생사를 시장에 팔아야 했다. 그러므로 그 후 농한기에 비단을 짜기 위해서는 농민은 생사 상인으로부터 생사를 다시 사올 수밖에 없었다. 바꾸어 말하면, 명말의 견직물업에서하여 상업이 발달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직물업 등 공업의 발달에 따라 농민의 상품작물 생산이 증가하면서 각 지역마다 소규모 정기시가 번영하였고 이러한 지역시장은 대도시와 연결되었다. 상업의 발달은 대자본을 보유한 대상인집단을 발생시켰고 특히 산서(山西)상인과 신안(新安)상인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중국 내에서 원거리 교역이 이루어져 이를테면 강남의 수공업 제품이 화북, 변방, 양자강 오지로 팔려 갔고 화북, 양자강 유역 각 성의 곡물, 면화 등 원료가 강남지방으로 팔려 왔다. 이리하여 미곡, 소금, 직물, 도자기, 차 등이 전국적인 교역품목이 되었다.이 시기 상공업 발전의 기저에는 물론 농업생산력의 발전이 밑받침을 해주고 있었다. 미작 품종이 다양해졌을 뿐 아니라 고구마, 감자, 땅콩, 연초 등 외래품종의 도입을 비롯하여 기타 곡물도 다양하게 재배되었다. 또한 이모작 지역이 확대되고 수리시설의 확대, 토지 개간 등으로 호광, 사천 같은 새로운 미곡생산 중심지가 생겨났으며 벼농사의 북방한계선이 북경, 천진 근방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여러 요인으로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늘어나고 전체적으로 농업생산력이 발전하여 상공업의 발전을 가능케 해주었다.농업생산력의 발전, 상공업과 도시의 발전은 자연히 서민의 지위향상을 가져 왔다. 송대 이후 계속된 지식보급의 결과 농촌에서도 서원 등을 통해 교육을 받은 지식인층이 나왔다. 과거응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한 데서도 전체적인 식자층의 증가 정도를 엿볼 수 있다. 생산력의 향상, 상품작물의 재배와 부업을 통한 수입 증가 등도 서민의 지위가 향상될 만한 요인이었다. 소작료 거부투쟁(抗租), 조세 거부투쟁(抗糧), 직물노동자의 반란(織傭의 變) 등 밑으로부터의 투쟁이 격렬했던 것은 그만큼 수탈이 강화된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농민, 노동자의 자의식의 성장을 반영하는 것으로, 그리하여 자신들의 지위를 향상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9. 명청시대의 사상과 문화1) 양명학과 고증학명초에는 몽골족의 풍습을 배제했다.
「제 7차 사회과 교육과정」에 대하여Ⅰ. 머리말1. … 이전에「일반사회 교육론」이라는 강의의 대미를 장식할 과제인 7차 교육과정을 분석할 기회가 온 데에 무척 감회(?)가 새롭다. 우리가 배웠고, 배우고, 그리고 앞으로는 가르칠 과목인 사회과. 바로 이 사회과 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일반사회과 란 또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단순히 필기하고 그 내용을 죄다 외워서 시험만 치고 마는 강의가 아닌, 현장에 우리들이 나가서 무엇을 가르치고 또한 어떠한 기준에 준하여 가르칠 것인가를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기회였다는 생각이 든다.이러한 강의에서 마지막으로 현재 교육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과정을 관장시키는, 교육과정 을 분석하고 비판해 봄으로써 우리가 앞으로 이 교육과정의 장·단점을 잘 알아서 교실내의 실제 수업시간에 정말 의미있는 사고 를 학생들에게 시켜주는 것이 이 강의의 출발점이자 동시에 종착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교육과정의 제정과 개편 및 변경의 주인이 교육부라는 국가 기관이 아닌 교사 에게로 와야 한다는 것까지 생각하게 된다.(뭐, 나중에 분석·비판한 이후 다시 언급할 것이지만)이상, 강의를 다 듣고 난 이후의 감상을 써보았고 이후로 이 리포터의 순서와 방향에 대하여 짧게 서술하겠다.2. 들어가며그 동안 우리나라의 사회과는 많은 변천을 하였다. 1946년 미군정 하에 미국 콜로라도 주의 교수과정을 가져와서 시행된‘Social Studies(제 1차 교육과정에서의 「사회 생활과」)’는 우리나라 사회과의 첫 걸음마였다. 그리고 밖으로는 그 당시 유행하던 신사회과 사조의 영향을 받아서, 안으로는 유신독재 하에서 완성된 제 3차 교육과정의 사회과는 학문중심의 사회과를 겉으로만 표방한 채, 실제 분과적이고 지나치게 인격도야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이 시기 국사와 국민윤리(현재의 윤리 )가 독립하여 3차 교육과정과 사회과의 정의조차 모호해진 시기도 있었다. 이후 4차와 5차를 거쳐 제 6차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간중심의 교육과정적인 성격)라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시민적 자질에서는 1 폭증하는 정보 사회에서 정보의 수집, 처리, 활용하는 능력, 2 객관적인 정보와 가치 준거에 따른 합리적인 판단과 의사 결정 능력, 3 지역 사회와 세계에 대한 이해를 통한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과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 4 인간의 존엄성을 인식하고 인간 관계를 중시하는 도덕성, 5 우리의 국토와 지역, 전통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한국인의 문화적 정체성과 공동체에 대해 헌신하는 태도, 6 전 지구적 관점에서 세계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세계 시민의 자질을 제시하여, 특히 세계화·정보화·개방화 시대에서 중시되는 시민적 자질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사회 인식에 토대하여 시민적 자질을 육성하는 것, 다시 말하면 일차적으로 사회 인식 능력을 형성하고 궁극적으로 가치 및 태도, 행동 목표에 도달하려하는 것으로 능력 중심의 시민적 자질 육성을 추구하고 있다.한편, 제7차 사회과 교육 과정이 학습자(즉, 주체) 중심의 수준별 교육 과정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사회과 교육의 성격을 규정할 수 있다. 이 점은 학습자의 사회 인식 과정을 실제적으로 고려하는 방법 차원에서의 성격 규정이기도 하다. 여기서 학습자 중심 이라 함은 학습자의 능력과 흥미를 존중하는 개별화 학습과 학습자 스스로 학습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자기 주도적 학습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 7차 사회과 교육 과정은 학습자의 자기 주도적인 사회 인식 과정 및 방법이 중시되는 방법 중심 사회과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겠다. 즉, 방법 중심의 사회과의 고유성을 강조한 교육 과정이면서, 실제 내용 구성에 있어서 시민적 자질 중시의 사회과와 사회 과학 중시의 사회과, 기본 생활 교과로서의 사회과와 학문으로서의 사회과, 통합성을 추구하는 사회과와 계통성을 유지하는 사회과 사이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또, 바람직한 시민은 곧 주권자로서 한국인을 말하며, 이러한 인간상은 한국 및 세계의 사회·문화적 상황 속에서 21세기를 현오면서 축적된 지식의 총합이, 2주일 간 생산되는 양과 맘먹을 정도로 정보나 지식이 엄청나게 생산·변화·소멸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를 살고있는, 그리고 앞으로 더 빠른 시대를 살아갈 학습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할 것들을 제공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점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7차 교육과정이 서술되었다.여기서 한 가지 특이한 사항은 물론 사회과 만의 독특한 점은 아니겠지만, 교육적 주체에 지역 사회 를 넣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원래의 교육, 특히 사회과 교육에서는 그 이상(理想)에 충실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앞에서도 이미 언급했다시피 이러한 지역 사회의 중시는 환경 확대법 적인 성격 또한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다시 한 번 앞의 분석내용을 뒷받침하는데, 주체의 주변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알아가는 동심원적 확대법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하지만 이상한 논리 또한 발견되고 있다. 시민성 함양 교과로서의 통합성과 사회 과학 교육의 계통성 간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말이 그것이다. 학문적인 계통성을 중시하면서 어떻게 통합적인 교과를 이뤄나갈 수가 있을까? 두 상반되는 개념이 조화를 이룬다면 과연 어떠한 방법으로 이뤄질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볼 때에 이런 말은 전혀 논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는 부분이다. 결국 통합성이나 아니면 학문적인 계통성, 둘 중에 하나만으로 교육과정이 구성되어 있고 부분적으로 다른 한 특성을 고려한 것이 섞여 있는 부분적인 혼재의 양상을 띌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다음의 내용들(사회과 교육 과정의 목표-내용-방법)을 하나씩 보면서 이 부분의 모호한 면의 진실(?)을 알아보기로 하겠다.4. 사회과 교육 과정의 목표사회과는 학문·철학적 요구, 국가·사회적 요구, 학습자의 요구를 토대로 총괄 목표와 6개항의 행동 영역 목표를 제시하였다. 총괄 목표에는 사회과의 궁극적인 목표를 진술하였고, 행동 영역 목표에는 4개항의 지식·이해 목표와 각 1개항의 기능 및 가치·태도 목표를 제시하였다. 지식·이해 목표 제1항은 분하여 개인적으로는 인간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보편적으로는 민족 문화 및 민주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는 태도를 강조하였다.위에서 살펴본 제7차 교육과정의 교과 목표를 도식으로 정리하면 아래의 표와 같다.주어진 총괄 목표와 각 영역별 목표는 앞에서 이미 설명을 했기 때문에 간단하게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먼저 총괄 목표는 사회과의 정의가 사회 인식의 형성과 그에 터한 시민적 자질의 육성이라고 보았을 때, 시민적 자질만의 강조가 아닌 사회 인식 형성의 과정 또한 강조가 되어야 하며 그 추구하는 방법에는 지식 및 탐구 방법의 이해 라는 관점을 보이고 있다.또한 각 영역별로는 무엇보다도 통합을 추구한다는 기본 대전제를 깔아놓으면서 개개의 각 영역들 간의 계통성 역시 기본적으로는 시민적 자질 육성이라는 목적에 맞추고 있다.여기서 한 가지 이채로운 점은 각 개개인들의 시민적 자질의 육성을 중시함으로써 좀 더 민주화된 시민을 강조하면서도 사회의 발전과 나아가 세계에 대한 관점의 변화로까지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상반되는 가치관(민족의 중흥 ↔ 세계시민적 자질의 육성과 평화추구)의 영역이나 우리가 둘 다를 추구해야 할 바이고, 동시에 둘 다를 충족시켜 주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이념들이다. 그러나 과거 군사독재 시대에는 민족주의적인 가치관이 좀 더 앞서는 경향을 보였으나, 오늘날에는 이와 반대로 세계화에 따른 그에 대한 가치관이 더 요구되는 실정인 것 같다.{개인·국가·사회·인류의발전에기여할수있는민주시민으로서의자질육성←. 지리, 역사 및 사회 과학을 관련시킨 통합적 관점으로 사회 현상 이해↑←. 고장, 지방, 국토, 세계 여러 지역의 지리적 특성 이해. 우리 조상의 삶의 모습과 인류 생활의 발달 과정 및 각 시대의 문화적 특색 파악. 현대 사회의 성격 및 민주적 사회 생활을 위한 문제 파악↓ ↑←. 사회 현상 이해에 필요한 지식의 획득, 조직, 활용 능력 신장 및 사회 문제 해결 위한 탐구 능력, 의사 결정 능력, 사회 참여 능력 배양. 개인과 사회 생활의 민주적인 (scope)을 통한 내용의 수순(나선형식 구성;sequence)을 사용하면서 문제 중심으로 내용 배열이 되어 있다면 이는 단원 학습의 기본 원리인 4가지 원리를 가지고 판단해 볼 수가 있다.첫째, 교수-학습의 과정이 열려 있어야 하며, 내용의 교수 시에 그 내용에 대한 절대화는 안된다.둘째, 학습자의 흥미와 노력이 상호 고양과 조화되도록 내용이 이뤄져야 한다.셋째, 학습자의 활동·경험을 통한 사고에 도움이 되는 유용성을 지닌 것이어야 한다.넷째, 내용과 방법이 유리되지 않도록 통일되어야 한다.주어진 내용조직의 원칙은 이러한 단원 학습의 기본 원리가 추구하는 논리를 따른다고 볼 수 있다(비교했을 때). 그러면서도 학문적 계통성과의 조화를 추구한다라고 했지만 역사·지리·일반사회 영역의 내용 순서를 볼 때에 학문적 계통성을 그대로 따른다고 볼 수 있다. 비록 부분적으로는 환경 확대적인 측면과 내용의 구성원리가 점차 심화되고 추상화되는 나선형의 원리 또한 포함되어지는 것 같지만 국사 의 경우를 보면 여전히 6차나 그 이전의 교육과정과 비슷한 편제를 보인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외의 내용의 분석과 비판은 사회과 교육 과정의 내용부분 말미에 가서 다시 언급하기로 하겠다.3) 수준별 내용사회과에 수준별 교육과정을 도입한 기본 정신은 학습의 개별화와 자기 주도적 학습력의 신장을 통한 교육의 수월성을 추구하기 위한 것으로 수준별 내용은 다음과 같은 원칙에 의하여 구성되었다.. 3학년에서 10학년까지 사회과 교육과정의 내용은 기본 과정과 심화 과정의 두 가지 수 준으로 구분하여 제시한다.. 기본 과정은 사회과 단원 학습을 통하여 대부분의 학습자들이 성취해야 할 내용으로 기본적 지식과 기능·가치 및 이러한 것을 습득할 수 있는 학습 활동을 결합하여 구성 한다.. 심화 과정은 기본 과정을 기대 이상으로 성취한 학습자들이 이수하는 과정으로 학습자 들의 창의적 사고와 상상력을 높일 수 있는 활동, 교실에서 학습한 내용을 구체적 사회 현실에 적용하는 활동, 학습자의 흥미와 관심을 과거
「일반사회 교육론」 수업지도안 분석1 첫 번째 수업지도안 분석● 탐구 학습 모형(멀티미디어 활용 학습)1. 단원: Ⅹ. 사회 변동과 미래 사회의 중단원 1. 대변혁의 시대 중 1차시분2. 학습 방법: 탐구 학습을 기본으로 하고 토의 활동, 조사, 활동 등을 활용한다.3. 학습 목표: 세계화의 개념을 이해하고, 그것이 우리의 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평가할 수 있다.4. 학습 준비: 세계 지도, 세계화와 관련된 사진 자료, 비디오와 CD 등의 동영상 자료를 준비한다.5. 수업의 전개{학습단계학습 내용/학습 형태교수·학습 활동학습 자료 및 유의점도입·우리 사회의 세계화와 지 역화 현상·발표 학습·문제 확인·우리 주위의 세계화 현상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대 화를 나누는 가운데 학습 문제를 파악한다.·교과서 318쪽의 사진을 보고 외국계 은행을 본 경험, 이용한 경험, 다른 외국계 은행 등에 대하여 말하기·편의점, 할인점 등에서 외국계를 찾아보고 외국 자본 에 의한 회사들이 많음을 깨닫는다.·1 세계화 현상이란 무엇인가? 2 왜 일어나는가? 그리고 3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 을 학습 문제로 설정한다.·교과서 사진 이용·교과서의 내용을 재조직전개·세계화 현상·조사 학습·토의 학습·경제적 측면을 중심으로 세계화란 어떤 현상인가에 대하여 토의한다.·다국적 기업에 대하여 조사한다.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다국적 기업 ○○기업 등을 소재로 하여 대화를 전개한다. 해외에 현지 법인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기업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눈다. → 다국적 기업의 의미 파악을 통한 세계화 현상에 대한 개념 형성·기타 우리 증시에서의 외국인들의 투자에 대하여 대 화를 나눔으로써 국제 자본의 이동 현상을 이해한다.·다국적 기업은 중 요 개념이다. 막연 히 세계가 하나가 되어 가고 있다고 하는 것보다 구체 적인 개념을 가지 고 이해시키는 것 이 중요하다.·강의 학습·정치적 측면에서는 국제 기구 등의 역할이 커졌으며, 문화적 측면에서는 세계인들의 생활 방식이 보대한 앎 을 이 수업에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세 번째로, 가설의 검증을 위한 자료 조사 및 수집의 단계가 있기 때문이며,마지막으로 결국 일반화가 도출됨을 볼 때 이는 설명의 교수학의 모습을 외향적으로 어느 정도는 갖추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하지만 이 수업지도안은 엄밀히 말하여 각종 좋다는 이론들을 여기 저기에 갖다 붙인, 혼재된 측면이 크다. 앞에서도 이미 말하였지만 설명의 교수학이 가져야 할 조건을 가지고 비판해 보자면,우선, 가장 중요한 실증주의적 조건들에 대해서 훼손을 시켰다는 점이다. 설명의 교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과학적 탐구과정의 속에서 주어진 탐구 조건들(객체)과 지식 구조화를 시켜나가는 나(주체)와의 가치중립적인 자세이다. 세계화라는 원인 때문에 과연 나의 주변에 어떠한 결과가 생기는가에 대하여 알고, 이 세계화라는 현상이 과연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일련의 과정속에서 그 현상들 속에서 개념을 도출하고 그것들을 통해 이론·일반화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산출된 이론을 가지고(혹은 도출된 개념들에 대해) 가치탐구를 강요하고 있다.두 번째로, 지식 구조화의 과정이 엉성하게 연결되어 있다. 즉 다양한 사실·현상에서 갑자기 추상적인 개념이 도출되고 있다.(외국계 기업·은행 및 편의점·할인점 얘기 → 다국적 기업의 출현이 세계화의 현상이다?!) 또한 일반화 과정에서는 가치탐구 등으로 인해 아예 개념들을 통한 이론 도출과정이 없다.세 번째로,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자료의 수집과 탐색 과정에서 교사가 직접 개입(강의 학습으로)함으로써 탐구과정에서의 개방성( open 여부에 대한 문제)이 저해되고 있다. 교사의 이념에 따라서 일반화가 전혀 달라질 소지가 있다.네 번째로, 또한 그 자료들에 대한 적정성 여부(자료에 대한 분석 절차의 전무함.)를 검증치 못한 상태에서 교사가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그대로 학생들이 따라가는 수순을 밟고 있다. 즉, 과학적 절차에 따른 탐구 학습의 과정이 아닌 셈이다. 즉 세 번째와 네 번째의 비판점은 의심이 불가능자들은 식민지 국가들의 국경선을 마음대로 획 정하여 훗날 많은 분쟁거리를 안겨주게 된 배경을 남기 게 되었다.증거3) 식민지 통치의 정책 방향과 교육 방향은 일반적으로 말 잘 듣는 식민지 주민들을 양성하고, 우매화 정책을 취 한다. ex. 일제 강점기 하의 우리나라의 경우.일반화(결론)·농작물 생산에 불리한 아프리카의 자연조건 및 환경이 기아 문제를 초래한다.·식민지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여러 분쟁들과 그에 따른 기아 가 발생하고, 식민지 시민들의 노예근성 이 그들을 게으름뱅 이로 만들었다.반성및실천.자연조건이 열악한 지역에서는 모두 기아현상이 일어나고 있는가?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 석유자원이 풍부해서/아프리카는 자원이 빈약한가?).우리나라나 푸에르토리코 같이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이거나 지금도 받고 있는 나라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고 있다..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결론은 타당한 것인가?제1가설에 대한 반증의 제시로 지적 당혹감을 주고 제2가설을 유도케 함▶ 학습방법 및 지도상의 유의점1) 활동적·체험적 학습 형태가 존중되어야 한다 : 정보 수집, 학교와 지역의 활동에 적극적 참가, 야외에서 조사와 견학, 다양한 교재의 사용, 컴퓨터 이용, 역할놀이, 시뮬레이션 게임, 토론, 브레인스토밍 등2) 관찰·작업·체험·표현의 제 활동을 가능한 충분히 취급함으로써 학습자의 적극적 수업참가를 촉진할 수 있어야 한다. : 토론회, 3분 스피치, 모의재판 등을 사용한 체험 활동과 표현 활동, 슬라이드와 만화를 사용한 방법 등3) 교사는 다양한 교수전략(협동학습, 직접교수, 발견학습, 개별학습 등)과 관련한 장점과 한계 및 원리와 기술을 이해하고 학생들의 발달단계, 선수 지식, 흥미를 고려한 다양한 학습 전략을 사용한다.4) 지도의 과정에서 적극적인 입장이 아니라 조력자의 입장에서 해결에 도움을 주는 암시만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능동적이고 자주적인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분위기 조성을 해주어야 한다.5) 지나치게 지식의 습득에 신경 쓰지 말고 어디지는 것이기 때문에 심사숙고하여 설정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가설의 설정요인으로써 교사가 질문을 통하여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느냐? 이러한 식으로 묻는다면 학생들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문제는 ○○이 될 것이다 라는 일반적으로 답을 하는데 이러한 패턴에 의해 나타나는 답이 곧 가설이 되는 것이다.(4) 가설 검증설정된 가설을 조사, 관찰, 분석 등의 활동을 통하여 검증하는 과정이다. 하나의 가설을 검증하는데는 여러 가지 검증의 방법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여 한가지 방법만을 고집해서는 안되고 검증방법을 찾아내는 데도 학생들의 창의적인 사고능력을 동원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검증의 과정은 과제로서 부여할 수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학습시간에 하고 있는 것이 대체적인 흐름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부여되는 과제를 조사 관찰하면서 검증하는데 있어서 해결점이 나오지 않을 때에는 다른 방법들을 재차 삼차로 모색하도록 하고, 조사하고 관찰한 내용을 발표 토의하게 한다.(5) 문제 해결(일반화단계)문제해결의 단계는 설정된 가설에 따라 검증활동을 통해 얻어지는 내용들을 종합적으로 정리 요약하여 일반화하는 과정이다. 이 단계에서는 학생들의 자유스런 토론이 이루어지도록 함으로써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사고능력이 배양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특히 유의해야 할 것은 문제해결의 핵심이 뚜렷하게 세워져 있어서 무엇이 무엇인지를 모르게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6) 발전 및 반성 단계발전 및 반성단계는 문제해결의 과정에서 있었던 활동들을 반성해 봄으로써 어려웠던 점이나 쉬웠던 점들을 발표 검토하게 하고 또한 해결할 문제들을 통해 유사한 다른 문제들을 해결케 해보는 과정이다.제시된 수업 지도안은 그 머리말에서부터 문제 해결 학습임을 명시하였고 문제 상황을 설정해 놓고 있으며 탐구의 과정에서도 가설에 대한 검증을 기존의 나와있는 지식을 이용하는 과정을 보임으로 사고의 교수학을 따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전체적인 면을 보았을 때, 여태까지 보여지던 여러 럼 문제의 설정 자체가 학습자의 수준을 너무 상회하는 부분도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교사의 역할이 중시된다 하겠다.마지막으로 문제 해결 학습에 정작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해결이 빠진채, 문제 분석을 통한 일반화만 도출되었다. 물론 문제에 대한 분석이 되었으므로 그 분석된 내용에 대한 대입적인 해결책 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사고의 과정이 빠질 우려가 있다. 앞에서 주어졌듯이 「농작물 생산에 불리한 아프리카의 자연조건 및 환경이 기아 문제를 초래하였다」고 일반화를 내렸는데 이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 문제이고 그 해결책을 제시함에 있어서도 좀 더 많은 지식의 필요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저급 학년에서 수행될 때 교사가 문제해결을 주입시킬(ex. 자연조건을 개선하려면 열대 우림을 보호하고 집단적인 방목을 하지 않음으로써 사헬지대의 늘어남을 막으며 건조기후지대에 수림과 초지를 구성시켜야 한다. → 그 나라의 경제적 여건을 도외시 한 해결책) 우려가 있겠다.3 세 번째 수업지도안 분석다음은 한국교원대 손병노 교수의 [사회과 문제해결수업의 성격, 가능성 및 실제] 라는 논문속에 예시로 소개되어 있는 문제해결학습 지도안이다.이번 지도안 분석 리포트를 준비하면서, 중·고등학교 사회과의 많은 지도안들을 인터넷 등을 통해서 찾아보았다. 그런데, 실제로 소개되고 있는 여러 지도안들을 보면, 학습 내용을 교사가 묻고 학생은 답하는 단순한 형태이거나, 조별로 학습 내용을 조사하여 발표하는 형태가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좀 더 교육론 수업 시간에 배운 교수방법과 유사한 형태의 수업 지도안을 찾아보려 하던 중에, 이 지도안을 발견하게 되었다.문제해결 학습을 표방하면서도 그 수준이 미달되거나, 본래의 논리에서 벗어난 지도안들에 비해서, 이 지도안은 문제 해결 학습의 근본적인 목적을 실천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수업이 교과서의 학습 내용에 맞추어 구성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학습내용은 실제로 경제 등의 사회과에서 배우고 있는 내용들이다.1. 생산인가?
우리나라의 임업촌(林業村)일반사회전공 9935-043 김 흠Ⅰ. 머릿말산촌(山村)의 모습인문 지리학인문 지리학우리나라의 임업촌에 대해 알기 전에 우선 촌락에 대하여 알아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임업촌이란 결국 촌락의 하위개념이며, 그러한 촌락을 기능별로 구분한 것 중의 한 종류이기 때문이다.촌락(村落; Village)이란, 도시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주로 농업·임업·수산업·목축업 등과 같은 제 1차 산업에 의해서 생활하는 지역사회를 말한다. 이러한 촌락은 가옥의 밀집도에 따라 집촌(集村)과 산촌(散村)으로 분류되며, 기능에 따라 농·임·수산업 등으로 구분된다.따라서 여기서 알아볼 임업촌이란 촌락의 기능에 따라 분류를 했으므로 임업을 주로 하기 위한, 혹은 임업을 주요 생산기반으로 하는 촌락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이러한 임업촌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우리나라에서의 임업촌의 개념과 의미임업촌이란, 촌락이 입지하고 있는 장소를 토대로 분류한 하나의 유형이다. 평야에 입지하고 있는 야촌(野村)이나 해안에 입지하고 있는 해촌(海村)과 대조적인 의미를 갖는 것으로, 산읍(山邑)이라고도 한다.자연제약을 많이 받아 촌락으로, 입지는 가경지(可耕地)가 있는 곳에 한정되므로 농가의 분산된 경관, 즉 산촌(散村)을 이루며 촌락의 규모 또한 작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생업기반이 농목업·임업·광산·관광 등 다양한 까닭에 촌락의 기능도 장소에 따라 차이가 있다.) 엠파스(www. empas. com) 백과사전 발췌이렇게 본다면 임업촌이란 말은 현대적인 의미로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앞에서도 서술했다시피 임업촌이라는 말 자체가 「임업」이라는 특수한 생계적 목적을 가지고 이뤄진 촌락의 유형이기 때문에 그렇게 명명된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임업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이미 제3·4차 산업인 정보통신산업과 2차 산업인 광공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개편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교열위에 있는 부가가치가 낮은 임업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촌(山村; Mountain Village)이나 산지촌(山地村)으로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한다.Ⅲ. 임업촌의 유형전통적인 배산임수의 입장에서 본다면 과거 우리나라의 촌락들은 대부분이 임업촌(산촌)에 해당된다. 이러한 임업촌은 종래에는 농업에 생활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 당시 가장 대표적인 한 유형은 바로 1 화전농(火田農)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화전농은 방화에 의한 회비(灰肥) 확보로 감자 등의 구근류와 단기작물인 옥수수·메밀·팥 등을 재배하는 재래식 농사를 의미한다. 이들 화전농은 한국에서도 근세사회(주로 조선시대)에 절정을 이루었으나 화학비료의 등장에 따르는 회비의 비중이 낮아지고, 삼림 황폐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단속과 정착지 조성으로 최근에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임업적 생활기반 역시 연료정책의 개혁과 삼림보호를 위한 신탄(薪炭) 생산의 금지로 사양화의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체되는 목재 등은 동남아시아의 보루네오 섬 등지에서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또 하나의 유형으로는 70년대부터 강원도 일대, 지하자원 개발 과정에서 파생된 2 광산촌의 행태가 되겠다. 그러나 채산성이 맞질 않아서 최근에 이 역시, 사양길을 걷고 있다.반면 3 과수업(과수원예; 과수농업)과 고랭지 농업) 작물생육을 위해 필요한 온도·일조(日照)·수분을 갖추고 있고, 거기에 알맞은 작물을 선택했을 때 경영상 채산(採算)이 맞는 지대에서 행해지는 농업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해발고도가 600∼1,000m 정도의 고지(高地)로서, 남부의 따뜻한 지방에서는 해발고도가 높고, 북부지방에서는 낮은 것이 일반적이다.고랭지는 보통 기온이 낮고 적설기간(積雪期間)도 길지만, 일조시간이 길기 때문에 재배법의 개선·품종개량 등이 이루어지면 상대적으로 더 유리한 농업경영이 될 수 있다. 과수나 채소 등의 재배에서도 병충해가 적고 평탄지대보다 촉성재배(促成栽培)가 가능하기 때문에 시장에 물건이 부족할 때 유리하게 출하(出荷)할 수 있다. 강원도 대관령의 감자·무·배추 재배는 대표적인 예다.은 비록 1차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재배면적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이는 소득수준의 향상에 따라 많은 사람들의 식품에 대한 기호가 증대되었기 때문으로 우리나라의 산업의 발전에 따라 파생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과수원예의 경영특성을 들면 개원비·각종 자재비·시설비 등 자본의 소요가 많고, 집약적인 관리를 하는 데 많은 노력이 들지만 단위면적당 조수익(粗收益)이 다른 농작물에 비하여 높다. 과수원예는 국민의 소득이 높을수록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소득증대와 더불어 혼탁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자연을 찾는 행락인 유치에서 파생된 4 관광취락이 오늘날 임업촌의 가장 대표적인 유형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그러나 광산 및 관광취락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계획된 것이기에 산촌의 본질에서 벗어나기 쉬우므로 아직까지도 대다수의 임업촌은 농림업과 축산업 등 토지경제에 바탕을 두고이다. 하지만 토지는 농·임업적 토대 위에서 이용되나 그 이용방법이 상당히 조방적(粗放的)이라는 약점을 안고 있다. 그리하여 임업촌은 평지에 비하여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생산성과 관련된 토지등급은 매우 낮다. 따라서 소유토지의 일부를 개간하여 전작(田作)을 하고 있으므로 경지는 실제로 소규모인 데다가 필지(筆地)가 수평적으로 가지런히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임업촌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는 '순수 임업촌'은 거의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자유주의와 유가사상일반사회교육 9935-043 김 흠Ⅰ. 서 론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핵심이 되고 본질이 되는 원리(이념)란 과연 무엇일까? 단연코 자유주의가 되겠다. 19세기 시민혁명을 통해 구제도(앙시앙레짐)의 모순을 타파하고 새로운 시민계급이 그들로부터 쟁취해 낸 '자유민주정치와 시민교육'는 이후 민주주의와 자율시장경제체제를 채택한 여러 나라들의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으로 굳어졌다.)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상당히 廣意的 용어이다. 이를테면 자본주의(경제학적)나 사회학적인 용어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여기서는 정치적·사회적인 범주로 한정해서 사용하도록 하겠다.민주주의란 '다수의 지배'를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가 표현할 수 있는 의사(ex. 선거)로써 모든 국가의 정책과 그에 따른 실행이 이뤄지게 된다. 이러한 것을 가리켜 '절차적 민주주의'라고 하는데 이는 대의제 민주주의에 가까운 개념이 되겠다. 하지만 대의제 민주주의에도 단점이 내포되어 있다. 공동성의 문제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공동성이란, 공동의 시각이나 공동의 판단을 충족시켜주는 것을 의미하는데 직접 민주정치가 아닌 이상, 이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100% 충족시킬 수 없는 '이상'이다.그렇다면 이러한 대의제 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할 대안은 없는 것인가? 최근에는 참여민주주의와 같은 새로운 민주주의의 한 행태가 제기되고 있고 그와 유사한(혹은 그 갈래인) 전자민주주의가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러한 최근의 기계적·서구적 도구를 통한, 그리고 서구의 시행착오에서 비롯된 대안이 아닌 동양의 가치관과 역사를 통해 대안을 제시해 봤으면 한다. 바로 동양의 유가사상에서 비롯되는 '공동체 주의'가 되겠다.이러한 공동체 주의의 근원이 되는 동양의 유가사상을 현대의 자유주의와 비교해 보고 상호보완점을 논하여 현대민주주의의 한계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서술해 보겠다.Ⅱ. 민주주의 속에 포함되어 있는 자유주의의 의미1) 자유와 평등역사적으로 자유해방을 요구하면서 나타난 사상이다. 그리고 자유주의 사회는 이론적으로 개인들은 평등하며 권력은 평등한 개인들의 계약에서 비롯된다는 전제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전제는 근대의 홉스나 로크, 루소와 같은 학자들의 『사회계약론』에서 살펴볼 수 있는 내용으로, 이를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한 이데올로기의 사상적 토대로서의 자유주의를 만나볼 수 있다. 사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한자리에 떠올리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본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평등의 관념에 대한 여러 가지 형태의 정치적 실천에 관심을 표명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오랜 대립의 관계에 있어온 것이 사실이지만, 서구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가 자유주의 혁명을 거쳐 탄생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보여주는 것처럼 결과적으로 양자는 서로의 존립을 위해선 필수불가결한 상호의존의 관계로 이어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이처럼 자유주의가 자유주의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어느 한 이데올로기의 사상적 토대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유주의가 고전적인 자유의 개념을 그대로 간직하지 못하고 현실의 흐름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게 된 원인이 된다. 즉 자유주의가 민주주의 속에서 존재하는 한 자유주의의 자유의 개념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양자를 모두 소화해야만 하는 민주주의의 목적 속에서 완전한 나래를 펼칠 수 가 없게 된 것이다.이에 따르면, 자유는 외부의 제재 또는 타율에 의한 강제로부터의 자유, 즉 하고 싶지 않은 것을 거부할 수 있는 소극적 자유(liberty)와 목적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행동을 하거나 창조적인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자유, 구체적으로 기본적인 권리의 보호, 기본적 욕구의 만족, 동의에 의한 통치, 나아가 도덕적 제약의 구성요건까지 갖는 적극적 자유(freedom)로 나누고 있는데, 아무래도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이상은 'Liberty'의 개념을 포함하고는 있지만 그 제도의 특성상 'liberty' 보다는 'freedom'의 개념에 가깝다고 하겠다. 민주주의 속의 자유의 개에 있어서 심각한 불평등을 야기시키고, 따라서 이것이 직·간접적으로 권력의 분배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초래되는 민주주의와 정치적 평등에 해로운 결과들을 축소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Robert Dahl, Preface to Economic Democracy(Cam.: Polity, 1985), p.51.」고 지적하고 있다. 즉 자유와 평등은 서로를 위협하는 존재로, 자유가 많으면 평등이 없어지고 평등이 많으면 자유가 없어진다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의 관계에 놓여있다고 보는 것이다.2)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자유주의는 그 탄생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사상적 전통과 비판의 논쟁을 끊임없이 이어왔으며 특히나 현대의 사상가, 이른바 부활한 자유주의라 일컬어질 수 있는 존 롤즈(John Rawls)의 『정의론; A Theory of Justice』의 1971년 출판과 더불어 논쟁이 더더욱 격해지게 된다.롤즈의 『정의론』은 한편으로는 사유 재산권에 대한 교조주의적인 광신자들을 견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혁명의 천년 왕국에 대한 교조주의적인 광신자들(막스주의자)을 견제하면서 진보적인 복지국가론을 변호하고 있다. 롤즈의 사상은 사회주의에 대한 모든 대안들을 배제하고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 정의의 실현 문제에 대한 사회주의의 해결책을 배제하고 있지도 않다. 즉, 그는 자유주의 전통의 중심적인 이상들을 취하여, 그것들을 21세기의 환경 속에서 더욱더 쓸모 있는 것으로 손질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였다.롤즈의 이론은 확실히 복지 국가적 자본주의와 같은 여건 속에서 실행되기에 더 용이할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그것이 비록 자본주의적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복지 국가의 여건에서이다. 롤즈 사상 체계내에서 가장 불우한 사람들은 최대한 더 잘 살 수 있어야 하는 권리를 갖는다. 그들이 부자들의 선행이나 자비심 따위에 의존되어선 안되는 것이다.(이것이 극단적 보수주의의 자유주의자인 Robert Nozick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부분임) 혹은, 좀 역시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지만 결국, 초기 고전적 자유주의의 원자적 자아냐? 아니면 시대의 흐름과 필요속에서 계속적으로 변화되어가는 자유주의적 자아냐? 라는 두가지의 문제로 압축될 수 있겠다. 하지만 '자유주의'라는 개념 아래 속해있는 자유의 정의는 고정적이지 않은 채 시시각각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화를 해온 것이 사실이므로 자유주의적 자아로서의 자유가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이상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커다란 이데올로기인 민주주의 속에 숨겨진 자유주의의 의미를 학자들이 말하는 바에 따라 알아보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그래서 이해하고 경험하기가 용이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통해 자유주의를 나름대로 고찰해 보았다.다음으로는 유가사상에 대해 개괄적으로 살펴보겠다.Ⅲ. 유가사상에 대한 고찰1) 역사적 배경유가사상이란 노나라(기원전 1111∼249)의 공자와 그의 추종자들의 사상과 교의를 가리킨다. 그 당시는 노나라 제후의 중앙 권력이 쇠퇴하고, 가부장적인 봉건체제가 해체되며, 관습적 도덕이 위기에 처한 시기였다. 그러한 위기에 직면해서 공자는 윤리적 생활을 위한 새로운 도덕적 기초를 찾고자 하였다. 다시 말해, 현실의 혼란한 사회상을 막기위한 실천적 대안으로서의 사상을 수립했다는 것이다. 서주의 쇠퇴는 재산에 대한 관습적 의례 규칙과 확고하게 수립된 위계구조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가져왔다. 사회적 지위에 따른 온당한 행동 규칙들은 유약한 것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 구속력을 상실했다. 전쟁은 위기의 가장 명백한 표현이었으며 전통적 확실성들이 해체됨에 따라서 세상은 분열되었다. 노나라 철학자들이 직면한 도전은 재산에 대한 기성 관습적 규칙의 위기였다. 그것은 또한 중국철학에 있어서 '백가쟁명'(百家爭鳴) 시기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전국시대'(戰國時代)라고도 불리는 이 시기가 중국철학의 절정기라 할 수 있다.2) 기본 개념과 그 구조공자의 윤리학의 얼개는 다섯 개의 기본 개념들로 이루어져 있다. 道(길), 德(윤리적 미덕), 禮(관습적 예), 義(치 원리들, 이를테면 仁, 禮, 義와 같은 것들을 통해서 구체화된다.德은 다음과 같다. 유가사상에서는 人格 形成(character formation) 혹은 덕의 개인적 수양을 강조한다. 궁극적 목표는 행동을 덕과 조화롭게 하는 것이다. 유가의 윤리사상에 있어서, 덕의 개념은 道의 이상에 일치되는 추천할만한 인격 특성들을 지니면서, 윤리적으로 훌륭하게 수양된 사람, 즉 君子의 성취 조건에 기여할 수 있는 윤리적 덕들의 개념들이다. 그것은 또한 인간 삶의 노정에 영향을 주는데 있어서 특별한 잠재력이나 능력을 소지할 상태를 요구한다.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다. 소인의 덕은 풀과 같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옆으로 뉘어진다(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論語} 라고 말하였다.禮 혹은 儀式의 관념은 儀禮의 規約이 중심이 된다. 의례 규약은 본질적으로 집행 예절이나 양식에 속하는 일단의 올바른 행위 규칙들이다. 그것은 원래 국가 이전의 공동사회와 부족들이 지닌 성문화되어 있지 않은 의식과 관습이었다. 유가 윤리학에 있어서, 禮는 윤리적 책임의 규칙들을 제시한다. 올바른 행동에 대한 일단의 형식적 처방들인 셈이다.義가 지니는 윤리학적 중요성은 부분적으로 禮의 수용에 대한 정당화 근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義는 원리상 옳은 것 혹은 꼭 맞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람에게 있어서 정의로운 것인가? 「아버지는 친절하고 아들은 효도하며, 형은 동생에게 선하고 동생은 형을 공경하며, 남편은 공정하고 부인은 복종하며, 연장자는 은혜로우며, 연소자는 고분고분하며, 통치자는 인정 있고 신하는 충성한다-이것들이 인간에게 있어 정의로운 것이라고 불리는 열 가지의 것이다」{禮記}. 이처럼 위계서열을 중시하고 그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의라고 보았다. 또한 유가 철학자들은 부단히 사적인 이익 추구에 대해서 반대한다. {論語}에서, 義와 利는 대립되는 용어들로 나오는데, 「군자는 정의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며, 소인은 이익의 주장에 귀를 기울인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論語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