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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증외상환자 누가 살릴것인가에 대한 감상문
    감 상 문(KBS 스페셜 2009년 9월 20(일)방송분- '현장보고 중증 외상 누가 살릴 것인가'를 시청)Ⅰ. 서론‘KBS스페셜 현장보고 중증외상 누가 살릴 것인가?’를 시청하면서 나는 ‘나 또는 내 가족이 사고를 당했을 때 제때, 적당한 치료를 받지 못해서 죽게 된다면 어찌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이 방송을 통해서 위에서 가진 의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을 생각하고 찾아 볼 수 있었다.Ⅱ. 본론1) 중증 외상환자란 무엇이며, 우리나라의 어떻게 치료받고 있는가?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당했다가 저항하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MBC 월화 드라마 골든타임을 통해 중증외상환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중증외상환자란 교통사고ㆍ추락사고 등 일반 응급실에서의 처치 범위를 넘어서는 다발성 골절ㆍ출혈 환자를 말한다. 다시 말해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외상을 의미하며 중증환자를 살릴 수 있는 골든아워는 1시간이라고 하는데 이는 곧 1시간 안에 치료를 실시해야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우리나라에서 한해 발생하는 중증외상환자는 16만명이라고 한다. 그중 예방가능 사망률은 32. 6%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중증외상환자 사망자 중 제때 응급조치를 취하고 치료를 실시했을 경우 3명이 사망한다는 것인데 미국 메릴랜드주의 경우는 5%, 일본의 경우는 10%로 수준이다.① 친구랑 놀다 다친 가영이처음 병원 응급실을 찾아 치료를 요청하였으나 치료불가하다는 이유로 방치 되었다가 더 큰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지만 치료가 쉽지 않다.좀 더 일찍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왔으면 고통이 줄어들었을 것이다.② 통신선로 유지보수 일을 하는 이양복씨사고를 당한 후 병원을 옮기는 과정에서 치료가 늦어져 왼쪽 다리에 영구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바로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옮겨졌으면 치료를 할 수 있었을 것인데, 처음 병원에서는 단순골절이라는 진단을 내렸고, 며칠을 두고 보자는 병원의 말을 뿌리치고 대학병원으로 옮긴 후 긴급수술 실시초기 진료를 받은 병원의 처방대로 3일을 병원에서 두고 봤으면 치료하기 더 힘들어졌을 것이다.■ 사고일지사 고 발 생 : 6월 6일(토) 오후 2시 30분인근 병원이송 : 오후 2시 48분(사고발생 18분후) 진통제 처방대학병원 이송 : 오후 6시 40분(사고발생 4시간 후)수 술 시 작 : 다음날 새벽 2시 10분(사고발생 약 12시간 후) 수술시작③ 오토바이 배달을 하다 사고가나 병원으로 들어옴교통사고로 복부 출혈이 심한 환자가 실려옴다른 병원을 들러서 4시간 만에 병원에 실려 온 환자는 너무 늦게 큰 병원으로 이송되어 죽음에 이르게 됨.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은 중증외상 환자가 발생했을 경우에 구급대원들이 환자의 상태에 따라 이송할 병원이 없다. 중증외상환자가 발생 했을 경우에 인근의 종합병원에 연락을 해서 빈병상이 있어야만 이송 할 수 있다. 치료가능 병원을 알아보며 중증외상환자를 싣고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외과 의사들도 사고발생 시 적당한 의료진을 찾아가는 것은 운이라고 한다.2) 중증외상환자를 어떻게 치료 할 것인가?중증외상환자는 골절, 장기파열 등 여러 과가 함께 치료를 해야 한다.중증외상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이런 환자들을 전문적이고 빠르게 치료할 수 있는 중증외상환자 치료 센터가 필요하다.① 외국의 경우미국 - 메릴렌드주 R 아담스 코울리 1급 중증외상 센터(R Adams Cowley SHOCK TRAUMA CENTER)5분뒤 도착할 오토바이 사고 환자의 중증외상환자의 정보가 센터로 도착의료진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5분정도많은 의료진이 팀을 구성하여 환자를 빠르게 진단원거리 외상환자는 응급헬기로 반듯이 이송하여야 한다는 규정 준수26개의 응급실 처치실중 13개가 외상환자를 위한 것응급상황을 대비하여 항상 비워둔 상태중증외상 중환자실에 있는 것과 동일한 인공호흡기와 모니터링 장비 준비이병원의 예방가능 사망률은 1%로 되지 않는다.이것은 ‘외상의료조직’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적어도 미국에서는 예방 가능한 사망의 대부분이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구성체, 항공로관리, 적절한 의료기관으로의 이송, 응급실의 초진과 관계가 있다.개인의 역량이 아닌 시스템적으로 대처하고 있기 때문이다.환자가 발생해서 치료를 마칠 때가지 한 몸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은 중증외상을 담당하는 의료진들이 있기에 가능하다.50여명의 의료진이 3교대로 24시간 대기하고 있고 외상전문의로 중심으로 팀이 꾸려져 있어서 치료의 효율성이 있다.일본 - 일본지바현의 지바호쿠소병원 구명구급센터의 당직의사인 외상외과의사 사카모토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응급환자에 대비해 진료중에도 헬기 출동이 가능한 비행복을 착용하고 있다.오전 11시 7분 중증외상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만든 닥터헬기 출동 요청 접수당직의사도 진행중이던 진료를 중단하고 헬기장으로 이동닥터헬기는 3분내 이륙원칙헬기도착 11시 15분(이송요청 8분만에 진료 시작)그시각 진료팀도 대기 상태현장 이송이 빨라 환자를 효과적으로 치료 할 수 있었음.우리나라처럼 외과의 기피현상이 뚜렷한 일본그렇지만 팀을 꾸려 운영하다보니 맘에 맞는 의사들이 모여 일을 한다.3) 우리나라 중증외상환자 치료 실태2009년 현재 국내에서 외상을 전담하는 의사는 3손가락 안에 꼽힌다.지난 2006년부터 외상팀을 만들어서 꾸리고 있는 연세대 원주기독병원 배금석교수도 그중 한명이다.10년 전 혼자 시작했던 외상의 활동이 이젠 팀으로 결실을 맺음배교수도 인력부분의 부족을 느끼고 있다.OECD국가 중 교통사고와 추락 사고를 포함한 안전사고 사망자가 2번째로 많은 나라 한국 그렇지만 중증외상을 치료할 의사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국내에도 소수의 외상 전문의들이 있지만 5분대기조처럼 휴가도 못가면서 1년 365일을 대기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환자들을 보호 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의 충원이 필요하다.그렇다면 외과를 전공하는 의사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아주대학교 외상전담의인 이국종교수 근무하는 아주대병원.열악한 환경 - 24시간 수술 후 또 근무를 서야 하는 어려운 현실또한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한 외상외과 분야지만 자원자가 없어 치료의 노하우를 전수 해줄 사람이 없다.외과의사가 외상환자만 전력투구를 하여 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독후감/창작| 2012.09.17| 5페이지| 1,500원| 조회(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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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면접일지 - 사회복지 실천론
    NO. 2008-면접일지(사회복지실천론).hwp면접일지일 시:장 소:내 담 자:면접회차:면접시작시간:면접종료시간:면접내용? 요약 및 경과? 세부면접사항
    기타| 2008.05.07| 1페이지| 900원| 조회(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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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면죄부의 원리와 역사적 배경
    면죄부의 원리와 역사적 배경1. 면죄부의 원리면죄부의 원리는 공적설(the treasury of Merit)의 원리에서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제한된 종류의 면죄부를 만들어 교회나 수도원에 돈이나 토지를 바치는 사람들에게 그 선행의 대가로 면죄의 표를 주는데서 시작도니 듯하다. 어떤 죄에 대한 현세적인 형벌들이 가해지지 않는 다면 사후에 연옥(Purgatory)에서 처벌이 요구될 터이므로 로마 교마 교회의 면죄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게 되었으며 당시 사람들은 로마교회의 주장대로 믿고 면죄부를 돈 주고 사게 되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 따르면 죄의 용서와 제거 및 그 형벌을 말소하는 네 종류의 성례가 있으니, 세례(Baptism)와 성찬(eucharist)과 고해성사(penance), 병자의 관유식(anointment of the sick)이다.) 루터시대의 고해성사는 가톨릭 종교의식의 중심적 지위를 차지하였다. 이 식의 정신은 사면적, 사제적 행위)이었다. 이 예식을 받는 참회인이 행하는 세 가지 행동을 포함한다. (1)죄를 뉘우침, (2)사제 앞에 고백, (3)참회의 고행이다.)회개의 순서는 통회 - 고백 - 배상 - 면제의 순서였는데, 차츰 간소화 되었다. 형벌을 제거하는 배상에 대하여 특별히 강조한 결과 배상은 여러 가지 선행 즉 교환, 양도, 할인, 대리, 탕감, 대속 등은 교회의 면죄부를 돈을 주고받는 절차로 대신하게 되었다.) 형벌은 영벌(eternal punishment)이 아니라 세상적 형벌(temporal punishment)로서 기도, 시편, 선행, 구제행위, 성지순례, 면죄부 나아가서 어떤 가벼운 고행으로 대치된다.) 회개의 실행으로 금품을 바치는 일이 성행하다가 11세기부터는 남부 프랑스에서 면죄부가 대두되었다. 이것이 드디어 1040년 베테딕투스 9세(Benedictus Ⅸ)에 의해 정식으로 허가되었다.)사실 면죄부(Indulgences))는 역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훌륭한 성자들이 축적한 공덕을 분양받음으로 신앙이 부족한 성도들런 일들은 보상을 얻었다. 그리스도는 완전히 거룩한 생애를 보내셨고 사람의 구원을 위해 필요했던 것보다 이상의 것을 행하셨으며, 하늘에 앉는 부한 보화의 영예를 얻으신 것이다. 중세교회는 죄와 연옥에서의 형벌과 지옥을 크게 강조하였다. 그 당시의 교회와 현대의 로마가톨릭교회에 따르면 연옥은 천국에 들어가려는 자들이 들어감에 적당해지기 전에 불로써 정결케 하는 기간을 지정한 곳이라는 것이다.)터툴리안은 교회의 참회과정을 전체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만족(saticfaction)으로 보았다. 중세는 이것을 인간적 공로로 대치시킴으로써 종교개혁의 기치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지만 터툴리안의 의도는 순수하게 교인의 훈련에 있었다.)또한 스콜라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ommas Aqunas)는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넘치는 공로는 선행의 보고가 되어, 이로부터(뜻대로 주교들과 함께 권위를 가질 수 있었던)교황의 이름으로 교회의 권위에 의하여 궁핍한 죄인에게 이 보고의 일부가 전달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사실 스콜라신학자 중에서도 할레스의 알렉산더(Alexander of Hales),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 토마스 아퀴나스들이 면죄부 제도를 지지하여 로마교회의 공적설의 원리에 정교한 이론을 제시하게 되었다.) 토마스에 따르면 죽음의 시간에 병자의 영혼은 끝없고 풀려나지 못하는 지옥으로 곧장 들어간다. 교회의 성례적 은혜를 온전하고 신실하게 사용한 자들의 영혼은 즉시로 하늘나라로 간다. 오직 불완전하게 은혜의 방도를 사용했던 많은 자들의 영혼은 연옥에서 다소간의 고난과 정화의 기간을 거쳐야 한다. 하늘에서든지 혹은 이 땅에서든지 혹은 연옥에서든지 교회는 하나이다. 한 지체가 고난을 당할 때 모두가 고난을 당한다. 한 지체가 건강할 때 모두가 이 선행에 참여한다. 토마스는 이 통일성을 성인에게 바치는 기도와 연옥에 있는 자들을 위한 기도의 근거로 삼는다.) 스콜라 신학에서는 교황이 그리스도와 성자의 잉여공로를 모아둔 보물창고(Tresaurs bonores)의 역사적 배경교황이 대규모로 면죄부를 부여한 관행은 우르바노 2세(Urban Ⅱ)가 십자군에 가담하는 것을 다른 모든 고행을 대신하는 방법으로 인정한다고 즉 회개와 자백의 상태에서 죽은 십자군은 천국에 즉각 들어갈 수 있다고 선포했다.) 이 제도는 11세기 이전에는 가동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교황 알렉산더 2세는 1063년경 스페인의 회교도를 대항한 소규모전쟁에 동일한 특권을 주었지만 우르바노 2세는 1095년에 1차 십자군 전쟁에 참전한 모든 사람에게 완전한 면죄를 약속했다.)이 당시에는 주교가 과거에 부과된 고해를 면제해 주는 일조의 면죄부였다. 그러나 훗날에는 교황에게만 국한되었다. 그러다가 집에 남아 있으면서 성지의 십자군들이든 유럽의 십자군들이든 그들에게 자금을 대는 사람들에게 비슷한 사면이 부여되었다.) 이 제도는 한 번 시작되자 급속도로 퍼졌다. 교황뿐만 아니라 주교들도 면죄부를 주었지만 이들은 면죄부를 계속 더 용이하게 주었다. 성지순례나 특별기간의 순례, 교회건축이나 심지어 다리나 도로 건축과 같이 선행에 대한 기부도 그런 보답을 받을 것으로 보았다. 사람들은 이 제도의 금전적인 가능성을 곧 파악하고 이용했다. ‘잠정적’(temporal)형벌은 연옥의 형벌을 포함했기 때문에, 면죄부의 가치는 정해지진 않았어도 엄청났고, 실제 고백을 면죄부와 바꾸려는 경향은 인간 본성적으로 귀가 솔깃한 것이었다.)이 폭넓은 면죄가 기독교 세계에 어떤 단계로 제시되었는가? 에 대해서는 12세기 말경에 이노센트 3세는 십자군 병사들에게 부여된 완전한 면죄부를 몸으로 전투에 참여한 사람들뿐 아니라 자금이나 조언으로 이바지한 사람들에게까지 확대해서 부여했다. 그리고 형벌로부터의 완전한 면제에다 천국에서 선행에 대한 보상이 증가할 것이라는 약속을 덧붙였다. 그리고 13세기 중반에 이노센트 4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어떤 형식으로든 복무를 하지 않더라도 특별한 상황에 대해서 완전한 면죄부를 부여했다. 처음에는 그 빈도수가 대단히 적었다. 백 년 전에 유게니우스 지만 14세기 말부터 특별한 경우에 지역 교회들에게 면죄부와 비슷한 완전한 특권들이 확대되는 것이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 되어 있었다.) 이처럼 면죄부의 수여는 본래 사제의 권한에 있었으나 점차적으로 주교에게 한정되기 시작했으며, 또 다시 교황에게 국한 되고 말았다. 교황은 자신이 직접 수여하든지 아니면 수여할 수 있는 대리인을 각 지방에 선정해서 면죄부를 수여케 하였다. 맨 처음에는 이러한 수여권이 절제되었으나 14세기의 시작과 더불어서 악용되었다.)1476년에 발행한 작은 사건은 면죄부 제도의 발전이면에 정서적 배경이 깔려 있었음을 잘 예시해준다. 그 해에 식스투스 4세는 추기경 몇 명을 데리고 폴리노에 사는 프란체스코회 수녀들을 방문했다. 그 수녀들의 고해신부는 교황에게 면죄부를 요구했고, 교황은 그들에게 임박한 성모축일을 위해 완전한 면죄권을 주었다. 그리고 난 뒤에 무엇을 좀더 주고 싶은 심정이 들자, 그는 “이것 말고 여러분은 언제든 죄를 자백할 때마다 형벌과 죄과(poena et culpa)로부터 오나전한 면제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고 덧붙여 말했다. 그러자 추기경들이 깜짝 놀라면서 “뭐라고 하셨나요? 정말로 ‘언제든’이라고 하신 겁니까?” 하고 묻자, 교황은 가슴에 손을 얹으면서 “그렇습니다. 나는 저분에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는 것입니다.”하고 말했다. 그러자 추기경들은 무릎을 꿇고는 “저희에게도 주십시오!”하고 외치자, 교황은 “좋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드리겠습니다.”고 대답했다.) 결국 교황의 행위를 뒷받침해준 보고가, 다시 말해서 영적인 화폐가 무궁무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증서가 무제한하게 발행됨으로써 생긴 결과로 인플레이션)의 경우에 해당된다.교황 이노센트 8세(1484-1492)는 식스투스 4세의 조카의 지지와 추기경들 사이의 파벌에 힘입어 교황이 되었다. 그는 교황이 주교도 되기 전에 그의 부인에게서 아들 하나를 낳았고, 다른 여자에게서 두 아이를 얻었다. 이노센트 8세는 식스투스 4세의 조카의 부패로부터 영향을 들에게 전가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곡간은 그리스도의 공로도 저장하고 있기 때문에 고갈되는 법이 없다고 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교황이 오로지 자기 재량만으로 그 공로를 전가할 수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이 자기의 요청을 존중하실 것을 충분히 확신하고서 단지 하나님께 사죄를 구하는 것인지에 관한 문제였다.) 1457년 칼릭스투스(Calixtus)교황은 연옥에서 고통 받은 자들의 영혼을 해방시키는 것도 면죄에 의해 할 수 있다고 선포하였다. 면죄부를 작정하는 데 있어서 교황들은 죄와 시간적 처벌을 구별하도록 주의를 기울여 면죄를 받는 자들은 진실로 회개하는 심정을 가져야 하며 이를 구두로 고백해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실제 시행서 이러한 조건들은 무시되었으며, 마치 도부꾼들이 장사하듯이 면죄부가 판매되었다.) 그중 악명 높은 이는 칼릭스투스 3세(Calixtus Ⅲ)의 조카인 로드리고 보르기아(Rodrigo Borgia)였다. 그는 유수한 외모와 능력과 천재성을 지녔고, 웅변을 잘하는 사람으로 여성을 끄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성직록들을 통하여 많은 돈을 긁어모았으니 30세도 못되어 추기경이 되어서 다섯 교황을 섬겼다. 그는 세 번 이혼한 여성에게서 네 자녀를 얻었고, 또 다른 여성으로부터도 두 아이를 얻었다. 그는 후에 이 모든 자녀들에게 추기경, 대주교직, 주교직등을 수여했다.)15세기 말의 교황들은 자기들이 땅에서 뿐 아니라 연옥에서도 부과된 형벌을 사면할 권세가 있다고 주장했고, 어떤 면죄부들은 형벌 뿐 아니라 죄책까지도 사한다고 했다. 엄격히 말해서 면죄부는 판매 된 게 아니라, 이 은혜를 받은 사람이 그 은혜의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기부금을 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죄부여와 기부행위가 동시에 이루어졌다.)특히 루터로 하여금 행동을 취하도록 자극한 면죄부는 1510년에 교황 율리우스 2세(Julius Ⅱ)가 반포하였으며 교황 레오 10세(Leo Ⅹ)가 부활시킨 것이었다. 레오 10세는 독일지역에서의 면죄부 판매를 진작시
    사회과학| 2008.03.19| 6페이지| 2,000원| 조회(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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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넨베르크와 그의 비평가들
    판넨베르크와 그의 비평가들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가 착수했던 프로그램은 기독교 교리의 완전한 조직 신학적 서술을 시도했다는 면에서 아마 바르트 이후로 가장 야심적인 것이다. 그는 교회의 교리를 조직화할 뿐 아니라, 종교적 뿌리로서 멀어져 가는 움직임을 보이는 현대 사회의 철학적 토대에 대해서도 기독교적 관련을 가지고 접근하는 방법에 대하여 개괄하고자 시도한다. 이러한 대답한 시도를 함에 있어서 판넨베르크는, 현대적 상황 안에서 진정한 조직 신학을 하겠다는 시도마저도 거부하는 많은 목소리에 설득당하기를 거부할 뿐 아니라, 신학적 작업의 초점을 다른 방향, 곧 덜 야심적인 방향으로 옮기려고 했던 사람들의 영향을 받지도 않았다.결과적으로, 판넨베르크의 작업은 엄밀한 비판을 받아 왔고 때로는 그 자체만으로도 더 이상 적절치 않은 것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그러나 신학사 전반을 통틀어 볼때, 그는 기독교적 진리와 기독교적 신 개념을 합리적으로 설명한다는 측면에서 고전적인 신학의 현대적 후예로서 또오르고 있다. 그의 제안 가운데 어떠한 문제들이 있든지 간에, 판넨베르크를 놓고 말할 때 그가, 신학을 ‘하려고’시도 했다는 이유에서 그를 탓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의 신학적 방법이 옳았는가, 또는 적당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모아져야 할 것이다.계시와 성경판넨베르크는 신학의 근거를 계시에 두려고 했던 전통적 시도를 현대적으로 재술(再述)하려는 중요한 작업을 한다. 계시의 다른 초점들을 최소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전적인 개신교 신학은 성경을 신적 계시의 보고(寶庫)로서 강조한다. 판넨베르크는 이러한 전통적 접근과는 의견을 달리한다. 그는 개신교의 오랜 교리인 축자영감설을 신봉하지 않지만, 성경의 본질에 대한 그의 이해는 계시에 대한 종교사(宗敎史)적 관계에 근거를 둔다. 그에게 있어 종교사는 다른 경쟁 대상 종교의 진리 주장들 가운데 한 논점을 설정하는 것이다. 그 역사에서 기독교가 탄생하기까지의 이스라엘의 종교는 그 과정을 통하여 발전되었던 통찰들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성경은 그러한 종교적 전통의 원전(原典)이며, 그렇기 때문에 계몽주의 후기의 상황에서도 그것은 여전히 중요성을 가진다.개신교의 영감에 대한 옛 교리를 비판하는 판넨베르크의 비판에 대하여 우리는 심각하게 보아야 한다. 현대 세계에서 성경을 의심의 여지가 없는 권위라고 단순히 그 원위에 의존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판넨베르크가 현제의 상황에서 성경론이 단순히 더 이상 신학적 성찰의 서두에 제시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을 밝힌 것은 옳다. 그러므로 성경의 권위가 신학의 전제이기보다는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고전적인 개신교적 접근법에 대한 타당성 있는 도전으로서 성립한다.그러나 성경적 권위가 현대에 와서 상실되었다는 그의 인식에 동의한다고 해서 현대의 원문비평(textual critcism) 때문에 영감론이 파괴되었다는 그의 평가에 반드시 동의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상황적 이유 때문에, 심지어 판넨베르크 자신도 암암리에 인정하고 있지만, 성경을 단순히 제쳐 놓는다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판넨베르크의 화해 교리는, 사도덕 선포가 부활하신 주님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전하기 위한 전달 매체가 되었다는 논지를 놓고 볼 때, 새로운 성경론에 대한 유망한 기초를 포함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독일 신학자는 그 개념으로부터 충분히 발전된 성경론으로 더 나아가지는 않았다.계시와 성령계시의 역사성에 대한 판넨베르크의 강조는 관찰자가 어떻게 그 계시를 알게되는가 즉 조명의 역사에서 성령의 역할이라는 문제와 같이 그와 관련된 질문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는 스스로 그 개념의 분할이라는 문제에 부디지게 되면서 계시의 통합에 대한 이해를 전개하고자 시도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판넨베르크는 성령의 어떤 추가적인 말씀 내지는 어떤 초자연적 성령의 역사가 반드시 사건들에 부가되어야 한다는 어떠한 주장도 용납하지 않는다. 의미는 사건들 그 자체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비록 판넨베르크가 믿음의 과정에서 성령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려고 하지는 않지만, 때때로 하나님의 계시를 역사 속에서 파악해 가는 인식론적 과정에서 성령의 역할을 최소화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남는다. 어떤 사람들은 계시에 대한 보도를 듣고서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데 비해 다른 이들은 왜 메시지를 거절하는 것인가?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무엇이든지 간에, 판넨베르크는 이따금씩 전통적인 신학에서 발견되는 접근 방식과는 달리 신앙과 불신앙에 대한 문제의 해결을 성령의 신비로운 활동에 근거하여 설명하기를 거부한다. 왜 어떤 사람이 믿음을 가지게 되고 혹은 불신앙 가운데 남아 있게 되는가는 인간의 인격성이라는 신비에 관련한 문제이며, 그는 그것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본다.판넨베르크는 그의 초기 저작들보다는 그의 조직 신학에서 이러한 역학(力學)에 대해 훨씬 더 시오한 이해에 이르고 있다. 여기서 그는 완성 이전의 시대에는 계시에 대한 지식에서 균열이 있을 것을, 그래서 사도적 선포가 역사 안에서 계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될 것에 대하여 인정한다. 이것은 그의 사상에서 요긴한 발전이다. 그가 한편으로는 여전히 사건들에서 영감된 말씀이 부가될 필요가 없음을 주장하고 있지만, 지식의 균열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각종 진리 주장들의 경합(競合)이 이루어지는 이 시대에 인식론적 과정에서 신비적 측면을 인정하는 길을 열어 놓고 있는 것이다.이성과 경건판넨베르크 사상의 특징을 이루는 미래 지향성과 그와 관련하여 그가 존재론에 가한 수정으로 말미암아 전통적인 기독교적 경건의 어떤 측면들이 의문시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신학은 지금 여기에 계시는 현존으로서의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전통적 강조라든지, 현재 발생하는 사건들에 대하여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창세 전에 하나님이 예정하셨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 같은 것을 제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그의 신학에서 이러한 주제들이 결여되어 있는 것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판넨베르크가 명백하게 철저한 합리주의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합리적 반성의 테스트를 거치지 않았거나 대안적 견해들과 겨뤄보지 않은 어떤 신앙적 결단을 신학적 결론의 근거롤 삼으려는 여하한 시도에 대해서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신학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측면에 대하여 어떠한 결론들을 이끌어 내기에 앞서서, 우리는 그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는 그의 합리주의적 경향의 문제를, 판넨베르크가 자기의 각종 사상의 공개 전시장이라는 환경 속에서 교회를 섬기려는 소명을 가진 신학자로 보려는 그의 자기 이해의 맥락을 놓고 보아야 할 것이다.판넨베르크의 의도는 어떠한 종교적 헌탁이 때로 이치에 맞지 않거나 심지어는 비합리적이라는 이유로 충분한 토의가 채 이루어지기도 전에 매도되어 버리는 시대에 기독교 신앙을 위한 단단한 지적 기초를 명시(明示)하려는 것이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에 사상적 분기점에 이르렀을 때 신학이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고 보는 판넨베르크는, 신앙을 정립함에 있어서 이성의 역할을 균형 있게 이해하려는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한다. 그는 현재 제기되는 각종 진리 주장들은 유예(猶豫)적일 뿐이라는 사실을 항상 받아들이려는 태도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위한 탐구는 반드시 진리가 온전히 드러나느 에스카톤(eschaton, 마지막 때)을 지향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대하여 에스카톤 이전에는 단지 유예적이며 논란적인 답변만이 주어질 수 있을 뿐이나,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때로 그들에게 허락된 것보다 훨씬 더 큰 정도의 확신을 가질 수도 이Tekm 그들에게는 그러한 믿음이 있노라고 주장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며, 그러한 믿음이 그렇다고 꼭 비합리적인 결단에 근거한 것만도 아닌 것이다.인간이 이성에만 근거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님을 인정할 뿐 아니라, 합리적 논증들을 통하여 사람들이 신앙으로 인도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고에 대하여 경계를 하면서도, 판넨베르크는 기독교의 합리성이 입증될 수 없다면 신앙에의 접근은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온갖 비합리적 장애들이 놓여 있는 가운데서 기독교는 이성의 테스트에 실패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과업에 착수하고 있는 것이다.동시에 판넨베르크는 사상들을 공개적으로 테스트하는 마당에 개인적 경건 보다는 기독교 신앙의 합리적 설명이 교회의 주된 무기가는 데 대햐여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의도가 근본적으로 옿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장을 표명은 과장된 것이었다. 합리적토론이 중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의식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경건 역시 기독교 신앙의 진실성을 위한 중요한 변증이 되는 것이다.이러한 경계적 언급을 하면서도, 우리는 전체로서의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위하여 하나님 사상이 가지는 조명하는 힘을 강조하는 판넨베르크의 강조가 신앙을 다만 개인적 경건이라는 사적 세계의 일로 축소하려 드는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이 독일 신학자는 기독교 신학이 삶의 모든 측면과 신앙을 추구하는 것과 연관된 학문들의 전 영역에 반드시 여향을 미쳐야 함을 깨닫도록 촉구한다.종말론적 존재론판넨베르크의 신학적 비전의 핵심은 종말론적 존재론과 그에 따르는 결론, 즉 영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그것이다. 이 독일 신학자는 모든 것을 결정짓은 실재로서의 하나밍르 미래로부터 이 세계에 대하여 역하사는 신적 장(場)과 동일시 한다. 몰트만과 마찬가지로, 그는 초월과 내재를 공간적 개념으로보다는 시간적 측면에서 새로이 이해하고자 했다. 하나님의 초월성은 그의 미래성이자 완전성이며, 이 존재론에서 미래는 모든 현재에 대하여 지배하는 히믈 가지므로, 그것을 규정할 뿐 아니라 심층적인 면에서까지 그것을 결정짓는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은 질풍노도와 같은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인문/어학| 2004.06.11| 4페이지| 1,000원| 조회(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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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알아야 할 신학 사상 평가A좋아요
    우리가 점검해야 할 Matrix①자유주의 [自由主義, liberalism]: 개인의 여러 가지 자유를 존중하고, 봉건적 공동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사상 및 운동.자유주의란 매우 다의적(多義的)인 개념으로, 그 규정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자유주의는 최근 4세기 동안 서양문명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사조(思潮)라는 점에서 서양 근대사에 자유주의의 역사적 전개(展開)부터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서양의 자유주의는 15세기 말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상으로서, 운동으로서, 또한 생활양식으로서, 제도로서 형성·발전되어 온 원리로서,그 광범위하고 다양한 내용을 획일적으로 정식화(定式化)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자유의 원리의 공통된 내용을 중심으로 파악한다면 다음의 두 가지 점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보편적 인권의 원리, 즉 정신적·사회적 활동에 있어서의 온갖 개인의 자유와 이니시어티브의 원리이다. 그것은 개성(個性)과 그 활동의 다양성을 전제로 하며, 이성적(理性的)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보다 나은 것이 형성될 것을 믿는 입장이다. 개인의 정신적·사회적 활동의 자유에 대한 비인간적·강제적 구속과 획일화를 가능한 한 제거하는 것은 그 당연한 결과이다. 예컨대 시민적 자유(civil liberties)―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종교의 자유, 사고(思考)와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를비롯하여 재판에서의 정당한 절차(due process)의 존중 등은 이 원리의 전형적 표현이다.둘째는 보편적 시민권의 원리, 즉 이들 시민적 자유를 지킬 수 있도록 정치제도와 정책과 기관을 비판하고, 만들고, 고쳐 만들 수 있는 자유를 모든 남녀에게 인정하는 원리이다. 정치사회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권리로서의 참정권(參政權), 정치에 있어서의 토론과 설득과정의 중시, 정치에 대한 사고와 비판의 자유, 보도에의 권리(알 권리), 정치적 집회·결사활동의 자유, 소수자의 권리보호 등의 정치적 자유가 여기에 포함된다. 신흥 상공 계층에 선거권 부여차티스트 운동 - 노동자들의 보통 선거, 비밀 투표 주장나. 빅토리아 시대의 자유주의정책곡물법과 항해법 폐지의회 정치의 발전 : 보수당 자유당의 토론 정치▼자유주의신학 [自由主義神學, liberal theology]19세기의 일반 사조였던 자유주의적인 연구 태도를 그리스도교 해석에도입, 적용한 신학의 한 유파. 교리주의와 대립되는 용어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젬러인데, 그는 성서를 엄격한 역사학적 입장에서 연구한다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신학이란, 정통주의신학에 반대하여 인간의 주체적인 사고와 활동을 적극 인정하는 신학을 가리킨다. 형식면에서는 그리스도교 해석의 궁극적 권위를 성서에 두지 않고, 이성에 둔다는 의미에서 성서의 권위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하는 입장을 취한다. 성서 그 자체에 대해서도 자유스러운 검토를 가한다. 내용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리스도교의 중심교리인 속죄론(贖罪論)에 대한 새로운 해석인데, 이도 역시 종래의 교리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종래의 속죄론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에 속죄적인 의의를 부여하는 데 대하여, 자유주의신학은 오히려 인간의 주관적인 정신상태의 변화에서 속죄적인 의의를 인정하고, 예수는 단지 뛰어난 종교적 인격자라고 생각한다. 이 신학은 종교사학파(宗敎史學派)에 의한 그리스도교의 역사적·비평적 연구와 서로 호응한다. 19세기 자유주의신학의 뿌리는 슐라이어마허의 신학과 헤겔 철학에서부터 비롯되었다.② 급진주의 [急進主義, radicalism]현존하는 정치체제나 사회체제를 근본적으로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온건한 개량 ·수정주의를 부정하는 주의. 비판은 일종의 감정적 ·도의적 색채를 띠기 때문에 행동에는 과격성(過激性)을 수반하기 쉽다. 이런 까닭에 마르크스주의자는 급진주의를 소(小)부르주아 봉기주의(蜂起主義)라 하여 자신들의 입장과 구별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18세기 말엽부터 1830년대까지 영국 선거법과 의회제도에 대해서 급진적인 개혁을 주장한 일파, 특히 철 과학적인 문화와 결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문화에 대한 신뢰가 쇠퇴하면서 하나의 새로운 반응이 그리스도교 지도자들 가운데 일어났다. 그들은 그리스도교적 메시지의 근원을 위기에 놓인 문화를 초월한 데에 두어야 한다는 것에 일치하였다. 즉 성서에다 하느님 계시의 기초를 두려는 창조적 노력이 대두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정통주의의 운동 초기에는 문화와 그리스도교의 자유주의적 통일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에 중점을 두었다. 신정통주의의 중심적 주제는 종교적 진리와 문화적 진리의 근본적인 차질을 천명하고, 죄의 중대성과 보편성에 대한 새로운 강조를 하는 것이고, 선인과 성육의 그리스도와의 뚜렷한 구분, 훌륭한 사회라도 그것은 하늘나라에 유사한 것일지언정 곧 하늘나라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신정통주의도 과학적 탐구와 가설을 정당시하고 있는 점에서는 자유주의와 일치하고 있다. 무로부터의 창조와 아담의 타락과 같은 교리가 다시 신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자연이나 인간의 기원에 관하여 과학적인 논쟁을 벌이지 않았다. 성육신이 신정통주의 신학의중심적 교리임에도 불구하고, 성육신의 표현과 설명은 정통주의에서와 같은 비중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신정통주의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독자성과 그 건전한 신학의 중요성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는 1930년대 초에 소개되었고, 1960년대에 들어와 한철하와 윤성범 사이에 신정통주의 신학논쟁이 있었다.④ 보수주의 [保守主義, conservatism] 급격한 변화를 피하고 현체제(現體制)를 유지하려는 사상이나 태도. 진보주의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주로 이데올로기적인 근대 정치사상의 특정 조류를 가리킨다. 사회심리학적 의미에서 인간의 어떤 심리적 태도 또는 성향(性向)을 가리키기도 한다. 양자는 상호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명확히 구별되어야 한다. H.세실은 인간의 특정적 심리태도를 의미하는 보수주의를 '자연적 보수주의'라 하여 그것을 소문자(小文字)로 썼고, 특정의 사상적 조류를 의미할 때는 '정치리스도의 동정녀(童貞女) 수태와 십자가 및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신앙의 입장이다. 즉, 예수가 가르친 ‘하느님의 나라(천국)’의 복음보다는 그것과 완전히 격리된 관계에서는 아니나 바울로가 주장하는 속죄(贖罪)와 부활의 신앙을 강조하는 입장, 3)성서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성서주의의 입장, 4) 성서를 중시함과 동시에 성령에 의한 신앙의 체험을 강조하는 체험주의를 가리키는 입장, 5) 성서의 신학적 탐구 ·해명보다는 오히려 실제 전도를 중시하는 경우 등이다. 이상과 같이 복음주의는 그것을 주창하는 자의 입장에 따라 다소 그 의미가 다르지만 모두 성서에서 가르치는 복음에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아무리 복음주의 입장에 있다고 자처하는 현대의 교파들에도 엄격히 따지고 보면 비(非)복음적 요소가 다분히 남아 있음을 보게 된다. 즉 율법주의 ·정령숭배사상 등의 요소들이다.⑥ 근본주의 [根本主義, fundamentalism] 20세기 초부터 미국의 프로테스탄트 교파 사이에서 자유주의에 대립하여 일어난 보수파(保守派)의 신앙운동. 처음에는 침례파에서 일어났는데, 이어서 장로파의 J.G.메첸에의해 ① 성서무류론(聖書無謬論), ② 예수의 처녀강탄(處女降誕), ③ 육체적 부활, ④ 예수의 속죄사(贖罪死), ⑤ 예수의 이적(異跡) 등 5대 강령의 신조가 제창되었으며, 1920년경부터는 정치가인 W.J.브라이언에 의해 진화론(進化論)이 부정되면서부터, 전 미국 교회에서 문제가 되기 시작하여 한때는 자유와 보수의 대립이 더욱 격화되었으나 그 후 점점 소강상태로 들어갔다.⑦칼뱅주의 [Calvinism] 프랑스의 종교개혁자 칼뱅에게서 발단한 프로테스탄트 사상.칼뱅은 신앙에의한 의인(義認), 신앙의 유일한 규준(規準)으로서의 《성서》 등, 루터의 사상을 계승하고 동시에 독자적인 사상을 발전시켰다. 신의 절대적 주권을 강조하는 신관(神觀), 구원을 받는 자와 멸망에 이르는 자는 영원한 옛날부터 신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고 하는 예정설(豫定說), 성찬(聖餐)에서는 루터를 정하고, 목사와 장로로 이루어진 콘시스토리움에 따라 교회가 운영되도록 하였다. 칼뱅의 사상은 스위스뿐만 아니라 유럽 각지에 파급되어 독일 ·네덜란드 및 기타 국가의 개혁파, 프랑스의 위그노파, 스코틀랜드의 장로파, 잉글랜드의 퓨리턴 제파(장로파 ·독립파 ·뱁티스트파 등)를 탄생시켰다. 또 이러한 칼뱅주의의 전개 속에서 신학적인 발전과 변모를 볼 수 있는데, 그 주요한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즉, 신의 예정을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타락 이전으로 보는 것과 그 이후로 보는 것과의 대립, 그리스도의 죽음을 구원받기로 정해진 자만을 위한 것으로 보는 것과 만인을 위한 것으로 보는 것(아르미니우스주의)과의 대립, 천지창조로부터 완성까지를 신과 인간과의 계약의 실현과정으로 보는 계약신학의 성립 등이다. 이와 같은 발전과정에서 칼뱅주의는 근대 서유럽 문화 형성에 커다란 역할을 했으며, 근대 민주주의 형성과 근대주의 ‘정신’에 대해, 트뢸치나 M.베버가 지적한 바와 같이 큰 영향을 미쳤다.⑧ 알미니안주의(Arminianism) : 일찍이 제네바의 베자(Beza, 1519-1605)밑에서 신학 공부를 한 알미니우스는 화란에 돌아와 암스테르담에서 다년간 목회를 하다가 1602년에 화란의 Leyden 대학 신학교수로 초빙받았다. 알미니우스(James Arminius, 1560-1609)는 반(反) 칼빈주의적이며 자유주의적인 신학 입장을 지지하였으며 알미니우스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일련의 신학체계를 알미니안주의라고 말한다. 알미니우스는 학식과 웅변이 뛰어났던 사람으로서, 시 관리로부터 하이델베르크 소문답서를 비판한 Coornhert의 설을 변박해 줄 것을 위촉받아 그의 저서를 연구하다가 오히려 그 설에 감동되어 칼빈주의 신앙을 반대하고 나온 것이다. 레이던 대학에서 신학 강의를 하던 중 그는 칼빈의 예정론에 의문을 느끼고 이에 반론을 제기하자 같은 대학의 칼빈주의자였던 고마루스(Gomarus, 1563-1641)와 예정론을 둘러싸고 심한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면
    인문/어학| 2004.06.11| 5페이지| 1,000원| 조회(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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