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1. 작가 소개작가 공지영은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1988년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후, 시대를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속도감있는 문체로 주목을 받아왔다. 대표작으로는 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1994), 〔존재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1997) 장편소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1989)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1991)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3) [고등어](1994) [착한 여자](1997) [봉순이 언니](1998), 산문집 [상처 없는 영혼](1996), 장편동화 [미미의 일기](1994)제 7회 「21세기 문학상」 대상수상작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2001) 등이 있다.공지영은 90년대의 삶 속에서 80년대를 이야기하는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문학 평론가 변지연은 공지영을 이렇게 표현한다."공지영 이라니 1980년대가 이른바 '혁명의 좌절'로 막을 내릴 무렵 나타난 그녀의 후일담 문학이란 그 비장한 포즈에도 불구하고 기껏해야 감상성과 주관성을 벗어나지 못한 자기위안의 산물이 아니던가? 뿐만 아니라 그를 비롯한 당시의 몇몇 386세대 작가들은 자신들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과 상처를 지나치게 번번히 되새김질 함으로써 대중 추수주의 혹은 상업주의라는 불명예스런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결국 공지영의 소설은 1980년대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기를 배경으로 겪어온 사회적 체험을 주 소재로 삼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그 체험의 일부를 독자들과 나눔으로서 일종의 연루감을 통해 독자들에게 적극적인 글 읽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주로 20-30대의 젊음을 간직한 계층으로 그들에게 결코 호의적이랄 수 없는 사회적 조건속에서 젊은 인물들이 겪어내는 입사와 재입사의 다기한 양상과 어려움 그리고 그것을 감당하고 돌파하려는 용기를 읽을 수 있다. 또한 그인들의 전화를 받고, 그 중 한 명인 '그' 에 대해 회상을 시작한다. '그' 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80년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자신을 생각하기 보다는 남을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것은 그만 복학하라는 말을 '그' 가 들었을 때에 먼저 얼굴이 굳어지는 '나'를 보는 데에서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쉽게 복학하라고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나' 는 80년대가 지나간지 겨우 10년인데도 우리가 너무 쉽게 간결해져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는 화가 난다. 세상은 이렇게도 간결해져 버렸는데, 자신은 아직도 글을 쓰지 못 하고 있고, 문인들의 대화는 주변부에서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나' 는 이제는 결정적인 사항들을 말하고 싶다. 그것은 재판이라던가 생계라던가 하는 것들이다. 그렇기에 '나' 는 '그' 가 싫어서 화를 내는 것은 아니다. 혹은 소설가가 싫어서도 아니다. 80년대를 살아가는 끈을 놓지 않는 그들이 싫어서 화가 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90년대가 되어 이제는 간결해져 버린 사회에서 아직도 80년대를 온 몸으로 헤쳐나간 상징들을 지니고 살아가는 그들이 안쓰러운 것이다. 사회는 이미 80년대를 잊었으나, 이들은 결코 80년대를 지울 수 없는 까닭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과의 만남에서 화가 나는 '나'를 보면, '나' 가 80년대와 90년대의 경계에 서 있으며 아직까지는 그녀의 글쓰기가 정립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0년대와 90년대의 경계에서 방황하기에 그녀는 글을 쓸 수 없으며, 화가 나는 것이다.* 첫째 날로 시작해서 전날 밤이 등장하는 시간의 거슬러 오르는 흐름은 여기 한 부분에만 등장한다. 이는 전날을 강조하는 의미로 해석하였는데, 전날 밤에서 '나' 가 80년대와 90년대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첫째 날 오후 6시 20분낚시터 가는 길 -> (회상 : 친구들과의 대화 -> 어린 시절의 놀이 기구 타기 -> 독자들의 글귀 -> 소설가를 지망하는 후배와의 만남) -> 낚시터의 현재'나' 는 낚시지 않다. 그리고 주인공은 소설을 쓰지 않는 이유를 묻는 그들에게 우린 소쩍새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윤동주로 보이는 시인을 예로 들어 시대적 고통을 느끼는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둘째 날 새벽 5시 2분꿈 이야기(나의 꿈 -> 김의 꿈 -> 박의 꿈)둘째 날은 꿈 이야기로 채워진다. 낚시터에 있던 세 사람은 모두 꿈을 꾸는데 놀랍게도 같은 꿈이다. 먼저 나의 꿈은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이다. 그리고 운전도 할 줄 모르는 꿈속의 자신이 가파른 오르막 계단으로 차를 몰고 있는 것이다.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오 년 동안이나 같은 글을 고치고 있는 소설가에게 길을 묻고 그는 표지판을 보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표지판 위를 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여기서 표지판은 울퉁불퉁한 길과는 대비되는 평평한 곳이다. 그리고 길을 안내하기 위한 표지판 위를 지나가는 주인공은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가야하지만 그 길이 울퉁불퉁한 현실임을 깨닫고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 이러한 주인공의 마음이 꿈 속에서 표지판 위를 달리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현실의 주인공은 운전을 할 수 있지만 꿈 속에서는 운전을 할 수 없는 주인공이 가는 길은 오르막 비탈길과 같은 아슬아슬한 곳 뿐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른 길로 가고자 표지판을 보지만 그대로 할 용기는 없는 태도가 표지판 위를 달리는 설정으로 드러난다.김과 박의 꿈 역시 주인공과 같은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포탄소리 때문일지 모른다고 추측하고 여기서의 포탄소리는 80년대의 민주화를 탄압하던 독재 세력을 의미한다.셋째 날 새벽 3시 00분자다가 일어난 나 -> 자신의 주변을 살펴본다(외형적 모습) -> 자신의 주변을 살펴본다(내면적 모습)나는 마감일이 지났지만 계속 무엇인가를 쓰려고 한다. 그래서 컴퓨터를 꺼놓지 않고 잠든 것이다. 잠에서 깬 나는 자신의 주변을 천천히 살펴본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쓰려고 했던 것일까를 생각한다. 책상 위에 놓인 한 여대생의 편지와 읽다 만 책의 한 글귀, 그리고 술자리에서 우 것이었다.남편이라는 인물이 아내에게 그러한 깨달음을 안겨준다면, 아직 80년대의 꿈을 잊지 않던 '나'에게 90년대의 변화를 절실하게 느끼게 해주는 인물로서 영화사 사장이 등장한다. 김 감독이 '나'의 소설을 영화화해 보겠다고 함께 찾아갔던 영화사의 사장은 '선생님 작품이 문학성 뭐 그런거야 있겠지만 ' 어느 유명 교수가 썼다는 「밤의 여관」보다는 상업적이지 않음을 말한다. '나'는 영화사 사장을 만나고 와서 " 그러니, 이제 문제는 리얼리즘이 아니라 돈이 되었나,"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80년대에 중요시되었던 사회와 인간에 대한 예의와 가치는 사라져 버렸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줄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영화사 사장은 너무나 당연한 90년대의 단면을 보여준다.택시기사는 이러한 일련의 현재의 인물들의 모습을 집약시킨다고 할 수 있다. 합승손님을 태우고 노래방에서 녹음한 '아빠의 청춘'테이프를 버젓이 틀며 '똑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부르기 가지 하는 택시기사. 돈을 벌기 위해 합승을 받고 노래까지 부르는 택시기사의 이러한 뻔뻔한 모습은 80년대를 너무나 쉽게 잊어버린 90년대 인물들의 상징인 것이다. '좁은 골목길을 곡예하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노래'는 듣기 힘들다는 '나'의 말은, 곧 '나'의 눈에 비친 90년대의 사람들이 '브라보'를 외쳐대는 것은 듣기가 너무나 힘들 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과거를 잊어버린 이러한 인물들은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택시기사와 교수의 뻔뻔함, 돈이 되는 것 만 찾는 영화사 사장, 동남아 여행을 계획하는 남편등은 90년대의 자본주의 삶의 논리에는 맞추어 살아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인간과 사회에 대한 꿈은 잊어버리고, 물질만이 중요한 가치가 되어버리고 간단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나'는 공격적이고 비판적이다.(2) 꿈을 기억하는 사람들: 시인, 노동소설을 오 년째 고치는 소설가, 김 감독, 박, 나이들은 꿈을 기억한다기 보다 아예 현재의 삶에도 꿈을 꾸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어떠한 이념의 지표도 없는 대학현실에서 '별이 빛나던'그때를 그리워한다. 통일의 꽃이라 불리는 '그녀'는 오빠를 잊지 않고 있는 '나'를 보자 울음을 터뜨린다. 방송작가인 후배는 '소설이 잡문이 아니라'고 한다.곧 이러한 생각은 '무엇'이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게 하는가! 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나'는 곧 그것의 해답을 찾는다. ' 잊혀져서 간결하게 정리될지도 모르지만 , 잊혀졌다고 해서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그 꿈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깨달음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 바로 이들인 것이다.5. 상징*소쩍새 (트럭, 지렁이)이 소설의 주인공의 입에서 유난히 '소쩍새'란 말이 많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소쩍새를 저주받은 부엉이라고 표현하며 그 눈빛에서 '저주라는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모든 말들, 그러니까 영원한 갇힘, 풀어내지 못하고 쌓여만 가는 슬픔, 원망까지도 뚫고 나올 듯 아직도 치밀어 오르는 어떤 꿈......'(p36) 같은 것을 느낀다. 그 저주, 슬픔, 꿈은 아직도 긴장이 풀지 못하는,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문이 적힌 수첩을 꺼내서 죽을 때까지 시를 쓸 시인에게서도 볼 수 있다. 다른 새들 다 잘 때만 우는 소쩍새처럼 시인은 밤 늦도록 술을 마시며 괴로워하고 그 저주를 풀어내기 위한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문을 읽어대며, 치밀어 오르는 꿈 같은 것을 시로 적어 내려가는 것이다. 또 소쩍새는 오 년째 같은 소설을 쓰는 소설가, 김 감독과 박까지로 그 의미가 확장되는데, 이들은 모두 80년대와 90년대의 경계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고 있는 인물들인 것이다. 또 이러한 소쩍새들은 지렁이와 트럭으로도 대변될 수 있는데, 시인의 손에서 전해져오는 딱딱함은 바늘에 끼울 때 딱딱해지는 지렁이의 본능적인 저항감과 그 맥락이 같음을 알 수 있다. 또 적재량보다 많은 짐을 실어서 오르막길을 낑낑대며 올라가던 트럭은 이 시대의 가파른 오르막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