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Ⅰ. 머리말Ⅱ. 본론1.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전개과정과 그 의의1) 배경2) 전개과정3) 의의2. 탈군부 정치 정립에 끼친 영향1) 6월 항쟁2) 국회 광주청문회3) 하나회 숙청4) 전·노 前대통령의 사법처리3. 이후 민주화 운동과 정치제도 변화에 끼친 영향1) 5.18 광주 민주화운동 이후의 민주화운동2) 정치제도의 변화Ⅲ. 맺음말Ⅰ. 서론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1980년 5월의 광주에만 국한되어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며 신군부와 전두환의 집권으로 실패로 종결되어진 사건이 아니다. 얼핏 살펴보면 많은 희생자들을 내고 패배로 종결되어 진 사건처럼 보이지만 이후에 사건의 책임자들을 법정에 세워 그에 따른 처벌을 받게 하였고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되어 불명예를 벗었다. 또한 한국의 민주화 발전을 이야기 할 때 광주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었으며 결정적으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1987년 6월 항쟁이라는 민주화 운동의 정점에 하나의 한국의 정치 민주화 발전 과정에 여러 가지 요소로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광주 민주화 운동의 경험은 시민들에게 있어서나 집권 세력에게 있어서나 결정적인 상황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을 했으며 6월 항쟁은 군에 의한 무분별한 진압 없이 시민들의 승리로 마무리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 前 대통령이 사법적 판결을 받아 역사적 과오에 대한 책임의 한계를 확실하게 하였으며 정권 집권을 위해 저지른 만행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어 대가를 치르게 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희생자의 수조차 정확한 통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며, 보상의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 많이 남아있다.본 논문에서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과정과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올바른 이해와 의미부여를 통하여 한국 정치 민주화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고 특히 권위주의의 군부정치에서 민주주의 정부로의 이행과정에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 살펴보는 것을 연구의 목적으로 하고자 한다. 아울러 해방이후 권위주의 정권이 한국 사회를 지 있다. 또한 계엄군은 사실보도를 통제하고 의도적인 왜곡, 과대선전으로 광주를 고립시키면서 항쟁의 와해를 효과적으로 진전시켰다.이러한 속에서도 광주는 5일간의 해방기간을 맞이한다. 그러나 무기회수 문제를 둘러싼 수습대책위원회의 분열은 계엄군의 재진입에 대한 대응을 늦추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청년·학생 중심의 항쟁지도부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지속적인 항쟁을 위한 민중의지의 통일을 위해 '민주수호범시민궐기대회'를 지속적으로 열었으나 언론을 통한 무기반납 방송은 투쟁의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또 이미 상당수 반납된 무기와 수습대책위원회의 강경파와 온건파의 첨예한 대립은 더욱더 비극적인 종말을 예고하고 있었다. 사실 이러한 대립의 원인이 계엄군의 내부교란 작전에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청년·학생 중심으로 구성된 항쟁 지도부는 결사항전을 결의하고 기존의 수습 대책위원회와는 달리 항쟁의 자연발생적, 방어적 성격을 뛰어넘어 항쟁이 지닌 혁명성을 강화·발전시키려고 했다. 투항이냐, 결사항전이냐를 둘러싼 내부갈등은 투항을 주장한 일부 수습위원들이 항쟁의 대열을 이탈하면서 자연스럽게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신군부의 광주 충정작전 실시가 불과 하루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외로운 항쟁의 도시 광주는 다시 유혈과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로 뒤덮였다.마지막 '5차 민주수호범시민궐기대회'가 시작되었고 지도부들은 이 대회가 마지막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마지막에 '80만 광주 민주 시민 의결문'이 채택되고 시민들은 민족과 역사 앞에 끝까지 투쟁할 것을 엄숙히 선언했다. 궐기대회를 최종 마무리 지으면서 결전을 다짐한 사람은 1백 50여명이었다. 이들 중에는 여학생 10여명과 고등학생들도 있었다.) 박세길 『다시쓰는 한국현대사』돌베개, 1996, p64항쟁 10일째 마지막 날인 5월 27일 새벽 2시를 전후해 시민군의 마지막 가두방송을 끝으로 3시 30분 경에 도청 인근 사방에서 계엄군의 마지막 진압작전이 감행되었다. 계림 초등학교 앞에서의 교전을 시작으로 계엄군은 광주 전격 기습 작고 광주의 비극을 고발하는 비디오나 각종 인쇄물의 비밀스런 유통은 '민족·민주·민중' 이념을 수많은 시민과 노동자들의 저항 이데올로기로서 자리 잡게 하였다. 새로운 인식의 등장과 전파의 결과는 시민사회 각 부문에서 다양하게 나타났다. 우선 학생운동은 이념적으로 급진화 되었으며 대학별 연대와 상하부 조직의 체계화를 통해 조직적으로 크게 성장하였고, '사회민주화 투쟁'과 반미운동이 태동하였다. 즉 1984년 '전국학생총연합'과 그 전위 조직인 '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 투쟁위원회(삼민투)'가 조직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1984년 11월 민정당사를 그리고 1985년 5월 서울 미문화원을 점거하고 광주항쟁 진상규명, 광주 학살에 대한 미국의 공개사죄 그리고 군사정권에 대한 미국의 지원철회를 요구하는 '반미 자주화 반파쇼 민주화 투쟁위원회(자민투)'로 대체되면서 더욱 과격한 방법으로 군부독재에 저항하였다.재야운동권 역시 급진적 이념과 전투적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의 민주화운동은 1970년대의 자유민주주의적 민주화운동과는 달리, 사회변혁을 주창하는 민중 민주주의적 민주화운동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즉 1970년대의 재야운동이 양심적인 지식인 등 명망가 중심의 개량주의적 운동이었다면, 1980년대의 재야운동은 노동자·농민·도시빈민 등 민중세력의 성장과 집결을 의식적으로 추구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주·민주·통일'이라는 명확한 정치적 목표를 향한 사회변혁운동으로 질적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조직면에서 민주화운동 청년연합(1983년 9월), 한국노동자 복지 협의회(1984년 3월), 민중문화운동협의회(1984년 10월) 등 각종 부문별 혹은 지역 운동체들이 잇따라 결성되었다. 그리고 부문·지역 운동체들의 연대 기구로서 1984년 6월에 민중운동협의회(민민협)가 1984년 10월에 민주통일국민회의(국민회의)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1985년 9월에는 민민협과 국민회의를 포괄한 민주통일 민중운동연합(민통련)이 조직되었다.시민사회의 조직적 저항능력이 본격적으로 강화될 무렵,의 위상 제고 그리고 사상자의 재신고 및 보상 등을 논의하게 하였다. 그러나 민화위 활동을 통한 유화적 제스처에서 불구하고, 광주 민주화 운동은 군부정권의 부당성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또 다시 작동하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5공 청산' 이슈는 군부정권 내의 권력 승계를 둘러싼 전두환과 노태우 진영간의 갈등과정에서 등장한 '5공 절단론'에서 시작되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여전히 권력의 일부를 장악하고 행사하고자 했는데, 이러한 전두환 대통령의 태도는 국가원로자문회의 강화, 임기 말 육군 수뇌부 인사 단행, 13대 총선에서의 공천권 행사 시도 등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 결과 권력을 이양하고 승계 하는 전두환과 노태우 양 진영간의 미묘한 대립이 등장하였고 이 과정에서 노태우 진영은 독자성을 강화하고 13대 총선에서 득표율을 높이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5공단절론'을 채택하였던 것이다. 전-노 진영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부각하게 된 계기는 노대통령 취임과 13대 총선 사이에 발생한 전두환 전대통령의 친인척 비리문제였다. 5공 비리가 폭로되자 국민들의 여론은 급속히 악화되었고, 그 결과 전경환 새마을 운동본부 중앙회장이 구속되었다. 5공 비리로 인한 더 이상의 정치적 파문의 확산을 위해 노태우 진영의 요구에 따라 전두환은 1988년 4월 13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직과 민정당 명예총재직을 사퇴하기에 이르렀다.그러나 전경환 구속과 전두환 전대통령의 사과 및 공직사퇴로 '5공문제'를 마무리 짓겠다고 한 노태우 진영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1988 4.26 총선 결과 전혀 예상치 못한 '여소야대' 국회가 탄생하였고 정국은 '5공문제'를(노태우 진영의 전두환 진영으로부터의 자율을 의미하는) '5공 단절' 수준에서 (전두환 정권의 과오를 심판하는) '5공 청산' 수준으로 급속히 전환시켜 버렸다. 한편 1987년 대선에서의 패배로 심각한 정치적·도덕적 손상을 입었던 야당은 4.26 총선에서 나타난 '여소야대' 정국을 계기로 활성화를 꾀하였고, 그 일의 기반 위에 성립된 정권이라는 사실은 결코 도덕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4)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의 사법처리1995년 12월의 '5.18 민주화 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의 제정과 1997년 4월의 전두환·노태우 등에 대한 사법처리는 6월 항쟁 이후 지속적으로 축소되어 온 군부정치의 공간을 최종적으로 폐쇄한 사건이었다. 즉 광주 청문회가 광주 학살의 진상을 국민들에게 알림으로써 군부의 정치적 위상을 축소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하나회 숙청이 군부의 정치개입을 실질적으로 봉쇄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면, 전두환·노태우 등에 대한 사법처리는 한국정치에서 군부정치개입에 대한 그간의 모든 역사적 명분 및 정치적 논리를 완전히 부정함으로써 한국의 형식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 이행 이후에도 노태우 정권의 집권으로 1979년과 1980년에 걸친 신군부의 쿠테타와 광주 유혈 참사에 대한 사법적 심판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고 정치적 상황이 변화하면서, 12.12와 5.18 관련자에 대한 고소·고발이 줄을 이었다. 우선 12.12 사건과 관련하여 1993년 5월부터 1994년 9월까지 총 10건의 고소·고발장과 8건의 진정서가 검찰에 접수되었다. 그 중에는 1993년 7월 19일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 및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 등 예비역 장성 22명이 전두환·노태우 전직대통령 등 34명을 상대로 군 형법상 반란혐의로 제출한 고소장도 포함되어 있었다.이에 대한 검찰의 최종 수사 결과는 1994년 10월 29일에 발표되었다. 서울 지방검찰청에 의하면, "12.12 사건은 소장 군부세력의 ... 치밀한 사전계획 하에 ... 병력을 불법 동원해 군 지휘체계를 무력화시킨 명백한 군사 반란 사건"이나, 전·노 전대통령 등 핵심 관련자 34명에 대해 14년간의 통치기간 중 국가발전에 공헌한 점과 법정에 세워 단죄할 경우 우려되는 국가적 혼란을 고려하여 기소유예 한다는 것이었다(중앙일보 94/1되었다.
여름만 되면 TV에서는 전설의 고향 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곤 했다. 같은 내용을 몇 년이라는 시간적인 차이를 두고 새롭게 제작하여 방영하는 것이지만 매번 항상 재미있고 흥미가 있었다. 똑같은 전설을 들어도 왜 이렇게 매번 흥미가 있고 재미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두 가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말하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며 또 전설이 가지는 특징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구비문학으로서의 전설과 전설의 특징을 중심으로 전설의 사회 문화적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1.구비문학으로서의 전설문학을 언어예술이라 정의한다면, 문학의 표현수단인 언어에는 말과 글, 즉 음성언어와 문자언어가 있다. 음성언어인 말로 된 문학을 구비문학이라 하고, 문자언어인 글로 된 문학을 기록문학이라 한다. 그리고 기록문학은 문자가 생긴 이후에 형성된 것이지만, 구비문학은 문자가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했다. 그리고 인간이 문자생활을 한 이후에도 구비문학은 여전히 생성되고 지속되었다. 그래서 구비문학은 기록문학보다 원초적이며 본질적인 성격을 갖는 문학이라 할 수 있다.구비문학은 말로 전승된다는 점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문학이며, 또한 전승과정에서 계속 누적되는 문학이다. 따라서 기록문학이 문자로 고정된 문학이라 한다면, 구비문학은 유동적인 문학이라 할 수 있다. 또 구비문학은 문자지식이 없는 민중이 주체가 되는 문학이다. 민중은 문자를 몰라도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말로써 표현해 왔다. 따라서 구비문학은 민중의 생활 속에서 우러나온 문학이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에 밀착된 생각과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고 구비문학이 민중의 문학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문자를 아는 지식층도 구비문학의 향유자로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구비문학은 민족 성원의 대다수가 향유하는 민족의 전통문학인 것이다.구비문학은 기록문학의 모태가 되기도 한다. 향가, 고려가요, 시조, 가사, 고전소설 등 기록문학은 민요, 무가, 설화 등의 구비문학에서 형식과 내용을 취하기도 하고 때로는 상호 교섭하는 가운데 형성되었다. 그만큼 구비문학은 기록문학 형성의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다.전설은 이러한 구비문학의 한 분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처음 제시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여기에서 찾아보자. 전설은 매번 들어도 왜 흥미가 있는 것일까? 전설은 민중들과 지식층이 공동으로 공유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두가 흥미를 가지고 들을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있다. 또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마다 이야기가 조금씩 다르게 느껴진다. 때문에 전설은 매번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2. 전설의 특징그렇다면 전설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해 보자. 전설은 실제로 있었다고 주장하며,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가 제시되고, 특정의 개별적 증거물을 갖는 이야기이다. 전설에는 인간 대 인간, 인간대 사물의 관계를 설명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인간의 좌절된 의지나 비극적 상황을 말해주는 경우가 많다. 전설은 증거물의 성격상 대체로 지역적인 범위를 갖는데, 일정한 지역을 발판으로 그 지역 주민들에게 지역적인 유대감을 가지도록 하고, 애향심을 고취하기도 한다.다음으로 전설의 성격에 대해 알아보자.1) 진실성: 이야기의 연대, 사건 발생의 장소, 주인공 등이 명시되어 있고, 민중의 경험과 사 건의 진실성이 표현되며, 구체적 증거물을 가지고 있는 만큼 전설은 화자나 청자 가 모두 진실로 믿으려고 한다.2) 역사성: 전설 중에는 역사적 인물이나 지역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이들 이야기는 구체 적인 증거물을 토대로 이야기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합리화하려는 특성 을 가진다. 어느 효녀 이야기가 나오면 그 주인공이 누구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 고, 그 당사자를 역사적인 인물로서 효심이 지극하였던 사람이 있으면 전설의 주 인공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끄집어댄다. 한 암석에 어떤 흔적이 있으면, 전설에서 는 처음에 옛날에 난리가 나서 장수가 지나가다가 남긴 말발자국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 다음에는 그 장수가 누구인가 하면 임진왜란 때의 누구였다는 식으로 결론을 맺는다. 이런 점에서 전설은 허구적 사실을 역사적인 것처럼 꾸며놓은 이 야기이며, '역사의 낭만적 기술'(romantic description of history)이기도 하다. 전설 을 구전의 역사(oral history)라고 지칭하는 것도 전설의 역사성을 두고 하는 말이 다. 야담이나 야사 같은 전설을 역사적 사실로 믿는 쪽과 그렇지 않는 쪽이 때로 심각한 논쟁을 벌이는 까닭도 '역사적 진실성'의 여부 때문이다.3) 체험성: 전설에 나타난 사상들을 생활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형성된다. 따라서 전설에서 선인들의 옛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4) 설명성: 전설 중에서 특정 지역에 존재하는 지명이나 사물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유래 를 설명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이야기가 많다. 이들 전설은 구체적인 지명 (장소)이나 사물을 증거물로 삼아서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여기서 이 야기는 비록 역사적 증거물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할지라도 허구적으로 과장되는 것 이 일반적이다.5) 비약성: 전설은 시간과 공간적인 면에서 구체성을 띠면서도 이야기의 서술이나 사건의 경과에서는 비약이 많다. 어떤 이야기를 남한테 말할 때에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 해 어느 장면을 무의식중에 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한 결과 이야기는 비약 의 세계로 이끌려 간다. 예를 들면 주인공의 능력을 설명할 때, 큰돌을 손가락으로 굴렸다든지, 법당을 하루밤 사이에 완성하였다든지, 축지법을 쓴다든지 하는 것은 하나의 비약으로, 사건을 더욱 인상 깊게 전달하여 흥미를 가지게 한다.6) 화술의 자유로움: 전설은 이야기의 서술 절차가 일정하지 않고 자유로우며, 소박하게 이 야기되는 경우가 많다.7) 신앙성: 전설 중에는 민간신앙을 기초로 금기 사항이나 예언적인 상황을 말하는 이야기 가 많다. 풍수나 점쟁이 이야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전설이 신화로부터 신성 성을 물려받은 흔적이라 할 수 있다.8) 단순성: 전설은 신화나 민담에 비하여 그 구조가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이는 전설이 증 거물에 대한 설명적 기능이 강하기 때문에, 핵심적인 의미를 전달하는데 치중하고 수식을 가능한 줄이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설 중에는 이야기의 패턴이 일정 하면서, 이야기로서의 짜임새가 부족한 것들이 많다.이러한 전설의 특징을 바탕으로 처음 제시했던 질문의 답을 찾아보자. 왜 전설은 들을 때마다 흥미가 있는 것일까? 전설은 비약성과 역사성 그리고 진실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먼저 전설에는 급격한 상황전개 즉 비약을 하는 부분이 많다. 전설에서의 비약은 사건을 더욱 인상깊고 빠르게 전개하여 청자의 흥미를 유발한다. 또 전설을 들으면 누구나 반신반의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증거가 제시되고 사람들은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믿을 것인지 믿지 않을 것인지, 그냥 반신반의 할 것인지. 그런 갈등이 바로 전설이 항상 흥미를 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갈등이 전설을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게 한 중요한 원동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3. 전설의 사회 문화적 의미전설은 왜 만들어지고, 또 여러 사람들 사이에 널리 유포되는 것인가? 여기에는 이야기 자체가 갖는 본질적 특성인 '재미'의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전설도 이야기인 점에서 역시 재미의 요소가 이야기의 형성과 전승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그런데 전설은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 증거물을 가지고 이야기된다는 점에서 또 다른 기능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것은 크게 보아 공동체의식과 교훈성으로 설명될 수 있다.
-- 목차 --서론 ---------------------------------------- 2본론 ---------------------------------------- 3가. 기존 대구의 산업단지 ------------------------ 31.산업단지 개발실적 ------------------ 32.각 산업단지별 조성현황 ------------------ 3나. 미래지향적 대구의 산업 ------------------ 7밀라노프로젝트 ----------------------- 7Ⅰ.밀라노프로젝트의 추진배경 ------- 7Ⅱ.지역섬유산업의 당면현황 ------- 8Ⅲ.밀라노프로젝트 추진방향 및 사업내용 11Ⅳ.밀라노프로젝트의 성공적 추진방향 - 13Ⅴ.한국 섬유산업의 활로 ------------ 14위천국가산업단지 ----------------------- 18Ⅰ.입지조건 ----------------------- 18Ⅱ.현황과 문제점 ----------------- 18Ⅲ.사업내용 ----------------------- 19Ⅳ.주요 유치업종 ----------------- 20Ⅴ.외국인 투자촉진 특정지구 개설 - 20Ⅵ.추진전략 ----------------------- 21대구 산격동 종합유통단지 ----------------- 22Ⅰ.조성배경과 목적 ----------------- 22Ⅱ.대구 종합유통단지의 지리적 위치 - 22Ⅲ.대구 종합유통단지의 현 산업과의연계성 및 앞으로 나아갈 할 방향 - 25결론 --------------------------------------- 27참고문헌 --------------------------------------- 28서론대구의 산업구조(취업자기준)는 1994년 기준으로 농림어업 1.2%, 광공업 30.3%, 사회간접자본 및 서비스업 68.5%로 되어 있어, 2, 3차산업이 98.8%를 차지하는 전형적인 도시형 산업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비중이 가장 큰 3차산업이 유흥·음식업 등 단순 소비형한 개발에 착수, '97. 1월 조성공사는 완료.○ '97. 9월부터 2단계 49만평 개발착수, 2000년 12월 완공 예정.구분조성기간면적(만평)사업비(억원)입주업종계'84∼200031712,1001차단지'84∼'88881,230기계, 섬유, 화학2차단지'88∼'921294,570기계, 전자, 자동차3차단지전체'94∼20001006,200자동차, 기계, 전자1단계'94∼'97553,450자동차, 기계, 전자2단계'97∼2000452,850자동차, 기계, 전자□ 조성현황①성서 1차단지 88만평 조성('84∼'88). 대구 도심에서 서남쪽 약 8㎞지점, 낙동강 변에 위치한 성서산업단지는 '84년도 사업비 1,200억원을 투자하여 1차단지 88만평에 대한 개발에 착수 '88년 개발을 완료.. 평당 12만원 정도의 저렴한 산업용지를 지역기업에 공급, 지역특화산업 등 570개 업체 유치.②성서 2차단지 129만평 조성('88∼'93). 2차단지 129만평에 대해서는 첨단기술종합단지를 개발하기 위하여 90년 2월 정부로 부터 첨단산업 유치지구로 지정받아 사업비 4,570억원을 투자하여 90년 12월 1지구 64만평개발, 93년 10월 2지구 65만평 조성 완료.. 정밀전자, 정밀기계, 신소재 등 첨단기술산업 615개 업체 유치, 공장 가동.. 성서 폐수처리장, 근로자 복지회관, 집단 휴양시설, 종합전시관 입주.③성서 3차단지 1단계 55만평 조성('91∼'97). 성서 3차단지는 지역경제력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는 삼성자동차공장을 유치 하기 위하여 91년 12월 지방산업단지로 지정된 이후 삼성측과 유치협의를 추진해 왔으나, 제조업의 경기부진이 장기화되고 높은 분양가(평당 73만원)로 인한 기업의 투자의욕이 위축되어 입주계약이 3년 이상 지연되어 왔음.. 삼성자동차 공장 유치가 불투명해지자 지역경제에 정당, 학계, 시민단체에서는 삼성 유치 서명운동을 전개하는 등 지속적으로 삼성유치운동을 한 결과 '94. 5. 24 마침 내 삼성측과 입주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사업비 3, 세꼴리, 도무스 아카데미 등에는 현장에서 25년 내지 30년 이상 종사한 전문기술자가 교수.○ 기업인들의 구태의연한 경영자세- "만들면 팔린다, 열 번 손해를 보더라도 경기만 좋으면 한번에 만회할 수 있다" 사고와 제품의 고급화·차별화 하고자 하는 기업가 정신이 결여Ⅲ. 밀라노 프로젝트 추진방향 및 사업내용1. 기본방향○ 밀라노프로젝트는 1999년부터 향후 5년간 총사업비 6,800억원 (국비 3,670, 시비 515, 민자 2,615)을 투자하여 제직·염색 등 미들스트림(Middle Stream)에 편중된 지역 섬유산업의 구조를 패션·디자인·어패럴 등 다운스트림(Down Stream)의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섬유산업구조로 전환하고, 대기업의 임가공 하청생산 구조를 소비자와 수요자의 요구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로 구조개선과 현장 적응능력을 갖춘 양질의 고급 기술 인력을 양성한다.○ 신소재 등 기술개발로 차별화 된 고급 제품을 생산하고, 정보, 마케팅 등 시장기호에 맞는 제품의 생산으로 내수기반을 확충한다.○ 섬유산업의 인프라를 구축과 수출 질서 확립으로 지역 섬유산업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여 선진국형 생활 문화산업으로 정착한다.2. 사업내용○ 밀라노프로젝트는 총17개 사업으로 6,800억원을 투자하여 지금의 산업구조를 임시 방편적 지원이 아닌, 기술개발 및 구조고도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집중 투자한다.◆ 섬유제품의 고급화 및 고부가가치화를 추진하기 위하여(1) 신제품개발지원센터 설치 270억원(2) 염색디자인실용화센터 설치 270억원(3) 니트시제품가공공장 설치 150억원을 신제품 개발체제를 구축함◆ 신제품개발에 필요한 정보지원과 기존 연구소의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하여(4) 섬유정보센터 설치 125억원(5) 패션정보실 운영 75억원(6) 섬유개발연구원 사업보조 160억원(7) 염색기술연구소 사업보조 215억원을 지원◆ 직물위주의 대구섬유산업을 패션 디자인, 어패럴산업과 연계시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하여(8) 패션 디자인개발 지원센제단 봉제실, 4층에는 숙소 등을 설치하여 소기업위주로 동일 건물 내 생산, 전시, 판매, 숙식 등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대구의 관광명소로 개발할 계획이다. 현재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사전예비타당성 조사를 하고 있으며, 사전조사가 끝나면 국내외의 권위 있는 용역기관에 용역을 주어 결과에 따라 본격적으로 사업추진 방향이 결정되고, 국내외 패션, 어패럴, 악세서리 등 토탈 패션산업을 유치할 것이다.Ⅴ. 한국 섬유산업의 활로1. 섬유산업을 둘러싼 환경 변화○ 무한경쟁시대의 도래-1974년 이후 지금까지 다자간 섬유협정(MFA)에 의해 쿼터로 규제되어 왔던 섬유류 교역은 2005년에 완전 자유화되게 된다. 즉, 섬유류 교역이 WTO(세계무역기구) 체제로 복귀하게 되면 관세 장벽은 물론이고 수량규제 등 비관세 장벽도 완전히 철폐되는 등 무한 경제시대를 맞게 되는데, 앞으로 남은 과도기를 우리 기업들과 정부가 무한경쟁시대를 대비하여 어떻게 보내느냐가 우리 나라 섬유산업의 장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우리 나라는 쿼터 다량 보유국으로서 쿼터의 철폐는 기득권의 상실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또한 관세 인하는 교역량의 확대를 가져와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해 줄 것으로 때문이다.○ 첨단기술의 발전-현재 섬유산업에 도입되고 있는 첨단 자동화 설비인 CAD/CAM시스템은 섬유산업과 첨단기술을 접목시킨 한 실례가 되고 있는데, 실제로 합성섬유의 경우 중합 방사에서부터 가공 및 검사까지 전공정이 CIM(컴퓨터 통합 생산) 시스템에 의한 완전 자동화된 일련의 무인화 공장이 등장하고 있다.○ 정보화 사회의 도래현재 진전되고 있는 첨단기술 중에서 정보통신,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분야의 기술발전은 정보화사회의 실현과 함께 산업 생산공정 및 유통이 전자화를 급속히 확산시켜 사회구조 및 의식에 직접 영향을 주는 새로운 기반 기술을 등장하게 되었고, 섬유산업의 경우에 고급화, 다양화하는 소비자 욕구에 신속 대응하기 위해 기획, 생산, 판매까지를 정보네트 워크화에 의한 QR시스템 도입이 미국, 일본 등에, 기업간 전략적 제휴, 생산 현장에서의 연구 체제 확립 등 미국식 경영원칙 아래 연방정부의 지원이 합쳐져 섬유선진국으로 발돋움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가장 중요한 성공의 관건은 개별 기업들이 살아 남아야 되겠다는 결심과 결단에 있었다.세계 섬유 패션산업을 선도하는 이태리 밀라노는 70년대 초만 해도 섬유 선진국이었던 프랑스, 독일, 영국의 하청생산기지에 불과 했다. 그러나, 섬유산업의 부흥을 위해 71년 섬유 산업법을 제정하여 기업의 구조개편, 업종전환 등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조합, 시민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열심히 노력한 결과 불과 15년만에 원단은 독일을 능가하고, 패션 디자인 분야에서도 프랑스 파리를 능가하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우선 생산 방식에 있어서 이태리 섬유산업은 90%이상이 종업원 30인 미만의 소기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문화 특성화가 가능한 다품종소량 생산체제를 갖추어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에 신속히 대응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특히 한정된 품목을 대량생산하는 우리의 섬유산업에 던져주는 시사점이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위의 여러 가지 내용을 살펴보면 발달한 교통망과 수출이 용이한 지리적 여건, 기존의 섬유산업을 연계해 대구가 추진하고 있는 밀라노 프로젝트의 전망은 밝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21세기를 맞이해 국경 없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모든 분야에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섬유산업도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혼을 담은 근로자의 장인정신,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자 하는 기업가정신 업종간의 화합 정신이 발휘될 때 21세기 대구의 섬유산업은 선진국형 생활문화 산업으로 실현될 것이고, 지금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극복하고 밀라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위천국가산업단지Ⅰ. 입지조건○ 낙동강을 끼고 있어 공업용수가 풍부함.○ 88고속도로와 구마고속도로의 교차점에위치하는 데다 경부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와 도 가까이에 위치해 교통이 편리함.○ 구미, 포항, 울산, 창원
Bruner의 수업이론서론많은 수업이론 중에서도 학문중심 교육과정 운동의 기수였던 Bruner의 수업이론은 그의 교육과정 사상의 영향력과 함께 주목을 끈다. 그는 아동의 재능을 최대한으로 실현하도록 조력하는 것을 수업의 본질로 보면서 지식 기술을 기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에 관한 법칙을 규정하는 것이 수업이론의 본질로 본다. 급변하는 사회, 지식의 폭발과 관련하여 학교교육에 심각하게 제기되는 문제는 무엇을, 언제, 어떻게 가르치느냐 하는 것이다. Bruner의 교육의 과정(The Process of Education)"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탁월한 대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교육의 과정 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1 학교 교육의 목적은 바람직한 민주시민과 함께 모든 개인의 지적 수월(intellectual excellence)을 추구 하는데 있다.2 지적 수월을 위해서는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각 학문영역의 기초적인 지식 곧 지식의 구조(structure of knowledge)를 가르쳐야 한다.3 학습 준비성(readiness for learning)은 재 해석 되어야 한다. 어떤 교과든지 어떤 발달단계에 있는 아동에게도 지적으로 정직한 형태로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4 각 학문 영역의 학습에서 일반적인 원리의 이해와 동시에 중요한 것은 그 영역의 학습과 탐구, 추측과 예견, 자신의 문제해결능력 등에 관한 일반적인 태도를 형성하는 일이다. 이러한 태도의 형성과 관련하여 우리는 학습자가 발견의 희열(a sence excitement about discovery)을 가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5 분석적 사고(analytic thinking)와 동시에 직관적 사고(intuitive thinking)가 지금보다 훨씬 강조 되어야 한다. 날카로운 추측, 의미심장한 가설, 잠정적인 결론의로서의 과감한 도약 등은 생산적 사고(productive thinking)의 중요한 측면이며, 모든 분야에서 사고하는 사람의 주된 무기이다.6 저 학습에의 사전 성향을 들고 있다. 사전 성향이란 학습하고자 하는 의욕이나 경향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문화의 특징이나 동기체제, 그리고 학습자의 개인적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다. 학습자의 사전성향에 관한 그의 기본 가정은 다음과 같다.첫째,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학습자의 사전 성향에 영향을 준다. 특히 어린아이들 일수록 수업에 관한 교사와의 관계 형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둘째, 문화적으로 볼 때 학생들의 학습활동 자세는 사회계층이나 성, 연령, 그리고 종족에 따라 다르다.셋째, 수업은 학습자 스스로 문제해결 가능성을 찾도록 조절하고 촉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활력화(activation), 지속력(maintenance), 방향감(direction)을 적절히 조절 하여야 한다.2) 지식의 구조학생들에게 갈르칠 내용은 지식의 구조 이다. 지식의 구조란 각 지식의 영역에서 가장 기본적 이며 핵심적인 개념이나 법칙, 원리, 이론 및 아이디어로 정형화(定型化)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가르치는 것이 매우 경재적이라고 밝힌다. 그는 다음과 같은 명재를 통하여 지식의 구조를 가르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첫째, 그 어떤 아이디어나 문제 혹은 지식의 체계도 어떤 특정 학습자라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도록 단순한 형태로 제시 할 수 있다. 그는 [교육의 과정] (1960)에서 어떤 교과라도 지적으로 올바른 형식으로 표현하면 어떤 발달단계에 있는 어떤 아동들에게도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 라는 대담한 가설을 제시 하였다. 이 가설에 따라 그는 교육과정의 조직을 나선형(螺旋形)으로 할 것을 주장 하였다. 이른바 나선형 교육과정이란 동일한 교과, 즉 동일한 개념이나 원리 등이 점점 그 깊이를 더하고 그 폭을 넓혀가면서 심화되도록 조직하는 것을 의미한다.둘째, 어떤 영역에 있는 지식의 구조라도 다음의 세 가지 방식, 즉 표현양식, 경제성, 그리고 생성력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지식의 구조는 이들 세 가지에 따라 그 성격이 잘 나타나는데, 학습자들이 나이나 학습스타일, 그리고 학과 내적 보상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좋다.이처럼 Bruner는 강화에 보상이 매우 효과적이며 중요하다고 한다. 벌 보다는 보상이 바람직하며, 외적 보상보다는 내적 보상이 더 효과적이다.Bruner의 교수이론Bruner는 교수 이론의 본잘을 지식이나 기술을 성취시켜 가는 가장 유효한 방법에 대한 법칙을 제공한다는 의미로서, 처방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학습이론은 교수이론 처럼 처방적이라기 보다는 기술적이다. 그가 말하는 교수이론의 네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다.1 교수 이론은 학습에 대한 경향성을 특정 개인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심어 줄 수 있는 경험에 관하여 밝혀 주어야 한다.2 교수이론은 일꾼의 지식이 학습자에 의하여 가장 용이하게 이해 되도록 구조화하는 방법을 밝혀 주어야 한다.3 교수이론은 학습되어야 할 교재를 제공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순서를 밝혀 주어야 한다.4 교수이론은 교수와 학습과의 과정에 있어서 보수나 벌의 본질과 그것이 주어지는 기저를 밝혀야 한다.Bruner의 직관적 사고와 분석적 사고Bruner는 학습을 하는데 있어서 교과내용에 관한 직관적인 이해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직관적인 사고란, 분석적인 지적 과정에 특별히 의존함이 없이 어떤 문제 사태의 의미, 의의, 또는 구조를 파악하는 행위를 뜻한다. 즉 어떤 대상을 시각, 청각 등 감각기관을 통하여 감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직관의 내용이 옳은가 그른가는 다시 직관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증명방법으로 결정된다. 이러한 직관적 사고의 기초에는 반드시 그 사고내용에 관한 확실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 기초지식이 없이는 직관적 사고가 그 기능을 발휘 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직관적 사고는 수학이나 물리교육에 꼭 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Bruner는 직관적 사고와 분석적 사고를 비교, 설명 하였다.분석적 사고는 대개의 경우에 한때에 한 단계씩 진전되며, 명백히 드러나는 단계이며, 묵하 사고를 하는 사람이 그 단계를 제 삼자에게 충분히 기술할 수 있고 자기가 어떤 내용의 지식을여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말하는 이의 방식을 취하는 아동 은 받아들이는 정보의 순서와 자신의 활동 목표를 결정하고 그가 관찰한 사실의 앞 부분으로 과감히 나선다. 이것은 아동들의 경우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어른들도 어떤 이는 자기자신의 아이디어에 더 관심이 있고, 다른이는 자연상태 그대로에 더 관심 이 있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설명만 하면, 아동은 말할 기회를 잃고 싫증 을 내게 된다. 교사가 침묵을 지키기만 하면, 아동은 교사가 목적한 것을 학습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아동이 멋대로 내린 결론을 학습하게 된다.발견학습을 지도 할 때, 현명한 교사는 아동이 이 두 가지 방식에 적절히 익숙해 지 도록 인도한다.2 상벌(賞罰) : Bruner는 수업 관찰을 통하여 학생들의 학교 일과의 대부분이 적절한 보상없이 이루어 지고 있음을 알았다. 즉, 학생들은 그가 그 일에 어느정도 숙달 되었다거나 그 일이 잘 완료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되도록 어떤 결론을 내리는 사고를 할 수 있을 만큼 그의 활동을 충분히 마무리 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가 종이 비행기를 접을 때에는 그 활동이 마무리 될 기회를 거의 즉시 갖게 되어, 적어도 그가 만든 것이 잘 날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학교 활동에서도 경쟁이나 상장 등을 통해 일련의 외적인 상벌이 필수적으로 주어져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실상은 여전히 훈육과 무관심이 주된 문제로 남아있다.발견 활동은 그것이 수반하는 이해와 숙달을 통해 그 자체의 보상 과정이 있고, 이러한 보상은 그 활동 자체에 내재한다. Bruner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발견을 자극하는 수업 방법에 익숙한교사가 인도하는 한 수업에서는, 수업 분위기가 학생들의 경쟁적 활동을 위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이 무엇인가를 발견한다는 경험이야 말로 비록 그것이 계산을 조금 간단하게 하는 정도의 단순한 것일지라도 학생들의 마음 속에는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한다.발견학습은 외적인 보상체계가 필요없이 발견활체적 자료) 사용을 장려한다. 이러한 견해는 표현양식의 순서성과도 연관이 있다.Bruner의 학습관1) 인지 과정Bruner는 어린이의 인지발달이 자극과 반응의 결합으로 점점 복잡화 하는 양적인 연속 과정으로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다른 세 가지 단계(작동적 파악단계, 영상적 파악단계, 기호적 파악단계)로서 단계적인 질적 과정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여기서 작동적 파악단계라는 것은 활동을 통한 표현으로서 예를 들면 5개의 구슬 가운데서 빨간 구슬 2 개와 파란구슬 3개를 세어보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영상적 파악단계라는 것은 그림, 벤다이어그램, 대응도 등과 같이 어떤 형태든 그림에 의한 표현이다. 예를 들면 5개의 구슬 가운데서 빨간 구슬과 파란 구슬로 구분하여 집합을 만드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마지막의 기호적 파악단계라는 것은 언어나 기호에 의한 표현으로서 덧샘이라고 하면 2+3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단계는 추상적인 수를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잠재되어 있다. 따라서 수를 이용한 결합, 분해가 가능해 진다.Bruner는 인간의 인지 양성은 이러한 세 가지로 구별할 수 있고, 또한 이 순서대로 인지가 가능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원리는 수학 교육에서 조기 교육이나 오류의 치료적 지도 등에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 원리에 의하면 어떤 수학적 내용이 기호적 표상으로 나타내었기 때문에 너무 어려운 수준이 되었다면, 영상적 표상을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있도록 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원리에 입각하면 지도 방법의 문제는 지도하고자 하는 수학적 내용을 어떻게하여 학생의 인지 양식에 알맞은 표현으로 만들어 가는가라는 문제로 환원된다.2) 학습의 과정(=인지발달과정의 단계)Bruner의 인지이론을 보기 위해 그가 제시하고 있는 인자발달과정의 단계를 살펴보자. 그는 아이들의 세계를 나타내는 즉, 앎을 표현하는 3개의 양식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단계는 Piaget의 발달단계와 유사하지만 그의 어프로우있다.
1.남자의 생식 기관과 정자의 형성남자의 생식기는 중요한 두 가지의 성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 하나는 정자를 만드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이들 정자를 여자의 생식기에 전달해 주는 일이다.(1)남자의 생식 기관정자를 만드는 정소와 정자를 운반하는 부정소, 수정관, 저장낭, 음경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기에 전립선등의 부속선들이 있다.1정소-정자를 생산하는 곳이며, 2개가 음낭 속에 자리잡고 있다. 정소 는 수많은 세정관으로 되어 있으며, 정자는 바로 이 세정관 안 에서 형성된다.2세정관-정소 내부는 여러개의 구획으로 나누어져 있고, 그 구획 내 에는 코일처럼 꼬인 가느다란 세정관이 15~20개 있다. 세정 관의 벽쪽으로는 정원세포가 있고, 이것이 사춘기 이후부터 호르몬의 영향으로 감수 분열을 시작하여 관의 안 쪽으로 가 면서 제1정모 세포, 제2 정모 세포, 정세포, 정자 순으로 성 숙하게 된다.3부정소-성숙한 정자들은 부정소로 이동하여 운동능력을 갖추게 되 고, 성적 자극을 받으면 수정관과 음경을 거쳐 사출된다.4부속선-전립선, 쿠퍼선 등이 있으며 여러 가지 영양 물질, 점액등을 분비하여 정액을 형성한다.5정자의 이동경로-세정관에서 성숙한 정자들은 저정낭에 저장되었다 가 몸밖으로 배출된다. 이 때 전립선, 쿠퍼선 등에 서 영양물질이 나와 정액을 형성한다. 정액의 대부 분은 이들 부속선에서 분비된 물질로 구성되며, 실 제로 정자가 차지하는 부피는 5%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세정관에서 생성된 정자들은 셀토리 세포에 머리를 묻고 있다가 저정낭으로 운반된다.정소는 정자의 형성외에 남성 호르몬도 분비한다. 사춘기 때 2차 성징이 나타나는 것은 이 남성 호르몬 때문이며, 정자의 생산도 이 호르몬의 조절을 받고 있다.(2)정자의 구조사람의 정자는 머리, 중편, 꼬리로 된올챙이 모양이며, 길이는 30~50㎛ 가량이다.1머리-대부분은 핵이 차지하고 그 앞부분에 있는 첨체에는 난막을 용해하는효소가 있다.2중편-앞 끝에는 한 쌍의 중심립이 있고이 중 1개로부터 주축 필라멘트가 나와 꼬리까지 이어진다. 한 편, 주축 필라멘트를 둘러싸고 있는 미토콘드리아는 정자의 운 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한다.3꼬리-보통의 편모와 같이 단면이 9+2구조 이며, 이것을 움직여 정액 속을 헤엄친다.2.여자의 생식 기관과 난자의 형성여자의 생식기는 난자를 만들 뿐만 아니라 수정, 착상, 발생, 분만등의 역할을 한다.(1)여자의 생식기관난자를 만드는 난소와 나팔관, 수란관, 자궁등으로 되어 있다. 난소의 일부는 수란관의 끝인 나팔관에 의하여 덮여 있고 수란관은 자궁에 이어진다. 자궁은 태아가 출생할 때까지 자라는 장소이고, 질을 통하여 외부와 연결된다.♣난소에서 배란된 난자는 나팔관으로 들어가 수란관의 상부에서 정자와 수정한다.(2)난자의 형성과 배란출생시 사람의 난소에는 약 100만개정도의 제1난모 세포가 들어 있으며,사춘기 이전까지는 모두 그 상태에머물러 있다.이 제1난모 세포들은 각각 1개씩여포라고 하는 조직에 싸여있다가사춘기가 되면 차례로 성숙하여난소 표면으로 이동하고, 마치 난소표면에 혹처럼 돌출했다가 터져서 난자(제2난모 세포)로 복강 속으로 방출된다. 이와 같은 현상을 배란이라고 하는데, 사람에 있어서 배란은 평균 28일을 주기로 일어나고 있으며, 주기마다 좌우 난소에서 번갈아 배란되고 있다. 배란이 되면 난자를 싸고 있던 여포는 노란색의 황체로 되었다가 퇴화한다.♣그라프 여포-배란 직전의 성숙한 난자가 들어 있는 여포를 그라프 여포라 한다.3. 생식주기와 임신여자가 사춘기에 이르면 생식주기가 시작되어 임신이 가능해진다.(1)생식주기와 월경여자는 약 28일을 주기로 성숙한 난자를 한 개씩 배란하는데, 이러한 주기를 생식주기(월경주기)라고 한다. 여자의 생식주기는 월경기, 여포기, 황체기로 구성되며, 사춘기에서 시작하여 약 30~40년간 계속되다가 끝나고, 임신 중에는 일시적으로 정지된다.1생식주기ㄱ여포가 커지고 난자가 성숙하면 여포는 난소 표면으로 이동하고, 여포는 에스트로겐(여포 호르몬)을 분비하기 시작한다. 에스트로겐 은 자궁벽을 두껍게 하는 한편, FSH(여포 자극 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하여 다른 여포가 성숙하지 못하도록 한다.ㄴ에스트로겐은 또한 뇌하수체를 자극하여 LH(황체 형성 호르몬)를 분비하도록 한다.ㄷ배란이 끝나면 여포는 곧 황체로 되고, 이 황체에서는 프로게스테 론(황체 호르몬)이 분비된다. 프로게스테론은 FSH의 분비를 억제하 고 자궁벽 혈관의 성장을 크게 촉진하여 자궁벽이 한층 더 두꺼워 진다.ㄹ이 때 수정된 난자가 자궁벽에 착상하면 계속 프로게스테론이 분비 되어 자궁의 비후된 조직이 유지되게 한다.♣일반적으로 배란되는 난자들은 가수분열을 모두 마친 상태가 아니고 감수 제1분열만 끝난 제2난모 세포이다.따라서, 이 제2난모 세포는 1개의 극체를 방출한 채 정자의 침입을 기다리게 된다. 이 때 정자와의 접촉이 없으면 난자는 그 상태에서 퇴화하고, 정자가 난자 안으로 뚫고 들어가면 즉시 제2난모 세포는 감수 제2분열을 끝낸 후 정자핵과 융합할 준비를 한다.2월경-배란된 난자가 착상되지 않으면 황체는 급격히 퇴화하면서 프 로게스테론의 분비량이 줄고, 결국은 두꺼워진 자궁벽이 파열 되어 혈액이 질을 통해 밖으로 배출된다. 이것이 월경이며, 월 경이 시작되면 뇌하수체에서 FSH의 분비가 시작되어 새로운 생식 주기가 시작된다. 매달 배란되는 난자가 수정되어 착상하 지 않으면 여포의 생장, 배란, 황체 형성, 황체 퇴화, 월경으로 이어지는 생식 주기가 반복된다. 생식주기는 평균 28일이고, 배 란이 일어나는 것은 보통 첫 월경일로부터 14일째이다.여포자극호르몬 황체형성호르몬【여포】⇒【여포의생장】⇒【배란】⇒【황체형성】⇒【황체퇴화】 ⇒【월경】{여포 호르몬 분비1.여포자극호르몬 분비 억제2.황체형성호르몬 분비 촉진3.자궁벽을 두껍게 한다.{황체 호르몬 분비1.여포 자극 호르몬의 형성 중지2.자궁벽 비후 유지☞임신 유지(2)수정과 임신배란된 난자는 수란관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그 곳에 정자가 있으면 곧 수정이 되고, 수란관을 따라 자궁벽에 착상하여 임신이 된다.1수정과 착상-수정은 보통 배란 후 24시간이내에 수란관의 상부에서 일어난다. 정액은 한 번의 사정에 3㎖가량이 배출되며, 여기에는 3억~5억 마리의 정자가 들어 있다. 정자들은 자궁을 통해 수란관의 상단까지 헤엄쳐 가서 수정하는 데, 이 곳에 이르는 정자의 수는 수백개 뿐이며 이 중 의 1개만이 난자 속으로 들어가 수정한다. 수정란은 세 포분열을 하면서 수란관을 따라 내려와 수백 개의 세포 로 된 포배상태로 자궁 점막 속에 매몰된다. 이 현상 이 착상이며, 배란에서 착상까지는 보통 5~6일이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