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코메니우스의 대교수학1. 머리말요즘 뉴스를 보면서, 요즘 교육계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말해 보겠다. 첫째로 무너지는 교권이다. 작년에 급식사건으로 인해 초등학교 교사가 부모들 앞에 무릎을 꿇은 일이 있었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교권이 무너져 가고 있는 현상을 보고, 들을 수 있다. 옛날 맞아가면서 초등학교를 보낸 적이 있었고, 잘못했으면 맞는 것은 기본이었고, 반성문 안 쓰는 것이 다행이었다. 우리는 한반에 약 45명 정도가 있었기 때문에 학생의 수가 많으니까 잘못하면 이렇게 된다는 모형으로써 어쩌면 그러한 체벌은 묵과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고, 그 시대에는 잘못했으면 맞는 것이 당연한 처사 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둘째로 다른 직업 장에도 이런 일들도 있겠지만, 주식실패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꽃뱀과 사전모의하고 동료교사를 협박한일, 촌지를 받는 선생님들, 이전까지 선생님들은 이렇게 말했다. 평소 공부보다는 양심과 도덕적인 삶이 중요하다고, 과연 현재의 아이들은 위의 선생님들은 보면 양심과 도덕이 중요하다고 할까? 마지막으로 유아 때 불어오는 영재교육 및 외국어 교육 등 을 말할 수 있다. 확실히 예전에 비해서 국가의 경제적 성장에 의해 부모의 교육적 관심이 더욱더 늘어났고, 이에 교육자의 책임이 결여된 선생님, 글로벌시대를 주장하면서부터 일어난 조기 영어교육........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목적 중 하나는 교훈으로서의 역사이다. 교수님 수업을 들으면서 위에 말한 것의 해결책보다는 풀이라고 말할까? 현재에 대해서는 해결책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있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플라톤이나 몽테뉴도 어느 정도 대답을 줄 수 있겠지만 앞의 두 사람과 코메니우스도 도덕교육을 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같지만, 코메니우스가 대교수학을 통하여하여 새로운 인간 이해를 비롯하여 교육의 목표, 교육의 방법을 자연과, 동물과 직업을 통한 비유를 들어가면서 명쾌하게 설명하였고, 또한 몽테뉴가 주장한 개별화 교육보다는 현재훈육, 나이와 성장에 따른 교육에 대하여 설명하겠다.2. 교육사상사상을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선은 목표를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을 파악하고 저자를 이해하는데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필자는 기독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관심이 다른 곳에 비해 많진 않았다. 우선 제목에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내세의 삶에 있다고 했기 때문이고, 현세의 삶은 영생에 대한 준비라고 하였다. 그리고 현세의 삶에서 학식 있는 교양, 덕행, 경건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인간은 목표가 다다른 다고 하였다. 인간은 어떻게 된 동물일까? 6장에서 나온 “인간은 먼저 인간으로 교육되어야 한다.”의 제목을 통하여 본격적인 교육에 관한 그의 사사을 밝혔다. 인간은 처음 태어났을 때 본성에 의해서 행동하는 존재이고, 인간은 짐승이나 잘 다듬어진 건축자재가 아니기 때문에 가르침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나타나는데 훈련을 많이 받을수록 더 뛰어난 결과가 나타난다고 하였다. 이후 이러한 교육은 이른 나이에 해야 효과가 크다고 하였다. 이는 어릴 때는 쉽게 교육되고 휘어질 수 있지만 단단해지면 순종하기를 거부한다는 사실은 모든 성장하는 것들의 특성을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키케로의 인용을 통해서 어린이들은 수많은 일들을 빠르게 이해하고, 어린이는 상상력이 풍부하였고, 이에 손과 나머지 신체 부위들 역시 어릴 때, 힘줄이 약할 때, 기술적이며 수공적인 일을 훈련받아야 앞으로 훌륭한 작가, 화가, 재단사, 장인 음악가가 된다면서 이 인용으로 그가 어릴수록 일찍 교육을 받아야 된다고 역설하였다. 그렇지만, 어릴수록 교육을 하여야 하는데 1차의 교육기관은 어디인가? 바로 가정일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문제가 생길 것이다. 부모가 모두 일정수준의 교양지식을 갖고 있는 것이냐 이다. 또한 그때의 시대 상황을 보면 인간의 수와 직업의 수가 늘어났기 때문에 자식을 돌 볼 여유가 줄어들었고, 자녀들을 가르칠 지적수준을 가진 부모들은 그들 중 소수이었을 것이다. 이에 그는 학교를 설립을 권고 하였고, 신분과 성별에 해 쉽게 아이들은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말하였는데 어릴 때는 규칙보다는 모범을 통해 쉽게 인도되고 지도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학교에서의 수업은 모든 것을 포함하여야 한다고 하였다.2. 교육방법과 훈육에 대하여코메니우스는『대교수학』에서 자연의 원리를 잘 발견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교육방법을 학생들에게 적절하게 보여주고 가르치면서, 그들이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배우는 여러 과목들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①자연은 그의 시기에 적합하게 모든 것을 행한다.이것은 인간의 교육에도 배움의 적절한 시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인간의 교육은 먼저 봄에 시작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유년시절을 뜻하는 것이고, 아침은 봄과 같기 때문에 아침이 공부하기 적합한 시간이며 모든 교재는 이해력을 초과해서 배우기를 포기하도록 하지 않기 위해서 연령에 맞게 선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청소년은 일찍 교육을 시작해야 할 것이고, 교사는 다른 모든 것들에 앞서 올바른 질서 안에서 도덕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②자연은 형태를 제시하기 전에 재료를 준비한다.이것은 교과서들과 모든 다른 가르침의 수단들은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인식 능력은 언어에 앞서 교육되어야 하고, 언어공부는 문법 공부보다는 저자가 좋거나 잘 꾸며진 사전으로 시작해야 될 것이다. 실제 학문들이 질서적이고 논리적인 것들에 앞에 설명되어야 하고 법칙은 귀납법으로 가르쳐야 될 것이다. 그리고 학습 의욕을 복돋아 주고 또한 고취시키기 위해 자연적이어야 하고, 부모, 학교, 교재, 방법, 교육 관청을 통하여 할 수 있다.③자연은 작업을 위해 쓸모 있는 재료를 선택하거나 또한 먼저 유용할 만한 것을 확실히 준비한다.여기서는 학생의 인내를 강조한다. 이러한 학생은 정신은 다루어져야 할 모든 것들에 대해 준비되어져야 하고, 장애가 될 수 있는 모득 것은 파기 되어야 하고 그들에게 방해되는 것은 먼저 배재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④자연은 그의 행위를 무질서하게 하지 않고, 차례대로 시행한다.⑤자연은 그의 모든예를 통해서 변칙들을 포함한 체계적인 분류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필요하면 마지막으로 주석을 통하여 언어와 학문 또는 기술에 연결되어야 하고, 사물의 기초를 아는 사람은 스스로 주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⑦자연은 비약하지 않고, 한 발짝 한 발짝 전진하다.증가하는 연령과 진보적 공부와 함께 증가하는 이해력과의 적절한 관계에서 가르쳐야 할 것이며, 암기할 것은 가능한 적게 하고 나머지는 자유스럽게 해야 할 것이다.⑧자연은 어떤 것을 시작하면 그것이 완성될 때까지 중단하지 않는다.계획에 의해 추진된 모든 것은 중단 없이 진행되어야 한고, 학교에 보내진 학생은 그의 학식과 덕성 그리고 경건함 사람이 될 때까지 배워야 한다.2.2.학교 훈육에 관하여우선은 훈육은 필요할까? 자칫 부모, 교육자와 학생들 사이에 사이가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내가 어렸을 때까지도 맞았던 것을 생각하면, 과연 맞을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이만, 한편으로는 내가 잘못한 내용에 있어서 매보다 강한 것은 없는 것 같다. 확실히 따뜻한 말보다는 강한 것이 머리에 박히기 때문에 다시는 전과 같은 일을 못하도록 봉인하게 된다. 따라서 나는 훈육이 강하게 나가는 것에 찬성하지만 코메니우스는 아니었다. 일단 그는 훈육의 대상은 잘못한 사람들이다. 다시는 그런 일을 못하게 하는 것도 있지만, 제일로 중요한 것은 격렬한 감정과 화냄이나 미워함이 없이 솔직함과 순수한 마음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그는 공개적인 망신을 주라는 것 같다. 열심히 한자에게는 공개적인 칭찬을 하는 것이 중요한 보상이고, 잘못한자에게는 거친 말과 공개적인 꾸지람을 하라고 말하였다. 그렇다고 때리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물론 말을 들어 먹지 않는 사람에게는 사용하라고 말하였다. 그도 하나의 사람이고 방치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작게 벌어진 실수로 체벌을 한다던가, 남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훈육의 목적은 하나님의 경외, 이웃에 대한 섬김, 일과 생의 과제에 대한 기쁨과 모든 일에 깨우치고 영속적이고 실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 성장이 대체로 정지한다는 생리적, 심리적 고찰을 시도 했다는 점 그리고, 셋째로 성숙의 24년간을 그 발달상의 특징으로 보아 4단계로 구분하여 그것을 대체로 6년간씩 4기로 나누고, 이 심리적 단계에 따라 학교도 4종류로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그의 견해는 근대적 학교제도인 제 6?3?3?4의 기본 모형이 되었다. 그러한 모형은 다음과 같다.1. 유아 시절의 학교는 어머니의 품안이다.2. 소년 시적의 학교는 초등학교, 또는 공적인 모국어 학교3. 청소년 시절의 학교는 라틴어 학교 또는 인문 학교4. 성년 초기의 학교는 대학과 여행이다.이러한 네 가지 종류의 학교는 사계절에 비유했는데 1번은 싹을 발아하는 봄으로 보았고, 2번은 이삭과 갓 익은 열매가 풍성한 여름으로 3번은 들녘과 포도원의 과일들이 추수되고 정신의 창고에 모여지는 가을을 마지막으로 대학은 남은 여생을 위해 추수된 과일들을 저장할 수 있는 광을 준비하는 겨울로 묘사하였다.3.1 어머니 학교아이들이 무엇보다 그들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고 있는 그대로 의식하지만 그 특별한 것은 구별할 수 없다고 하고, 나중에 이르러서야 천천히 구별하게 된다고 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 학문의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다. 즉 차츰적으로 가르쳐야 할 것은 모국어를 음과 음절 문장을 분명하게 소리내도록 하고, 사물을 인식하고 사물의 이름을 알아야 되는 것이고, 물량적 차이를 알고, 자연을 관찰하여야 하고, 올바른 성장으로서 덕행들의 진보를 유지하려 할 때 확고한 토대가 견지되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어머니 학교에서 문제점은 두 개로 나누었는데 첫 번째로 공공학교에서와 같이 일정한 시간표나 체계로서 부모들이 교육을 하는 것과 두 번째로 아이들의 발달의 개인차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제시한 것이 부모와 보보들을 위한 소책자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고, 이 책안에는 모든 것이 개별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이고, 무엇이 어린 나이에 지도될 수 있는지, 어떤 경우에, 어떤 방법으로 어.
목차1. 레포트 주제 : 춘추2. 춘추의 배경및 저자에 대한 고찰3. 춘추의 구성 및 특색4. 춘추의 의의1. 레포트 주제 : 춘추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목적 중 하나는 지나간 시간을 통해서 미래 혹은 현재의 교훈을 삼기 위한 방법 중 하나 일 것이다. 또한 과거를 알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것이고 문화전승을 하는 방법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과거 고조선부터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하였으나 단지 유물로서 영역을 표시할 뿐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고 볼 수 있으며 대부분의 고증을 중국의 역사의 일부분 즉 한서 동이전등과 같이 중국 측의 고서를 통해서 추측하고 고증하고 있다. 이렇듯 사학사는 좁은 의미에서 현재에 있어서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이론적 기초를 마련하는 토대일뿐더러 넓은 의미로 과거 인류의 문화적 업적을 정리하는 일부터 민족의 문화를 정리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정사의 간신전처럼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내용도 있을 것이다. 내가 레포트를 춘추로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춘추는 중국의 최초의 역사의 저술의 하나로서 사학사의 위치를 결정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더 흥미가 느껴진 것은 춘추에 대한 인식의 차이이다. 분명 춘추의 해석을 두고 여러 개의 책이 나왔으며 시대별로 필요에 따라서 선택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춘추의 저자를 두고, 표폄에 대한 인식을 두고 학자들이 대립되는 경우를 살펴보면서 시대를 관통하는 경서이면서 공자의 관점이 들어간 책이므로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 일 것 같다. 따라서 레포트의 주제를 춘추로 설정한 이유이고 춘추가 무엇인가? 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2. 춘추의 배경 및 전승2-1 춘추의 배경춘추시대 각국의 사기는 각기 고유한 명칭을 지니고 있었으나 당시에는 또한 『춘추』라고도 통칭되었다. 맹자), 묵자)의 언급을 통해서 이것은 사실 기록과정에서 반드시 년도를 표시하는데 은대 이후) 후세사람들이 봄가을만을 중시했던 까닭에 춘추 2자만을 연용해서 년도를 표기하는 것으로 하고 역사기록의 통칭으로 삼았다. 공자가 편수했던 사서의 명칭을 『춘추』라고 한 것은 노나라 사기 원래 이름을 답습한 것이며, 또한 당시 통용되고 있던 명칭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후 각국의 사기가 사라져감에 따라서 『춘추』라는 이름도 공자에게 전속되었다. 공자가 처해 있었던 춘추 말기에는 정전제가 와해되고 노예제가 붕괴되면서 사회는 토지사유제가 행해지는 봉건사회에 진입하고 있었다. 사회 대변동의 시대였다. 노예주 귀족의 최고 대표인 주(周)의 천자 권위가 막 하락하고 있었고, 각지의 제후들도 전차 쇠약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들은 나날이 오만해지고 신하가 조정의 권력을 장악하는가 하면 서민들의 여론은 분분한 가운데 봉건 지주 계급이 바로 흥기하고 있었다. 전통 질서의 파괴를 목격하고 있었던 공자는 현실세계를 비판하여 자신의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인 정명을 내놓았다. 이것은 명분을 바로 잡는 것으로 “君君臣臣父父子子”라 하여 각자의 본분을 지키는 것이다.2-2 춘추의 저자에 대한 고찰춘추의 저자를 두고 공자인가 아닌가의 설이 분분하다. 첫째로 오늘날 고증에 의하여 기본적으로 춘추는 노사(魯史)의 구문이며 대개 태사(太史)가 지은 것으로 본다고 한다. 그리하여 현존하는 최고의 관수편년사라고 보는 견해 즉 『春秋』가 공자가 지은 것이 아니라는 설)와 춘추를 공자가 썼다는 설과 공자가 직접 춘추를 쓰지 않았지만 그가 정리하였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공자는 역사를 위하여 역사를 쓴 것도 아니고, 연구한 결과도 아니고 옛 문헌과 자료를 이용하여 자기의 관점을 선양하고자 춘추를 지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첫 번째로 당시 시대배경이 그러한 이유를 밝혀준다. 즉 현 상태인 하극상이 난무하는 것을 비판하고 주의 천자의 권위를 옹호하고 바로 붕괴 중에 있는 노예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즉 난세를 정상으로 되 돌이켜 놓고자 함이다. 또한 통치자의 존엄함을 옹호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통치에 순종하도록 하고자 했고 상하 위계질서를 범하여 반란을 일으킴으로 해서 노예사회의 질서를 준수하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폄하 배척하였다. 그러한 것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의 심중에 있었던 결론을 사실 연구에서 도출해 낸 결과였고, 그래서 그는 항상 역사 사실을 거기에 맞추고자 했고), 심지어는 사실을 왜곡하는 방법(은휘))을 해서 공자의 사상적 관점을 드러내고자 했다.두 번째로 공자 후에 있었던 인물들의 언급이다. 공자보다 백여 년 뒤의 맹자는 세도인심(世道人心)이 거칠어져가는 것을 개탄하여 “선사(先師)께서 춘추를 지었다.” 즉 난신적자들은 부끄러워하고 두려워 할 것이다. 했으며 순자뿐이 아니라 유가가 아닌 한비자, 장자도 공자가 춘추를 지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사상적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어 인정받았던 것은 그만큼 춘추의 저작활동에 공자가 관여했음을 알 수 있다.세 번째로 공자가 지었지 않았다는 반론으로 공자의 재전제자의 편찬으로 생각되는 『논어』에서 『춘추』에 대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데, 논어가 편찬되었다고 해서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서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은 실제 좌전을 비롯한 세전(좌전, 공양전, 곡량전)은 그 체제가 가전적(家傳的)이고 비밀상전(秘密相傳)적인 점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즉 논어에 실리지 않아도 이상하게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3-1 춘추의 구성춘추는 노 은공 원년(B.C. 722 년)에서 노 애공 14년(B.C. 481) 동안 즉 242년간의 역사사실을 기록하였다. 노국 기원을 사용했으며 사건으로 날을 기록하고, 날로써 달을 연결하고 달로써 사시로 연결하고 사시로써 일년을 연결하는 형식으로 기록하였다. 내용도 노 위주이지만 주 왕실과 기타 제후국에 대해서도 기술하였다. 춘추 시기의 정치적 사건과 인물 의 활동이 주로 기재되어 있다. 춘추 시기의 정치적 사건과 인물의 활동이 주로 기재되어 있고, 주요내용은 제후국간의 방문이나 초빙 등의 교류관계와 회합, 동맹, 정벌, 축성 등에 관한 것이다. 또한 물, 가뭄, 눈, 서리, 지진, 일식 등의 자연현상에 대해서도 기록하였다. 그러나 경제 및 문화 부문에 관한 기록은 매우 드물다.3-2 춘추의 특색춘추의 특색 중 하나는 일식, 지진, 산사태, 수재, 가뭄, 충재, 화재 등에 대한 기록이 매우 많다는 점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옛사람들이 천문, 수해, 가뭄 등의 재이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들의 자연계와 투쟁을 하고 있었던 정황을 반영하고 있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천을 강조하였는데 천이 권선징악할 수 있는 인격신으로서 인간사를 주재하며, 특이한 자연현상은 이러한 하늘의 뜻의 표현으로서 미래의 사태변화에 대한 조짐을 인간들에게 알려준다고 인식하여 공자가 은대 이래 천명사상을 계승하고 있었으며 하늘이 외부로부터 인류사회의 변천을 결정짓는다고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두 번째로 권선징악의 목적을 위해 “한 글자의 칭찬은 화려한 곤룡포보다 영예롭고, 한 글자 깍아내림은 도끼보다 가혹하다.”고 표현했다. 이러한 특색은 통치계급이 역사기록 과정에 자기 의지를 나타내려는 강렬한 욕구에 의한 것이고, 또한 중국고대 관수사관의 독특한 체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즉 은 이래 번성해나간 제후국의 군왕들이 역사를 이용하여 교훈으로 삼으려 했다. 이러한 점들은 춘추 시기에 이르러 통치계급의 주요성원을 훈계하려는 방식으로 의식이 확대되었고 그들은 비교적 먼 과거에 대해서 뿐 아니라 현재 상황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그리하여 모범적인 이상형을 수립하여 당대사에서 통치자의 이익을 위배하는 사람과 사건을 견책하려는 의도로 역사를 성문화하였고, 필기도구가 발달하지 않아 함축시켜 간단명료한 자구를 통해 표현했다. 표폄을 통하여 감계주의의 강화와 필기도구의 미 발달로 인한 필삭대의미언형식을 취했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고국항은 전혀 무관한 자연 현상과 인간사의 변화를 연계시킴으로써 천명을 가지고 역사를 해석함으로서 역사유심주의이고, 이것은 훗날의 역사서가 천명이니 천인감응의 미신신학을 대단하게 이야기하는 선례를 남김으로 해서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남겼다는 오점과 표폄과 은휘의 방법은 주나라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주관적인 생각이고, 문자를 죽간으로 써서 긴 문장일 경우에는 짧게 줄인 거에 관해 매우 불분명하게 되었다고 표펌의 의의를 주의 천자의 존엄성을 지탱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그렇지만 춘추의 표폄과 은휘가 의의에 치중하다 보니 적지 않은 부분이 사실에 위배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춘추전국시대의 사가들을 역사유심주의라고 비판하는 것과 표폄과 은휘에 대한 것은 상당한 무리가 가해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이유는 “역사의 기술은 첫째로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역사학의 근본원칙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고대의 시대상황이라고 보는 것이라 할 수 있고, 당시대의 상황을 비판하고 고치려는 지식인의 노력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춘추가 역사서만이 아니라 철학서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지 못한 잘못이라고 본다. 또한 “필법”이란 기술자가 쓰는 방식의 문제가 아니고 독자가 읽는 방법의 문제인 것이고 읽는 사람의 주관성을 기술한 사람의 객관성으로 바꾸어 보려고 할 때 바로 “『춘추』의 뜻”이 성립하는 것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