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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x에너지 서류 합격 자기소개서
    성장과정저는 대학시절 전공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것을 배우려고 하였습니다.법대 신문사 기자로서 취재 활동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분야를 접했으며 편집장을 역임하면서 조직의 대표로서 리더십과 책임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또한, 학년대표로 활동하면서 각종 모임에 참여하고 교내 행사를 준비하는 일을 하면서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쌓았습니다.이러한 경험을 통해 사람들의 업무를 돕고 그들의 역량을 이끌어 내는 일에 큰 보람과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인사전문가로서 성공한 기업인을 목표로 도전해 나가고 있습니다.본인성격제 성격의 장점은 긍정적이라는 것 입니다.매사를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어렵거나 낯선 환경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힘을 냅니다. 사람을 대할 때도 언제나 긍정적인 자세로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편안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좋은 대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제 단점은 너무 신중하다는 것 입니다.어떤 일을 진행할 때 지나치게 신중을 기하느라 기회를 놓친 적이 있습니다. 과감한 결정이 필요한 일에는 결단력을 가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지원동기지구온난화와 자원부족, 일본 핵누출 사고로 안전한 에너지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지금, STX에너지가 신성장 동력으로 주력하는 신재생에너지사업은 미래를 확실히 보장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STX 에너지는 집단에너지 공급자로서 국가에너지 정책 및 지역발전에 기여하며 발전사업, 자원개발 사업, 에너지 유통 사업 등 사업 다각화를 통해 World Best 종합에너지기업으로서 도약할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특히, STX에너지는 인재양성 및 육성에 있어 최고의 인사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기업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이렇게 개인과 회사가 함께 발전할 수 있다는 밝은 미래를 보여주기에 저는 믿음을 가지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지원한 직무에 대한 강점 약점저는 인사총무 직무에 대해 지식과 경험, 친화력, 변화주도역량, 의사소통력에서 강점을 가졌습니다.첫째, 인사행정병과 학술정보관 사무보조로서 3년 동안 문서와 급여 관리, 복리후생, 비품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둘째, 법정계열 전공자로서 노무 관련 사무처리, 대관청업무 및 법률적인 문제 해결 있어서 기본적인 역량을 갖추고 있습니다.셋째, 학창시절 대학신문 기자와 학년 대표로 활동하면서 커뮤니케이션 능력, 조직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법, 책임감을 익혔습니다.넷째, 긍정적인 성격으로 변화에 쉽게 적응하고 주위 사람들과 늘 원만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합니다.단점은 기업 각 부서의 실무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합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관련 프로그램을 이수하였습니다.참신한 아이디어 적용저는 3학년 학생대표로 법대체육대회 준비에 참여하였습니다. 법대는 학우들의 참여가 타단대보다 현저하게 낮았는데 학생회 측에서는 홍보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대회 홍보에만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학우들의 입장에서 문제를 파악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학우들의 의견을 집적 수렴했습니다. 그 결과 기존 체육대회는 축구와 농구 같은 단체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동아리 소속이 아닌 학우들의 경우 참여가 어렵고 흥미를 끌지 못 했습니다.그래서 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팔씨름, 송판격파, 장기, 알까기 등의 개인 종목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인기가 있었던 스타크래프트와 위닝일레븐과 같은 E스포츠를 기획하여 학우들의 흥미를 끌었습니다. 새로운 체육대회는 학우들에게 재미있고 신선하다는 반응을 받았고 많은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이 일을 통하여 아무리 어려운 목표더라도 열린 자세와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어려운 일 성공한 것.저는 법대신문사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제가 편집장을 맡던 시기에는 편집부 인원이 저를 포함 셋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부서담당자마저 임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주변에서는 신문 발행이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와 동기들은 포기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저와 동기들은 직책에 맡겨진 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함께 하였습니다. 편집장인 저도 직접 취재를 나가고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신문제작 과정도 최대한 간소화하고 부족한 기사는 학우들의 참여를 활용하였습니다. 도중에 휴학을 하게 되었지만 동고동락하던 동기들과의 신의를 지키며 신문발행을 끝까지 함께 하였습니다.밤을 새우기 일쑤이고 예상하지 못한 난관들이 많았지만 동기들과 함께 하였기에 결국 무사히 맡은 편집장으로서 맡은 책임의 신문을 모두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문보다도 뜻깊은 성취는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더라도 동료들과의 신뢰와 협력을 통해 적극적으로 도전한다면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다른 사람과 차별화 된 능력 갖추기 위해 노력한 것저는 성공적인 인사담당자가 되기 위해 경영전략, 마케팅, 프로젝트 추진 등 기업 전반의 업무에 대해 명확하기 인식하기 위해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하였습니다.핵심 직무역량인 전략기획, 마케팅, 인사조직, 기술경영에 대해 배우고 팀프로젝트를 통해 실습을 하였습니다. 저희 팀의 프로젝트는 홈플러스가 이마트를 제치고 유통업체 1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4주 동안 오후 내내 서울지역 이마트와 홈플러스 점포를 돌며 시장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유통시장의 흐름에 대한 정보도 모았습니다. 이러한 조사를 토대를 점포 운영, 광고홍보, 브랜드관리, 노사관리 등의 측면에서 홈플러스와 이마트의 차이점을 파악하고 개선점을 찾아내어 경영전략의 구체적인 방안을 수립했습니다.
    취업| 2011.05.20| 3페이지| 3,000원| 조회(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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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인 정보통신격차
    장애인 정보통신격차해결을 위한 제도의 개선-보급격차 해소를 중점으로과목명 : 사회보장법교 수 : 강성태 교수님발표자 : A조01학번 박민기05학번 김단비제출일 : 2007.12. 7제 1장 서론제 1절 정보화의 발전과 생활화제 2절 정보화시대 장애인의 정보격차제 3절 장애인의 정보화 능력 제고의 필요성제 4절 정보기기통신기기 보급에 대한 정책 개선의 필요성제 2장 장애인에 위한 정보통신기기 보급 현황과 문제점제 1절 컴퓨터 보급 실태와 문제점1. 장애인 컴퓨터 보급 실태2. 문제점제 2절 정보통신 보조기기 보급 실태와 문제점1. 정보통신 보조기기란?2. 문제점제 3절 정보통신 보조기술 개발 현황과 정부지원 실태 및 문제점1. 개발 현황과 정부지원 실태2. 문제점제 3장 정책의 개선방향제 1절 컴퓨터 구매 시 지원 혜택1. 개선 방법2. 정책의 효과3. 정책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제 2절 정보통신보조기기 보급정책의 개선1. 개선 방법2. 정책의 효과3. 정책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제 3절 정보통신 보조기술 개발에 관한 개선1. 개선 방법2. 정책의 효과 - 공급증대, 가격하락, 맞춤형 기술개발, 수입대체, 수출증대3. 정책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제 4장 결론제 1장 머리말제 1절 정보화의 발전과 생활화정보통신기술은 의식되지는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될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 기술의 발전과 정보화의 진전, 네트워크의 확장에 따라, 우리는 우리가 의식하고 있든 못하고 있든 일상생활의 다양한 측면에서 정보기술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정보기술은 사람의 커뮤니케이션 및 정보처리와 생산 능력을 증진시켜줌으로써 인간의 확장(마셜 맥루한,2002)을 가져다주고 있다.언제나 어디서나 자신에게 필요한 어떤 정보라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화 시대에 정보화기기 특히, 한국의 컴퓨터 보급률은 88%로) 세계 최상위권에 속해 있다. 컴퓨터는 단순한 사무작업이나 게임의 도구가 아니라, 멀티미디어 기능 및 인터넷을 통한 다양한 기능이 융합됨에 따라서 일상생활에서도 전제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해결 되어야 하는 것은 보급 격차이고, 따라서 정보기기 보급에 대한 정책이 정보교육 정책보다 우선 되어야 하는 것이다.장애인의 정보기기 보급 격차를 줄이기 위해 장애인을 위한 정보통신기기 보급 에 관하여 기존 정책의 문제점을 고찰하여 새로운 정책을 제시해 보고 기대 효과 등을 알아본다.제 2장 장애인에 위한 정보통신기기 보급 현황과 문제점제 1절 컴퓨터 보급 실태와 문제점1. 장애인 컴퓨터 보급 실태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필수적인 방법은 정보화 매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일이고 가장 높은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이 컴퓨터, 인터넷 등 정보화 매체를 보유하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중고 PC보급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사랑의 PC보내기 운동본부와 같은 민간단체에서도 중고 PC보급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2006년 기준으로 장애인 거주 가구의 컴퓨터 보유율은 68.7%로 전년 대비 2.5%P 증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가구 컴퓨터 보유율인 79.6%보다 10.9%나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전년과 비료해 볼 때 장애인 가구와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컴퓨터 보급률 격차는 점차 감소된 것으로 나타나 조금씩 그 차이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아직도 그 격차는 작다고 할 수 없다.【그림-1】가구 컴퓨터 보유율【표-1】가구 컴퓨터 보유율구분가구 컴퓨터 보유율 (%)05년 대비 06년 증감폭 (%p)‘02년도‘03년도‘04년도‘05년도‘06년도전체 국민78.577.977.878.979.60.7↑장애인56.457.962.366.268.72.5↑격차(%p)22.120.015.512.710.91.8↓※ 자료 : 전체 국민은 NIDA의 하반기 정보화 실태조사(‘02~’06년) 기준한국정보문화 진흥원, 2006 장애인 정보격차 실태조사또한 장애인 거주 가구 중, 월평균 가구소득 100만원 미만의 저소득 가구 및 군 단위 지역가구의 컴퓨터 보급률은 매우 낮은 수준으로 군단위 지역 가구의 컴퓨터 보유율은 59.8%, 월가한다. 1~3등급의 중증 장애인은 경증 장애인이나 일반인에 비하여 보조기기가 없을 경우 컴퓨터 등 정보기기의 활용에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정보통신보조기구가 더 필요하다. 비장애인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장애인들이 정보화 사회를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보통신 보조기기들은 다양하다.시각장애인들은 정보의 습득에 있어서 음성이나 점자, 화면확대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다. 이를 도와주는 보조기기로는 글자나 그림을 음성으로 낭독해주는 스크린 리더, 시각장애인용 디지털 독서기기로 국제표준인 데이시(DAISY: 아날로그 방식의 음성도서-오디오, 텍스트, 이미지, 동영상, 점자파일-를 독서장애인을 위한 디지털 파일로 변환한 국제표준)를 준수해 개발된 음성출력기기 등이 있다. 지체·뇌병변 장애인들은 신체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해 정보의 접근성에 제한을 받고 있는데 이를 도우는 특수키보드나 특수마우스, 입력보조기, 입력보조 소프트웨어, 입력패키지, 의사소통보조기 등이 있다. 한손만 쓸 수 있는 장애인 키보드를 빠르게 칠 수 있도록 설계된 한손사용자키보드나, 손떨림이나 경직성이 있는 뇌성마비 장애인에게 적합하도록 확대된 킹키보드 등도 있다. 또 입이나 턱, 볼 등 움직일 수 있는 부위를 이용해 조절할 수 있는 조이스틱 마우스나 머리에 착용해 움직임이나 소리압 센서를 통해 마우스 기능을 하는 헤드마우스 등은 비장애인이 사용하는 마우스의 역할을 한다. 이 밖에 미디어매체에 송신기를 설치해 미디어의 원음을 골전도로 들을 수 있으며, 마이크 기능을 사용해 주변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골전도 무선응향 청취기는 청각이나 언어 장애인를 도우는 보조기기들이다.[사진-1]정보통신보조기구사진출처-위드뉴스(www.withnews.com)'제3회 정보통신보조기기 전시회'2. 문제점(1) 제품의 높은 가격대장애인을 위한 정보통신보조기기는 시장기능에 의한 공급과 수급이 일어나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요인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들 수 있다. 보건복지부의 2005년 장애인 받는다 하더라도 보조기기가 고가품이라 기기구입의 어려움이 많다. 현재 시각장애인에게 필수적인 점자정보단말기의 경우 본인 부담금이 62만원이나 된다. 지체장애인이 키보드와 마우스를 대신해서 사용하는 헤드마스터의 경우도 본인부담금이 28만원을 웃돌고 있다. 게다가 현재 보급기기에 대한 신청은 해마다 1인 1제품에 밖에 신청할 수 없게 돼 있어 복합적 장애를 가진 중증장애인의 경우 제품구입에 제한이 많아 실질적인 보조기기 보급지원을 받기 어렵다.정부통신부 외에 국가보훈처와 지방자치단체들도 장애인보조기구 보급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나 주로 시각 장애인 위주이고 그 보급량 또한 극히 미비하다.)민간에서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이 시각장애인용 컴퓨터 보급사업을 전개하고 있는데, 구매 상담과 구매를 도와줄 뿐 수리·구입비는 본인부담이다. 점자정보단말기 임대 사업도 하고 있지만 대상자는 4년제 대학 재학생이나 대학원생, 방송통신대, 전문대학, 사이버대학 재학생만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고 그 수량은 40여대에 불과하다. 그리고 국내의 일부 기업을 중심으로 개별적인 사업들이 전개되기도 하지만 단발성 이벤트에 끝나고 있다.) 이런 민간이나 기업차원에서의 참여는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이를 국가 정책과 연계해서 효율화하는 구체적인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제 3절 정보통신 보조기술 개발 현황과 정부지원 실태 및 문제점1. 개발 현황과 정부지원 실태장애인은 비장애인이 활용하는 정보통신 제품에 보편적 접근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신체적 장애를 보완하여 정보활용을 용이하게 해주는 장애인들을 위한 정보통신 제품은 장애인들에게 필수적이다.현재 장애인의 정보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정보통신 보조기기 및 특수소프트웨어의 개발은 미흡한 실정이다. 몇몇 국내 중소기업과 장애인 관련단체가 개발 생산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은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또, 개발되어 있는 몇몇 정보통신기기 및 소프트웨어 제품들도 대부분 매우 비싸기 때문에 이미 상품화된 것들조차 판매에 실패하게 되고, 정한다.(1)신청할 수 있는 자의 범위정보화기기 구입비의 지원을 신청할 수 있는 자는 장애인복지법 제32조에 1항에 의하여 장애인 등록이 된 장애인 중 신청년도를 포함 최근 3년 동안 국가 또는 지방 단체로부터 동일한 정보통신기기를 무상 또는 유상으로 보급을 받거나 구입비용을 지원 받을 자를 제외한 자를 대상으로 한다.동일한 정보통신기기를 보급 받은 자를 제외하는 이유는 복지 혜택의 중복 적용을 막고자 함에 있다. 하지만 최근 3년 기한을 두는 것은 정보화기기 발전 속도를 감안하여 정보화기기가 구입 후 3년이 지나면 교체가 필요해 질 수 있음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므로 3년의 기간은 상황에 따라 조절이 가능하다.(2)구입비용·자금대여의 기준신청할 수 있는 장애인들을 장애의 정도나 경제적 여건에 따라 등급을 정해 구입비용 자금 대여를 차등 지원한다.장애의 정도가 아주 중증이거나 경제수준이 제일 어려운 등급의 경우 현재 장애인이 장애보조기기 구입 시 지급하는 지원금 기준에 준하여 100만원 미만은 20% 100만 원 이상은 그 차액의 10%를 자기 부담금으로 한다. 그리고 그 다음 등급으로 갈수록 자기 부담금의 비율을 일정 정도 높여 가도록 한다.장애의 정도 경미하거나 경제수준이 좋은 등급의 경우 구입비용을 지급하는 대신 자금을 대여하는 방식으로 구입을 지원한다. 상환 방법은 일시불이나 할부 중 장애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이자나 기간은 장애인에게 무리가 없게 적정한 선으로 정하면 될 것이다.(3) 수리비 지원정보화기기는 사용하면서 고장으로 인한 수리비 등 추가비용이 발생하는데 경제적 능력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힘든 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경제수준이 어려운 장애인에 한하여 컴퓨터 구입 후 3년 동안 컴퓨터 수리 시 일정부분을 국가에서 부담하고 그 부담 비율 또한, 등급별로 차등을 둘 수 있다.2. 정책의 효과장애인의 컴퓨터 보급률의 양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가 있다. 중고 컴퓨터나 저사양 컴퓨터가 아닌 장애인이 자신에게 적합한 사양을 안
    사회과학| 2008.04.25| 24페이지| 4,000원| 조회(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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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방기한국근현대사
    REPORT한국현대사 1,2,3장 요약과 목 : 한국근현대사학 과 : 법 학 과학 번 : 2001024223이 름 : 박 민 기1장 해방과 분단(통일민족국가 건선을 위하여)해방의 배경그토록 기다려 온 해방을 맞았으나 해방의 원인을 보는 것에서 크게 두 가지 시선이 있다.하나는 광복의 원인을 주체적(자력)으로 우리가 나라를 되찾은 것은 일제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한 대가였다고 보는 시선이다. 또, 하나는 광복의 원인을 외부적(타력)으로 보며 직접적으로 우리에서 광복을 가져다 준 것은 연합군의 승리라고 보는 것이다. 주체적인 시선은 주로 북한에서 주장되고 있다. 나름 항일투쟁적 의미는 있으나 사실상 한국의 해방에 직접적 원인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그러므로 해방의 배경은 외부적으로 찾아본다.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의 동북부지방을 식민지로 만들고, 다시 중국과의 전면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침략전쟁을 확대시켜 나갔다. 그리고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하고 미국과 영국에 선전포고하여 태평양 전쟁을 도발했다. 전쟁 초기에 일본은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얀마에까지 전선을 확대해가면서 승세를 떨쳤으나 곧 연합군의 반격을 받아 차차 패전의 길로 접어들었다.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탄 투하와 소련의 참전으로 무조건 항복의 길을 피할 수 없게 된 일본이 마침내 포츠담선언을 수락함으로써 약 4년간 계속된 태평양전쟁은 끝나고 식민지 조선은 해방을 맞게 되었다. 이후 미국군이 서울에 진주하고(1945.9.6) 그 진주군 사령관 하지와 조선총독 아베 사이에 항복조인이 체결되어(1945.9.9) 35년간에 걸친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는 끝났다.미군정의 수립진주한 미국 당국은 당시 중경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건국준비 위원회를 중심으로 당시 중경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건국준비위원회를 중심으로 선포된 조선인민공화국을 모두 승인하지 않았다. 일본의 총독통치 대신 미국의 군정통치가 실시되었다.미군정의 정책적 특징은 직접적·현상유지적 이다. 좌익적 때문에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좌우익으로 정치세력들의 대립을 부추겨 좌익의 힘을 약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좌익세력에는 ①건국 준비위원회, ②인민공화국, ③조선공산당, ④(조선)인민당, ⑤(남조선)신민당이 계보를 이었고 우익세력에는 ①한민당, ②이승만+독립촉성중앙위원회, ③김구(상해임시위원회)+한독당, ④국민당이 있었다.건국준비위원회건준은 해방을 맞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해방이 되었을 때 건준이 조직되어 국내 곳곳에서 자주적인 건국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은 미국이 주장한 대로 신탁통치를 받아 마땅하다는 논리에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조선총독부측으로부터 행정권 이양 교섭을 받은 여운형은 정치범과 경제범의 석방, 3개월간의 식량 확보, 조선인의 정치활동 및 청년·학생·노동자·농민의 조직활동에 대한 불간섭 등을 조건으로 내세워 확약을 받고, 곧 건국동맹을 모체로 한 건국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다.(1945.8.15) 건국준비위원회는 그 발족 당초에 송진우 계열이 중경 임시정부 추대를 내세우며 협조를 하지 않아서 8·15당시 국내 정치세력의 총합체는 되지 못했다. 건준은 미국 상륙을 앞둔 9월 6일 조선 공산당의 주도로 건준을 확대 개편하여 조선인민공화국을 조직했으나 이는 성급한 것이였다. 전국의 인민 대표가 한 자리에 모이지 않았고, 우익이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결정적 결함이 있었다.한민당9월 4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연합국 환영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킨 조병옥과 김성수 등은 군소정당으로 흩어져 있던 우익을 통합하여 9월 16일 한민당을 결성했다. 결성 초기에는 김병로나 원세훈 등과 같은 독립운동 관계자들도 있었으나, 한민당의 중심세력은 송진우와 김성수 등 ‘동아일보’계로, 부르주아·지주 세력을 대표하였다. 한민당 간부 중에는 친일파가 적지 않았고, 이 때문에 친일파 처단에 반대하였다.한민당은 처음에는 인민위원회 등 좌익에 밀렸으나 미군정을 등에 업고 세력을 확대했다. 미군정은 10월에 군정고문을 임명할 때도 거의 대부분 한민당원으로 충전하여 비난을 28일 소련안에 미국안을 정충하여, ①독립국가로 재건설하기 위해 임시조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할 것, ②그러기 위해 미소공동위원회(약칭 미소공위)를 열것, ③최고 5년 기한으로 미·영·소·중 4국의 신탁통치를 실시하되, 그 방안은 미소공위가 조선 임시정부와 협의할 것, ④ 남북의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2주 내로 미소공위를 열 것 등을 주요 내영으로 하는 결정 사항을 발표했다.미국의 의도는 ③에서 4개국의 신탁통치를 할 경우 소련과 나머지 3개국의 대립구도로 몰고감으로써 한국에서의 미국의 우위를 지키려고 한 것이다. 소련의 의도는 ①에서 임시조선민주정부가 세워진다면 좌익의 다수를 차지하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소련이 한국에서의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였다.- 국내 정치세력의 이해와 대응3상회의 결정이 국내에 전해지자 처음엔 좌우익 정치세력이 모두 반대했으나 조선공산당을 중심으로 하는 좌익진영은 곧 찬탁 노선으로 바뀌었다. 한국민주당 등을 중심으로 하는 우익진영은 반탁운동을 통해 진영의 결속을 강화하려 했다. 신탁통치 찬반 문제로 좌우의 대립이 급격히 심화되어갔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미국과 소련은 3상회의 결정에 따른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를 서울에서 열었다. 하지만 좌우의 대립과 미국 소련의 의견차이로 인해 제 1차 공동위원회가 결렬되었으며 이후 이승만을 중심으로 하는 우익세력 일부가 남한 단독정부 수립 운동을 펴나갔다.- 이후의 전개그 후 1947년 5월 21일 제 2차 공동위원회가 개최되어 서울과 평양을 왕래하면서 어느 정도 진전을 보이는 듯했으나 소련측이 공동위원회 참가를 위해 등록한 남한측 425개 단체를 118개로 줄일 것을 요구하여 다시 난관에 부딪혔다. 미국은 공동위원회를 진전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미·영·소·중 4개국 회의를 요구하면서 보통선거에 의한 남북 각각의 입법기관 설치를 제의했다. 그리고 그 대표들로 구성되는 통일 임시정부가 미소양군 철수 문제와 완전한 독립국가 수립 문제를 4개국과 협의하게 할 것을 제의했다. 하지만 소련은 남북 별개 미국의 책략, 제 2차 대전 후 미·소 양국을 중심으로 한 동서냉전의 심화 등에 있다. 그리고 민족사회 내적 원인은 패전국의 식민지라는 국제정치상의 냉엄한 현실을 돌아보지 않고 전승국으로 자처하여 즉각적 독립 이외의 어떤 유예기간도 용납하지 않으려 했던 일부 '국민감정', 그것을 이용하여 분단국가의 지배권만이라도 확보하려 한 일부 정치세력의 책동 등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분단에 대한 대응(남북협상)1948년의 4월의 남북연석회의는 분단국가 수립노선에 섰던 이승만세력과 한민당세력을 제외한 모든 민족해방운동세력 및 통일민족국가 지향 정치세력이 참가한 주체적·평화적 통일민족국가 수립운동이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실패하고 남북에 분단국가들이 성립되어 민족상잔으로 연결되었다.-분단의 결과(두 정부수립)유엔은 조선에 파견할 유엔임시위원단 설치와 신탁통치를 거치지 않는 독립과 유엔 감시하의 남북 총선거를 통한 통일방안을 가결했다.이에 따라 8개국으로 구성된 유엔위원단이 입국했다. 그러나 소련측이 입북을 거부하였고 이에 따라 유엔은 소총회에서 "가능한 지역만에서의 총선거"를 가결했다.이에 대해 이승만과 한민당은 유엔의 결정에 호응하였고 후보를 내면서 정치세력으로서의 세력화와 조직화를 하였다. 중간파와 좌익세력은 이와 같은 유엔의 결정에 반대하면 단선단정 반대운동을 전개했다.그러나 38도선 이남만의 선거가 실시되었다.(1948.5.10) 선거후에 구성된 국회에서 헌법이 제정되고(1948.7.17) 정부수립이 선포되어 (1948.8.15)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분단국가 대한민국이 성립되었다.한편,38도선 이북에서는 1946년 초 이미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하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성립되어 토지개혁을 실시했다.(1946.3.5) 북조선노동당을 따로 결성하고(1946.9.28) 정식으로 북조선 인민위원회를 성립시켰다.(1947.2.22) 조선인민군을 창설하고 헌법을 채택한(1948.4.29) 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실시하여(1948.8.25) 역시 분단국가인 조선민적 대립인 내부적 요인으로 찾을 수 있다.우선 내부적 원인으로서 남한을 살펴보자.조선총독부가 식민지 통치방법의 하나로 보호했던 국내 지주세력과 결탁하여 성립된 이승만정권은, 좌익세력과의 대결을 이유로 친일세력을 비호함으로써 좌익세력의 공격대상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 민족 해방운동전선에 참가했던 우익세력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등 처음 성립된 정권으로서의 정통성에 취약성이 있었다. 또 성립초기의 이승만 정권은 정치·경제적으로도 크게 불안했다. 물가도 2배나 올랐으며 5·30 선거(1950)결과 이승만 지지세력은 전체의석 210석 중 30여석에 지나지 않았다. 또, 반공 정책에 따라 국가보안법을 제정해서 국회프락치 사건(1950.3), 보도연맹 사건, 반민특위해체(1949.6.6), 김구암살(1949.6.26) 등 실정을 저질렀으며 이에 대한 무장저항도 계속되었다. 이승만 정권 성립 후 2개월만에 '여순 군반란' (1948.10.20) 이 일어났고, 경상북도 대구에서도 1차에서 (1948.11.2) 3차에 (1949.1.30)걸친 제 6연대 군인의 반란이 있었다.외부적으로는 미,일,남한의 반공삼각과 소련, 중공, 북한의공산삼각의 대립이 심화 되었다. 이시기의 미국의 한반도 정책도, 미국 국무성의 상반된 태도로 인한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북쪽의 전쟁도발을 자극한 것이라 평해지기도 했으며 따라서 625전쟁 발발의 배경이 될 만했다.남쪽의 이승만 정권에 불안요인이 많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북쪽 김일성정권은 비교적 빨리 안정되어갔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정식 인민위원회로 발족시켜 통치체제를 더욱 확고히한 김일성정권은 경제력을 급격히 향상시켜 갔으며 소련과 경제·문화협정을 맺고(1949.3.17) 다시 군사비밀협정을 체결하는등 군사력(국공내전의 조선의용군의 귀국) 또한 급격히 강화했다. 반면 이승만 정권은 군사력의 열세가 현격했고 정치·경제적 불안도 가중되어가고 있었다.전쟁의 발발38선에서의 분쟁은 1948년부터 있었 왔었다. 이러한 것이 1950년 6월 25일 6.2 했다.
    인문/어학| 2008.04.25| 7페이지| 1,500원| 조회(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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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원론] 자본의 독점성 여부
    Ⅰ. 들어가며자본의 독점성 여부를 밝혀냄에 있어서 우리가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은 역사의 전개와 그에 대응하는 자본의 성격변화이다. 자본은 시대에 따라 그 성격을 달리했다. 마치 줄타기처럼 자본은 경쟁과 독점사이에서 사회의 변화에 투영되어 그 성격을 변모시켜왔다. 그러므로 자본의 성격을 하나로 규정짓는다거나 동시대의 현상을 두고 자본의 성격을 규정짓는다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라 생각한다. 이와 같은 전제로 나는 지난 역사에서 자본의 성격을 고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현대 사회의 자본의 독점성과 경쟁적 속성 여부 대해서 밝혀보기로 한다.Ⅱ. 초기 자본주의-자유방임적 자본주의자본주의의 맹아적 성격을 지녔던 시대를 제외한다면 본격적인 자본주의 사회로 접어든 시기를 18세기 이후로 볼 수 있다. 18세기와 2차대전 이전까지의 자본주의 시기를 우리는 자유방임적 경제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의 자본주의는 국가의 보호아래 자본이 끊임없이 팽창하며 기업의 경제활동의 자유는 신앙시되었던 시기이다. 하지만 이 경쟁의 논리는 제국주의 국가내부에서 국한되었다. 실제로 제국주의 자본과 식민지 자본은 공정한 경쟁을 할 수가 없었다. 제국주의 자본은 국가의 보호아래 식민지 국가내에서 철저히 독점적인 이득을 누릴 수 있었다. 자본의 성격상 팽창이 멈추면 곧 후퇴를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제국주의 국가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의 개척을 위해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렸다.Ⅲ. 자본주의의 실패와 반성자본주의는 1차대전 이후에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공급과 수요의 균형을 철저히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1차대전 이후 이 시스템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수요는 한계를 보이고 공급은 생산력의 발전과 함께 끊임없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 모순의 축적은 1929년 미국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고 만다. 며칠만에 주가가 절반으로 폭락하고 하루만에 10여명의 증권투자가들이 자본주의의 상징 월스트리트 고층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사건을 신호탄으로 전세계 경제는 대혼란에 빠져든다. 미국서부에서는 오렌지가 팔릴 곳이 없어서 썩어가고 있지만 동부의 도시에서 수 천만명의 빈민들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다. 자본주의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시대였다. 이와 같은 사태에 놀란 세계의 경제학자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이 대안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었다. 첫 번째가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의 '케인즈 경제학'이었다. 그 이전의 경제학이 공급의 경제학이었다면 케인즈의 경제학은 수요의 경제학이었다. 공급을 얼만큼 늘릴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앞서 누가 얼만큼 생산할 것인가에 대해서 먼저 계획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공급과 수요의 균형을 맞추어줄 중간 조절자가 필요했다. 그 중간조절자로 지목된 대상이 국가였다. 이전까지 철저히 경쟁적이고 방임주의적이었던 자본은 국가의 일정한 통제를 받기 시작했다.또다른 대안으로 주로 독일, 일본, 이탈리아 같은 2차대전 추축국을 위주로한 철저한 국가독점자본주의였다. 여기서는 자본의 경쟁적 논리는 일정부분 무시되고, 국가의 통제하에 자본이 종속되게 된다. 이와같은 자본은 필연적으로 팽창적인 성격을 지닐 수 밖에 없었으며 이는 곧 2차대전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국가독점자본주의를 이끌었던 추축국들의 패망으로 국·독·자 경제체계는 강제적으로 부정되게 된다.Ⅳ. 자본의 도약2차대전이후 자본은 새로운 의미의 경쟁체제로 돌입하게 된다. 2차대전 이후부터 2번째 세계공황으로 기억되는 74년까지 세계는 초호황의 시대를 겪게 된다. 황금기 동안의 놀라운 경제적 성과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본주의는 하나의 질적인 전환을 겪었다고 결론 짓게 했다. 즉 지난날의 불황과 계급 적대의 나빴던 시대는 영원히 지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가장 중요한 표현은 많은 나라에서 광범위한 정치적 합의가 발전했다는 것이었다. 이 정치적 합의의 중심적인 특징은 이른바 혼합 경제의 수용이었다. 자본의 경쟁은 통제되었고, 이는 일정기간 자본에 '이성'이라는 것을 불어넣어 주었다. 하지만 지난 1929년에 그랬던 것처럼 자본의 과잉축적은 또 한번의 공황을 불러왔고 또 한번의 각성을 일으키게 된다. 이 시기 자본주의의 또 하나의 특징은 사회주의 국가경제와 자본주의 국가경제의 대립이었다. 실제로 자본주의 국가경제와 자본주의 국가경제 사이에 교류는 매우 미약했다.Ⅴ.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해체-신자유주의의 등장규제되었던 자본이 한계를 드러내자 이내 새로운 대안이 제시된다. 그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라 불리는 경제체제이다.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란 1970년대 이래의 세계공황을 배경으로 하여 케인즈주의의 이론과 정책을 비판하는 보수주의/자유주의의 새로운 경향이라는 이해가 지배적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는 여전히 세계적 석학들과 현 노동계, 그리고 세계의 NGO들에 의해서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는 또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현재진행형이라는 반증이기도 하기에 매우 중요한 현상이다.신자유주의자들은 기업이 어떤 수단으로 이윤을 얻든 정부는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최저임금제, 공해규제법, 마약금지법 등의 철폐를 요구한다. 또한 노동조합은 노동시장에서 노동의 공급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임금수준이 실업을 해소할 수 있는 균형임금수준으로 저하하지 않으므로, 노동조합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야흐로 무한경쟁의 시대로의 복귀를 주장한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기업의 이윤을 줄이는 조세의 삭감을 요구하고,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상징인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요구한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에 있어서 국가의 개념은 사라진다. 이것은 '세계화'라는 전지구적 현상이 뒷받침하는 것이다.Ⅵ. 97년 한국경제공황으로 비추어본 오늘날의 자본주의의 성격1997년 말 우리는 하루하루 놀라운 뉴스를 접할 수 밖에 없었다. 원/달러 환율이 하루에도 몇백원씩 올라가는 기이한 현상을 보게된 것이다. 급기야 12월 3일에는 임창렬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이 나와서 IMF 구제금융 지원요청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게 된다. 앞만보고 달려왔던 대한민국 경제가 하루아침에 돈이 없어서 구걸을 해야 하는 지경까지 된 것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우리는 IMF구제금융 사태라고 통칭해서 부르지만, 실제로 그 당시의 경제상황은 공황 그 자체였다. 특이한게 있다면 그 당시 한국의 경제공황은 일반적인 경제공황의 법칙인 '실물경제공황->금융공황'의 순서를 따르지 않고 역으로 '금융공황->실물경제공황'의 순서를 따랐다는 것이다. 실제로 임창렬씨가 구제금융을 요청했을때만해도 우리의 실생활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단지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폭등하는 사태를 보며 앞으로 무슨일이 벌어질거라는 예감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98년 이후 현재까지 한국 경제는 그 당시에 벌어졌던 금융공황의 여파로 실물경제가 상당한 위축을 당하는 모습을 보게되었다. 성장률은 떨어지고, 끊임없는 부실기업 퇴출과 정리해고의 칼날을 아무런 대안도 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와 같은 일들은 왜 벌어진 걸까? 우리나라 국민들처럼 열심히 일하는 국민이 왜 이런 어려움을 겪었어야 했는가? 이 문제를 해결할 단서로 나는 '세계화'라는 전 세계적 경향-아니 오히려 필연을 발견하게 되었다.케인즈주의가 실패했음이 입증되었던 70년대 중반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가 서서히 세계경제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게된다. 그리고 80년대 초반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는 대대적인 세계경제체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이후 무역장벽은 서서히 그리고 끊임없이 붕괴되었다. 낮아진 국가의 문턱을 자본은 감지하게 된다. 지난 수십년간 묶여 있던 자본은 이제 새로이 기지개를 켜고 전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자본은 지난 시기처럼 힘을 바탕으로 한 밀어부치기라는 구태의연한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또한 자본은 국가에 종속당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제 더 이상 자본은 독점적인 국가에 묶이지 않아도 되었다. 더 이상 공장이 세금 비싼 자국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외화유치라는 명목으로 전세계의 정치지도자들이 더 낮은 세금과 상식을 뛰어넘는 특혜를 주면서 자본을 유혹했다. 이와 함께 금융도 새롭게 변모하기 시작했다. 내가 레포트를 쓰고 있는 오늘도 실물경제거래의 10배가 넘는 투기성 자본들이 국경을 뛰어넘고 있다.
    경영/경제| 2002.06.05| 5페이지| 1,000원| 조회(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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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철북을 보고 평가B괜찮아요
    에서는 공정한 척하지만 뒤에서는 부의 축적을 위한 식민지 쟁탈전과 군비경쟁을 하는 제국주의, 전체주의, 그리고 전쟁으로 표현된 인간의 광기같은 정치, 사회적 부조리를 모두 포함한다.또한 이 영화에서 오스카는 부조리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분노를 느꼈을 때 매우 왜곡되고 기괴한 방법으로 대항했다. 예컨대 그는 양철북을 두드림으로써 부조리에 대항했다. 또 얀과 밀회를 가지던 어머니를 자살시키고, 어머니와 부정한 관계를 맺었던 얀을 전쟁 중에 피살시키며, 오스카가 사랑했던 마리아와 관계를 맺었던 아버지에 대해서는 일부러 나치 배지를 건네주어 질식사 시키는 등 단죄를 통해 부조리에 대항했다.그러나 그 어떤 방식을 사용했든 오스카는 많은 부조리(관계의 왜곡, 전쟁과 제국주의의 광기 등)와 그 때문에 생긴 불안, 두려움, 분노 때문에 스스로 성장을 멈추었으며, 그러한 부조리가 사라졌을 때(어머니, 얀, 아버지의 죽음과 2차대전의 종식) 그는 성장을 재개했다.♣영화에 대한 나의 감상이 영화가 시작해서 몇 분 안되었을 때, 영화에 대한 나의 느낌은 엽기적이라는 것이었다. 오스카의 엄마가 태어나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부분도 그렇고, 엄마의 몸속에 있는 오스카를 보여준 장면은 실제로 무슨 다큐멘터리 "생명의 신비"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스카의 모습도 대부분의 영화에서의 어린이와는 달리 귀엽다기보다는 섬뜩한 인상이었다.어린 목소리의 오스카가 나레이터를 하면서 보여주는 장면들은 많이 어색했다. 어린 아이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에 사실감을 더해주려는 감독의 의도인지 아니면 단순히 배우의 연기나 촬영기술이 어리숙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찰리 채플린의 영화에서 처럼 배우가 분절적이며 어설픈 행동을 보였다.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단어는 바로 "기발하다"라는 단어이다.가장 큰 골격을 이루고 있는 어른들의 생활에 회의를 느낀 오스카가 성장을 거부한다는 내용부터가 기발하다. 부분 부분에 자그마한 것들도 놀라움을 더해줬다. 처음에 오스카의 어머니가 태어나게 된 배경을 말할 때도 그렇고, 오스카가 북을 빼앗으려는 사람이 있으면 소리를 질러 유리를 깨는 것도 그렇다. 흔히 생각해 낼 수 없는 것들을 재미있으면서도 의미 있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어머니의 치마 속으로 다리를 집어넣는 남자를 보고 오스카는 어른들의 세계에 환멸을 느낀다. 그리고서는 성장을 멈추기로 결심한다. 성장을 멈춤으로써 어른들의 세계에 반발하는 것은 참으로 소극적인 대처이다. 어른들이 저러하기 때문에 난 어른이 되지 않겠다는 심산이기 때문이다. 더욱 적극적인 대처라면 어른들이 저러하기 때문에 난 저런 어른이 되지 않고 좀 다른 어른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스카가 어른이 되기 자체를 꺼리는 것은 어른세계에 대한 더 큰 분노와 불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우리들의 입장에선 다른 그 어떤 반항보다도 더욱 충격적이고, 크게 와 닿는 것이다.오스카의 또 다른 언어는 양철북이다. 다른 아이들이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할 때 오스카는 그 대신 양철북을 친다. 양철북을 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오스카의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 더 두드러진다.이런 오스카의 우회적인 반항을 보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됐다. 나는 불만스러운 상황이 되면 어떻게 표출하는가? 생각해보니 나는 특별히 하는 게 없다 .한참동안 울다가 잠을 자 버리거나 기도를 한다. 하지만 이 방법 모두 나 혼자 삭이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에 쌓일 때가 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나 혼자 속상한 일들을 삭이다 보면 마음에 병이 된다. 오스카는 그러나 그러한 불만을 양철북으로 표출한다. 어쨌든 그 방법은 외부로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훨씬 더 후련하게 불만을 나타내고, 그 불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문/어학| 2002.06.05| 2페이지| 1,000원| 조회(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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