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16세기 이탈리아에서 발명된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영사기와 유사한 카메라를 만들게 되었다. 그 후 영국의 의사인 피터 마크 로제(Peter Mark Roset)는 영화가 인간의 눈에 보이는 착시 현상을 설명해냈다. 착시에서 비롯되는 잔상효과에 의해 인간이 움직이는 그림으로 인식되는 효과는 점차 사진술의 발전과 함께 영화의 탄생을 예고했다.영화의 서두는 에디슨(Edison)과 뤼미에르(Lumiere)형제였다. 에디슨과 뤼미에르형제 사이에는 영화를 사고하는 관점에 있어서 큰 차이점이 있었다. 에디슨의 입장에서 영화는 발명품으로서의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였다. 그에게서 키네토스코프는 팔기위한 수단이었다. 그것은 대중상영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한 명의 소유자를 위한 요지경에 지나지 않았다.반면 뤼미에르 형제의 씨네마토그라프(Cinematographe)는 빛의 마술이었다. 어둠속에서 쏘아져 나오는 빛은 스크린에 투사되었다. 그 투사된 영상은 대중들의 어둠속에서의 흡입력을 충분히 가지기에 충분했다. 이 둘의 대결은 당연히 뤼미에르 형제의 승리로 끝난다. 에디슨의 개인적 소유물은 대중들의 자본력을 끌어들이기엔 역부족이었다.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래프는 한번의 상영으로 수많은 이들이 빛의 마술에 동참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던 것이다.하지만 또다시 기술의 발달로 인해 대중들은 에디슨의 독자적인 영화보기에 손을 들어준다. TV는 이미 우리의 안방 곳곳을 누비며 대중을 키네토스코프의 세계로 끌어 들였다. 대중적인 영화보기는 더 이상 설득력을 잃은 것 같고 뤼미에르의 영향력은 1세기 정도로 평가해야 할 것 같다.하지만 영화역시 진보를 거듭해나가고 있다. 뤼미에르 형제 이후 상업적인 영화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영화는 곧 산업이 된것이다. 이러한 산업으로서의 영화 속에서도 새로운 움직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서유럽에서의 초현실주의 영화들, 그리고 혁명의 몽타쥬와 독일의 표현두의가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영화 매체를 에르 형제프랑스의 영화 카메라 겸 영사기를 발명한 형제. 기계 제작자인 동시에 제작 흥행 배급 등 현재의 영화제작 보급형태의 선구적 역할을 한 영화의 시조이다. 형 오귀스트(Auguste:1862 1954)와 동생 루이(Louis:1864 1948) 형제는 사진가의 아들로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를 연구, 필름이 원활히 움직이는 장치를 완성하여 촬영기와 영사기를 만들었다. 두 형제는 최초의 영화 카메라를 가지고 영화를 찍었는데 그 작품은 1895년 이었다.다가오는 열차를 보여줌으로서 이미지의 예술적인 면과 함께 기술적인 속성을 개척함으로서 영화관에서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현실감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이 것그의 작품들에서의 트릭은 오늘날 특수효과의 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렇게 해서 영화가 탄생함과 동시에 뤼미에르 형제로 시작된 사실주의와 조르주 멜리아스로부터 시작한 표현주의라는 두가지 조류를 형성하게 된다.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사실주의나 표현주의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며 감독이 소재와 주제를 어떻게 표현해 내느냐에 따라서 영화의 성격은 결정되게 된다.2)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1894년 활동사진에 흥미를 느낀 뤼미에르는 에디슨 기계의 일부 결점을 보완하는 체계를 고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스튜디오 안에서 작업하는 대신에 바깥세계로 카메라를 끌어내었다. "기차가 달려온다. 피신하라!" 1895년 12월 28일 프랑스 파리, 오귀스트 뤼미에르와 루이 뤼미에르 형제는 자신들이 제작한 단편 영화인 은 기차역에 도착하는 거대한 화물열차의 모습을 시네마 포토그라픽이라는 기계 장치를 이용하여 보여준 무성필름이다. 당시 이 영화를 관람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크린 속의 시커먼 열차가 흡사 자신들에게로 다사오는 것 같은 착각을 하고 혼비백산 피신하는 소동을 벌인 것이다.이 은 극장에서 대중을 상대로 공개된 세계 최초의 상업 영화로 평가되고 있고 또한 영화 역사의 태동을 알리는 거대한 신호가 되었다.영화 초창기에는 뤼미에르 형제들의 작품에서도 느낄수 있듯 일상생활을창시자이다. '창작의 욕구에 의해 끊임없이 고통받고 있다'는 그 스스로의 표현대로 멜리에스는 화가이고 마술사이고 시인이기도 했다. 멜리에스는 미술과 무대연출의 경험을 살려 1896년 뤼미에르 형제가 세계 최초로 영화를 찍은 몇개월 뒤 그의 최초의 영화를 찍었으며 이후로 16년에 걸쳐 500여편이 넘는 영화를 연출하였다. 멜리에스는 오늘날의 영화에 가장 기본이 되는 효과들(이중노출 등)의 창시자이며 연출, 시나리오, 배우, 마술팀들과 함께 1907년에 촬영을 위한 완벽한 장비를 갖춘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인간의 꿈과 환상을 영화 속에 담아낸 '영화의 마술사' 조르주 멜리아스는 자신의 창의적 재능과 상상력으로 영화에 사용되는 모든 트릭의 발명과 환상적이고 공상과학적인 영화의 창조에 공헌한 멜리에스야말로 판타지 영화의 창시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어느날 오페라 극장에서 촬영을 하던 멜리어스는 필름이 움직이지 않은 것을 발견햇다. 그는 카메라를 다시 작동할 수 있게 해 놓고 무심코 그 필름 들을 계속해서 돌렸다. 운좋게도 그는 그 필름들 중 어ㄸ■가 것이라도 쓸모가 있을까 해서 현상을 했는데 영사 되었을 때 그 필름 들은 어떤 마술사의 마음에도 즉각 기쁨을 가져 올 일련의 영상물들을 제공하였다. 거리를 달리던 마차가 갑자기 영구차로 변형된 것이다. 물론 실제 일어났던 것은 멜리어스가 처음으로 필름을 돌릴 때 마차가 카메라 앞을 지나갔으며 필름이 멈추었다가 다시 돌아갈 때 까지 계속 마차는 지나가고 그 뒤를 영구차가 따른 것이다. 멜리어스는 우연한 이 발견을 신중히 이용했으며 트릭영화 의 초기 장르를 열었다. 그 후 그는 특수효과라고 불리우는 기술적인 방법들을 대부분 습득하게 되었다. 덧불여서 멜리어스는 또한 영화 서술 기법에 가장 중요한 첫발을 내디뎠으며 스타 영화사 라는 프랑스 최초의 영화만을 만드는 회사를 설립했다.4) 멜리어스의 영화 달나라 여행조르주 멜리에스 감독의 1902년 작품인 달나라 여행(Le voyage dans la lune) 은 쥘 베른의 동명 소 수 있는 이상적인 위치에 자리잡은 고정된 카 메라로 중단 없이 촬영되었고 연기자들은 과장된 것은 아니지만 손짓 몸짓으로 충분히 표현해 냈으며 무대를 가로질러 옆으로 이동하기도 하고 입장과 퇴장 그 리고 때때로 관객을 향해 직접 인사도 하고 손짓도 하였다. 무대 장치 역시 모두 실생활 보다는 연극적인 것이고 영화적 방법의 몇가지 트릭효과가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장면들은 막을 여닫는 대신 디졸브로 연결되어있고 로켓이 달로 접근할 때 달리 쇼트처럼 보이는 것은 카메라를 달 쪽으로 이동시키면서 이루어졌다. 영 화에 관한 멜리어스의 놀라운 공헌과 궁극적인 한계들은 모두 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그는 일관된 유형속에 많은 사건들의 완성된 이야기를 전하려 하였고 대본, 무대, 연기는 만족스러운 전체를 이루기 위 해 신중하게 통제되어 있다. 일단 멜리어스가 영화에 있어서의 스토리 텔링에 대 한 야망을 구축해 놓자 그것은 이 새로운 매체에 독특한 방법들을 이용하여 더욱 기여할 다른 사람들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Avant garde1920년대에 인상주의자들과 함께 작업을 하면서 그 이상으로 기술적이고 양식적인 실험을 수행했던 것은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 감독들이었다. 인상주의 영화의 제작은 사실상 1924년에 끝나고 1925년 경부터 1920년대 말까지 아방가르트 운동이 매우 힘차게 전개되었다. 그래서 인상주의자들의 작품에 경의를 표하여 때때로 제2의 아방가르드라 부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19세기 말, 인상주의 화가들과 더불어 시작된 영화 인상주의자들의 문학적 재료에의 의존으로부터 벗어난 것으로서, 직접적으로 비영화적인 역사적 노선으로부터 등장한 것이었다. 보통 짧고 무성 영화인 아방가르드 계열 영화들은 소설이나 연극, 장편 영화들보다는 현대시나 추상적, 초현실주의적인 회화에 아까운 영상시, 익살이나 꿈 등과 유사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작품들이 정적인 시각 예술을 동적인 시각 예술로 확장시켰다는 사실이다.아방가르드 영화 제작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프랑스에서 더욱 활발 접근하기 쉽다는 것, 그리고 관객이 실험을 잘 받아들인다는 것에 의해 더욱 촉진되었다. 이 시기의 프랑스 영화 산업은 다른 나라들에서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거의 아마추어 수준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매우 헐거운 조직과 미미한 재정 지원만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몇 개의 거대한 스튜디오들의 독주보다는 군소 회사들과 개인적인 흥행주들이 더 많았다. 무성 영화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작 비용 덕택에 화가는 화랑 주인으로부터 약간의 돈을 빌고(원료와 사진 제판 비용을 위해서), 한 친구에게 그 또는 그녀가 일하는 스튜디오로부터 카메라를 빌리게 하고, 귀족적인 예술 애호가의 대저택의 사용을 결정하고 그곳으로 친구들(다른 예술가들)을 초대하고, 그 다음에는 그들이 출연하는 짧고 즉흥적인 실험적인 영화를 촬영했다. 영화가 완성되면 센강의 좌안에 있는 소극장들 중 하나와, 독특한 프로그램들을 상영하는 델뤽과 카뉘도에 의해 설립된 시네 클럽에서 볼 수 있었다. 만약 그 화가가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다면 영화를 포함한 예술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은 그에 알맞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었다. 예를 들어 만 레이Man Ray의 (1929)는 그런 방식으로 제작되고 상영되었다.1920년대 당시 파리는 그러한 곳이었다. 그때쯤 시대가 바뀐 직후 과학에서 시작된 지적인 진보가 예술로 침투하고 있었다. 자연 과학으로부터 나온 중요한 구조물 중 일부는 시간과 공간의 관계에 새로운 지식을 제공해주었다. 막스 플랭크Max Planck의 양자역할,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그리고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의 수학과 철학 이론에 함축되어 있는 것은 세계를 보는 세계관이었다. 이 개념은 예술적 표현이라는 등가물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을 불러 일으키려는 방법을 통해 층계를 내려오는 나체를 제작했다. 브라크Georges Braque는 예를 들면 동시에 여러 방향에서의 파이프를 나타내기 위해 다양한 관점에서 본 모습을 on은
장-뤽 고다르고다르는 1930년 12월 3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스위스 니용에서 자랐고 파리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 소르본느 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다가 중퇴하고, 1950년 '가제트 뒤 시네마'에 처음으로 글을 발표하였고, 1951년에는 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하였다.댐 공사장 인부로 일하다가 앙드레 바쟁을 만나 '까이에 뒤 시네'의 편집부 기자로 일했으며, 자신의 영화동지들과 비슷한 시기에 영화감독이 되었다. 50년대 미국 장르 영화에 대한 연구와 함께 영화에 발을 들인 그는 '까이에 뒤 시네마'의 동료들 중 에릭 로메와 자끄 리베뜨의 초기 단편영화 작업들을 도우며 그 자신도 몇편의 단편을 만들었다.자신이 일했던 스위스 댐 공사장에서 찍은 다큐멘터리 (54), (57), 편집 연습용 영화 (58)가 있다(는 프랑스와 트뤼포가 만들다가 포기하고 고다르에게 넘겨준 영화이다).영화 제작과 비평의 작업 사이를 왕복하는 동안 고다르의 방법은 오마쥬와 재창조, 그리고 새로운 시도를 통한 변화로 이어져왔으며 영화가 무엇이며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왔고, 자신의 영화평론을 항상 영화만들기와 같다고 비유하여온 그 자신의 말처럼 역설적으로 그의 모든 영화는 영화평론처럼 만들어졌다.아마도 장 뤽 고다르처럼 예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준 감독은 드물 것이다. 40년대 말, 헤겔로부터 출발한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에 영향받은 고다르는 모든 사물의 근본으로서의 모순을 통한 본질을 추구하는 동시에 변증법을 자신의 신념으로 삼았다. 그는 사유와 행위, 이야기와 견해, 내용과 스타일, 현실성과 추상성, 정치와 예술로서의 미디어 등 끊임없는 대비와 모순의 자기실천을 통해 영화를 만드는 작가이다.장 뤼크 고다르의 선언은 '새로운 영화'의 명제가 되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은 고전적 양식 을 완성하였고(앨프리드 히치콕, 존 포드, 그리고 장르 영화들), 이탈리안 네오 레알리슴은 부패하기 시작하였고(펠리니, 안토니 오니, 비스콘티), 프랑스영화는 문학의 진부한 재각색(르네 미셸의 말로를 암시하는 것일게다. 또한, 어느 극장 앞, 벽에 걸려있는 인물포스트를 보며 흉내를 내보며 입술을 손으로 문지르기도 한다. 고다르에게 있어 인용은 시 에서와 같이 일종의 고유한 의미를 내포하며 스토리를 더욱 짜임새 있게 전개하기위한 소도구같은 것임이 분명하다.비평적 지식을 뮤지컬과 공상과학영화의 장르로 각각 옮겨놓은 (61)와 (65)에서 에세이 형식을 빌어 만든 (62), (64), (66)에 이르는 동안 고다르는 보다 직접적으로 자신만의 방법을 개척해나갔다. (당시 아내 안나 까리나에게 보내는 사랑의 노래)만을 제외한 이 시기 고다르의 영화들은 어둡고 우울하며 모더니스트적이다. (65)는 도시의 혼란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피해가지만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과 의사소통의 장애물로 작용하는 언어의 모호함을 표현했고, (63)의 영화감독 프리츠 랑과 헐리우드 제작자, 시나리오 작가 부부의 불신 역시 메타포와 반영의 역할을 한다.자기 영화 속의 인물들은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지만, 고다르 자신은 매 영화마다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행가방 같은 영화(단편 모음) (67)의 에피소드 ‘미래전망’은 긍정적인 한 예가 될 것이다. 미래의 소비에트 아메리카 군대의 군인이 ‘정신적’ 매춘부에게서 치료를 받기 위해 송환되고 그들은 함께 키스를 새로이 ‘발명’한다. 그러나 당국은 그들을 위험인물로 간주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사랑을 하고, 발전하고, 동시에 대화를 하기 때문이다. (66)에서 영화제작자이자 나레이터인 고다르는 그가 묘사하는 세계의 기능장애에 대해 논한다.고다르의 모험적 필모그래피는 50년대 평론가로서의 시절부터 적어도 몇 차례의 예술적 단계를 거쳐왔다. 좌파였던 고다르는 아예 모택동 주의로 기울었고 지가 베르토프(기록영화의 이상에 가장 가깝게 다가섰던 30년대 소련 영화 감독의 이름) 집단을 만들어 혁명적인 영화의 생산과 제작과 배급에 주력할 것을 선언하고는 당시까지 그와 줄을 맺고 있던 전 세계의 배급망과 관계를 끊었다. 그러나 들은 경찰들을 따돌리며 도망 다니면서도 사랑을 나누며,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차를 훔치며 시간을 보낸다. 경찰의 포위망이 점점 좁아지자 빠뜨리샤는 경찰에 미셸을 고발하고 미셸은 거리에서 경찰의 총을 맞는다.2. 배경 및 의의고다르는 미셸과 함께 59년 파리를 달린다. 알제리가 프랑스 대혁명정신에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실존주의가 구조주의에 자리를 양보하고, 드골정권이 보수반동주의로 변질하고 있는 파리에서 '새로운 세대'의 공기와 시대정신이 무엇인가를 영화는 영화 스스로 질문한다. 고다르는 영화사상 최초로 '영화에 관한 영화'를 창조해낸 것이다. 그래서 카메라는 스스로의 자의식을 갖고 주인공과 이야기와 작가 사이에서 영화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은 갑자기 카메라를 향해 말을 걸고, 화면은 점프 컷과 롱테이크의 수사학으로 영화의 불문율을 차례로 돌파한다. 영화는 지켜야 할 문법을 갖고 있지 않은 담론이며, 고다르는 영화란 '네 멋대로' 만드는 것이라고 선동한다.프랑스의 1950년대를 특징지었던 실존적 불안과 권태를 적나라하게 들어내는 현실의식과, 그 이전의 주류영화로부터 소외되었던 헐리우드 B급영화에 경의를 바친 아웃사이더 정신이 발휘된 영화다. 고다르의 영화 중 가장 '관습적인(?)' 이 영화는 그나마 무난하게 이해할 수 있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이 영화에서 밀고자로 잠시 얼굴을 내비치는 이가 바로 장 뤽 고다르이다.고다르는 단호하게 말한다. 영화에서 이론이란 불가능하다고. 그래서 영화에 관한 이론이란 영화(들)뿐이라고 대답한다. 만일 그러하다면 고다르는 여전히 영화로 영화를 말하는 영화평론가인 셈이다. 그는 에서 미래의 영화를 발명 한 것이며, 고다르를 통해서 영화는 무한히 다양한 상상력의 이미지를 타고 도주하는 복화술사가 되었다. 고다르 이전에 고다르 없고, 고다르 이후에 고다르 없다.고다르는 자신의 영화 광적인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영화에 바치는 존경심과 함께 정반대로 모든 영화에 대한 부정을 시도하고 있다. 영화는 마치를 하기 위해 매춘을 해야 하는 시대ex) - 요즘도 영화에 나와?아니, 남자랑 너무 많이 자야해서.- 너도 모델을 하지 그래.남자랑 너무 많이 자야해.2 프랑스의 미국에 대한 적개심ex) - 미국인은 전부 바보야.- 네가 존경하는 그들은 프랑스인들 중에서 가장 바보야.- 프랑스 여자가 미니를 입으면 천박해 보여.- 우리는 미국과 프랑스 관계회복에 큰 몫을 하고 있어.(특히 이 대사는 미셸과 빠뜨리샤가 잠자리에 들기 전 미셸이 하는 말로, 당시의 미국과 프랑스 양국의 관계가 좋지 못함을 가장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다.)7. 작가의 견해1 인터뷰 내용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생각ex) - 이 시대에도 사랑을 믿을 수 있다고 보세요?사랑은 인간이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죠- 프랑스 여자와 미국여자의 차이점은?미국여인은 남자를 지배하지만 프랑스여인은 그렇지 못하지.- 에로티시즘과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에로티시즘 역시 사랑의 한 형태입니다.- 당신 삶의 야망은 뭐죠?비도덕적으로 되어 죽는거요( 짧고 간결한 대화이지만, 유명한 소설가의 답변을 내세워 사랑을 중요시하는 작가의 생각 또는 그 당시 사회적 풍토를 읽을 수 있으며, 프랑스와 미국간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끔 한다. 또한 마지막 대화 내용은 주인공 미셸의 운명을 예감한다 )8. 복선의 연속1 미셸이 바라보는 영화포스터의 문구와 신문머릿글에서의 암시ex) - 끝까지 위험하게 살다추락은 훨씬 힘들다.- 경찰 노상 살해범 신분파악 -노상 살인범 사라지다- 미셸 쁘와까르 수사망이 좁혀지고 있음- 미셸 쁘와까르 체포가 확실시( 갈수록 신문머릿글이 보여주는 복선에 대한 간격이 짧아지고 그와 더불어 영화의 전개가 빨라진다. 앞으로의 내용이 어떠할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2 작가와의 인터뷰 내용- 당신 삶의 야망은 뭐죠?비도덕적으로 되어 죽는거요( 영화의 결말 암시 )3 미셸이 빠뜨리샤에게 한 사기꾼에 대한 얘기를 하는 부분한 버스기사가 여자 때문에 돈을 훔친다. 기사는 여자에게 자신이 영화계의 거물이이미 정해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갈 곳은 마지막 장에서 읽혀지는 포우의 '타원형 초상'에서 다시 한번 나타난다.(a) 난 자신이 자유롭게 한 일은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손을 들어도 내 책임이고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려도 내 책임이야.내가 불행애도 내 책임이지. 담배를 피우는 것도 내 책임이고.눈을 감아도 내 책임이야.내 책임이라는 걸 잊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3. 매춘의 의미- 영화를 보면 매춘은 전개에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는다. 하지만 여기서 나타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단지 그런 개념만은 아니다. 고다르에게 있어서 매춘이란 단순히 돈과 육체의 교환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에게 매춘이란 자신의 '무엇'(능력등등)을 거래함으로서 얻게되는 이익을 총칭하는 것이었다(그것이 자신의 의지나 꿈에 해당해도 매춘의 개념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나가 매춘을 시작하는 시기는 우연히 첫 남자를 만나는, 혹은 포주에게 편지를 쓰는 순간이 아닌 영화 초반부에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찍는 순간 시작된 것이다.4. 단절된 인간관게- 영화에서 둘 이상의 인물은??의미가 맞나..ㅡ.ㅡ 한 화면에 동시에 잡히지 않는다. 잡힌다 하더라도 그들의 신체의 일부가 잘려져 보이거나, 한사람의 얼굴+다른사람의 뒤통수 란 식으로 화면을 잡는다. 폴과의 대화에서 그들은 단지 비추어지는 거울 안에서만 한곳에 존재할수 있었다. 간접적인 공간에서만이 공존이 가능한, 인간사이의 골의 표현일까? 또한 라울과의 대화에서도 화면은 마치 시계추처럼 움직이며 나나와 라울의 얼굴을 동시에 잡지 못한다. 같은 공간에 존재하면서도 괴리되어 있는 인간상은 본성이라기보다 사회가 만들어낸 하나의 모습일것이다.5.키스의 거부-나나는 우연히 받게된 첫 손님에게 키스를 거부한다. 영화 진행상 그리 큰 의미는 부여되지 않지만 이 장면은 이후 매춘에 익숙해저 현실에 적응해져가는 그녀의 모습과 대비되어 이후 12장에 나타나는 나나의 또다른 선택(매춘으로부터의 탈피)을 더욱 선명하게 한다.6. 나나의 유혹-.
미장센 [mise en scne]개요무대(舞臺)에서의 등장인물 배치나 동작 ·도구 ·조명 등에 관한 종합적인 설계.본문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프랑스어로 ‘연출’을 의미한다. 희곡에는 등장인물의 동작이나 무대장치, 조명 등에 관한 지시를 세부적으로 명시하지 않으므로 이러한 요소들을 종합하여 각본의 내용을 통일적이고 효과적인 형상(形象)으로 만들어 무대에서 상연하는 작업을 말한다. 따라서 연출가는 희곡의 각 장면 또는 각 국면의 미장센을 결정한다. 이 용어는 1820년경부터 연극상연을 위한 인원이나 재료의 총체(總體)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으나 1835년경부터는 무대표현의 각종 방법을 종합 통일하는 조작과 기능을 가리켰으며, 19세기 말부터는 무대표현상의 개성적 예술활동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영화용어 / 미장센 (Mise-en Scene)'무대 위에서의 배치' '장면화' 란 뜻의 미장센이란 영화용어는 요즘들어 흔히 쓰이는 영화언어 중 하나다. 영화를 본 관객이나 비평가들의 대부분은 한 영화 를 감상한 후 인상적이었던 특정 장면을 지창하면서 '미장센' 의 독특함이나 위대함을 운운하곤 한다.그렇다면 과연 미장센이란 영화언어는 그토록 발견하기 쉽고 사용하기 용이한 영화언어인가 ? 미궁같이 깊은 미장센의 세계를 들여보노라면, 우리의 개념정의가 얼마나 터무늬없이 가벼웠는가를 체감하게 한다.미장센이란 용어 속에는 회화적이며 연극적인 전통의 뿌리가 존재한다. 3 차원 현실을 2차원의 공간속에 이동시켜야 하는 영화의 과제는 연극이 지닌 공간구성의 기법과 화면이라 불리우는 프레임을 활용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그같은 숙제를 풀기위해 고안되고 발전된 영화언어가 미장센이다.미장센이 처음으로 영화사 에 중요한 문법으로등장한 것은 프랑소와 트뤼포와 앙드레 바쟁에 의해 주도되는 ' 까이에 뒤 시네마'의 영화비평에서 부터다.당시까지 영화의 주요 표현양식으로 굳어진 몽타쥬이론에 대한 미학적 개념으로 개진된 후 , 이것은 영화의 공간적 측면과 리얼리즘 미학의 한 형식으 한정된 공간과 시간안에 작가의 재능과 탐구심을 응축 해내야 한다는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다.현대의 상업영화가 고도의 자본력과 기술로 발전의 일로를 걷고 있다고는 해도 , 아직까지 탐구 의 영역으로 남아있는중요한 영화언어가 미장센이다.Mise en scene"미장센"이란 "mise en scene"이란 불어 단어를 표음화 해 놓은 것입니다. "Mise en scene"이란 직역을 하면 "씬으로 만듬"이라는 말인데 이것의 근본적 의미는 연극 연출 이나 영화감독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불어에서 이들은 "metteur en scene" 즉 씬으로 만드는 사람이라 표현됩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미장센"이란 차츰 조금 특별 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감독이 어떤 스타일로 화면을 구성하는가 하는 것과 관련되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미장센"은 "몽타쥐"(montage)와 대조되는데 "몽타쥐"를 선호하는 감독은 화면을 여러 프레임으로 편집해서 그것들의 연결이 의미를 전달하게 하려고 하고 "미장센"을 선호하는 감독은 화면의 전체를 구상한 다음 그것을 하나의 프레임에 다 담아서 보여주고 싶어합니다. 즉 "미장센"을 선호하는 감독은 한 장면동안 카메라를 움직인다던가 그것을 여러 각도에서 찍어서 짜집기 한다던가 하는 것을 싫어 한다는 거지요. 그것은 인물과 배경이 갖는 조화,관객과 화면이 갖는 심리적 관계 같은 것을 인위적으로 차단하기 꺼려하기 때문입니다. 딮 포커스 (Deep Focus) 렌즈가 발명되고 나서는 카메라 앞의 모든 것들이 가깝거나 멀거나 다 선명히 보이게 되었기 때문에 "미장센"만 잘 하면 카메라의 각도를 바꾸지 않고도 한 프레임으로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든 것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스타일의 선택이 가능해졌습니 다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영화의 한 장면 내의 요소들, 즉 극적인 액션을 둘러싼 물리적 환경을 말할 때 쓰인다. 미장센은 연극에서도 쓰이는데 연극에서는 배경, 소도구, 배우의 위치 등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무대의 정경을 가리키는 미장센이다.미장센이 처음으로 영화사 에 중요한 문법으로 등장한 것은 프랑소와 트뤼포와 앙드레 바쟁에 의해 주도되는 ' 까이에 뒤 시네마'의 영화비평에서 부터다. 당시까지 영화의 주요 표현양식으로 굳어진 HYPERLINK "http://user.chollian.net/~bioman/ilban/art/movie/yong/abc/m/montage.htm" t "_blank" 몽타쥬이론에 대한 미학적 개념으로 개진된 후, 이것은 영화의 공간적 측면과 리얼리즘 미학의 한 형식으로 정착되었다. 즉 몽타쥬가 편집의 양식을 통해 영화의 주제에 효과적으로 도달하려는 목표를 달성했다면, 미장센은 좀 더 섬세하고 적극적인 작가의 주관이 강요된 형식, 따라서 이후의 작가주의 영화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다.이는 한 화면안의 모든 것이 '연기해야 한다'는 원칙과 닿아있다. 무심히 놓여 있는 꽃병하나,연기하는 배우, 지나가는 배경, 구축돼 있는 세트.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장면 안에서 작가의 주제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장센은 기존의 몽타쥬 영화와 달리 롱테이크나 딥포커스로 표현된 화면안에서 원하는 효과를 창출해내곤 한다.현대영화의 미장센은 몽타쥬의 그것과 달리 보편화된 영화언어로 쉽게 확인할 수 없는 독특한 영역을 지니고 있다. 이는 프레임이라는 한정된 공간과 시간안에 작가의 재능과 탐구심을 응축 해내야 한다는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다.단순 사전학적 의미로는 무대장치, 연출, (사건 등의) 주위 상황, 배경이란 뜻이며, 영화에서 스토리를 이해하고 표현받는 수단, 단순한 이야기로써의 스토리를 넘어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 사용하는 도구를 말한다. 즉 한 작가가 현실을 왜곡해 사물이 이야기하는 것을 막으려한다거나 대상 사이의 치열함을 작가가 변형하려 한다면 그것은 이데올로기로써 연출권을 행사하려는 것이며 그 수단으로써 주위 상황과 배경, 소도구들의 배치나 사용에 특정 의미나 암시를 두고 이를 사용할 수 있으며 이 때 이 모든 것들에 미장센의 뉘앙스가 연극에서처럼 그저 세트 장치만으로 불려질 수 없는 더 복합적인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사실 무대 장치는 커다란 미장센의 한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연극과는 달리 영화에서의 미장센은 세트의 배치뿐만 아니라, 주어진 공간 내에서의 공간 이동까지도 포함시킨다. 즉, 배우의 움직임 및 카메라의 움직임, 심지어는 화면의 크기까지도 이 범위에 들어간다. 따라서 미장센이란 연극과 촬영이 혼합된 개념이라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이 용어는 카이에 그룹에 의해 보다 특정한 의미를 부여받게 되는데, 이들은 이 말을 그들이 작가라고 부르는 일부 미국 감독들의 작품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했다. 이들 영화 감독들이 헐리우드의 전권 아래 작업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이 대본에 대해 아무런 권리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적어도 쇼트를 구성할 권리와 여기에 자기만의 식별 가능한 스타일을 가질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미장센은 감독이 구사할 수 있는 표현 도구로서 그의 특정한 스타일, 즉 작가적 날인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2. 미장센의 이해미장센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위해 이창동 감독의 의 한 쇼트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영화의 후반부 막동이(한석규)가 반대파의 보스를 살해한 후 자신의 형과 전화 통화를 하는 이 쇼트는 초록빛 꿈을 간직하고 살던 막동이가 살인의 충격 후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전화 통화를 통해서라도 달래 보고자 하는 아련함이 담겨 있다.1) 공간 구성의 미장센① 프레임(frame)프레임은 미장센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각틀로, 영화에서의 공간 중 ‘화면 영역’을 규정하는 경계이다. 화가들이 화폭에 세심한 신경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 감독들은 이 프레임을 질료로 화면 구성의 균형과 표현성에 역점을 두게 된다. 이 쇼트의 경우, 막동이는 ‘프레임’이라는 경계 이외에도 ‘전화 박스’라는 또다른 경계에 갇혀있다. 주체할 수 없는 막동이의 감정을 두개의 경계 속에 가둠으로서 시각화 시키고 있는데, 아주 효과적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알 위해서는 텅빈 공간이나 비대칭적인 구도를 자주 응용한다. 이 쇼트의 경우, 주인공을 중심에 놓고 화면 주위를 전화 박스의 틀로 채우는 대칭적인 구도를 취하고 있는데, 클로즈 업에 가까운 꽉 찬 구도로 인해 막동이의 답답한 심정이 잘 드러난다.2) 시간과 움직임 구성의 미장센① 쇼트(shot)쇼트(shot)란 카메라가 찍기 시작하면서부터 멈출 때까지의 연속된 영상을 의미한다. 바로 시간을 구성하는 영화 표현의 가장 최소 단위로 볼 수 있다. 영화에서 기록되는 정보는 기본적으로 그것이 어떠한 형태의 쇼트에 의해, 어떠한 각도에 의해 찍혀졌는지 뿐만 아니라 얼마의 지속시간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서도 여러가지 효과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 쇼트의 경우는 단 하나의 쇼트로 되어 있는데, 막동이의 감정을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 커트를 자재하고 카메라의 움직임을 통해 쇼트를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정적인 화면을 구성하고자 할 때는 가급적 쇼트의 시간을 길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② 카메라의 움직임이 쇼트는 감정을 따라가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전화박스 속에 갇혀있는 막동이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는 부감 쇼트로부터 시작하여 천천히 막동이의 바스트 쇼트까지 이동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의 모습을 지켜 보게 만든 뒤 다시 클로즈 업으로 막동이의 얼굴을 강조한다. 흔히 고정 쇼트로 표현할 수도 있는 이 장면을 미세하나마 카메라의 움직임을 부여한 것은 감독의 선택이며 바로 효과적인 미장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③ 인물의 움직임이 쇼트는 인물의 움직임이 거의 없다. 쭈그려 앉아 있는 막동이의 모습이 전부이며 그 흔한 수화기의 바꿔잡는 동작 역시 보이지 않는다. 단지 막동이의 웃음띤 얼굴로 울고 있는 표정만으로 긴 시간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절제된 인물의 움직임이 역동적인 움직임보다 더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적절한 예라고 할 수 있다.전체적인 결과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이 쇼트는 언뜻 보기엔 그저 울면서 전다.
★자전거 도둑★이 영화는 두 명의 비 직업배우인 람베르토 마조라니(Lamberto Maggiorani), 엔조 스타이올라(Enzo Staiola)에게 주인공 역인 아버지와 아들로 맡게 하였던 것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아버지 역을 맡은 람베르토는 공장노동자였으나 실업자였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 오랜 시간동안 직업소개소를 전전했었다. 엔조 역시 당시의 여느 소년들처럼 학교가 아닌 거리에서 푼돈을 버는 아이였다.전체적으로 비직업 배우들이 연기를 하였던, 이 영화는 한 노동자 생활주변의 단순한 사건들로 구성되었다. 영화가 개봉된 1948년 이탈리아 노동 인구의 !/4 이 실업자였다. 영화의 첫 부분에 주인공이 소개되는데, 그는 아내와 두 아이가 있는 가장이다. 2년 동안 실업 상태였다가 마침내, 직업소개소를 통해서 일자리를 얻게되었지만, 조건이 있었다. 그 일을 하려면 자전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집안의 물건들을 팔아서 겨우 자전거를 찾아오는 그들의 시선에는 미래가 담겨있었다. 고생하면서, 굶주렸던 가족에게 내일은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직장에 출근하였던 첫날, 주인공은 일을 하다가 자전거를 도둑 맞는다. 조직화된 도둑들의 교묘한 방해로 눈 앞에서 자전거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새로운 삶의 막 시작하던 순간이었다.당시의 자전거가 지금의 자동차만큼이나 유용하고, 가치있는 이동수단이었음을 고려한다면 자전거의 의미는 이들의 삶에서 보다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그들에게 자전거는 모든 것을 의미하였다. 2년을 실직자로서 기다려온 주인공에게 고정된 수입과 생활보조비로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는 희망이 제시되었다. 그 핵심에 자전거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자전거는 단순한 물체 이상인, 희망 그 자체를 상징했다.첫 출근 날 새벽에 아들 부르노가 집안에서 자전거를 기름 칠하고 깨끗하게 닦는 장면은 그 소중함의 크기를 은유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실외가 아닌 실내에 보관을 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당시의 자전거의 경제적 가치가 적지 않음을 일깨워주기 충분했는데, 자전거의 제품번호를 기억할 정도로 애착을 갖는 아들의 마음은 단순히 경제적 가치만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이상을 암시했다.이렇게 꿈과 희망의 상징이었던 자전거를 도둑 맞은 주인공이 지나치리만큼, 자전거에 집착하고 그것을 되찾으려는 일련의 사건들을 펼치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전거를 되찾으려는 그의 심리상태는 점점 더 불안해지고, 행동은 거칠어진다. 심지어, 그 분노를 가장 사랑하는 아들에게까지 분출시키기에 이른다. 비토리오 감독은 이러한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놓치지 않고서 여러 상황 설정으로 묘사하고, 간접적으로 제시해주는 꼼꼼함을 보여주었다.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찾아다니던 도중 갑작스럽게 쏟아진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서 처마 밑에 서있던 장면은 주인공 내면을 가장 적절하게 연출해 낸 씬이었다.도시 곳곳을 헤매고 다니던 주인공의 바쁜 발걸음은, 자전거를 도난 당함으로 그의 꿈이 지연되듯이, 소나기로 인하여 지체되었다. 어쩔 수 없이 발목을 붙잡는 소나기로 인하여 그의 심리는 더욱더 갑갑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더구나, 한 무리의 수사들이 주인공의 양 옆으로 뛰어들어, 정신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탓에, 주인공은 좌우로 고개를 움직이게 되었다. 자전거를 포기할 수도, 그렇다고 찾을 방법도 없이 갈등을 하고 있는 주인공의 내면이 표출되었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자전거 도둑을 붙잡게 되었지만 자전거를 되돌려 받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 간절한 희망을 포기할 수도 없었던 주인공은 마침내 결심을 하게 된다. 자전거를 훔치기로 말이다.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쓰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깊은 늪으로만 빠져들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방법은 결국 비극적 결말로 치닫게 된다.그의 자전거가 도난당할 때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도, 도움을 주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그가 어떤 신사의 자전거를 훔쳤을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를 붙잡고, 그의 자전거를 지켜주었다. 이처럼 네오 리얼리즘 영화의 근본적인 주제는 현대의 평범한 사람들과 그 사람들에게는 낯선 것이면서도 그의 존재를 규정짓는 거대한 사회적 힘간의 갈등이다. 그것은 처음에는 전쟁, 그 후에는 생계수단의 쟁취, 그리고 집과 가족을 위한 투쟁이다. 이처럼 경제적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의 진정으로 보여주려는 것은 굴하지 않는 진실한 인간성이다. 이 영화 역시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전거 도둑]은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형식과 정신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시대를 초월한 작품으로 남는 이유는 철저한 네오리얼리즘 정신과 미학을 넘어선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내용은, 로마에 사는 평범한 인간 안토니오가 오랜 실업 끝에 어렵게 직업을 얻는다. 단 조건은 자전거가 있어야만 한다. 전당포에 맡겼던 자전거를 겨우 되찾은 안토니오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오르지만 출근한 첫 날 자전거를 도둑맞고 만다. 아들 브루노와 함께 자전거를 찾아 나선 안토니오니는 결국 도둑을 잡지만 그는 안토니오니보다 더욱 힘든 삶을 사는 형편이다. 도둑에게 자신의 자전거를 차마 되찾아오지 못한 안토니오는 다른 사람의 자전거를 훔치려다 아들 브루노가 보는 앞에서 붙들린다. 아들을 바라보는 안토니오의 처절한 표정. 이 장면은 전후 도시빈민들의 절망을 잘 전달한다.
이 그림은 화풍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기억의 고집》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가 1929년 제작한 그림이다. 같은 해, 초현실주의의 대표주자인 그는 다른 예술에도 관여하게 된다. 초현실주의의 한가지 특징 중 하나인 상호텍스트적 예술이 자리잡히기 시작하는 데, 이 때의 상호텍스트성 intertextualite 이란 하부구조가 아닌 상부구조 사이의 통합과 만남을 의미한다. 비로소 장르와 장르의 혼융이 이루어지고,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초현실주의자였던 달리는 미술뿐만 아니라 영화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Salvador Dali, 그는 자신의 생각을 영화로 표현하고자했다. 1929년 그가 동료인 루이 브뉘엘 Luis Bunuel과 함께 작업했던 영화가 바로 《안달루시아의 개 Un chien Andalou》이다. 살바도르 달리는 여기서 시나리오와 촬영에 동참하게 된다. 그의 동료 루이 브뉘엘은 초현실주의 영화의 선두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던 대표적 감독 중 한 명이다. 그렇다면 영화사에서, 20세기 예술사에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추구했던 초현실주의란 무엇인가?초현실주의는 불어로 surrealisme로 옮겨진다. 불어에서 sur는 '∼의 위에', '∼을 초월하여', 이외에 '∼에 대한'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즉 sur-realisme이란 '현실에 대한, 현실을 초월하고자 하는 주의' 라는 이중의 메시지를 가진다. 환멸적인 현실로부터 출발하여, 그러한 현실을 넘어서고자 하는 몸짓, 몸부림. 다다이즘이나 아방가르드의 움직임이 초기의 목적의 달성을 이루지 못하고 무방향적, 무목적적, 무정부적 게릴라전이었던 데에 비해, 초현실주의 운동은 보다 현실의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응했다. 그리고 또한 다다이즘나 아방가르드보다 자의식적이었다. 당시의 초현실주의자들은 정치적으로 맑스의, 정신분석학적으로 프로이드의, 철학적으로 베르그송의 후예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예술적으로 다다와 아방가르드의 동시대, 또는 약간 후세대이기에 그들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이제 영화《안달루시아의 개 Un chien Andalou》안으로 들어가 보자.안달루시아의 개?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다. 제목은 이오네스코의 여러 극의 제목을 생각나게 하리만치 부조리하다. 개의 모습은 작품 어느 구석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가 아무런 이유 없이 영화의 제목을 안달루시아의 개라고 한 것은 아니다. 그의 제작 노트를 훔쳐보자."이 영화의 제목은 멋대로 정하거나 농담 삼아 자은 것이 아니다. 이 제목은 주제와 밀접한 잠재 의식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수 백가지 제목들 중에서 이 제목으로 정한 것은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호기심 삼아 덧붙이건데, 어떤 관객들은 이 제목 때문에 사실 강박관념이 생겼다고 한다. 제목을 멋대로 정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2)아무런 의미 없어 보이는 이 제목에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그의 항변이다. 도대체 그는 어떤 잠재의식에 기반한 것일까? '안달루시아'는 스페인 남쪽지역에 위치한 이슬람의 문화와 크리스트교의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이다. 일조량이 높아 기본적으로 낙천적이나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 바로 안달루시아이다. 그렇다면 '개'는 무엇인가? 개는 우리말에서 흔히 통용되는 부정적 이미지의 '개' 그 자체로 보아도 무관하다. 그러므로 '안달루시아의 개'란 바로 이런 두 단어가 환기하는 이미지 그 자체이다. 그렇다면 이제 잠재의식 속에 안달루시아의 개의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가? 다시 말해 안달루시아의 개는 이러한 보수성에 대한 초현실주의 surrealisme의 입장을 천명하는 것이다. 보수성에의, 그 고착된 전통에 대한 반발을 제목을 통해 환기할 수 있다.어두운 밤하늘 달을 가르는 구름으로 영화의 이야기는 전개된다. 가르는 손, 찢어지는 눈. 피대신 솟구쳐 오르는 눈물. 브뉘엘의 몽타쥬는 혁신적인 것이었다. 이야기는 어두운 밤 꾸는 악몽이다. 악몽, 악몽 그자체. 괴기스럽고 음산한 분위기로 꿈의 여정을 떠나지만, 누구도 꿈이 어떻게 전개될 지, 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해몽할 수 없다. 단지 악몽이라는 것 밖에. 8년 후 카메라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수녀의 뒤를 따라 빌딩 사이를 가로지르면 한 여자와 마주치게 된다. 옷가지로 남겨지는 남자. 개미로 뒤덮힌 남자의 손. 개미굴-손 이미지. 토막나서 버려진 손. 자동차 사고. 다시 우리의 두 남녀. 환상과 현실의 교차. 현실조차 현실일 수 없는 환상과 환각의 교차. 피아노를, 두 신부를, 피아노 위에 죽은 당나귀 시체를 끄는 남자. 부르조아의 상징을, 결코 중단되지 않을 종교를, 그리고 그 위에 부패의 상징을 끄는 남자. 새벽 세시 남자의 방문. 16년 전 공원. 한 남자의 죽음. 나방. 그리고 해변으로 이어지는 문. 그리고 봄. 모레 속에 잠긴 이들.혼란의 이미지는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이러한 이미지들의 연결들 속에서 어떻게 논리 정연한 내러티브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어느 것 하나 우리에게 전통적인 상징물을 보여주지 않는 가운데 상징물의 의미를 간파해낼 수 있을 것인가? 영화는 어느 것 하나 전통적 미를 형상화시켜 보여주지 않는다. 모든 것은 새롭지만, 결코 아름답지 않다. 어느 것 하나 현실적이지 않은 악몽일 뿐이다. 브뉘엘은 아름다운 꿈에는 관심이 없다. 때로 사드적, 때로 메저키스트적인 인물들은 결코 이해 받으려 하지 않는다. 영화가 진행되어감에 따라 축적된 이미지는 공포를 일으키고 마침내 암전이 되고, 다시 불이 켜질 때 우리는 우리의 무의식 속에 스며있는 하나의 다른 악몽에서 깨어나게 된다. 17분 동안 우리의 본능과 마주설 수 있었고, 다시 현실에 편입하여 논리 정연해 보이는 질서 속에 걸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