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도덕적 권리와인류의 발전을 위한 동물희생의 배타적 관계.에필로그[동물학대, 동물실험, 현대 산업 축산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이 논제를 받아들고 무엇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랐다.이 논제를 논할 때 관점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인간중심사상에서 논할때와 생명체 존엄을 바탕으로 한 평등사상에서 논할때는 전혀 다른 논거를 펼 수 있다. 난 여기서 두가지 관점에서 보고자 한다.본 론.-- 생명체 존엄을 바탕으로 한 평등사상에서 --동물학대와 동물실험 그리고 육식을 반대하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인 피터 싱어(Perter Singer)의 동물 해방론을 통해 동물의 도덕적 권리와 이해관계에 관하여 정리해 보았다.피터 싱어의 윤리적인 입장은 보편주의적 공리주의 인데 쾌락은 증진하고 고통은 감소시키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입장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입장에 서서 피터 싱어는 실험실과 공장식 농장에서의 동물들의 생활을 빈틈없이 검토하고 우리에게 그 실상을 알리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들(동물들)의 생활이 견디기 힘든 고통을 산출하고 있음이 분명하므로 그와 같은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또한 인종차별주의(racism)와 성차별주의(sexism)에 견줄만한 ‘종차별주의(speciesism)'를 전파 시켰다.종차별주의란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종의 이익을 옹호하면서 다른 종의 이익을 배척하는 편견 또는 왜곡된 태도를 말한다. 인종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는 비난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종차별주의도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명제 하에 흑인차별을 한 것에서 죄책감을 느끼듯이 평등권에서 동물에게도 죄책감을 느끼고 동물들의 도덕적 지위를 인정하기를 주장한다. 우리가 인종이나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동등한 도덕적 지위를 부정하는 것이 옳지 않듯이 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동등한 도덕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도덕적 고찰에서 동등한 고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실험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평등권에서 벗어나 인간의 훌륭한 식량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그리고 그가 동물의 평등권을 표면적으로 주장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모든 동물은 고통과 쾌락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는 죽일 수 없다는 것이다.피터 싱어는 실험실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동물학대를 우리에게 알리고 동물의 도덕적 귄리를 주장하며 동물 실험으로 인한 더 이상의 동물의 죽음을 막고자했으며 공장식 사육 농장의 실상을 알리면서 인간들의 육식으로 인해 더 많은 동물들이 감금된 상태로 사육되며 정신적 스트레스로 죽음에 이르게 하고 빠른성장과 더 많은 번식을 위해 행하여지는 모든 학대속에 고통받는 동물들이 많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그해결책으로 무분별한 동물실험을 정부가 자제하고 규제할 것을 촉구하고 공장식 가축 농장의 사육이 더 이상 번성되지 않도록 채식주의를 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인간중심 사상에서 --인간이 우월한 종이라 하여 낮은 종의 동물이나 기타 생물체에게 가해지는 가학적인 학대와 실험을 결코 옳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이끌어 왔고 앞으로도 더 발전시켜 이끌어 나갈 생명체는 인간이다. 인간이 중심이 되어 모든 생명체를 이끌고 미래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질병, 식량고갈의 한계, 환경파괴, 미래의 생활환경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며 살아야 할 것이다.여기서 잠깐 앞에서 피터 싱어의 주장에 몇 가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고통을 알고 쾌락을 느낀다고 인간과 동등하다? 그렇다면 그런 고통과 쾌락을 안다고 인간과 동등한 생각을 하고 이 세계를 위해 그들(동물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인간과 똑같이 실험가운을 걸치고 동물들보다 열등한 열등 생물들을 가지고 똑같은 실험을 할 수 있겠는가?고통과 쾌락을 느낄 수 있기에 동등한 평등권을 가지고 있는 동물들을 더 이상 식량으로 삼지 말아야 하고 그 대신 채식주의를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고통을 느끼고 쾌락을 알고 있다는 식물들은 과연 어떠한가 말이다.어느 실험에서 좋은 음악을 듣고 충분한 물과 햇볕을 받고 자란 식물에서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가 맺혔다는 것과 그와 반대로 시끄러운 음악에 햇볕도 잘 안 들고 물도 부족하게 준 식물은 결국 고사되고 말았다는 식물 보고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동물들도 고통과 쾌락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그렇다고 동물들이 인간의 식량이 되거나 실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불필요하고 무분별한 동물실험은 자제되어야 하지만 동물 실험자체를 배제하고선 과학의 발전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인간들이 동물체(육식)를 안 먹는다 하여 동물이 해방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간하고 동등한 관계가 성립되는 것도 아닌 것이다.오늘날 과학의 발전에는 수많은 동물들의 죽음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인간을 대신하여 실험의 대상이 되었으므로 인간이 인간을 실험하는 아주 불행한 사태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세계2차대전 중에 민족차별주의자인 나치와 일본인이 행한 유태인과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은 반인륜적인 행위로 역사 속에서도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지탄과 비판을 받고 있고 그 전범자들은 지금도 처단되어 지고 있다. 이런 불행한 사건을 겪은 인간들에게 동물의 평등권을 이유로 동물 실험을 반대한다면 더 이상의 과학의 발전을 중단하고 현실에서 더 이상 발전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일 수 있다.과학계에서는 지금도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이 필요하다. 인류에게 놓인 당면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수많은 종류의 실험과 연구는 계속되어지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과 가장 비슷한 동물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돼지 간을 이식해 생명을 연장한 사람이나 항체 바이러스를 이식해 성장한 쥐에서 백신을 추출해 인간들에게 예방접종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나 모두 동물로부터 실험하고 얻어내는 결과인 것이다.동물실험이 이처럼 인간들에겐 꼭 필요한 일인 것을 동물의 도덕적 권리 앞에 중단되어져야 한다는 것은 맞지가 않다고 본다.다만 동물들을 너무 가학적으로 대하거나 예컨대 서커스단의 곡예 하는 원숭이나 코끼리 같은 것은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들에 그런 훈련을 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학대가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것은 어느 정도 자제되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식용으로 사용되기 위하여 죽여야 하는 동물들에게도 될 수 있으면 덜 고통스럽게 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간으로써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심이 아닐까 본다.인류의 당면과제 중 하나인 식량고갈 문제에 있어서 해결점을 찾기 위한 실험과 연구는 계속 되어 지고 있다. 그 중 하나인 가축을 대량 사육하여 가축으로부터 얻어지는 부산물들의 량을 최대한으로 하는 문제인 것이다.현대 산업 축산 분야는 꾸준한 연구와 실험을 통하여 발전을 이루어 왔다.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동물실험의 결과로 양질의 유전자를 가진 동물의 탄생을 이루어 슈퍼돼지나 슈퍼젖소를 만들어 내서 그런 동물들로부터 얻어지는 부산물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하였다. 지금도 연구소에서는 좋은 품종의 종자를 가진 소,돼지,닭을 생산하기 위한 연구와 실험은 계속 행하여지고 있으며 연구소에서 만들어낸 우량종자의 가축을 합리적이고 위생적으로 대량생산하도록 공장식 가축 농장에서는 끊임없이 실험을 토대로 키우고 있는 것이다.결 론.개인적인 견해로는 피터 싱어의 동물의 도덕적 권리를 아예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불필요하고 가학적인 무분별한 실험은 배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또한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동물에게 가해지는 학대는 바람직하지 못하므로 금지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류의 질병 퇴치나 우량의 DNA 개발을 위해서 행하여지는 실험은 계속되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동물들의 도덕적 권리를 위해서 육식을 금하고 채식주의를 하여한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왜냐하면 식물도 엄연히 따지고 보면 살아있는 생명체로 볼 수 밖에 없는데 동물은 식량이 되어서는 안되고 식물은 된다는 이론은 모순이 있다고 본다.또한 고른 영양 섭취로 생명체를 유지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육식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현대 산업 축산은 위생적이고 대형화된 공장식 가축 농장의 형태로 변모하고 있으며 거기서 얻어지는 양질의 육류는 인간의 식탁을 풍족히 하고 인간의 식량 발전의 한 부분을 차지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변모된 산업 축산이 더 많은 동물들을 인간의 식량으로 전락 시킨다 해도 그냥 식량으로 보자는 것이다.얼마전 월드컵을 앞둔 우리나라의 보신탕 문화를 꼬집는 서구의 여러나라 사람들 눈에는 그들의 가족과 다름없는 애견을 먹는 비인간적이고 미개한 민족으로 보였지만 그건 시각의 차이이며 견해의 차이이다.가족과 다름없는 애견을 잡아먹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나 서양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보신탕 혹은 영양탕으로 불리어지는 음식의 재료가 되는 개들은 애견으로 사육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식량으로 사육되어 지는 것이다. 소나 돼지, 닭처럼 말이다.서양에서는 애완용 돼지를 가정에서 사육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돼지고기를 안 먹는다 할 수 있겠는가? 식용으로 나온 돼지는 식량이 되는 것이고 애완용으로 나온 돼지는 애완용으로 가족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 가족과 같은 돼지를 먹는다고 비판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보는 시각과 견해차이 인 것이다.이와 마찬가지로 동물학대와 동물실험 그리고 산업 축산을 어떤 시각과 견해에서 보는 것에 따라 이처럼 전혀 다른 결론을 얻게 되는 것이다.참고문헌 : 동물해방(피터 싱어 지음)-인간과 사랑.
서정시와 은유에 관하여1.개념1서정성서정성의 본질은 동일성.자아의 감정이나 정서를 외부 대상에 투사하거나 동화시켜 동일성를 획득하는 것.2서정시시적 자아와 대상간의 동일성을 통해 자아의 감정과 정서적 세계를 표현하는 것.즉, 서정시=서정성3은유유사성을 바탕으로 한 수사학적 장치.2. 서정시 속의 은유서정성의 본질은 동일성이고 이 동일성의 서정적 미학을 형성할 수 있게 해주는 수사학적 장치가 은유인 것이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정시 라 하면 그저 고운 언어로 아름다움만 표현한 흔히 말하는 아름다운 시 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내면적 감정이나 정서를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수사적 장치인 은유를 통해 표현하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시적 느낌과 은유 속에 감춰진 내면적 정서는 다르게 느낄 수 있다.내면적 정서를 은유를 통해 가장 잘 표현했던 김소월의 시에서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시 를 분석해 보았다.[담배]나의 긴 한숨을 동무하는못 잊게 생각나는 나의 담배!내력(來歷)을 잊어버린 옛시절(時節)에낳다가 새없이 몸이 가신아씨님 무덤 위의 풀이라고말하는 사람도 보았어라.어물어물 눈앞에 쓰러지는 검은 연기(煙氣).다만 타붙고 없어지는 불꽃.아 나의 괴로운 이 맘이여.나의 하염없이 쓸쓸한 많은 날은너와 한가지로 지나가라.이 시는 김소월의 시의 특징인 여성적 자아가 아닌 남성적 자아가 등장한 시로서 허무적인 인간 존재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시이다.인간 존재는 하염없이 타들어 가는 담배와 같이 허무하기 그지 없는 삶인 것이다. 담배처럼 소진되어 가는 인간의 삶은 허망하고 허무한 그것이다.김소월의 이라는 시에서 보여주는 것도 바로 이런 허무주의적 인간관이다.인간 존재의 상징인 담배는 어물어물 눈앞에 쓰러지는 검은 연기 에서 검은 연기와 동일성을 이룬다. 또한 다만 타붙고 없어지는 불꽃 에서는 다시 불꽃 으로 반복 확대되어 일체감을 형성한다. 즉 형태로 확대되며 동일성을 이루는 것이다.여기서 인간의 허무한 삶 이 A 가 되는 것이고 담배 가 B 가되는 것이다.그리고 B를 수식하는 검은 연기 없어지는 불꽃 무덤 위의 풀 이 곧 A 인 인간의 허무한 삶 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은유에서 가장 기본적인 형태인 A는B이다 에서 B를 수식하는 동일성을 가진 언어들이 나열해져 결국에는 A를 수식하게 하는 것으로, 은유가 서정시에서 수사학적 장치 역할을 하는 좋은 예라 하겠다.여기서 잠깐 김소월의 시에서의 서정성을 살펴보았다.김소월 시의 특징으로 일관된 주제인 고독한 영혼의 방랑이다.그의 시의 육체를 이루는 임과의 이별에서 오는 한없는 그리움. 그리고 존재의 풍요로움의 근거를 이루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것을 떠받드는 여성적 호흡은 한결같이 영혼의 방랑을 보여주기 위한 것들이다.시에 등장하는 자아의 목소리는 여성성을 띠며 겉보기에는 임이라는 내조 청자를 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스스로의 내면을 향한 것이다.임과의 이별 고향에 대한 그리움 사랑하는 여인 이 모든 것들이 수사적 장치가 되어 고독한 영혼의 방랑 이 되는 것이고 이것들이 다시 민족의 한의 정서 가 되는 것이다. 김소월의 시에서는 이처럼 많은 은유가 쓰여 시의 서정성을 나타내는 시들이 많이 있다.여기서 다른 시인의 서정시를 보자.(1946)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 꽃의 시인 이라 불릴 만큼 꽃을 통하여 이미지를 형상화하였던 시인 김춘수의 시 {꽃을 위한 서시}에서 시의 서정성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꽃을 위한 서시]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너는 이름도없이 피었다 진다.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나는 한밤내 운다.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탑을 흔들다가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릴케(R. M. Rilke)의 영향을 받아 존재론의 입장에서 사물의 내면적 깊이를 추구한 김춘수의 초기시에 해당한다.시에서 화자는 나 이고 대상은 너 가 된다.화자는 꽃 의 내면적 의미의 실상과 본질을 파악하려 하지만 끝내 실패한다. 그러나 강한 의지와 성실한 자세로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노력과 정신 그 자체는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노래한다.여기서 은유로 표현한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 은 알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고 얼굴을 가린 나의 신부 는 다가가고 싶으나 접근을 쉬 허락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무명의 어둠 이라는 절망적 상황에서 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것이다 에서는 실체 파악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것이다.이처럼 서정시에서 은유라는 수사학적 장치가 없었다면 위의 시에서도 단순히 꽃 한송이를 놓고 무슨 실체를 알수 있느니 없느니 뭘 애기 하는지 모를 수도 있다.화자인 나'는 곧 위험한 짐승'이 되고 또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되며 돌개바람'이 되었다 마지막에는 금'이 된다.이처럼 다양한 시어들이 나'와 동일성을 이루게 되어 자신의 정서인 사물의 존재에 대한 내면적 탐구정신을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서정시에서 정서를 은유라는 동일성의 미학으로 표현한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여기서 위의 시들 보다 후에 나온 시 한편을 보자. 서정시가 자아의 정서를 표출하는 것이라면, 시인의 시대적 배경과 사상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일제 강점기에 쓰여진 저항시인 이상화의 나 이육사의 에 닿아 있는 기념비적인 저항시로 평가 받고 있는 시인 신동엽의 대표시를 살펴 보았다.혹자는 이것도 서정시냐고 혹평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상화나 이육사의 시처럼 저항의 정서를 담아낸 서정시에는 틀림 없다고 본다.시인 김수영은 이작품에서 참여시에 있어서 사상이 죽음을 통해 생명을 획득하는 기술이 여기 있다 고 하며 높이 평가 했다.[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사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껍데기는 가라.그리하여, 다시껍데기는 가라.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아사달과 아사녀가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부끄럼 빛내며맞절할지니껍데기는 가라.한라에서 백두까지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이 시에서 화자는 분명히 나와 있지 않지만 반제국주의와 분단 극복의 단호한 의지와 신념에 차 있다.껍데기와 함께 버릴 것은 버리고 남을 것은 남아 남북이 하나가 되는 것을희망하는 시인의 정서는 충분히 나타난다.사월의 알맹이 는 4.19의거를 나타내고 동학년 곰나루의 아우성 은 동학농민운동을 나타낸다. 동학년 곰나루 는 갑오 농민 전쟁이 봉기된 충청도 옹진(공주) 의 지명이다. 향기로운 흙가슴 은 통일된 국토를 나타낸다.
을 통한 미래로의 여행1.서론2030년 우리의 미래는................이 책은 독일의 유명한 저널리스트 게로 폼 뵌(Gero von Boehm)에 의해 독일 ZDF방송이 제작한 유명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글로 옮긴 책이다.2030년 과학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이루어질 미래 사회상을 예측한 과학 전망서이다.유전공학, 생명공학, 마이크로 전자 공학, 생물학등 과학기술의 발전이 우리문명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또한 앞으로 어떠한 영향을 끼쳐 우리의 미래가 편하고 살기 좋기만 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인구의 폭발과 멸종, 신종 유전자의 탄생, 복제인간, 열대 우림의 파괴, 신종 전염병의 등장등 과학이 발전함과 동시에 파생된 여러 가지 문제점등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우리의 미래는 우울한 디스토피아가 될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과학자들과 실제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현재 과학 기술 발전의 정도를 알 수 있게 해주며 30여컷의 컬러 화보는 그현장감을 더해 준다.2.저자 소개게로 폰 뵘(Gero von Boehm):1954∼독일의 유명한 저널리스트.50편 이상의 문화 및 고학관련 다큐멘터리, 인터뷰, 인물평등으로 국제적인 명성과 화려한 수상경력.현재 하이델베르크와 파리를 오가며 살고 있음.3.목 차제1장 : 프랑겐슈타인의 아이들제2장 : 슈퍼 두뇌 네트제3장 : 몬스터. 물렉. 메가도시제4장 : 바이러스의 전쟁제5장 : 지상 낙원을 짓밟는 대량 학살극4.본론오디세이 3000 은 부재 미래로의 여행 처럼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미래의 예측서이다.우린 어린시절 2000년이 되면 달나라도 여행가고 로봇이 뭐든 다해주어 손하나 까닥 않고도 살 수 있는 그런 미래를 꿈꾸어 왔다.그러나 2000년이 지난 현재 2001년을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거기까진 아직 미치지 못했다.그러나 과학의 발전은 과거에 꿈꾸어 왔던 것들이 하나둘 실현 되가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게 하고 있다.과학자들은 인간의 유전형질이 완벽하게 해독되면 생식의학와 복제 기술을 통해 완벽한 인간 을 창조하고, 유전자가 원인이 되는 모든 유전병을 정복하여 생명을 연장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것만이 과학의 발전의 부산물은 아니다.인간 게놈 프로젝트 가 마무리되 인간복제술의 상업적 이용이 횡행하고 유전적 카스트 가 도래할 가능성이 많다.또한 생명의 연장은 곧 인구 증가 폭발로 이어지고 도시팽창이 되며 새로운 도시건설을 위한 열대우림의 개발은 인간 면역체계가 방어할 수 없는 미생물을 우리곁으로 불러온다는 것이다.에이즈와 에볼라는 바이러스 전쟁의 맛보기에 불과하고 신종 바이러스가 등장하는 자연의 반격이 시작될 수 있음을 경고 한다.도시 집중화도 인류의 삶의 조건을 위협하는 일임을 경고 한다.도시에만 유리하게 적용되는 정책으로 거대 도시는 더 많은 영향력을 갖게되 주택, 도로, 상하수도 문제로 포화상태에 이르고 이런 흐름이 계속될 경우 3천만 이상의 미래도시 몰렉 이 2000년대 최대 고민거리가 된다.이책은 인공자궁의 발명으로 인간의 마지막 권리 마져 포기하고 탄생이라는 대업을 기계에게 넘겨주는 날도 머지 않았음을 경고한다.실제로 일본 도쿄의 유명한 준텐도병원의 연구동5층. 이 병원의 산부인과 과장이자 인공자궁 발명가인 구와바라 요시노리 교수가 신체의 외부에서 생명을 탄생시킴으로써 성행위를 통해서만 아이를 낳는 동물적인 우매함 에서 탈피할 꿈을 키우는 곳이다.구와바라 요시노리 교수는 이렇게 전망한다. 당분간은 임신의 마지막 단계만 대신해줄 수 있지만, 20∼30년 뒤에는 수정에서 탄생에 이르는 전과정을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오늘 우리가 과학 기술에 대한 맹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분명 우울할 것이라고 경고한다.현재 쉼 없이 진행되는 유전자 조작연구들과 복제인간의 탄생.............그것으로 파생되어질 윤리문제, 종교적 문제들을 더 이상 뒤로 한 채로는 과학의 발전만이 우리의 미래가 유토피아 가 된다는 환상은 깨어져야 한다. 윤리문제, 종교적 문제들과 함께 과학의 발전을 이루어야 우울한 미래의 디스토피아 를 탈피 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