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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리아복음서는 왜 정경이 아닌가?
    Ⅰ. 마리아 복음서 소개1. 발견 시기와 배경마리아 복음서(The Gospel of Mary)는 2세기에 기록된 문서로 원본은 헬라어로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사본은 세 개가 있는데, 하나는 콥틱어 판으로 5세기경에 만들어졌고, 나머지 두 개는 그리스어 판으로 3세기경에 제작된 사본이다.)콥틱어 판은 19세기 후반에 이집트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 “아크밈”(Akhmim)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독일의 칼 라인하르트(Dr. Carl Reinhardt) 박사가 카이로(Cairo, Egypt)에서 이 문서를 구입하여 베틀린으로 들여오게 되어 현재 이 문서는 베를린 영지주의 고문서(The Berlin Gnostic Codex) 에서 찾아 볼 수 있다.)그리스어 판의 마리아 복음서의 다른 짧은 단편들은 이집트 아래쪽의 옥시링쿠스(Oxyrhynchus)에서 발견되었고, 1945년에는 이집트의 나그함마디에서 고대 영지주의 문헌인 “나그함마디 사본집”(Nag Hammadi Collection, 1945)이 발견되는데 이 가운데서 콥틱어 판 마리아 복음서가 다시 발견된다.)2. 내용 개괄, 소개마리아 복음서의 사본은 제1-4장a 를 포함하는 1-6쪽과 본문 제 5b-8장a를 포함하는 11-14쪽 페이지가 분실되고 없다.) 베를린 영지주의 고문서의 마리아 복음서는 7쪽 4장 22절 중간부터 시작한다.)그러나 7쪽인 4장의 부분으로 미루어 볼 때, 1-6쪽의 내용은 부활한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베드로) 사이에 오간 대화를 담고 있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또한 11-14쪽인 5b-8장a는 5장의 5~7절의 내용으로 보아, 베드로의 부탁(5장 5~6절)에 대한 응답으로 시작되는 마리아의 설교라고 생각할 수 있다.이 마리아 복음서는 초기 기독교에 영향을 주었던 영지주의의 문서로 보인다. 이 마리아 복음서가 왜 정경으로 포함 될 수 없는가 하는 문제를 정경성의 큰 두 원칙인 “전통성”과 “사도성”으로 살펴 보겠다.Ⅱ. 정경성 고찰 1 - 전통성정경성에 대한 기본적인 선행조εωσ)이라 불리워지는 것과의 일치, 즉 그 선정된 문서가 규범적이라고 교회가 인정한 기독교적 기본전통과의 일치하는 가의 질문이다.)1. 무(無)에서 유(有)로의 창조론과 대치된다.마리아 복음서 제1장-4장a의 분실부분 이후의 4장b 부분의 도입부는 “물질은 소멸되는 것입니까? 영원합니까?”)이란 질문으로 시작된다.그러자 구주께서 이렇게 답변하신다. “천지 만물과 형상을 지닌 모든 것,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은 서로 서로 더불어 살아가며 존재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다시 그들 자신의 근원 속으로 녹아들어 가게 될 것이다.”) 이 구절은 영지주의의 창조설을 반영하고 있다.영지주의의 창조는 원시물질(God and orignal matter)에 의해 창조된 세상은 악을 가져왔고, 영혼은 천계를 거치면서 자신이 이전에 전체를 이루는 한 부분 이었던 빛으로까지 다시 올라간다고 보았다. 이것은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창조설인 일명 물질 영원설이라고도 하는 이원론(Dualism)이다.) 마리아 복음서에는 “언젠가는 다시 그들 자신의 근원 속으로.”라는 구절을 통해 영지주의의 창조관을 반영하고 있다.그러나 성경은 모든 물질은 무(無)에서 유(有) 창조되어진 것임을 말한다.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한다. 여기서 창조하시니라의 히브리어는 ‘바라’(ar;B;) 이다. 이 단어는 ‘무에서 무엇을 가져오는 창조’를 가리킨다. 즉 기존 재료 없이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직접적 창조를 강조한다. 성경의 창조는 존재하지 않았던 그 무엇을 만들어내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직접적 역사이다.)2. 죄로부터 구원이라는 전통 구원론과 대치된다.마리아 복음서는 죄로부터 구원이라는 전통적인 구원관과 대치되는 영지주의적 구원관이 나타난다. 이는 앞부분이 소실된 8장b부터 8장 마지막 절 까지 나타난다. 이 부분에서 영혼은 어떤 힘들과 만날 때마다 자신이 가진 인식, 지식을 말함으로 이 힘들로부터 벗어나 차례로 상승한다는 구원관을 나타낸다.) 이 내용은 영혼이 물질계에서 아르콘에 방해를 그노시스(지식, 앎)을 통해 극복하여 구원을 얻게 된다는 영지주의 구원관과 일치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죄가 씻음 받고, 구원받는다는(행4:12) 성경의 구원관과 배치되는 부분이다.또한 마리아 복음서에는 죄에 대한 관점 또한 다르다. 마리아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죄라는 것은 없다”), “자신의 근원으로 향한 본성을 회복하기 위해 모든 만물의 힘의 정수인 선량함이 너희 가운데로 들어오는 이유와 같다”) 라고 말씀하셨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많은 사람에게 대속함을 주는 언약의 피임을 말한다(마26:28) 또한 골1:14; 엡1:7; 행10:43; 롬3:9; 히9:27을 통하여 우리가 죄안에 있고 죄를 속함 받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됨을 보여준다.이처럼 마리아 복음서에 나타난 구원관은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전통적 구원관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영지주의적 구원관이며 이는 마리아 복음서가 정경으로 포함될 수 없는 근거가 된다.Ⅲ. 정경성 고찰 2 - 사도성어떤 책(문서)이 신약에 속할 만한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적용되었던 또 다른 기준은 사도성이다.) 사도성이란, 어떤 책의 저자가 사도나 사도의 동료였는가를 묻는 것이다. 사도들이 활동하던 시대에 사도가 저작했거나 사도들에게서 그 정보를 제공받은 협력자에 의하여 저작된 것은 모두 권위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렇다면, 마리아 복음서는 이 사도성을 충족시키는가?1. 마리아 복음서의 저작 시기와 저자는 누구인가?마리아 복음서(The Gospel of Mary)라고 명명된 이 고문서(Codex)는 기원 후 늦은 4세기, 혹은 5세기경에 제본된 것으로서, 원본은 기원 후 2세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헬라어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저작의 제목은 사본 상에서 이름 지어진 것이며, 이 마리아라는 인물은 우리가 막달라 마리아라고 부르는 인물이다.)이 마리아 복음서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분명하게 밝힐 수 없다. 그러나 이 복음서의 원본이 최대 2세기 후직접적으로 저술한 것은 아니며 다른 사도들의 저작들도 아니다. 현재 신약 성경의 4복음들은 대부분 A.D. 60-95년 이전에 십자가 사건의 생생한 목격자들에 의해 완성된 것으로서 만약, 막달라 마리아가 이 문서의 저자가 되려면 그녀의 나이 최소한 200세가 되어야 한다.위의 내용과 마리아 복음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볼 때 마리아 복음서의 저자는 그들의 가르침을 다수에게 인정받기 위해 도마, 빌립, 맛디아, 유다, 마리아 등의 예수님의 제자들 이름을 갖다 붙임으로 자신들의 사상의 권위를 마련하려했던 영지주의자들)로 추정할 수 있다.2. 막달라 마리아는 사도인가?그렇다면, 이 문서의 권위의 배경인 막달라 마리아는 사도인가? 신약 성경 안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위치와 권위는 어떤가?2.1 마리아 복음서의 막달라 마리아마리아 복음서 안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크게 부각되는 곳은 5장부터다. 예수가 떠나 가신후 겁에 질린 제자들에게 막달라 마리아가 나서서 축복하며 위로하는 장면으로부터 막달라 마리아가 등장한다.눈에 띄는 장면은 5장 5절부타 시작되는 베드로와 마리아의 대화다. 베드로는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자로 묘사하고 있으며, 다른 제자들이 듣지 못한 말씀이 있다면 이야기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입은 여는 마리아는 “그대들에게 그동안 숨겨졌던(hIdden) 것 에 대해 말하겠다")며 자신이 환상 중 만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한다.영지주의자들에 의하면 내적 환상을 통해 “주님을 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남녀를 불문하고 자신의 권위가 열두 제자 혹은 그 계승자들의 권위와 동일하거나 아니면 이를 능가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뒤 부활한 그리스도가 특정 제자들 앞에 계속해서 나타나면서 환상을 통해 그들에게 신의 신비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을 부여했다고 주장한다.) 마리아 복음서에서 마리아는 사도들의 권위를 능가하는 자로 묘사된다.또한 이 부분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영지주의에서 주장하는 구원에 이르는 특 제자들은 예수의 지시에 따라 예수의 심원한 가르침을 비밀로 간직하였고, 이를 영적 성숙함을 입증한 자, 그리하여 영지 즉 비전이 되는 지식에 입문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된 특정인에게만 은밀히 전승했다고 한다. 영지주의란 바로, 소수의 “영적인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비밀스러운 가르침을 의미한다.) 마리아 복음서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그 특정 제자인 것이다2.2 신약 성경의 막달라 마리아이렇게 마리아 복음서 안의 막달라 마리아는 특별한 “영지”를 가진 제자로 묘사한다면, 신약 성경 안에서 묘사되는 막달라 마리아는 어떤 인물일까?신약 성경 안에 막달라 마리아라는 이름은 모두 11회 언급된다. 마태복음에서 세 번, 마가복음은 네 번, 누가복음은 두 번, 그리고 요한복음에는 세 번에 걸쳐서 막달라 마리아라는 단어가 나타난다. 이것을 내용으로 나누어 보면 크게 두 곳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하나는 병 고침과 축사 등의 예수님의 사역을 뭉뚱그려 설명하는 가운데 나타나고(눅8:2-3), 다른 하나는 수난 이야기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장사 지낼 때, 그리고 부활하실 때 등 복음서 마지막 부분에 등장한다.)막달라 마리아를 가장 긍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장면은 부활의 증인으로서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이다. 마태복음에서는 일요일 아침 동이 틀 무렵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갔다가 무덤이 빈 것을 보고 이 사실을 알리러 다른 제자들에게 가던 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전한다.(마28:1-10) 요한복음에서는 이른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갔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말한다.(요20:1-18))즉, 신약성경 안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제자요, 예수님의 수난 가운데 자리를 지키고 부활의 첫 증인이 되는 등 큰 은혜와 사랑을 입은 제자임에는 틀림없지만 특별한 지식을 지닌 사도로 인정받았다거나, 예수 그리스도와의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고 추론할 만한 어떠한 근거도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학위논문| 2013.01.14| 6페이지| 3,000원| 조회(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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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단에 대하여 평가A좋아요
    이단에 대하여....1. 이단이란?- 이단이란 간단히 말해서 기독교에서 나왔지만 기독교가 아닌 변질되고 오염된 것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겉으로 보기에는 사과지만 속은 썩어서 못 먹는 사과와도 같다.성경말씀을 왜곡하고, 역사적 정통교리를 배척하는 집단이다. ‘이단’이란 단어를 직역하면 ‘진리가 아니다’ 혹은 ‘끝이 다르다’이다. 이들은 정통 기독교 신앙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일부 근본교리를 변형시켜서 기독교인들을 현혹한다. 따라서 이단이란 “겉으로는 기독교와 유사하지만 정통 기독교 신앙의 근본진리들 중 일부를 변질시켜 추종하고, 세상 사람들은 물론 기독교인들까지 현혹하는 무리”라고 정의할 수 있다.성경은 이단에 대해서 엄격하게 대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디도서 3:10에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갈라디아서 5:20에는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한다. 베드로후서 2:1에는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 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고 한다. 즉 이단에게 훈계한 후에 듣지 않을 경우 멀리하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이단은 멸망하게 하고 멸망을 자초하는 자들이라고 한다.2. 이단을 판별하는 기준- 성경을 통해서 본 이단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1) 인간의 신격화 (창3:1-3; 사14:9-19; 살후 2:3-4)2) 하나님의 인간화 (롬3:23; 사43:10-11; 446-8; 시90:2)3) 죄를 무시함 (롬 3:23; 요일 1:8-10; 갈3:10; 계20:14-15)4) 성경에 다른 말씀을 , 각 과정마다 2개월씩 소요된다. 이 교과과정을 선교사가 가르치는 성경공부, 혹은 어떤 교수님이 추천한 성경공부 등으로 소개하면서 정통교회 신자들을 추수꾼들을 통해 미혹해 간다. 여기서 6개월 공부하면 완전히 신천지 사람으로 바뀐다고 알려져 있다. 비유풀이를 통하여 새롭게 성경을 해석하는 것처럼 해서 성도들을 미혹하기 때문에, 그들의 성경공부가 어떤 것인지 비교해 보기 위해서 참석하는 것도 위험하다. 마치 독약이 어떤 것인지 마셔보는 것과 같다.③ 이단교리- 교주 이만희 씨는 자신을 사도 요한격인 사명자, 요한계시록의 알파와 오메가, 보혜사 성령, 인치는 천사 등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만희, 계시록의 진상, 도서출판신천지, p.36~37) 그리고 성경의 대부분이 비유와 상징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직통계시를 받는다고 말한다. 구원에 관해서는 자신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친다.④ 포섭방법- 방판자(화장품 외판, 학습지 교습)를 가장한 포섭, 신앙설문지 통한 포섭(대학가 혹은 중고등학교에 신학기를 전후애서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형식, 설문조사 후 QT모임 등 크리스천 모임에 참석을 권하여 포섭),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통한 포섭, 선교사 가장 성경공부, 동아리 활동⑤ 신천지 피해사례- 신천지에 미혹된 아들, 가출한 지 7년째박은구 장로는 작은아들이 신천지에 미혹된 시기를 2005년 말로 보고 있다. 호주에 1년간 어학연수를 다녀온 직후이다. 아들에게 들은 바로는 지하철에서 성경을 읽고 있는데, 40~50대 아주머니가 접근해 꿈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처음 보는 사람이 형이 신학교에 다니는 사실 등을 알고 있어 신기해서 빠지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신천지는 포교 대상자에 대한 충분한 조사 후에 접근하기 때문에 신천지 신도를 처음 만났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작은 아들도 거기에 넘어간 것으로 보이다. 작은아들은 동년 11월 강원도 철원에 위치한 집으로 찾아와 부모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며 무릎을 꿇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임, 타락해버린 자녀들을 선의 자녀로서 다시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참 아버지와 참 어머니가 있어야 하는데 바로 자신이 성령이라는 것● 구원에 대해 : 타락된 인간으로 하여금 창조 목적을 완성케 하기 위하여 창조 본연의 인간으로 복귀시키는 것이 구원임, 인류의 탁락하여 유전된 악피를 가려내어야만 구원을 얻게 되는데 여기에서 ‘피가름의 원리’가 도입됨, 결혼, 즉 가정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왕국을 이 땅에 세우는 가장 중요한 수단임, 예수의 죽음은 사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았고, 구원은 행위에 근거한 과정으로서 우리를 미래의 부활로 이끌어 감. 결혼은 하나님의 왕국을 이 땅에 세우는 가장 중요한 수단임것은 그의 생식기임3) JMS (기독교복음선교회)① 설립배경- 창시자는 정명석이며 1980년 2월 서울 남가좌동에 애천교회를 개척, 자신을 섭리사, 혹은 선생님으로 칭하며 주로 청년층과 대학생들을 포교대상으로 활동교세를 확장하였으며 자신의 집단을 국제크리스천연합으로 개칭하고 자신의 고향인 금산 석막리 일대를 성역 화하였다. 그 후 그는 1983년 예수교 대한 감리회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1986년 9월 예수교 대한 감리회 진리측 이라는 교단을 공식적으로 창설한다. 정명석은 1999년 여신도 납치 폭행 사건으로 사회에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고, 여신도 성추문 등의 의혹에 휩싸이자 해외로 도피했다가 한국으로 소환돼 여성신도 강간, 준강제추행 등과 관련한 죄목으로 대법원으로부터 10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② 신학적 특징과 비판- 기성교회는 성경을 시대성과 과학성을 고려하지 않고 문자적, 교리적으로만 성경을 해석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주장함, 성경을 풍유적,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성경의 본뜻을 왜곡함. 정명석이 요시아 왕처럼 하나님이 보낸 자이므로 기독교가 자기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함. 예수의 신성과 육체적 부활을 부인하고, 예수의 사역은 미완성으로 끝났다고 함.성부, 성자, 성령은 각 위로서 하나가 아니라고 함.인간이 죽은 후에도 구 지킨다.● 구약의 유월적과 절기를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예배 시 여자들이 수건을 써야 하나님께 예배를 받으신다고 주장한다.●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한다.● 자기들의 교적부를 생명책이라고 주장한다.② 피해사례아내가 하나님의 교회에 빠지다.이연중(가명)씨는 2010년 11월, 아내가 하나님의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알게 됐다. 개인 사업을 하는 이 씨는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해 저녁 9시에 퇴근한다. 하루는 중간에 집에 들어왔는데 집에 있어야 할 아내가 없었다. 전화를 해보니 교회에 있다고 했다. 신앙이 없는 이 씨는 어렸을 때 기성 교회에 가본 적이 있어 아내가 다니는 교회도 비슷한 교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교회에 빠는 아내를 겪어보니 일반 교회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2009년 여름, 아내 친구들이 아내가 하나님의 교회에 빠진 사실을 알고 못 다니게 하자 아내는 이미 친구들과의 연락도 끊어버린 상황이었다. 집에 자주 놀러오던 친구들이 놀러오지 않은 것도 그 이유였다. 몇 년 동안 아내가 하나님의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몰랐다. 하나님의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이 씨가 안 시점부터 아내는 완전히 변했다. 기분이 좋았다가 갑자기 우울해지기도 했고, 남편이 하나님의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반대해 너무 힘들다면 별것도 아닌 것으로 화를 내기도 했다. 아내는 사람이 좋아서 다니는 것이지 믿어서 다니는 것은 아니라고 변명하며 남편을 안심시켰다. 한번은 아이가 생선을 먹고 싶어 해서 생선을 사러 가자고 했다. 아내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목적지를 밝히지 않은 것이 그 이유였다. 남편에 대한 신뢰가 깨진 것이다. 이 씨가 농수산물시장에 간다니까 그제야 따라 나섰고, 10분이면 도착하는 짧은 거리를 가는 동안 누군가에게 10통 이상의 문자를 보냈다. 하나님의 교회 신도에게 보고하는 것 같았다. 이 씨는 어떻게 하면 아내를 하나님의 교회에서 나오게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으로 가득했다.거짓말만 하는 아내 때문에 의처증까지 생기며 의양대학교 안산캠퍼스에 재학 했을 때에 일이다. Tommorow라는 잡지를 무료로 나눠주는 학교 캠퍼스의 한 부스에서 박옥수 구원파를 처음 접했다. 박옥수 구원파의 단체 IYF가 잡지를 나누어 주며 “대학생들의 삶의 문제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설문지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명목은 그럴듯했지만 사실은 학생들의 전화번호를 받으려는 목적이었다. 나는 잡지와 함께 설문지를 받아 설문지의 빈칸에 당시의 고민과 전화번호를 성실하게 적어냈다. 설문지를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필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IYF 측의 사람이었다. 설문지를 보고 전화했다며 뮤지컬을 보러 오라고 했다.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서 약속한 장소로 나갔다. IYF측 사람은 설문지에 적힌 나의 고민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불렀다며, 박옥수 구원파 측의 교회인 기쁜소식 인천교회로 데려갔다. 박옥수씨의 저서 (회개와 믿음),(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등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책들을 보여주며 박옥수씨에 대해 소개했다. 또 그곳에서 준비한 뮤지컬도 볼 수 있었다. 뮤지컬은 박옥수 구원파측에 속한 대학생들이 준비한 것으로, 그들은 뮤지컬 준비를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그들이 준비한 뮤지컬을 보기 위해서는 입장권이 필요했다. 박옥수 구원파 측은 학생들에게 여러 장의 입장권을 사게 하고 학생들이 초대한 사람들이 뮤지컬을 관람할 때 입장권을 사용하게 했다. 초대한 사람이 와서 뮤지컬을 못 보더라도 입장권은 환불이 안됐다. 그래서 만약 초대한 사람이 오지 않는다면 “입장권이 환불이 되지 않으니 꼭 와 달라.”고 설득하여 반드시 오게 했다. 뮤지컬이 끝나자 ‘목사’라는 사람이 와서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서 살아가라며 축사를 했다. 그래서 그곳에 처음 갔던 필자도 그곳이 정상적인 기독교단체인 줄 알았다. 축사가 끝난 후에는 다과를 대접하며 박옥수 구원파 측의 봉사단체인 굿뉴스코 해외 봉사단 지원서를 보여주며 가입을 유도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은 말뿐인 해외봉사였고, 실상은.
    인문/어학| 2013.01.08| 10페이지| 1,500원| 조회(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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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교교육 강의자료
    이교에 대하여....Ⅰ. 종교란 무엇인가?- 이교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종교란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보아야 한다. 과연 우리들이 말하는 종교란 무엇인가? ) 학자들은 종교가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줄기차게 노력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 누구도 만족스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모든 종교는 다수의 신이나 하나의 신을 숭배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힌두교인 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신을 숭배하지는 않는다. 불교인들은 인간과 동물들이 있듯이, 신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교인들은 세계를 창조했거나, 세계의 운명을 주재하는 신은 없다고 생각한다. 유교에서는 이런 질문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그러나 각각의 종교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첫 번째, 모든 종교에는 삶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두 번째, 세상과 생명의 탄생에 대한 다채롭고 환상 같은 이야기가 있다.세 번째, 의식에 따라 이루어지는 예배, 기도, 단식, 축제, 무덤이나 가정용 제단에서 있었던 기억과 같은 특정한 행동들이 포함된다. 종교에는 이런 공통적인 특징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굳이 다른 종교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2006년, 덴마크의 한 신문이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평을 실었다. 신문기자들은 만평을 보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분노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전 세계 이슬람교인 들이 분노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거리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고, 구호를 외치며 덴마크 국기를 불태웠다. 서유럽 여러 나라의 대사관 몇 곳은 불타 없어지기도 했다. 몇 주일 동안 이른바 만평 논쟁이 불길처럼 번져나갔고, 뉴스마다 빠짐없이 이 소식을 방송하기에 이르렀다. 이슬람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다면 벌어지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이처럼 이 세상은 우리가 믿는 기독교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다. ()2005년 기준 세계 종교의 비율은 기독교(카톨릭, 개신교 포함)비율 33%, 이슬람교 19.6% 힌두교 12.8%, 후에는 큰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어렵게 젊은 시절을 보내다가 25세 때 카다자라고 하는 ‘돈 많은 과부’ 와 결혼을 했다.그 뒤 삶에 여유가 생겼는지 동굴에서 종종 명상을 하는 시간을 갖곤 했다. 그러다 40세 되던 해에 히라산의 한 동굴에서 명상을 하다가 하늘의 계시를 받게 된다. 마리아에게 예수 탄생을 고지한 가브리엘 천사가 무함마드에게도 나타나 “읽으라”고 요구하면서 무함마드가 ‘하나님의 사자’됨을 증거했다는 것이다. 그 뒤 다양한 계시들이 23년간 계시되었는데, 이슬람 전통에 따르면 글자를 모르던 무함마드는 그 계시들을 암송했다가 지인들을 통해 기록으로 남겼고, 그의 사후 추종자들이 이 계시들을 한데 모아 한 권의 경전 「쿠란」으로 확정지었다(625년).이슬람에서는 쿠란 외에도 모세오경, 다윗의 시편, 예수의 복음서 등이 모두 신성한 신의 계시라고 믿으면서도 이것들은 인간에 의해 수정, 가필, 삭제되는 바람에 신의 말씀을 순수하게 보존하지 못했다고 본다. 가장 순수하게 완벽한 신의 말씀은 무함마드를 통해 계시된 쿠란이라는 것이다. 무슬림에게 이 쿠란은 신의 말씀 그 자체나 다름없다. 쿠란은 이렇게 한 권으로 확정된 이후 전 세계 이슬람 문화의 기초이자 무슬림의 생활 기준으로 작용해 오고 있다.② 이슬람이란 무슨 뜻일까?)이슬람이란 아랍어이며, “신의의지에 복종한다”는 뜻이다. 이슬람교인 들은 신이 단번에 세계를 창조했고, 그 뒤로 세계는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지금 일어나는 일은 신의 의지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라고 믿는다. 비록 지금 자신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 해도 이슬람교인 들은 이를 받아들인다. 이것이 바로 그가 신에게 복종한다는 증표이다.이슬람교의 신성한 언어는 아랍어이다. 아랍어에서는 자음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 개의 자음 s, l, m은 이슬람이라는 낱말을 구성하기도 하지만, 살람(salam)이라는 낱말도 구성한다. 이슬람은 ‘복종’, 살람은 ‘평화’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신의 의지에 복종하는 일부를 종교적 세금으로 헌납한다.④ 이슬람의 여성들 (여성들의 인권유린)※ 코 잘린 아프간 소녀 표지모델로 (연합뉴스 2010-08-04)- 코가 잔혹히 잘려나간 10대 아프가니스탄 소녀의 사진이 미국 시사주간 타임지 표지에 실려 여전히 처참한 아프가니스탄 내 여성 인권 문제를 환시시키고 있다. 타임은 최근호(9일자) 표지기사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인권 상황 조명하면서 아이샤라는 가련한 18세 여성의 사연을 소개했다.아이샤는 작년 남편과 시댁 식구들의 학대와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친정으로 도망을 쳤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탈레반과 함께 그녀를 잡으러 왔고, 그녀는 산으로 끌려가 '즉결 재판'을 받았다. 아이샤는 시댁 사람들에게 하도 맞아서 만약 도망치지 않았다면 맞아 죽었을 거라고 호소를 했지만 '재판관'인 지역 탈레반 사령관은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유죄'를 선고했다. 다른 여성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겠다는 것이었다. 시동생이 그녀를 꼼짝 못하게 붙잡고 있는 동안 그녀의 남편은 칼로 그녀의 코와 귀를 차례로 도려냈다. 아이샤는 고통 때문에 실신해 쓰러졌지만 남자들은 피를 철철 흘리는 그녀를 죽게 내버려두고 자리를 떠났다.다행히 아이샤는 미군에게 치료를 받고 살아나 지금은 카불에 있는 여성 쉼터에서 안전하게 지내고 있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기는 했지만 여전히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탈레반 세력이 건재하고 있어 이곳에서는 아이샤 같은 희생양은 계속 나오고 있다. 탈레반 세력이 강한 남부지역에서는 교사와 같은 사회적 활동을 하는 여성들에게 '나이트 레터'라는 협박 편지가 날아들기도 한다.국제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에 따르면 이런 편지들은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아이들과 동생을 죽이겠다",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너를 죽여주겠다"는 등의 위협스런 협박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비록 지금은 탈레반의 활동 범위가 제한적이지만 9년째 이어진 전쟁에 지친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탈레반과 정치적 화해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다소 고통스럽고 괴로우며 유한하다(덧없다).? 집(集) : 이 모든 것은 유일한 근원, 즉 행복을 소유하고 삶에 집착하려는욕망에서 비롯한다.? 멸(?) : 원인을 제거하면 결과도 없앨 수 있다. 그러므로 욕망을 없애면더 이상의 고통도 없다.? 도(道) : 욕망을 없애기 위해서는 이기심을 버리고 순수한 삶을 영위해야한다.이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팔정도(八正道)’는 계속되는 윤회의 사슬을 끊고 아무런 욕망도 없는 절대지복의 상태인 ‘니르바나(열반)’에 이르기 위한 방법이다.붓다의 가르침은 종교라기보다는 마음의 완전한 평정을 목표로 하는 철학이다. 붓다의 설교는 그의 생애와 함께 기원전 2~3세기경에 글로 옮겨졌다. 경장(經藏), 울장(律藏), 논장(論藏) 등 삼장(三藏)으로 나누어진 이 경전들은 불교의 중요한 기록들이다.③ 제례와 축제- )불교에는 ‘소승불교(테라바다)’와 ‘대승불교(마하야나)’의 두 가지 유파가 있다. 소승불교는 최상의신이 없이, 주로 승리생활에 대한 규칙을 중요하게 내세우며, 대승불교는 붓다의 인경을 신성화하고 힌두교 대부분의 신들은 불교 계율의 보호자로 채택한다. 모든 불교 전통의 공통점은 붓다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경배에만 있을 뿐이고, 종교 축제와 제례들은 각 시대와 나라, 교파에 따라 많이 다르다.모든 불교 신자들이 함께 따르는 축제는 붓다의 탄신일은 음력 4월 초파일이다. 붓다의 ‘파르니바나(반열반, 般涅槃)’는 보통 음력 7월 15일이며, 이 때에는 죽은 자들의 영혼을 기린다. 이날 사람들은 작은 등을 물 위에 띄워, 존경하는 붓다의 ‘극락정토’ 길을 따르는 고인들과 함께 떠내려 보낸다. 대승불교의 붓다와 여러 보살들은 흔히 지방 축제와 관련이 있다. 모든 행위는 붓다와 그에 연결된 신들의 보호 아래 놓여있다.④ 불교에서 쓰는 말인데, 궁금해요!※ )스님의 뜻은 뭔가요?- 특별히 출가해서 붓다의 깨달음을 이루려는 이들을 우리말로 ‘스님’이라 부른다. 일설에 따르면, 스님은 스승님의 줄임말이라고 하지만, 아직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혀자리 잡게 되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의 뜻은 무엇인가요?- )'나무(南無)'는 산스크리트어(범어, 인도의 고대 언어) '나마스(namas: 귀의, 歸依)'의 한자 표기어인대 귀의(歸依) 하다는 뜻, 한자로는 남무(南無)라고 쓰지만 중국에서는 '나모(namo)'라고 발음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나무'라고 발음한다.'아미타불(阿彌陀佛)'은 행복으로 가득찬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부처님의 이름이다.즉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극락세계를 담당하시는 아미타 부처님께 귀의(의지)한다. 즉 "죽은 뒤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해 주세요" 라는 뜻이다.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천개의 눈과 천개의 손을 갖고 있으면서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고 왕생의 길로 인도하는 불교의 보살 중에 하나이다.관세음보살, 괴로움을 없애주고 행복하게 살게 해주소서.Ⅳ. 힌두교① 힌두교의 발생- )힌두교를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스도교나 이슬람처럼 역사적 탄생과 전개가 비교적 명확하고 교리화한 제도 종교들은 어느 정도 체계적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힌두교는 상황이 좀 다르다. 흔히 힌두교를 넓은 의미에서 ‘인도인들의 신앙 양식 총제’라고 규정하곤 하는데, 그것은 힌두교가 그만큼 기원도 오래되고 또 다양하다는 뜻이다. 특정 교리 체계, 체계적 종교 조직, 특정 경전의 차원에서 힌두교를 규정하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실상 ‘힌두 Hindu’라는 말 자체도 기원전 15세기경 드라비디아인들의 문화를 흡수해 인더스 강 유역에서 새로운 문명을 일으켰던 아리아인들에 대해 페르시아의 무슬림들이 ‘인더스 강 유역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12세기경 붙여 놓았던 용어이다. 그런 점에서 힌두교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인도인에게 익숙해진 신앙 양식 총제’를 일컫는 말이다. 명백한 기원, 교리, 조직 등으로 설명해낼 수 있는 여느 제도 종교들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힌두교에는 인격적 유일신 신앙의 모습은 물론 다신교적 자연신 신앙과 같은 모습도 있다. 고도의 철학이 있는가 하면 저급한 듯 한 원시 신앙의 한다.
    인문/어학| 2013.01.08| 9페이지| 1,000원| 조회(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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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한복음 11장에서 나타난 나사로의 죽음과 배경이해
    Ⅰ. 서 론Ⅱ. 본 론1. 향유를 머리에 붓는 이유(요11:2)2. '낮이 열 두 시간?' 이스라엘의 시간 계산법3. 무덤을 돌로 막았다구요? (11:38)4.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라(요11:17)5. 로마인들이 와서 땅을 차지한다고?6. 그 해의 대제사장?Ⅲ. 결 론Ⅰ. 서 론- 우리가 성경을 읽다가도 의미를 잘 모르면서도 무심코 넘어가버리는 구절이 많다. 이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성경 당시의 시대상과 지리 기후 풍습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함께 지내왔던 친구 사이에서는 워낙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기 때문에 친구의 성격과 관심사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한 사람의 인생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에 대해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그 사람의 인생역사를 알아야 하는데, 한 나라의 역사 그것도 2000년 전에 살고 있었던 중동지역 사람들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또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우리는 성경의 풍습과 사회와 문화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만 할 것이다.우리는 요한복음 11장을 통해 그 당시의 사회와 문화 풍습의 일부분이라도 살펴보고자 한다.Ⅱ. 본 론1. 향유를 머리에 붓는 이유 (요11:2)- 요한복음 11: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이 구절 중에 유심히 볼 것은 '향유를 주께 붓고'란 표현이다.왜 '향유'를 사람에게 부었을까? 현대를 살고 있는 특히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향유를 뿌린다'고 했거나, '향유를 발랐다'고 표현했다면 좀 이해되지만, '붓다'는 사전적 의미는 '액체나 가루 따위를 다른 곳에 담다'라는 뜻이다. 즉 예수님의 몸에 향유가 흘러서 적셔지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그렇다면 왜? 마리아는 향유를 예(눅 7:37,38, 요11:2, 요12:3)둘째, 문맥 속에의 구절의 의미파악이다. 요한복음 11장 2절에서 마리아가 머리에 기름을 부은 의미는 문맥 속에서 파악해 보아야 한다. 11장 2절은 과거형으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11장의 사건 이전에 있던 내용을 쓴 것일까? 하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요한복음 12장에서 유월절 엿새 전에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사건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결론은 사도 요한이 이 글을 쓰면서 앞으로 있을 사건을 미리 끌어 와서 11장에서 서술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머리에 붓는 이유를 12장에서 살펴보아야만 한다. 요 12장 7절에서 이 사건에 대해 예수님께서 직접 언급하고 계신다.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관습으로 볼 때 머리에 향유나 감람유 기름을 붓는 경우는 여러 경우가 있었지만, 요한복음 11장 2절에서의 이유는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2. '낮이 열 두 시간?' 이스라엘의 시간 계산법시간은 )하루 24시간의 1을 한 시간을 하는 ‘동안’의 단위를 말하며 어떤 시각에서 다른 시각까지의 동안, 또는 그 길이를 말하는 단위이다. 성경에서 나타나는 시간에 대한 개념은 직선적이다. 시간은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 시작되었고 마지막 때가 있을 것이며(마 24:14) 하나님이 시간의 주관자가 되신다(창1:1).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루의 시작을 일몰 때부터 헤아렸으며(창1:15) 로마인들은 자정부터 헤아렸다. 구약 시대에는 밤을 3경으로 나누어 시간을 구분하였으며 신약시대에는 로마식 구분법을 따라 밤 시간을 4경으로 구분하였다.즉 1경은 오후 6-9시, 2경은 오후 9시-12시, 3경은 새벽 12-3시, 4경은 새벽 3-6이였다.구약 시대의 시간 구분신약 시대의 시간 구분1. 야간 (Night)● 초경(오후6-10시): 애2:19● 이경(오후 10시-오전2시); 삿7:19● 새벽(오전2-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아직 낮 시간이기에 유대로 올라간다 할지라도 제자들이 염려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3. 무덤을 돌로 막았다구요? (11:38)- 로마서 3장 13절에서는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라는 구절이 나온다. ‘무덤이 열렸다고?’ 어렸을 적 보았던 공포영화 ‘월하의 공동묘지’에서는 무덤이 열리는 장면이 나온다. 어떻게 열리냐면 무덤 가운데가 찢어지면서 무덤이 양쪽으로 열린다. 이스라엘의 무덤에 관한 지식이 없다면 무덤이 열렸다는 것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이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무덤과 장례에 대하여 살펴보자.)팔레스타인의 땅은 표면만 파도 바위가 튀어나올 정도로 바위가 많은 곳이어서 땅을 파고 시체를 묻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의 석회석으로 된 얕은 산에는 많은 천연동굴이 있어 무덤으로 사용되었으며 인조로 만든 동굴도 무덤으로 사용되었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커다란 나무 밑에 무덤을 만든 경우도 있었고(창35:8) 얕게 판 고랑에 돌무더기를 쌓아 만든 무덤도 있었다(수7:26). 대개 무덤의 수갱은 둥근 형태였고 맨 밑에 무덤 입구를 막는 큰 돌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임종한지 24시간 안에 시체를 매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한국과 같이 3일장, 5일장, 7일장 같은 것이 없으며, 부자나 가난한자나 예외 없이 죽은 당일에 매장되었다. 죽은 당일에 매장하는 풍습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살아 있을 때 매장지를 미리 확보해 두어야 했다. 그러나 성서시대 대다수의 가난한 평민들은 바위를 준비하지 못하고 땅을 대충 파서 당일에 시체를 묻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뼈들이 바깥으로 튀어나오기도 했다. 이런 평민들의 무덤이 성경 속에 ‘평토장한 무덤’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곳곳에 널린 ‘평토장한 무덤’은 표시가 없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실수로 밟게 되면 접촉한 자를 부정하게 만들었다. 모세의 율법은 시체와 접촉한 자는 7일간 부정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요한은 이러한 사실을 묘사함으로써 그러한 나사로를 다시 살린 그리스도의 신적 권능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유대인의 내세관에 대해 알아보자.)유대교의 내세관을 체계적으로 진술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들의 내세관은 용어나 개념 면에서 정확성과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즉 종파 간에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 또한 시대별로 조금씩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그들의 내세관은 초자연적이고 우주적인 차원과 정치적이고 민족적인 차원의 두 가지 도식이 불완전하게 융합 또는 중복되어 나타나고 있음이 사실이다. 신약과 구약 사이의 중간기 시대에는 삼층 구조적 우주관 속에서 종말론이 전개되었다. 우주는 하늘, 땅, 그리고 스올 또는 게헨나로 지칭되는 지옥으로 생각되었다. 사람들에 따라 스올과 게헨나로 지칭되는 지옥으로 생각되었다. 사람들에 따라 스올과 게헨나는 악한 자들의 심판장소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스올과 게헨나는 종종 혼동되어 사용되었는데 심판의 장소가 때로는 스올로 불리기도 했다. 이 당시에 유대인들은 인간이 몸과 영혼으로 되어 있다고 보았으며 죽을 때에 영혼이 몸으로부터 분리된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들의 종말론적 견해는 다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구약의 기본적인 스올 개념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로 변화되었다. 스올은 영원히 머무는 장조가 아니라 육체를 떠난 영들이 잠시 머무는 중간 장소로 간주되었다. 이렇게 의인이나 악인이 모두 부활한다고 가르치는 자들은 스올을 죽은 자들의 영이 잠시 거하는 일종의 중간적 장소로 간주했다. 그러나 좀 다른 견해는 그들이 이곳에서 머물고 있다가 때가되면 부활하는데 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의인들이며 악인들은 스올에 머문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스올은 악인들의 심판 장소로 여겨졌다. 한편 『에녹서』22장은 좀 다른 견해를 보여 주고 있다. 여기에서는 스올이 세 곳으로 나누어져 나타난다. 하나는 샘물이 있는 장소로 부활한 의인들이 나중에 머무는 곳이며, 다른 하나는 죽은 자들은 먹고 마시며 그들의 아내들과 육체적 관계를 맺으며 사는 생활을 기대했다. 유대인들은 종말의 사건이 있기 전에 유대는 국가적으로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간 동안에 이스라엘은 외세의 억압적 지배로부터 독립하고 백성들은 종교적으로 또한 도덕적으로 쇄신을 단행해야 한다. 이 시대가 지난 후에 황금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이 황금시대는 다윗 시대의 영광이 회복되는 시대로 다윗 가문의 메시아에 의해 다스려지게 된다. 이 다윗 가문의 메시아는 우주적 평화와 번영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율법에 대한 신실함으로 온 세상을 통치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온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임하게 될 것이며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대교 안에서도 종말론과 내세관에 관하여는 일치된 견해가 없었다는 것이 분명하다.5. 로마인들이 와서 땅을 차지한다고?- 요한복음 11장 48절은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라고 말하고 있다.이 구절을 미루어 볼 때 이스라엘은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신약성경을 읽을 때에는 이 시대의 배경이 되는 로마제국에 대해서 공부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는 예수님 당시의 로마제국과 로마제국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우리가 소위 신약 성경 시대라고 말하는 A.D 1세가 전후의 팔레스틴을 포함한 지중해 지역의 패자는 로마제국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약 성경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마제국의 역사도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신약 성경 시대의 로마 역사는 공화정 말기와 제정 초기에 해당된다.① 로마제국의 등장‘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로마가 세계 제국으로 등장한 것은 갑작스럽게 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숱한 전쟁을 통하여 세워진 것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BC 8세기경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 남부 티
    인문/어학| 2013.01.08| 9페이지| 1,500원| 조회(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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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학총론 요약과제
    Ⅲ. 현대 선교 학에 있어서의 선교 개념선교학의 신학적 입장에 따라 선교 용어의 의미가 제각기 다르게 해석되어지고 있다. 현대 신학은 신학의 양극화 현상으로 말미암아 복음주의 진영과 에큐메닉의 선교개념이 서로 상이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이 양자의 간격을 좁히려는 시도가 계속 되어오고 있으나 결과는 그리 신통치 못하다. 3장에서는 선교용어의 성경적 근거를 살펴보고 선교 개념이 왜 서로 상이점을 보이기 시작했는지를 규명하며 오늘날 복음주의 진영 안에서의 선교 개념이 어떤 신학적 입장의 차이로 인하여 갈라졌는지를 살펴볼 것이다.결론적으로 한국교회 입장에서는 어떤 선교 개념을 받아들여야 할지를 선교현장의 사례와 더불어 고찰하여 필자의 선교 개념에 대한 입장을 제시할 것이다.1. 선교 용어의 성경적 근거선교라는 용어는 그 기원이 성경에서 시작이 되었다. 대다수의 선교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요한복음 20:21의 예수님의 ‘보낸다’의 어원인 ‘아포스텔로’와 마태복음 28:19에 나오는 ‘가서’의 어원인 ‘템포’의 뜻이 상호결합이 되어서 선교라는 용어의미를 결정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후대의 개신교회는 이에 덧붙여 사도적 교회의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의미에서 ‘Missio’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여기에다가 선교의 역동성과 선교의 목표를 강조하기 위해서 주님이 주신 대위임령의 선교명령에서 ‘가라’는 ‘템포’의 의미를 결부시켜 선교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이것은 결국 영어의 ‘Mission’, 즉 선교라는 말로 사용이 된 것이다. 이렇듯이 개신교회에 있어서 선교용어는 ‘보냄을 받은 자’와 ‘가라’라는 의미가 결합이 되어서 사용이 되어졌고 이에 따른 선교의 개념이 정립이 되었다. 대체적으로 선교는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정의되었는데 광의적이요 포괄적인 것과 실제적이요 협의적인 것이다. 필자는 양자의 의미가 서로 균형 있게 선교 개념으로 사용이 되어지는 것인데, 즉 선교란 삼위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그의 백성들이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삼위 하나님의 말씀을 입술과 행위로서는 의미가 없다. 다만 문화권을 뛰어넘는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 가장 시급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타문화권에서의 불신 종족들에게 복음 전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선교와 전도를 이해할 때 교회의 선교사명이 광의적이고 실제적인 선교사명으로 인식하여 이 모든 과정이 교회의 선교를 가능케 한다는 총제적인 차원에서 선교를 이해해야 한다.3. 전통적인 선교 개념에 대한 도전교회역사를 통해볼 때 선교의 주된 강조점은 교회설립이었다. 선교에 있어서 교회설립의 중요성을 강조함은 로마교회의 교회관과 병행하여 더욱 강조되고 강화되었다.이러한 교회설립을 중심으로 한 선교는 하나님 나라의 신학이 선교의 목표를 단순히 교회설립으로만 머무르게 안하고 교회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삶의 모든 영역에서의 하나님의 통치권과 주재 권을 증거하고 회복하는 차원에까지 선교영역을 확장시켰으나 교회설립의 목표는 조금도 희미해지거나 부정되지 아니했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적인 선교 개념이 1925년 스톡흘름에서 열린 ‘생활과 사역’(Life and Work) 회의에서 당시 유행하던 사회복음주의의 영향으로 도전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 회의에서 전통적인 선교 개념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교회설립과 영혼구원의 선교는 경제와 산업 문제 그리고 사회윤리와 교육 분야에 이르기까지 확장되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 1952년 윌링겐에서 열린 국제선교협의회 대회에서 화란의 선교학자인 호켄다이크에 의해서 “왜 전통적인 선교이냐?”라는 주제 강연 속에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새로운 선교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1968년 스웨덴의 웁살라에서 선교를 정의하기를 그리스도를 모델로 한 새로운 인간성에의 참여인데 실상 그리스도의 모델로 한 새로운 인간성에의 참여인데 실상 그리스도의 모델의 신학적 내용이 하나님의 선교 사상과 부합이 됨으로 곧 선교는 인간화가 되고 말았다. 오늘날 세계교회협의회의 선교학의 기반으로 자리를 잡았고 이것은 개종을 말하하여도 문화영역이 성령의 구속적인 사역을 먼저 요구하고 있기에 비성경적인 일이 되는 것이다.이렇듯이 성경의 구속적 사역으로서의 전도명령이 문화명령보다 우선권이 있지만 문화명령이 중요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로잔느 언약문은 문화명령을 선교의 본질적인 사명으로 보았고 말씀과 행위의 관계로 보았다. 전도명령 수행은 교회공동체를 통한 말씀의 선포로 나타날 것인데 이것은 교회 안과 밖에서 공히 나타나야 하며 입술의 증언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도 선포되어야 하는 것이다.6. 선교현장과 선교 개념금일의 한국교회의 선교현장에서의 전도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두 영역에서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선교지의 상황이 모든 면에서 낙후되어 있기에 학교 설립이나 병원 건축 등을 시도하게 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최근에 문이 열리고 있는 북방 지역의 선교지 상황이 여기에 해당이 될 것이다.이런 점에서 총제적인 선교 개념은 상당히 매력을 줄 것이고 이런 입장에서 선교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1900년도의 한국교회의 상황은 모든 면에서 열악하고 더 어려웠다는 사실이다. 과거 서구 교회가 수백 년 동안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선교를 하였지만 문화 우월 의식에 의한 일방적인 선교로 말미암아 지도력 배양에 실패하고 문명화를 기독교화의 첩경이라고 보고 온갖 사회 복지 시설과 교육시설 등을 지었지만 그것이 인간 심령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물질적인 문화생활의 향상은 가져왔지만 그리스도는 거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이런 점에서 한국 장로교회에서 실시되었던 네비우스 선교정책은 토착교회의 자급, 자치, 자전의 능력을 최대한 배양하고 토착교회의 지도력을 키우는 데 있어 선교의 총력을 기울였다. 문화명령을 무시하지 않고 그 명령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토착교회의 자율적 생존 능력 바탕 위에서 균형을 맞추면서 토착교회화의 협력 속에서 궁극적으로는 교회가 그 책임을 온전히 맡을 수 있도록 하는 목표에서 실시하였다. 현금의가 복음을 선포했다.그러나 그의 출신배경은 헬라 문화권이였다. 바울은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헬라문화권이 지배하는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났다(행21:39, 22:3).바울은 죽을 때까지 유대 이름인 사울과 로마이름인 바울을 가지고 있었다. 이방인의 사도인 사울이 유대 기독교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이방인의 환경에서 사역할 때 이름이 사울에서 바울로 바뀌고 있다. 바울서신에서 자신이 바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이유는 선교원칙상 이방인에게는 이방이름으로 대하였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사도행전을 통해 사도바울의 선교는 언제나 복음이 먼저였다. 행 16:16~18절에서는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도바울과 누가가 복음전하는 곳에 나타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귀신들린 여종은 하루 이틀동안 바울을 방해한 것이 아니였다. 여러날 동안 계속해서 따라다니며 복음 전하는 것을 방해한 것이다. 만약 바울이 복음보다 병 고침이나 구제 등에 관심을 가졌다면 여러날 동안 그 여종을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항상 바울은 십자가에 복음이 먼저였다. 그는 또한 로마시민 이였지만 복음을 위해서 그의 지위를 사용하지 않고 옥에 갇히기도 하였다(행 16:37). 그러나 한국교회 선교의 실정은 어떤가?한국교회 선교는 개교회 중심의 보여 주기식 선교로 과열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예를들어 ‘우리교회는 100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 든지 ‘우리교회의 비전은 10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이다’ 라는 장기적인 선교의 정책에 의한 선교가 아니라 개교회가 맡아서 선교사를 후원하고 파송하는 식의 선교로 진행되어 왔다.물론 이런 선교정책이 꼭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많은 장점도 있었다.그러나 이런 개교회 중심의 선교를 진행하다보니, 파송을 받은 선교사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고, 그 교회가 선교교회에서 토착교회로 세우기 위한 노력보다는, 후원을 계속 의 사명을 중추적으로 감당할 것을 주장하면서 선교의 목표를 제자 삼는 것으로 하여 기독교화의 선교를 주장하였다.2) 20세기 중엽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삼위일체론 적 접근 방법기독론을 중심으로 한 선교의 성서 신학적 접근 방법은 점차로 삼위일체론 적 관점에서의 성서의 접근 방법으로 바뀌어져 갔다. 영국의 대표적인 선교학자인 레슬리 뉴비긴은 20세기 초까지 선교의 성서 신학적 접근이 구속사저 관점의 기독론 중심인 것을 비판하고 삼위일체론적 관점에서 선교의 성서신학을 연구할 것을 주장하였다.삼위일체론적 선교의 성서신학의 접근은 독일의 신학자인 조지 비세돔의 ‘하나님의 선교’사상에서 찾아보게 되는데 그는 창조와 구속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성을 철저히 인식하면서 이것을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하는 왕국개념으로 발전시켜서 왕국의 통치를 구원사적으로 완성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역할을 논하고 있다.미국의 선교학자인 허버트 칸도 구약에 있어서 하나님의 선교적 역할을 창조주, 보존자, 통치자, 구속자 측면에서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있고 이스라엘의 선택의 의미와 구약적 선교의 특징을 구심력 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에큐메닉 진영의 대표적인 선교학자이며 다수 온건한 복음주이 노선에 서 있는 제럴드 앤더슨은 선교의 삼위일체론적 이해야말로 뉴비긴이 진술한 바처럼 선교학의 균형 있는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3) 20세기 중엽 이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교회론적 관점에서의 접근 방법제 1차 WCC 대회가 암스텔담에서 열렸을 때 신학적 주제는 교회론이 중심이었고 하나님의 질서 속에 보편적 교회의 연합과 협력, 공동의 증인 등이 중요한 논제였다. WCC는 교회론을 중심한 선교의 성서신학을 확립하기 위해서 화란의 선교학자인 요하네스 블라우에게 연구를 의뢰하였는데 그는 결과로서 『교회의 선교적 본질』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블라우는 영국의 로우리의 영향을 받아서 구약에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것은 봉사를 위한 것인데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의 봉사는 보편주의를 내포한 구심력적인.
    인문/어학| 2013.01.08| 11페이지| 1,500원| 조회(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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