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옆집에 사시는 윤봉순 할머니의 일생을 들어 보았습니다. 우선 찾아뵈었을 당시 할머님께서는 옆집 손주가 웬일로 날 찾아왔나...? 하시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옆집이라 자주 놀러가곤 했었고, 길에서 뵈면 꾸벅 하고 자연스레 인사도 드렸었지만, 이렇게 할머니께 할머니 살아오신 이야기좀 들려주세요~ 하고 찾아뵌 건 처음이라 할머니와 나는 잠시 서로 어색해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점차 분위기는 익숙해졌고 할머니께서도 이야기를 풀어 나가시면서 점차 얼굴에 미소도 띄셨다가 한번은 눈시울을 붉히시기도 하셨다.1. 윤봉순 할머니의 일생할머니는 1932년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나셨다. 비교적 가난한 환경에서 힘들게 어린시절을 보내셨다. 오빠와 언니들의 그늘에 가려 초등학교만 졸업해야 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공부를 더 하고 싶었으나 그 당시만 해도 여자의 고등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사회적 분위기와 부모님의 아들에 대한 교육만을 강조했기 때문에 여자는 숫자만 읽고 글자만 깨우치면 된다는 것이 부모님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초등학교도 졸업장만 있을 뿐 가사일과 농사일을 하느라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셨다. 지금도 할머니는 그때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하셨다.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집안일을 하시면서 지냈던 할머니는 1949년 18살의 나이에 양측 부모님들 간의 얘기로 정해진 동갑인 남편을 만나 혼인을 하게 되었다. 당시 남편은 2남 1녀의 둘째 아들이었다. 같은 동내에 살던 분이 아니라 양평군 지제면에 살고 계시던 분이라 할머님은 지제면으로 오셔서 결혼생활을 하시게 되었다. 청운면과 지제면은 요즘 차로는 10분에서 15분이 걸리지만 예전에는 걸어서 다녔기 때문에 2시간정도 꼬부랑길을 다녀야 했다고 웃으면서 말씀해주셨다. 길도 지금처럼 잘 닦인 길이 아니라 울퉁불퉁하거나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는 흙바람이 불기도 했다고...처음 시집오셔서는 친정에 가고 싶어도 워낙 걸어서 다니는 길이 힘농사일을 하지 못해, 먹고 사는 일이 문제가 많으셨다. 전쟁 당시 동안 별로 소득이 없었기 때문에 힘든 일이 많으셨다. 당시 할머니는 시댁 식구인 시할머니, 시할아버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아주버님, 시동생과 함께 살았다. 할머니는 아주버님의 형님이 있는데도 혼자 온갖 궂은 집안일을 도맡아서 해야 했다. 시부모에게는 며느리로서, 아주버님에게는 재수 씨로써 남편에게는 아내로서, 시동생에게는 누나와 같은 역할을 해야만 했고 맏며느리는 아니지만 그 부담이 매우 컸다. 힘든 시집살이 때문에 한밤중에 친정으로 도망을 갈까도 생각해 보셨다고 한다. 그러나 할머니에게 관심이 별로 없으셨던 할아버지는 그런 할머니의 속내를 이해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으로 무심한 남편을 원망도 정말 많이 하셨다고 하셨다.할아버지는 워낙에 술을 좋아하시던 분이셔서 가정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전쟁 중에도 집에 안 들어오시는 날이 종종 있었다고 하는데 불안한 할머니의 마음은 아무도 몰라 서운한 생각도 있으셨다고 한다. 긴박한 한국전쟁은 끝날 줄 모르고 나라는 날이 갈수로 점점 황패해 지고만 있었다. 먹을 것이 없어서 풀을 뽑아먹는 사람들도 있었고 물로 배를 채우는 사람도 많았다.피난을 안간 덕에 집에 조금이나마 식량이 남아서 그나마 다행 이였지만 오래 버틸 수 있을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 가족들 모두 살아갈 생각에 어떠할 일도 할 수 가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먹을 것을 찾아 나가셨던 아버님이 좋은 소식을 알아 오셨다며 좋아 하셨다. 아버님은 면에 나가서 식량을 찾던 중에 라디오를 들으신 것이다. 라디오에서는 미국의 지원으로 남한의 군인들이 올라오고 있다는 것 이였다. 다행스러운 일이였지만 언제 우리가 살고 있는 양평까지 올 것인가가 문제였다. 식량은 떨어지고 당장 오늘부터라도 산에 가서 풀뿌리라도 캐 먹어야하는 것이 현실 이였기 때문이다. 시동생과 산에 올라 먹을 만한 풀뿌리를 찾아 집에 와보니 남편은 어디서 술을 구했는지 술에 취해 신세타령만 하고 있는 것굶주리고 죽어가는 동안 어느 세 전쟁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할머니는 전쟁이 끝난다는 것을 피난 간 사람들이 다시금 집을 찾아오고 죽어가던 사람들 식물들 동물들마저도 다시금 살아나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어느 세 전쟁은 끝났지만 국민들의 생활을 그렇지 못했다. 정부에서는 도와준다고 라디오에서 말을 하고 있지만 할머니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할머니는 전쟁 때 못지않은 생활에 찌들어야만 했다. 그나마 나은 것은 몇 마지기 안 되는 땅이 있었다는 것이다. 살아보려는 생각에 죽고살기로 가족들과 농사를 지었다. 농사를 지은 덕에 그나마 할머니는 남들보다 조금 낫게 살수 있었다. 낫다고 해봐야 입에 풀칠할 정도 밖에는 되지 않았지만... 전쟁 때문에 가족 중 죽은 사람이 있는 가족과 이산가족이 된 가족들도 태반 이였으니 말이다.가정적이지 못했던 남편도 배고픔에는 이기지 못하겠는지 농사에 최선을 다했고 농사덕분에, 배고픔 때문에 우리가족은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살기 힘든 와중에 나는 아기를 갖게 되었다. 아기를 가지면 모두가 행복했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직도 첫째한테는 미안한마음이 들 뿐이다. 산나물을 캐서 시장에 나가 파는 것이 주업이 된 할머니께서는 그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나물을 이마에 지고 시장으로 향하던 남산만한 배에서 신호가 온 것이다. 나올 때가 됐다, 하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드디어 오늘 나오려는 것이다.같이 시장에 가시던 동네 아주머니께서 이상한낌새를 차리고 마을로 뛰어가셔서 동네 총각들을 불러오지 않았다면 우리 첫째는 길바닥에서 태어날 번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동네총각들이 리어카를 가져와 집에서 분만할 수 있었다. 첫째가 태어나자 식구들은 힘든 와중에도 얼마나 좋던지 아버님은 첫째 나오기도 전에 마을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다니시고 남편은 들어오지도 못하고 방문 앞에서 초조한마음에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낑낑대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생에 없지만 남편을 처음 봤을 때 남편은 참으로 효자였다. 부모님에 대우리가족에게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술은 좋아하셨지만 나에게는 항상 자상하고 자하신 할아버님이 돌아가신 것이다. 병을 앓으셨던 것도 아닌데 시장에 나가셨다가 돌아오시던 중에 쓰러 지셨다고 한다. 할머니에게 다 잘해 주셨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잘해주신 분이였는데 할머니께서는 그렇게 많이 울어본 것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하시면서 잠깐 동안 생각에 잠기셨다. 시 할아버님이 돌아가신지 얼마 지나지 않아 풍을 앓고 계시던 시 할머님께서도 돌아가셨다고 하셨다. 두 분 모두 고생만 하시고 가셔서 마음이 아프셨다고... 할머니 댁 가족들의 정신적인 충격이 심했다고 하셨다. 그래도 어떻게 할 것인가! 현실이 중요했다. 할머니는 남들이 나보고 독한 년이라고 욕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시 할머님 돌아가시고 식구들의 나은 삶을 위해 다시금 농사와 나물을 팔기위해 노력했으며 가족들도 노력 했지만... 그러던 어느 가을 평소 도박을 좋아하시던 아버님이 쌀을 팔러 가셨다가 돌아오지 않으셔서 걱정스런 맘에 남편과 함께 시아버님이 자주 다니시던 동네 어른을 찾아가서 아버님이 혹시 어디가신지 아시느냐고 물으셨다고,, 평소 술은 못 드시지만 도박을 좋아하셨던 아버님은 시장터에서 도박꾼들과 도박을 하고 그해 농사를 지어서 벌은 돈과 농사짓고 있는 땅까지 잃으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 당시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고 하셨다. 쌀밥이라도 한 끼 더 해드리고 우리가족 다들 편하게 살고자 했던 할머니의 신념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순간 이였다. 할 말을 잃고 넋을 놓고 있자, 남편도 속이상한지 아무런 말도 없었다. 다음날 저녁에서야 시아버님은 돌아오시고, 술이 고주망태가 되서 돌아오셔서는 죽는다고 낫을 들고 난리를 피우셨다. 시어머님도 마찬가지로 같이 죽자고 난리를 피우셨지만 모두들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할머니와 남편 또한 눈물을 흘렸지만 우리보다 그 땅을 사서 어렸을 때부터 농사를 지어오시던 아버님 어머님은 어떠실까... 하루아침에 우리 재산은 나라간 것이다. 우리들의 실망은 매우 컸슨 일이 터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몇일이 지나고 아버님이 방에서 나오셨다. 아버님의 얼굴을 본 순간 할머니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아버님 앞에 무릎을 꿇고 울어버리셨다고 하시며 그때를 회상하시는 듯 하였다. 아버님도 할머니의 어깨에 손을 얹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시며 며느리인 할머니한테 아무 말도 않으셨다고 하셨다. 저녁이 되서야 가족이 모였고 아버님은 가족들 앞에서 이제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으시겠다고 작두에 손가락을 넣으셨다. 가족들이 다들 아버님을 잡고 울며 말렸다. 그 제서야 아버님은 나는 손가락을 잘랐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잘라버렸어야 하는데 난 마음으로 잘랐다. 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이 말씀을 하시면서 아직도 그때 그 순간이 생생하다며 순간이 굉장히 길게만 느껴지셨다고 하셨다.그날 이후 예전 같지는 않았지만 할머니의 가족은 모두들 하나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한해 두해가 지나고 점점 가족의 생활은 나아지고, 그러던 차에 둘째를 갔게 되었다. 첫째와는 4살 터울 이였지만 첫째 때와의 대우는 천지차별이었다. 첫째는 백일 사진도 백일잔치도 못해줬는데 둘째 때는 달랐다. 모두들 지켜보는 가운데 아이가 나왔고 세상을 처음 본 아이는 여자 아이였다. 아버님은 실망 하셨는지 동네 분들과 약주를 드셨지만 남편은 시집와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며 나를 격려하는 눈으로 바라보면 나의 어깨에 손을 얹어 주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동네사람들의 농사이기는 했지만 남의 농사를 지은 지 벌써 4년이 지났다. 가족에게도 다시금 행복이 찾아오는 듯 싶었다. 남편은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소를 사오고 소는 다시 새끼를 나았다. 이렇게 몇 해가 지났던가! 벌써 첫째가 초등학교를 들어갈 나이가 되었으니...우리에게도 땅이 생겼다는 기쁨이 크셨다고... 남편은 그동안 수확해서 벌은 돈을 모아두었다 그동안 힘들게 가정을 지키고 이끌어 주셨던 아버님이름으로 땅을 사드려야겠다고 말했다. 역시 믿었던 남편은 변하지 않았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
목 차Ⅰ. 서론Ⅱ. 한국의 경제현황Ⅲ. EU의 경제현황Ⅳ. 한국과 EU관계1. 한국과 EU무역관계2. 품목별 교역관계3. 한국의 대EU 수출입 현황4. EU확대에 따른 한국의 투자변화Ⅴ. 한국과 EU향후 전망과 과제Ⅵ. 결론 및 요약Ⅰ. 서론한국과 EU는 1963년 외교관계 수립 이후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양측은 96년 10월에 경제. 통상. 문화. 과학기술 등 제반 분야에서의 포괄적인 협력 관계를 규정하는 기본협력협정(2001.4.1 발효)을 체결함으로써 양자 관계를 21세기를 향한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킨 바 있다. 한 EU 교역 역시 97년 외환위기, 2001년 세계 경제의 침체, 미국 9.11 테러 사건 등으로 다소 침체가 되기도 하였으나, 2002년에는 교역액 이 372억불에 달하는 등 예전 수준을 회복하고 있으며 미국에 이어 제 2위의 대한 투자 지역이자 미국, 일본, 중국에 이은 제 4위의 교역 파트너이다. 또한 한국은 EU의 제 12대 교역국이며 비유럽 국가 중에는 제 5-6위의 교역 상대국인 만큼 한-EU 양측에게는 서로가 서로에게 중요한 경제 파트너라 할 수 있다.최근 유럽연합의 동구권 확대가 가시화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동유럽 국가들의 EU 가입은 유럽의 재통합이라는 점에서 경제, 정치적으로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을 의미하고 있는데 이 확대로 인해 EU는 인구 4억5천만 명, GDP 8조 500억유로 규모의 최대 경제권으로 부상하게 되며 이러한 확대와 심화 작업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유럽합중국(United State of Europe)을 지향하고 있다.Ⅱ. 한국의 경제현황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할 당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점과 위기상황을 예견하고 기존 경제운용의 틀과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는 여론의 얘기가 있었다.즉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넘어 2만달러, 3만달러 시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고와 방법론이 시급하다는 데 인식을 모았던 것이다. 이에 여러 언론사 및 관련단체에서 국내외 아지는 요즈음 마치 경기가 금방 좋아지는 것처럼 홍보하고 있는 정부정책 기조도 문제라 할 것이다. 결론은 경제가 정상화되었을 때도 국제수지가 흑자가 되는 산업구조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고, 그래서 우리의 해외부채가 하루속히 1,000억불대 이하로 내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그리고 우리의 브레이크 쓰루는 수출의 증대이다. 이를 위해서 근본적인 경쟁력증대가 이루어지도록 현재 추진하고 있는 구조개선 사업을 조속히 마무리해야 한다. 문제는 수술이 목표가아닐진데 건강한 몸을 만드는, 다시 말해서 하루빨리 경쟁력을 갖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정부의 기능도 함께 수출을 촉진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환율 금리등 매크로 정책도 이곳에 맞추어야할 것이다. 수출시장 환경이나 가격 조건등 금년도 수출환경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생각하면 이에 대한 국민적인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Ⅲ. EU의 경제현황6개 회원국으로 이루어진 초기 공동체는 성공적인 운영을 통해 수차례의 확대 과정을 거친 결과, 1993년에는 12개 회원국을 지닌 거대한 경제공동체 EU로 탄생하였다. 또한 95년에는 스웨덴, 핀란드, 오스트리아가 EU에 가입함으로써 EU의 회원국 수는 15개로 증가 하였으며,서유럽의 통합을 완성한 EU는 이후 동유럽으로의 확대를 추진한 결과 이제 새로운 중. 동구 10개국의 가입이 이뤄졌다.이번 EU의 확대는 서유럽 국가들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동유럽 국가들의 자원과 노동이 결합하는 동. 서유럽간 보완적인 경제관계를 복원한다는 의미에서 향후 유럽경제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EU의 확대로 그동안 EU 역내에 추진되어 왔던 산업입지의 재편은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예상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EU 역내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에 비해 더 많은 혜택을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생산비 절감을 목적으로 하는 자동차, 전기. 전자분야 등 제조업분야에서는 중. 동부 유럽 국가들을 생산거점화 하려는 전략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또한 체제전화 과정에서 민영화를 인접한 EU 역외 국가로 관심을 돌리게 될 개연성도 있다.EU 확대에 따른 역외국에 미치는 영향 (제 3국 기업이 받는 영향)- 관세율 인하가입시점인 년 5월 1일부터 10개 신규 가입국은 모두 자국 관세율을 폐지하고 EU의 수입관세율을 적용, 통상 신규 가입국의 수입 관세율은 EU 평균 관세율(3.6%)보다 더 높은 수준이었으므로, 결과적으로 제 3국 입장에서는 수입관세율이 낮아지는 혜택을 받음.- 신시장 기회 발생EU 회원국이 되면서 신규 가입국도 정부조달 시장을 개방해야 하므로, 제 3국 기업입장에서는 새로운 시장 개척 기회가 되고 있음.- 불리한 요인도 상존현재 EU가 섬유·의류 뷴야 나 철강 분야에 적용하고 있는 수량 제한 조치가 신규 가입국에도 새로 적용되며, 신규 가입국에 대한 투자 진출 시 투자 인센티브와 같은 보조금 지원을 받기 어려워짐.(현재까지 개도국 으로 인정을 받아 융통성을 인정받았으나 EU 가입으로 선진국 으로간주되면서 이러한 융통성을 인정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 표 4 > EU 확대에 따른 역외국에 미치는 영향{관세율 인하신시장 기회 발생불리한 요인 상존·가입시점 이후 신규가입국모두 자국 관세율 폐지·EU 평균관세율(3.6%)로 떨어짐-> 관세율 하락 혜택·정부조달 시장을 개방->새로운 시장 개척 기회·수량제한 조치가 신규가입국에 적용·투자 인센티브 같은보조금 지원에 난항[ 자료 : KOTRA(2004), EU 신가입10개국(KOTRA 월드비즈니스 가이드, p.644-645 요약 표로 정리 작성자 : 박미향 ]유럽 환경의 변화는 우선 우리 기업에게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데다음과 같다.긍정적 영향- EU의 선진 규정 및 행정절차가 동구권 국가에도 적용됨에 따라 행정 및 통관절차가 간소화되는 등 비용절감효과가 발생.- EU의 무역관련 시술 및 표준이 적용됨으로써 대량생산이 가능해짐에 따라 생산비 절감및 수익증대의 효과가 발생.- 기존 EU 기업들의 중·동구 지역에 대한 신규투자 및 생산기지 이전 등으로 EU의 역내자급자수년간 EU시장 점유율이 답보상태로서 중국의 가파른 상승과 대조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이제 EU는 우리나라의 주요한 교역 투자 파트너 중 하나이므로, 우리 기업은 EU확대에 따른 대EU 비즈니스 환경변화를 주시하여 적극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 특히, 이번 EU확대를 미국, 일본, 중국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EU 수출기반을 늘리는 계기로 활용하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표 8 > 한, EU간 교역동향(억달러, %){2001년2002년2002년2003년2004년1월2월수 출196(-16.2)217(10.5)217(10.5)249(14.7)23.8(20.6)49.8(24.6)수 입149(-5.5)171(14.6)171(14.6)193(13.3)18.6(23.5)37.4(26.8)주:( )는 전년(동기)비 증가율[ 자료: 한국무역협회(www.kite.net) ]2. 품목별 교역관계한국과 EU간 품목별 교역을 살펴보면 기계류, 전기전자, 수송장비(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의 품목이 대EU 수출 중 78%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대EU 수입도 기계류, 석유화학, 반도체, 수송장비, 전기전자 품목이 전체 수입 중 63%를 차지하고 있다.특히 자동차, 조선은 한국과 EU간 교역 불균형으로 인한 지속적인 통상마찰의 요인이 되고 있다. 조선부문의 경우 대EU 수출은 2000년 27억 달러인 반면 수입은 2000년 2천만 달러에 불과해 한국에 대한 EU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동차를 포함한 수송장비 부분에서도 대EU 수출은 매년 30억 달러 이상씩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수입은 그 절반수준인 15억 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자동차의 경우 교역불균형이 상당히 심각한 편인데, 2000년 한국은 EU 시장에서 50만 대 이상의 승용차를 판매, 3.4%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한 바 있으나, 2001년 들어 대우자동차 구조조정문제 등으로 동 지역 수출이 급감 하여 31만 대를 판매하여 시장점유율이 2.7%로 낮아졌다. 이에 비해 EU산 승용차는 1999년에는 1,92810,44912,68314,32515,63416,72821,976SLK---1,2221,7942,7593,4254,1165,1064,8185,804HU2,8763,4864,0614,9676,1537,1188,19311,00114,02815,32319,380RO1,2271,3311,8542,3202,6473,6004,2274,7335,9235,9538,210BU9041,0301,1121,3491,5971,9361,5891,7182,2532,4963,012SLN--1,3823,0613,6754,4264,6445,3775,8285,8556,893계12,00617,54023,34829,98336,29148,27158,27371,48182,89185,253105,637[ 자료 : Eurostat자료 재인용]EU의 대중.동구 투자는 94년 27억 유로에서 99년에는 113억 유로로 증가, 동기간중 4배로 급증- 99년 EU의 대중. 동구 투자가 급격히 증가한 것은 은행 및 통신부문의 민영화에 EU 기업들이 적극 참여하였기 때문< 표 15 > EU의 대중, 동구 직접투자단위 : 백만유로, %{199419951996199719981999전 세 계74,68799,150110,413160,645325,903556,251역외투자24,12945,58047,41284,730198,235259,320중, 동구2,6995,1195,4027,0459,14011,278헝 가 리8392,1021,0731,5651,537-폴 란 드6161,1322,4272,4924,1897,076체 코9741,5941,2991,9161,5762,534슬로바키아*************71210슬로베니아51686499136226불가리아*************6루마니아*************543에스토니아--6273362232라트비아--21464578리투아니아--5752415245[ 자료 : EBRD자료 재인용 ][ 자료 : www.crm.kotra.or.kr> 중.동구 EU 가입 현황 및 대응방안 (200
서 론트러스트라는 책이 현대정치의 이해 리포트로 권장된 도서 목록이였기에 우리는 정치학적인 내용을 기대했는데 이 책은 정치학 책이라기보다는 경제학 책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이 책은 너무나 많은 점에서 경제학 책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에는 너무나 모호한 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책이었다. 저자는 경제 현상을 단지 경제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문화적, 인류적, 사회적인 측면에서 다양하게 고찰하면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해갔다.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경제학의 기본 전제를 이 책이 뒤엎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학에서는 흔히 인간이 합리적이고 자신의 이익 추구를 위해 사는 존재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이런 가정을 부분적으로 부정한다. 100%는 아니라 할지라도 많은 경우에 있어서 인간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고 이익보다는 다른 것들-관습, 사회적인 분위기, 문화 등-을 더 추구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저자는 최근 역사의 종언 의 시대에 지속적인 사회발전을 위해 우리가 고려해야 할 그러나 그동안 숱한 학자들에 의해 간과되어 왔던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의 행동이 단순한 이익이 아닌 여러 가지 문화적 요소들의 복합에 의해서 결정되고 이러한 인간의 행동은 다시 관습, 도덕, 협동심 같은 것들을 만드는데 이러한 것들을 저자는 ‘사회적 자본’이라고 정의하고 그 핵심은 TRUST 즉, 신뢰라는 것에 있다고 한다.본론저자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를 우리가 몇 가지 인용하여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사회 속에서 개인이 계약을 하고 거래를 하는 것을 보장해줄 수 있는 법체계의 확립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 모든 경우에 법적인 제재를 받으면서 조정되는 것이 아니므로 구성원의 자발적인 신뢰와 도덕성은 경제적인 영역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회구성원 간에 신뢰가 부족하다면 개개인은 작은 계약을 하나 맺을 때에도 상대방의 진실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의심을 품고 조사하여야 하고, 법적인 보장을 받기 위해 작은 일도 꼼꼼히 문서화하여야 하는자본이 발달하지 않은 국가에서 이러한 대규모기업의 성공은 박정희라는 지도자의 탁월함과 특이함에서 나온다. 그는 많은 점에서는 비판을 받지만, 만약에 다른 국가에서 지도자가 박정희만큼의 경제적 통제력을 가졌다면 그 나라는 틀림없이 필리핀같이 부패와 부정으로 망하는 길을 걸었을 것이다. 또한 한민족의 역사를 가져온 국가에서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형성된 강한 민족주의도 큰 몫을 해냈다. 한국인들은 국가성장을 할 때 나라를 살리자는 식의 정부 캠페인을 잘 따랐다. 또한 교육을 중시하는 엘리트주의와 이러한 대다수 엘리트들이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을 성공의 길로 여기고 있는 사회분위기도 한 몫을 한다. 또한 한국에서 우리는 최근 다양한 사회중간조직들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학벌과 지역성으로 인한 모임과 사회적 친화를 바탕으로 모인 취미클럽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분단의 결과로 형성된 한국의 군대 역시 강한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기독교적 영향도 굉장히 강하다. 한국은 아시아권에서는 드물게 기독교의 비중이 아주 높은데 기독교인들이 지도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높고 이러한 교회 역시 사회중간적 조직과 유대감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신뢰사회로 분리된 일본과 독일은 중앙권력-군주나 중앙집권권력이-강했던 역사가 없고, 국가와 가정 사이를 이어 줄 사회적 조직이 아주 잘 발달되어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이 두 국가는 세계적인 규모의 회사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이렇게 되게 된 배경과 역사는 아주 상이한데 먼저 일본의 경우에는 다른 유교권 국가들과는 달리 혈연관계 이외에서 자연스럽게 입양을 받아들이는 역사적인 배경- 이로 인하여 혈연과 관계없이 실력에 따른 후계자를 인정하는 문화가 발생할 수 있게 된다, 천황이 존재하지 않았던 적은 없지만 그는 나라의 실권이었던 적이 없고 실권은 항상 막부다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다. 특히 종가문화-혈연적으로 연결되지 않았으나 가족과 같은 집단- 의 발달은 오늘날 회사를 가족같이터 벗어나도록 한다고 주장한다.경제학자들이 말하듯이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며 이성적 방식으로 자신의 이기적 관심을 추구하는 존재 (중략) 하지만 인간은 타인에 대한 의무감을 느끼게 하는 도덕적 측면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기적인 관심과 자주 상충하게 된다.(p.72)따라서 인간은 문화적 바탕 위에 전승되어 온 윤리적 관습에 따라 경제 행위를 추구하기도 하며, 때로는 이러한 행위가 단순한 이익추구의 행위보다 더욱 합리적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이러한 문화적 바탕 위에 건강한 경제의 필수 요건인 ‘사회적 자본’ ― 사람들이 공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단체와 조직 내 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 ― 이 생성된다. 사회적 자본 역시 다른 인적자본, 기술력 등과 마찬가지로 경제발전에 있어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이러한 사회적 자본은 신뢰가 정착되었을 때 생성된다. 이와 함께 사회적 자본의 중요한 구성요소인 자발적 사회성이 중요한 다른 한 축이 된다. 자발적 사회성은 가족과도 다르고 정부와도 다르다. 가족과 정부의 스펙트럼 상의 중간단계로 본다면, 이는 혈연관계로 맺어지지 않은 사람들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중립적이고 중개적 공동체의 개념으로 설명된다. 필자는 이러한 신뢰와 자발적 사회성을 이용하여 그동안 믿어온 효율성과 공동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이러한 요건을 바탕으로 고신뢰 사회를 이룩하게 된다면 오히려 저신뢰 사회보다 융통성 있고 집단 지향적인 방식으로 경제 사회의 효율성을 공동체와 함께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고 자발적 사회성으로 집단주의적이고 공동체 지향적인 일본과 미국사회의 장점을 역설한다. 왜 이 나라들이 경제 효율성을 이룩할 수 있었는지를 그 동안의 편견 ― 일본은 국가 주도의 경제 발전을 이뤄왔고 미국은 철저히 개인주의적인 사회 성향을 바탕으로 경제 질서를 주도해 왔다는 생각 ― 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일본과 미국은 자발적 사회성을 바차이를 두어 이해할 부분은 이탈리아 전역의 경제 경향이 중국의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남부 이탈리아는 ‘무도덕적 가족주의’라 일컬어질 만큼 극단적으로 원자화된 개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중간 결사체가 미약하고 신뢰가 결여된 사회에서 나타나는 비행 공동체 ― 마피아, 카모라 ― 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역사적으로 도시의 독립을 진압하고 전제군주제를 확립하여 사회적 위계를 세웠던 것에 연유해 이해해야 한다. 이곳에서는 교회 역시 자발적인 결사체가 아니라 전제군주를 강화시키는데 이용되었을 뿐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북부 이탈리아는 르네상스시기에 만들어진 공화주의적 전통은 남부보다 높은 사회적 자발성을 낳는 원천이 되었다. 따라서 북부는 상대적으로 보다 거대한 조직이 발생하였다.여기서 특이하게 주목하여할 부분이 ‘테르짜 이탈리아’ 이다. 이곳은 영세한 가족중심의 기업이면서도 혁신적이고 수출 지향적이며 기술력에 있어서도 수준이 높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기술과 지식의 연합이 유리한 지역적 위치라는 점, 소규모의 가족경영 기업이 가진 융통성을 유지하면서도 규모의 경제와 수직적 통합도 지방정부에 의해 보장된다. 또한 소규모 조직만이 가질 수 있는 융통성과 빠른 적응성을 지니고 발전해 왔다. 그리고 한가지 더욱 주목할 만한 점은 사회적 자본의 축척도가 가장 높은 이곳, 중부 이탈리아에서 소규모 가족 기업이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이는 이탈리아의 관계망이 소규모 기업들로 하여금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인과는 달리 전문적이고 기능적인 토대로 이루어진다. 이는 소규모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자발적인 사회적 친화를 가지고 있다. 또한 중부 이탈리아에서는 강한 가족과 강한 자발적 결사체 사이에 필연적인 상호관계가 없다. 즉, 가족적 유대가 강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시민공동체에 대한 의식을 약화시키지 않고 사업에 있어서는 뚜렷이 구별되는 형태를 띄게 된다. 이 ‘테르짜 이탈리아는 북부와 남부 이탈리아의 일종의 대안적 위국은 ‘자발적 사회성’을 갖춘 ‘신뢰’의 사회이다. 신뢰는 경제에 있어 불필요한 불확실성에 대한 확인 작업등을 감소 시켜 줌으로써 경제 비용을 감소시킨다. 일본의 이러한 사회성은 봉건주의의 특성에 기인하고, 독일의 사회성은 길드라는 전통적인 조직에 기반 한다. 그리고 미국은 청교도 정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우선 일본은 눈부신 성장에 있어서 많은 서양 사람들이 일본의 특징을 아시아적 특징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에 대해 필자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일본은 아시아 지역의 경제 기반적인 문화적 특성과는 달리 오히려 서방국가의 높은 신뢰의 사회와 유사한 근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무수히 많은 소규모 가족기업을 가지고 있는 점에서 중국과 비슷하지만 이는 큰 회사와 계열관계로 이루어져있다. 따라서 서로 협상하기 위해 상호 도덕적 책임을 강요하고 오히려 수직적으로 통합된 종속적 공급자로 보는 것이 옳다. 일본의 계열 관계망을 통해 작은 회사들이 큰 회사와 합작하는 능력이 중요하지만, 일본 경제에서 기술적이나 양적인 면에 있어서 대기업이 주로 지배한다는 점은 자명하다. 또한 일본은 경제발달에 있어 초기의 가족경영단계에서 빠르게 전문경영으로 대체 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일본의 가족의 형태가 중국의 사회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고 따라서 자발적 사회성이 높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중국의 유교적인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 영향력은 훨씬 미약하다. 입양에 대한 열린 태도, 장자상속권에 있어서도 보다 독립적이고 소규모 가정으로의 독립경향은 중국과는 달리 대가족의 재산이 2~3세대에 의해 탕진되지 않았다. 또한 어떤 면에 있어서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가정이라는 생각은 가족을 뛰어 넘은 자발적 사회성을 이루어 내기 유리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풍토를 바탕으로 일본 기업은 평생 고용과 고도의 공동체적 연대를 특징으로 하는 것을 이루어 내었다. 일본에서 평생 고용이라는 제도가 이제 성숙의 시기를 걷는 것은 일본의 문화적 관계 내에서 이해되어야 있다.
{Ⅰ.세계 자동차 산업 변화1.최근 세계 시장 동향2.세계 자동차 시장의 전망3.국가별 자동차 생산 통계 분석Ⅱ.독일 자동차 시장 발전과정1.현재 까지의 발전과정2.브랜드별 발전과정 및 전망- BMW- 벤츠- 폭스 바겐3.독일 자동차 시장 최근 동향 및 전망Ⅲ.한국 자동차 산업의 동향1.한국 자동차 산업 성장 추이2.한국 자동차 산업 전망Ⅳ.독일 자동차 산업이 주는 시사점과 영향1.미래의 자동차 산업2.독일로 본 한국 자동차 산업의 비젼Ⅰ. 세계 자동차 산업 변화1. 최근 세계 시장 동향현재 자동차 시장 산업에서는 경쟁 이라는 말보다는 생존을 위한 전쟁 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자동차 산업의 선두주자 미국, 독일, 일본 이들을 바짝 뒤쫓고 있는 한국과 중국 이들 나라의 밀고 밀리는 경쟁구도는 그야말로 숨 막히고 피 말리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벤츠 회장 위르겐 E. 슈렘프는 '자동차 산업을 바꾸는 역사적 합병'을 선언하고 미국의 '빅3'의 하나인 크라이슬러와 합병하여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벤츠가 다임러 크라이슬러로 완전히 탈바꿈한 후 거의 2년 사이에 세계 유수의 자동차 기업들은 마치 열병을 앓는 것처럼 연쇄적으로 합병이나 자본제휴, 기술협력 관계를 맺으면서 이권 빼앗기 게임에 열을 올렸다.규모와 기술면에서 강한 기업 문명의 변화에 미리 대처와 준비하는 앞선 기업들만이 살아남고 있으며 그렇지 못한 기업들은 거대기업, 선두기업들에 의해 합병되거나 도산하는 위기에 처하게 되고 이다.1)완성차90 년~ 00 년 동안은 자동차산업에서 인수합병의 시대였음-규모의 경제 추구를 위해 세계적인 자동차메이커들간의 M&A 와 지분인수가 다수 이루어졌으나, 인수합병으로 인한 시너지효과는 불확실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음- 99 년 르노의 닛산인수가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으나, 94 년 BMW 의 Rover 인수는 실패하였으며, 98 년의 다임러벤츠-크라이슬러 합병은 좀더 평가가 필요함최근의 세계적인 수요위축과 공급과잉에 대응하여 세계 주요메이커들은 기업내부 구조조정에 주력하고 있음-와 위인에 대한 설명을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인 물-칼 벤츠 [ Karl Benz ] 1844 - 1926 , 독일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자동차 발명으로 최초의 특허를 받았던 독일의 엔지니어이다. 무역업이 활발이 이루어졌던 독일의 카를스루에(Karlsruhe)라는 도시에서 출생했다. 유복자로 태어났지만, 생활력 강한 어머니 덕분에 고등학교, 기술전문학교(Polytechnic College)에서 안정된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과학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특히 기술전문학교에서 처음으로 내연기관의 존재를 알게 되는데, 이를 이용한 자동차의 개발은 그의 평생의 프로젝트가 되었다. 힘든 경제적 여건 속에서도 계속 투자가들을 찾아 가며, 또 아내 베르타 링거(Bertha Ringer)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아 가며 연구를 계속했다. 당시 4행정 내연기관은 니콜라스 오토(Nikolaus Otto)라는 사람이 특허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개발에 제한을 받다가, 동시대 인물인 고틀리프 다임러(Gottlieb Daimler)가 오토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한 이후 자유로이 4행정 내연기관을 연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1885년에 세계 '최초'로 4행정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3륜차를 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때 '최초'라는 의미는 정확히 말하자면, 고틀리프 다임러가 시기적으로 좀 더 빨리 제작했지만 특허신청이 늦었기 때문에 '최초로 특허를 받은'이라는 의미였다. 고틀리프 다임러와 동시대 비슷한 시기에 현대문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어 낸 칼 벤츠는 1929년 8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틀리프 다임러 [ Gottlieb Daimler ] 1834 - 1900 , 독일{{고틀리프 다임러는 독일의 작은 도시인 숀도르프에서 4 대째 제빵일을 하고 있던 요하네스를 부친으로 하여 태어났다. 1948년 유럽 각지에서 일어난 혁명의 영향으로 군대 관련 직업의 수요가 늘자 고틀리프의 부친은 그에게 총포제작 견습생일을 시작도록 하였다. 1852년까지 총포공의 회장이 주주들에게 합병기업에 날개를 달아주겠다 고 한 약속을 지킨 셈이었다. 그러나 올해 3분기 수익이 지난해에 비해 90% 이상 줄고 적자의 절반 정도가 미국 크라이슬러의 부진에서 비롯되자 독일 업계에서조차 합병이 효과적인가 라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마이클 피스터 홍보담당 부사장은 세계 자동차시장은 현재 과잉공급 상태 라면서 시장변화에 빨리 대응하는 몇개 거대기업만이 살아남을 것 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아시아 시장 등 신흥시장 공략을 위해 적절한 제휴나 연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롤스로이스와 베엠베 등의 브랜드를 가진 고급차의 대명사 베엠베는 지난해부터 심각한 판매부진을 겪자 올해 로버와 랜드로버를 포드와 피닉스에 매각했다. 덕분에 올해 5월 세계시장에서 7만5천대의 자동차를 판매해 사상 최고기록을 세우면서 재약진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영업부 페이션 수석부사장은 유가인상으로 내년도 시장 전망이 밝지 않다 며 우려감을 비추고 있다. 베엠베는 로버 등을 매각한 뒤 무리한 합병은 하지 않는다 며 홀로서기 전략을 밝혔다. 한편, 아우디, 벤틀리, 람보르기니, 스코다 등의 명차 브랜드를 자랑하는 폴크스바겐은 지난해 소형차에서 다소 호조를 보였지만 고급형인 아우디에서 부진해 전년대비 4.9% 성장에 그쳤다.녹색환경당이 연합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독일은 유럽에서도 환경규제가 강한 나라에 속한다. 97년부터 배기량과 배기가스 배출량에 따라 자동차세를 과세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연료가격을 4% 인상했다.90년대초부터 무공해 자동차개발에 투자비를 늘려온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우주선 제미니 5호에서 사용된 기술을 활용한 메탄올식 연료전지차를 개발해 이 분야에서 세계 어떤 기업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 97년 미니밴 전기자동차를 발표한 데 이어 99년부터 니켈수소식 연료전지 전기자동차를 개발했으며, 현재 수소엔진 개발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폴크스바겐도 94년 이미 전기자동차를 개발했으며 올해부터 메탄올식 자동차 실험운행에 들어갔다. 지난 87년부터 연구개발(R&D)에 과학스터로 경이로운 성능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스타일링 면에서도 507의 자태가 여전히 남아있다.이에 BMW 사장은 도요타와 혼다는 휘발유 엔진과 전기모터를 함께 동력으로 쓰는 하이브리드카를 테마로 잡고 있다. 미국 GM과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수소전지(FUEL CELL) 자동차를 준비 중이다. 우리는 수소를 내연기관에서 폭발시켜 힘을 얻는 하이드로겐 자동차의 개발을 완료했다. 이 차는 공해가 전혀 없으면서 휘발유 차량과 똑같은 최고 속도를 낼 수 있다. 또 기존 주유소를 약간 개조하면 수소를 판매하는 데도 문제가 없다. 폭발하기 쉬운 수소를 안전하게 저장하는 문제도 해결됐다. 오는 2007년부터 수소를 쓰는 7시리즈를 시판할 계획이다. 라고 말했다.- 벤츠 -{{국가: 독일설립연도: 1886설립자: 고틀리프 다임러/칼 벤츠Homepage: {http://www.mercedes-benz.com'벤츠=최고급차' 라는 등식이 어색치 않을 만큼 벤츠는 일상의 언어가 되어 있다. 수많은 브랜드 중 하나일 뿐인 '벤츠'가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자동차로 자리잡게 되기까지는 끊임 없는 도전과 위기를 철두철미한 장인정신과 '안전'이라는 철학으로 돌파해 온 그들의 지난한 역사가 있다.메르세데스 벤츠는 현재 다임러 크라이슬러사의 승용차 브랜드 중의 하나이다. 1998년, 독일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인 다임러 벤츠사와 미국 빅 3 중 하나인 크라이슬러사의 합병으로 세계최대의 자동차 회사인 다임러 크라이슬러사가 태어났다. 다임러 벤츠사는 1926년 독일의 다임러사와 벤츠사가 합병하여 생긴 독일의 대표적 자동차회사이다.다임러고틀리프 다임러(GOTTLIEB DAIMLER)는 1834년3월 17일 독일의 숀도르프에서 태어나 1900년 3월 6일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동차와 함께하며 세계 자동차 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그는 1886년 4륜 마차보디에 1기통 462cc엔진을 얹은 Motorwagen을 만들었고 1890년에는 슈트트가르트 인근에 DMG(Daimer Motren Gesellsc델 체인지를 실시했는데, 더불어 모델 이름도 단순한 멋이 풍기는 A4(아우디 80), A6(아우디 100), A8(V8)로 바꾸었다. 2002년 A시리즈 외 스포츠성을 강조한 S3, S6, S8 시리즈가 생산되고 있으며, 영화에 먼저 소개되어 친숙한 TT 쿠페와 로드스터, SUV인 올로드 콰트로(Allraod quattro)가 있다.1980년에 발표된 아우디 콰트로와 1994년에 선보여 현재까지 판매되고 있는 A8은 '세기의 명차 100선'에 당당히 들어 아우디의 명성을 더욱 드높여 준다.a 아우디의 기술독일에서 벤츠 다음 가는 역사를 자랑하는 아우디는 1931년에 세계 최초로 앞바퀴 굴림차를 개발했을 만큼 뛰어난 기술을 가질수 있었던 것이다. 더 빠르고 안전한 기술의 아우디 겉으로 보기엔 그리 특별한 것도 없는 이 차를 자동차광들이 좋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보 기술이 앞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우디를 보통 '기술의 아우디' 라고 부른다. 아우디를 독보적인 존재로 만드는 또하나의 기술은 승용차에 4WD방식을 쓴 것이다. 70년대만 해도 2.0l 미만의 소형차만 만들던 아우디는 작은 차로도 아우토반에서 벤츠나 BMW와 겨룰 수 있는 고성능차 만들기에 열중했다. 75년부터 개발된 콰트로 방식은 80년 가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마침내 풀타임 4WD 방식을 쓴 아우디 콰트로가 선보이며 빛을 보게 된다. 아우디 콰트로는 80시리즈를 기본으로 직렬 5기통 2.1l 터보 160마력 엔진을 얹었다. 그 결과 가속성과 코너링 성능이 향상되었을 뿐 아니라 빗길과 눈길에서도 안정된 달리기가 가능해졌다. 아우디 콰트로는 80년대 중반 WRC에서 각종 타이틀을 휩쓸면서 아우디의 명성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b 아우디의 주요 모델아우디는 94년에 전차종에 걸쳐 모델체인지를 했다. 아우디 80은 A4, 아우디 100은 A6, V8은 A8로 모델명을 바꾸면서 새롭게 단장되었다. 97년에는 뉴 A6가 발표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아우디는 독일 이외에 중국, 헝가.
요즘 기업윤리에 대한 관심이 매우 많아졌다. 기업윤리는 기업이 이윤 추구라는 본래의 목적 수행과 동시에 기업의 이해 관계자인 고객, 협력 회사, 주주, 종업원, 사회 등이 공존·공영할 수 있도록 기업 경영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윤리 경영은 임직원들이 윤리적인 판단과 실천을 할 수 있도록 기업이 구체적이고 지속적으로 윤리 경영 프로그램 운영 등 제도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또 윤리 경영의 가장 기본이 되는 윤리적인 업무 처리는 기업 운영에 관련돼 있는 모든 구성원들이 올바른 기업 운영을 위해 각자가 마땅히 해야 하는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어떤 일을 처리할 때 첫째 법규정 및 회사 규정에 맞추고, 둘째 주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투명하게 수행하며, 셋째 생산성이 향상될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일 처리를 하면 되는 것이다.또한 기업 윤리가 기업 생존을 좌우하는 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도덕성 논란에 휘말린 기업이 시장의 신뢰 상실에 따라 파산에 이르는 사례도 급속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최대 종합 에너지 회사인 엔론(Enron)의 파산이 대표적인 사례다. 초우량 기업인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나 타이코(Tyco) 등이 실적을 부풀렸다는 루머가 증권가를 떠도는 순간 주가가 곤두박질한 것도 윤리 경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 준다. 윤리 경영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인이자 생사를 가름 하는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내기업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다.우리나라도 최근 재계의 최대 화두 가운데 하나가 ‘윤리경영, 정도경영 ’이다. 정도 경영이 곧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과거에는 단순히 구호 에만 그쳤지만 이제는 ‘실천하지 않으면 않되는 ’지상과제가 됐다. 국내외 유수 기업들이 회계부정 사건에 연루돼 좌초되면서 ‘영리 최우선’의 기존 경영 패러다임도 이제는 ‘투명성’과 ‘도덕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기업의 경쟁력 수준을 매기는 척도 가운데 하나로 이제는 가격, 튼튼한 재무구조와 높은 수익성으로 알짜 기업으로 정평이 나있다. 20년 연속 흑자 기업이면서 다른 시멘트 회사와는 달리 IMF의 위기도 어렵지 않게 극복했을 정도로 탄탄한 내실을 갖추고 있다. 1961년 1차 경제개발계획과 때를 같이해서 국내 순수 민간자본에 의해 설립된 한일시멘트는 연간 715만t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국내 시멘트 회사로는 두 번째로 역사가 오래된 한일시멘트는 2002년 4849억원의 매출에 297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다른 기업들이 외형 성장과 사업 확대에 전력을 기울인 데 비해 한일시 멘트는 규모보다는 내실 위주의 경영에 주력, 안정된 재무구조와 수익성 확보에 회사 경영의 틀을 맞췄던 것이다. 시멘트라는 단위당 이윤이 크지 않은 사업을 하면서도 무모한 사업 확장을 자제하는 가운데 생산성 향상을 통한 원가절감 노력 등을 통해 기업을 매우 안정적으로 운영해 왔던 것이다. 부채비율은 2002년 40% 정도에 불과하다. 유보율도 1700%를 상회 할 정도로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가지고 있다.한일시멘트는 설립 8년 만인 69년에 이미 기업을 공개할 정도로 앞선 모습을 보여 줬다. 당연히 회계처리와 납세 부문도 투명할 수밖에 없었다. 기업을 공개하기 전에 이미 당시 세무당국이나 금융기관으로부터 ‘공개법인 아닌 공개법인’이라는 칭호를 받기까지 했다. 초기 공장 설립 시 경쟁 입찰로 업자를 선정했고 설립과 동시에 공개채용 방식을 도입하는 등 기업 경영이 항상 공개적으로 이뤄지도록 해 왔다. 회사가 받은 상의 대부분도 조세와 관련된 것들이다. 납세의무 이행 국무총리 표창(74), 조세의 날 동탑산업훈장(86), 조세의 날 대통령 표창 (92) 등이 그것이다. 또한 납세신고가 성실하다고 해서 정부로부터 ‘녹색법인’으로 지정받기도 했다. 창립자인 고 허채경 회장은 회사가 사원의 모든 부문을 책임져 줘야 한 다는 의견을 늘 피력해 왔다. 74년 우리사주 조합 결성 시 허채경 당시 사장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 중 상당분을 사원들에게 무상 분배해 이윤 이 BI 프로젝트에 의해 구매에서 판매, 인사 등 일련의 비즈니스 프로세스가 대폭 단축되고 빨라지게 됐다. 생산관리와 재고 파악, 효과적인 품질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한 최적의 환경 안에서 이뤄지게 됐다.두 번째 윤리적인 기업은 윤리적 기업으로 유명한 유한양행이다. 1926년 유일한에 의해 설립된 제약회사인 유한양행은 유일한 회장의 기업은 나라와 민족의 것이고 국민의 소유이다. 라는 기업 철학이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유한양행은 1962년 임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약회사로서는 최초로 주식을 상장해 회사를 공개했다. 특히 공개 과정에서 유일한은 일부 간부들이 회사의 실제 자산이 발행 주식의 총 액면가보다 6~7배가 많으므로 공개 전에 무상증자를 실시하자 는 물타기 증자 를 강력 주장했음에도 그렇게 하면 회사와 주주는 이익을 볼 수 있지만 새로 주식을 사는 사람들은 이익을 볼 수 없다고, 우리 주식을 가치 있게 만들어 주식을 산 사람들이 돈을 벌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며 「기업의 생명은 신용이다.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액면가대로 상장했다. 그리고 현재 회사 직원 가운데 창업주인 유일한의 친인척은 단 한 명도 없다. 유한양행은 전문 경영인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기업과 개인적인 정실은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며 전문 경영인 제도를 도입했다. 기업을 키우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경영을 가장 잘하는 사람에게 회사를 맡겨야 한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유한양행의 경영권을 주주총회를 통해 전문 경영인에게 넘긴 것도 바로 이 이유에서였다.무엇보다도 일제시대부터 유일한과 유한양행을 한국의 대표적 기업인과 기업으로 꼽게 만든 것은 기업을 정치 바람에 휩싸이지 않도록 하겠다는 그의 경영 철학이었다. 그는 태평양전쟁 당시 미국 육군 전략처의 한국 관계 책임자를 맡았고 초대 상공회의소 회장까지 역임했다. 미국 유학 당시 맺은 인간관계 등을 고려할 때 미군정 당시 마음만 먹으면 이 배경을 이용해 큰 사업을 벌일 전부를 재단법인 한국사회 및 교육신탁기금 으로 기증한다고 남겨 화제도 되었다. 유한재단은 배당금과 기타 수입금을 사회사업에 사용했으며, 1971년부터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했고 그 동안 보건장학회와 유한공고, 유한대학을 지원했다. 유한양행은 우리 사회에서 부가 상속되지 않고 사회로 환원되는 최초의 사례를 남겼다. 유한양행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 전문 경영인 제도, 정직한 납세, 정·경의 철저한 분리,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 등 윤리적인 기업가인 유일한 회장의 정신을 본 받아 기업 윤리와 기업 이윤 창출이라는 두 목표를 적절히 조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윤리적인 기업이다.비윤리적인 기업의 예로는 SK글로벌을 들 수 있다. SK글로벌기업의 비윤리적 행위로 대표되는 예는 분식회계를 들 수 있다.한때 매스컴을 장식하는 SK글로벌 분식회계사건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1조5000억원대의 분식회계 규모도 규모지만 IMF관리체제와 대우사태를 겪으면서 기업의 투명성제고를 위해 온 국민이 기울여 온 노력을 일거에 무위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재 계 3위라는 SK의 상징성으로 국가신임도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비윤리적기업은 궂이 말하자면 SK그룹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기업문화풍토를 종합하여 말해야 할 것이다. 그로 대표되는 것이 분식회계인데 분식회계란 한마디로 법률상의 규정과 기업회계기준에 위반해 이뤄진 회계, 즉 위법·부정 회계를 말한다. 예전에 문제됐던 SK글로벌과 같은 상장회사의 경우 현행 법률에 따라 대표이사 명의로 작성된 재무제표는 이 사회 승인과 함께 감사 또는 감사위원회에 의한 내부감사와 외부감사인 에 의한 외부감사를 받아야 한다. 이런 절차를 거친 재무제표는 금감위 등에 제출돼 행정당국에 의한 감독까지 이뤄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분식회계는 대표이사나 오너를 중심으로 측근 몇 명이 저지른 단순한 기업회계 상의 부정이 아니라 부정한 경영자와 이를 감시 ·감독해야 할 감사조직과 행정감독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이 빚어낸 합작품인 것적극적 소비자 피해 규제에 나서지 않고, 자사에서 파악한 일부 소비자에 대해서만 개별 접촉하여 제품 교환 및 환급 등 보상을 실시해 왔음을 LG전자 직원들이 내부고발자 센터인 [공익의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들]에 제보하였다. LG전자는 위 문제가 발생한 사실을 인정하나 제품 하자가 아니라 당시 기술 수준의 한계로 인한 문제라고 주장하며, 문제가 된 제품 중에서도 초기 출시 제품 약 20,000여 대에만 국한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법적으로 리콜 사안이 아니므로 공개 리콜 요구에는 동의할 수 없으며 이미 문제점이 있는 초기 제품 구매 고객 대다수에게 보상을 끝낸 상태라고 주장하였다. [공익의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들]의 고객 설문 조사 결과, 이러한 문제가 초기 제품에만 국한된 것이라는 LG측 주장이 거짓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에 [공익의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연합하여 진상 규명과 보다 적극적인 보상 대책 강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LG전자와 [함께하는 시민행동], [공익의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들] 3자 공동으로 전문 조사 기관에 의한 고객 설문 조사를 재 실시하여 이 결과에 따라 보상 문제 등을 재검토하기로 합의하였고 이의 실무 진행은 LG전자가 맡기로 했다. 위의 공동 조사가 나올 시점에서 LG전자가 [공익의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들]과 관련된 언론 보도를 문제 삼아 공동 조사 중단 등 협의 중단을 일방적으로 통보하였다. 하지만 문제시된 신문의 기사 내용은 LG전자의 다른 제품인 완전 평면 모니터, 휴대폰 단말기의 문제점이 지적되면서 같이 기사화 된 것이며, 그 내용은 이미 [공익의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들] 홈페이지 게시판에 있었던 것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LG전자가 김치 냉장고에 하자가 있는 것을 알고도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고 그 사실을 숨긴 채 특별 사은 행사 라는 이름으로 상위 등급의 모델로의 추가 부담 교환과 유사 모델로의 무상 교환을 실시하였다는 것이다. LG전자에서는 고객 추가 부담 교환은 희망자에 한했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