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知常의 違和된 삶과 그 詩的 形象化-을 중심으로-1. 머리말한문학 연구 초반부터 소외되었던 고려 전기 한문학이 7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개별작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학계의 이러한 연구동향에 따라 고려 전기의 대표적 문인인 鄭知常(?~인종13·1135)과 그의 문학에 대해서도 그간 상당한 연구성과가 거두어졌다.) 정지상 참고문헌(1998년 2월 기준 지금까지 이루어진 정지상 관계논문)● 鄭知常(?-1135)두창구, [정지상의 생애], {어문연구}15-2(일조각, 1987)한형구, [정지상과 김부식의 시], {심상}162(심상사, 1987)박병완, [정지상론], {어문연구}15-1(일조각, 1987)박성규, [정지상의 시세계], {현대문학}432(현대문학사, 1990년 12월)이종문, [정지상의 시세계], {한문학연구}6(계명한문학연구회, 1990)성낙희, [정지상의 시세계], {국어교육}55.56호(한국구어교육연구회, 1986)두창구, [정지상의 한시고], {논문집}15(관동대, 1987)민병수, [정지상편-한국의 한시(3)], {문학사상}207(문학사상사, 1990년1월호)안대회, [고려의 서정시인-남호 정지상], {한국고전문학작가론}(소명, 1998)박성규, [정지상론], {한국한문학연구}3,4합집(한국한문학회, 1979)박수천, [정지상 한시의 문학성에 관한 연구], {한국한시연구} 2 (한국한시학회, 1994)박수천, [정지상론], {한국한시작가연구}1(태학사, 1995)안대회, [고려의 서정시인 - 남호 정지상], {한국고전문학작가론}(소명, 1998)양주동, [비명에 간 서정시인], {한국의 인간상} 제5권 (신구문화사, 1965)박노춘, [고려 시인 정지상의 생애], {고봉} 제25호 (경희대학교, 1981)박노춘, [정지상의 시작품], {고봉} 제27호 (경희대학교, 1983)윤상림, [정지상의 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논문, 1983)김승찬, [정지상론], {국어국문학} 제20집 (부산대 국어국문학회, 198나 다행스럽게도 단편적이나마 작가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가 남아 있고, 시와 독자 사이의 상관성을 살필 수 있는 것으로는 千年의 絶唱인 이 전해오고 있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현전하는 20여편의 정지상의 작품 중에서 을 중심으로 그의 시세계의 일단을 해명하고자 한다.2. 違和된 삶의 悲哀일반적으로 어느 한 작가를 거론할 때는 작가의 出身成分, 生卒年代, 學問經歷, 交遊關係 등을 언급하게 된다. 鄭知常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고자 할 경우도 예외는 아니겠지만, 정지상이 남긴 현존하는 자료는 극히 드문 실정이어서 우리는 처음부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기록에 의하면 『鄭司諫集』이 있었다고 하나 이미 인몰되고 없으며, 또한 行狀이나 世系도 전하는 것이 없다. 정지상에 대해서는 그의 출생지가 西京이라는 점이 알려져 있을 뿐, 그의 출신성분은 물론 그의 부친이 누구였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정지상의 시세계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지극하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속에서 단편적인 자료이지만 정지상의 생애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주는 다음과 같은 자료가 있음은 지극히 다행이라고 하겠다.신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에게 훈도를 받고 후에 太學에 입학하였사온데 마치 司馬相如가 昇仙橋에 글을 쓰듯 비문강개하여 서울에 노닐었삽고, 朱買臣이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감을 흠모하였사옵니다. 그러나 10년간이나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천리 밖에 홀로 떠돌아 다니니 田園이 황폐해지고 친척이 모두 흩어졌사옵니다. 우물을 파다가 물 나오는 곳에 이르지 못하듯 중도에서 공부를 폐하게 되었사오나, 산을 이룸에 흙 한 삼태기의 부족으로 前功을 폐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한시도 잊지 않았사옵니다.) 鄭知常, 「謝賜物母氏表」『東文選』권34.이 글은 정지상의 家系와 그의 젊은 시절의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거의 유일한 자료로서, 仁宗이 그의 어머니 盧氏에게 물건을 하사하심에 대해 사례하는 表文이다.이 글에 의하면, 정지상은 편모 슬하에서 자라면서 지극히 불우하고 고뇌에 찬蟲悲'라고 표현한 것은 자아가 슬픈 심경으로 벌레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對象의 景이 自我의 情에 합일된 것이다. '床下'는 겉으로 표출하지 않고 감추어 둔 자아의 內面의 심리를 의미한다. 화자는 지나간 세월의 즐거웠던 갖가지 추억을 회상하면서 이별을 괴로워한다.결국 수연에서의 '一葉落'과 '百蟲悲'는 자아가 인식한 세계의 모습이며, 그것은 곧 違和된 삶의 비애로 나타난다.수연에서 자아는 지나간 세월의 즐거웠던 갖가지 추억을 회상하면서 이미 시들어 버리고만 사랑에 괴로워한다. 그런데 자아의 아픔이 더한 것은 님과의 이별이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聯에서의 '忽忽'은 이별이 예기치 못한 것임을 암시해 준다. 자아는 예기치 못한 이별을 맞아 충격 속에 괴로워함에 비해 님은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유유히 떠나고 있다. 님이 어느 곳으로 떠나는지 알 수 없는 이별의 상황에 처해 자아가 취하고 있는 태도는 그 아픔과 매우 대조적으로 소극적이다. 떠남을 말릴 수 없는 것은 떨어지는 나뭇잎을 어찌할 수 없듯이 그 어쩔 수 없는 宿命感을 느꼈기 때문이다.頸聯에 오면 이별을 어찌할 수 없는 숙명으로 절감하는 자아의 상황이 표출된다. 그것은 수연에서 내비친 삶의 비애가 충격적인 이별로 이어지면서 필연적으로 이르게 되는 좌절의 인식(片心山盡處)이다. 그러나 그 좌절은 좌절로서만 끝나지 않고 그리움으로 승화된다. 경연을 좀 더 분석해 보자.경연의 두 구는 관련사가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종문 교수는 5·6구에서 서술어가 생략된 점이 가지는 시적 의미를, 詩想의 형식적 흐름의 단절을 통한 그리움의 표출) 이종문, 앞의 논문 p.161.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님을 향한 그리움이 진하면 진할수록 그 그리움의 강도를 설명적 진술로 다하기는 어렵다. 李白처럼 '愁心'을 '明月'에 붙이기도 하고 杜甫처럼 '고향 그리는 마음'을 '외로운 배'에 매어 놓기도 한다. 마음은 본래 신체를 떠날 수 없지만, 이처럼 詩人은 다른 물상의 특징을 어떤 물상에다 옮기는 방식에 의해 의상을 구성할 수 있의 '負後期'할 것을 예견하고 있다. 자아는 멀리 가버린 님에게 '春波綠'의 파동치는 물의 의상을 빌어와 사랑의 재생, 님과의 재회를 갈망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아의 일방적인 소망일 뿐이다. '春波綠'의 생명력 있는 동적인 의상과 '君休負後期'의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정적인 의상의 대비를 통하여 자아의 간곡한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이 시는 尾聯에 님과의 재회에 대한 간절한 소망아 나타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의 주조적인 분위기는 결코 밝거나 희망적이지 않다. 이별이라는 냉혹한 현실에 처해 자아가 느끼는 외로움과 아픔이 물들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아는 떠나는 님의 옷소매를 부여잡고 매달리는 적극성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또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며 이별의 아픔을 겉으로 표출하고 있지도 않다. 다만 내면으로만 삭이고 있을 뿐이다. 있으라고 해서 가지 않을 님이 아니기에 자아는 宿命에 순응하는 체념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이 시는 표면적으로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사랑을 말하고 있다. 시적 자아는 이별의 장에서 감상적이며 순응적인 여성의 정서를 진하게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작자인 鄭知常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감상적이며 체념적인 여성의 정서를 노래하였느냐 하는 점이다. 이 점을 밝혀 보기 위해서는 단순히 표면에 나타나 있는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정지상의 경험의 세계와 견주어서 그 내면에 깔려 있는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젊은 시절의 정지상은 대상세계와 조화·화합되지 못하는 違和된 삶을 살았다. 일반적으로 볼 때, 대상세계와 화합하고자 하는 의지와 소망이 강렬할수록 불일치에서 오는 좌절과 절망은 더할 것이며, 그것에서 오는 절망감과 비탄은 직설적으로 표출되기 쉽다. 지극히 불우하고 비참한 생을 살다간 林椿이 그의 좌절감을 卽物的으로 記述하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林椿 詩의 경우는 詩的局面 구성이 詩作主體와 일정한 對應關係에 서는 象徵性에의 순화도가 매우 낮아 시로서 실패하고 있다.) 李東歡, 「林椿論」, 『語文할 것이다. 이 시도 이러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屈原이 에서 "그대 손을 잡고 동쪽에 가서, 사랑하는 님을 南浦로 보내네."라고 한 이후에 '南浦'는 離別의 場으로 관념화되었다. 그로부터 후대 시인이 송별을 노래할 때마다 항상 이 말을 사용했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南浦에서 이별을 노래한 정지상의 위의 시는 진부한 발상의 모방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지상의 이 독자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그 자신의 삶과 문학의 관계를 미적으로 훌륭히 형상회시키고 있다는 점에 있다.정지상은 지식인으로서의 삶을 지향했지만, 문학적으로는 시인이기를 지향했다. 지식인이기를 고수하면서 작품을 쓸 경우 그 작품은 교훈지향의 목소리를 내게 되는 것이고, 감성적 측면에 기대하거나 의존할 때 정서적 정감적 목소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다.) 金大幸, 『詩歌 詩學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1) p.298.정지상은 그가 처한 세계를 지식인의 세계관으로서가 아니라 정서적 세계관으로 바라보았으므로 젊은 날의 그의 삶이 그러하듯이 갈등과 좌절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모순된 현실을 그저 충격의 상태로만 버려 두지 않고, 그 모순된 충동을 하나의 정서로 질서화하여 해소하고자 하는 시인의 자세를 고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바로 이러한 모순을 질서화한 작품이다.젊은 날의 정지상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황폐한 삶을 살았다. 10년을 떠돌이 신세로 황폐한 삶을 살아가게 되면, 그 반대편의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도록 유도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메마름으로 채워진 사막세계, 그림자 없는 삶의 세계 등 황폐한 세계에 있게 되면, 식물의 풍요, 봄의 돌아옴, 물의 신선함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Leon Edel 著·金允植 譯, 『作家論의 方法』, (삼영사, 1983) p.133.起句에서 비 그친 긴 둑에 산뜻하게 돋아나 있는 풀빛의 생명력을 시각적으로 묘사) 成賢子, 「金富軾의 現實認識과 詩世界」, 『梨花語文論集』 제4집 있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미래지향적인 활동이다. 교육은 그것이 정확하던지 부정확하던지 간에 미래상에 기초하여 이루어진다. 교육자가 가지는 인간과 사회에 관한 미래상에 따라 교육의 성격이 달라지며, 더 나아가서는 교육이 창조하는 미래의 성격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의 사회는 현재의 교육을 방향 지우고 반대로 현재의 교육은 미래사회에 영향을 준다.그렇다면 과연 미래를 어떤 사회이며 우리는 어떻게 거기에 맞게 미래상을 교육에 적용시킬 수 있을까?우선 기술·정보화 사회라는 특징을 들 수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더욱 더 빨라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확실한 보장은 없더라도 가능한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미래상을 골라 투자를 해야할 것이다. 다니엘 벨(Daniel Bell)은 시간간격 시대가 지나감에 따라 농업화시대 에서 공업화시대로, 다시 정보화시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도「제 3의 물결」에서 공업사회로부터 정보사회로의 변천과정을 제 3의 물결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한국도 예외는 아니고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보사회는 고부가가치 상품인 첨단산업을 중시하는 데 이 첨단산업 시대의 도래는 무형자원의 도래로 볼 수 있다. 공업사회까지는 유형자원 시대였으나 이제 훈련된 두뇌나 축적된 기술, 근면성 등을 필요로 하는 무형자원의 시대인 것이다. 물적 자원보다는 인적 자원이 풍부한 우리 나라로서는 미래지향적인 자원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이제 뇌라는 Hardware 보다는 그것을 운용하는 software의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정보화 사회란 무형의 지식 및 정보가 유형의 재화나 에너지를 누르고 모든 면에서 중시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또한 개방·국제화라는 특징을 들 수 있다.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만 해도 우리는 우리 나라를 일일 생활권에 넣을 수 없었으나 지금은 세계도(전 세계는 아니지만) 일일생활권에 드는 시대가 되었다. 세계는 지구촌 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교류가 활발해 지고 있으며 이것은 비단 왕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간의 교역, 수출입 등을 통하여 더욱 더 긴밀하게 연결된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개방·국제화 시대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이로 인해 우리 경제의 경쟁상대 또한 상향으로 이동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오로지 두뇌와 기술을 토대로 문화와 경제능력으로 국제화 시대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그냥 두뇌와 기술이 아닌 쓸모 있는 두뇌와 기술이 되어야 한다. 기술개발능력이 발달되어야 한다는 소리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력의 기반이 되는 과학교육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학만을 중시하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 물론 사회 변화가 사회 변화인 만큼 우리의 과학적 능력도 중요하겠으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를 존재감을 찾게 하는 교육이 먼 미래를 위해 더 중요한 교육이라 하겠다. 또한 다변·다원화 사회이다. 이것은 최고(원) 가 많이 존재하는 사회로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경쟁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변화는 이렇게 우리에게 물밀 듯이 밀려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러한 미래는 어쩌면 벌써 도래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실정은 미래 라 함은 아주 먼 올 것 같지 않은 미래만 생각하고 교육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이렇듯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는 수업을 시작할 때 새로운 개념이었다고 하더라도 수업이 끝날 때는 과거가 되어 버리는 개념일 지도 모르는 데 말이다. 즉 현재 를 미래 보다 더 강조하는 교육인 것이다. 미래에 관한 기본 가정을 비판적으로 분석 해 보지 않는다면 미래를 위한 효과적인 과업을 수행할 수 없다. 이것은 미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의사결정을 좌우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미래의 어떻게 도래할 지 모르는 변화에 대하여 그 변화의 가능성을 도외시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적응하는 교육을 해야한다. 변화에 대한 가능성은 정확한 것이거나 최종적인 것이 아니어도 좋다. 아니, 정확하거나 최종적일 수 없다. 정적인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얼어붙은 것 같이 정적인 미래상이 아닌 훨씬 더 복합적인, 유기적이고도 선택적이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미래상을 그려야 하며 그것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