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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도 유적지 답사
    답사의 의의...물질적인 것은 나누면 반감되지만, 교육활동과 같은 정신적인 것은 공유하면 배가되어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또한 교육이란 체계적인 계획과 학생들의 학습경험을 중심으로 한 내용을 선정해야 한다고 한다. 즉 학습의 내용이 학생들의 경험이 되기 전에는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대학에 처음 들어와서 받는 수업은 누구에게나 설레는 마음과 자신의 지난 학생시절의 교육과는 다르리라는 기대를 가지게 해 준다. 그러나 그 누구도 대학에서의 수업에 만족하거나 자신의 들뜬 마음을 덮어줄 만큼 신선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한 번씩은 가져봤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고려의 문화와 정치'란 과목의 '고려 유적 답사'라는 과제물은 나에게는 신선한 경험이었고, "이런 수업도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중요한 경험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내가 답사란 것에 기대를 가지고 성실히 임했던 것은 아니다. 답사하러 가면서 수업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놀러간다는 것에 중점을 둔 것이 사실이며, 또한 단순히 한 개의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하여 적지 않은 경비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회의적이었던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답사를 끝낸 후에는 좀 더 철저한 사전조사와 더 자세하고 깊게 답사를 하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았으며, 반면에 색다른 경험을 했다는 점에서 많은 교훈과 추억을 가지고 돌아왔다.답사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그 곳에 실지로 가서 자세히 조사함'이라는 뜻을 가지고있다. 답사란 말의 사전적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커다란 의미의 수업이 되었다.1.답사동기 및 주제나의 고향은 제주도이다. 이번 수업을 들으면서 곰곰히 생각에 잠긴 나는 먼저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유적을 찾아보기로 했다. 인터넷과 도서관 자료를 뒤져본 후 느낀 나의 심정은 좀 찹찹했다. 실상 조선과 거의 비슷한 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고려의 유적은 조선시대의 그것과 비교해서 그리 많지가 않았다. 더욱더 가슴아픈 사실은 그 유적들중 제주도에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난 내 기억을 더듬어 제주의 유적을 생각해냈다. 그 중에서 떠오른 것 중 하나가 바로 '항몽 유적지'이다. 답사라는 것이 잘 알려져 있는 곳에 대해서 조사하는 것도 되겠지만, 그 보다는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을 조사하여 다른이들에게 정보를 주는 것이 더욱 유익할 것이라는 생각도 나에게 힘을 주었다.2.사전조사1. 항몽유적지(항파두리)이곳은 700여년 전에 몽고의 침략군을 물리치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 궐기했던 삼별초가 최후까지 항쟁하다 장렬하게 순의한 유서 깊은 유적지로, 그 옛날 삼별초의 마지막 보루인 항파두성이 있는 곳이다. 삼별초는 고려군의 정예 별동대로서, 고려 원종 11년(1270) 2월 고려 조정이 몽고군과 강화를 맺고 피난지의 임시 수도 강도(지금의 강화도)로부터 개경으로 환도하게 되자, 이에 반대하고 끝까지 몽고 침략군과 싸워 우리나라로부터 완전히 몽고의 세력을 몰아낼 것을 주장하여 독자적으로 반몽항쟁을 계속하였다. 몽고 세력이 이를 토벌하기 시작하자 삼별초는 전라도 진도로 근거지를 옮겼다가 그곳에서 크게 패하자 이번에는 제주도로 건너와 항파두리성을 쌓고 몽고군과 대결하기 2년여만에 마침내 원종 14년(1273) 4월 몽고 세력에 의해 전원이 순의하고 말았다. 본래의 항파두리성은 15리에 걸친 토성으로 외성을 쌓고 그 안에 다시 석성으로 내성을 쌓은 이중 성곽을 구축하여 각종 방어시설은 물론 궁궐과 관아까지 갖춘 요새였다고 한다.2. 김통정 장군김통정 장군은 700여년전 고려말 궁지에 몰린 삼별초 일파를 인솔하여 진도를 거쳐 제주 도에 들어왔다. 김통정은 도민들을 동원하여 토성을 쌓았다. 성을 쌓는데 오랜 시일이 걸렸고 또한 흉년이 들어 일하던 역군들은 굶주림에 허덕였다 김통정은 성을 완공하고 나서 2년만에 김방경 장군에게 패망했다. 김방경 장군이 고려군을 거느리고 추자도를 거쳐 관탈섬쪽으로 김통정을 잡으러 나타나면 토성옆 망일이동산(망보았던 오름)에서 정세를 살핀 후 연막전술을 폈다. 제주도민에게 재를 얻어 토성위를 뱅돌아가며 뿌리고는 말꼬리에 빗자루를 달아매어 채찍질을 가해 성위를 달렸다. 김방경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접근을 했으나 안개처럼 일어난 재먼지로 사방을 분간할 수 없어 후퇴하곤 했다.답사당일1.제주로 떠나다답사의 목적만을 위해서 제주로 가기엔 여비와 시간이 좀 부족했던 나로서는 추석명절을 답사의 적기로 결정하였다. 9월 9일 제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는 나는 친지들과의 만남도 기대됐지만, 한편으로는 내 생애 최초의 유적답사에 대한 기대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걸 부인할 순 없었다.2.유적지를 향하여추석명절 4일동안 3일내내 제주도엔 비가 내렸다. 사진촬영과 자료수집 하는데에는 비가 그리 좋은 환경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결국 비가 그치는 대로 유적지를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내리는 비가 그칠 생각은 안하고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이었다. 기다리다 지친 나는 이러다 유적답사도 못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에 결국 3일째되는 날 오후에 답사길을 떠났다.솔직히 제주도는 유적지로 향하는 차편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과 유적지까지의 거리는 승용차로 40분 정도이지만, 버스가 별로 없어서...오후에 가기엔 좀 힘들다. 그래서 형의 차를 빌려서 가기로 결정했다. 혼자 가긴 좀 쓸쓸하긴 했지만, 결국 같은 목적을 가진 이를 찾지 못한 나는 할 일없는 친구보단 혼자가 더 났겠다는 생각에 집을 나섰다.물론 교통편이 없는 것은 아닌지라, 그에 대한 설명도 덧붙인다. 먼저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애월읍 고성까지 가는 버스를 타서 고성 2리에서 내린다. 그리고 상귀리쪽으로 한 20분정도 걸어가다보면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그 표시를 따라서 30분정도 오르막을 올라가면 드디어 항몽유적지 정문이 나온다.3.입구에 들어가기 전에그곳은 예상대로 애월읍에서 관리하고 있는 관리사무소와 토산품 판매점, 그리고 대형주차장이 준비되어 있었다. 항파두리 입구 바로 앞에는 돌쩌귀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김통정장군이 토성을 쌓고 내성을 쌓으면서 그곳에 쌓았던 돌의 일부라는 설명과 함께 7개 정도의 돌이 아주 반듯한 형태로 깍인 채로 놓여있었다. 그 돌들을 보며 800년전의 대몽항쟁의 모습을 가만히 상상해본다.4.성곽을 둘러보며제주도는 해안으로부터 한라산 정상까지 점점 고도가 높아지므로, 이곳의 성곽은 해안보다 200미터 정도의 고지에 위치해있다. 그리고 이곳 바로 아래는 경사가 매우 높아서 성곽을 쌓기에는 매우 적합한 곳으로 여겨진다. 게다가 이곳은 애월항을 바로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해안의 경비가 매우 유리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외부 토성은 그 길이가 6Km정도로 매우 길다. 지금은 800여년이 지나 그 윤곽만 남아있어서, 다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토성이 지금까지 윤곽이 남아있을 정도면 그 당시에는 얼마나 높았었는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5.토성 내부를 살펴보면서...내부로 들어가면서 좀 많은 기대를 하고 있던 나는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약간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패전한 성에서 웅장한 내부를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형태가 남아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하지만 나의 기대는 여지없이 깨지고 그곳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헌정한 대리석 기념비와 70평 규모의 내부 전시장이 전부였다. 잠시 정문에 서서 내부를 지켜보던 나는 조금씩 내리는 가을 비를 맞으며 그때 당시의 내부를 상상해 보았다. 궁궐과 관아 그리고 여러 방어시설들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상상을 하니 약간은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6.기념비에 앞에서...정문을 지나서 탁 트인 길이 나온다 그길을 따라 100미터 정도를 가면 대형비석이 나오는 데, 이것은 박정희 대통력 재직당시에 제주도를 방문하면서, 이곳의 역사를 전해듣고 기념비를 제작하게 하였다고 한다. 기념비 앞에는 제단이 준비되어 있어서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향을 피우고 제를 지낼 수 있게 해 주었다. 향을 피우고 눈을 감아 그때 당시 고국선열들의 모습을 추모하며, 목례를 올렸다.그렇다. 우리가 유적을 답사하면서 얻어야 할 것은 그곳의 화려한 문화도 있겠지만, 진정 우리가 가슴속에 넣어야 할 것은 그것이 아니다. 바로 그때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본받고 기억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형체도 알아볼수 없게 되었지만, 이곳에는 대몽항쟁의 의지가 서려있고, 고려인들의 자주의식이 담겨있는 곳이다.
    인문/어학| 2000.11.18| 7페이지| 1,000원| 조회(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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